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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발음? 정통영어? - 김성현 (영문학 박사, 문화 평론가)

많은 사람들이 영어컴플렉스 때문에 힘들어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어컴플렉스의 실체는 무엇인가? 일단 사람들은 자신의 능숙하지 않은 발음을 부끄러워 한다. 그리고 자기가 말하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틀린 것인지에 대해서 매우 지나치게 민감하다. 한국어적인 표현을 영어로 직역한 것보다 정말 영어적인 표현을 배우고 쓰는 것에 열광한다. 심지어 의성어를 흉내내고(Whoops!) 손가락으로 셀 때 엄지부터 펴거나 손가락 따옴표를 쓰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띈다. 할로윈은 강남권의 몇몇 사람들이 즐기는 작은 축제에서 점점 영어유치원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분위기다. 시간이 지나면 할로윈도 크리스마스처럼 한국의 자연스러운 휴일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정통영어를 원한다. 마치 정통영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 본토발음이라면 내용을 불문하고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 본토가 어디인지 그 사람들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막연히 영어를 쓰는 나라들은 다 발음이 똑같다고 생각하는걸까? 아니면 그 편차가 있는 것을 고려하면서 본토영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걸까? issue_min20140307_1154.jpg 할로윈데이는 영어유치원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는 분위기이다. 흔히 영어를 사용하는 본토에 해당하는 영국,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의 발음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는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알던 한 아일랜드 출신 교사는 그 자신 런던 출신의 친구들에게 발음이 왜 그러느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었다. 그만큼 본토발음이라는 개념은 그 출처가 의심스럽다. 일단 정통영어라는 표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통영어 혹은 영국식 영어는 매우 수준 높고 세련된 영어라는 등식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사회적 경험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워러” 대신 “우워타”라고 말하면 기내 서비스가 달라졌다나 뭐라나. 아직도 BBC English 혹은 Queen's English 와 같은 표현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국가간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나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쇼핑몰에 가는 것 만큼이나 흔하고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영어에 대해서도 다양한 영어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Native Speaker는 보통 UK, US, Ireland, Australia, New Zealand 출신의 백인을 말한다. 당연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흑인들도 아시아인들도, 교포들도 있지만 유독 한국사회는 영어라면 백인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issue_min20140307_1304.jpg 인터넷에 떠도는 '원어민처럼 발음하는 방법'은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나는 3년동안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미국의 대학 졸업생들 중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를 희망한 장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기본적인 한국어 교육과정이 끝나면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은 한국의 지방 중•고등학교에 원어민 교사로 파견을 나가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중 미국의 교포2세 여학생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하던 중학교에서 매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 교포였기 때문에 한국어를 어느 정도 잘 하는 편이었는데, 바로 그 점이 한국학생들에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백인 원어민 교사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협조적이던 학생들은 교포2세 여학생에게는 매우 불손하고 매사 장난치듯 수업진행을 어렵게 했던 것이다. 그 중학교 학생들은 아마도 교포2세 여학생에게 영어를 배우는 게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불만은 결국 수업시간의 힘겨움으로 여학생에게 고스란히 돌아갔고, 결국 여학생은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동료교사들은 물론, 풀브라이트 재단과도 아무런 상의 없이 미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에피소드로 기억된다. 강남을 비롯한 한국 대부분의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과 학생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놀라운 상관관계가 있다. 대부분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백인 영어교사를 흑인이나 타 인종의 영어교사보다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완곡하게 표현해서 선호라고 썼지만, 여기에는 훨씬 더 심각한 사회문화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이 문제는 실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회문제이기도 했다. 실제 많은 무자격 영어권 백인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교육적 차원의 직업이라기보다는 몇시간 야부리까면서(?) 놀아주며 높은 페이를 받고 여학생들과는 그렇고 그런 관계를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기다 밖에서는 백인 네이티브 스피커라는 일종의 경외감조차 불러일으키는 대접을 받는다면 자기 나라에서 백수로 빈둥대는 것보다 한국에 와서 돈도 벌고 즐기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까? 정통영어, 본토발음이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한국의 영어교육은 실용영어를 강조하면서 불게 된 회화열풍이 가세하면서 원어민에 대한 수요를 급격하게 증가시켰고, 이로 인해 학교며 학원에서는 원어민 교사의 신상 및 자격조건에 대한 기본적인 확인절차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채용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 issue_min20140307_1324.jpg 대부분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백인 영어교사를 흑인이나 타 인종의 영어교사보다 더 선호한다고 한다. 직업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청담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영어권 교포여성은 한국에 오기 전 포르노 영화를 찍었던 사실이 중학생 제자들에 의해서 밝혀지기도 했고, 심지어 미국 FBI에서 살인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백인남성이 버젓이 강남 영어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었다. 백인 영어 사용자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그 우매성을 경제적으로 악용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풍경이다. 지금도 금요일 밤 홍대 앞이나 이태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꽤 불량스러워 보이는 백인청년들은 지킬같은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하이드처럼 주말을 즐긴다. 거기엔 늘 한국인 친구들이 동료처럼, 여자친구처럼 애인처럼 자리를 늘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백인들 중에는 말 그대로 불법체류자의 신분인 경우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이들 백인 불법체류자를 검거하기 위해 강남이나 청담동의 영어학원에 들이닥쳐서 원어민 교사를 강제 출국시겼다는 기사는 보지 못했다. 종종 베트남 노동자나 필리핀 노동자가 안산이나 수원 등지의 공장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일하다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송환당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글쎄, 유일하게 비슷한 기사라면, 백인 청년이 카사노바처럼 여러 한국 여자들과 놀아나다 스스로 출국한 사건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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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과는 다르다! 늑대 보호소에 호평이 쏟아지는 이유
미국 워싱턴주 스카짓카운티에 있는 도시 아나코테스에 위치한 보호소(The Predators of the Heart Sanctuary)는 특별한 동물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바로 늑대입니다! 이 보호소는 1998년 설립돼 약 12,240평의 땅에 울타리를 쳐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인간들의 주거지 확장과 산림파괴로 갈 길을 잃은 늑대들을 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더욱 특별한 점은 200달러(약 24만 원)만 내면 늑대들과 2시간 동안 어울려 교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호소는 하루에 2번씩 관광객을 받고 있으며, 6일제로 매주 12번의 일정이 진행됩니다. 보호소 관계자는 늑대와 특별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도, 자신들이 비영리단체임을 강조하며 "보호소를 유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일 뿐, 이득을 창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관계자는 이어 "관광객과 늑대들의 안전을 위해 입장하는 사람들은 엄격한 안전교육을 받으며, 그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18가지 이상의 안전 수칙을 숙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돌발상황을 방지하고 안전수칙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18세 이상의 관광객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늑대들과 교류한 사진을 SNS에 올리고 있는데, 사진 속 늑대들은 마치 이웃집 반려견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애리조나 주립 대학의 윈 교수는 "대부분의 야생 늑대는 인간에게 친근하지 않지만, 보호소에 있는 야생 늑대들은 오랜 사회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 주민과 함께 산책하던 개가 보호소로 들어갔다가 늑대에게 물려 죽기도 했으며, 한 번은 보호소 늑대가 탈출해 마을 주민의 마당에 침입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보호소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동물원과 달리 늑대들을 넓은 자연에 풀어 키운다는 것'과 '사회화를 통해 사람에게 우호적인 늑대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비영리단체인 만큼, 한정된 횟수와 관광객만을 받아들여 동물들의 복지와 스트레스에도 매우 신경 쓴다는 평인데요. 동물원과 달리,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닌 곳.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우선시하며 보호소를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익만 벌어들이는 곳.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동물보호소 아닐까요? P.S 동물을 좋아하는 저에게, 꼭 한 번 가고 싶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절대 안 가기로 결심한 곳이 동물원입니다. 그런데 저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당장 가볼 것 같네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반려견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정당한 이유
미국 동물 학대방지 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유기되는 개의 수는 1년에 약 330만 마리이며 그중 67만 마리가 안락사 됩니다. 이 수치를 보고 충격받은 한 프로야구 선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렸고, 그가 올린 게시물은 43만 회의 좋아요를 받으며 반려인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일침을 날린 사람은 바로 프로 야구 선수 오스틴 콘웨이 씨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페이스북에서 '반려견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례'를 많이 접해왔어요. 마음대로 안 되는 소음 문제와 대소변 훈련 그리고 집주인이 동물을 허락하지 않아서 등등."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합니다. 정말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건 반려견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반려견을 입양하기 전에 미리 해결하고 알아봤어야 할 문제입니다." "사실, 위 문제들은 저 또한 아무런 준비 없이 스텔라를 입양하며 직접 겪었던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제가 저질렀던 바보 같은 실수를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고, 그로 인해 수백만 마리가 버려지고 안락사 된다는 것에 화가 납니다."  "반려동물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고요? 아니요. 우리는 반려동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임에도 책임감 없이 입양한 겁니다."  오스틴 콘웨이 씨도 스텔라를 입양한 이후 비슷한 문제를 겪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를 키울 수 있는 집을 한참 동안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개를 키울 수 있는 집을 구하더라도, 스텔라의 품종인 저먼 셰퍼드를 허용하지 않는 집주인이 많아 또다시 한참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반려동물을 입양 시 일어나는 문제점을 미리 해결하세요. 그러고 나서 입양하는 게 순서입니다. 만약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입양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반려인의 인구가 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유기동물의 숫자도 그만큼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경제 신문이나 전문가 등은 반려동물 산업의 증가와 긍정적 경제 효과에 대해서만 다룰 뿐 누구도 유기동물 증가라는 부작용에 대해선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1,000만 반려인 시대가 된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자취생(1인 가구)의 증가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반려동물 파양의 주된 이유 또한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서'입니다. 즉, 같은 이유로 입양되고, 같은 이유로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죠. 반려동물에 대한 무지와 생명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 부족 그리고 충동적인 입양으로 인해 벌어지는 안타까운 비극입니다.  반려동물을 입양한다는 것은 '귀여운 동물을 입양'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이 눈을 감는 날까지 15년이란 시간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스틴 콘웨이 씨의 일침을 우리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