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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정말 인연이란! - 박상희 (조각가)

1. 인연이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전화번호 수첩이 낡아서 새로 옮겨 적을 때면, 이게 누구지? 하며 기억하기 힘든 상대의 전화번호도 있고, 어떤 이유로 화가 나서 볼펜으로 시커멓게 지우는 이름도 있다. 어떤 경우는 만날 수도 없고 연락되지도 않지만 ‘혹시나?’ 하고 지우지 못하고 수첩에 그대로 옮겨 적는 애달픈 기억의 이름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너와 나는 운명이야!”라며 없어서는 못살 것 같은 연인, 부부들도 오해로 인하여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이별하는 가슴 아픈 인연도 있을 것이며, 동성 간에도 오랜 우정이, 이념의 차이나 인간적 배반감에 실망하여 오랫동안 함께 했던 그들만의 역사를 기억 속에서 지우기 위해 그만큼의 두께로 노력(?)해야 하는 절연(絶緣)과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악연도 있을 것이다. 1920년대, 사의 찬미를 불렀던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현해탄에 몸을 던져야 했던 불운한 시대의 인연이 있는 반면에 샤르트르와 시몬느 보바리처럼 문학과 철학적 동지이면서 계약결혼을 통해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각자 자유연애를 하다 죽어서는 나란히 무덤에 묻히게 된 행복한 인연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한세상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고 헤어진다. 하지만 인연이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일까? 주인을 구해준 개와 사람 간에도 있을 것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緣起論)을 거론치 않더라도 동물 사이에도 인연이란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살다보면 영화처럼 사람과 작품과의 인연도 있지 않겠는가?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는 오래전부터 불어로 브로캉트(BROCANTE)라고 하는 '벼룩시장'이 있어 왔다. 산 물건의 값이 무려 만 배가 올라가는 엄청난 일들이 이곳에서 종종 일어나곤 한다.  2. 벼룩시장, 만화 같은 이야기가 일어나는 곳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는 오래전부터 불어로 브로캉트(BROCANTE) 라고 하는 ‘ 벼룩시장’이 있다. 광장이나 길가의 공터 같은데서 수시로 열리곤 한다. 거기엔 옛날, 원시적인 농기구도 있고 아이들이 갖고 놀던 인형과 장난감, 고장 난 카메라, 18세기 유리그릇과 의자, 목가구들도 있다. 여우가죽, 사슴박제, 도자기, 고서 등 사람이 만들고 손때가 묻었던 온갖 종류의 고물들이 나오는, 말 그대로 대표적인 만물시장인 것이다.  르누아르가 지난 1879년 그린 '센강변의 풍경'(Paysage Bords de Seine). 이 그림은 지난 1926년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매매된 것으로 확인된 후 그동안 종적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같은 벼룩시장에선 가끔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어떤 사람이 낡은 유화그림을 거실 벽에 장식할 요량으로 20달러를 주고 샀는데 나중에 그 그림이 19세기의 화가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확인이 되어서 산값에 무려 만 배가 올라가 200만 달러짜리(내 기억으로는)가 되었다는, 신문, 해외토픽에도 나온 실제이야기이다. 역시 또 한사람이 벼룩시장에서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나무액자가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집에 와서 기존의 사진을 떼어내고 자기 사진을 끼울려고 액자를 들쳐보니 거기엔 놀랍게도 반 고흐의 유화 작품이 밑에 껴 있더라나?  이런 경우는 로또복권 당첨과는 수준과 차원이 다른 얘기다. 얼마나 만화 같은 이야기인가! 하지만 현재에도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가끔씩 일어나고, 전설과 신화가 돼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에 벼룩시장을 자주 둘러보는 것을 커다란 취미로 하는 사람이다.  하마터면 영영 잃어버릴 뻔했던 20대의 내 자조상을 영수가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파도에 씻겨 무너져 내리면서 모래 사이로 드러나는 하얀 조개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3. 영원히 잃어버릴 뻔했던 20대의 또 다른 나 이런 나에게 한국으로부터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형! 저예요!”  “어!, 그래. 잘 지내니?”  하며 통상적인 인사를 하고선 후배가 하는 말이.  “형 ! 물어볼게 있는데요?”  “그래! 뭘?”  “형! 혹시 브론즈로 주먹 두 개 합한 정도의 조그만 작품을 옛날에 한 것 있어요?”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가슴 한쪽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파도에 씻겨 무너져 내리면서 모래 사이로 드러나는 하얀 조개비의 이미지도 떠오르고, 그러나 그것도 잠깐! ‘아니? 그런데 애가 그 작품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하는 의문과 혹시? 하면서 순간적으로 내 몸의 모든 감각 세포가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피부의 모공이 열리는 듯,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런 작품 있지. 10여 년 전에.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영수 형 있잖아요!”  “응!”  “그 형이 장안동 골동품상가에 갔는데 한쪽 선반에 조그만 남자 형상의 조각품이 있어서 관심을 보니, 얼굴이 형하고 비슷하게 생겼기에 주인한테 ‘이거 얼마 합니까?’ 물으니 100만원 달라는 걸 나름 네고를 해서 사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보고 ‘이거 혹시 상희 것인지 아니면 동명이인인지 파리에 전화해서 확인해보라.’고 해서 지금 전화한다는 것이었다. ‘참! 살다보니 내게도 이런 재미있는 일이 생기는구나!’ 그러고 며칠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형! 영수 형이 형 작품 산 델 다시 가서 그걸 어떻게 구입하게 됐는지 알아보고 왔는데요.”  하면서 말하는데, 그 곳으로 오게 된 경위는 이렇다. 공항에서 찾아가지 않는 이삿짐이 6년 정도 지나면 공매에 붙인다고 한다. 그때 품목별로 경매하는데 홍콩에서 보내진 한 이삿짐에서 목판화 몇 점과 걸레스님으로 유명하며 얼마 전에 돌아가신 중광스님 작품, 그리고 내 작품 등이 있어서 그 주인이 샀다고 한다. 그는 작품들을 인수한 이후에 작품의 작가들을 알아보기 위해서 나름대로 수소문 한 끝에 기본적인 나의 약력 등을 알아냈다고 한다. 작가들의 수준을 알아야 작품을 적정가에 팔 수 있지 않느냐는 이유 있는 대답과 함께.  “형!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게 홍콩에서 한국으로 보내지고, 부친 사람이나 가족은 그것을 찾아가질 않고 방치했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형! 그런데 그 작품을 처음에 누구한테 판 거예요?”  “너! OO당이라고 알지?”  “네!”  “그 사람한테 준거야. 그 사람이 내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서 작품 하나를 팔았는데 답례로 뭘 줄 수 있을까 고민했었거든.”  “그래요?”  “그 작품이 대학 다닐 때, 벌거벗고 큰 거울 앞에서 생각하는 사람, 로댕처럼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을 밤새 밀납으로 만든 것이거든!” <휴식을 취하는 시지프스>, 박상희 作   “돈으로 줄 정도의 액수는 안됐고, 더군다나 너도 알다시피 그 당시 내가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잖아. 적당한 것을 찾는 중에 내 작업실 벽에 ‘휴식을 취하는 시지프스’라는 제목으로 걸려 있던 그 작품뿐이 없더라고.”  “아무거나 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건 아닌데’ 하면서 좀 망설이다가 그것 외에 대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주었던 거지. 그런데 주고 나서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그 작품이 생각나는 거야. 후회가 막심하고.”  “그 작품이 대학 다닐 때, 벌거벗고 큰 거울 앞에서 생각하는 사람, 로댕처럼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을 밤새 밀납으로 만든 것이거든!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이태리 주물기법 시간에 직접 제작을 한 것이라 그것에 대한 기분은 남달랐던 거지. 일종의 내 자조상인 셈이야.”  “그래서 나중에 다시 그분한테 찾아가서 ‘그것 대신 다른 작품으로 바꿔주면 안될까요?’ 했더니 자기는 그 작품이 좋다는 거야. 어떻게 하니? 그래서 마음을 접었지만, 가끔씩 그 작품이 생각이 나고 마치 잃어버린 자식갔더라구.”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사람이 인사동에서 안보이고, 다른 사람들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그 사람과 함께 작품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던 거지. 영수한테 전해줘! 내가 다시 그 작품을 산다고.” “형! 영수 형한테 형의 그 작품에 대한 애착을 얘기했더니 형한테 그냥 주겠대요.”  “그래!???? 정말? 야! 그런 얘기는 빨리 해야지!”  “그리고 형이 나중에 파리에서 돌아오면 다른 작품으로 하나 만들어 달래요.”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하지! 근데 너무 고맙다.”  얼마 전에 서울 가서 그 친구한테 작품을 돌려받아 왔다. 작품을 정성스럽게 싸주는 친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작품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그 기분이란 고아원에 맡겨졌던 아이를 찾아오는 부모님 마음이 아마도 이러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면서 왼손에 느껴지는 작품의 무게가 신영수라는 그 친구와 인연의 무게로도 전달되며, 살아있다는 것과 존재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이들은 혹시 홍콩에서 내 작품을 보낸 사람은 왜 홍콩으로 갔으며 그 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내가 알아 본 결과 그분은 어느 절에 주지로 있던 스님과 중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버거웠던 짐은 홍콩에서 한국으로 보내고……. 이게 얘기가 되려니 스님도 등장하고 참! 하지만 가감이 없는 있는 그대로 사실이다.  작품을 정성스럽게 싸주는 친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작품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그 기분이란 고아원에 맡겨졌던 아이를 찾아오는 부모님 마음이 아마도 이러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결국 그 사람은 내 작품과는 인연이 안 된 것이고 그 작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내 품이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영원히 잃어버릴 뻔했던 20대의 또 다른 나는 그렇게 돌아왔다.  그 아프고, 뜨거웠던 젊은 날의 시간은 희미한 기억 속으로 증발해버렸지만 순수했던 20대의 초상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나’처럼 이렇게 하나의 작품으로 남아서 증거하고 있다.  아! 참으로 인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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