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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도가 중국한테 이 바득바득 갈고있는 이유

중국과 인도의 국경지대
- 이 지역인데 애초에 국경이 딱 명확하지는 않은 지역이라고 함

대체로 자연환경(계곡)으로 암묵적으로 갈라진 국경이라고 하는데...

민감한 지역이니 만큼, 이 지역은 무기를 가지지 않고 순찰만 하기로 중국/인도가 서로 합의
(실질 통제선이라고 불림)


분쟁이 발생한 날,

인도군은 늘상 하듯이 별다른 무기 없이 순찰을 돌고 있었음 

근데 (암묵적) 인도 영토라고 여겨진 곳에 중국군이 군용 텐트를 쳤다고 함
 - 지난 수십년간 중국이 텐트를 치지 않았던 곳




자연히 실랑이가 벌어졌고

싸움이 격화되면서 돌도 서로 던졌다고 함 

그리고 인도군 20여명이 사망하게 됨 

(중국측에도 사상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이 공개를 안해서 정확한 숫자는 모름)


아무리 패싸움이 벌어졌다지만,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싸웠는데 어떻게 20여명이나 죽나? 하는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중국군이 사용한 무기


인도는, 이런 무기를 현장에서 급조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보고 있고

중국이 작정하고 이 못박힌 쇠파이프를 들고 왔다고 보고 있음

즉, 중국의 행동이 계획적이라는 것


그래서 인도는 반중감정으로 휩싸이고...

본래 무기를 갖고 들어가지 않기로 한 '실질 통제선'안에 무기를 배치하기 시작


참고로 군사력은 중국이 인도보다 우위라고 함

지난 전쟁은 중국군의 승리로 끝났고


하지만 인도도 모디 총리 재임 이후로 국방력에 돈을 많이 써서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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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중국은 더럽기로는 일등을 누가해도 어울리지싶다ᆢᆢ아무나ᆢ아니 ᆢᆢ짱깨는 응원 안한다ᆢ하는짓이 드러버서ᆢᆢ인도 너거 이겨라ᆢ중국몽?ᆢ놀고있네ᆢ꿈에서 깨어나라ᆢ짱깨야ᆢᆢ
인도 이겨라 ᆢ 중국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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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부인과 바보 온달은 외국인이다.
가야는 신라보다 99년 늦은 AD 42년에 건국되었습니다. 당시 김해 지역은 9명의 촌장(九干)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내가 있는 곳은 어디냐?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여 일부러 여기에 내려온 것이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임금을 얻으리라.” 이에 촌장과 주민들이 구지봉에 모여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구지가’ 노래를 부르며 한나절 내내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줏빛 줄에 붉은 궤짝이 내려왔고 상자를 열어보니 6개의 황금알이 나왔다네요. 그중 가장 먼저 깨어 난 이가 김수로왕이 되어 금관가야를 건국했고, 나머지 5알에서 태어난 동생들이 각각 나머지 5개 가야국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년 뒤 김수로왕은 결혼하라고 성화를 부리는 아홉 촌장 들에게 “귀인이 바다 건너올 것이다.”라며 맞으러 나가게 합니다. 그러자 정말 붉은 돛을 단 배가 나타났 는데, 왕이 직접 데리러 오지 않으면 내리지 않겠다고 버티자, 수로왕이 그 말이 일리가 있다며 직접 맞이하러 가니 허황옥이 “저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 입니다.”라고 밝혔다지요. 이에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임시 궁궐을 마련하고 2박 3일간 지낸 후 김해로 되돌아와 알콩달콩 살며 무려 10명의 아들을 두었다는데, 태자 거등왕은 김해 김씨로서 후계를 잇게 되니 현재 대한민국 최대 가문 400만 명의 조상님이 되셨고, 두 아들은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씨가 되고, 나머지 일곱 아들은 스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허황후의 인도 공주 기록에 대해 오랫동안 학계는 불교가 도래한 뒤 가문의 신성함을 강조하고자 인도에서 왔다고 윤색한 것으로 추정했는데, 2009년 서울대 의대팀이 김해 이안리 고분 인골을 분석해보니 인도 남부인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고,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대학교 조호영 교수팀에 의뢰해 김해에 있는 파사석탑 재질을 분석해보니 우리나라 돌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진 상황입니다. 따라서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온 것은 거의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삼국유사》에서 일연 스님이 김해 호계사 파사석탑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용에 “허황옥 공주가 중국 동한 건무 24년(AD 48년)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왔다. 부모의 명을 받고 바다를 건너 가야로 오려고 했는데 풍랑이 심해 되돌아오자 아버지가 석탑을 싣고 가라고 명령해 배에 실으니 곧 바다가 잔잔해져 두 달여 만에 가야까지 왔다. 탑은 모가 4면에 5층이고 돌에는 미세한 붉은 반점 색이 있는데, 그 질이 무르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돌이 아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 사실을 700여 년 뒤 다시금 현대 과학으로 입증한 것이죠. 또한 인도인인데 왜 성이 허(許)씨냐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는데 ……, 같은 시대 이스라엘 땅에 살던 귀족 가문 도 허(Hur)씨였어요. 말도 안 된다고요? 아뇨, 진짜에요. 영화 ‘벤허(Ben Hur)’ 보셨을텐데요. 주인공의 이름이 ‘벤’이고 성이 ‘허’씨에요. 유태인 중 ‘허’라고 불리는 가문이 있으니 한국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인도에 허씨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같은 기록을 재해석해보면, 신라 혁거세와 마찬가지로김해 지역에 나타난 북방 철기 세력이 기존 토착 세력을 아울러 금관가야를 세웠으며, 뒤이어 인도에서 유래한 남방계 해양 세력이 도착해 두 세력이 권력을 나눠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는 ‘바보 온달’ 이야기에는 당시 고구려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고구려가 내분으로 약화되던 25대 평강왕 시절에 그의 딸,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溫達)에게 시집간 뒤 남편을 훌륭히 교육시켜 결국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고, 그후 침략한 중국 후주(後周)군과 맞서 싸워 이기고는 신라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으려 출정했다가 결국 전사했다는데, 최근 일부에서는 온달이 이란 북쪽 사마르칸트에 살던 스키타이계 유목민인 소그드(Sogd)인으로서, 당시 중국을 거쳐 고구려로 귀화한 세력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인들이 보기엔 아리아계 백인에다가 고구려 말도 못하는 그들이 추하고 바보스러워 보였을 거라는 거지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당시 중국에 피난 온 소그드 왕족이 쓴 성씨가 온(溫)씨였다고 하고, 고구려 각저총 벽화 ‘씨름도’에서도 확연히 우리와 다른 서역인이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라 원성왕릉으로 알려진 괘릉의 무인상에도 서역인 모습을 한 조각상이 남아 있기에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즉,당시 평강왕으로선 귀족들의 병력 동원이 여의치 않아 왕실 직할 병력이 작다 보니 이주민 세력인 소그드인의 우두머리인 온달을 사위로 맞아 이주민 소그드인들을 직할 군사로 편입해 과감히 영토 회복 전쟁을 벌였을 거란 거지요. 그러니 평강공주는 울다가 바보 온달에게 시집간 게 아니라 이주 외국인 온달에게 시집가라고 하니 싫어서 울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고려는 외교로 해결이 안 되면 여지없이 맞서 싸우는 전법을 구사했습니다. 이에 거란의 2차, 3차 침공 시에는 서희에 의해 고려 영토로 인정받아 개척한 강동 6주에 쌓은 여러 성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적을 차단했고, 3차 침입 시에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거란의 정예군 중 하나인 우피실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어 더이상 거란이 송나라를 압박하지 못하게 되면서, 송, 거란, 고려 3국간 힘의 균형이 맞춰집니다. 이에 송나라는 거란의 최강 부대를 압살해버린 고려를 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당시에 송과 거란이 각각 황제라고 칭하자 고려 역시 스스로 황제국임을 내세우게 되지요. 중세 유럽에서야 교황이 신의 이름으로 한 명의 황제만을 로마제국 황제의 후예로 지명했지만, 동양에서는 힘센 쪽이 스스로 황제라고 부를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흔히 5000년 내내 중국에 짓눌리다가 현재에 이르러서 겨우 수십 년간 중국을 얕볼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섰다가 다시금 눈치 보는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귀주대첩 이후 고려 사신은 송나라에 가서 갑질을 톡톡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송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이자 동파육 요리법의 발명가로도 유명한 소동파는 고려를 증오한 대표 인물이 되고 맙니다. 소동파는 7번이나 “고려 오랑캐와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상소를 올렸다지요? 그 이유가 바로 고려 사신들에게 접대하는 비용이10만 관도 넘게 들며 고려 사신이 가는 곳마다 백성들과 말을 징발하고 영빈관을 수리하느라 고통받고 있다며 그 돈이면 수만 명의 백성을 구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송 황제 : “여봐라. 고려에서 사신이 온다.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영빈관을 빨리 수리하라” 고려 사신 : “여~ 황제님. 성대히 환영해주셔서 감사하고려. 우리에게 줄 선물도 잘 준비하셨소?” 소동파 : “아. 열받아. 동쪽 오랑캐한테도 뜯기다니! 동파육이나 쪄서 빼갈이랑 마시면서 스트레스 풀어야지~.” 고려 사신 : “동파 선생, 열받으셨소? 거란이 쳐들어올 때 우리 고려가 송을 도와줄지 다시 한번 고려해보시요?” 송 황제 : “거. 동파는 찌그러져 있으라. 불쾌하게 만들어 미안하다. 우리랑 계속 잘 지내자~.” 고려 사신 접대에 쓰인 비용이 정말 10만 관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상소문이 사실이면 북송이 서하(西夏)에게 뜯기던 공물의 2배 비용이고 거란에 바치던 공물값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답니다. 거란이나 서하에게는 군사력에서 밀리니 그만큼 뜯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도와준다던 동맹국에게도 뜯기는 건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이처럼, 거란을 물리친 고려는 중원 정통왕조인 송나라로부터도 상납을 받으며 큰소리를 쳤으니 실로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가 바로 이때가 아니었을까요? 비록 영토는 줄었지만 고려 인구는 고구려에 비해 2배 이상 많았고 상시 동원 가능한 군대가 20만~ 30만 명이었다고 하니 국력은 고구려보다 오히려 더 강했으며 후대 조선보다 더 강력한 상비군을 조직한 국가였습니다. 이처럼 고려가 한때 중국에게 갑질한 내용을 정작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그게 그렇게 사무쳤는지 1999년 제작한 대만 드라마 ‘소년 포청천’에 고려 태자가 송나라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가 살해당하자 고려가 이에 앙심을 품고 쳐들어올까 봐 송 황제가 덜덜 떠는 에피소드가 등장했다고 하네요. 뭐 고려 태자가 살해당했다는 건 전혀 역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이긴 합니다. 어이~, 너네 중국은 쭉 우리한테 갑질했어. 이 사람들아! 어떻습니까? 그동안 몰랐던 고려의 위대함이 새삼 놀랍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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