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aaaang
10,000+ Views

[유머] A급 전범조차 경악한 미친 명령.jpg


그리고 권력없는 바지사장으로 이미지 세탁한 뒤 전후 일본의 황금기와 함께 잘 살다 갔단 헬피엔딩
일왕이 꼭두각시였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죠 ㅋ
3 Comments
Suggested
Recent
저 칙명 발견되면 깨소곰이겠다.
모 외국인이 일본이란 국가는 조현병 환자라고 했던 말이 틀리지 않았네.
미친...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안전규정은 피로 쓰여진다
과거 필름(영화, 엑스레이 등)엔 니트로셀룰로오스가 들어갔으나 불이 너무 잘 붙어 화재가 자주 발생했고, 결국 니트로셀룰로오스를 넣지 않는 쪽으로 개발됨 국내 건축법은 원래는 허용응력 설계법으로 건물을 설계했었으나 삼풍백화점 참사가 벌어진 이후, 건물이 최대 버틸 수 있는 정도를 알아보고 설계하는 극한강도 설계법, 한계상태 설계법을 사용 스페인서는 위험물질 운반 차량은 밤에만, 것도 인구 밀집지역은 피해가도록 법적으로 정해졌는데 과거 LPG 탱크로리가 캠핑장 인근에서 전복 후 폭발하는 바람에 21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이후 바뀜 1903년 미국 이로쿼이 극장서 화재가 발생 603명이 사망 비상구가 잠긴 곳이 많았고, 열린 곳도 여는 방법조차 안알려졌단 얘기가 오고갔고 이후 비상구에 저렇게 가로로 큰 잠금장치를 달아 누구나 쉽게 열수 있도록 함 1942년 미국 코코넛 그로브 클럽서 화재가 발생 출입문이 모두 회전문이었는데, 이 때문에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492명의 사망자가 발생 이후 회전문 옆에는 반드시 일반문을 설치하게 됨 일본 하네다 공항서 재입장을 해도 쉽게 잡지 못한다는 헛점을 발견한 사람이 비행기를 납치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모든 공항에서는 재입장을 금지하게 됨 과거 미국서 음주운전 차량과 정면충돌한 스쿨버스서 화재가 발생 불길 때문에 맨 앞의 문으로 탈출 못해서 맨 뒤 비상구로 탈출하다 지연되 27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진 이후 연료통은 충격에도 안전하게 중앙으로 이동 후 케이지 설치, 비상구는 9개로 늘어남 독일서 고속철도 탈선 사고 후 101명이 사망 열차가 너무 튼튼해서 구겨진 차체 내의 사람들을 구조하기 힘들었다는 얘기가 나왔고(급하면 공구 들고와서 차체 잘라다 구조하는데 그걸 못함) 열차 내에 안전망치와 쉽게 깨지는 부분을 설치, 비상시 깨고 탈출하도록 됨 우리나라는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을 겪은 이후 출입문 비상계패장치를 비롯해 지하철 위기 상황시 탈출법을 지하철 곳곳에 적어둬서 시민들이 기억하게 함 인도항공 182편 폭파 사건, 로커비 테러 등 주인없이 짐만 실린 여객기서 폭탄테러가 몇번 발생한 이후 항공기엔 반드시 주인 없는 짐을 빼도록 법적으로 규정됨 9.11테러 당시 항공기 내부 보안에 대한 지적이 상당했고 이후 공구를 가져오지 않는 한 외부에서 쉽게 열지 못하도록 항공기 설계가 바뀜 저먼윙스 자살 추락 사건으로, '만약 파일럿이 나쁜 마음을 품으면 아무도 막지 못한다.' 는 사실이 알려진 후 항공기 조종석에는 반드시 최소 2명 이상, 한명이 화장실 가더라도 정해진 승무원이 대신 들어가도록 바뀜 대한항공 007편이 항로를 벗어났다가 격추 당한 이후 군사용으로만 쓰던 GPS가 민간에도 보급, 항로를 젓어나는 일이 없도록 함 영국항공투어 28M편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55명이 사망 연기가 너무 자욱해 앞이 안보이고, 내부가 너무 좁았다는 얘기가 나온 뒤 통로는 19cm 더 늘어났고, 바닥에 비상시 켜지는 등을 설치해 승객들의 대피를 돕도록 함 1955년 르망 24 레이스 당시, 레이싱카 한대가 전복 후 관중석으로 날아간 뒤 폭발해 레이서 포함 84명이 숨진 이후 관중석에는 안전펜스를 붙여 차량이 쉽게 날아오지 못하도록 됐고, 또 관중석과 트랙 사이에 일정 공간을 넣음 ㄹㄹㅇ 펌 첫번째를 보면서 시네마 천국에서 필름에 불이 붙어 불나던 장면이 떠오르더구려. 많은 안전 지침들이 여러 사람들의 피로 쓰여졌다오...
흉내만 내도 좋은 것
옛날 어느 마을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저잣거리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 어느 작은 초가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어머니. 아, 하세요. 밥 한 숟가락 드립니다. 다시 아 하세요. 이번엔 나물 반찬 드립니다. 어머니.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네요.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조금 흘러가고 있습니다. 자, 이번에는 생선 반찬 드립니다.” ​ 원님이 그 초가집을 몰래 들여다보니 한 청년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생선의 가시도 정성스럽게 발라 어머니의 식사 수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 그 모습에 감명을 받은 원님은 효자 청년에게 큰상을 내렸습니다. ​ 그런데 마을에 또 다른 청년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불편한 어머니를 홀대하는 불효자였지만 자신도 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 거짓 효도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렇게 또 다른 효자의 소문을 들은 원님은 다시 정체를 숨기고 그의 집을 조심히 들여다봤습니다. ​ 하지만, 원님의 방문을 눈치챈 불효자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 “아들아. 예전의 너는 앞이 안 보이는 어미를 보살피지 않고 살더니 지금은 이렇게 어미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가 되었으니 이제 내가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 청년은 원님을 속였다는 생각에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원님은 그 청년에게도 다른 효자 청년과 같이 상을 내리면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것이다. 비록 거짓이었다고 해도 부모를 행복하게 해드렸다면 그 또한 훌륭한 효도이니라.” ​ 원님에 말에 이 청년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뒤에는 진짜 효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효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받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녀의 효도가 큰지, 작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부모님이 어떻게 느끼고 기뻐하실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인 효도, 미루지 말고 이번 한가위를 통해 진정한 마음을 전해보세요. ​ ​ # 오늘의 명언 천하의 모든 물건 중에서 내 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몸은 부모가 주신 것이다. – 율곡 이이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효#효도#부모님#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숙종이 내가 돼지냐며 송편을 내동댕이 친 이유.txt
숙종은 평소에 신분을 가린 채 궁궐 바깥에 나가 민심을 살피는 것을 즐겨 했는데 그 일화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숙종은 밤에 미행으로 남산골을 순시하였다. 밤이 깊은데 어디서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나서 소리를 쫓아가 보니 어느 오막살이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창 사이로 안을 엿보니 젊은 남편은 글을 읽고 새댁은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젊은 선비 내외의 모습은 비록 가난하지만 귀엽고 흐뭇해 보였다. 얼마쯤 지나 젊은 남편은 책을 덮으며 속이 출출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새댁이 조용히 일어나 벽장 속에서 주발 뚜껑에 담은 송편 두 개를 꺼내 놓으며 드시라고 한다. 남편은 반가워하며 얼른 한 개를 집어먹더니 두 개째 집어 들었다. 그러자 임금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시장하기는 마찬가지 일 텐데 어찌 혼자서 두 개를 다 먹나?'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송편 하나를 입에 물고 새댁의 입에 넣어주는데 서로 사양하며 즐기는 것이었다. 숙종은 부부의 애정에 감동하며 부러운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나인을 불러 송편이 먹고 싶다고 하자 수라간이 온통 난리를 치르며 큰 수라상이 들어오고 큰 푼주에 송편을 높다랗게 괴어 전후좌우 옹위를 받으며 요란스럽게 들고 오지 않는가... 눈앞에 아른거리던 어젯밤의 아름다운 광경은 깨어져 버리고 울컥 화가 치민 왕은 "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 하면서 송편 그릇을 뒤집어엎으며 내동댕이 쳤다. 모두 왕의 심정을 알리 없어 의아해 할 뿐이었지만 그 후 내막을 알게 되고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의 맛보다 못하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근데 이런데다 담아주니 나라도 씅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야 성질머리 보소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사이즈면 ㅅㅂ 마을잔치 아니냨ㅋㅋㅋ 내가 수라간 궁녀였어도 주상전하께 송편을 대령하라~~~~~~~~~~~~~~ 해서 허겁지겁 다들 모여앉아 500개정도 만들고 그중에 제일 예쁜놈 2~30개만 올린건데 그걸 걷어차시네 ㅇㅇ 현타 오지게 올듯 ㅠ
어마어마하게 뒤끝 쩔어줬던 미군 장교.history
1905년 상반기  일본, 요코스카시 장갑순양함 USS 신시내티가 일본에 잠시 정박해 있는 동안 승조원들이 일본 관광을 하고 있었고, 그 중 한 소위가 가마쿠라 불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 불상 꽤나 멋있네."  "이 지갑은 이제 제 겁니다!"  그런데 불상에 정신이 팔린 그의 지갑을 어느 소매치기가 훔쳐갔다.  "야, 야 이 새끼야 내 지갑 내놔, 어이 거기 순사님 저 새끼 좀 잡아봐요!"  "귀찮은데스" "이 시발년이" 그렇게 그 소위는 경찰을 포함해 다수의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협조해주지 않았고 결국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두 번 다시 일본은 쳐다보지도 않기로 결심한다.  애석하게도 일본인들이 그렇게 좆같이 취급한 소위는 바로 어니스트 킹 (Ernest J. King)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 총사령관이자 동시에(!) 해군참모총장이 되시는 리히, 니미츠, 홀시와 함께 유일한 미 해군 원수가 되실 몸이었다. 킹은 이 사건 이후로 일본에 대해 악감정을 많이 품고 내내 일본 욕을 해댔으며, 미 해군이 일본 본토 공격에 찬성하자 태평양함대 최고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이제 40년 전에 잃어버린 지갑의 복수를 하러 가시겠군" 이라고 농담을 날렸다고 한다. 출처 뒤끝 쩌네 ㅋㅋㅋ 하지만 적이 같으므로 나는 참 싱글벙글 ㅋㅋㅋㅋ 이거 보니까 또 생각나는 현대인 내한했을 때 공항에서 어떤 팬이 싸인받으려고 가져온 매직으로 노엘이 아끼는 자켓에 그만... 하지만 노엘은 한국을 매우 사랑하지 싱글벙글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 대신 전통의상 입은 모습 챌린지 중인데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탈레반 재집권 후 니캅 등을 착용하라는 압박에 맞서 형형색색의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며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트위터에는 #DoNotTouchMyClothes(내 옷에 손대지 마) #AfghanistanCulture(아프간문화)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아프간 여성들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아프간 전통의상은 눈까지 다 가리는 '검은 부르카'와 눈만 내놓고 전신을 가리는 '니캅'과 다르게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와 밝은 색상이 돋보였다. 온라인 저항운동은 아프간 아메리칸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일했던 바하르 자랄리 전 교수가 주도했다. 자랄리 전 교수는 12일 친 탈레반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의 사진을 올리며 "아프간 역사상 이런 옷을 입은 여성은 없었다. 이것은 아프간 문화와는 완전히 이질적"이라며 "탈레반의 선전으로 왜곡되고 있는 아프간 전통의상을 알리기 위해 내 사진을 올린다"고 적었다. 그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올리며 "아프간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자"고 말하며 다른 이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진짜 너무 아름답고... 저쪽 동네 여성 전통 복식 첨 보게 되어서 더 맴아픔 ㅜ 저렇게 찬란한 문화 양식 다 두고 대체 언제부터 좆도 근본 없는 니캅, 부르카가 전통 된거임 그렇게 부르카가 좋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나 처입기 운동 하지 왜 괜히 애먼 여자들한테 뒤집어 씌워 해연갤펌
주기적으로 문화를 포멧한 나라.jpg
분서갱유 (진나라, 기원전 212년) 의약 점술 농업 의학에 관련된 책을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경서)와 시문, 진나라의 역사를 제외한 모든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를 불태움 그래서 고대 중국 역사책은 거의 다 불에 타서 사라지고 몇 안되는 남은게 공자의 <춘추>를 비롯한 저서들임. 이건 당대 유학자들이 책을 통으로 암기해서 살아남음. 우리가 알고있는 유학의 사서오경도 주역 빼면(점치는 책이라고 살아남음) 다 나중에 암송해서 새로 쓴거임. 문자의 옥 (청나라, 17세기 후반~18세기 초) 대륙을 지배한 만주족이 한족의 반청의식을 꺾어버리기 위해 벌인 사건. 청나라 강희제~건륭제 시기 대대적으로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박탈하고, 글자 하나하나 트집잡아서 지도때도 없이 팔족까지 죽여버림. 이러니까 무서워서 아무도 현실비판이나 연구를 안함. 그래서 지금은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이 서양에 결정적으로 뒤쳐지게 되었다는게 정설임. 문화대혁명 (중화인민공화국, 1966~1976) “의심할 여지 없이,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중에 무산계급 신사조, 신문화, 신풍속, 신습관이 반드시 지주들과 기타 착취 계급의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 이런 부패한 것들을 대체할 것이가. 위대한 마오쩌둥 사상으로 무장하여 떨쳐 일어선 중국 인민은 반드시 온갖 잡귀신을 쓸어버릴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조직적 국가적 문화파괴 사례. 4천년 이상의 중국 문화가 최소한 수백년 수준으로 리셋된 사례. 더 말해 무엇하리 그리고 역사는 늘 그렇듯 반복된다.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그게 지금일지도 출처 : 이토렌트 왜 지들 문화는 자꾸 리셋시키면서 다른 나라 문화는 자기꺼라고 우기는지.. 참 알 수 없는 민족입니다..... (문화는 리셋되는데 왜 저 인간은 리셋이 안 될까요)
호랑이...아니 노예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인싸된다
아유바 슐레이만 디알로는 세네갈의 금수저 노예상인이었다. 노예가 아니라 노예상인이라는데 주목 30살에 a4용지 좀 사고 겸사겸사 노예 두명도 팔려고 시장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다 다른 아프리카 부족에게 납치 당해서 노예상인에서 노예로 다운그레이드를 당했다 저런! 사실 흑인 노예 무역은 상당수가 부유한 흑인이 가난한 흑인을 납치하거나 사들여서 되팔렘하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뭐 이걸로 노예무역을 정당화하진 말구 노예제와 인종차별은 둘 다 굉장히 나쁜 짓인거에오. 흑인노예는 우사스 침대 위에 묶여있는 사이가 하나로 충분해 아무튼 30세의 아유바씨는 노예라는걸 나타내기 위해 머리가 빡빡 밀린후 팔려나갔다. 이 와중에 우리집은 금수저라 내 몸값 낼 수 있다고 열심히 설득했다. 노예가 노예주한테 애원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게 정상인데 인싸력이 워낙 좋았는지 집에 우편까지 보내는데 성공했다! 근데 정작 배달부가 농땡이를 까느라 늦어서 몸값 가져오기 전에 노예 핫플레이스 미국으로 팔려가고 말았다. 끌려간 곳은 메릴랜드의 담배농장이었다. 저런! 금수저 엘리트로 일하다가 담배나 따게된 아유바씨였지만 기죽지 않고 특유의 인싸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주목을 받았다. 담배 말기를 개못해서 외양간에서 근무했는데 유식하고 성격이 개인싸라 많은 백인들의 호감을 샀다. 머리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두꺼운 꾸란을 기억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배껴서 썼다고 한다. 무슐림이다보니 노예 주제에 하루 다섯번 꼬박꼬박 기도타임을 지켰는데 들켜도 인싸력으로 어떻게든 넘겼다 3년동안 하얀불알친구들을 만든 아유바씨는 불알친구들을 꼬셔서 헬메리카를 탈출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도 상류층과 어울리면서 또 불알친구들을 잔뜩 만들면서 친목질을 했다. 백인 친구들이 아유바씨를 기독교인으로 만들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그때도 인싸력으로 요 프렌즈 난 프렌즈를 배신하지 않듯 알라도 배신하지 않아 와썹 대충 넘겼다. 가끔 신앙인들과 토론배틀을 뜨기도 했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 인간 지금 노예임 얼마나 인싸였단 말인가. 맨 위의 초상화도 이때 그렸는데 영국옷이 아니라 고향옷을 입고 찍었다 아무튼 그렇게 아유바씨는 영국에서 3개월 정도 지내면서 돈 많은 인싸친구들을 잔뜩 만들었고 친구들이 60파운드나 되는 거금을 모아준 끝에 탈노예에 성공했다 인싸친구들과 씬나는 작별파티를 즐긴 후에 대서양을 건너 당당하게 집에 돌아왔다. 겨우 4년 걸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세네갈이 전쟁에 초토화됐고 아빠도 죽었고 아내들은 다 아유바가 죽은줄 알고 재혼한 상태여서 살짝 마음이 아팠지만 또 인싸력을 발휘해서 금방 금수저로 복귀하고 신나는 노예탈출기를 책으로 써서 돈을 많이 벌었다. 아유바가 쓴 책은 굉장히 인기있어서 영국이랑 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인싸는 노예굴에 끌려가도 4년이면 충분하다 인싸 강해! (출처) 인싸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