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mir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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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권력 그리고 불화

제목이 확 땡기더라구요... 그래서 데려왔습니다.
음, 그런데 말입니다... 국내여행을 다니면서 가는곳 근처에 있는 유명한 사찰들은 꼭 가보고 그 사찰에 있는 문화재들도 꼼꼼히 챙겨보고 하는게 재밌더라구요. 근데 전공이 사학이지만 며칠전 기말고사 공부하는 아들이 하는 질문에도 어버버 했거든요 ㅋ. 미안하다 아들아 ㅡ..ㅡ 암튼 제가 불교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건 삼국의 불교전파에 관한거랍니다. 고소전순 백침동마 신눌고묵... 이게 뭐냐구요? 고구려는 소수림왕때 전진에서 온 순도에 의해 불교가 들어왔고, 백제는 침류왕때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 그리고 신라는 눌지왕때 고구려에서 온 묵호자에 의해서 불교가 전래됐다는건데 셤에도 나왔던 기억이... 이렇게 외우니 30년이 훨씬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더라구요 ㅋ. 각설하고 제가 불교에 대해서 아는건 이게 전붑니다. 그래서 내용이 살짝 전문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림 위주로 편하게 읽어나갔답니다. 기억나는거 거의 없음요 ㅡ.,ㅡ
삼국이나 통일신라시대의 불화는 거의 남아있는게 없고 그나마 고려와 조선시대 불화들이 현재 남아있는데 일본이나 미국에 있는 불화들을 보면서 많이 아쉽더라구요. 머 그리스나 이집트에 비하겠냐만은요... 아, 그래도 어려운 책 읽은거 같아서 쓸데없는 뿌듯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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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을 묘사한 예기치 못한 출판물
https://www.faz.net/-in2-9mo4g 엘리자베트 뵈데커(Elisabeth Boedeker)라는 사서이자 여성운동 역사가가 있다. 1893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한 인물로서 그녀의 저서 중에, "25 Jahre Frauenstudium in Deutschland. Verzeichnis der Doktorarbeiten von Frauen 1908 - 1933 / 독일 여성 학문 25년, 여성 박사논문 목록(1908-1933)"이 있다. 1935년에 나온 책이다. 하필이면 왜 1933년에서 끊었을까? 독일과 1933년을 아신다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다. 1933년 3월 총선을 통해 나치가 집권했기 때문이다. (전례가 없지 않지만) 독일 대학교에서 여학생 입학이 일반적으로 허용된 것은 1908년부터였다. 그래서 입학 허용 이전인 1902년 남녀 대학생 비율 36,000명 vs. 70명이었던 것이 1931년부터는 115,000명 vs. 22,000명으로 대폭 늘어난다. 그러니까 1908년부터 25주년 기념이기 때문에 1933년에서 끊었다는 이유도 있기는 하다. 뵈데커의 책에는 총 5,949편의 논문이 실려 있으며, 의학(참조 1)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망라하고 있다. 이중에 눈여겨 볼 전공은 다름 아닌 미술사학이었다. 히틀러가 제일 먼저 추진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퇴폐예술(Entartete Kunst)" 추방이었기 때문이다. 이 퇴폐예술은 다름 아닌, 모더니즘을 가리켰고, 그때문에 바우하우스는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폐교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참조 2). 따라서 이 책에 있는 미술사학 논문의 저자들(여성 박사들)은 모두 1933년까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일하던 이들이었고, 대부분 1933년에 쫓겨난다. 1. Margaret (Grete) Ring(1887 베를린 - 1952 취리히): 그녀의 어머니는 다름 아닌 막스 리베르만의 처제. 네덜란드 회화를 전공했으며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영국 갤러리도 1940년 독일 공군에게 폭격을 당했... 2. Lotte Eisner(1896 베를린 - 1983 파리): 그리스 화병 그림을 전공했으며, 독일 영화 비평으로 유명했지만... 3. Agnes Waldstein: 1929년 Folkwang-Museum zu Essen 최초의 카탈로그를 작성했다. 그런데 그 카탈로그 제목이 "Moderne Kunst/모던 아트"... 4. Annie Mainz, Elisabeth Henschel-Simon: 각각 함부르크, 베를린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쫓겨난 다음, 아예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다. 5. Lilli Fischel(1891 브룩샬 - 1978 카를스루에): "14세기 라인강 중류 지역의 조각"으로 박사 논문을 받았다. 그녀는 카를스루에 주립미술관 관장 역할을 맡으면서 모더니즘 화가들(대표적으로 반 고흐와 인상파) 전시를 추진했었고, 그때문에 쫓겨난다. (게다가 아버지가 유대인!) 6. Hanna Stirnemann(1899 바이스엔펠스 - 1996 베를린): 중세 독일 후기고딕 스타일로 박사를 받았으며, 나이 서른에 독일 최초의 정식 여자 관장이 됐다(예나 시립미술관/Jenaer Stadtmuseum). 그러나 6년뒤 관장 자리에서 축출되고, 해방 후에는 동독에서 다시 한 번 축출... 소위 "퇴폐 예술" 때문에 나치 정권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예술 관련자들은 매우 많다. 그래서 별도의 책(참조 3)이 있을 정도인데, 2010년에 나온 이 책보다는 당시 생상한 기록으로 남긴 뵈데커의 책이 더 가치가 있다는 말이 바로 이 기사다. 유대인 혹은 유대계라서, 게다가 모더니즘 전문가라서 쫓겨난 그녀들의 일대기는 박사로 승승장구하다가 몰락하는 여성 지식인들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기사의 표현처럼, 제3제국을 묘사한 예기치 못한 출판물이기도 하다. -------------- 참조 1. 의학의 경우 1908년 입학이 허용되자마자 공식적으로 5천 명이 졸업했었다(여자 의사의 수요는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학위를 안 줬을 뿐이지). 그래서 논문이 워낙/이미 많은지라 제외. 2. 바우하우스 100년(2019년 1월 8일): https://www.vingle.net/posts/2553277 3. Biographischen Handbuch deutschsprachiger Kunsthistoriker im Exil / 유배당한 독일 미술사학자들 약사(略史): https://www.amazon.de/dp/3598113390/ref=cm_sw_r_tw_dp_U_x_rqp2CbWQP0MJP 4. 참고로 짤방 그림은 Thomas Theodor Heine (1867-1948)의 만평이다. "수험생, 환자에 대해 뭘 알아보시겠습니까?" "실크 속치마를 입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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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그림 속의 잃어버린 과일들
링크를 열어 보시면 맨 처음에 그림이 커다랗게 하나 나온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가 1526년에 그린 “성처녀와 배(Vergine della Pera)”라는 그림으로서 메디치 가문을 거쳐 현재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fruit-in-renaissance-art 당연히 성처녀는 마리아를 의미하고, 아이는 예수를 가리킨다(그래서 못생겼다, 참조 1). 그런데 예수의 눈길이 배에 가 있다. 여기서 배는 원죄를 상징한다고 한다. 즉, 예수는 원죄를 먹어서(?) 세상을 구원하려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설명이 그동안의 해석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저 과일이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던 서양 배가 아니라면? 그걸 연구한 학자가 이탈리아에 계시다. 농부 아버지를 둔 농학사학자인 Isabella Dalla Ragione는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인 della Francesca의 고향, San Sepolcro 태생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소작농 지역으로서 지주와 50:50으로 수확물을 나누면서 농사를 짓던 곳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농부들이 1950년대 이후 도시로 대거 이주한 것이다. 농토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는 버려진 논밭을 찾아 가꾸기 시작한다. 지역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녀 자신은 유전자학과 과일역사학을 세부전공으로 삼아 지역 농민의 지식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결과 12세기 때부터 심어왔던 작물이 뭔지 상당수 밝혀내기는 했었다. 20여년 전 일이었다. 한 번은 16세기 궁전인 Palazzo Bufalini의 요리법, 관련 서류 등을 조사하다가 잠시 문헌에서 눈을 돌려 천장을 쳐다봤다. 그 때 그녀는 깨닫는다. 이탈리아에 숱하게 많은, 궁과 미술관 안에 있는 그림에 혹시 나머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 프레스코화에 뭔가 있다고 말이다. 마침 그 궁의 프레스코 화를 그린 화가 Cristofano Gherardi는 “진짜 과일”을 그리라는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다. 근처의 채소와 과일을 그대로 그렸다는 의미다. 그의 그림에 표현된 하얀 오이와 수수는 현대의 움브리아 지방에 극히 드문 작물이었지만 16세기 때에는 흔했다. 이제 그녀의 작업은 바뀐다. 그림에 나온 물증과 문헌, 구전되어온 이야기 등을 모두 교차 검증하여 옛날 과일과 채소를 규명한 것이다. 다시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으로 돌아가 보면, 앞서 마리아가 들고 있던 배는 연구 결과, 배가 아니라 사과의 한 종류(mouth of ox)였다. 몇 년 전 페루지아의 버려진 농토에서 그녀가 발견, 현재는 그녀의 농장에서 같은 품종을 키우고 있다. 같은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베를린 주립미술관(Staatliche Museen zu Berlin)에 걸려 있는 이탈리아 화가 Francesco Squarcione의 템페라 그림(1455년, 기사에는 1460년이라 나와있다), “마리아와 아이(Maria mit dem Kinde)”의 오른쪽 하단부에 있는 과일은 다들 납작한 사과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연구 결과, 이 과일은 오히려 사과가 아니라 녹색 배(Pera Verdacchia, 참조 2)였다. 이 과일 역시 그녀가 추적한 결과, 토스카나 지방에서 발견, 자기 농장에도 심어 놓았다. 이렇게 그녀는 직접 발견한 품종 600여 그루를 농장에서 더 키우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수요도 있는 모양이다. 미국이나 호주에서까지 “분양(참조 3)”을 의뢰하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새로운 발견으로 미술사학자들이 견해를 바꾸기는 할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그녀의 발견을 무시하는 학계가 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뜻을 같이 하는 사학자들도 있으며, 한데 팀을 모아 내년을 목표로 책을 새로 출판할 예정이다. 예술에는 숨겨진 것이 원래 많은 법이다. 더 늦기 전에 그녀의 결과가 빛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 참조 1. 르네상스의 못생긴 아가들(2015년 2월 28일): https://www.vingle.net/posts/741403 2. Pera Verdacchia: http://www.archeologiaarborea.org/en/the-orchard-collection/pears/238-pera-verdacchia 3. 분양은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진행중이다. http://www.archeologiaarborea.or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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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이 잘 풀릴 혜민스님 좋은 글 ◆-   인생길에 내 마음 꼭 맞는 사람이 어디있으리. 난들 누구 마음에 그리 꼭 맞으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 귀에 들리는 말들 어찌 다 좋게만 들리랴? 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리리니. 그러려니 하고 살자.     세상이 어찌 내 마음을 꼭 맞추어 주랴? 마땅찮은 일 있어도 세상은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살자.     사노라면 다정했던 사람 멀어져갈 수도 있지 않으랴? 온 것처럼 가는 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무엇인가 안되는 일 있어도 실망하지 말자. 잘되는 일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더불어 사는 것이 좋지만,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사람을 피하신 적도 있으셨다.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마음쓰고 아파하지 말자. 세상은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살자.     누가 비난했다고 분노하거나 서운해 하지 말자. 부족한데도 격려하고 세워주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랑하는 사람을 보냈다고 너무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말자. 인생은 결국 가는 것. 무엇이 영원한 것이 있으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컴컴한 겨울 날씨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자. 더러는 좋은 햇살 보여 줄 때가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그래, 우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 혜민스님 좋은글 중에서 -
나를 위한 시간, 템플 스테이
어느덧 2015년도 연말로 달려가고 있는 11월의 중순. 지난 1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되돌아보며 생각이 많이지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템플스테이를 소개합니다. 1. 1000년의 역사, 진관사 서울에 위치한 템플스테이 사찰로 고려시대 지어져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진관사는 전통을 중시하는 ‘사찰음식’이 유명합니다. 진관사는 다양한 당일 프로그램과 1박2일부터 4박5일까지 산사에 머물 수 있는 [마음의 정원] 휴식·체험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 위치: 서울시 은평구 진관길 73 * 문의: 02-388-7999 * 홈페이지: http://jinkwansa.templestay.com/ 2. 뛰놀고 싶은 아이들을 위한 심원사 가야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심원사의 템플스테이는 느릿느릿 거북이도 쉬어간다 해 ‘거북이 템플스테이’라 불리기도 하는데요. 특히 미취학 아동부터 고3 학생까지 청소년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박2일과 2박3일 일정의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검정고무신 동심체험’은 쉼 없는 공부에 지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조용히 앉아 묵언하고 명상하는 성인 프로그램과 달리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자연과 함께 합니다. * 위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 17-56 * 문의: 054-931-6887 * 홈페이지: http://simwonsa.templestay.com/ 3. 나부터 가만히 내버려 두자, 금산사 금산사는 14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사찰입니다. 여러 관계 속에 놓여 있는 ‘나’를 1년에 한 번쯤은 편안하게 놓아주자는 의미에서 ‘나는 쉬고 싶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365일 매일 열려있는 프로그램으로 스님과의 대화와 108배 하기 및 좌선, 숲길 포행(자율)을 체험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 위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 문의: 063-542-0048 * 홈페이지: http://sansa.geumsansa.org/ [I am your Energy 팔로우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받아보세요!] Follow ▶ http://bit.ly/IamyourEnergy_vingle
당대 최고 화가의 모델이자 인기남들에게 둘러싸인 여성화가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은 끌로드 모네, 앙리 마티스,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등이 있으며 이 화가 모두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두 남자였을까요? 정답은 "No" 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남자 화가들 사이에 '마네의 뮤즈'로만 알려진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가 있습니다. 여덟번의 인상주의 전시회 중 무려 일곱번을 참가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홍일점인 그녀의 삶과 작품을 소개합니다. 1. 재능 금수저 모리조는 로코코 시대의 화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손녀였습니다. 그리고 모리조의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인 사법보좌관이었는데 아버지도 예술에 관심이 많아 예술가들의 후원자였으며 자기 자신도 아마추어 화가였습니다. 모리조는 어렸을 때부터 친자매인 에드마(Edma Morisot)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를 따라 그리며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2. 코로의 제자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on-Baptiste-Camille Corot)는 1850년대의 대표적인 풍경 화가였으며 '아버지 코로'라고 불리며 귀스타브 쿠르베, 클로드 모네, 베르트 모리조 등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리조는 코로의 지도를 받고 살롱에 출품한 작품이 당선되었을 때 코로의 허락 아래 '코로의 제자'라고 서명했다고 합니다. 3. 마네와의 만남 베르트 모리조의 예술 세계를 담은 영화인 '마네의 제비꽃 여인 : 베르트 모리조'에서 유부남인 마네와 만난 모리조는 서로 이끌리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관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둘의 미묘한 감정에 대한 사실 관계는 알 수 없지만 모리조는 마네의 작품에 모델로 서기도 하고, 마네의 예술관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은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과 결혼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문을 참고하세요. # 원문 출처 : https://redfriday.co.kr/201 # 많이 본 컨텐츠 # 매일 업데이트되는 생활꿀팁과 알아두면 도움되는 이야기를 팔로우 하셔서 쉽게 구독하세요. # ‘좋아요’ 와 ‘공유하기’ 많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