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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헌재 vs. ECB의 촌극

절찬리에 연재하는, 오랜 친구들이라면 그동안 써왔던 독일헌재 vs. ECB의 연재 시리즈(참조 1)를 잘 알 것이다. 게다가 5월 5일 어린이날 독일헌재(이하 BVerfG)가 ECB와 유럽사법재판소(CJEU)를 난도질하는 판결을 한 것도 기억날 것이다. ECB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독일 기본법 조건부 불합치라고 말이다(참조 2).

당시 BVerfG는 ECB에게 비례성 테스트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제출하라고 했었다. EU의 기관이 회원국 재판소의 명령에 따라야 할까? 애초에 논란이 많았고 ECB도 고자세이기는 했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유럽사법재판소와 EU 회원국 최고재판소의 결정이 “다르게” 나올 경우 어떻게 하라는 지침이 현재 없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라는 얘기다. 안그래도 헝가리와 폴란드가 사법 시스템을 유린하고 있는데, 사태를 더 키우지 말자고 한 것인지 몰라도 ECB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단, 이 보고서는 BVerfG 및 독일 분데스탁에서만 열람이 가능한 모양이다.) 그래서 양측이 만족해 하는 걸로 이 이상한 촌극(eine Farce)이 끝날 듯 하다.

그런데 ECB가 보낸 보고서의 의미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신통한 계책은 천문을 헤아리며 묘한 꾀는 지리를 꿰뚫는구나.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족한 줄 알아서 그만둠이 어떠하리…”(참조 3)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BVerfG가 섣부르게 EU에 맞서고 EU를 훈계하는 식의 판결을 내리면 안 될 일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ECB가 내놓는 보고서는 5월 재판 심리기간 중에 ECB가 제출했던 자료와 거의 대동소이하다고 한다. 심지어 질문답변 파트는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됐다(참조 4). 거의 독일 헌재/의회를 놀리는 꼴이다.

게다가 지금이 언제냐, 7월 초다. 여름 휴가 직전이기 때문에 특히나 분데스탁 의원들의 불만(참조 4)이 드높다. 의원들은 고사하고 독일 헌재는 이걸 과연 이해하고 판결을 내렸을까? AfD는 당연히(!) ECB에 대한 새로운 소송을 준비 중이다(참조 5). 그렇지만 일단은 어른의 사정으로 문제를 덮어두자.

항상 그런 식으로 EU가 발전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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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독일연방헌재의 은행연합 판결(2019년 8월 5일): https://www.vingle.net/posts/2653223

2. 독일 헌재와 CJEU의 충돌(2020년 5월 7일): https://www.vingle.net/posts/2942859

3. 당연히 을지문덕이 수나라군에게 보낸 희롱조의 오언시,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이다.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4. Plötzlich gibt es den Freibrief für die EZB im fragwürdigen Eiltempo(2020년 7월 2일): https://www.welt.de/finanzen/article210827511/Anleihekaufprogramm-der-EZB-Freibrief-vom-Bundestag-im-Eiltemp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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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역시 독서지. 이 책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이 저지른 베를린 집단 강간에 대한 건조한 보고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독일 여자가 쓴 이 일기가 독일어로 출판될 수는 없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일기 원본은 그녀 스스로 마음 속의 검열 때문이었는지 약자나 암시하는 단어로 썼던 모양이다. 읽을 수 있는 글의 형태로는 1950년대 초에 그녀가 직접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출판하려 마음 먹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1950년대에 영어판이 먼저 나왔고, 독일어판이 잠시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의 책은 50년대 독일 내에서 숱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독일 여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독일어판 재출판을 자기 살아 생전에는 못 하게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어판은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서나 다시 나올 수 있었고, 영화(Eine Frau in Berlin)화도 그 이후에나 가능했다. 50년대 독일의 비뚤어진 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2003년 이후 다시 나온 책에 대해서는 찬사가 이어졌고(하지만 저자는 사망했는 걸?), 역사 분석의 대상이 됐다. 자, 내용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는 1933-34년간 파리 소르본에서 역사/미술사를 공부했었고 그 후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약간의 노어를 익혔다고 한다.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한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제3자인 양 건조하게 당시 상황을 쓸 수 있었을까? 상황 판단도 빨랐고, 결국 그녀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뭐라도 알고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 책이 드러낼 수밖에 없을 여성주의적 시각은 나보다 훨씬 잘 쓰는 분들이 많으니 검색해서 읽어 보시기 바란다. 물론 예상한 내용이 대다수일 테지만 말이다.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은 역시 다양한 면모를 갖춘 러시아 군에 대한 묘사와 언어였다. 공산당이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군을 구성하는 것도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복수를 해야 했던 한편,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고, 착취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주인공이 잘 한 건, 그나마 장교들을 노렸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녀의 무기는 언어.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어눌하더라도, 어휘가 적더라도 자기 모국어를 말해주는 인물에게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노어를 몰랐던 것보다는 아는 편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제일 “서구적”인 잘 배운 러시아 장교는 그녀가 할 줄 아는 링구아 프랑카, 불어도 할 줄 알았었다. 물론 그가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읽기 참 힘들었다. 번역이 안 좋아서도 아니고 책이 지루해서도 아니라 너무 먹먹해서다. 전쟁이 끝나고 남은 사람들은 전리품이 되어버렸으며, 껍데기나마 남은 조국은 남은 사람들을 버렸다. 되돌아온 남자친구가 뭘 의미하겠는가? 실제 저자는 결혼하면서 스위스로 이주했다고 한다. 차마 베를린에서, 혹은 독일 내에서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