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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을 연구한 공학자, 길브레스 부부 (3)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 각 캐릭터는 마치 살아있는 양 생생하게 움직이지만, 그런 동작 속에서도 확실하게 캐릭터 개개인의 성격이나 특성이 드러나도록 하죠. 애니메이터들의 갖은 연구와 아낌없이 들인 노고가 아니라면 분명 그같은 결실을 보기란 어려울 겁니다.

디즈니 스튜디오가 배우들의 실사 동작을 연구 분석한 사실을 아시나요?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던 백설 공주에서 일곱 난장이 중 하나인 도피란 캐릭터는 코미디언 에디 콜린스의 연기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은 도피의 이미지에 가장 흡사한 에디 콜린스를 초청해 그에게 도피의 연기를 하게 하고, 이를 촬영해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고 연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정말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죠.

비록 지향점은 다르지만, 디즈니 애니메이터들도 길브레스 부부처럼 무척 세심하게 인간 동작을 연구하고 각자 자신들 목적에 맞는 최적의 동작을 도출해 낸 셈입니다. 서로 다른 분야라도 방법론에선 일견 비슷해 보일 수 있단 사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에디 콜린스와 도피. 1934년작 백설공주를 제작하면서 디즈니는 다양한 기술과 역량을 활용했습니다. 세트장에서 실제 연기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서 캐릭터에 입히는가 하면, 멀티플레인이란 기술로 배경에 깊이감과 입체감을 줬죠.
1924년 프랭크 길브레스가 급사합니다. 동작 연구를 시작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으로 작업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회사와 노동자 양측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믿은 인물이었죠. 자연히 그의 컨설팅 회사엔 그의 명성을 듣고 온 전미 유수의 기업들이 고객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으면서, 이들 회사와 맺은 컨설팅 계약도 날아가 버립니다.

어쩌면 프랭크가 평생 세워 올린 업적은 이 때에 사라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인 릴리언 길브레스는 결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죠.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 그가 참석하려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제 1회 국제 경영 컨퍼런스>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합니다. 참석자들 중 유일한 여성이었죠.

또 때마침 출범한 영국 여성공학협회에도 <산업공학에서 여성을 위한 기회>라는 글을 기고합니다. 여기서 릴리언은 산업공학이 신생 분야이기에 기존 공학보다 여성 참여가 수월하며, 여성 노동자와 가사노동 분야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여성이 접근하기 쉬운 연구 방법을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여성 공학도들의 참가를 촉구했죠. 1925년에는 퍼듀 대학 기계공학과에 동작연구 강의를 맡아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을 개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직접 기업체에 방문해 현장 실습을 해보는 기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릴리언은 왕성한 활동으로 남편 못지 않은 업적들을 쌓아 올렸습니다. 길브레스 사 사장에 취임한 후 그녀는 '여성지향적 컨설팅'을 내세웠고, 여성들을 고객으로 한 기업들을 신규 고객으로 유치했죠. 한 예로, 1926년 존슨&존슨 사를 컨설팅할 때는 생리가 여성노동자 피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생리 기간 중 여성 노동자의 작업 시간을 융통성있게 조절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적 관리를 가정에 접목시키는 시도 또한 이루어졌습니다. 릴리언은 1927년 <가정주부와 그의 일>을, 1928년 <아이들과의 생활>을 출간했고, 가정학, 공학, 경영학 전공의 여자 대학원생들을 모아 가사 노동 분야에 대한 공동 연구를 했습니다. GE 사의 프로젝트에선 4천 명 이상의 여성을 인터뷰해 스토브, 싱크대, 주방 설비 등의 적정 높이를 설계하고 부엌 디자인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죠.

이전까지 부엌은 비효율적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음식 저장고는 집 어딘가에 따로 두고, 각종 가구들도 아무렇게나 집 여기저기에 연관성 없이 놓여 있었죠. 릴리언은 이것들을 한데 모아 현재도 쓰는 L자형 배열을 만들었습니다. 또 쓰레기통에 페달을 달아 밟으면 뚜껑이 열리게 했고, 냉장고 문 안쪽에 계란이나 버터를 보관할 선반을 추가했죠. 당대 남성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생활 속 불편한 부분들을 릴리언은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갔습니다.

릴리언 길브레스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부엌 디자인. 1930년대 후반이면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주방 가구들이 마치 하나의 유닛처럼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해럴드 트리뷴에서 예전 주방과 길브레스가 고안한 주방을 비교한 결과, 이전보다 새 주방에서 걷는 거리가 1/6까지도 줄었다네요. 과거 주방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구조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페달식 쓰레기통의 유래엔 다른 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39년 스웨덴의 홀거 닐슨이란 사람이 아내의 미용실을 위해 발명한 Vipp pedal bin이 시초라는 설인데요.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따져봐야 의미없을지도 모르죠.

1929년 후버 대통령 영부인인 루 헨리 후버가 릴리언에게 걸스카우트의 컨설팅을 요청합니다. 이걸 계기로 릴리언은 행정부에도 발을 들이밀게 되죠. 1930년 대통령 직속 고용위원회에서 일자리 나누기 사업 여성 분과를 담당해 운영하는 등, 공공 분야에도 공헌을 합니다. 2차 대전 시기엔 정부 조직, 위원회, 군에서 조직 내 교육 및 노동 문제를 자문하는가 하면, 트루먼 행정부에선 민방위 자문 역을 맡기도 했죠. 한국전쟁 때도 그녀는 여군 국방 자문위에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40년 퍼듀 대학은 릴리언을 정교수로 임용합니다. 이로써 그녀는 미 공과대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습니다. 릴리언은 퍼듀 대학에 산업공학 교육이 정착되는 데 공헌함은 물론, 공학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을 상담해 진로 지도에도 힘씁니다. 1948년에는 위스콘신 대, MIT 등 미국 내 여러 대학에서 산업공학 교수로 그녀를 초빙하죠. 처음엔 남편 그늘에 가려졌을지라도, 릴리언은 끝내 세상에 자신만의 업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릴리언이 없었다면, 오늘날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의 업적도 잊혀지지 않고 지금과 같이 남을 수 있었을까요?

릴리언 길브레스는 93세까지 장수합니다. 공학의 퍼스트 레이디란 별명에 어울리게, 1968년 은퇴하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죠. 은퇴 후 요양원에 들어간 그녀는, 1972년 뇌졸증으로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은 후, 사회 각계에서 그녀와 그녀 남편을 기려 젊은 엔지니어와 여성 엔지니어를 표창하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기념 사업이 지속되었습니다. 평생 자신들 분야를 개척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부부에겐 아마도 기쁠 일이겠죠.

오늘날 미국과 세계의 모습을 만든 데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길브레스 부부 역시 그들만의 괴짜같은 방법론으로 현대 문명에 기여했죠. 지금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보는 건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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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L자 부엌부터 쓰레기통까지.......!!!!!!!!!! 정말 많은 곳에 손길이 닿아있었군요... 크 역시 이런 얘기는 늘 재밌는 것 같슴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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