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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 하도 어지러워 먼저 읽을 책들을 한쪽으로 빼서 쌓아보았다. 돌 쌓기처럼 뭔가를 기원하는 의식 같기도 하다. 나는 내 나태의 타파를 기원하는 것인가. 보름달을 보고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뭘 빌어야 할까. 따져보면 단박에 떠오르는 뭔가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고, 고만고만한 소원들은 딱히 우선순위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에 썼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내내 그러할 텐데 그 문장인즉슨, “원하는 걸 가질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꼭 취하고 싶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은 죽은 어떤 가수의 노랫말 중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라는 가사를 보며 그거 하나 모르는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자라자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한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 같은 뭔가를 쥐고 오랫동안 으쓱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어릴 땐,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이 없다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뭔가 멋이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다. 나는 정말로 꿈이 있다거나, 일종의 드림워커로서 산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멋에 취해, 아니 그런 게 당최 뭐가 멋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만한 일을 하나 선택해 이게 내 꿈이라 믿고 젠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았다. 담임교사는 자기가 맡은 학생과 면담을 하며 자꾸 꿈을 강조한다. 학생은 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이 딱히 문제아인 것도 아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학생은 그저 하급 공무원이 되어 퇴근하면 맥주나 한 캔하고 쉬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꿈을 꿔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주입된 사고방식 아닌가. 꿈을 갖고 노력하는 삶을 비하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모두가 야심 찬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닌가, 그런 생각. 사실 영화 속 학생도 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큰 욕심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것이 꿈일 뿐. 그런 건 꿈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사실 코미디다. 사실 요즘 나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들이 든다.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건 사실 없다는 것. 그러나 인생이 지루해서, 이렇게라도 꿈이라는 최면을 걸어놓고 살지 않으면 나태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완전히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생은……, 인생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내뱉는 것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인생은 매번 넘고 넘어야 하는 산들뿐이라 다소 지쳐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역시 요즘은 그 부질없음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태껏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사실은 없어서일지도. 아니, 다시 바꿔 생각해보면 어쩌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서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고, 가능 범위에 있는 것들은 사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기 때문일지도. 너무 비관적인 생각으로 들리려나. 그러나 사실 꿈은 삶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지금 주어진 삶이다. 꿈이 있는 삶과 없는 삶, 둘 중 무엇이 더 위대한가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미래를 보며 사는 것이라서 현실을 지나가기가 어쩌면 수월할 것이며 그 자체가 기쁨일 테고, 꿈이 없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 현실에 큰 불만이 없으므로 지금에 만족하고 집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둘 다 삶의 비중을 미래에 놓느냐, 현재에 놓느냐의 차이일 거다. 꿈이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삶이다.
책의 형태
주말 특집, 책의 형태입니다. 책이 책으로서 형태를 갖게 된 이유가 5가지라는 놀라운 트윗을 봤는데(참조 1) 매우 그럴 듯 합니다? 우선 이 다섯 가지는 (1) 치즈, (2) 달팽이(고둥), (3) 예수, (4) 속옷, (5) 안경이다. 치즈는 이해하기 쉽다. 소와 양의 경우, 치즈를 만들어내는 암컷의 가치가 훨씬 높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목초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수컷 소와 양을 도살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럼 도살당한 어린 수컷 소와 양의 가죽을 어디에 썼느냐, 종이로 썼다. 하지만 소와 양의 체형이 평평하지 않듯, 그들의 가죽 또한 평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종이 묶음의 앞과 뒤를 단단한 나무 판자로 눌렀다. 그것이 바로 하드백 책이다. 고둥은 페니키아 문명과 관련이 있다. 당시 페니키아는 경제적 이유로 지중해를 모두 휩쓸고 다녔는데, 그 경제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고둥이었다. 염색용 염료로 고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페니키아 보라색이 고등으로부터 나왔는데,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페니키아 알파벳이 널리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즉, 현대적인 알파벳의 탄생이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겠다. 알파벳이 있다고 하여 책이 나오는 것과 무슨 관계가? 너무 유럽 문명 중심적인 것이 아니냐 할 수 있을 텐데, 아시아의 경우 활자 인쇄술을 유럽보다 훨씬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한자라는 글자 시스템 자체 때문에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쇄 비용이 높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일이다. 그만큼 “대량생산”이 어려웠다는 뜻이다. 한지(韓紙)만 생각해도 그거 만들기 힘들어서, 책은 일상적으로 꽤 고가품이었다. 바로 위에서 대량생산을 언급했다. 대량생산에는 역시 종교지. 성경을 찍어내야 하는데, 초기 기독교를 퍼뜨리던 AD 2-3세기 경, 코덱스(Codex)가 만들어집니다. 종이를 묶어서 책의 형태로 만든 것인데, 그 전에는 그냥 두루마리로 쓰고 읽고 했었다. 한 가지 가정을 하자면, “예수를 믿쑵니꽈?”할 때 한 손으로 코덱스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공을 휘젓고 해야 간지가 나지 않을까? 속옷도 좀 이상할 수 있을 텐데, 반복해서 말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착안한 종이 기술(개중에는 한지가 으뜸이어라)이 (아랍을 통해 전달되어) 유럽에도 있기는 있었다. 비싸서 탈이지. 게다가 종이를 만들 수 있을 펄프 원료가 부족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쓰였던 것은 위의 가죽도 있지만 제일 많이 쓰던 것이 헝겊이었다. 나무 펄프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이뤄지는 19세기 전까지의 종이는 대개 색깔이 없는 아마와 마, 면이다. 색깔이 없는 옷감은? 바로 속옷입니다. 또한 14세기에 물레가 나오면서 섬유를 다루는 비용이 대폭 떨어진다. 따라서 14세기부터 책에 쓰일 종이가 대폭 늘어났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15세기, 16세기로 흐르면서 활자의 발명과 인쇄술, 종교개혁으로 인한 수요 폭증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안경은 도대체 왜? 할 수 있겠다. 당시 책의 주된 수요층이 안정된 수입이 있는 40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노안 때문에 대체로 안경이 필요한 이들 40대 이상 연령층이 없었다면 구텐베르크나 마르틴 루터도 훨씬 독자층이 얇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가, 현재 형태의 책을 이루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뭔가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책을 볼 때는 햄앤치즈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봐야 할 것이다. ---------- 참조 1. 짤방도 여기서 가져왔다. https://twitter.com/incunabula/status/1434803410902167552 2. 원래 트윗의 글타래에서도 지적되듯 한글의 존재는 서구권 문헌학자들에게도 꽤나 신비로운 존재인 것 같다. 가령 한글은 알파벳의 일종인가? 조선 시대 당시 한글이 어느 정도나 쓰였는가? 어째서 조선은 금속활자를 갖고서도 계속 목판인쇄를 했는가? 등등을 자기들끼리 키배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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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제의 일기. 어제 일기를 차마 못 썼던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잠들어버려서다. (나 많이 뻔뻔해졌네.) 그래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일기를 써야 돼, 써야 돼, 써야 되는데, 하다가 그렇게 됐다. 당연히 변명의 여지는 없다. 조카네 학교에서는 확진자가 나와 비상이 걸렸고, 그래서 이번 명절은 나 혼자만 본가에 가기로 했다. 반쪽짜리 연휴가 될 듯하다. 사실 나도 눈도장만 찍고 바로 집에 오고 싶기는 하다. 정작 집에 있을 때는 나태에 찌들어 있음에도 해야 할 것은 늘 많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추석 특선을 이제 매년 내놓을 생각인지 작년 추석 때쯤 했던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어 올해는 <오징어 게임>이 올라왔는데, 정말 기대 중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감독과 출연 배우에 비해 참 먹을 것 없는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잔치였다. 좋게 말하면 재미 빼고는 다 있었던. 이번 <오징어 게임>은 개인적으로 아주 기대해온 작품이다. 역시 감독과 배우들이 탄탄하다. 특히나 배우 이정재의 격렬한 팬으로서 기대하는 바가 아주 크다. 오늘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들을 몇 개 읽었고, 첫 창작집으로서의, 또 자전적인 부분으로서만이 의의가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크게 흥미롭지 않다. 다만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면 다자이 오사무는 확실히 시적인 데가 있다. 둘 중 누가 더 훌륭하다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소설가에게는 소설가다운 것을 가장 요구한다. 이틀 치의 일기를 써야 해서 사실 작년에 빙글에 올렸던 생소 프로젝트 단편소설 <낮잠>에 대한 복기라도 해볼까 했지만, 또 내가 쓴 소설의 복기를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시일이 많이 지나서 그 소설을 기억할 만한 이가 있을까. 아무도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할 소설의 복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일기는 적어도 거울 속에 비친 독자, 그러니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 언젠가는 의욕이 생기면 해볼 마음은 있다. 어쩌면 거울 속의 비친 것이 나뿐만이 아닐 수도. 너무 모호한 말인가.
파리일기_오르세 미술관과 어느 죽음
https://youtu.be/u0-EDTpdlDY 9월 6일, 파리는 며칠 째 청명한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여름답지 않은 쌀쌀한 밤기운에 솜이불 속으로 피난을 가 야 한 해가 벌써 끝이 난 것 같다 하며 아쉬워하던 내담을 엿들었는지 구름을 힘껏 닦아 낸 하늘을 보니 아직 태양이 꾀나 우리 이마 가까이에 있었고 그 덕에 습관처럼 챙긴 청자켓은 하루 종일 짐이 되었다. 어제는 눈이 멀듯한 오후의 햇살 속에서 고다르의 영화 속에서 미셀이 총을 맞고 쓰러진 거리들을 걸었는데 오늘 벨몽도가 타계했다는 비보가 라디오에서 끝없이 흘러나왔다. 영화 속에서 미셀은 이유도 없이 자기 삶을 구겨 불쏘시개로 만들곤 태연하게 그것으로 불을 붙여 담배를 피곤했는데 벨몽도는 수십 편이 넘는 영화와 많은 무대에도 오르고 은발의 머리로 헬기에 매달리는 장면을 직접 연기할 만큼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미셀은 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진 후 자신을 내려다보는 경찰들과 패트리샤 바라보며 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감겨버렸는데 벨몽도의 마지막은 어떠했을지. 자연은 시간에 떠내려간다. 이미지만이 냇가의 돌처럼 버티고 앉아 철철 하는 물소리를 낸다. 소리를 듣고 냇가를 찾은 이는 돌을 건드려 무게를 가늠해보고 모양을 재고 금세 비웃고 제멋대로 시간 위에 돌을 놓아보다가 마침내 자리 잡은 제 미약한 돌이 못 붙잡는 끝없이 성실한 시간에 압도되고 만다. 뭘 하는 거지. 낡은 공방에 가득 그림을 채워도 공허만은 지워지지 않아 화가들의 그림에는 왠지 모르는 쓸쓸함이 늘 담겨 있다. 육신을 썩지 않게 한다면 시간에 둑을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시체의 속을 비워내 육신을 미라로 만들었고 사람의 데스마스크를 뜨고 돌을 깎아 시체를 두 발로 다시 서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순간 그 찰나를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들렸고 과학의 힘을 빌려 이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들까지도 (우리도 모르게) 방부처리를 하게 되었다. 남겨진 것들은 구글도 감당을 못할 만큼 넘치고 넘치지만 언젠가부터 그것들은 더 이상 어떠한 물소리도 내지 못한다. 흘러가는 것에도 버티는 것에도 나는 이제 감각이 희미하다.  9월 5일,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무료로 개방되기 때문에 오전부터 서둘러 오르세 미술관을 찾았다. 점심시간에 예약을 한 것이 주효해서 별다른 대기 없이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실내에는 더 부지런한 이들이 이미 가득했다. 사람들이 많은 미술관은 그림을 보기보다는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을 보는 곳이 된다. 나는 그것을 나름대로 즐긴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이밀고 싶어 하는 유명한 그림들. 감격하는 사람들과 시니컬한 표정으로 그것과 그들을 스쳐가는 사람들. 자기 취향을 광고하듯 남이 지나치는 그림 앞에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 지나 서다 돌아와 그 자리에 다시 서보는 사람들. 파리의 미술관에서 그림만을 온전히 감상하기란 그 어떤 요일 그 어떤 시간대에라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는 남긴 사람과 들린 사람의 욕망이 제멋대로 가득 드러나 있기에 나는 그곳들이 늘 즐겁다.  미술관을 나와 하얀 먼지가 일렁이는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센강의 유람선에 가득한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했고 우리도 그들을 좋은 그림처럼 느꼈다. 파리는 더 이상 외부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표정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2021년 9월 6일 벨몽도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가 아니었다면 좀처럼 부유하는 좌표를 알 수 없는 가을 속의 여름이었고 팬더믹 속에 오아시스였다. 9월 7일, 사관학교에 들어간 지 20년 만에 대학 시절 마지막 학기의 수강신청을 한 지 13년 만에 다시 수강신청을 했다. 30학점. 프랑스어는 좀처럼 늘지 않지만 당장 다음 주부터 강의실에 앉아 당황한 얼굴이라도 짓고 있어야 한다.  돌고 돌아 당신이 씻어준 복숭아를 그리고 돌고 돌아 두 걸음 앞서 걷는 당신을 찍는다. 몇 년을 술래 잡던 의미는 결국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스러지고 온통 마음이 다구나 씁쓸한 단맛을 느낀다. 내 첫 영화 본 어떤 이는 그 덕에 자신이 영화를 통해서 뭘 하고 싶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했는데 나는 그만 그게 부끄러워 말을 자꾸 배우러 다닌다. 파리에 온 지 2년. 나는 다시 물소리를 낼 수 있을까. 돌을 고를 때 돌을 쥐고 첨벙 걸을 때 돌을 놓을 때 무엇보다 내게 마음이 있어야지. 아무렴. W, P. 레오 2021.09.10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