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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과 해군의 대립: 아르헨티나의 경우
월요일은 역사지. 육군과 해군의 사이가 너무나 안 좋아서 전쟁을 멋대로 일으키고 사이 좋게 패망한 일본의 사례는 워낙 유명하다. 물론 각 군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야 전세계 군이 다 갖고 있는 것일 텐데, 같은 나라의 군 끼리 실제 전투를 벌인 사례까지 있다 하면, 일본의 군 대립이 뭔가 순한맛으로 느껴진다. 1960년대의 아르헨티나 얘기다. 때는 1963년이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영국해군을 본따 만들어졌고, 육군은 독일(프로이센) 육군을 본따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해군과 육군의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하면 누구? 페론이 생각날 것이다. 에비타가 나서는 건 훨씬 후인 1970년대 중반이고, 60년대는 페론이 이미 쿠데타로 실각한 이후였다. 이 페론주의/지지자들의 처리를 두고 사단이 발생한다. 페론이 원래 육군 출신 장성이었기 때문에 육군에서는 페론에게 동정적인 이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페론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내몰아낸 것까지는 찬성해도, 선거에서 페론주의자들의 입후보 정도는 허용해야 하지 않겠냐는 입장이었고 당시 Guido 대통령은 육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를 두고 해군은 격앙했다. 페론주의를 완전히 청산해야 나라에 앞날이 있다고 말이다. 이들은 모의 군사훈련에서 서로를 식별하는 색깔에 따라 블루(육군, Azules)와 레드(해군, Colorados)로 나뉘었다. 그런데 Guido 정권은 페론을 몰락시킨 육/해군의 합동 정권에 가까웠기 때문에 인사권을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1962년 쿠바 위기가 한참일 때(그래서 잊혀진 감이 있다), 국방부와 전쟁부 등의 주요 보직을 반-페론 강경파들이 차지하자 육군(블루)이 먼저 들고 일어선다. 이때 곧바로 블루와 레드가 부딪히지는 않았는데, 대통령은 일단 블루에게 그만 두라 명령하지만 블루는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라면서 오히려 부대를 수도로 행군시킨다. 그러자 해군이 나서서 자기들도 수도를 지키기 위해 행군을 시작하고 양군은 곧 부딪힌다. 그러나 공군이 블루 편을 들면서 상황이 급반전, 결국 조정 끝에 1962년은 블루가 승리한다. --------- 당연히 해군측은 불만이 드높았다. 원래의 계획대로 총선에 페론주의자들의 입후보가 가시화되고 있었고, 해군측은 한큐에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쿠데타에 몰입한다. 이때가 1963년 4월이다. 이번엔 대충 싸우다 말았던 9월 수준이 아니었다. 해군측은 해군 항공기를 동원하여 블루측의 탱크를 파괴했고 블루측도 공군과 합세하여 해군과 싸우기에 나섰다. 특히 공군의 보복적 성격의 폭격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레드가 밀리기 시작, 결국 수도를 블루가 탈환했고, 해군 기지(Puerto Belgrano)로 몰린 해군은 수성(守成)하다가 항복한다. 본격적인 해군 쿠데타의 좌절이었기 때문에, 62년 9월과 달리 63년 4월의 결과는 해군측에게 참혹했다. 관련자는 모조리 옷을 벗거나 강등당했고, 해군측이 동원했던 해병대 병력을 감축함은 물론, 소수로 나눠 여기저기 다 흩뿌려졌다. 아니 해군 자체가 다시 재조직화된다. 하지만 예정대로 치러진 선거에서 레드에 우호적인 정당이 우세를 점하는 결과가… 역시나 민심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존재다. 물론 블루에게는 군이 있었고, 마음에 안 들면 이제 마음대로 쿠데타를 저지르면 될 일이었다. 바로 70년대 군부독재, “더러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 짤방은 1963년 4월 당시, 블루와 레드의 진군 및 교전 지도이다. 출처는 위키피디어 주소: https://es.wikipedia.org/wiki/Azules_y_colorados 이야기는 위키피디어 및 아래 기사가 도움이 많이 됐다 Azules y colorados: http://www.elortiba.org/old/ayc.html
일본에 남아있는 양심
남자들은 학창시절 대부분 한번쯤은 본 영화 배틀로얄에 나오는 '카와다 쇼고' 본명 : 야마모토 타로 작중 으리남에 상남자기믹을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에 죽어갈때 슬픔을 자아낸 캐릭터 이 사람은 이 배틀로얄 말고도 한국영화 ' 마이웨이' 에서도 등장 여기서는 악질적인 일본군의 이미지로 연기하였다 그는 현재 연예계를 떠나 정치인이 돼었다  그리고  자민당 입장에선 답정너를 해야하는데 자꾸 팩트로 뚜들기니까 브레이크 거는거에 개빡친 타로의원 국회에서 이렇게 자민당의 막장행보에 극대노를 하며 항의 하고있다. 그리고 아베 앞에 걸어가 염주를 들고 묵념까지 했다 (사실상 너네(자민당)의 미래는 정해져있다 인정하라는 의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단 최면에 걸린거마냥 방사능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이렇게 전국을 돌면서 방사능의 심각성과 일본 아베정부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올바른 소리를 했다고. 탈원전 발언을 했다고, 자민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강제 퇴출당했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나이들어서도 좋은 인생을 살고싶고 좋은 배우로써 살고싶은데 방사능이, 일본의 거짓된 역사인식과 현 정권이 자신의 꿈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런 심한말까지 듣는게 일상이다.. 살해협박까지 받고있다.. 진실을 말해도 먹혀들지 않자 레이와 신센구미라는 정당을 아예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그대들(국민)이 이렇게 힘든건 그동안 정치에 너무 무관심했던 너희와 나의 잘못이며 이제부터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의 미래를 정상적으로 돌려내자고 연설한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펌) 냉혹한 큭 죽여라의 세계
여기사에 대한 환상은 예나 지금이나 잘 먹히는 거 같다 존나 멋지긴 하지 폴 플레이트 입은 여캐 놀랍게도 갑옷 짱짱하게 받쳐입고 빠따 휘두르면서 남자들 뚝배기를 까던 여기사들이 실존하긴 했다 그 중에 유명한게 '자귀 기사단'이다 1100년 경에 오늘날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는 개난장판이었다 알라알라를 외치는 알라쟁이들과 예수예수를 외치는 예수쟁이들이 존나 싸우고 있었거든 하여튼 이 새끼들은 1000년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어느날 알라쟁이들이 토르토사라고 불리는 도시 하나를 포위한다. 말 그대로 눈 떠보니까 도시 밖이 알라쟁이들로 꽉꽉 들어차있는걸 본 토르토사 사람들은 기절초풍한다 포위가 존나 쉽게 이루어진건 다 이 새끼 때문이다 당시 토르토사를 지키고 있던 건 바르셀로나 백작이었다. 이 새끼가 토르토사를 지켜야 했는데 2차 십자군 전쟁 나간답시고 병력을 몽땅 빼가서 몰빵 러쉬를 나간거다. 설상가상으로 바르셀로나 백작은 존나 앞뒤 생각이 없는 병신이라 도시 안에 남자를 하나도 안 남길 정도로 탈탈 털어서 러쉬를 갔다 알라쟁이들한테 빈집을 털러오라고 아주 초대장을 보낸 수준이다 브론즈도 본진에 미사일터렛 정도는 짓는데 븅신새끼 즉 성벽 안에 남자라곤 하나도 없고 여자들만 있는 상태였다 아마 알라쟁이들의 얼굴은 대충 이랬을 거다. 당시 상식으로 남자가 없는데 방어할 사람이 있겠냐. 거기다 도시 안에는 가녀린 유럽 귀족녀들이 가득했다. 아마 입이 찢어지다 못해 뒷통수를 한바퀴 왕복하지 않았을까 이교도 여편네에게 청소년에게 보여주면 부적절한 모든 것들을 자행할 생각으로 신이 난 알라쟁이들은 그렇게 성벽 위로 올라가 가녀린 유럽여성들을 만나고 그만 대갈통이 으깨져 성벽에서 떨어지고 만다 알라쟁이들에겐 유감스럽게도 토르토사는 일종의 요새 도시였고 무기도 갑옷도 존나 많았다. 도시 안에는 대장간들도 존나 많았고 남자들이 전쟁나간 동안 집안일 다 도맡아야했던 여성들도 존나게 많으셨다. 중세 시대 집안일은 요즘이랑 차원이 다르다. 하루종일 장작 패고 물기르고 심지어 대장간에서 망치질까지 존나 해야 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뭐같은 남자놈들이 미사일터렛도 안 짓고 엘리전을 가서 존나 꼬운 상태였다 이윽고 성 안에서는 분노의 욕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도시 포위될 때까지 남자새끼들 뭐했냐 이거야! 이 상황에서 알라쟁이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결국 빡친 여성들은 도움도 안 되는 남자새끼들한테 의지하는게 아니라 본인들이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바야흐로 걸즈 돈 니드 프린스, 걸즈 캔 두 애니띵이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순간이었다 전 토르토사의 여자들이 갑옷과 무기를 움켜쥐고 성벽으로 집결해 알라쟁이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중세 유럽의 집안일은 현대 막노동 이상의 험악함을 자랑한다 화끈한 토르토사 상여자들은 프라이팬이나 밀대 같은 걸 들고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에 존나 익숙한 자귀Hatchet, 즉 손도끼를 들고 나왔다. 평소엔 장작을 패던 손도끼지만 지금은 성벽을 기어올라오는 알라남충들의 뚝배기를 개박살내고 있다. 그야말로 자귀해의 현장이었다! 거져 주워먹을 줄 알았던 성벽 위에서 피보라가 불며 병사들이 반갈죽 당하는 걸 보던 알라쟁이들은 기겁한다 분명히 큭 죽여라를 기대했는데 큭 죽어라를 당하고 있었다 작대기 하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결국 뚝배기가 제대로 박살난 알남충들은 포위를 풀고 달아나버린다 아니 씨발 분명히 도시 먹혔을 줄 알았는데 왜 멀쩡하지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돌아온 바르셀로나 백작은 존나 당황했다 당시 유럽 남성 시각으로도 당연히 성이 버티지 못하고 함락됐을줄 알았던 것이다. 토르토사로 돌아온 바르셀로나 백작은 피칠갑을 한 여성들이 손도끼를 들고 흉흉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장면을 마주한다. 까놓고 말해 도시를 버림패 취급했는데 정작 도시는 멀쩡하니 자기 체면도 영 아니고 쪽팔리고... 바르셀로나 백작은 그렇게 자기 체면을 살려줄 방법을 찾다가 기발한 생각을 하나 해내니 토르토사의 여성들을 기사로 임명해버리게 된다 기사단의 상징은 알라쟁이들의 뚝배기를 조져버린 그 유명한 손도끼, 즉 자귀였다. 말이 자귀 기사단이지 늬앙스를 생각해보면 토르토사 손도끼파 정도 될 거다. 이렇게 전 인원이 여성인 자귀기사단이 탄생했다. 당시의 여성인권을 생각하면 전무후무한 존재였다. 토르토사 여성들에겐 그야말로 해피엔딩이었는데 기사단의 일원은 영원히, 심지어 그 후손까지도 세금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토르토사는 남자들만 세금을 내는 여자 기사단이 다스리는 도시가 되었다. 큭 죽여라 (출처) 이번편엔 특히 욕과 혐오단어들이 숨쉬듯 나와서 순화에 애 좀 먹었네요. 특정 그룹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모든 그룹의 혐오단어를 사용하셔서 웃음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남자든 여자든 예수든 알라든 모두 혐오하는데 그냥 순화를 안해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혐오로 대동단결!) 그래도 마음 다치실 빙글러들이 계실까 싶어 최선을 다해 욕을 거르고, 혐오 단어를 보통의 단어로 대체했습니다. 아무튼 남자들만 세금을 내는 여자 기사단이 다스리는 도시 토르토사! 재밌군요.
영화 '봉오동 전투' 국뽕 치사량 장면
큼큼 제가 어제 드디어 봉오동 전투를 봤지 뭡니까 스포일 수 있는 장면들인데 그래도 개봉한지 좀 됐고 이제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올라왔으니 올려봅니다 ㅇㅇ 영화 <봉오동전투> 中 스포 생략하고 어쨋든 정신나간 ㅈ본 원숭이떼한테 쫓기던 상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독립군들 다 죽기 직전임;; 표정에서 느껴지는 절망감 지렸다... 그 곳에 나타난 나비 한 마리 나이스~~~~샷~~~~~~~ 대한독립군 1919년 홍범도(洪範圖)가 의병 출신을 중심으로 창설한 항일 독립군 부대로 간도국민회와 연합하여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펼쳤으며,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국민회군 1920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延吉]에서 창설된 항일 독립군 부대로 대한독립군, 군무도독부 등과 연합하여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대한 군무도독부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이 단체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과 연합하여 활발한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였다. 1920년 안무(安武)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함으로써 총병력이 1천명을 상회하였다. 이 통합부대는 1920년 봄부터 주로 갑산·강계 등 압록강 대안(對岸) 함경북도지방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커다란 전과를 올렸으며, 6월에는 추격하여 오는 일본군을 봉오동에서 섬멸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대한 신민단 19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이 단은 북간도 무력독립운동 8개 단체의 하나로서 1920년 10월 20일 250명의 병력을 제1연대장 홍범도(洪範圖) 예하의 군으로 통합해 완루구·어랑촌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 몰아넣고 위쪽으로 독립군들 사방팔방에서 포위 아 독립군 어셈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야마 돌아서 쪽바리덜 칼로 썰어버리러 달리는 중 "사격." 봉오동 전투 삼둔자 주둔 독립군의 기습공격을 확인한 국경초소지대의 급보를 받은 일본군 남양수비대(南陽守備隊)는 1개 중대를 출동시켜 반격전을 전개해왔다. 독립군 연합부대 사령부는 1개 소대를 삼둔자 서남쪽 봉화리(烽火里)에 매복시키고, 이화일(李化日) 소대장이 이끄는 약간의 병력을 고지대에 배치시켜 총격전을 벌이면서 일본군을 유인하였다. 6월 6일 오전 10시 일본군은 잠복해 있는 독립군부대 앞까지 추격해왔다. 6월 6일 점심때까지 독립군은 100m 안팎의 산악 고지에서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일본군 남양수비대 1개 중대 병력 60명을 사살하였다. 독립군은 2명이 전사하고, 근처 마을에 거주하던 주민 9명이 유탄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 전투에서 발군의 전공을 세운 소대장 이화일의 유도작전은 높이 평가된다. 👉 소대장 이화일 = 극 중 이장하(류준열) 모티브 감독은 실존 인물의 이름을 이용하지 않고 무명의 독립군을 더 기억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허구의 인물을 사용했다고 함 ㅇㅇ 출처 : 쭉빵 아 이 장면에서 누워서 영화보다 벌떡 일어났습니다.. 진짜 개 지림...... 이걸보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면 당신은 방금 국적을 잃었습니다. 한 3년치 국뽕은 충전한 것 같음ㅇㅇ 대한 독립 만세!!!!!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파헤친 고종의 비자금의 진실
그것이 알고싶다 767회분 '고종 황제의 비자금은 어디로 갔는가' 1900년대 초반,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고종은 내탕금(황실이 사용하는 재정)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1907년에 100만마르크 정도의 금액을 독일은행에 비자금을 만들게 되는데  현시가로 따져보면 약 500억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고종이 쓴 비자금의 용도는 일본 영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러사람의 항일운동 자금줄이라 명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야사를 기록한 책이지만 한국야담사화에서도  독립운동가(우당 이회영 선생)에게 자금 하사 상하이임시정부 설립 밀사 파견을 기록했으며 그 외 도쿄보다 2년 일찍 전차 설립도 고종의 내탕금으로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07년 고종황제는 폐위를 당한 후,  고종은 러시아에 이범진 영국에 이한우 미국에 헐버트를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하는데 이런 부분들도 전부 고종 비자금,  즉 내탕금으로 해결하고자했습니다.  그래서 헐버트에게 위 자금을  찾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호머 헐버트(1863-1945)는 조선 후기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던 선교사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죽을때도 한국에 와서 죽었고 고향보다 한국에 묻히길 원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고종황제 비자금을 받아서 한국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헐버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하이에 있던 비자금을 '나베시마'라는 인물이 빼내가버렸습니다. (노어이...) 그알 팀이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했는데.. 1. 본사건물이 철거되면서 도이치 뱅크에 자료가 없다는 점 2. 1923년, 독일이 전쟁 배상금으로 많은 화폐를 찍어내면서 화폐개혁을 통해 10억마르크가 1마르크로 변했다는 점 3. 상속채권과 같은 채권의 재산권행사는 30년이라는 점 4.1952년 독일채권회의가 열렸지만,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여 권리가 없다는 점 이런 저런 이유들을 들어 손댈수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일전에 50만 마르크를 빼간 일본에게서는 법적인 책임이 없을까요? 나베시마.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최측근 인사로써, 외교관으로 활동한 인물로, 통감부의 공을 크게사 후에 외무총감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통감부래안을 살펴보면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의 비자금 실체를 알고 고종의 명령서를 위조하여 '덕화은행'의 돈을 인출해 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돈을 이완용 부자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사인한 사람이 이윤용(이완용의 형)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씹빨... 요즘 1905년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증거들이 하나둘씩 발견되면서, 일본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1965년 일본과의 협상에서 청구권의 관한 부분의 포기를 선언하였기 때문에 국제법상으로도 불리합니다.  고종이 독일에 보낸 서한 내용입니다 본인에게는 아직 2천만의 신민이 있습니다.... 절박함이 보이지만 이미 일본이 열강들과의 조약을 맺으며 동맹관계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에 관해  서울대 역사학과 이태진 명예교수님 의견. 경기대학교 안창모 교수님의 의견. 그알에서 예전에 다뤄줬던 고종황제 비자금편인데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예전에 그림자 살인이라는 영화가 나왔었다고 하네요.
[아.모.르] 민초를 위해 싸운 홍의장군(紅衣將軍)
안녕하세요! 스토리텔러 optimic입니다! 저는 원래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 편씩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슛토리, 아.모.르, 무서운 이야기 한 편씩... 그러면 일주일에 세 편... 그것은! 저의 욕심임을 알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많이, 재밌게 써서 집콕에 도움이 되고자 하지만!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군용...헿... 그래도 일주일에 최대한 한 두편씩은 올려보겠습니다! 그럼 바로 오늘의 아.모.르 시작합니다!! ----------------반말체로 변경중...-------------------------- 안녕! 오늘 제목을 보고 조금 의아한 사람도 있을거야! 지금까지 음악 이야기만 올리다가 갑자기 웬 홍의장군?? 지금까지는 음악 얘기만 올렸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엄청 많다고! 그렇기에 오늘은 음악 이야기가 아닌, 전혀 다른 장르의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웅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무용(武勇)과 담력에도 빼어난 사람. 또는,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뛰어난 일을 이루어 대중으로부터 열광적으로 존경받는 사람' 이야.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영웅 하면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가 보는 영화 속에서는 여러 영웅들이 있어. '어벤져스' 의 리더인 '캡틴 아메리카',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이언 맨' 등등... 다들 영화 속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물론 현실에도 여러 영웅들이 있어. 소속 팀 직원들. 청소, 빨래 등을 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본인의 연봉을 300억 넘게 포기한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도 영웅일 수 있지. 그렇지만 지금 시국에 가장 위대한 영웅들은 지금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코로나 퇴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의료계 사람들,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등 모두 접촉을 하지 않으려 하는 이 시국에, 그들은 바이러스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환자들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어. 정말 숭고할 정도로 말이지. 정말 단 한 분도 다치는 분들 없이 무사히 코로나가 지나갔으면 좋겠어. 이런 영웅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생각하다 보니, 우리의 옛 선조들 중에도 영웅들이 많더라고.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독립을 위해 싸우신 도산 안창호 선생님 등... 셀 수도 없는 영웅들이 많지. 그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거고. 그 중 친구들에게 소개할 오늘의 영웅. 아무런 대가 없이 백성들을 위해 모든 걸 걸고 싸우기 위해 일어난 남자. 오늘의 아.모.르의 주인공.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옷의 장군) 의병장 곽재우야. 곽재우 장군은 1552년 지금의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어. 의령 지역에서는 이름난 명가의 아들이었던 곽재우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지. 34세에 문과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오르려고 했지만, 그 당시 임금(개인적으로는 연산군과 더불어 무능한 임금 탑3라고 생각하는)인 선조가 그의 급제를 취소시켰어. 그 이유는 곽재우의 답안지에 선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야. 쪼잔하기는... 이후 조정, 선조에게 실망한 곽재우는 벼슬에 뜻을 버리고 40세 무렵까지 고향에서 세월을 보냈어. 겉보기에는 낚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듯 했지만, 이 때까지 농업경영에 관심을 가져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해. 곽재우라는 인물은 역사적 기록에 따라 설명이 제각각이야. 그 이유는 곽재우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공을 세우고 그걸 기록하거나 후세에 남기는 데 큰 관심이 없어 회고록 같은 걸 전혀 쓰지 않았기 때문이야. 다른 기록에서는 곽재우가 애초에 문과보다는 무과에 뜻이 있어 10여년 간 군역(오늘날로 따지면 현역 군인)에 몸담았다고 해. 그렇게 시월을 보내다 그의 나이 마흔.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이 일어났어. 전국 팔도가 불바다가 됐고, 무관,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어. 왜놈들이 휩쓸고 간 자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물을 타고 흘러갔지. 조선 땅에 왜놈들이 쳐들어오고, 경상도까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곽재우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노비들을 모두 모아 50명 정도 되는 의병대를 창설하고, 본인이 의병장으로 직접 부대를 지휘했어. 이 때 곽재우는 의병들의 무기와 식량, 갑옷을 마련하기 위해 본인의 모든 재산을 팔았다고 해. 심지어 처자식의 의복까지 가져다 팔았다니, 아내 입장에서는 조금 미울 수도 있지만, 고향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내놓은 곽재우가 정말 대단하지? 이 때부터 곽재우는 신묘한 전술로 경상도 지역에서 왜놈들을 몰아내기 시작했어. 소규모 병력에, 물자도 부족한 판국이니, 곽재우는 소수 정예를 이끌고 과감하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선호했어. 오늘날의 게릴라 전술이지. 곽재우는 의병대를 창설하고 열흘도 되지 않아 경상도에서 노략질을 하던 왜적들을 격퇴했어. 기록에 의하면 의병대 부장 4명과 함께 급습하여 왜적의 배 3척을 격파한 것이 첫 번째였다고 해. 이후 13명을 데리고 11척을 추가로 격파하며, 의병대 활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했지. 하지만 조선의 부패한 관리들은 곽재우를 가만 두지 않았고,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군사를 모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우기 시작했어. 곽재우는 또 다시 환멸을 느끼고 지리산으로 숨으려 했지. 그렇지만 그 썩어빠진 조선에도 이순신, 류승룡 등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피었잖아? 당시 경상도에서 벼슬을 하던 퇴계 이황의 제자인 초유사 김성일이 곽재우라는 사람을 알아보고 상소를 올려 정식 의병대로 편성시켜줬어. 그것도 모자라 그는 부관에게 자신이 모은 모든 병력을 곽재우에게 넘기라고 한 후, 통솔권까지 쥐어줬지. 그리고 이 무렵. 곽재우에게 천강홍의장군이라는 별칭을 갖게 해 준 정암진 전투가 일어나. 이 당시 곽재우는 누명이 겨우 풀리고, 자신의 의병대 50명만을 데리고 있는 상태였고, 일본군 6군이 경상도를 지나 전라도로 향하는 길이었어. 조선의 곡창지대인 일명 하삼도(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중 이미 경상도, 충청도는 점령했으니, 남은 전라도만 휩쓸면 조선군은 알아서 굶어죽겠다 싶은 왜군들의 생각이었지. 이 때 곽재우와 의병들은 갈대밭에서 매복 중이었고, 왜병 장군인 안코쿠지 에케이는 선봉대로 2000명 가량을 보내 정암진 지점마다 푯말을 세우게 했어. 고른 땅을 골라서 편하게 이동하기 위한 탐색이었지. 왜군들은 곳곳에 푯말을 세워놓고 떠났고, 그날 밤 곽재우와 의병들은 그 푯말들을 모두 늪지대에 옮겨 박아놨어. 다음 날 일본군 6군 선봉대는 당연히 푯말을 따라 진군했고, 모두 늪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됐을 때, 곽재우와 50인의 의병대가 그들을 기습했어. 늪지대에 빠진 걸로도 모자라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오니, 혼비백산한 왜군들은 크게 패배하였고, 기세가 꺾인 안코쿠지 에케이는 전라도 점령을 포기하고 후퇴했지. 이 때 곽재우는 자신과 체형이 비슷한 사람을 10명 정도 뽑아 같은 옷을 입게 했대. 그리고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왜군을 유인한 후, 어느 정도 도망치다가 신호를 보내면 사방에 숨어있던 가짜 곽재우들이 동시에 튀어나와 적들에게 혼란을 주는 전술이었어. 또 다른 전술로는 곽재우가 도망가는 척 하면서 숨으면, 저 멀리 있는 곽재우가 다시 산등성이를 넘고, 그 곽재우가 다시 숨으면, 또 다른 곽재우가 움직이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분신술과 축지법을 사용하는 걸로 착각해 놀라게 하는 전술들도 곽재우가 자주 사용했다고 해. 곽재우라는 사람이 워낙 기록이 적어 여러 가지 썰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일화에서는 곽재우가 전투를 하는 도중 다급하게 후퇴를 했고, 후퇴하면서 큰 상자들을 놓고 도망갔다고 해. 왜놈들은 이게 보물이나 식량일 것이라 생각해서 모두 모여 상자를 열었지. 그러나 그 상자 안에는 말벌집이 들어있었고, 성난 말벌들에게 공격당한 왜군들은 큰 부상을 입었대. 다음 전투에서 또 곽재우가 후퇴하면서 상자를 놓고 갔는데, 이미 호되게 당한 왜군들은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고 벌들을 죽이기 위해 상자에 불을 질렀대. 그렇지만 그 안에는 폭약이 들어있었고, 결과는 꽝! 적진 한 가운데에서 폭약이 터져 많은 왜군들이 당했다고 해. 다른 이야기로 곽재우의 의병대들은 항상 검게 옻칠을 한 바가지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대. 그걸로 물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하는 용도였지. 어느 날 곽재우는 또 후퇴하면서 그 바가지를 몇 개 놓고 도망쳤는데, 그 바가지는 옻칠 한 바가지가 아닌 대장간에서 무쇠로 만든 바가지였대. 일본군들은 그 바가지를 들어보고 놀라면서 '곽재우의 의병대는 모두 천하장사들만 모여있고, 그 천하장사들을 지휘하는 곽재우는 조선의 신이 보낸 사람일 것이다.' 라며 사기가 크게 꺾였다고 해. 그렇게 무수한 공을 세우며 경상도를 지킨 곽재우는 결국 조정에서 정3품 벼슬을 내리며 크게 치하했고, 그렇게 계속 나라를 위해 싸우던 도중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후 1600년 2월 한 장의 상소문을 선조에게 올린 후 곧바로 벼슬을 버리고 떠났어. 이 상소문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피해를 복구하고 백성들을 안정시켜야 하는 조정이 둘로 나뉘어 싸우기만 하고 지금 당장 왜적이 쳐들어오면 막을 길이 없으니 겉으로라도 왜적들과 화해를 도모하여 국력 증진에 힘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싸우기만 하는 무능한 조정 밑에 있을 이유가 없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대. 정말 할 말은 다 하는 직진남 상남자... 당연히 엄청나게 분노한 우리의 쫀쪼니 선조임금은 곽재우를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보냈고, 2년이 지난 후 다시 풀어줬어. 기록에서는 민심이 곽재우를 너무나 지지하고, 조정 내에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영웅에게 너무 과하다는 여론이 계속 일어났었다고 해. 그리고 대신들이 임진왜란 이후 공을 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하자는 이야기를 계속 했으나, 선조는 그대로 무시했다고 해. 기록이 많이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 때문이라고 하지... 공신록에 전혀 이름이 없으니... 둘로 나뉘어 싸우던 대신들조차 곽재우를 공신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했으나 쪼잔한 왕 선조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고 해. (쪼잔보스 선조...) 곽재우는 선조의 다음 왕인 광해군 때도 굽히지 않는 소신과 바른말로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넘겼어. 광해군은 곽재우의 공을 높이 사 여러 번 관직에 임명했지만, 할 말은 다 하고 살아야 하는 곽재우의 성격을 결국 버티지 못했지. 그리고 그는 1613년 정계를 완전히 떠나 초야에 묻혀 곡식을 끊고 솔잎과 이슬을 먹는 벽곡을 수행하며 살다가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그 당시에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도 있었대. 조선을 위해 대가 없이 싸우던 그가 죽었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옷 한벌에 거문고 하나, 작은 낚시배 한 척 뿐이었대. 아무것도 바란 것 없이, 받는 것 없이 한 평생을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다가 떠난 거지. 어떻게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정말 충실히 수행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해. 또한 대쪽같은 성품에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감함. 신묘한 전술들까지. 곽재우에 대한 기록이 너무 자유분방해서 내가 들려 준 이야기 중 허구로 내려오는 이야기들도 분명 있을거라 생각해. 그렇지만 공통적인 평가는 조선에 큰 공을 세우고, 민초를 위해 일어난 위대한 영웅이었다는 사실이지. 지금도 경남 의령에는 곽재우 장군의 기념관이나 동상, 생가 등이 있고, 의령의 마스코트로 삼으며 곽재우를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어. 우리 모두 오늘 하루는 우리 나라를 위해 애썼고, 애쓰고 있는 숨은 영웅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 이상 홍의장군 곽재우였어!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아.모.르]로 돌아올게! 다들 몸 건강 조심하고 집에만 있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