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japark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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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잠잠했던 스트리머의 비리


는 침착맨
유령재단이 된 쏘영이까까재단으로 기부를 받아 쏘영이까까재단에서 다시 병건이구름과자재단으로 기부해 횡령한다는 혐의가 나옴 ㄷㄷㄷㄷㄷ
심지어 쏘영이까까재단에서도 기부금으로 산 까까들을 이병건씨가 개인적으로 먹는다는 주장까지 나옴
과연 진실은...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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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 까까시절 유령재단 하나씩 있었잖아요.명절 생일 졸업 후원금 들어오면 엄마 아빠가 불려주신다고,아...담배말리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킹받네
@PowerOW 침미향 수사 시급...
난또 머라고🤣🤣🤣
이말년씨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pram0924 쏘영이가 딸이에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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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의 츤데레...
우선 제 시댁은 경상도입니다. 그 중에서도 북도~~~~~~~~~가부장의 끝판왕이라고 하죠? 제 시댁도 그래요. 남자는 주방에 들어가면 ㅂ알 떨어지는 줄 알구요~ 집안일은 다 여자 몫이고.. 육아 역시 엄마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평생을 그리 살아오신 분들이시라.. 이건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으세요. 대신, 집안의 가장은 반드시 남자이며, 남자가 뭘을 해서든지 본인 가정을 책임져야 된다고도 생각 하십니다. 한 번 가정을 꾸렸으면, 하늘이 두쪽나도 아들이 그 처자식 먹여 살려야 된다고 생각하시고 제가 가끔 실수나 그런 걸 해도, 남자가 되가지고, 지 처 하나 못 감싸주냐고...내가 너를 그리 키웠냐고 아들 나무라세요. 어머님께서 음식 솜씨가 굉장히 좋으신데, 매번 저에게 가르쳐 주신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음식을 잘 못 해요ㅜㅜ 그럼 꼭~~~말을 해도ㅜㅜㅜㅜㅜ 너는 여자가 이것도 못해서 우짜노? 이러시는데, 다음에 가보면, 그날 제가 맛있게 먹은 반찬들만 한 가득입니다. 아니~~~밭에 이게 많이 자랐는데, 우리 두식구 먹을 사람도 없고. 니나 갖다 무라. 하시면서 이따시만끔 싸주세요. 생색? 그런거 절대 없으십니다. 많제? 그래도 밭에서 나는거니 아깝다 아이가. 챙기무라 하면서 다 싸주세요. 간혹 밭에 약을 친다거나, 집에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아들시키세요. 여자는 이런거 하는 거 아니라고ㅋㅋㅋㅋㅋㅋ 이건 정말 사고방식 같으세요. 전 그래서 바깥일(?) 하나도 모릅니다. 여자는 알 필요도 없다세요. 정말 제가 시집을 왔다고 생각하세요. 결혼을 한 게 아니라... 그런데, 그게 저더러 제 친정을 멀리해라 그게 아니라.. 귀한 딸 주셨다는 개념이 강하세요. 제 친정에 철철이 밭이며 논에서 나는 귀한 농산품을 늘 최상으로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정말 단 하나도 안 바라세요. 왜냐면 이미 귀한 딸을 받으셨다고... 처음엔 이런저런 말들이 적응이 안 됐는데 지금은 그 속내를 알고나니 너무 좋아요. 부모님 사고방식까지는 제가 어찌할 수 없지만.. 투박하게 말씀하시는 와중에 저에 대한 애정을 느낍니다. 제가 원래 찬밥을 좋아해서 찬밥을 먹을라치면~ ㆍ니 누가 이런거 무라카도? 따순거 천지빼까린데. 어디가서 이카지 마라. 내가 욕얻어묵는다. 제가 밭에 나가 상추라도 뜯어 올라치면 ㆍ야야. 니 뭐하노?(남편에게) 야 밭에 간다 안카나? 다치면 누구 욕보일라꼬? 니가 퍼뜩 갔다온나. 저 말투 적응하는 데 시일이 조금 걸렸지만~~ 지금은 전 우리 시어머니 너무 사랑합니다~~~^^ 이런 게 진짜 가부장이죠ㅠㅠ 훈훈해..
각양각색 5명의 유튜버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Editor Comment 손안의 볼거리가 넘쳐나는 지금은 그야말로 유튜버 전성시대. 패션, 뷰티, 음악부터 DIY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일상이 곧 소재가 되다 보니 주제 역시 다양하다. 늘 새롭고 다채로운 콘텐츠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유튜버. <아이즈매거진>이 그중 유독 여성 구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5명의 유튜버를 만났다.등장만으로도 촬영장에 활기를 더해준 구효민, 김미정, 안리나, 치도 그리고 소피아. 관심사는 물론 생김새도, 사는 모습도 각양각색인 이들이 셀프캠이 아닌 또 다른 카메라 앞에 섰다. 그들의 채널에선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과 이야기를 아래 슬라이드를 통해 확인해보자. 구효민 "나에게 유튜브란 일기장이다. 나에 대한 기록이자 추억 저장소니까."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의 스타일 아이콘 구효민. 브이로그 같은 소소한 일상부터 패션 하울, 셀프 염색 도전기 등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구효민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레트로 무드가 물씬 느껴지는 영상 편집 또한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관전 포인트다. "나에게 유튜브란 스텝 스툴이다. 키가 작은 내가 밟고 올라가면 세상을 보다 더 넓게 볼 수 있고, 타인들은 나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볼 수 있으니까.” 인기곡들을 본인만의 색깔로 소화해내는 커버 유튜버 김미정. 조금 수줍은 듯한 모습이지만 마이크를 쥐어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맑은 음색은 물론, 빠른 랩을 쏟아내는 반전 매력까지. 성별을 막론하고 그녀를 향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다. 아직 김미정이 낯선 이들이라면, 268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 [띵] 커버 영상을 꼭 감상해보길. 안리나 "나에게 있어서 유튜브는 타투 바늘과 같은 것. 바늘이 없으면 타투를 새기지 못하듯,  내 삶을 기록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매개체다.”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려 ‘걸어 다니는 전시회’를 만들고자 했던 타투이스트 안리나. 온몸을 타투로 메운 그녀는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한다. 안리나의 채널에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상부터, 타투에 관한 모든 것이 기록돼있다. 특유의 솔직함과 쾌활한 웃음소리 덕에 보는 이들까지 미소 짓게 한달까. 가끔 등장하는 딸 ‘유하’의 귀여움은 덤. 치도 "나에게 유튜브는 버킷리스트다. 원하던 것을 모두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이니까!” 165cm 62kg, 꽤 잘나가는 대한민국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 치도. 국내에선 생소했던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라는 개념을 들여온 장본인이다. 66-77 사이즈를 위한 스타일링과 ‘바디 포지티브’가 주 콘텐츠. 진정한 멋은 ‘나다움’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치도는 오늘도 유튜브와 모델 일을 통해 그녀의 꿈에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있다. 소피아 "나에게 유튜브는 단면이다. 표면적인 사진 한 장만 보이는 인스타그램보다 조금 더 내 안의 것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모델 겸 유튜버 소피아. 헤나로 얼굴에 주근깨를 만드는가 하면, 미용실에 가지 않고 셀프 박스 브레이즈 헤어를 완성해내는 등 콘텐츠 역시 남다르다. 우연찮게 소피아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보게 된다면, 그녀의 당당함과 지향점을 응원하게 될 터.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 프로키노와 경향영화
일본이 처음부터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광풍 한 가운데에 내몰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1936년에 불발되기는 했지만 극단적 민족주의 장교들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후 군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내각이 들어서면서 ‘새 민족적 천황정치’를 확립하고 문부성에서 ‘민족적 정수의 기본 원칙들’을 발행하면서 비로소 영화계는 검열이 강화되고 친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예술가와 작가들이 연행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일본영화는 시대극에 허무주의를 도입하고 거기에 사회 모순을 둘러싼 현실비판 정신과 리얼리즘을 가미한 영화들 혹은 전국시대 영웅들을 재해석한 경쾌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때만 해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나 ‘주신구라’의 주역인 오이시 구라노스케 (大石内蔵助)는 자유롭고 소탈한 서민형 인물로 묘사되기 까지 했다. 이러한 경향은 비록 새로운 체제 하에서 통제 되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오늘날 그 전통은 일본영화계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경우 유쾌한 해석으로 기회만 있으면 마츠리(축제)에 흥겨워 하는 서민의 존재로서 그려나가고 있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타임루프에 ‘별사탕’의 유래까지 가미된 영화 ‘혼노지 호텔’(本能寺ホテル, 2017)까지 개봉하는 등 그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이 영화에서 ‘별사탕’은 아주 특별한 존재다. 오다 노부나가의 애용간식이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모티브이기도 한데, 원래 별사탕은 포르투칼어로 '콘페이토(confeito)'라 불렸으며,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별사탕은 한자로 '금평당(金平糖)'이라고 쓴다. 이 콘페이토는 16세기 당시 아메리카 대륙 일대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만든 포르투갈인들이 개발한 상품으로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가 1569년, 나고야 성주였던 오다 노부나가와 교섭하면서 선물로 바치면서 포교 허락은 물론 카스테라와 함께 포르투갈이 원조이면서 일본에 현지화 된 음식으로 평가 받게 된다. 일본이 군국주의 혹은 민족주의로 흐르기에 앞서 짚고 넘어 갈 것은 바로 ‘프로키노’ 즉 경향영화(傾向映畫)다. 이 영화들의 조선의 카프문학 등 여러 가지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 받는데 유신을 거친 근대 일본의 지식층들이 1920년대 후반부터 점차 공산주의 붐에 휩싸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섬나라의 특성상 외부의 유행에 워낙 민감했기 때문에 소련과 독일에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이 간행되고 도쿄의 카페에는 러시아풍 남자 상의를 입은 청년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이때 좌익진영과 영화계가 의기투합하게 되는데 1928년에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NAPF)과 여기에 호응하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영화동맹(NCPE)의 조직이 바로 그것이다. 사사 겐주(佐佐元十)와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가 중심이 되어 9.5밀리 혹은 16밀리 필름으로 메이데이 행진과 노동쟁의를 촬영하여 전국 순회 상영을 1932년 국가의 탄압과 상영중지 시기까지 계속 전개해 나갔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상업 목적의 영화 상영과 동원 목적의 영화 상영이라는 두 축으로 서서히 영화는 갈라지기 시작하는데 영화 관람 체험은 이른바 ‘노는 영화’와 ‘주시하는 방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되면서 아시아의 지식인들과 교류를 통해 공통의 체험을 공유한다. 당시 일본유학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중국 역시 일본 경향영화의 영향을 받은 운동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중요 인물은 루쉰(魯迅)이다 그는 노예만도 못한 중국인의 삶에 대한 좌절과 분노, 그리고 ‘민족성 개조’에 대한 지식인의 소명의식으로 ‘아Q정전’을 집필한 바 있는데 일찍이 일본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바 있었다. 작가가 안 되었더라면 의사가 되었을 그는 일본에서 영향을 받아 1930년 3월 중국좌익작가연맹(中國左翼作家聯盟)을 결성하는데 이때 인용한 것이 바로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의 저서 ‘영화와 자본주의’(映畵と資本主義, 1931)다. 그는 더 나아가 ‘선전 선동 수단으로서의 영화’라는 대목에 주목하고 주석을 달아 서구 자본주의의 영화들은 그 목적이 단순한 돈벌이에 있기에 중국인들을 어리석은 방향으로 교화시킨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 때문에 중국현실주의영화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본과 국가에 의한 영화 통제를 비판하는 이와사키 아키라의 견해에 동조했다. 물론 프로키노와 이에 자극을 받은 상업영화계의 ‘경향영화’는 닮은꼴이면서도 달랐다. 고이시 에이이치(小石栄一)의 ‘도전’(挑戦, 1930)의 경우 노동쟁의와 스트라이크가 활발했던 시국에 알맞은 영화였다. 또한 스즈키 시게요시(鈴木重義)의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했는가’(1930)의 경우, 고아원의 소녀가 서커스단에 팔리면서 남자들의 놀이감이 되고 부르주아의 위선과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함을 알고 나서 여자 소년원에 수용되지만 이 역시 위선적이라 방화범으로 연행된다는 스토리인데 이들은 사회참여는 하되 흥행도 고려하는 이중적 고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진보적 행보는 식민지 조선의 영화인들과의 합작을 가능케 한 측면도 있었다. ‘임자 없는 나룻배’(1932)를 만든 이규환 감독의 경우 교토의 데이코쿠키네마(帝国キネマ) 우즈마사(太秦)촬영소에서 도요타 시로(豊田四郎)와 스즈키 시게요시(鈴木重吉)의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이를 계기로 합작영화를 만들어 낸다. ‘나그네’(1937)가 그것으로 일본 개봉명이 ‘다비지(旅路)’였던 이 영화는 조선의 향토색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기획 단계부터 일본 개봉까지 고려해 조선 영화사와 일본 영화사가 합작한 첫 번째 사례로, 각각 성봉영화원(聖峯映畵園)과 신코키네마(新興キネマ)가 나섰는데 조선이 각본, 감독, 배우, 로케 비용을 부담하고, 일본은 카메라 제공 및 촬영, 현상, 녹음 등 기술 지원을 맡아 조선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관객 동원에 성공했으며 일본 수출의 쾌거를 이뤄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들도 일본인의 기본 성향으로 인해 일시적인 것에 머물렀다. 일본인은 어느 이데올로기(기독교, 톨스토이주의, 마르크스주의)에서도 결정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본이 현재까지도 이슬람이 포교를 포기하고 이데올로기가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며 내셔널리즘을 수용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성향 때문이라고 본다. 게다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실증도 자주 느꼈기 때문에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만주국이 성립되자 민족주의 정치를 위해 헌신하는 영화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는 연극 배우들의 전기물을 만드는데 몰두하다가도 만주국의 성립을 알고 즉시 <満蒙建国の黎明>(1932)을 만들었고, 경향영화인인 스즈키 시게요시 역시 ‘동양평화의 길’(東洋平和の道, 東亜平和之路, 1938)을 제작했다. 정치 이데올로기가 한 때의 유행에 불과했기 때문에 1930년대에는 최루성 영화라 불리는 여성 멜로드라마가 대유행하기도 했는데 영화 포스터에 ‘3배로 울려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때 일본의 영화산업은 정리가 필요하다는 기본인식이 팽배했는데 기존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국가가 통제하더라도 신규 영화사와 자격미달의 영화사들을 정리해주길 바랬고 배우들의 경우 등록제를 도입해서라도 신인배우의 등장을 어렵게 하길 기대했다. 기존 영화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이데올로기는 허울에 불과했던 것이며 나치독일과의 합작영화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내셔널리즘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훈구 시나리오 작가>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스토리뉴스 #더] 유튜브로 인생 역전, 나도 할 수 있을까?
지난여름 이제 겨우 6살인 어린이 크리에이터(유튜버)의 가족이 강남에 100억대 빌딩을 매입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해당 유튜브 채널의 한 달 광고 수익만 수십억 대에 달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앞으로는 개인 맞춤 광고 중단 등으로 키즈 채널에 제약이 생겨 이렇듯 거액의 광고 수익을 올리기 어려워질 전망. 하지만 일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는 사례들은 해당 키즈 채널이 아니라도 쌔고 쌨다. 최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유명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은 자신의 수입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에서 언급된 그의 수입은 2017년 17억원에서 2018년 24억원으로 부쩍 올랐고 올해는 7월이 지나면서 이미 20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로또 1등 당첨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인기 있는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며 유튜버는 이제 신종 고소득 직업으로 자리 잡았고, 많은 일반인에게 미래를 걸만한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으로 유튜버가 5위에 오른 바 있다. 초등학생 희망직업 = 1위 운동선수, 2위 교사, 3위 의사, 4위 요리사, 5위 유튜버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 중 무려 6명이 유튜버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은 20대 70%, 30대 60%, 40대 45.3%, 50대 이상 45.1%로 연령대가 낮을수록 도전 의사가 높았다. 성별로는 여성(61%)보다 남성(65.2%)이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미 직업을 가진 직장인조차 부업이나 취미 혹은 본업으로서 유튜버를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많은 이들이 꼽은 이유는 바로 ‘관심 있는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었지만, 이밖에 ‘직장인 월급보다 많이 벌 것 같아서’, ‘취업보다는 쉬울 것 같아서’ 라는 답변도 눈에 띈다. 이들은 유튜브 도전을 통해 월평균 396만원은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2018년 근로자 평균연봉 3,634만원(약 월 300만원 수준)보다 훌쩍 높은 금액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치일까? 현재 활동 중인 유튜버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서 활동 유형별(주업, 부업, 취미) 수익창출 현황을 살펴봤다. 유튜브 채널 운영이 본업인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536만원, 부업인 경우에는 333만원으로 집계됐다. 취미로 하는 경우에도 114만원 수준으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평균 수준이고 최소와 최대 소득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다. 유튜브를 주업으로 삼은 이들 중 최대 소득은 5,000만원에 이르지만, 최소는 겨우 5만원에 불과했다. 또 부업일 때의 최대 소득은 2,000만원에 최소 소득은 10만원, 취미일 때의 최대 소득은 1,000만원에 최소 소득은 1만원 수준이었다. 이 같은 소득은 채널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광고에서 주로 발생하고 이밖에 후원, 홍보/판매, 임금, 수익 배분을 통해 나오기도 한다. 유튜버가 되기 전에는 어땠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4%는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 다른 일을 했거나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중 절반(50.8%)은 정규직이었고 비정규직(20.4%), 프리랜서(14.9%), 자영업자(11.6%) 등으로 유형은 다양했다. 산업군 역시 출판·영상·정보(20.3%) 분야의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교육서비스, 예술·스포츠·여가, 과학·기술, 도·소매, 숙박 및 음식점, 제조업, 금융·보험을 비롯한 각가지 분야에서 일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통해 유튜브 활동 직전 얻었던 소득은 주업인 경우 평균 295만원, 부업인 경우 평균 245만원이었다. 또한 유튜버가 된 후의 소득 상황과 마찬가지로 주업은 30만원~3,200만원, 부업은 40만원~800만원으로 최소와 최대의 격차가 상당했다. 평균적으로 보면 유튜버가 된 후의 소득이 훨씬 높아 보이지만, 유튜브는 매번 일정한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 광고가 있어도 시청자가 끝까지 시청하지 않는다면 수익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 채널에 광고가 붙어 수익이 발생하기까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유튜브의 최소 광고 게재 기준은 구독자 1,000명 이상에 연간 콘텐츠 시청 4,000시간 이상이 된 후 채널 검토까지 거쳐야 한다. 광고가 붙어도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울까? 게다가 영상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장비며 소품 등을 준비하는 데 매번 들어가는 제작비도 무시할 수 없다. 소중한 돈과 시간과 체력을 들여도 생각처럼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 누구나 유튜버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돈을 벌지는 못한다.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처럼 ‘인생 역전’급 소득을 누리는 이들은 이름이 잘 알려진 몇몇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유튜브는 아직 가능성이 충분한 길이다. 구글코리아에 따르면 한국인이 만든 유튜브 채널 중 1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채널은 2015년 367개에서 2016년 674개, 2017년에는 1,275개로 큰 폭 증가하는 추세지만, 수십억 시청자가 존재하는 세계를 무대로 생각하면 여전히 사막의 모래알에도 못 미친다. 한동안은 유튜브의 전성시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많다. 무궁무진한 유튜브의 세계로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면? 로또 당첨과 같은 ‘고소득 달성’보다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보다 신중하게 준비해도 되지 않을까? 글·구성 : 박정아 기자 pja@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믿음을 주는 경제신문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