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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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척했다는 90-00s 강남패션과 강북패션 비교

안녕!
뉴트로 패션에 대환장하는 나는 급기야 과거 방송, 영상, 잡지까지 뒤져보았고 흥미돋한 자료를 발견함

바로

강남패션과 강북 패션이 나뉘어져 있었다는거...!!!!!!!

강남은 주로 힙합패션으로
바지통 크게!!!! 상의도 크게!!!! 심하면 신발도 크게크게!!!신었어

ex)

반대로 강북은
복고가 유행했고 (지금도 복고가 유행인데 그때도 복고가 유행ㅋㅋㅋ) 좁은 바지통에 상의도 딱맞는 정장스타일을 입었다고 함


이에따라 강남사람이 강북에 가면 확튀고
강북사람이 강남에가면 확튀어서 서로 쳐다보곤 했다고함
나이트에선 서로 패션을 입뺀시키기도 했다고 ㅋㅋㅋㅋ


연예인으로 비교해보면,
먼저h.o.t가 가장 대표적인 강남스타일


무대의상부터 펑퍼짐+힙합스러운게 강남스럽고요


장우혁 사복이 대표적 강남스탈

당시 잡지에 따르면 ses도 강남스타일이었다고 함


반대로 대표적 강북스타일은 태사자

세미정장(슬림핏) + 당시 유행하던 브랜드인 보브 뱃지


위에 통크고 큰 워커를 신은 ses 정장 패션이랑 비교하면 구두부터 확 차이나는거 보이지??


여담으로 강북 나이트 클럽에 가면 태사자 코스프레한 사람이 많았다고 함


하지만 당시 1세대 사복을 보면 거의 강남인거로 보아 아마 강남 스타일을 더 좋아했던거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추측...🧐

젝스키스

핑클
이효지씨가 된 이효리

심지어 무대의상은 강북이었던 태사자 조차도 ㅋㅋㅋ



지금 유행하는 뉴트로 패션은
복고+클래식한 강북과

힙합풍의 강남을 조금씩 섞어서 유행하는 느낌임 ㅋㅋ( 아님말고)

암튼 이제 글마무리를,,,음...
출처:쭉빵카페

모야모야 🤩✨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건가!?!?!?
강북 태사자 움짤은 요즘 아이돌 느낌이고
강남 이효리, 장우혁은 지금 홍대나 번화가 가면 오조오억명 마주칠 것 같은 패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한 2040쯤 되면 또 이 패션이 유행하려나아..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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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지 ᆢ 강남사는 학생의 시선으로 볼때 강북학생의 타이트한 스타일은 지방 시골에서 온 촌스런 느낌이었음
ㅋㅋㅋ신발 뒤축에 박아넣은 압정이 자주 빠져서 압정을 통으로 가방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걸을 때마다 찰각찰각
태사자 잘생겼당..
타이트교복에 뽀죽구두.거북이 가방 생각나네요ㅋㅋ 적응 안되는 패션
저 스키니한 슬랙스에 뽀족구두 신고 얼마나 춤은 격하게 추던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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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백프린팅 추천 티셔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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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혐주의) 논산 군인(상근예비역) 엽기 살인사건
사건 발생은 2014년 4월 19일 경에 논산에서 한 군인에 의해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범인은 당시 충남 논산시 광석면 율리에 사는 박상병 (22)은 육군 제 32사단에서 상근예비역(집에서 출퇴근하는 병사)으로 근무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당시 김양(18)은 함께 동거까지 했었던 미성년자였습니다. 사건의 시작 이 범죄의 시작은 한 20대 남성과 10대 소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가해자인 박상병은 2013년 5월경 사촌동생의 소개로 김모양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김양은 가출을 한 상태이거나 아니면 집안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였던 것 같습니다. 박상병 역시 성장 환경은 피폐하고 불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둘은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 순식간에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박상병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외할아버지 아래서 어머니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상병이 초등학교 시절 그 어머니가 재혼해서 떠나고 외할아버지 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이런 경험들이 나중에 박씨가 김양에게 그렇게 집착하고 분노했던 시작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사람은 각각 10대와 성인으로 어울리지 않는 관계 같았지만 불우한 어린시절을 살아온 동질감으로 금새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사귄지 6개월만에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2014년 2월 김양이 임신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아직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박씨는 여자친구에게 매몰차게 낙태를 종용했다고 합니다. 결국 3월경 임신 5주의 김양은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를 하게 되고, 김양은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한 박상병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둘의 사이는 점차 소원해져 갔다고 합니다. 특히 낙태 한달 뒤, 김양이 박상병과 동거를 끝내고 자신의 친구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더욱 더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박상병 또한 자신을 멀리하는 애인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게 되었고 급기야 폭력으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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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따라갑니다. 대화하기 적당한 곳에 다다른 둘은 그때부터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첨엔 서로 진솔한 얘기도 하고 힘든 얘기도 하면서 괜찮은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점차 자신의 생각이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박상병은 증오심을 풀며 김양에게 오늘 같이 있어 줄거냐, 우리 아무 문제 없는 거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김양과의 만남을 지속해 나갈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대로 농로에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성관계 도중 간혹 오가는 차량의 불빛이 불편했던 두 사람은 옷을 챙겨입고 인근의 후미진 건물로 장소를 옮깁니다. 사실 시골같은 경우는 서울에 비해 후미진 건물들이 많은 관계로 공장으로 쓰이던 건물이나 축사로 쓰이던 건물 또는 짓다 만 건물등 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후미진 곳에 있는 건물들도 꽤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소를 옮겨서 대화를 이어가던 박상병은 김양에게 재차 오늘 같이 있어줄 거냐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김양은 일단 집에는 가야 한다며 말을 바꿔서 대신 내일 짐을 싸서 다시 오겠다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박상병은 다시 김양을 살해하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그것도 김양이 가장 당황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살해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끔찍하게도 박상병은 성관계 도중 김양을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실제 재차 키스를 하는 등 성관계까지 행위를 이어나가다가 관계를 하며 둘 다 흥분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외투에 있던 흉기로 김양을 무자비하게 찌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등을 여러번 찔린 김양은 몸을 돌려 무자비하게 휘둘러대는 박상병의 칼을 최대한 손으로 막고 발버둥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박상병은 달아나는 김양을 끝까지 뒤쫓아가 마구 찔렀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극도의 고통을 못이긴 김양이 몸부림치며 뼈에 부딪힌 흉기가 부러져 버리자 박상병은 흉기 자체를 놓쳐 버리게 됩니다. 박상병은 혹시나 나중에 문제가 될까 부러진. 칼날과 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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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라면 자신이 김양을 살해한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신 못차리고 김양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었다는 놀랍고도 끔찍한 정당방위 논리를 성립해가던 박씨는 어느순간부터 겁이 덜컥 났는지 범죄의 은폐를 시도합니다. 박상병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산속에 김양의 휴대폰을 파묻어 버리고 도주를 합니다. 김양의 시신은 끔찍한 상태로 다음날 오전 7시 40분쯤 팔각정을 지나던 마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합니다. 경찰은 주변 탐문조사를 통해 박상병을 범인으로 특정하고 군 헌병대와 공조해 추적에 나섰다고 합니다. 박상병이 군인의 신분이었던 관계로 엄청난 군병력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박상병이 은신한 것으로 보이는 주변 야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고 군병력이 대거 투입되어 체포작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박상병은 결국 사건 발생 26~33시간이 지난 20일 오전 7시 50분~8시경 근처 야산에 숨어있다 체포됩니다. 당시 가해자 박상병이 은신했던 가장 유력한 정소는 바로 저 두 곳입니다. 저 두 곳외에는 해당 야산에서 마땅히 숨을 장소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 길을 따라 김양과 박씨가 이동했을 것이고 박씨가 도중할때도 이 길을 이용했을 것 같습니다. 재판 결과 결론적으로 판사는 사형이 아닌 징역 30년 형과 전자발찌 20년만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군인의 신분이었던 관계로 1심은 군사법원에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구속 이후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상병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재판부에 수 많은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또 법정에서는 일종의 악어의 눈물을 흘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범행당시 20대 초반이었으니 30년 후 출소 한다면 50대 정도의 나이에 출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유가족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상생활조차 힘들어 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범죄의 극악함으로 재혼한 박상병의 생모가 5,000만원을 공탁하며 엄벌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박 상병은 이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로 이어지면서, 대법원까지 가서야 형량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피해자인 애인을 특별한 동기도 없이 단지 변심했을지 모른다는 일방적인 의심만으로 살인을 결심하고 무차별 폭행 후 살해한 것으로 그 범행이 매우 잔인해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여러 사정을 볼 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고 합니다. 또, 유족에게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도 형량을 정하는데 참고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유족들은 “보복이 두려워 일상생활이 어렵다”며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무기징역이나 사형등의 판결이 나오지는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 2014년경에 발생한 범죄이니 단순계산이라도 30년형이라면 2044년이라고 잡아도 충분히 건강한 상태에서 저런 악마가 세상으로 다시 출소할 가능성이 있다는게 무섭습니다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관련기사 :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834 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80509338 모야..... 본문 내용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는데... 형량이 ㄹㅇ 쌉호러....................... 부대에서는 선임에게 깍듯한 후임이였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