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ot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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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과나후아토에서 발견된 미라의 진실 (미라사진 주의)


죽어서까지 편안하질 못하네...
저 사진 유머짤로 쓰이는거 봤는데 저런 사연이 있었다니
묻어조라 그냥 ㅠ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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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한다고 저걸 전시까지하냐‥ 위령제라도 지내주고 균때문이라도 화장해주는게 도리인것같다.
전시품에 대해선....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 생활사 및 역사들에 대해 기억하게 만드는 매체로 볼 수 도 있습니다 고인모독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오히려 저들을 기억할 수 있기도 하고요.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죠 무작정 잘못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을것 같네요. 정말 안타까운 역사들이 많죠 현실에도 일어나고 있고 그런경험이 있거나 알고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고 모르는 사람들은 음모론자들이라고 칭하고... 정말 세계에는 많은 상식불가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다 밝혀지길 바랍니다.
입으로 자꾸 시선이 가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죽어서도 편치 못하네😩😢😰
살아있는사람을..ㅠㅠ 숨이 끊어질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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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약혐) 카레국 미스테리의 '해골호수'
히말라야 산맥 해발 5000m정도 중턱에 가보면 '루프쿤드'라는 이름의 호수가 갑자기 나타남 짤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큰 호수는 아님 깊이도 3m 정도 밖에 안 되고 일 년 중에 한 달 정도 빼곤 내내 얼어붙어있음 존나 별볼일없는 연못 같은데 해골호수라는 좀 섬뜩한 별명으로 유명하다 저 좆만한 호수 바닥이 전부 해골로 덮여있거든 저만한 크기에 500명이 넘는 해골들이 깔려있으니 진짜 말 그대로 해골호수임 묻혀있는 해골들은 수백년이나 된 것들이지만 호수가 평소에 얼어붙어있기 때문에 1940년대가 될 때까진 아무도 몰랐음 추운 곳인 덕분인지 발견된 것들 중엔 아직도 살점이 남아있는 뼈도 꽤 있었다고 해골로 가득한 호수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꽤 섬뜩한데 지리적 위치까지 생각하면 뭔가 존나 이상함 땅바닥에 있어도 이상한데 해발 5000m 까마득한 산중턱 호수에 왜 수백명이 해골바가지 신세로 퐁당했을까 인도 침공했다 얼어죽은 일본군이란 추측도 있었지만 여자나 어린애도 많이 섞여있어서 그건 또 아닌거 같고 갈팡질팡하다 이 지역 전설에서 우박에 맞아죽었다는 순례단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유력해졌음. 실제로 시신들 상당수 대갈빡에 존나 큰 둥근 물체에 맞아서 빠개진 자국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게 정설이 되기도 했음. 연도도 850년 정도라 전설이랑 대충 일치했고 근데 또 최근 연구는 이야기를 더 섬뜩하게 만든다 40명 정도 골라서 방사성 탄소 연대로 측정해보니 전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850년 경의 순례단일수가 없는 거임 그것보다 훨씬 최근인 1700년대의 시신들이었고, 거기다 순례단이면 대부분 인도 사람이어야 했는데 지중해 쪽에서 온 유럽인도 섞여있고 심지어 동남아인까지 섞여있던 거임. 그러니까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외국인들인거지 거기다 뼈들의 연대가 각자 달라서 1000년씩이나 차이나기도 했음 그러니까 저 호수 바닥에는 수천년 동안 세계 각지의 시체들이 차곡차곡 모여들여 쌓였던 거임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수천년동안 각자 다른 시기의 각자 다른 인종들이 히말라야 중턱의 얼음호수에 모여들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출처) 덜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수천년간 각자 다른 시기의 다른 인종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해발 5000미터의 히말라야 얼음호수에서 죽다니!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흑화하면 생기는 일: [괴벨스의 삶]
-몸이 약한데다 만곡족(발바닥이 안으로 심하게 굽은)이라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던 소년 괴벨스는 제대로 걷지 못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이 때문에 2층 다락방에 혼자 틀어박혀 울곤 했다.  -수술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평생 보조구를 착용하고 살아야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부모님도 가슴아파 했다. 당시 독일 사회는 장애를 '신의 형벌'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괴벨스의 부모님도 그의 장애를 불의의 사고 탓에 그렇게 되었다며 둘러대고 다녀야 했다. -괴벨스의 같은 반 학생들은 체격이 작고 장애를 가진 소년 괴벨스를 늘 업신여겼고, 괴벨스가 같은 반 여학생에게 쓴 연애편지를 빼앗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절름발이라고 놀려댔다.  -괴벨스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 했고, 자기를 이렇게 만든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조롱당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증오해야 하는가? - 괴벨스의 일기 中 -유일한 재미는 책이었다. 괴벨스는 골방에 틀어박혀 도스토예프스키, 신비주의, 종교적인 러시아 사회주의 성향의 책을 읽어댔고 이 때문에 몽상가 소년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모든 소설이 타락한 사회를 비난하고, 세상을 구원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는 내용이었다. -신체적인 열등감을 학교 성적으로 커버하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괴벨스의 부모는 빠듯한 살림에도 중고 피아노까지 사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괴벨스를 격려했다. -그의 학창시절 꿈은 신부였다. 괴벨스의 부모님 역시 그가 장애를 딛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아들이 신부가 되는 길을 적극 장려했다. -괴벨스의 집안은 유대인을 싫어하지 않았고, 유대인과의 왕래도 잦았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데 왜 멸시받아야 하는 것이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도 유대인이야. 그와 학구적인 토론을 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는 걸 수긍하게 돼. 좋은 사람이지. 정치에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은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잖아?  - 청년시절 괴벨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 中 -괴벨스는 역사수업, 특히 전쟁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특히 알렉산더, 마케도니아 대왕과 같은  '영웅'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조국과 민족, 신앙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16세의 괴벨스는 이 지옥같은 세상을 전쟁이 해결해줄 수 있고, 처자식과 조국을 위헤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다리 장애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나고 조롱당하기만 했다. -청년 괴벨스는 감성이 대단히 예민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기분 나쁜 정도의 일이 터져도 괴벨스는 처절하게 절망하였다.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옷과 손목시계를 팔아야 했다. 차비가 없어 집에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돈의 노예가 되는 상황을 씁쓸하게 생각했다. -언제나 돈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은 나를 매우 괴롭게 만든다.  - 괴벨스의 일기 中 -졸업 이후 뛰어난 논문 실력과 학위로 박사가 되었으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박사 이름으로 과외를 하거나 언론사에 가끔 기고나 논문을 올리면서 푼돈을 받는게 전부였다. 몇 푼 받아봤자 당시 독일의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받으나마나 였다. 그는 또다시 현실의 무력함을 느꼈다. -이윽고 청년 괴벨스는 오랫동안 교제 중이었던 유대인 여자친구에게 청혼했지만, 그녀는 괴벨스의 장애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괴벨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자존심이 강한 괴벨스는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괴벨스와 헤어지고 '돈 많고 몸이 멀쩡한' 사내와 결혼한다. 이 때문에 괴벨스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방황하던 그는 유대인 은행에 입사하고자 했으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어렵게 들어간 또다른 유대계 은행에는 직원들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투기와 사기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괴벨스가 결혼까지 생각하고 진심으로 따랐던 유대인 여자친구 엘제 얀케가 자신을 버리고 돈많고 사지가 멀쩡한 남성과 결혼한 것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낳는 데 한몫했다.  -완전히 이사를 하고 나서 개를 한 마리 구했는데,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개를 사랑하게 된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괴벨스는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하지만 독일의 제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경제 대공황은 계속 되었으며 모든 국가의 금액을 배상금으로 퉁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결국 실업자들만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아끼던 여동생마저 사고로 죽었으며, 같은 독일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자신을 멸시했으며,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불법 행위로 인해 그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앓았던 우울증은 청년이 되었을때 더더욱 극에 달해버렸고, 하루에도 수십번 씩 자살 생각이 들었다. 주변인에게 늘 '자살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 나는 고독해야 하고 고독할 것이다. 이 비참한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쓰레기들!  - 괴벨스의 일기 中 -스튜어트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를 읽고 또 다시 유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고귀한 독일 인종이 물질주의 때문에 타락했고, 그 원인은 유대인이다. 독일 민족을 유대인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체임벌린 주장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독일의 가장 큰 적은 증권 자본주의고, 그 증권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유대인'이라고 믿었다. 괴벨스역시 경제 대공황으로 실업자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모두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30대로 접어들면서 고민이 생기면 모조리 민족 문제와 연관 시켰다. 이제 완전히 민족주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독일을 깊이 사랑하고 애국심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결국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나날이 심해졌다. 1929년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유대인 귀신들이 자신을 뒤쫓아 오는 악몽을 꾸었다. -괴벨스가 보기에 사기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독일 민족의 유일한 구원자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히틀러에게 고개 숙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히틀러를 만난 뒤로 반종교주의자로 돌아선다.  -히틀러 덕에 출세하여 장관이 되자, 어릴 적 자신을 '절름발이'라며 무시하던 고향 사람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심해졌다. 괴벨스는 그것을 두고 '구역질이 난다'고 표현했다. -이후 그는 대저택, 커다란 배, 고급 승용차를 모조리 사들였고, 여자를 실컷 만나며 청년 시절의 한풀이를 했다. 절망과 고독에 몸부림 치면서 엉망진창인 세상을 향해 부논하던 괴벨스에게 히틀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세주였다. -처음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 몰살이 일생의 목표였던 괴벨스는 히틀러를 열심히 졸라댔고, 결국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모두 압류되었고 시민권을 상실했다. 나치는 자(제도기)를 사용해 유대인을 감별해냈다. -실제로 학살 집행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대인 대학살 계획에 있어서 괴벨스 장관이 가장 적극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괴벨스는 자신이 장애인이라 '낙인찍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유대인 낙인' 찍기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학살하거나 고문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못나고 열등한 모습, 늘 도태되었던 모습, 인정받지 못했던 모습을 저주했으며, 그것을 매우 증오했다.  -1938년 11월 10일.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 일당은 '인종 대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돌격대가 침대에서 유대인을 끌어내 죽였고 1939년에는 유대인을 가축 트럭에 실어 수송하기 시작했다. 1941년 베를린에서 3,5000명의 유대인을 색출해 모두 수용소로 보냈다. 노인은 따로 모아서 모두 죽였다. 그 당시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자살이었다. -자신의 장애를 잘 알고 있었던 괴벨스는 연설을 해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각오를 다졌다. - 내 스스로 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 같은 절름발이에게 먼저 떡을 갖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분노는 삶의 원동력이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그는 선전 장관으로 활약하면서 나치 웅변학교를 세워 수천명의 선동가를 양성했고, 여러 종교 단체를 진압했으며, 수도원의 성폭력 동성애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고,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대상을 오로지 한가지로 통일하였다. 바로 유대인 척결.  -현재까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용되고 있는 "뚜... 뚜... 뚜.... 삐이~"소리를 낸 뒤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가는 방식은 괴벨스가 사람들을 방송에 집중시키기 위해 최초로 개발한 방식이다.  -그는 tv와 라디오를 정치선전에 활용한 선구자이며 정치쇼의 원조, 공약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의 선구자이다. 또한 시장같은 장소에서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전하는 행위의 창시자이다. 괴벨스 덕분에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전 세계 최초로 정기적으로 tv방송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괴벨스는 히틀러 앞에서 어린애였다. 히틀러는 괴벨스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내고 생일 잔치도 베풀어주면서 계산된 총애를 했다.  -히틀러가 보기에 괴벨스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불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며, 당시 강력했던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만한 사고방식도 겸비하고 있는 인재였다. 괴벨스는 나치 당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뛰어난 인텔리였다.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아부했다. 히틀러 역시 괴벨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시대의 난관과 결핍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미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거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숭배했다. -괴벨스는 전쟁이 불리해질 수록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과 싸워야 한다는 망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유대인 학살이 서양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괴벨스는 자신과 제국이 위기에 빠져 들수록 히틀러에게 더욱 의존했다. 1945년 나치 제국이 완전히 패망하고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는 역시 그를 뒤따라가겠다고 하며 처자식과 함께 음독 자살을 했다. -총통이 없으면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살아남아서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그래, 모두 데리고 가련다. - 1945년 괴벨스의 마지막 일기 中 출처
삶이라는 아이러니.jpg
어린시절의 친구였던 두 사람은 시위대와 경찰로 다시 만나게 된다 괴벨스의 결혼식과 해방 후 부셴발트 수용소에서 발견된 수천개의 반지들 베트남전쟁에서 네이팜탄 투하를 지켜보는 군인과 네이팜탄을 피해 도망가는 어린아이들 1945년, 패전 소식을 듣는 독일군과 수용소행 열차에서 해방된 유태인들 911테러의 사상자는 삼천명에 달하고, 그 중 이백명 가량은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한다. 참사 10주년 기념관을 맞아 개관한 기념관에서 오열하는 로버트 페라사. 이 사람의 아들은 사건 당시 북측 타워 104층에 머물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장례식장, 8살의 크리스찬 골츠니스키.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군의관 테리 구롤라와 딸의 재회. 1942년, 네덜란드의 은신처에서 밖을 내다보는 안네 프랑크 종전 후 은신처였던 네덜란드의 다락방으로 돌아온 오토 프랑크. <안네의 일기>를 쓴 딸 아넬리스를 비롯한 은신처 식구들은 모두 죽었고, 오토 프랑크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브룩클린의 레스토랑에서 암살된 마피아 보스 조 마세리아. 죽는 순간 그가 쥐고 있었던 스페이드 에이스의 의미는 힘, 그리고 죽음. 출항을 기다리는 타이타닉 호, 그리고... 순서대로 고베 폭격/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그리고 일왕의 패전선언이 있었고 이 사진은 일본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맥아더 장군 1985년 스웨덴, 집회중인 네오나치의 머리를 핸드백으로 가격하는 다누타 다니엘손. 폴란드계 유태인이고 이 사람의 어머니가 아우슈비츠 생존자라고. 다니엘손은 지병이었던 정신적 문제로 결국 자살하고 말았고, 다니엘손이 때린 네오나치남 Seppo Seluska는.. 같은해 유태인 동성애자를 고문하고 살해해서 수감됨..... 1996년, KKK 반대 시위 도중 백인우월주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을 시위대가 폭행하기 시작했고, 시위 참여자인 케샤 토마스가 그를 온 몸으로 감싸 보호했다. 이 사진으로 케샤 토마스 역시 인종운동의 아이콘이 되었음. 출처
펌) 마지막 흉가 체험
지난 주말까지는 한여름처럼 더웠는데 갑자기 가을이 된 것 같군요.... 거 날씨가 정말... 근데 전 여름도 좋지만 서늘한 가을에 읽는 괴담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후후.... 공포 소설, 괴담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닉넴 태그를 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하나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0년 전의 일이야. 그 후 군대도 다녀오고 직장생활도 하고, 마누리와 분유값 마련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생활에 치여 살았지만, 아직도 그 날의 일은 잊지 못해. 뺏속까지 새겨진 그 날의 공포. 대학생 시절, 나는 모 흉가 체험 카페의 회원이었어. 중학생 시절부터 오컬트 호러 영화를 즐겨 본 나는 직접 공포체험을 하길 원했고, 그런 나에게 흉가 체험 카페는 안성맞춤이었지. 카페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2년 동안 여러 흉가를 섭렵하여, 카페 내에서 영향력있는 회원이 되어 있었어. 어느 날 정모 자리에서 카페지기가 시골의 한 폐교에 가자고 사람들을 부추겼다. 그 폐교에서 여러 명의 사망자(주로 부랑자나 불량 청소년들)가 나왔고, 마을 사람들이 폐교 창문에서 시퍼런 불빛을 자주 목격했다고 했어. 사실 나름 유명해진 면도 있어서 그 폐교에 지방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다녀간 적도 있고, 우리 카페 말고도 이웃카페들도 몇 차례 다녀간 적이 있는 곳이었어. 카페지기는 이 심령 스팟(귀신이 나오는 장소)을 가지 않은 것은 우리 카페의 수치라면서 많이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지.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언제나 OK였어. 곧 부운영자가 될 몸이기도 했었고. 출발 당일날, 무언가 심각성을 느꼈는지 카페지기는 가끔 우리 모임에 참석한 적 있는 K 법사를 데리고 왔다. K 법사는 많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그동안 자주 부르지 못했던 퇴마사였다. 물론 우리 회비 부담이 늘어났음은 말할 것도 없었어. 그만큼 이 흉가 체험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이었지. 두메산골을 넘고 넘어 겨우 폐교에 도착했어. 폐교 앞 운동장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데, 갑자기 마을 사람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어. "당신들도 흉가 체험 하러 온 사람들이야?" "그런데요." "제 정신이야? 어여들 집에 돌아가. 구신 옮으면 어쩌려고 그려?" "에이, 저희가 한두 번 이런 일 하나요. 여기 신통력이 뛰어난 법사님도 계시고." "귀신을 정말 볼 수는 있나요? 흉가체험을 수십 번을 했지만 별 일은 없어서." 그 마을 사람은 여러 차례 우리를 설득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자 이 말 하나만을 남기고 떠났어. "육이오 때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신이 그 분교 밑에 묻혀 있어. 살고 싶으면 어서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거야. 거기서 자다가 죽어나간 목숨이 얼만 줄 알아?" 사실 그 말을 듣고도 별 걱정은 안 됐어. 별일이야 있겠는가. 아니 없었으면 좋겠다..... 날이 저물자 우리는 세 개 조로 나눠 흉가를 둘러보기로 했어. 처음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지만, 점점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꼈지. 무거운 물체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 법사의 표정도 좋지 않았어. 그는 여기에 영혼들이 많이 있다면서, 매우 불길하다고 했다. 자꾸 주문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던 법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옆 교실의 교탁을 가리켰어. 거기 귀신이 있다고. 손전등을 비추었을 때 푸른 기운이 재빨리 흩어지는 것을 보았어. 귀신이었다. 생전 처음 귀신을 본 것이다. 흉가 탐사 초보인 한 여학생이 비명을 터뜨렸어. 패닉 상태에 빠져 있어서 일단 그 애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빠져나왔지. 비명소리를 듣자 카페지기를 비롯해서 다른 조원들도 부리나케 달려왔어.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도 심령체험을 한 듯했어. 법사가 말을 이었지. "말 그대로야. 육이오때 죽은 원혼들이 있어. 자신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면서, 이 원수를 갚아 달라면서, 자꾸 울면서 애원을 해. 좋지 않은 곳이야." 카페지기가 물었어. "법사님, 힘드신 건 알지만 위령제라도 지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런 일에 대비해서 제물들도 가져왔으니, 아무래도 제를 행해서 저들을 승천시키죠." 법사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한시간 정도 위령제를 지냈던 것 같아. 우리는 법사가 시키는 대로 절을 하고, 법사는 제물 앞에서 굿 비슷한 것을 하고. 법사가 가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가슴을 쾅쾅 치더라. 어느덧 위령제도 끝나고 법사는 이제 안심해도 된다면서 영혼들이 다 떠났대. 그는 몹시 피곤했는지 차에 들어가서 누웠어. 카페지기는 우리에게 한번만 더 학교를 돌아보자고 했어. 다들 거부했지만 오래된 회원 몇 명이 자원을 했어. 나는 자원자 중에서 가장 신참인 축에 속했지. 부운영자로 인정받고 싶었기에, 겁은 났지만 가 보기로 했다. 너무 무서웠지만, 푸른 기운을 보았던 그 교실에 또 가 봤어.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어. 법사가 잘 처리했는지도. 복도에 걸려 있는 사진에는 애들이 뛰노는 모습도 있었고 해년마다 치러진 운동회 사진도 있었어. 이 학교, 한때는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는 감상이 뭉클 일더라. 그런데 갑지기 뇌리에 이상한 생각이 스쳤어. 육이오 아니 한국전쟁이 1950년, 그러니까 60년전이었지? 이 학교.. 언제 개교하고 폐교했어? 카페지기에게 물어봤어. "아.. 아마 30년 전쯤? 그리고 마을 아이들이 다 도시로 나가서.. 인원 미달로 분교로 축소되고 사오년 전에 결국 폐교된 걸로 알아." 그 말을 듣고 진짜 이상했어. "형, 그렇다면 30년 동안이나 이 학교가 잘 돌아갔다는 얘긴데요.. 귀신들은 육이오 때 생겼는데.. 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해코지를 안 당하고 멀쩡했을까요? 밤에도 수위나 숙직 선생 같은 사람이 남아 있었을 텐데." 카페지기가 멋쩍은 듯 표정을 지으며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뭐, 그거야 귀신들 자유거나 누가 귀신을 막는 주술막 같은 것을 설치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때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렸어. "야! 너희들 다 나와!" 마을사람이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하나 싶어 창문 밖을 내다봤더니 법사님이었어. 다급한 얼굴로 소리지르고 있었어. 너무나 다급한 얼굴로. 그때 언뜻 달빛이 창문에 비쳤는데 그 달빛에 반사된 게... 맙소사,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거야 아주 끔찍한 괴물들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뒤에 서 있었어 그것들이 칼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어.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창문을 깨부시고 뛰어내렸어 2층 높이에서 말야. 그리고 아마도 기절했던 것 같아. 며칠 뒤 의식을 차리고 보니 어느 병원이었어. 간병을 하던 어머니는 병상 밑에서 졸고 계셨고, 법사님이 무서운 얼굴로 위에서 내려보고 있더라. 순간 멍했지만 어찌된 일이냐고 자초지종을 물었어. "죽을 뻔한 걸 겨우 살려냈다. 니 몸에 들러붙은 영들을 떼어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형들은.. 어떻게 됬나요?" "너처럼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골절된 놈도 있고, 운이 나빴는지 넋이 나가서 정신병원 간 놈도 있다." "카페지기 형은요?" "죽었다. 아니, 죽임을 당했다고 해야 하나"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어. "네?" "운이 나빴다. 그리고 내 신신당부하마. 다시는 흉가체험 같은 것 하지 마라. 나도 더 이상 이 일을 안 하겠다. 더이상 돈도 받지 않을 거고." 나는 너무 놀라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어. 나중에 법사님께 들은 얘기는 이렇더라. 그 귀신들, 육이오 때 학살당한 원혼이 아니었대. 거기서 학살당한 사람들이 있었던 건 맞지만 원혼으로 남지는 않았던 것 같더라. 아마도 학교가 세워질 때 쯤엔 이미 없었던 것 같대. 영혼들이 스스로 올라갔는지, 저승사자가 데려갔는지는 몰라. 그럼 그 놈들은 누구냐? 법사도 설명하기 참 어려워했는데. 아마도 우리 같은 흉가체험하는 사람들을 노리고 숨어 있던 부유령들일 거라더라. 귀신 탐색에 혈안이 된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놀려먹고 해코지하는 데 취미를 붙인 영혼들이 있대. 그리고 법사님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면서, 이렇게 말하셨어. "아마도 흉가에 출몰하는 영혼들의 상당수는 그 집에 사연이 있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연이 있는 존재는 이미 하늘로 올라가고, 그 존재로 위장한 잡귀들이 체험인들과 법사들을 속이면서 양기를 빨아먹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뭐, 나는 영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법사님 말이 맞는지는 몰라. 한 달 후 간신히 퇴원을 했고, 난 흉가체험 카페를 탈퇴하고 평범하게 살았지. 근데 왜 그 일이 오늘 생각났는 줄 알아? 신문기사를 보니 그 폐교에서 또 흉가체험하던 사람이 죽었어. 오랜만에 법사님 사진과 인터뷰도 실렸어. 10년 전 죽은 카페지기 형의 영혼이 재미로 흉가체험인들을 도살하고 있다고. 출처 : 덕밍아웃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bullgul01 @molumolu @steven0902 @dodu66 @bydlekd @mandarin0713 @rareram3 @coroconavo @zlem777 @eggram @dhrl5258 @psycokim8989 @newt207 @sunmommy2 @WindyBlue @lucy1116 @greentea6905 @lkb606403 @jiwonjeong123 @hyun81082988 지기형 왜이러세요..... 폐교 운영자됐냐고요.... 형 왜 맘대로 흉가가서 죽어놓고 왜 또 다른 사람들을 죽이십니까..
한반도 황금의 도시 미스테리 고대국가 <조문국>이야기
(예시 사진 관련 없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한반도엔 금의 나라, 조문국이란 고대 국가가 있었음 무려 기원전 7세기 김학여왕이 개국한 모계중심의 국가였음 어찌나 땅의 터를 잘 잡았는지 곡창지대와 금광까지 있어 조문국의 시대가 열리는 건 시간 문제로 보였음ㅇㅇ 그런데 오늘 날 역사서엔 단 한줄의 기록만을 남김 <서기 185년 신라 벌휴왕이 조문국을 정벌했다> -삼국사기- ???????? 대체 무슨일이...??? 때는 조문국이 멸하기(?) 1년 전인 서기 1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감 (? 붙인 반전이 아래 있음) 조문국 아래는 훗날 신라가 되는 사로국이 있었고 나날이 성장 중이었음 *사로국이지만 편의상 앞으로 신라라고 할게 (신라 제 9대 왕) 벌휴 : 야 요즘 윗쪽 동네에 조문국 꽤 잘 나가더라? 구도: 예 뭐 백제랑도 사이 좋아보이고 세력이 커져가는 듯 합니다만,, 벌휴: 안되겠다 더 커지면 곤란하니까 사신 둘 보내서 항복하라 하자 ㅇㅋ? 구도: (??) 예 그러시죠ㅋ ~조문국~ 사신: 어이~ 조문국~ 우리 신라 군사력 rg? 피본 나라가 한둘이 아냐ㅋ 좋은 말로 할때 항복해ㅋ (조문국 마지막 왕) 묘초왕: ㅋ쟤 뭐래니 죽여ㅋ 신라가 조문국을 만만히 본게 이미 조문국은 29명의 군사를 데리고 적라국을 토벌한 이력이 있었기에 군사력에 나름 자신만만했음 벌휴: 뭐라? 감히 사신들을 죽여??? 구도 불러와!!! 구도: 절 부르셨다고요? 벌휴: 야 구수혜랑 같이 가서 조문국 좀 정벌해라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쟤네 정신 못차리고 우리 사신 둘 죽였어ㅡㅡ 구도: 아 예... ~전쟁 전날 밤~ 구도: 휴 내일이면 또 전쟁을 하러 가야하는구나 김욱보 (구도 아빠) 욱보: 아들~ 안자고 뭐하니... 구도: 내일 토벌을 하러 가야해서요 산책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욱보: 벌휴의 명이로구나... 욱보: 에휴... 우리가 세력이 컸더라면 벌휴가 아니라 김씨 일가가 왕위에 올랐을 텐데... 그래 어디로 가니...? 구도: 조문국으로 갑니다 욱보: 조문국?! 욱보: 조문국이면 금의 나라 조문국?!!! 그 나라 공주와 네가 혼인을 하면 우리 김씨 일가의 세력이 커질텐데... 욱보: 마침내 우리 김씨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되고...!!! ... 욱보: 아이고 아니다... 정벌간다는 너에게 괜한 소리를 했지...? 잘다녀오거라... 구도: 예... ~전쟁중~ 자신만만했던 신라였지만 전쟁은 무려 7일이나 지속되었음 조문국은 궁터 주변으로 석성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뛰어난 군사력을 가진 신라를 대상으로 나름 선전하고 있었음 그러나 전투 끝에 왕의 목숨이 위태롭게 됨 묘초왕: 가서... 운모를 데려오거라... 시간이 없다... (조문국 마지막 왕녀) 운모: 어머니 저를 부르셨다구요 운모: !!!!! 어머니!!!! 묘초왕: 미안하구나 내 딸... 전쟁이 끝나면 왕위를 물려주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될 것 같구나... 운모: ... 한편 신라쪽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음 식량도 떨어져가고 군사도 막대한 피해를 입음 구수혜: 아씨 생각보다 전쟁이 너무 오래갑니다... 식량도 다 떨어져가는데... 구도: (김씨 왕가, 금의 나라, 공주라...) .......... 구수혜: 제 말 듣고 계신겁니까?? 조문국 완전 얕봤는데 우리 상황이 영 좋지 않습니다 무슨 묘책이라도 내야... 구도: 있을 것 같다, 묘책 구도는 몰래 성안으로 잠입에 성공함 그리고 그때 운모와 묘초왕을 만나게 됨 운모: 거기, 넌 누구냐 처음보는데 구도: 난 신라에서 온 구도라 하오 운모: 신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디까지 엿들은 것이냐!! 구도: 진정하시오... 공격할 의도는 없소 운모: 공격할 의도가 없다면서 적국에 넘어와? 구도: 전쟁을 멈추고 싶소 이 전쟁은 조문국에도 우리 신라에도 큰 타격을 입혔소 운모: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실실 쪼개? 고운 얼굴로 웃는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구도: 미안하오, 공주가 있다 들었는데 이리 미인일 줄은... 묘초왕: ...우리 운모는 일개 공주가 아닌 곧 조문국의 성군이 될 몸이다 구도: ...미안합니다. 하지만 성군이 되려면 나라가 있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운모: 이새끼가...!! 묘초왕: 어디 들어나 보자구나 무얼 원하느냐... 구도: 화친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서로의 힘을 합쳐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문국의 명예에 실추가 되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묘초왕: 그것을 어찌 믿느냔 말이다 구도: ...저와 혼인해주세요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신라 김알지의 6대손이자 장차 신라를 김씨왕가로 만들 파진찬 구도 입니다 묘초왕: 사내가 배포가 있다...ㅋ 합격ㅋ . . . 그렇게 운모와 구도는 혼인을 하게 되고 둘은 슬하에 여러 자식들을 두게 되는데 딸인옥모는 벌휴의 아들과 혼인을 해서 신라의 11대왕과 12대왕인 조분왕과 첨해왕을 낳음 뿐만 아니라 옥모의 허락 하에 신라 최초의 김씨 왕 제13대 왕 미추왕이 탄생하는데 조문국 정벌에 앞장섰던 구도가 바로 이 미추왕의 아버지임 뿐만 아니라 미추왕은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황후로 삼지 말라" 명을 내리는데, 이는 곧 조문국 왕실의 핏줄이 아닌 사람과는 혼인하지 말라는 말과 같았음 비록 운모는 사라진 조문국의 마지막 왕녀였지만 운모의 후손들은 신라를 점령해 갔음 여기까지 읽고 ??:// 픽션 아님??? 내가 알기론~~~ ...예 미천한 제가 틀리고 당신이 옳습니다. 제가 또 실수를, 제가 또 잘못을..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예 ㅎ 그저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게되어 벅차오른 역사 덕후가 쓴 글임 ㅎ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워낙 자료가 적어서 여러 기사와 여러 자료를 읽고 그 중 조문국의 왕녀 운모와 신라의 구도가 혼인하고 멸한 과정을 풀어쓰기 쉬운 설을 택했을 뿐  연도로 보면 맞지 않은 부분이 있고, 더 널리 알려진 설이 따로 있긴 함 (구도가 운모와 혼인을 한 후 운모의 나라인 조문국을 쳤다는 이야기...인데 둘의 혼인 연도는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장인의 나라를 쳤다는 설이 싫어서 이 설을 택함ㅋ) 묘초왕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름! 내 맘대로 정함! 머어땨용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조문국은 전설속의 고대국가가 아닌  실제 존재하던 고대 부족 국가였고 신라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임이 분명함 여기 나온 소문국이 조문국임 召 이 한자가 소 발음 되지만 조 발음도 됨 또 신라가 황금의 나라라 불린 것에 비해 경주 인근에서는 금광의 흔적이 없어 미스테리였는데 조문국을 알고나면 미스테리는 풀림 당시 조문국의 영향력이 미쳤던 곳들이 최대 금 생산지였기 때문임 신라가 김씨왕조가 된 것, 그 김씨 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되준 것이 조문국의 금과 야금술이라해도 과언이 아님 신라는 한 국가를 병합한 뒤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처럼  그 국명을 지방 행정명으로 주로 사용했는데 조문국의 명칭을 조문군으로 바꾸고 지역의 토착세력을 유지, 간접통치한 것으로 보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조문국이 멸망하고 조문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이를 뒷받침 해줌 실제 출토된 조문국 유물 출토된 유물들에 따르면 조문국은 멸망 당한 것이 아닌 신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계속 유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사진속 설명아님 예시자료이나 조문국 유적) 조문국 일대에선 370기가 넘는 고분이 발견됐는데 일부 고분의 연도를 측정한 결과 조문국이 멸했다는 시기보다 이후에 만들어진 고분이 존재하기 때문임 고분의 크기 역시 당대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결코 작거나 초라하지 않다하니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지닌 나라였음이 분명해 미추왕의 명대로 조문국이 신라의 왕비족이 되었다면 이건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높았던 것의 근거가 됨 이외에도 유일하게 고분의 주인으로 알려진 경덕대왕 관련 썰도 있고(신라왕❌) 조선시대에 등장한 조문국 이야기~ 조문국 후손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 조문국이 요충지인 이유... 등등 꽤 많은데 한번 찾아보길... 절대 내가 쓰기 귀찮은 것 임 이미 발견된 것들 보다 밝혀질 것들이 많은 조문국이라 더더 기대가 돼ㅎㅎㅎ 그럼 조문국의 위치는 어디냐!! 오늘날 의성임 의성에서는 잃어버린 왕국 조문국을 기억하고자 의성 조문국박물관도 만듦 시간 나면 가보시길... (난 아직 안가봄...) 출처 뭐야 걍 드라마 한편 뚝딱인데 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