내 인생 최악의 회사 썰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6월 들어 있었던 많은 일 중에 '퇴직' 이 있었습니당...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곳에 있으면서 정말 '최악'이다.. 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있었는데, 한 번 썰로 풀어보려고 합니당... 이딴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미스테리라서, 그리고 나와의 원활한 연애를 위해서는 이런 곳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태그를... 편의상 분노를 담아 쓰기 위해 '다' 체로 쓰겠습니당! 1. 입사 당시 나는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었다. 보험설계사라는 직업... 적성에 맞는 사람은 많은 수익을 갖지만,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탓인지 내 생각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지 못했고,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고 있었다. 그 때. '전남oo신문' 이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내 아버지의 고등학교 선배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한 번 본인의 사무실을 방문해 줄 것을 이야기했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해 '신문기자' 라는 직업에 흥미가 있던 나는 그 곳을 찾아갔다. 첫인상은 매우 점잖아보였다. 온화한 미소로 회사의 비전을 이야기하던 사장. 세 개의 법인을 갖고 있으며 여론조사리서치, 신문사, 여행사로 나눠진 사무실. 비록 직원은 본인 포함 두 명밖에 없었지만 많은 인력들이 외근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며 명단을 보여주고, 여행사와 신문사와 컨설팅, 리서치의 비전에 대해 제시를 해주며 여행사쪽 일을 맡아서 하게 될 거라던 사장. 젊은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고 직업훈련을 해서 지역의 선순환이 되게 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던 그 남자의 사탕발림에 나는 결국 출근을 하게 되었다... 2. 환경 신도시에 있는 뻔지르르한 회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출근을 하고 보니 정수기가 없었다. 커피를 요구하는 사장을 보며 나는 정수기가 없어 순간 뇌정지가 왔고, 사장은 내게 커피 포트기와 2리터짜리 생수병을 보여줬다. 사무실에서는 생수병에 담긴 물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종이컵에 미적지근한 물을 담아 한 모금 들이키니, 이 곳이 건실한 ㅈ소기업인지 연병장 흙바닥 위에서 한국전쟁 때 썼던 수통을 쥐고 있는 건지 혼란이 왔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생수병은 새 물이 아니라는 것. 사장 와이프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정수기 물을 받아다 채워 온다는 것. 겨울이 되자 이 곳엔 보일러나 온풍기 대신 IMF 시절이 생각나는 뜨끈-한 등유 난로가 나타났고, 나는 등유 냄새를 맡으며 오랜만에 너튜브로 검정 고무신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덜덜거리던 컴퓨터는 하루에 한 번씩 '윈도우 정품 인증'을 요구했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창을 띄우면 '정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라는 경고문이 나를 반겼다. 사장이 그렇게 자랑을 하던 '포토샵 및 디자인 작업이 가능한 슈퍼 컴퓨터' 는 동네 폐업한 피시방에서 중고로 팔던 본체와 생김새가 매우 흡사했으며, 나는 'oo회사 개업기념' 이 적힌 수건을 사장에게 받으며 '복지 좋은 회사' 라는 말을 들었다. 3. 업무 여행사 업무가 주가 될 거라는 말과 여행사 업무'만' 주가 될 거라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청소, 커피, 복사, 스캔, 팩스, 운전, 기타 잔심부름 등 모든 잡일을 맡아서 했고, 주간신문 홈페이지 업무와 편집, 토막기사작성, 오탈자 검수, 여행사 전화응대, 여행접수 인원정리 등 사실상 내 몸이 허락하는 모든 업무를 했다. 물론 나중에는 회사가 휘청해서 좀 놀았지만... 특이한 건 명함에 '기자'라고 쓰여있었지만, 기사를 제대로 쓰거나 취재를 한 적은 없다. 대부분 다른 곳에서 홍보용으로 보낸 기사들을 짜집기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자부심은 어마어마했고. 그리고 여행사의 주 업무 중 'oooo열차' 라는 행사가 있었다. 기차를 빌려서 판문점 근처까지 다녀오는... 보통 토요일 오전 5시 출근 오후 11시 퇴근이었다. 18시간을 그것도 주말에 근무를 했고, 나에게는 수당으로 20만원이 떨어졌다. '괜찮은데'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처음에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로 내게 준다고 했다. 시급 별개로... 나중에 물어보니 '열차타고 관광도 가면서 맛있는 것(8천원짜리 도시락 두 끼+가래떡에 피크닉 음료수)도 먹는데 오히려 내가 너한테 돈을 받아야되는거 아니냐' 라는 미친 소리를 해서, 나도 그냥 관광하는 개념으로 대충 다녀왔었다. 4. 대우 일단 그렇게 밖에서 일하고 있다던 수많은 연구진들과 기자들. 1년 3개월동안 일하면서 단 한 명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상상 속의 동물 해태 청룡 주작 현무와 같이 이름만 존재하고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었던 걸까. 또한 열차를 운행하면서 자원봉사자를 원하길래, 대학교 친한 후배들을 데려왔다. 처음에는 택시비도 주기 싫어하던 사장은, 지도 찔렸는지 1인당 얼마씩 일당을 줬다. (그 일당도 18시간 일한 거에 비하면 코딱지만큼이지만, 사장은 '일'이 아닌 '관광'을 한 거라고 '자원봉사자'에게 그 만큼 주는 것도 감사하라고 나 같은 사람이 어딨냐고 이야기했다.) 그 중 나를 많이 따르던 친한 후배 한 명에게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하면 좋겠다 내가 젊은 일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겠다며 말을 했고, 후배는 그 말을 믿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지만.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그만 둔 그 놈이 잘못' 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한 청년을 백수로 만들었고, 후배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돼지열병+코로나로 인해 회사는 어려워졌고, 사장은 나에게 일주일 중 월 목 금 3일만 나오기를 명령했고, 내 월급은 30퍼센트가 깎인 채 입금됐다. 그 회사는 특성상 '월, 목, 금'은 엄청 바쁘고, 화, 수는 조금 널널한 날이었다. 널널한 날은 월급도 받지 말라는 큰 배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마자 사장은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나를 해고했고, 그만둔 뒤 날아온 퇴직금 명세서에는 1년동안 일한 월급을 나눈 값이 아닌 3개월동안 일한 70%의 월급을 나눈 값이 적혀있었다. 물론 법에 걸리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쌍욕이 막 땡겼다. 그렇게 퇴직금 후려치기를 하면서 사람좋은 척을 하며 '여기서 배운 것들 나가서 써먹으면 넌 성공할 거다' 라는 개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총기소유 국가였으면 뉴스에 나왔을 듯. 가장 힘들었던 건 인터뷰나 신문에 대한 제안이나 마케팅, 열차여행 사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아무리 개선안을 올려도 항상 무시됐다는 거. 기본적으로 '내가 제일 똑똑해' 라는 마인드라서, 본인의 사업에 미흡한 점을 지적하면 기분나빠하는 일이 많았음. 이야기하려면 3박 4일이 걸리지만 추리고 추려서 겨우 말했습니당... 여러분 모두 누군가의 사탕발림에 속아서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요! 저는 아버지 사무실에 들어가 가업을 물려받기로 했습니당... 우와 여긴 에어컨도 빵빵하고 정수기도 있고 제빙기도 있고 과자도 있고 녹차 둥글레차 아메리카노도 있네요... 아버지 월급 올려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