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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복수극,타워 하이스트(2011)

*본 영화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일부 담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타워 하이스트(2011)의 스포일러와 꾼(2017)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타워 하이스트는 괜찮은 영화고 타워 하이스트와 꾼의 스포일러는 감상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두 영화를 보실 계획이 있으시다면,먼저 영화를 감상하신 후 리뷰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 영화는 타워 하이스트 입니다.이 영화의 장르는 범죄오락물 입니다.가만히 생각해보면,범죄로 오락을 하겠다는것 부터 말이 안되지만 뭐 이영화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영화는 영화로 봐야하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벤 스틸러 입니다.이분은 박물관에 취직했다가 그곳에서 박물관의 유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그곳을 뛰쳐나와 한 타워의 관리소장이 됩니다. 네,농담입니다 죄송합니다.

농담 이쯤에서 집어치우고, 이 타워의 펜트하우스에는 사기꾼으로 나오는 알란 알다가 살고있는데요.이 양반에게 직원들 연금을 투자금 명목으로 주고 거액의 사기를 당한 벤 스틸러는 직장동료인 스티븐 핸더슨 역시 알란 알다에게 속아 전재산을 날려 먹었다는 사실에 화나서 알란 알다의 페라리 유리창을 부숴버리죠.그리고 당연히 해고 됩니다.지켜보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같이 해고되죠.
같이 해고된 직원들과 스티븐 핸더슨이 마음에 걸렸던 벤 스틸러는 어찌됬건 사기당했던 돈을 다시 되찾아 와야했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기로 결심합니다.fbi가 알란 알다의 비자금을 찾지 못했거든요.

알란 알다가 벽속에 숨겨놓았을 금고를 따서 돈을 훔치기 위해 벤 스틸러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모으고,마침 타워 근처에서 거리행진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어그로를 이용해 타워에 몰래 침입한 뒤.경비실에 야한잡지를 흘려 cctv를 못보게 만들고 그 틈에 금고를 턴다는,작전을 세워 실행합니다.성공하구요.
그러나 알란 알다는 사기친 돈을 금고에 숨기지 않고 모조리 황금으로 바꿔서 이걸 자동차로 조립해 위장하고 있었습니다.이걸 어떻게 옮기나 고민하다가,타워 유리창 닦을때 쓰는 승강기를 이용해 차를 밑에 층으로 옮긴후 엘리베이터 천장에 올려놓고 옥상으로 옮겨 숨깁니다.
아니 근데 잠깐만.아무리 어그로가 끌렸다지만 외벽 승강기로 자동차를 옮기는 동안 이걸 아무도 못봤다고?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이건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갑시다 다른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니까.

어쨋든 황금페라리를 옥상에 숨기는데엔 성공했지만 cctv는 켜져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 일당은 모조리 잡히게 되는데.이때,벤 스틸러가 페라리를 훔칠때 알란 알다의 사기 행적이 적혀있는 장부를 차 안에서 찾아냈고 이장부를 가지고 fbi와 딜(?)을 합니다.
결국 일당을 풀어주는 대신 우리의 주인공,벤 스틸러는 어찌됐든 범죄를 저지른건 맞기 때문에, 차량 절도죄로 감빵에 들어가고 당연하지만 악역 알란 알다역시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범죄오락물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공이 얼마나 치밀하고 디테일하게 범죄를 계획하는가,입니다.
또한 주인공이 범죄는 저지를지언정 악당은 아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범죄가 완벽하진 않지만, 훔친 돈 자체가 억울하게 사기당한 돈이 었기 때문에 권선징악 엔딩을 취하면서 통쾌하게 복수하는 재미가 풍부했습니다.
비슷한 영화로 꾼(2017)이 생각나긴 하지만 뭔가 대단한걸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에 어설픈 반전을 두는 바람에 앞에 내용을 모조리 헛소리로 만든 꾼과는 달리,타워 하이스트(2011)는 그런 기교따위 부리지 않았고 조금은 흔한 소재인 복수 범죄오락물을 가지고 어떻게든 흥미진진하게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턱턱 걸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사실 조금만 영화를 곱씹어 보면.케이시 에플렉이 이 영화에서 변심을 두번하는데 그 변심의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느낌이 있고,cctv를 주인공 일당이 너무 신경 안쓰는 느낌도 있죠.또 앞에서 말했듯이 외벽승강기로 페라리를 옮기는동안 이걸 아무도 못봤다는것 역시 좀 찝찝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 주고싶은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지만 복수극이 가지는 재미 요소를 제대로 살렸고 자세히 생각하지 않고 킬링타임용으로 보기에 좋습니다.저는 시간이 금방가는 느낌이었거든요.
다음 리뷰는 머리식힐때 보기 좋은 스티븐 시걸물,언더씨즈2 입니다.팔로우 많이 해주세요 하트도 눌러주세요....늘 봐주시는 분들 제가 많이 애정합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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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오랜만에 옛영화들 리뷰 보니 너무 좋은데요!
@uruniverse ㄱ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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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일부 담고있습니다* *소스 코드라는 영화는 재밌는 영화니까,앞으로 이영화를 보실 계획이 있으시다면,영화를 감상후,이 리뷰를 보시는걸 추천해드립니다* 오늘 리뷰할 영화는 소스코드 입니다.이 영화는 타임루프물입니다.타임루프물은,주인공이 특정 시간에 갇혀서 반복되는 시간동안 어떤 사건을 해결하거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영화입니다.이 영화는 보통의 타임루프물들 과는 다르게 딱 8분의 시간이 반복되는 영화입니다 고작 8분갖고 어떻게 재밌는 영화를 만들것인가.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기똥차게 재밌는 영화가 여기있습니다.밥 한끼 먹기도 빠듯한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짓은 다하는 제이크 질렌할을 보면,재미가 생길 수 밖엔 없으니까요. 주인공은 사고를 당해 사망하기 직전인 공군으로 나오는데,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만한 대테러가 발생했고,1차테러 발생후 2차테러를 막기위해 이 소스코드라는 기술을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소스코드라는 기술을 알기쉽게 설명하면,사람이 죽고 뇌가 죽어도 뇌회로는 살아있는데.이 뇌회로를 통해서 그 사람이 죽기 8분전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이 기술을 사용해서 테러의 범인을 찾아낸다는 건데요. 물론 소스코드를 체험했다고 해서 단지 사건해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과거를 바꿔 버린다든지,단지 기억만 체험하는게 아니라 그 상황속 인물에게 말을 건다든지 하는 사이언스 개소리엔 조금 흠칫했지만.이 영화의 호흡이 생각보다 더 빠르고 어쨌든 신기하니까.이런 구멍들은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심지어 소스코드라는 기술은 영화속 시대에서도 아직 완전히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도 있죠. '아직 상용화도 않된 소스코드를 주인공에게 왜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길법도 하지만,생명유지 장치 없이는 주인공이 죽을 목숨이라는걸 생각하면 납득이 가능하죠. 결국 소스코드를 통해 테러의 범인을 찾은 우리의 주인공,제이크 질렌할이 여성주인공의 도움으로 그토록 바라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영화는 끝을 맺게 됩니다. 이영화에 제가 드리고 싶은 점수는 10점만점에 7점입니다.속도감 좋고 스릴감도 좋았지만 중간에 걸리는 부분이 제겐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번주 금요일 또는 토요일에 저는 로마의 휴일(1953)이라는 고전영화로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기다려주세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개인적인 해몽
제 블로그 펌입니다. 추석에 한 공유사이트에서무료로 풀고 있길래 다운받았습니다. 처음엔 운동할 때 틀어놓고 볼려고 했는데 한 30분 보니 이게 운동이 끝나고도 계속 보게 만드네요. 해박한 지식이랑은 거리가 멀어 그냥 아는대로만 보고 글 써봅니다. 처음 받은 인상은 짐캐리가 연기했던 '예스 맨' 이랑 상당히 비슷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한 사람의 삶이 변하는 과정을 따라다니며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예스맨을 주의깊게 보지 않아서인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예스맨' 보다는 더 명료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메시지가 그저 무기력했던 한 사람이 다이나믹한 삶을 즐기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독이자 주연인 벤 스틸러가 가장 먼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디지털 시대에 밀려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싶어요. 두가지 면에서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1. 주인공의 직업입니다. 주인공은 라이프 잡지에서 사진 필름을 현상하는 일을 합니다. 사진사 숀이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기 때문이죠. 디지털 카메라가 발달한 시대에 필름 카메라라니 조금 생소합니다. 2. 주인공이 일하는 '라이프지'는 다른 회사와 합병되면서 오프라인으로는 더 이상 발행을 하지 않게 되죠. 그리고 이 자리를 온라인 잡지가 대신합니다. 영화는 라이프 잡지 회사가 온라인 잡지 회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 흘러갑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이 영화에서는 굉장히 삐딱하게 비추어집니다.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을 통해 바뀌어 가는 회사의 모습을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과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차치하고요.) 특히 새로 온 상사 테드 헨드릭스의 까칠함은 회사에 있던 기존의 인물들과 더욱 더 대비되면서 밉상 이미지를 완벽하게 뒤집어 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의 밉상 이미지가 고스란히 아날로그 적인 것들을 밀어내는 디지털 방식의 모든 것들에 전이 되지 않나 싶네요. 이 영화의 촬영을 필름 카메라로 했다는 점을 살펴보면 감독이 이를 의중에 품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영화를 보는 내내 깔끔하고 이쁜 화면에 어떤 장비를 썼을까 정말 궁금했는데 반전!! 그런데도 화면이 정말 깔끔하고 이쁩니다. 그럼 다음 메시지를 찾아볼까요. 2. 무기력하게 살지 말고 다이나믹하게 삶을 즐기자 ​아무래도 빠질 수는 없겠죠. 저희 학교에 계시는 교수님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는 '결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이 결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다이나믹함을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결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여자'(여주인공)입니다. 영화의 첫 씬에서는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의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 프로필중 다음과 같은 항목이 등장합니다. 이상형 모험적이고, 용감하고, 창조적인 (혹은 일자리가 있는) 주인공은 이 프로필에 윙크를 보내는 것 (뻐꾸기를 날리는??) 것을 한참동안 망설입니다. 이는 바로 주인공이 이러한 특성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겟죠. 그러면 이러한 자질만 얻게 된다면 주인공도 자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이나믹한 삶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 목표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전락하는 것이죠 월터도 이를 잘 알고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자신의 상상속에서만 이루어 진다는 것. 실제로 주인공은 영화 초반부에 상상을 굉장히 많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폭발하는 건물에 뛰어들어 여주인공의 개를 구출하거나 새로 온 상사 테드 헨드릭스를 물먹이는 농담을 한다던가 어벤져스에 나오는 영웅 마냥 도심을 넘나들며 액션을 펼친다던가 (개인적으로 이 상상장면이 제일 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상은 그만큼 주인공의 삶이 얼마나 따분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주인공의 상상과 현실을 대비시켜서 주인공의 따분한 삶이 더 강조되는 효과를 갖습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삶에 갑자기 '시련'이 닥칩니다. 사진사가 표지모델로 해달라고 보낸 25번째 필름이 오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죠. '삶의 정수' '내 최고의 작품'이라고 표현한 사진이 말이죠. 월터는 처음에 사진을 찾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연락을 해보지만 모두 허사입니다. 유일한 단서는 그 전후로 찍힌 다른 사진 필름들. 상사테드의 압박은 점점 조여오고 주인공은 결국 사진사 '숀'이 그린랜드에 있다는 말에 무작정 그린란드행 비행기를 탑니다. 이 행동에는 그 전 씬 여주인공이 주인공에게 한 말도 어느정도 동력의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새로 온 상사 테드 헨드릭스가 상상을 하며 멍을 때리고 있는 월터를 부르며 'Space oddity'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별 의미는 없고 그냥 '대답좀 하시지'의 의미로 부른 것 같은데 우리의 여주인공은 그 노래를 '용기를 갖고 미지의 세계로 뻗어 나가는 노래' 라고 합니다. 주인공에게 직접적으로 모험, 용기 등 자신이 원하는 자질들을 언급하니 월터 입장에서는 갑자기 동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현상소로 돌아간 월터는 역시 벽에 걸려 있던 사진 속 사진가가 손을 까딱이며 "드루와 드루와" 하는 것 같은 손 제스쳐를 보고서 곧바로 뛰쳐나가 그린랜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싣죠. 비행기를 타러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회사의 슬로건이 화면에 녹아 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슬로건이 이 영화의 두번째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고, 벽을 허물어 서로를 찾아내고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다.' 이런 멋진 문구가 이렇게 화면의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 잘 녹아듭니다. 영화 화면이 정말...예술입니다. 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린랜드 행 비행기에 막상 몸을 실었지만 이는 그냥 주인공이 홧김에 내린 결정이라고 밖에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때 주인공의 마음을 확인시켜주듯이 깨알 패러디가 등장합니다. 그린랜드에 도착해서 차를 빌리려고 렌탈 샵에 간 월터, 렌탈집 주인이 이렇게 던집니다. "빨간색하고 파란색이 있는데요." 그리고 덜렁 두대가 주차된 빨간 색 차와 파란 색 차를 비춥니다. 유명한 매트릭스 패러디죠.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파란알약 빨간 알약을 주면서 선택을 하라고 하고 네오는 진실을 알게 되며 매트릭스에 맞서게 만드는 빨간색 알약을 선택합니다. 월터 역시 빨간색 차를 선택하면서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여정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짐작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린란드에서 월터는 숀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렇게 찾은 한 술집에서 월터는 숀을 태웠던 헬기 조종사를 만나고, 헬기 조종사가 숀이 타고 있을 수도 있는 배에 지금 가야 하니 같이 가겠느냐 권합니다. 근데 이 때 날씨가 태풍이 올 것 같고, 헬기 조종사는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월터가 헬리콥터 기사에게 정말로 맥주를 마시고 운전을 하냐고 묻습니다. 헬기 기사의 대답이 압권입니다. ' 폭풍이 좀 걱정되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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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수'란 비움이 아닐까 뭐 우스갯소리로 원피스의 결말을 '원피스는 지금까지 너와 함께해온 너의 동료들이야' 같은 훈훈하면서도 맥빠지는 결말로 많이들 예상하는 것처럼 이 영화도 그런 결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결론 부터 말씀드리면 일단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을 숀이 '삶의 정수'라고 까지 치켜세웠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또 위에서 숀이 말한 '순간에 머문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가 주로 머물러야 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언제인지 짚어줬다고 생각하거든요. 엄청나게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웅장한 장면이 아닌 바로 우리의 일상, 하루하루의 삶이 그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겹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 순간이요. 바로 그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는 제가 생각한 영화의 두번째 메시지와 충돌하는 면이 있어서 제가 아까 두번째 메시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얘기한겁니다. 그렇다고 이게 '다이나믹한 삶을 살지 말아라'가 아닌 하루하루 반복되고 지겹게 보이는 삶을 무기력하게 살지말고 그 순간순간에 머물면서 그 순간을 즐기고,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라 가 이 영화의 세번째이자 궁극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짧게 줄이면 Carpe Diem, Seize the day 라고 할 수 있겠죠. 영화를 마무리해주는 월터의 대사에서도 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도 영상미가...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다보니 별 내용은 없으면서도 엄청 긴....글이 되었네요. 다른 분들은 이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굉장히 궁금해요. 저는 차마 다루지 못한 가족과 관련되어 생각해보신 분들도 많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저는 그 쪽은 많이 생각을 못해봐서 다른 분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도 많이 궁금하네요 제가 빼먹은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여...ㅋㅋ
점점 죄여오는 공포,그레이브 인카운터 1(2011)
*본 게시글은 그레이브 인카운터(2011),곤지암(2018)의 스포일러로 느껴질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다른 영화들은 언급만 되어있을뿐 영화의 감상에는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오늘 다룰 영화나 곤지암을 보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영화의 감상 후,리뷰를 봐주시길 바랍니다.여러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있습니다.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페이크다큐 공포영화입니다.블레어 윗치나 곤지암,넓게 보면 rec 시리즈와도 유사한 영화죠.특히 곤지암과는 표절논란이 있었는데,전 곤지암을 안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대충 내용만 알고있어요.하도 스포를 당해서 말이죠...)이 장르의 영화들은 실제 있었던 실화인듯 촬영해서 현실감과 사실감을 높이고,심리적 공포감을 주는식의 영화들입니다.덕분에 관객들은 마치 영화속에 들어간듯한 감정을 느끼며 주인공에게 효과적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되죠. 이 영화의 초반부는 주인공이 귀신과 관련된 여러 목격담을 전해 듣고 현장답사를 하면서 시작합니다.가짜 퇴마사도 불러가면서 현장답사를 촬영 하는데요.이들이 촬영한 콜링우드 정신병원은 전국적으로 넘쳐나는 정신질환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고,당연히 환경이 매우 열악했으며 심지어는 의사가 환자들에게 엽기적인 뇌수술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그 결과 6명의 환자들에 의해 의사가 살해당했죠.(저는 이부분에서 공포게임인 아웃라스트가 생각나더라구요.) 건물 관리인과 목격자들로부터 귀신들의 존재를 들은 주인공 일행은 누가 아무리봐도 사기꾼이라는 것을 5분안에 눈치챌만한 가짜 퇴마사를 데리고 정신 병원에 들어갑니다.관리인에게 내일 아침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받고 주인공 일행은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내용이 전개되죠.(어느 나라던 퇴마사들은 믿기 힘든것같습니다) 이후 영화는,곤지암처럼 촬영장비나 귀신과 교감할 수 있는 장치들을 설명하고 이를 설치하는 장면들을 보여줍니다.온도가 떨어지면 이를 측정하는 기계,정전기와 전자기장을 기록하는 기계 같은것들 말이죠. 그레이브 인카운터는 영화 시작 30분쯤부터 공포감을 주기 시작합니다.처음에는 휠체어가 움직이고 문이 닫히는 등의 가벼운 폴더가이스트로 시작해서,후반부로 갈수록 관객들을 공포감으로 압도하려 하죠.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침이 오지 않는다는 묘사를 통해 영화는 관객을 심리적으로 죄여오는데,사실상 정문은 찾을수가 없고 옥상은 아예 막혀있습니다.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뛰어내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연하게도 나침반은 작동이 되질 않습니다.귀신을 피해다니며 다른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지하로 가는 수밖에 없죠. 휴대폰도 안터지는 상황인데요.지하로 향하는동안 귀신은 여주인공의 등짝을 긁어놓고 도망가는등 주인공 일행을 죄여오며,귀신을 피해다니는 사이 누군 자살하고 누군 실종되면서 주인공 일행이 한명한명 줄어듭니다.결국 지하에 진입하는 순간에는 딱 두명 남습니다.남자 한명 여자한명.여자 주인공이 엄마를 찾는 장면까지 이르렀을때는 저도 엄마가 보고싶어 지더라구요.저는 이미 한계 였습니다. (솔직히 지릴것 같았습니다) 나도 그래. 엎친데 덮친격으로 여주인공은 하얀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립니다.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마라톤급의 걷기운동을 한 랜스 프레스톤은 알 수 없는 문을 발견하는데,이곳에는 영화가 준비한 공포최종 병기가 있습니다.바로 수술실과 의사귀신이죠. 이곳에서 주인공은 뇌수술을 받은 일행들의 사진을 발견하고 본인도 뇌엽절리술을 받게 됩니다.저는 이 뇌엽절리술을 찾아봤는데요.정신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정신병의 직접적 원인,즉 뇌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인 뇌엽절리술은 1930년대에 실제 행해졌던 수술로.긍정적 효과를 본 환자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부작용도 심각했다고 합니다. 저는 공포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공포스러운 장면을 얼마나 잘 뒤틀고 변화를 줄수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꽤나 잘만들어진 공포영화,컨저링을 보면 귀신이 나오는 타이밍과 상황에 변화를 끊임없이 줌으로써 관객을 두려움에 떨게하죠.이래야 공포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도 공포감을 줄 수 있을테니까요.그런 부분에서 그레이브 인카운터는 제겐 충분히 무서웠지만 공포영화를 대단히 많이 본 분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이밍과 상황에 변화를 주긴 하지만,서서히 죄여오는 식의 공포영화인데다가 요즘 시대에 보기에는 조금 예상이 되는 느낌도 들어요. 제가 주고싶은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저는 오늘 밤 잠을 못들것같습니다.여러분들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다음주는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영화 살아있다(2020)을 가차없이 까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영화가 190만 관객에 그친 이유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제발 좋은 스릴러영화를 만들어 주실순 없을까요,침입자(2020)
*본 게시글은 침입자(2020)의 스포일러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위 영화를 보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영화의 감상 후,리뷰를 봐주시길 바랍니다.여러분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 입니다.다른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스릴러는 주인공에게 관객들이 몰입하면 할수록 재밌는 장르입니다.관객들이 주인공에게 몰입할려면 영화는 어때야 할까요?주인공이 완전히 똑똑하진 않아도,주인공의 행동 자체가 앞뒤설명은 되어야 합니다.여기에 세심한 디테일을 더해서 영화의 상황이 진짜 같아야 하는거죠. 관객들이 주인공을 답답해하고 주인공을 강건너 불구경으로 보는 순간,그 스릴러 영화는 졸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그런 의미에서 침입자는 실패한 영화입니다.지금부터 영화를 하나하나 까보죠. 침입자는 김무열 배우의 캐릭터 묘사로 시작합니다.아내는 뺑소니 사고를 당해 죽었고,어린 시절엔 놀이공원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잃어버렸습니다.아내를 잃은지 얼마 안되서 정신상태가 위태로운 상태지만,키워야 하는 딸도 있기 때문에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집안의 가장이죠. 어느날 김무열은 그토록 찾던 여동생의 소식을 듣습니다.엠사무엘인지 뭔지하는 복지원에서 여동생을 찾았단 연락을 해왔어요.그녀가 말하길,어린시절의 기억은 전혀 없고 양부모의 손에서 자랐는데 양부모가 사망하면서 유품을 통해 주인공을 찾았다고 합니다.str인지 strong인지 하는 유전자검사를 통해 김무열의 가족들은 송지효를 굳게 믿게 돼죠. 송지효는 자신을 간호사로 소개하는데요.영화에서도 성실하고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는 여성캐릭터로 묘사 됩니다.몇 십년만에 처음 온 집에도 금방 적응하는데,이게 좀 과해서 주인공은 송지효를 수상히 여깁니다.뭐 다른 이유도 있지만요. 송지효가 집안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집안식구들의 기운이 이상해집니다.더군다나 송지효가 자신의 주변인을 계속 집에 들이면서 김무열을 이해해주는 존재는 점점 줄죠.집안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송희정 배우 마저 실종,이후 사망한것으로 나옵니다. 송지효와 원한관계인듯 보였던 남자,그리고 송희정 배우가 살해당하면서 영화는 송지효의 비밀을 하나씩 오픈합니다.김무열의 아내가 사고를 당할때 그곳에 송지효가 있던 일,송지효의 전 직장동료로 알고있던 여자가 간호사를 사칭했던 일,등등..경찰은 답답하기만 하고 집안식구는 미쳐가는 가운데,아내와 살던 빈집에 불이 켜져있단 연락을 받고 김무열은 곧장 그곳으로 향합니다. 그곳엔 소희정의 시체가 있었고,킬러도 있었습니다.킬러는 김무열의 어린 딸을 데려다가 자기네 종교로 데려갈거랍니다.선택받은 아이니 뭐니 하는데,한마디로 납치해가겠단 소리에요.선택받은 아이는 개뿔...지들이 무슨 디지몬도 아니고.그동안 김무열네 가족들은 마약에 취해있었단 얘기도 해줍니다.그러니까,이약에 취하게 한 뒤 무슨 얘기를 쏼라쏼라 하면 그말을 진짜로 믿게 된단 거죠. 테이큰을 찍으면서 겨우겨우 집에 온 김무열을 경찰은 가정폭력으로 연행하려 합니다만,김무열은 경찰을 뿌리치고 딸을 구합니다.과거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진 김무열과 절벽에 떨어진 송지효의 연출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대충의 내용은 소개한것 같으니 단점을 훑고 장점을 언급하겠습니다.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시나리오 입니다.송희정 배우가 실종되고 송지효는 한 편지를 가져오는데 이곳엔 송희정 배우의 글씨체로 가정부를 그만두겠다고 써져있었답니다.아니 그럼,송지효는 송희정을 살해하기 직전.종이에 글씨를 쓰라고 한건가요?아니면 가족들에게 이글씨체는 송희정의 글씨체라고 세뇌시킨 겁니까?아니 그럼 주인공은 왜 못알아보는 건데요.주인공도 자기네 집에서 일한 사람의 글씨체는 알고있지 않겠습니까?적어도 6개월은 동거동락 했을거 아니냐구요. 그리고 이게 만약 송지효의 글씨체라면,필적감정 한 방에 다 들키지 않을까요?차라리 컴퓨터로 작성한 다음,아버지에게 세뇌를 시켜서 가정부에게 남자가 있었다,라는 식으로 증언을 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뭐하러 이런짓을 하죠?영화가 설명을 해줘야죠.그래야 관객이 납득을 할것 아닙니까?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끝이 없는데요.송지효는 어머니에게 무슨 얘기를 하길래 어머니가 저리 좋아하시는가,집안 곳곳에 설치했다던 cctv에 김무열의 폭력은 찍혀있고 딸내미가 김무열을 물어 뜯었던 장면은 안찍혀 있는건가,또 이걸 왜 경찰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가.킬러는 주인공을 바로 죽이면 되지 왜 굳이 자백까지 하면서 시간을 끌고있는건가 같은 것들은 그냥 넘어갑시다.이런거 생각하면 이 영화 끝까지 못봅니다.신경 안쓸래야 안쓸수가 없지만. 김무열의 행동도 얼탱이가 없는건 매한가지.이 영화에서 송지효는 살해,간호사 사칭,마약류 사용,간호사가 사칭인것으로 보아 물리치료사도 사칭,등등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는데요.이거 다 집어치워도 실제론 없는 복지원 사칭만 해도 충분히 경찰조사 감입니다.그런데 이걸 경찰한테 왜 말하지 않을까요. 시나리오의 큰 허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송지효가 벽돌로 남자를 살해할 당시 분명히 송지효 옷소매에서 뜯어진 단추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또 그녀는 살해를 한후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숨을 헐떡였죠.증거처리가 제대로 안된 상황에서 장갑도 안낀 상태였던 송지효는 지문도 사건현장에 남겼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근데 왜 용의자를 못잡는지,의문이에요.백화점이 오래돼서 cctv가 엘리베이터에만 있단 헛소리는 덤. 시나리오는 헐겁고,디테일도 부실한 가운데.몰입?당연히 될 리가 없죠.전 짜증만 나서'그냥 좀 빨리 끝내라 제발'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헐거운 이유는 딱 한가지,이 영화는 스릴러에서 시작해서 사이비한번 다뤄주고,속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관객들이 봐도 쌩뚱맞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이어 붙이려다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리고 영화의 내용들이 설명이 안되는 겁니다.(소위 갑분사..갑자기 분위기 사이비.) 그래도 장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송지효씨 연기가 괜찮았습니다.그리고 간호사 사칭역할로 나오는 장성윤 배우가 귀엽습니다.아주 귀엽습니다.둘이서 2.5점은 먹고 들어갑니다.또한 어찌됬던 스릴이 없진 않았단 점,솔직히 대사나 장면으로 스릴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아는것같아요.와닿지가 않아서 문제지. 스릴러 장르를 가지고 개연성 없이,디테일 따지지 않고 장면 몇개 대사 몇개만 좋게 쓰면.시나리오 쓸 수 있는 분야가 딱 하나 있습니다.인소,인터넷 소설이죠.사실 인소도 이렇게는 안쓰지 않나... 저는 이영화에 10점 만점에 4점 드리겠습니다.다음주 영화는 사실,결정을 못했습니다.결백,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요.추후에 글 올리겠습니다.기대해주세요.
[리뷰]'에이바', 세가지 치명적 결함을 지닌 킬러의 이상한 폭주
- 당신의 끝에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가란 물음. 제시카 차스테인 주연의 영화 <에이바>는 여성판 <존 윅>을 표방한 킬러 소재 액션 스릴러입니다. <미스 슬로운><엑스맨: 다크 피닉스> 등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두각을 나타낸 제시카 차스테인이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킬빌>의 우마 서먼, <툼 레이더>의 앤젤리나 졸리 등 원톱 여배우가 등장하는 액션물이란 이유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극 중 캐릭터가 지닌 트라우마를 포함해 세 가지 치명적 결함을 유연하게 그려내지 못하고 허술하면서도 개연성 없는 스토리로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야기는 생애 동안 떠돌면서 성공리에  암살 미션을 마무리하고 엄마(지나 데이비스 분)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킬러인 에이바(제시카 차스테인 분)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영화 속에서 에이바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알코올 중독이 되었고 집을 떠났으며 과거에 연인이었던 마이클(커먼 분)이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된 동생의 남편이 되어 있다는 등 아픈 사연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인가! 다수의 상대와 육탄 대결도 어렵지 않은 에이바를 영화는 매우 감성적인 킬러인 것처럼 그려냅니다.  킬러가 하지 말아야 할 타깃에게 말 걸기, 걸핏하면 눈물 흘리기까지 조직에서 미운털이 박힐 만하죠. 결국, 두 번째 미션인 중동에서 암살엔 성공하지만 뜻밖의 소동극 주인공이 되어 보스인 사이먼(콜린 패널 분)과 그의 딸로부터 제거당하게 되고, 그에게 미션을 전달하는 연락책 듀크(존 말코비치 분)는 에이바를 보호하려다가 파국을 맞습니다.  영화는 제스카 차스테인은 물론, 콜린 패럴, 존 말코비치, 지나 데이비스 등 엄청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존 윅>은 커녕 기획성 킬러물처럼 캐릭터가 대부분 평면적이고 장르의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의 구성과 캐릭터 설정에서 몇 해 전 개봉했던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스파이 액션 영화 <아토믹 블론드>와 비교되어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 도입부에 고혹적인 세시함으로 도발하던 제시카 차스테인의 모습도 잠시, 이후 킬러는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관객들에게 '저래서 누굴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어?'라고 하는 불안함을 가중시킵니다. 에이바가 왜 마이클의 도박빚을 탕감해주고 도박장 마담에게 칼 끝을 겨누는지, 일생동안 떠돌다가 갑작스레 가족이 전부인 것처럼 모든 걸 내던지는지 의문이 들만큼 이야기의 구성도 엉성합니다.    물론, 알코올 중독이라는 트라우마는 킬러인 그녀에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 치더라도  스스로 정의의 심판자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조직이 금기시했던 '타인에게 말 걸기'로 상대의 죄의식을 일깨우는 배경은 감독의 '페르소나'를 자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눈물을 보이거나 타깃에게 말을 거는 것 외에도 영화 후반부에서는 킬러가 가져야 할 냉정함마저도 개인적인 감상에 사로잡혀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그냥 '닥치는 대로 죽여버릴 거야'라고 하듯 폭주하는 에이바의 모습은 오히려 몰입감을 떨어 트립니다. 다만, 이 영화는 킬러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살아온 에이바가 충격적인 사건을 다시 맞이하고 인생의 전환점에서 가족애를 깨닫고 그동안 계속됐던 질문들의 해답을 찾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즉, 자신의 끝에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가란 진정한 물음을 갖게 된다는 주제의식은 시리즈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에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세 가지 치명적 결함을 지닌 킬러의 이상한 폭주를 그려낸 영화 <에이바>였습니다.
[리뷰] '하워즈 엔드', 집에 대한 바른 생각 성찰한 영화
- 계층 간 갈등과 욕망을 소거하는 영국판 무소유 극장가에 눈에 띄는 클래식 영화를 상영해 눈길을 모으고 있는데요, 코로나19 재유행 탓에 개봉을 준비하던 상업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하면서 틈새를 차지한 제임스 아이보리 특별전을 기념해 8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하워즈 엔드>입니다. 이 작품은 특별전 개봉 이후 호평과 좋은 관객 유치 추이에 따라 확장 재개봉으로 스크린에서 클래식 드라마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하워즈 엔드>는 영국 출신의 작가 E.M. 포스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20세기 초, 영국 보수적 사회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과 자아를 찾는 두 자매의 이야기로, 제6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각색상, 미술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시대극 연출에 뛰어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엠마 톰슨과 이국적인 외모의 헬레나 본 햄 카터가 리즈 시절 미모와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각색가로 유명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보다 26년 전 연출했는데요,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계층 간의 갈등과 욕망을 일시에 소거하는 영국판 '무소유'로 다가옵니다. 부동산 광풍 사이로 계층 간 갈등과 반목 조명 영화는 런던 주변의 전원주택단지에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주택을 배경으로 당대 영국 상류층의 천박한 계급 간 갈등과 근대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기,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런던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임대료를 올려 타운하우스를 지으려는 집주인으로부터 "방 빼"라는 통보를 받은 독일계 영국인 슐레겔 가문의 두 자매 마가렛(엠마 톰슨 분)과 헬렌(헬레나 본햄 카터 분)이 하워즈엔드를 소유한 토착 영국인 윌콕스 가문의 헨리(앤서니 홉킨스 분)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헬렌이 대극장에서 강연을 듣다가 중간에 옆자리의 레너드(사무엘 웨스트 분)의 낡은 우산을 들고 빠져나오면서 영국 상류층 부부와 노동자 부부가 하워즈 엔드를 둘러싸고 불운으로 얽혀갑니다. 사교성이 좋은 마가렛은 헬렌의 뒤를 따라온 레너드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지만 계층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자격지심에 빠진 레너드는 중산층 가정의 호의를 외면하고 마가렛이 전한 명함을 받아 들고 나오죠.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 레너드는 매춘부 출신의 재키를 책임과 의무감에 부양하는 하류층 가장입니다. 지적인 탐구를 끊이지 않으나 언제나 제자리인 현실 앞에 무릎 꿇고 상처와 외로움이 많은 청년입니다. 윌콕스 가문의 차남 폴과 사랑에 빠졌다가 집안의 반대로 이별을 택하는 폴 탓에 상처와 상류층에 감정이 좋지 않은 헬렌은 이러한 레너드의 물질적, 정신적 지주를 자처합니다. 그녀가 책에서 배운 것을 현실과 간극을 좁히려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마가렛은 사교성이 좋은 탓에 혼사가 틀어진 헬렌을 대신해 화해를 청하고 윌콕스 집안의 헨리의 아내 루스(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분)와 교류하면서 하워즈 엔드와 연을 맺습니다. 집에 대한 바른 생각, '노블레스 오블리쥬' 도시에서 나고 가장 역할을 하면서 자란 마가렛에게 하워즈 엔드는 주변을 에워싼 화사한 정원과 알록달록한 들판 등 목가적 풍경이 위안과 함께 이사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덜어줍니다. 정착  욕구를 자극해 금방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 보입니다. 영화 속 하워즈 엔드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마가렛처럼 금사빠가 될 것 같습니다. 헨리를 비롯한 윌콕스 가문의 사람들은 가족 아닌 남에게 재산이 넘어가는 것에 반대하며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며 쪽지를 없애는데, 상류층의 부와 재산에 대한 소유와 집착을 꼬집는 대목입니다. 그들만의 담합으로 루스의 유언을 묵살한 채 평범한 나날을 보내지만, 마가렛의 성품은 위선적인고 가부장적인 헨리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마가렛은 헨리와 혼약을 맺기에 이릅니다. 결국 윌콕스 집안은 가문 내에서 마가렛의 하워즈 엔드 차지를 경계하고 시기하지만 '가져야 할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말이 이루어지기라도 하듯 헨리의 과거를 쉬이 용서하는 마가렛으로 인해 하워즈 엔드의 유언에 관한 진실은 밝혀집니다. 물론, 이상주의자인 헬렌의 레너드 부부 후원을 두고 마가렛과 갈등하기도 하고 약혼식에서 레너드 부부를 마주친 헨리의 속좁음에 부부의 관계가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루스의 선의가 와 닿았을까요? 갈등과 반목하던 사람들은 윌콕스 집안의 자녀들이 가정을 꾸려 고향을 떠나고 헨리 역시 정신적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비로소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즉 경제적인 여유 외에도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야 하워즈 엔드를 가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간 윌콕스 가문의 부에 대한 왜곡된 집착은 마지막 위기를 불러일으키는데요, 헨리의 장남인 찰스(제임스 윌비 분)는 헬렌을 저버리고 마가렛을 속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고 결국 헨리는 하워즈 엔드를 마가렛과 헬렌 자매에게 넘겨줍니다. 만약, 마가렛이 어떻게든 하워즈 엔드에 관한 루스의 유언을 알아내 슐레겔 자매가 집에 관한 소유권을 욕망하고 집착했다면 과연 자매에게 집이 온전히 돌아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최근, 모 건설회사의 CF에 '집에 대한 바른 생각'이란 카피가 떠오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부동산 광풍이 지나고 더 이상 집이 소유가 아닌 실질적 수요인 주거와 정착에 의미를 가지듯이 이 영화는 무용한 대저택마저도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다는 주제의식을 띠고 있습니다. 오히려 물질에 대한 소유와 욕망을 갖지 않고 정착과 안식을 원했던 슐레겔 자매처럼 하워즈 엔드를 통해 계층 간 갈등과 욕망을 일시에 소거한 영국판 무소유처럼 다가온 영화 <하워즈 엔드>였습니다. / 시크푸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오르페우스는 왜 뒤를 돌아봤을까
제목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Portrait of a Lady on Fire, 2019 감독 : 셀린 시아마 출연 : 아델 하에네, 노에미 메를랑, 루아나 바야미 등 국가 : 프랑스 러닝타임 : 121분 "시를 쓰고 앉았네" & PC 얼마 전 모 장관님의 발언이 세인들과 문학인들의 강한 비판을 받은 바 있었다.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알 분들은 다 아시는 모 장관님이(누구인지 특정 가능해서 이것도 사실 적시에 대한 명예훼손 감이려나? ㄷㄷ... 판사님 이 글은 저희 집 강아지가 썼습니다.) 본인에게 쏟아지는 의혹에 대하여 "소설을 쓰시네."라는 발언으로 맞 받아친 것. 이에 소설가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인들은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모 장관님은 문학을 싫어하셔서 저런 발언을 공석에서 필터링도 안 거치고 따발총 쏘듯 화끈하게 뱉으실 수 있는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참 기분 나쁘더라. 비록 본인이 작가도 뭣도 아니지만 소설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취미까지 싸잡아 비난받는 것 같아 기분이 그랬다. 모 장관님의 품격 있는 "소설을 쓰시네." 발언으로 리뷰의 포문을 연 이유, 다 계획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본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 바로 "거 참, 시를 쓰고 앉았네."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을, 공석에서 비꼬는 언사로 따발총 쏘듯 갈겨버릴 수 있는 총알쯤으로 생각하시는 이성적이고 고매하신 어느 분과는 다르게 감상적이고 비천한 본인은 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문학을 과히도 아끼고 사랑하는 바. 따라서 본인의 "시를 쓰고 앉았다."라는 영화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더 없는 극찬이다. 랭보와 보들레르의 나라 프랑스라 그런지 영화로 시를 쓰고 계신다. 굳이 한국의 감독 중 비교하자면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 영화, 평론가들이 환장하는 이유가 있었다. 영화 한 번 고급 지다. 스토리의 외연은 간단하다. 아씨의 결혼을 위해 상대방의 집에 보낼 초상화를 그리러 온 화가가 아씨와 사랑에 빠져 불꽃같은 사랑을 펼친다는 아주 고전적인 이야기다. 다만 그 화가가 여성이라는 점. 그러나 뻔한 이야기의 내연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아주 미쳐버렸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함축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시(詩)나 다름없고, 화면의 영상미도 미쳐 버렸다. 관람을 끝마치고 나면 마치 한 편의 시집을 읽은 듯한 문학 뽕이 거하게 차오른다. "웨이러, 여기 보들레르 한 병 더!"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감각도 예술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관객 모두 불편을 느끼지 않게끔 하기 위해 감독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듯한 느낌이 역력하다. 사회적 올바름, PC. 사람들은 작품에 PC가 묻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다. 물론 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작품이 PC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PC가 문제가 아니다. 팩트는 작품이 후졌다는 점이다. PC가 범람하는 시대적 조류에 편승해서 작품은 대충 만들고 PC로 까방권을 획득하려는 꼼수가 훤히 보이는 게 역겨운 거다. 그러나 PC를 다루는 영화나 게임들은 PC를 무슨 면죄부나 성스러운 방패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작품이 구려서 작품성을 문제 삼으면 이렇게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를, 게임을 악평하다니 "너, 참으로 덜 배운 새끼구나?" 하며 논점을 흐려 버린다. 그러나 재료는 상관없다. 요리만 맛있다면. 요리가 맛이 없는 건 재료만 믿고 요리를 대충해서 그런 건데, 클레임을 들은 요리사가 손님의 혀의 수준을 문제 삼는다. 웃기지도 않는다. 이 영화는 명작이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살짝 지루하다는 점과 결말 부의 시퀀스가 약간 감정의 과잉이라고 느껴지는 정도? 감정을 덜어내고 조금 더 건조하게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 정도의 단점은 인간미라고 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훌륭한 영화였다. 오르페우스는 왜 뒤를 돌아보았나? 아씨와 화가, 저택의 시녀는 셋이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읽는다. 사랑을 되찾기 위해 산자의 몸으로 지옥에 간 오르페우스는 리라 연주와 노래로 뱃사공 카론, 머리 셋 달린 문지기 개 케르베로스, 저승의 왕 하데스까지 굴복시키고는 망자들 틈에서 에우리디케를 돌려받는데 성공한다. 저승의 왕이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충고를 무시하고 지상까지 단 한 발만 남겨 놓은 곳에서 고개를 돌려 에우리디케를 바라본다. 결국 하데스의 조건 대로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에 떨어지고 만다. 이 이야기가 유독 비극적인 이유는 오르페우스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그 시점이 바로 성공이 목전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정의 시작도, 여정의 중간도 아닌, 여정의 마지막의 마지막. 단 한 발자국. 오르페우스의 멍청한 실수는 다 된 죽에 빠트린 코처럼, 단 하나의 블록을 남겨놓고 무너뜨린 도미노처럼, 99퍼센트에서 날아가 버린 레포트처럼(요즘은 자동 저장 기능이 있지만) 비통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단 한 발자국만 걸으면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랑을 다시 찬란한 태양빛 아래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멍청한 남자는 왜 뒤를 돌아봤을까? 이에 아씨는 뒤를 돌아본 선택을 한 건 연인으로서의 오르페우스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오르페우스였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연인의 부재와 끝나지 않을 고통, 그리움이라는 치명적인 결핍들이 불러올 악상들을 얻기 위해 일부러 불행을 선택했다는 이야기일까. 창작의 작물은 나른한 만족과 행복보다 맹렬한 결핍과 불행이란 토양에서 더욱 풍성하게 자라는 법이니. 아씨의 해석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나는 다만 세상에는 그런 한 걸음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원히 불가능한 한 걸음이. '고작' 한 걸음이지만 '무려' 한 걸음이기도 한, 결국 내딛지 못하고 뒤를 돌아봐야만 하는 한 걸음이. 그리고 덧붙이고 싶다. 사랑은 실로 불가해한 감정이라고. 오르페우스는 알면서도 뒤를 돌아봤을 수도 있다. 더 이상은 한 시도 참을 수 없어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서. 사랑은 이성을 두들겨 패는 거대한 불가항력이고, 사랑 앞의 이성은 언제나 헤비급 앞의 페더급만큼이나 무력하다. 또 어떤 사랑은 오르페우스의 선택을 종용하기도 한다고.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짧은 두 사람의 사랑은 그 자체로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돌려받아 지상으로 귀환하던 여정과도 닮아있다. 당시의 세상에서 동성애는 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둘의 사랑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손을 맞잡고 오르던 저승과 지상을 잇는 통로처럼 이 세상과 저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두 세상의 중간에 끼듯이 기이한 형태로, 명확한 한계를 갖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씨의 하데스가 자리를 비운 짧은 며칠간 밖에는. 이야기의 결말을 화가도 알고 아씨도 안다. 그들은 결국 겨우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다만 오래도록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을 거란 사실을. 그들은 내밀한 비밀과 가장 뜨거운 포옹을 나눠 갖는다. 예정된 오르페우스의 시간이다. 잡았던 손을 놓고 뒤를 돌아 서로의 타는 눈을 마주할 시간이다. 두 사람은 강렬히 타오르는 눈빛 두 개를 마지막으로 나눠 갖는다. 둘의 생이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되돌아보게 될 한자리가 마련된다. 우리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에는 아직 가슴 아픈 후일담이 남아있지만 여기서 끝내고자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