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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기개가 느껴진다는 게 뭔지 보여주는 박경리 인터뷰

박 작가는 책에서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협력자론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꼬집었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그는 일본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에게도 일침을 날렸다. “지금은 총독도 없고 말단 주재소의 순사도 없다. 우리를 겨누는 총칼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어째서 일본을 성토하면 안 되는가.” 일제 강점기를 살아냈고, 그 엄혹한 시기를 대하소설 ‘토지’ 등으로 풀어낸 대작가가 “일본과 전쟁이라도 하려는 것이냐”는 일부 보수층에게 수십 년 전에 이미 통렬한 비판을 남긴 셈이다. —— 박경리 선생님, 말할 것도 없지만 그저 물론이지만 정말 명필이시네요. 그나저나 대과거나 과거나 현재나 일본은 변한 바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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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일본은 그때도 지금도 변한게 없네요. 오히려 더 그때로 돌아갈려고 하는것 같이 보일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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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져..
고개가 숙여 집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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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그렇지 국민은 괞찬다고 헛소리 하시는 분들 " 한나라의 정치는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의 뜻을 곱씹어 보시길
가볍기가 민들레 홀씨보다 못하고 위선적인 면이 옛날 밭의 똥구덩이 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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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덜떨어진 진화의 세계
포켓몬 때문인지 에볼루션쳄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진화는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진화한다고 무조건 생존에 유리하거나 강력해지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 대표적인 예로 좀 멍청하게 진화한 새끼들이 있다 이 새끼들은 존나 멍청하게 진화한 나머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친구들이다 이건 '바비루사'라는 멧돼지의 일종이다 멧돼지인데 털이 없는 탈모충인거 말고도 여러가지로 특이한 녀석인데 가장 특이한건 이 새끼의 엄니다 보다시피 이마빡 한구석에 후타나리 유니콘마냥 뿔이 둘이나 솟아있는걸 볼 수 있는데, 이건 사실 이 새끼의 엄니다. 윗턱의 엄니가 아래 방향이 아니라 위로 자라나면서 이마빡을 뚫고 자라고 있다. 도대체 왜 이따구로 진화했을까 뭐 그냥 보기만 하면 나름 무기로도 쓸 수 있을 거 같고 유용해보이지만 이게 진짜 존나 멍청한게 자라면서 점점 대갈빡 방향으로 구부러지게 된다 이렇게 계속 자란 엄니는 무기로 쓸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시야를 존나게 가릴 뿐만 아니라 계속 자라다가 끝내 자기 두개골을 뚫어버리게 된다. 이런 멍청한 엄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비루사는 계속해서 자기 엄니를 나무나 돌에 갈아서 짧게 유지해야 된다 근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대갈빡 뚫려 뒤진 바비루사들이 자꾸 발견되는 거겠지? 참고로 이 새끼들 멸종위기종이다. 이유는 뭐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또 멍청하게 진화한 놈을 꼽자면 팬더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놈들은 곰탱이 주제에 채식주의자로 진화했는데 일부 채식주의자가 그러듯 이 놈들도 멍청이다 왜냐면 풀때기만 처먹는데 정작 풀때기를 잘 소화를 못 시키기 때문이다 초식동물들은 영양 1도 없는 풀때기를 소화시키기 위해 내장이 존나 길고 복잡하게 진화했는데 팬더 내장은 여전히 육식동물 그 때 그 시절 수준으로 짧다 근데도 꾸역꾸역 풀떼기만 처먹는다 이렇게 풀만 처먹다보니 종족 전체가 이상한 멍청이들로 진화했는데 그 연쇄과정을 보면 참 기가 막힌다 일단 풀때기만 처먹어서 영향효율이 낮은지라 곰탱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애새끼들이 게을러져버렸다. 진짜 이 새끼들 보고 있으면 방구석에 처박힌 히키코모리들이 헬창들로 보일 정도로 존나 안 움직인다. 움직이고 싶어도 열량 보급이 좆망이라 어쩔 수 없다고 쉴드치기도 뭐한게 이 새끼들은 움직이기 싫어서 그 자리에서 굶어 죽거나 새끼한테 젖 먹이기도 싫어서 새끼 굶겨죽이는 멍청이들이다 즉 풀떼기만 처먹음->항상 배고픔->잘 안 움직이게 됨->사냥도 안 하게 됨->가만히 있는 풀떼기만 처먹음 이런 바보같은 사이클만 반복하게 된 것이다 이 꼬라지로 진화했으니 당연히 멸종위기 종이다. 떡치는 것도 귀찮아서 번식도 안 해서 자체멸종으로 치닫고 있던걸 중꿔가 와꾸 하나만 보고 귀엽다고 데려다가 번식시켜서 간신히 살아남은 거다. 보통은 인간이 동물 멸종에 존나 기여하는데 이 새끼들은 그 인간 때문에 명목을 유지하는 것만 봐도 대단한 기형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끼는 '뇌조'다 미국에 서식하는 새대가리 새끼다 특징으로는 종족전체가 분노조절장애 환자라는 거다. 이 새끼들은 번식기가 오면 눈 부위 색깔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앵그리버드가 되는데, 좆에 미쳐버린 뇌조 수컷은 지 근처에 있는 건 보지 빼고 다 적으로 본다. 같은 수컷들은 물론이고 토끼같은 다른 동물이나 인간한테 달려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돌이나 나무한테 시비를 걸기도 한다 지가 아직도 티라노사우루스인줄 아나보다. 근데 문제가 뭐냐면 이 새끼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라는 거다. 뇌조는 끽해야 덩치큰 비둘기 수준의 한심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다. 속도가 빠른 것도 힘이 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날카로운 부리나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덩치 큰 닭이다.근데 분노조절장애다. 그럼 결과가 어떻게 되겠냐. 이 멍청한 새끼처럼 하늘의 왕자 맹금류한테 게겼다가 치킨 신세가 되는 거다. 짤 보면 뇌조 새끼가 어거지로 달려들면서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일텐데 잘 보면 저 새끼 가슴팍에 이미 맹금류 발톱 박혀있는게 보일 거다. 영상 마지막에 쓰러지는 거 보이지? 그대로 뒤진 거다. 멍청한 새끼. 뭐 이렇게 뭐같이 진화한 동물이 많다는 것만 봐도 진화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가 될 것이다 (출처) 진화의 세계란... 재밌게 보던 거라 가져왔습니다. 욕이 많아서 그간 못 퍼오고 있었는데 조금 귀찮지만 제가 순화를 하면 되는 거니까요.
[펌] 냉혹한 일본 채식주의의 역사 썰.txt
요즘 트위터 비건들 공통점이 있는데 공감능력 없냐고 하는 주제에 본인들이 공감능력이 개바닥났단 것이다 동물 고통이 안 느껴지냐면서 고기 처먹지 말라고 지랄질을 하는데 왜 고기를 안 처먹었을 때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근데 지금이야 비건들이 트위터에서 지들끼리만 저러니 다행이지만 비건들이 실제 권력을 잡아버리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냐 국가에서 고기를 통제한다고 생각해봐 나 같으면 차라리 딸딸이를 포기하지 고기는 포기 못한다 그리 먼 곳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생긴 일이다. 일본놈들은 윗대가리 비건들이 맘대로 내린 명령 때문에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몇년 동안이나 그랬을까? 무려 1200년이다! 1675년도 아니고 675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의 킹 오브 킹이었던 텐무텐노라는 비건이 있었다. 이 새끼는 그야말로 트위터 비건의 전형적인 예시였다. 내로남불이 개쩔었단 소리다. 텐무텐노는 즉위할 때부터 미친놈이었는데 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조카 통수를 후려쳐서 덴노에 올라간 개새끼다. 불쌍한 조카는 어떻게 됐냐고? 억지로 할복시켜서 죽여버렸다. 뭐 여기까지야 개새끼긴 해도 옛날 정치인들이 다 하던 일이었으니 봐줄만한 일이긴하지만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흑흑 너무 슬퍼 조카는 니가 죽여놓고 이제와서 왜 우냐 처음부터 죽이질 말든가 아니 조카는 조까고ㅋㅋ;; 내가 슬픈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럼 니들 저기 소 보이지? 흑흑 음머 흑흑 저 소를 봐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아마 농사일이 너무 힘들거나 바람막이가 너무 비싸서 그런가봐 근데 너희 농민 새끼들아 니들은 소의 눈물이 안 보여? 공감능력 없어? 어떻게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소를 잡아먹기까지 할 수 있어?? 그게 다 육식 때문 아닐까? 단백질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공감능력이 휘발된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들도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비건이 되면 어떨까? 니 새끼는 공감능력을 우리한테는 왜 발휘를 안 하는데 그 힘든 농삿일을 고기도 안 처먹고 어떻게 하냐 미친 새끼야 고기 처먹으면 니들도 고기로 만들어버릴 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미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조카한테 사시미 쑤셔넣은 놈이 살생은 나쁘다고 고기를 처먹지 말라니 근데 문제는 이 비건이 일본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비건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내로남불 비건 새끼가 친 지랄질은 일본에 1000년이 넘는 육식금지시대를 만들어내고 만다. 소, 닭, 돼지, 개, 원숭이, 말을 먹는 놈은 그날로 인생 종치는 거다. 이게 육식금지령도 아니고 살생금지령이라서 사냥도 마음대로 못했다. 뒤에 3개는 그렇다치고 소랑 닭이랑 돼지를 못 먹는다니 개같은 것도 정도가 있다. 처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굶어죽으라고 바위밖에 없는 섬으로 귀양을 보낸다. 사실 말은 군사용도니까 못 처먹고 소는 농사지어야하니까 못 처먹으니 이 두 개 정도면 옛날 이라는 거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는데 돼지랑 닭을 못 처먹는건 그냥 개같은 비건 심보다. 돼지랑 닭은 까마득한 고대시대부터 인간들한테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필수가축이었는데 이걸 억지로 단절해버린 거다. 당연히 영양상태가 바닥날 수 밖에 없지 당시 일본이 왜 왜소할 왜자 써서 왜놈이라고 불렸겠음? 영양보급이 박살나서 키가 크고 싶어도 못 컸던 거다. 어딜가나 윗대가리가 지랄하면 아랫놈들만 고생을 한다. 이리하여 세계역사에서도 기형적인 일본의 식사문화가 시작되는데, 고기를 못 처먹으니 도축문화가 실전되어버려서 막상 동물이 죽어있어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혹시 예전에 유행하던 엘프들 나오는 이세계 요리만화 기억하냐 그게 진짜로 일어나버린 거다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개같은 밥만 처먹는 이세계인들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이라는 만화. 주인공이 미개한 식문화를 가진 엘프들에게 음식을 전파해준다는 내용인데 유목민이 치즈도 못 만드는 등 인류학적으로도 너무 말이 안되는 전개 탓에 작가의 무식이 매번 비판받는 작품.) 이 이세계물을 처음으로 체험한건 다름 아닌 조선 사람들이었다 국사 정도는 들었을 테니 일본에 정기적으로 놀러가던 조선의 통신사란걸 기억할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조선은 아시아, 아니 세계를 통틀어서도 유난히 밥을 많이 먹는 파오후들의 나라였다. 당연히 고기도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개 좋아했다. 이런 사람들이 강제비건화된 일본에 놀러갔으니 그야말로 이세계물을 찍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아아 이것은 [배고프다]라는 것이다. 밥을 내놓으란 뜻이지 오옷! 근데 배고픈게 뭔진 나도 알아 ㅄ아 맨날 그렇거든 아무튼 처먹으샘 뭐임 이건? ㅅㅂ 니들 우리 싫어하냐? 이게 뭔 밥이야 살무사 양식장이지 밑에서 뱀 나오겠다 개새끼들아 고기 없어? 먼 곳에서 온 사람들한테 이따구로 개같이 굴기임? [고기]...? [고기]란 것이 너희 세계에 있는 건가? 그렇다 지금부터 이세계 전개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하아니 진짜 미친놈들인가 저기 닭도 있잖아 니들 닭 안 먹음? 안 먹을 건데 치킨 왜 키움? 닭...? 아아 저건 [시계]라는 거다 아침 시간을 알려주는 거지 너희들의 세계에선 [시계]를 먹는 건가...? 그렇다. 일본에게 닭은 먹는 용도가 아니라 자명종이었다! 하 ㅅㅂ 닭은 됐고 그럼 저기 있는 소나 한 마리 잡아서 구워와 님 어디 아픔? ? 아픈건 니들 미각 아님? 아니 소는 아플 때 먹는 거잖아 아프니까 약 찾는 거 아니냐고 아니 소를 왜 아플 때 처먹어 니들 농사 짓다 뒤진 소 안 먹었어? 스테이크 모름? [스테이크]...? 우린 소 뒤지면 그냥 태우는데 아 기름 많이 나와서 촛불 켤 때 개꿀임 ㅋㅋㅋ 이거 진짜 아픈 놈들이네 심지어 소가 그냥 죽어도 아무도 안 먹었다. 애초에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소가 뒤지면 일본 사람들은 배고파서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한점 떼어먹을 생각은 못하고 그대로 태워서 기름만 가져다가 썼다. 고기 타고 남아있는 뼈도 고아먹긴 커녕 땅바닥에 그대로 묻어버렸다. 소를 아예 전혀 안 처먹은건 아니고 약재로 쓰긴 했는데, 이게 말 그대로 약이라서 맛 같은 거엔 1도 신경을 안 썼다. 그냥 고기 가루내서 뭉친 미트볼을 약이랍시고 팔았던 거다. 이 약을 얻는 과정도 가관인데 고기를 안 처먹으니 소를 어떻게 죽여야 할 지도 몰라서 도축기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약이 필요하면 소를 낭떠러지에 세워놓고 떨어뜨려 죽인 다음에 살점을 주먹만큼만 때어가는 식으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만하자. 돼지는 있지? 삼겹살 정도로 타협하자 우리 돼지 안 키우는데 니들은 대체 왜 사냐? 소도 안 처먹고 닭은 시계로 쓰는데 돼지는 기르겠냐. 당연히 돼지고기 같은 것도 꿈도 못꿨다. 아 근데 돼지 먹을 방법은 있음 오 뭔데 멧돼지 산 채로 잡아옴 우리 어떻게 죽이는지 모르니 죽이는건 니들이 알아서 하샘 아니 미친놈아 어어억 하도 고기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리니 일본은 통신사들한테 멧돼지를 생포해서 가져다준다. 솔직히 이건 엿먹어보라는 의도도 좀 있는 거 같다. 아무튼 조선 통신사들은 이런 기괴한 식습관이 하도 기억에 남았는지 이 새끼들 처먹는거 존나 이상하다고 기록을 존나 남겼다.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이세계 기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뇌가 있고 혀가 있는데 천년 동안이나 강제 비건질을 철저하게 지킨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원하는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시절부터 내려온 인류의 본능인데 그걸 어떻게 뿌리뽑냐 일본 서민들은 어떻게든 비건 파시스트들의 눈을 피해 고기를 처먹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 그중 대표적인게 위에도 나온 멧돼지다. 집에서 대놓고 돼지를 기를 수는 없으니 산에 올라가서 몬스터 헌팅을 해서 멧돼지를 얻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멧돼지를 '산고래'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바다고기는 금지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흙수저 새끼들이 고기 처먹고 ㅈㄹ이냐 뒤질래? 아니 이거 고래고긴데 이게 뭔 고래고기야 누구 눈깔을 ㅄ으로 암? 님 고기 종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음? 님 혹시? 일본 흙수저들이 이렇게 몰래몰래 고기를 먹는걸 '야쿠세키야'라 불렀다. 해석하면 약식이란 뜻이다. 즉 병 걸려서 약 처먹는다고 핑계대곤 마약거래하는 것마냥 어두운 곳에 숨어서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야쿠세키야를 하는 가게에는 주로 고래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속 나왔을 때 걸리면 고래라고 구라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야쿠세키야에서 밀매한 고기들은 소, 돼지 같은 맛좋은 정석 고기가 아니라 여우, 늑대, 곰 등의 육식동물이나 산양이나 물소 같은 생소한 동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리법도 모르니 닥치고 굽거나 삶아버리는게 전부였는데 그걸 또 맛있다고 숨어서 먹어대니 참 불쌍하고 안타깝다. 이련 연유로 생선요리는 엄청 발전한 주제에 일본 고기 요리는 개박살이다. 뭐 천년만년 비건으로 살 순 없다. 텐무텐노가 비건 지랄을 친지 1200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도 더 이상 비건질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쓰마' 같은 밀매랑 깡패짓으로 유명한 동네에선 공공연하게 돼지고기를 처먹기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사건이 하나 제대로 터진다 배틀크루저 오뻐레이셔널 1800년대 초기까지 일본은 흥선대원군 시절 조선마냥 쇄국정치를 하면서 여전히 풀만 뜯어처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배틀크루저를 끌고 일본에 처들어와서 대포를 쏴갈기면서 개항하라고 지랄을 한 것이다 난생 처음보는 시꺼먼 배틀크루저에서 존나 큰 대포를 빵빵 쏴갈기면서 야마토포의 위용을 보여주자 일본 친구들은 개쫄아버린 나머지 바닥을 뒹굴면서 항복항복을 외쳤다. 이게 그 유명한 '흑선사건'이다. 배틀크루저의 위용을 보고 우린 진짜 아무것도 아닌 개ㅈ밥이었구나 이러면서 테크차이를 실감하게 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인을 모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은 그동안 개같이 굴었던 비건 파쇼들까지 개박살낸다. 가장 먼저 비건 파쇼들의 싸대기를 후려치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메이지 덴노였다 왜 우린 양키들한테 발렸을까 헤어스타일이 ㅄ같아서? 스크롤 늘리는덴 도움이 됨 아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냐 양키들 앞에만 가면 우리 키가 땅딸만한게 실감되서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우린 왤케 키가 작냐 진짜 진짜 이유 모름? 진짜? 알았어 ㅅㅂ 이제부터 고기 처먹자 1872년 1200년을 이어왔던 육식금지령이 드디어 취소된다. 일본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게 150년도 안 됐단 거지. 근데 1000년이 넘도록 채식주의자들한테 조교당하다보니 처음에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거에 존나 거부감을 느꼈다. 심지어 밀교에 심취한 비건들이 고기 먹지 말라며 황궁에 처들어가는 황당한 일까지 생겼다. 비건파쇼들이 지랄을 하건 말건 일본 윗대가리들은 이전까지와 180도 태세를 바꿔서 국민들한테 고기를 먹이려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오죽 열성이었으면 그 당시 쇼군 별명이 '돈이치상', 즉 돼지씨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마다 돼지고기를 츄라이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효과는 그다지 좋질 않았다 아니 먹으라고 하니까 또 지랄이네 도대체 왜들 그럼 먹는 방법도 모르고 익숙하지도 않은거 어떡함;; 아니 그동안 고기 몰래 존나 처먹은거 나도 다 안다 것도 돈 있는 새끼들이나 그랬거든 익숙하지않고 나발이고 일단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애들 덩치 키운다고 육식을 장려하면 뭐하냐 서민들은 돈이 없는데...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싼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기 안 먹던 놈들한테 익숙함을 주거나 적은 고기로 양 많은 음식들이 발명되게 되는데 고기의 비린내를 일본에 익숙한 된장으로 가리고 값도 싼 '규나베'나(당시 서양 스테이크의 5분의 1 정도의 가격) 우리 지갑처럼 얇아터진 고기에 튀김을 두껍게 둘러 양을 늘린 '돈까스'가 탄생하게 된다 행-복 뭐 그렇게 비건 파쇼들의 천년이 넘게 이어진 지랄은 끝나게 된다. [출처-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진짜 역대급 분량에 역대급 욕설... 필터링을 거치긴했으나 여전히 욕이 많읍디다...
이동인, 조선의 라스푸틴 (3) - 1881
1881년 4월 1일, 조선 주재 하나부사 공사는 일본 외무경에게 서한을 보냅니다. 서한 말미에 그는 당시 조선 동향과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보고를 함께 올리죠. 이만손의 개항 불가 상소, 김홍집의 근신과 수신사 임명, 인천 개항 확대를 반대하며 상복을 입고 도끼 그린 종이를 등에 짊어진 채 궁궐 앞에 엎드린 남자 얘기 등등 모두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대하는 위정 척사파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었죠. 그 기록 가운데에 이동인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 또한 있습니다. 하나. 참모관 이동인은 근래 민영익의 집에 동거하여 매우 기세가 좋았지만, 이만손 상소 이후에 자주 걱정하여 특히 3월 초순부터 10일 전후에는 몇 차례 공사관에 와서 공사가 위태로우니 호위를 증가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 무렵에는 같은 충고를 하는 자도 있었지만, 공사관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동인은 위의 사건과 관련하여 신변이 위태롭다고 생각했는지, 3월 중순경부터 민 참판 댁을 떠나 종적을 알 수 없는 중에, 주상이 갑자기 본인을 불렀는데 도망쳐 달아나 부재하자 분노를 일으키시고 "변변치 못한 소인이 지금 형세의 어려움을 보고 헛되이 그 몸을 숨기고 자전의 계책을 삼았다. 혹시 원래 일본인인데 우리말에 통해 거짓으로 조선인이라 칭한 것이 아닌가!"라고 꾸짖으시면서부터, 조정의 백관도 일찍이 그 가볍고 말이 많음을 꾸짖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행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주상께서는 더욱 역린하시어 '그는 산천에 은거한 것이 아니라 필시 원산진에 몸을 숨기고 일본으로 도망가려 할 것이다. 신속히 추포하여 오라'는 상의가 있어 잡으러 갔다고 합니다. 이만손이 올린 영남만인소. 이만손은 <조선책략>을 읽고 분개해 고종에게 이 책 주장의 불합리함을 알리는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하나부사의 서신에는, 이만손이 당시 70여 세 노인으로 수백 명의 유생들을 데리고 궁궐 앞에 엎드려 무려 일주일 동안 시위를 했다고 적혀 있죠. 상소의 내용은 민씨 세력을 삭감, 인천 개항 불허, 외교 불허, 김홍집 귀국 이래 국가 규범이 바뀐 것을 책망, 무위소 개혁 등 그때까지 추진되었던 개화 정책을 모두 백지로 돌리고 김홍집을 탄핵하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종은 이 상소를 읽고 매우 분노했고, 민씨 측에서도 몰래 소수에게 돈을 먹여 진정시켰다고 하네요. 나중에 그는 다시 한 번 상소를 올리려다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임오군란 이후 대원군이 집권하자 풀려났다고 합니다. 서신에서 하나부사는 이동인이 실종되었고, 그 행방을 조선 정부 측에서도 알지 못하는 듯 적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5월 9일, 승려 오쿠무라 엔신은 포교일기에 '밤에 총영사에게서 동인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이동인이 암살당했다고 여긴 건 일본측 인사들뿐만이 아니어서, 5월 3일 주일영국공사관 어네스트 사토우는 자기 일기에 탁정식이 찾아와 이동인의 소식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탁정식은 이동인이 척사파에 의해 희생당한 게 아니라면 어딘가 살아 숨어있을 것이라고 했죠. 또 고종은 대원군을 의심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조선불교통사>란 기록에는 어느날 민영익의 양부 민태호가 이동인을 불러냈고, 이후 이동인의 종적이 사라졌다고 했죠. 대체 이동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1881년 음력 1월 5일, 조선 정부는 이동인을 통해 일본 공사 하나부사에게 무기와 기선 구입 계획 등을 알리도록 합니다. 다만 자금이 부족해 일본에서 100만원을 빌릴 수 있을지 여부를 하나부사에게 타전하죠. 하나부사는 정부가 보증을 선다면 가능하다고 화답합니다. 이후 음력 1월 10일, 하나부사는 일곱 개 조항의 조약안을 조선 측에 제시하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이 타국과의 관계 중재(이른바 거중조정) 2. 부산포 절영도를 조차해 둔재소로 삼음 3. 일 군함이 조선 선박을 만나면 반드시 힘써 보호 4. 조선 선박, 사인이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주재 일본 영사가 각국과의 정규 의거 힘써 보호 5. 조선 해육군제 확장, 공업진흥 위해 교사, 기술자가 필요할 시 일본 정부가 보응 6. 조선 군, 공업 등 기술 전수받을 사람들을 일본에 파견할 필요가 있어 선발해 보낸다면 일본 정부가 적당한 학교로 보내 열심히 교수. 소요 학자금을 본국 전수성원들과 동일하게 할 것. 7. 조선이 필요로 하는 총포, 전함 등을 일본이 구입을 주선해 일본정부가 스스로 사용하는 물품 구입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도움. 조선 정부는 이상 7개 조항 중 2조 이외 나머지는 약간 자구수정만 해서 대부분 수용합니다. 또 그와는 별개로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하고 아울러 포함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교섭단을 보내는 일도 차곡차곡 추진중이었죠. 일본 공사관에 공병 소위를 파견 요청해 교련병대인 별기군 창설을 도모하는 한편, 혹시나 모를 일본측 불법 점거를 차단하기 위해 절영도에 진을 설치해 방어태세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찰단 파견 문제는 국내외 반발을 우려해 일본 측에조차 공식 통보를 하지 않고 비밀리에 추진합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은 이동인을 통해 계속해 하나부사 공사에게 전해지죠. 이동인은 '나는 그 전권을 맡았으므로 우리 정부에서 일본 정부에 알리는 것으로 공증을 삼으려 한다. 각하 또한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부사는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믿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사는 여기 있으면서 아직 조선 정부로부터 의뢰하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와 같다면 공사가 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 공사가 만약 공식적인 보고를 결여하면 일본 정부가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동인은 '반드시 강수관이 의뢰할 것입니다. 다만 이 몇 가지 일은 모두 손바닥 안의 비밀스런 일로 우리 당의 몇 명 외에는 절대로 아는 이가 없다. 망령되이 타인에게 알리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들이 출발한 후가 아니면 강수관도 이를 말하기를 꺼려 미정이라고 하면서 말하지 않는다. 아마 2품, 3품의 귀인 7,8명일 것이다.(...)' 이동인은 그 후 몇 차례 더 일본 공사관을 찾아와 신사유람단으로 파견될 인물 구성이나 성향 등을 알려주다가 음력 1월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발한다고 알려옵니다. 이때 갑자기 공사관을 찾은 이동인이 순도 100%은 60냥과 호피 20매를 가져와 여비로 쓸 물품이라며 하나부사 공사가 부산까지 옮겨달라고 의뢰하죠. 하나부사는 늦어도 지장없다면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맡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동인은 공무 사정으로 지연된다고 하면서 한참을 더 서울에 머물렀죠. 또 돈을 빌려 총포, 군함 등을 사는 일이 내부 반대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단 사실도 은연중에 알립니다. 하나부사는 이동인이 일본과의 관세 교섭 준비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걸로 짐작하죠. 그러던 중 3월 15일 전후로 이동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일본측, 개화당, 조선 정부, 영국 등 이동인과 안면이 있던 그 어느 인물도 그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자취를 감췄는지 알 수 없게 되죠.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몇몇 의심가는 정황은 있습니다. 1. 이동인이 본래 일본인 첩자이다 이동인이 사라지자 고종이 화를 내며 그가 본래 일본인이 아니냐고 했죠. 또 지난번 소개한 <나암수록>에선 이동인은 본래 서양술 하는 왜승이라고 했죠. 그의 출신이나 기록에 등장하기 전 그의 이력 등을 전혀 알 수 없기에 이같은 의문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는 임무를 마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서 일본으로 되돌아간 걸까요? 2. 대원군 측 인물이 살해했다. 이동인이 고종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청국 공사 하여장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유대치가 이동인에게 대원군을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가 이동인을 매국노로 규정해 체포하려 한다면서요. 당시 대원군은 권좌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정부 안팎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부사가 파악하길 조정 내 개화파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전부 척사파로 대원군이 그 수장이라고까지 했으니까요. 1881년 8월 대원군 추종 세력이 대원군의 서장자인 이재선을 보위해 군사 정변을 일으키려다가 발각되는 일도 있었고, 결국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잠시 재집권하기도 했죠. 탁정식도 이동인이 대원군 혹은 김홍집과 이조년 두 사람에게 모살당했다고 추정했습니다. 3. 개화파 내 분열로 살해당했다. 탁정식은 당시 개화파 내부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이동인은 그 성격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결정해 처리하는 것이 심해서 걸핏하면 김홍집을 능가하려 했다고 했죠. 두 사람이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은 외교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김홍집과 이조년은 <조선책략>에서 보듯 일, 청의 의견도 있으니 미국이나 독일과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동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영국과 친하여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다는 거죠. 심지어 이동인의 주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한 모양입니다. 탁정식은 이것 때문에 이동인이 영국인과 사통한 자가 아닌가 김홍집의 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그가 영국인과 친하게 교제한 이력을 문제삼은 거죠. 이외에도 일본 등 외국에서 이동인을 암살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 확실한 건 그가 평소 적이 많았고, 남 눈치도 보지 않고 제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조선이 자력으로 문명 개화를 이룰 수 없다고 믿었고, 고종이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일본과 영국 등에 접촉해 군함과 병사들로 위협해 강제로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했죠. 친교 관계를 이용해 외국 외교관들과 자주 마나 조선 내정에 대한 정보를 주었고, 특히 일본 공사와 친밀했습니다. 만약 이동인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지 않고 신사 유람단 파견 및 조미수호조약 채결에 기여했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그는 고종의 신임을 받아 더 많은 외교 및 개화 정책에 개입했을지 모릅니다. 그때는 정말 러시아의 라스푸틴같은 인물이 되어 더 선명한 족적을 남겼을수도 있죠. 어쩌면 외세의 개입을 방조 혹은 찬동해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예상은 누구도 하기 어렵겠죠. 이동인의 짧은 행적을 보는 내내 이것이 마치 1884년의 갑신정변으로 한순간 정권을 잡는 개화파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습니다. 이동인과 관계를 맺었던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당은 김홍집 등 온건 개화파의 정책에 반발해 그동안 포섭한 각계각층 인사를 총동원해 정변을 일으키고 고종을 옹립해 자신들의 정책을 펼치죠. 하지만 불과 3일만에 청군이 개입하면서 개혁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거기다 이들의 정변을 계기로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하게 되면서 앞으로 일어날 청일전쟁의 불씨가 형성되죠. 이동인이 고종의 신임을 얻은 그 짧은 순간은 묘하게 김옥균의 3일 천하를 상기시킵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혁명이란 부분이 둘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하는 걸까요? 이동인의 사진. 구한말 근대 문명 개화에 눈뜬 그와 같은 개화승들은 이동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이동인처럼 뚜렷하게 인상을 남긴 인물은 또 없죠. 각국 외교 인사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견문을 익힌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천하게 여겼던 승려란 신분 탓에 국가 전면에 나설 수는 없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앞서 적었듯 의심스러운 정체와 성향, 독불장군 식의 성격도 문제가 되고요.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을지, 여러모로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