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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인, 조선의 라스푸틴 (3) - 1881

1881년 4월 1일, 조선 주재 하나부사 공사는 일본 외무경에게 서한을 보냅니다. 서한 말미에 그는 당시 조선 동향과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보고를 함께 올리죠. 이만손의 개항 불가 상소, 김홍집의 근신과 수신사 임명, 인천 개항 확대를 반대하며 상복을 입고 도끼 그린 종이를 등에 짊어진 채 궁궐 앞에 엎드린 남자 얘기 등등 모두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대하는 위정 척사파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었죠.

그 기록 가운데에 이동인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 또한 있습니다.

하나. 참모관 이동인은 근래 민영익의 집에 동거하여 매우 기세가 좋았지만, 이만손 상소 이후에 자주 걱정하여 특히 3월 초순부터 10일 전후에는 몇 차례 공사관에 와서 공사가 위태로우니 호위를 증가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 무렵에는 같은 충고를 하는 자도 있었지만, 공사관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동인은 위의 사건과 관련하여 신변이 위태롭다고 생각했는지, 3월 중순경부터 민 참판 댁을 떠나 종적을 알 수 없는 중에, 주상이 갑자기 본인을 불렀는데 도망쳐 달아나 부재하자 분노를 일으키시고 "변변치 못한 소인이 지금 형세의 어려움을 보고 헛되이 그 몸을 숨기고 자전의 계책을 삼았다. 혹시 원래 일본인인데 우리말에 통해 거짓으로 조선인이라 칭한 것이 아닌가!"라고 꾸짖으시면서부터, 조정의 백관도 일찍이 그 가볍고 말이 많음을 꾸짖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행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주상께서는 더욱 역린하시어 '그는 산천에 은거한 것이 아니라 필시 원산진에 몸을 숨기고 일본으로 도망가려 할 것이다. 신속히 추포하여 오라'는 상의가 있어 잡으러 갔다고 합니다.
이만손이 올린 영남만인소. 이만손은 <조선책략>을 읽고 분개해 고종에게 이 책 주장의 불합리함을 알리는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하나부사의 서신에는, 이만손이 당시 70여 세 노인으로 수백 명의 유생들을 데리고 궁궐 앞에 엎드려 무려 일주일 동안 시위를 했다고 적혀 있죠. 상소의 내용은 민씨 세력을 삭감, 인천 개항 불허, 외교 불허, 김홍집 귀국 이래 국가 규범이 바뀐 것을 책망, 무위소 개혁 등 그때까지 추진되었던 개화 정책을 모두 백지로 돌리고 김홍집을 탄핵하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종은 이 상소를 읽고 매우 분노했고, 민씨 측에서도 몰래 소수에게 돈을 먹여 진정시켰다고 하네요. 나중에 그는 다시 한 번 상소를 올리려다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임오군란 이후 대원군이 집권하자 풀려났다고 합니다.

서신에서 하나부사는 이동인이 실종되었고, 그 행방을 조선 정부 측에서도 알지 못하는 듯 적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5월 9일, 승려 오쿠무라 엔신은 포교일기에 '밤에 총영사에게서 동인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이동인이 암살당했다고 여긴 건 일본측 인사들뿐만이 아니어서, 5월 3일 주일영국공사관 어네스트 사토우는 자기 일기에 탁정식이 찾아와 이동인의 소식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탁정식은 이동인이 척사파에 의해 희생당한 게 아니라면 어딘가 살아 숨어있을 것이라고 했죠. 또 고종은 대원군을 의심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조선불교통사>란 기록에는 어느날 민영익의 양부 민태호가 이동인을 불러냈고, 이후 이동인의 종적이 사라졌다고 했죠. 대체 이동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1881년 음력 1월 5일, 조선 정부는 이동인을 통해 일본 공사 하나부사에게 무기와 기선 구입 계획 등을 알리도록 합니다. 다만 자금이 부족해 일본에서 100만원을 빌릴 수 있을지 여부를 하나부사에게 타전하죠. 하나부사는 정부가 보증을 선다면 가능하다고 화답합니다. 이후 음력 1월 10일, 하나부사는 일곱 개 조항의 조약안을 조선 측에 제시하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이 타국과의 관계 중재(이른바 거중조정)
2. 부산포 절영도를 조차해 둔재소로 삼음
3. 일 군함이 조선 선박을 만나면 반드시 힘써 보호
4. 조선 선박, 사인이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주재 일본 영사가 각국과의 정규 의거 힘써 보호
5. 조선 해육군제 확장, 공업진흥 위해 교사, 기술자가 필요할 시 일본 정부가 보응
6. 조선 군, 공업 등 기술 전수받을 사람들을 일본에 파견할 필요가 있어 선발해 보낸다면 일본 정부가 적당한 학교로 보내 열심히 교수. 소요 학자금을 본국 전수성원들과 동일하게 할 것.
7. 조선이 필요로 하는 총포, 전함 등을 일본이 구입을 주선해 일본정부가 스스로 사용하는 물품 구입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도움.

조선 정부는 이상 7개 조항 중 2조 이외 나머지는 약간 자구수정만 해서 대부분 수용합니다. 또 그와는 별개로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하고 아울러 포함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교섭단을 보내는 일도 차곡차곡 추진중이었죠. 일본 공사관에 공병 소위를 파견 요청해 교련병대인 별기군 창설을 도모하는 한편, 혹시나 모를 일본측 불법 점거를 차단하기 위해 절영도에 진을 설치해 방어태세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찰단 파견 문제는 국내외 반발을 우려해 일본 측에조차 공식 통보를 하지 않고 비밀리에 추진합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은 이동인을 통해 계속해 하나부사 공사에게 전해지죠.

이동인은 '나는 그 전권을 맡았으므로 우리 정부에서 일본 정부에 알리는 것으로 공증을 삼으려 한다. 각하 또한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부사는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믿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사는 여기 있으면서 아직 조선 정부로부터 의뢰하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와 같다면 공사가 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 공사가 만약 공식적인 보고를 결여하면 일본 정부가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동인은 '반드시 강수관이 의뢰할 것입니다. 다만 이 몇 가지 일은 모두 손바닥 안의 비밀스런 일로 우리 당의 몇 명 외에는 절대로 아는 이가 없다. 망령되이 타인에게 알리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들이 출발한 후가 아니면 강수관도 이를 말하기를 꺼려 미정이라고 하면서 말하지 않는다. 아마 2품, 3품의 귀인 7,8명일 것이다.(...)'

이동인은 그 후 몇 차례 더 일본 공사관을 찾아와 신사유람단으로 파견될 인물 구성이나 성향 등을 알려주다가 음력 1월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발한다고 알려옵니다. 이때 갑자기 공사관을 찾은 이동인이 순도 100%은 60냥과 호피 20매를 가져와 여비로 쓸 물품이라며 하나부사 공사가 부산까지 옮겨달라고 의뢰하죠. 하나부사는 늦어도 지장없다면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맡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동인은 공무 사정으로 지연된다고 하면서 한참을 더 서울에 머물렀죠. 또 돈을 빌려 총포, 군함 등을 사는 일이 내부 반대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단 사실도 은연중에 알립니다. 하나부사는 이동인이 일본과의 관세 교섭 준비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걸로 짐작하죠.

그러던 중 3월 15일 전후로 이동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일본측, 개화당, 조선 정부, 영국 등 이동인과 안면이 있던 그 어느 인물도 그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자취를 감췄는지 알 수 없게 되죠.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몇몇 의심가는 정황은 있습니다.

1. 이동인이 본래 일본인 첩자이다
이동인이 사라지자 고종이 화를 내며 그가 본래 일본인이 아니냐고 했죠. 또 지난번 소개한 <나암수록>에선 이동인은 본래 서양술 하는 왜승이라고 했죠. 그의 출신이나 기록에 등장하기 전 그의 이력 등을 전혀 알 수 없기에 이같은 의문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는 임무를 마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서 일본으로 되돌아간 걸까요?

2. 대원군 측 인물이 살해했다.
이동인이 고종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청국 공사 하여장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유대치가 이동인에게 대원군을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가 이동인을 매국노로 규정해 체포하려 한다면서요. 당시 대원군은 권좌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정부 안팎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부사가 파악하길 조정 내 개화파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전부 척사파로 대원군이 그 수장이라고까지 했으니까요. 1881년 8월 대원군 추종 세력이 대원군의 서장자인 이재선을 보위해 군사 정변을 일으키려다가 발각되는 일도 있었고, 결국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잠시 재집권하기도 했죠. 탁정식도 이동인이 대원군 혹은 김홍집과 이조년 두 사람에게 모살당했다고 추정했습니다.

3. 개화파 내 분열로 살해당했다.
탁정식은 당시 개화파 내부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이동인은 그 성격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결정해 처리하는 것이 심해서 걸핏하면 김홍집을 능가하려 했다고 했죠. 두 사람이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은 외교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김홍집과 이조년은 <조선책략>에서 보듯 일, 청의 의견도 있으니 미국이나 독일과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동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영국과 친하여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다는 거죠. 심지어 이동인의 주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한 모양입니다. 탁정식은 이것 때문에 이동인이 영국인과 사통한 자가 아닌가 김홍집의 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그가 영국인과 친하게 교제한 이력을 문제삼은 거죠.

이외에도 일본 등 외국에서 이동인을 암살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 확실한 건 그가 평소 적이 많았고, 남 눈치도 보지 않고 제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조선이 자력으로 문명 개화를 이룰 수 없다고 믿었고, 고종이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일본과 영국 등에 접촉해 군함과 병사들로 위협해 강제로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했죠. 친교 관계를 이용해 외국 외교관들과 자주 마나 조선 내정에 대한 정보를 주었고, 특히 일본 공사와 친밀했습니다.

만약 이동인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지 않고 신사 유람단 파견 및 조미수호조약 채결에 기여했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그는 고종의 신임을 받아 더 많은 외교 및 개화 정책에 개입했을지 모릅니다. 그때는 정말 러시아의 라스푸틴같은 인물이 되어 더 선명한 족적을 남겼을수도 있죠. 어쩌면 외세의 개입을 방조 혹은 찬동해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예상은 누구도 하기 어렵겠죠.

이동인의 짧은 행적을 보는 내내 이것이 마치 1884년의 갑신정변으로 한순간 정권을 잡는 개화파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습니다. 이동인과 관계를 맺었던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당은 김홍집 등 온건 개화파의 정책에 반발해 그동안 포섭한 각계각층 인사를 총동원해 정변을 일으키고 고종을 옹립해 자신들의 정책을 펼치죠. 하지만 불과 3일만에 청군이 개입하면서 개혁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거기다 이들의 정변을 계기로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하게 되면서 앞으로 일어날 청일전쟁의 불씨가 형성되죠. 이동인이 고종의 신임을 얻은 그 짧은 순간은 묘하게 김옥균의 3일 천하를 상기시킵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혁명이란 부분이 둘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하는 걸까요?
이동인의 사진. 구한말 근대 문명 개화에 눈뜬 그와 같은 개화승들은 이동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이동인처럼 뚜렷하게 인상을 남긴 인물은 또 없죠. 각국 외교 인사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견문을 익힌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천하게 여겼던 승려란 신분 탓에 국가 전면에 나설 수는 없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앞서 적었듯 의심스러운 정체와 성향, 독불장군 식의 성격도 문제가 되고요.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을지, 여러모로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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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사진 관련 없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한반도엔 금의 나라, 조문국이란 고대 국가가 있었음 무려 기원전 7세기 김학여왕이 개국한 모계중심의 국가였음 어찌나 땅의 터를 잘 잡았는지 곡창지대와 금광까지 있어 조문국의 시대가 열리는 건 시간 문제로 보였음ㅇㅇ 그런데 오늘 날 역사서엔 단 한줄의 기록만을 남김 <서기 185년 신라 벌휴왕이 조문국을 정벌했다> -삼국사기- ???????? 대체 무슨일이...??? 때는 조문국이 멸하기(?) 1년 전인 서기 1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감 (? 붙인 반전이 아래 있음) 조문국 아래는 훗날 신라가 되는 사로국이 있었고 나날이 성장 중이었음 *사로국이지만 편의상 앞으로 신라라고 할게 (신라 제 9대 왕) 벌휴 : 야 요즘 윗쪽 동네에 조문국 꽤 잘 나가더라? 구도: 예 뭐 백제랑도 사이 좋아보이고 세력이 커져가는 듯 합니다만,, 벌휴: 안되겠다 더 커지면 곤란하니까 사신 둘 보내서 항복하라 하자 ㅇㅋ? 구도: (??) 예 그러시죠ㅋ ~조문국~ 사신: 어이~ 조문국~ 우리 신라 군사력 rg? 피본 나라가 한둘이 아냐ㅋ 좋은 말로 할때 항복해ㅋ (조문국 마지막 왕) 묘초왕: ㅋ쟤 뭐래니 죽여ㅋ 신라가 조문국을 만만히 본게 이미 조문국은 29명의 군사를 데리고 적라국을 토벌한 이력이 있었기에 군사력에 나름 자신만만했음 벌휴: 뭐라? 감히 사신들을 죽여??? 구도 불러와!!! 구도: 절 부르셨다고요? 벌휴: 야 구수혜랑 같이 가서 조문국 좀 정벌해라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쟤네 정신 못차리고 우리 사신 둘 죽였어ㅡㅡ 구도: 아 예... ~전쟁 전날 밤~ 구도: 휴 내일이면 또 전쟁을 하러 가야하는구나 김욱보 (구도 아빠) 욱보: 아들~ 안자고 뭐하니... 구도: 내일 토벌을 하러 가야해서요 산책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욱보: 벌휴의 명이로구나... 욱보: 에휴... 우리가 세력이 컸더라면 벌휴가 아니라 김씨 일가가 왕위에 올랐을 텐데... 그래 어디로 가니...? 구도: 조문국으로 갑니다 욱보: 조문국?! 욱보: 조문국이면 금의 나라 조문국?!!! 그 나라 공주와 네가 혼인을 하면 우리 김씨 일가의 세력이 커질텐데... 욱보: 마침내 우리 김씨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되고...!!! ... 욱보: 아이고 아니다... 정벌간다는 너에게 괜한 소리를 했지...? 잘다녀오거라... 구도: 예... ~전쟁중~ 자신만만했던 신라였지만 전쟁은 무려 7일이나 지속되었음 조문국은 궁터 주변으로 석성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뛰어난 군사력을 가진 신라를 대상으로 나름 선전하고 있었음 그러나 전투 끝에 왕의 목숨이 위태롭게 됨 묘초왕: 가서... 운모를 데려오거라... 시간이 없다... (조문국 마지막 왕녀) 운모: 어머니 저를 부르셨다구요 운모: !!!!! 어머니!!!! 묘초왕: 미안하구나 내 딸... 전쟁이 끝나면 왕위를 물려주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될 것 같구나... 운모: ... 한편 신라쪽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음 식량도 떨어져가고 군사도 막대한 피해를 입음 구수혜: 아씨 생각보다 전쟁이 너무 오래갑니다... 식량도 다 떨어져가는데... 구도: (김씨 왕가, 금의 나라, 공주라...) .......... 구수혜: 제 말 듣고 계신겁니까?? 조문국 완전 얕봤는데 우리 상황이 영 좋지 않습니다 무슨 묘책이라도 내야... 구도: 있을 것 같다, 묘책 구도는 몰래 성안으로 잠입에 성공함 그리고 그때 운모와 묘초왕을 만나게 됨 운모: 거기, 넌 누구냐 처음보는데 구도: 난 신라에서 온 구도라 하오 운모: 신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디까지 엿들은 것이냐!! 구도: 진정하시오... 공격할 의도는 없소 운모: 공격할 의도가 없다면서 적국에 넘어와? 구도: 전쟁을 멈추고 싶소 이 전쟁은 조문국에도 우리 신라에도 큰 타격을 입혔소 운모: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실실 쪼개? 고운 얼굴로 웃는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구도: 미안하오, 공주가 있다 들었는데 이리 미인일 줄은... 묘초왕: ...우리 운모는 일개 공주가 아닌 곧 조문국의 성군이 될 몸이다 구도: ...미안합니다. 하지만 성군이 되려면 나라가 있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운모: 이새끼가...!! 묘초왕: 어디 들어나 보자구나 무얼 원하느냐... 구도: 화친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서로의 힘을 합쳐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문국의 명예에 실추가 되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묘초왕: 그것을 어찌 믿느냔 말이다 구도: ...저와 혼인해주세요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신라 김알지의 6대손이자 장차 신라를 김씨왕가로 만들 파진찬 구도 입니다 묘초왕: 사내가 배포가 있다...ㅋ 합격ㅋ . . . 그렇게 운모와 구도는 혼인을 하게 되고 둘은 슬하에 여러 자식들을 두게 되는데 딸인옥모는 벌휴의 아들과 혼인을 해서 신라의 11대왕과 12대왕인 조분왕과 첨해왕을 낳음 뿐만 아니라 옥모의 허락 하에 신라 최초의 김씨 왕 제13대 왕 미추왕이 탄생하는데 조문국 정벌에 앞장섰던 구도가 바로 이 미추왕의 아버지임 뿐만 아니라 미추왕은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황후로 삼지 말라" 명을 내리는데, 이는 곧 조문국 왕실의 핏줄이 아닌 사람과는 혼인하지 말라는 말과 같았음 비록 운모는 사라진 조문국의 마지막 왕녀였지만 운모의 후손들은 신라를 점령해 갔음 여기까지 읽고 ??:// 픽션 아님??? 내가 알기론~~~ ...예 미천한 제가 틀리고 당신이 옳습니다. 제가 또 실수를, 제가 또 잘못을..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예 ㅎ 그저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게되어 벅차오른 역사 덕후가 쓴 글임 ㅎ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워낙 자료가 적어서 여러 기사와 여러 자료를 읽고 그 중 조문국의 왕녀 운모와 신라의 구도가 혼인하고 멸한 과정을 풀어쓰기 쉬운 설을 택했을 뿐  연도로 보면 맞지 않은 부분이 있고, 더 널리 알려진 설이 따로 있긴 함 (구도가 운모와 혼인을 한 후 운모의 나라인 조문국을 쳤다는 이야기...인데 둘의 혼인 연도는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장인의 나라를 쳤다는 설이 싫어서 이 설을 택함ㅋ) 묘초왕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름! 내 맘대로 정함! 머어땨용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조문국은 전설속의 고대국가가 아닌  실제 존재하던 고대 부족 국가였고 신라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임이 분명함 여기 나온 소문국이 조문국임 召 이 한자가 소 발음 되지만 조 발음도 됨 또 신라가 황금의 나라라 불린 것에 비해 경주 인근에서는 금광의 흔적이 없어 미스테리였는데 조문국을 알고나면 미스테리는 풀림 당시 조문국의 영향력이 미쳤던 곳들이 최대 금 생산지였기 때문임 신라가 김씨왕조가 된 것, 그 김씨 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되준 것이 조문국의 금과 야금술이라해도 과언이 아님 신라는 한 국가를 병합한 뒤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처럼  그 국명을 지방 행정명으로 주로 사용했는데 조문국의 명칭을 조문군으로 바꾸고 지역의 토착세력을 유지, 간접통치한 것으로 보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조문국이 멸망하고 조문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이를 뒷받침 해줌 실제 출토된 조문국 유물 출토된 유물들에 따르면 조문국은 멸망 당한 것이 아닌 신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계속 유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사진속 설명아님 예시자료이나 조문국 유적) 조문국 일대에선 370기가 넘는 고분이 발견됐는데 일부 고분의 연도를 측정한 결과 조문국이 멸했다는 시기보다 이후에 만들어진 고분이 존재하기 때문임 고분의 크기 역시 당대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결코 작거나 초라하지 않다하니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지닌 나라였음이 분명해 미추왕의 명대로 조문국이 신라의 왕비족이 되었다면 이건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높았던 것의 근거가 됨 이외에도 유일하게 고분의 주인으로 알려진 경덕대왕 관련 썰도 있고(신라왕❌) 조선시대에 등장한 조문국 이야기~ 조문국 후손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 조문국이 요충지인 이유... 등등 꽤 많은데 한번 찾아보길... 절대 내가 쓰기 귀찮은 것 임 이미 발견된 것들 보다 밝혀질 것들이 많은 조문국이라 더더 기대가 돼ㅎㅎㅎ 그럼 조문국의 위치는 어디냐!! 오늘날 의성임 의성에서는 잃어버린 왕국 조문국을 기억하고자 의성 조문국박물관도 만듦 시간 나면 가보시길... (난 아직 안가봄...) 출처 뭐야 걍 드라마 한편 뚝딱인데 존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흑화하면 생기는 일: [괴벨스의 삶]
-몸이 약한데다 만곡족(발바닥이 안으로 심하게 굽은)이라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던 소년 괴벨스는 제대로 걷지 못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이 때문에 2층 다락방에 혼자 틀어박혀 울곤 했다.  -수술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평생 보조구를 착용하고 살아야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부모님도 가슴아파 했다. 당시 독일 사회는 장애를 '신의 형벌'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괴벨스의 부모님도 그의 장애를 불의의 사고 탓에 그렇게 되었다며 둘러대고 다녀야 했다. -괴벨스의 같은 반 학생들은 체격이 작고 장애를 가진 소년 괴벨스를 늘 업신여겼고, 괴벨스가 같은 반 여학생에게 쓴 연애편지를 빼앗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절름발이라고 놀려댔다.  -괴벨스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 했고, 자기를 이렇게 만든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조롱당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증오해야 하는가? - 괴벨스의 일기 中 -유일한 재미는 책이었다. 괴벨스는 골방에 틀어박혀 도스토예프스키, 신비주의, 종교적인 러시아 사회주의 성향의 책을 읽어댔고 이 때문에 몽상가 소년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모든 소설이 타락한 사회를 비난하고, 세상을 구원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는 내용이었다. -신체적인 열등감을 학교 성적으로 커버하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괴벨스의 부모는 빠듯한 살림에도 중고 피아노까지 사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괴벨스를 격려했다. -그의 학창시절 꿈은 신부였다. 괴벨스의 부모님 역시 그가 장애를 딛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아들이 신부가 되는 길을 적극 장려했다. -괴벨스의 집안은 유대인을 싫어하지 않았고, 유대인과의 왕래도 잦았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데 왜 멸시받아야 하는 것이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도 유대인이야. 그와 학구적인 토론을 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는 걸 수긍하게 돼. 좋은 사람이지. 정치에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은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잖아?  - 청년시절 괴벨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 中 -괴벨스는 역사수업, 특히 전쟁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특히 알렉산더, 마케도니아 대왕과 같은  '영웅'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조국과 민족, 신앙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16세의 괴벨스는 이 지옥같은 세상을 전쟁이 해결해줄 수 있고, 처자식과 조국을 위헤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다리 장애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나고 조롱당하기만 했다. -청년 괴벨스는 감성이 대단히 예민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기분 나쁜 정도의 일이 터져도 괴벨스는 처절하게 절망하였다.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옷과 손목시계를 팔아야 했다. 차비가 없어 집에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돈의 노예가 되는 상황을 씁쓸하게 생각했다. -언제나 돈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은 나를 매우 괴롭게 만든다.  - 괴벨스의 일기 中 -졸업 이후 뛰어난 논문 실력과 학위로 박사가 되었으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박사 이름으로 과외를 하거나 언론사에 가끔 기고나 논문을 올리면서 푼돈을 받는게 전부였다. 몇 푼 받아봤자 당시 독일의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받으나마나 였다. 그는 또다시 현실의 무력함을 느꼈다. -이윽고 청년 괴벨스는 오랫동안 교제 중이었던 유대인 여자친구에게 청혼했지만, 그녀는 괴벨스의 장애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괴벨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자존심이 강한 괴벨스는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괴벨스와 헤어지고 '돈 많고 몸이 멀쩡한' 사내와 결혼한다. 이 때문에 괴벨스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방황하던 그는 유대인 은행에 입사하고자 했으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어렵게 들어간 또다른 유대계 은행에는 직원들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투기와 사기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괴벨스가 결혼까지 생각하고 진심으로 따랐던 유대인 여자친구 엘제 얀케가 자신을 버리고 돈많고 사지가 멀쩡한 남성과 결혼한 것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낳는 데 한몫했다.  -완전히 이사를 하고 나서 개를 한 마리 구했는데,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개를 사랑하게 된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괴벨스는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하지만 독일의 제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경제 대공황은 계속 되었으며 모든 국가의 금액을 배상금으로 퉁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결국 실업자들만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아끼던 여동생마저 사고로 죽었으며, 같은 독일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자신을 멸시했으며,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불법 행위로 인해 그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앓았던 우울증은 청년이 되었을때 더더욱 극에 달해버렸고, 하루에도 수십번 씩 자살 생각이 들었다. 주변인에게 늘 '자살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 나는 고독해야 하고 고독할 것이다. 이 비참한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쓰레기들!  - 괴벨스의 일기 中 -스튜어트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를 읽고 또 다시 유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고귀한 독일 인종이 물질주의 때문에 타락했고, 그 원인은 유대인이다. 독일 민족을 유대인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체임벌린 주장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독일의 가장 큰 적은 증권 자본주의고, 그 증권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유대인'이라고 믿었다. 괴벨스역시 경제 대공황으로 실업자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모두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30대로 접어들면서 고민이 생기면 모조리 민족 문제와 연관 시켰다. 이제 완전히 민족주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독일을 깊이 사랑하고 애국심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결국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나날이 심해졌다. 1929년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유대인 귀신들이 자신을 뒤쫓아 오는 악몽을 꾸었다. -괴벨스가 보기에 사기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독일 민족의 유일한 구원자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히틀러에게 고개 숙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히틀러를 만난 뒤로 반종교주의자로 돌아선다.  -히틀러 덕에 출세하여 장관이 되자, 어릴 적 자신을 '절름발이'라며 무시하던 고향 사람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심해졌다. 괴벨스는 그것을 두고 '구역질이 난다'고 표현했다. -이후 그는 대저택, 커다란 배, 고급 승용차를 모조리 사들였고, 여자를 실컷 만나며 청년 시절의 한풀이를 했다. 절망과 고독에 몸부림 치면서 엉망진창인 세상을 향해 부논하던 괴벨스에게 히틀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세주였다. -처음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 몰살이 일생의 목표였던 괴벨스는 히틀러를 열심히 졸라댔고, 결국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모두 압류되었고 시민권을 상실했다. 나치는 자(제도기)를 사용해 유대인을 감별해냈다. -실제로 학살 집행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대인 대학살 계획에 있어서 괴벨스 장관이 가장 적극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괴벨스는 자신이 장애인이라 '낙인찍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유대인 낙인' 찍기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학살하거나 고문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못나고 열등한 모습, 늘 도태되었던 모습, 인정받지 못했던 모습을 저주했으며, 그것을 매우 증오했다.  -1938년 11월 10일.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 일당은 '인종 대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돌격대가 침대에서 유대인을 끌어내 죽였고 1939년에는 유대인을 가축 트럭에 실어 수송하기 시작했다. 1941년 베를린에서 3,5000명의 유대인을 색출해 모두 수용소로 보냈다. 노인은 따로 모아서 모두 죽였다. 그 당시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자살이었다. -자신의 장애를 잘 알고 있었던 괴벨스는 연설을 해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각오를 다졌다. - 내 스스로 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 같은 절름발이에게 먼저 떡을 갖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분노는 삶의 원동력이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그는 선전 장관으로 활약하면서 나치 웅변학교를 세워 수천명의 선동가를 양성했고, 여러 종교 단체를 진압했으며, 수도원의 성폭력 동성애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고,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대상을 오로지 한가지로 통일하였다. 바로 유대인 척결.  -현재까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용되고 있는 "뚜... 뚜... 뚜.... 삐이~"소리를 낸 뒤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가는 방식은 괴벨스가 사람들을 방송에 집중시키기 위해 최초로 개발한 방식이다.  -그는 tv와 라디오를 정치선전에 활용한 선구자이며 정치쇼의 원조, 공약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의 선구자이다. 또한 시장같은 장소에서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전하는 행위의 창시자이다. 괴벨스 덕분에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전 세계 최초로 정기적으로 tv방송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괴벨스는 히틀러 앞에서 어린애였다. 히틀러는 괴벨스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내고 생일 잔치도 베풀어주면서 계산된 총애를 했다.  -히틀러가 보기에 괴벨스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불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며, 당시 강력했던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만한 사고방식도 겸비하고 있는 인재였다. 괴벨스는 나치 당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뛰어난 인텔리였다.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아부했다. 히틀러 역시 괴벨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시대의 난관과 결핍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미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거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숭배했다. -괴벨스는 전쟁이 불리해질 수록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과 싸워야 한다는 망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유대인 학살이 서양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괴벨스는 자신과 제국이 위기에 빠져 들수록 히틀러에게 더욱 의존했다. 1945년 나치 제국이 완전히 패망하고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는 역시 그를 뒤따라가겠다고 하며 처자식과 함께 음독 자살을 했다. -총통이 없으면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살아남아서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그래, 모두 데리고 가련다. - 1945년 괴벨스의 마지막 일기 中 출처
삶이라는 아이러니.jpg
어린시절의 친구였던 두 사람은 시위대와 경찰로 다시 만나게 된다 괴벨스의 결혼식과 해방 후 부셴발트 수용소에서 발견된 수천개의 반지들 베트남전쟁에서 네이팜탄 투하를 지켜보는 군인과 네이팜탄을 피해 도망가는 어린아이들 1945년, 패전 소식을 듣는 독일군과 수용소행 열차에서 해방된 유태인들 911테러의 사상자는 삼천명에 달하고, 그 중 이백명 가량은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한다. 참사 10주년 기념관을 맞아 개관한 기념관에서 오열하는 로버트 페라사. 이 사람의 아들은 사건 당시 북측 타워 104층에 머물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장례식장, 8살의 크리스찬 골츠니스키.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군의관 테리 구롤라와 딸의 재회. 1942년, 네덜란드의 은신처에서 밖을 내다보는 안네 프랑크 종전 후 은신처였던 네덜란드의 다락방으로 돌아온 오토 프랑크. <안네의 일기>를 쓴 딸 아넬리스를 비롯한 은신처 식구들은 모두 죽었고, 오토 프랑크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브룩클린의 레스토랑에서 암살된 마피아 보스 조 마세리아. 죽는 순간 그가 쥐고 있었던 스페이드 에이스의 의미는 힘, 그리고 죽음. 출항을 기다리는 타이타닉 호, 그리고... 순서대로 고베 폭격/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그리고 일왕의 패전선언이 있었고 이 사진은 일본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맥아더 장군 1985년 스웨덴, 집회중인 네오나치의 머리를 핸드백으로 가격하는 다누타 다니엘손. 폴란드계 유태인이고 이 사람의 어머니가 아우슈비츠 생존자라고. 다니엘손은 지병이었던 정신적 문제로 결국 자살하고 말았고, 다니엘손이 때린 네오나치남 Seppo Seluska는.. 같은해 유태인 동성애자를 고문하고 살해해서 수감됨..... 1996년, KKK 반대 시위 도중 백인우월주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을 시위대가 폭행하기 시작했고, 시위 참여자인 케샤 토마스가 그를 온 몸으로 감싸 보호했다. 이 사진으로 케샤 토마스 역시 인종운동의 아이콘이 되었음. 출처
죽음의 신 "아누비스" 이야기.jpg (스압주의)
아쥬 자극적이고.. 아침드라마급 막장으로 흥미로운 이집트 신화 읽어보시죠 !! 이집트 신화에서 죽은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 1. 아누비스 머리는 무슨동물인가 처음엔 자칼(왼쪽) 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이집트 늑대(오른쪽) 라는 별도의 종으로 분리된 상태야 학명은 (Canis anthus lupaster) 2. 아누비스 출생의 비밀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서 4남매가 태어났다 (사실 게브와 누트는 친남매라 아버지 슈가 결혼을 반대해서 도망쳐서 지들끼리 결혼했다)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결혼했고 세트와 네프티스가 결혼하였다 그러나 성격 더러운 세트를 싫어했던 네프티스 (*세트는 신화에서 태풍, 모래바람, 이방인 등 강력함의 상징이다) 자신의 큰오빠 오시리스에게 호감을 품게된다 오시리스를 술취하게 한후 그와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얼마후 오시리스와의 사이에서 아누비스를 낳게 된다 *전승에 따라 세트의 아들이라는 썰도 있다 *오시리스의 아들인데 머리는 세트를 닮은건 묻지 말고 넘어가자 근데 세트도 짚이는건 있는모양 세트 : 내 아이 아닌거 같은데!!!!! 네프티스 : ;;;; 아누비스 : 최근에 한적도 없는데 어떻게 애를 낳냐고! 세트는 폭풍을 일으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고 네프티스는 갓난아기는 아누비스를 자기 언니 이시스에게 대신 키워달라 부탁한다 아누비스가 자기 남편의 또다른 자식인것도 모르고 이시스는 지극 정성으로 키워준다 3. 아누비스의 행적 아누비스가 성인이 되자 태양신 라 : 아누비스야, 넌 지금부터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거라 아누비스 : 명색이 세트와 네프티스의 아들인데 고작 그런 메신저나 시키는거? 태양신 라 : 청년백수시대인데 일자리 주는걸로도 고맙게 여겨라 지상과 저승을 맘대로 오가는 특성상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썰이 많이 겹치기도 한다 어쨌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아누비스 띵똥~ 다음 망자 들어오세요 이때 세트가 왕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친형 오시리스를 가두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트 : 쨔잔~ 형님 이 황금관 어때? 일단 만들었는데 사이즈 맞는 사람이 이집트에 안보이네 형이 한번 누워봐 오시리스 : 엇 사이즈 딱맞네ㅋㅋ 마치 날위해 만든거 같은... 세트 : ㅇㅇ 맞아 세트는 오시리스가 누운 관에 못질을 하여 늪지에 버려버린다 근데 관은 떠내려가 이집트에서 레바논까지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강가의 고목이 가지를 들어올려 관을 꿀꺽 삼켜버린다 마침 레바논에 출장왔다가 이걸 본 아누비스 아누비스 : 와 일이 꼬였네;; 우리 애비지만 좀 심한거 아니냐 빨리 이시스에게 알려야겠다!! (본인이 나무를 베서 꺼낼 생각은 안함) 아누비스의 말을 들은 이시스도 즉시 레바논으로 달려가 오시리스가 누워있는 관의 회수에 성공했다 관을 열었을때 이미 오시리스는 산소부족으로 죽어있었고... 일단 이집트까지 가져가긴 무리니까 인적없는 늪지에 관을 숨겨뒀다가 다시와서 가져와야겠어 이시스가 돌아간지 얼마후,세트가 레바논까지 사냥을 하러왔다 세트 : 오잉 저게뭐지?! 풀숲에 숨어있는 오시리스의 관 와;; 이게 왜 여기있지 오시리스의 시체를 토막내서 아예 사하라 사막과 중동에 다 뿌려라!!! 세트는 부하를 시켜 사막 곳곳에 오시리스의 시체들을 토막내 유기했다 보다못한 태양신 라 라 : 세트 저새끼가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너무 심하네;;; 야! 아누비스 잠깐 와봐!! 아누비스 : ?? 라 : 저승으로 인도해야 되는 새끼가 오시리스 몸뚱이는 토막내도 가만히 놔두냐? 직무유기 장난? 아누비스 : 그래도 우리 애비 세트의 일인데 저기까진 관여 안할려구요 라 : ㅉㅉ... 진짜 지 애비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아누비스 : 방금 뭐라 했음? 라 : 난 몰라, 너네 엄마에게 물어봐 당장 아누비스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따진다 아누비스 : 엄마! 태양신이 내 애비가 따로있다는데 이게 뭔소리야?! 결국 네프티스는 진실을 알려준다 ㅇㅇ.. 니 진짜 애비 사실 오시리스.... 아누비스가 쇼크먹은건 당연한거고 엄마, 이럴때가 아님, 세트가 오시리스 시체 토막내서 사막에 다 버림;;; 아누비스와 네프티스는 즉시 이시스를 찾아가서 오시리스 건을 말한다 이시스 : 세트 시발놈이 기어코 내 남편을 토막내다니... 근데 너흰 세트의 아들이자 아내이면서 왜 날 이렇게 도와주는거.. 네프티스 : 언니.. 사실 아누비스는 오시리스의 아들이야... ??!.... 뭐 지나간 일이니 신경안쓴다 일단 남편부터 찾자 이시스는 사막을 계속 돌아다니며 오시리스 시체토막을 하나하나 찾았고 하나로 맞춰서 발기되게 조정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발기 맞음) 이시스는 매의 모습으로 변해서 발기머신 오시리스와 관계를 통해 정자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몸뚱이를 저승으로 데려왔고 아누비스가 오시리스의 영혼을 육체 밖으로 꺼낸다 그렇게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다시 만나게 되고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이 된다 물론 아누비스는 여전히 따까리~ 얼마후 이시스는 아들 호루스를 낳는데 호루스는 힘을 길러 세트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호루스 : 삼촌새끼 오리시스의 원수 갚으러 왔다! 호루스와 세트가 전쟁을 벌일때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모자도 호루스의 편에 들어 세트와 싸운다 세트는 결국 잡혔지만 눈물의 사과문을 써서 이시스가 맘이 흔들려 결국 풀어줘버리고 아누비스와 호루스는 이걸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이후 세트는 신들의 회의에서 오시리스를 이은 다음 왕은 당연히 자신이라며 어필했고 세트 : 어이 태양신, 내가 맨날 님 괴롭히는 괴물들 잡아주는거 잊지 않으셨죠? 다른신들도 깝치면 다 몽둥이로 팰거임 라 : .... 회의에서 오로지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만이 호루스가 다음 왕이라면서 끝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후로도 아누비스는 호루스, 오시리스의 좋은 조력자로써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