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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만둘뻔한 위기 넘긴 성악가
팬텀싱어 올스타전에서 각 팀의 한 명이 대표로 나오는 솔로전에 라포엠의 대표로 나온 성악가 최성훈이 노래를 끝내고 나서 토크 타임에 힘들었던 시절 얘기를 꺼냈음 mc 전현무: 이 노래가 본인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의미가 있는 노래라고 해요? 최성훈: 이 곡을 들으면 되게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나더라고요 멤버들 이외에는 한번도 말한적 없었던 거긴 한데 제가 유학을 떠나기전에 엄청 큰 수술을 한번 받았던 적이 있어요 수술을 하고 그 이후에 제가 노래를 못하는 상황이 오니까 노래하는 인생인데 노래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않고 숨을 쉬고 싶어도 쉽게 쉬어지지 않는 그런 힘든 상황들이 온 적 있었거든요 (원곡의) 사랑도 제 음악의 삶도 제가 잡고 싶다고 해서 잡아지지 않고 또 내려놓을때는 다가오기도 하고 이렇다는걸 제가 (노래에) 빗대어 표현해 봤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꼭 이 노래는 무대에서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멤버들이 이렇게 기회를 줘서 부르게 됐습니다 이 방송후에 최성훈은 브이라이브 방송에서 자기가 어렸을때부터 폐랑 기관지가 약했는데 대학교 4학년쯤에 폐절제술을 받았다며 지금도 가끔 컨디션 안 좋을때는 수술한 부위가 신경 쓰이긴 해도 이제 괜찮다고 얘기했음 그리고 1년 뒤에 독창회 기념 인터뷰에서도 언급함 폐절제술 받으면 아무래도 폐활량이 기존보다 떨어져서 노래하기 힘들텐데 성악 포기안한게 대단한것 같음 https://youtu.be/m92lZQcoehQ 끝으로 최성훈이 위 방송에서 부른 노래 영상으로 글 마침 출처 폐절제술이라니.. 고생하셨네...
왠지 뭉클해지는 역사의 한 순간들 #3
광복절이네요. 대한독립만세! 외치고 시작합니다. #36 1917년 전기 충전 자동차 #37 히로시마 원폭 진원지에서 1,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망한 3세 소년의 세발자전거, 1945 #38 1968년 경마장에서 영국 여왕과 남편 #39 부모와 함께 있는 2살짜리 엘비스 프레슬리, 1937 #40 1945년 5월 베를린 전투 중 베를린의 폐허를 걷는 여성 #41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균형을 잡는 곡예사, 1934 #42 탈락된 에펠탑 디자인들 #43 1945년 12월 21일 주인이 죽은 날 조지 S. 패튼 장군의 애완견 #44 1983년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자신을 암살하려 한 남자 메흐메트 아그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45 1910년, 미국에서는 아이를 소포로 부치려는 부모들이 많았다. 1913년에 도입됨 사진은 오하이오의 Jesse와 Mathilda의 8개월 된 아들 James. 제임스는 소포를 통해 할머니에게 보내졌다. 철도 티켓보다 저렴한 15c만 들이면 됐던 것. 보험은 50달러였다. 그리고 1920년부터 우체국은 더이상 어린이를 배달하지 않기로 했다. #46 1948년 "어린이 4명 팝니다." 1948년 8월 5일 인디애나 주 발파라이소의 The Vidette-Messenger에 실린 사진. 임신한 엄마가 아이들을 팔려고 내놓은 후 부끄러워 사진 작가에게 얼굴을 숨길 때 아이들은 포즈를 취하며 약간 혼란스러워 보인다. "시카고의 어느 집 마당에 있는 커다란 'For Sale' 표지판은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Ray Chalifoux 부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댈 곳이 없는 무직 석탄 트럭 운전사와 그의 아내는 네 자녀를 팔기로 결정합니다. Lucille Chalifoux 부인은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동안 카메라 위에서 고개를 돌립니다. 맨 위 계단에는 Lana(6세)와 Rae(5세)가 있습니다. 아래에는 Milton(4세)과 Sue Ellen(2세)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돈을 받았다고 비난했으며, 이는 이야기의 일부였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자녀를 파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년 만에 모든 어린이 사진과 당시 그녀가 안고 있던 아기가 다른 집에 팔렸습니다." #47 Moko 얼굴 문신이 있는 미라 머리(Mokomokai) 미라를 만들기 위해 뇌와 눈을 제거하고 두개골의 모든 구멍을 아마 섬유와 잇몸으로 막았다. 그런 다음 머리를 오븐에서 찐 후 불에 태우고 며칠 동안 햇볕에 둔다. 그 후 머리는 상어 오일로 수분을 공급한다. - 마오리 문화 - #48 런던의 '노커 업'(1929). 알람 시계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막대기로 문과 창문을 두드려 클라이언트를 깨움으로써 돈을 벌었다. #49 1900년대 뉴욕시. (컬러링) #50 1936년에 만들어진 보조개 만드는 기계 (출처) 그러니까 이건 광복절 특집 시리즈였습니다. 전쟁 그만.
8.15 광복 당시 사진들.jpg
일왕 히로히토가 8월15일 정오 라디오를 통해 미영중소 연합군에게 항복을 발표하자 광화문 사거리에 나와서 환호하는 서울시민들 뒤에 태극기가 펄럭이고있다 광복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옥된 독립투사들과 함께 환호하는 서울시민들 (1945년 8월 15일) 조국 해방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의 인파 (1945년 8월 15일) 여담으로는 광복소식이 들려옴과 동시에 어떤 정체불명의 사내가 서울역에 소련군이 도착했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렸고 이 허위사실(?)에 속은 많은 서울시민들이 정말 소련군이 서울역에 나타났는지 확인하기위해 서울역으로 시민들이 매어졌다고 물론 이는 말도안되는 거짓말이였다 플랜카드를 들고 광복을 기뻐하는 학생들  서울 남산에 태극기를 계양하고있는 가슴 벅찬 순간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전남 광양 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군민들. (1945년 8월15일) 전남 광주에서의 8.15해방 경축 퍼레이드. 광복직후 중경에서 귀국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전에 사진을 찍는 백범 김구 선생 임시 정부 귀국 환영 꽃전차. 임시정부의 귀국을 환영하는 시가행진 조국으로 돌아온 임정요인들 - 왼쪽 세번째가 법무위원이었던 이시영,  다음이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 외무부장 조소앙, 내무부장 미군에 의해 내려지는 조선 총독부 광장의 일장기 (1945년 9월 9일) 미군이 보는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있는 아베 노부유키 조선 총독 (1945년 9월9일) 항복서명 직후 서울을 떠나는 일본군, 아직 무장해제되지 않은 상태이다 (1945년 9월 9일)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하는 한반도 주둔 일본군들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되는 일본군2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되는 일본군3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하는 일본군들4  마을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고있다 해방후 국민학교 첫개교 - 해방 약 한달 뒤인 1945년 9월24일 전국에서 국민학교 교육이 일제히 시작되어 빼앗겼던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는 감격을 맛보았다. 사진은 첫수업 해방 직후의 시골 국민학교 교실 - 진흙 화로 둘레에 배치한 간이 책상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진지한 얼굴로 되찾은 우리 글을 익히고 있다. 사진은 강원도의 한 산골. 해방경축 종합경기대회 - 1945년 10월27일에 열린 이 대회는 해방후의 첫 전국체전으로 태극기를 든 손기정씨가 감격에 벅차 눈물을 닦고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