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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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시체로 만든 물감


1904년 6월 30일, 영국의 신문 ‘데일리 메일’에는 이런 광고가 실렸습니다.

‘물감으로 만들 이집트 미라, 적당한 가격에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고 놀랐겠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이미 몇 세기 전부터 미라는 도굴되어 문제 없이 여러 용도로 쓰여왔단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씻은 뒤 향신료, 밀랍, 톱밥 등의 복잡한 혼합 방부물로 염을 했습니다.
이 시신들이 잘 보존된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라죠.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금이나 보석 등을 통해 화려하게 장식된 관에 넣었고, 또 죽은 자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과 함께 매장했기에 피라미드 안은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시신을 미라로 만들 때 바르는 ‘역청’, 즉 아스팔트는 그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미라를 부숴서 만든 가루를 몸에 바르거나, 심지어 먹기까지 했습니다!

뭐라고요..? 제가 지금 뭘 본거죠..?

‘박물지’로 잘 알려진 로마 시대의 학자 대 플리니우스는 미라 가루를 치약으로 사용했고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로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미라 가루를 지혈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서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는 미라 가루의 효험을 철썩같이 믿었기에 미라와 대황 가루가 담긴 작은 주머니를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이런 미라 가루가 어떻게 ‘머미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물감이 되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약방에서는 안료도 같이 취급하고 있었거든요.



진한 갈색의 미라 가루는 호박색 기름과 섞여서 무려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쓰였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외젠 들라크루아가 파리 시청사에 그린 벽화에도 이 물감이 사용되었을 정도 였습니다.



머미 브라운은 너무 활발하게 사용되어서 피라미드 도굴은 물론이고 노예와 범죄자의 시신으로도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넘쳐나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유통업자들이 직접 미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머미 브라운도 19세기 말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료가 부족해진 것은 물론이고, 물감 자체의 질도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1881년,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는 점심식사를 하던 도중, 친척이 물감상의 창고에서 미라를 갈아내는 광경에 대해 얘기하는 바람에 자기가 사용하던 머미 브라운이 어디서 온 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당장 자신의 작업실로 달려가서 머미 브라운의 물감 튜브를 꺼내 들고, 적절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지요.

그 자리에는 에드워드 번 존스의 외조카이자 후일 <정글 북>을 집필한 러디어드 키플링도 있었는데요.
당시 십대의 청소년이었던 그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물감 튜브를 매장하기 위해 삽에 발을 올려놓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지금은 해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미라를 그렇게 마구잡이로 갈아서 물감으로 만들었다니.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이루어졌던 일이라니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모...모야...

'미라=사람시체' 이 공식을 모르는 거야..?
사람 시체로 물감을 만들고 치약을 만들어 쓰고 지혈제로 썼다고..????????
미쳤습니까 휴먼 ㅡㅡ;;;;;;;;;;;;;
남의나라 문화유적이라고 ㅈㄴ 막 썼구만.........미쳤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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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말임 프랑스 장례 풍습이 어떤지 모르지만 프랑스 국왕의 무덤에 가서 관짝 뜯어다 그걸로 화장실 문 만들면 좋아할까 남의나라 문화라고 막 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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