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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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은 미국인

동해에 고래가 많이 잡힌다는 소문을 듣고 포경을 하러 온 미국 선원들이었음.

조선 기록 다음에 미국인들 증언도 있어

1855년 [철종 6년] 7월 2일

- 철종 어진


강원도 통천군 임도면 남애면 존위(尊位) 김철이, 후망감관(候望感官) 이완백 등이 보고했다.

술시[저녁 5-7시] 경에 이양선 작은 배 한 척이 풍랑에 떠밀려 거의 모두 파괴 되었는데 이양인 4명이 겨우 죽음을 면하고 기어서 육지에 올라 왔으므로 동네에서 잠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고를 받은 현감이 남애진(현재의 북한 지역, 강원도)에 달려가 먼저 김철이 등을 불러 당초에 상륙한 곡절을 상세히 물었더니, 그들이 말하기를 근래에 장마가 져서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고 풍랑이 크게 일어 해안 주민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본진 앞바다에 갑자기 작은 배 한척과 사람들이 함께 표류하다가  배는 돌에 부딪혀 파쇄 되고 사람은 간신히 잠수하여 육지로 올라온 자가 4명이었다고 하였다.

이는 바다를 지나가던 상선이 침몰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서 보니 그들은 곧 이국인이어서 더욱 놀랍고 괴이하여 문답을 해보려고 하였더니 언어가 불통하고 또 필담(글로 대화)을 해보자 했으나 문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머리를 숙이고 울면서 구조를 바라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그들 4명을 일제히 불러 이르게 하여 보니, 몸의 생긴 모양이 혹은 크고 혹은 작아 모두 우리나라 사람과 서로 닮았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두발의 빛깔이 검고 길이가 세치 정도 였으며 얼굴 빛깔은 반홍 반백이었다.

수염은 짧고 콧마루는 높고 눈동자는 푸른색이었다.
오른쪽 팔뚝 위에 밧줄을 풀어놓은 것 같은 모양의 문신을 하고 있었다.

상의는 속에는 흰무늬의 비단 저고리를, 밖에는 녹색 옷을 입었고 하의는 검은 무늬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검은 모자를 쓰고 발에는 검은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한 사람은 위에서 말한 사람과 비슷했으나 수염이 없었다.
모두 의복에는 단추를 달아 풀고 끼우게 하고 있었다.

처음에 말로 심문하였더니 모두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을 하였고, 다시 한자와 한글을 써서 보였더니 역시 서로 통하지 않았다.

다만 손, 발, 입 및 눈을 놀려 형용하였는데 바닷가에 있는 대선[大船]을 가리키면서 세 손가락을 우뚝 세워 세 돛 범선의 형태를 나타내고 입을 오무려 숨을 내 뿜어 바람이 전복한 모양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모래위에 엎드려 눈을 감고 사람이 죽은 시늉을 하고 땅을 파고 옷을 묻고 울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는 틀림없이 동료가 익사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남방을 가리키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것은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건져낸 파선의 집물[什物]은 일일이 조사했는데 판목은 산산조각으로 파쇄 되었다.

소지품은 지남철 한 개, 쇠도끼 한 개, 한글도 범자(산스크리트어)도 아닌 글이 당지(唐紙)에 책자 5권 및 의복 등물이 있었는데, 모두 숫자를 맞추어 조사해 보고 봉하였다.

이 강원 감사는 장계에서 이와같은 내용을 밝힌 뒤에 역관을 파견하여 심문하고 배를 만들어 줘 이들에게 다시 바닷길로 귀향시키는 문제를 조정에 품의하였다.

그러나 조정은 이들을 이양인들이 많다는 북경을 통하여귀향시키기로 하였다.

- 19세기 선박의 모습



조선인들은 몰랐겠지만 이들은 사실 난파 선원은 아니었고, 
- 도망에 사용된 작은 보트가 난파된 건 맞긴 함

미국의 최대 포경 기지인 '뉴 배드포드 항' 소속 포경선 '투 브라더스 호'에서 도망친 선원들이었음.
- 미국의 기록에서 확인 가능 

당시 선원들의 삶은 너무 고달파서 견디지 못한 선원들이 도망친 것 




<도망친 선원들의 명단>

멜빌 켈시 23세
토마스 맥과이어 21세
데이비드 번스 20세
에드와드 브레이리 18세

- 19세기 미국 선원들의 모습




아래는 당시 미국 선원들이 직접 적은 글이야.



(도망 선원 중 제일 연장자, '켈시'의 증언)

우리가 '투 브라더즈 호'를 타고 1854년 6월 13일 미국 '뉴 베드포드 항구'를 떠나 북태평양에서 일년간 조업을 하다가 1855년 6월 조선해역으로 이동했다.

우리 배가 조선 연안에 접근했을 때 위도 40도선에서 다른 3명과 함께 탈출했다.

우리가 30일간 머무른 마을에서 원주민들(조선인)은 우리의 짐을 꾸리고 우리를 말에 태워 
우리와 함께 국경으로 향했다.

거기서 우리는 청나라 관리들에게 인도 되었고 우리는 수레를 타고 북경으로 갔다.

북경에는 약 20일간 머물렀다.

러시아 외교관들(정교회 선교사들)이 우리를 찾아와서 보고 
우리의 처지를 청의 황제에게 잘 설명해주어서 귀국 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51일전에 북경을 떠났다.

러시아인들이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황제가 우리들에게 상해로 가는 여비로 쓰라고 은화를 하사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은화를 우리는 한 푼도 보지 못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굶어 죽을 뻔했다.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도 않아서 우리는 북경까지 오면서도 청의 호송 관리들과 싸움질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물을 원했으나 그들이 본체만체 했기 때문이다.
중과부적이던 우리는 그들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았다.

우리 네 명은 타던 배에서 선장과 항해사들에게 내내 학대를 받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 탈출했다.

생필품은 턱없이 부족했고 먹을 것도 제대로 얻어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벌로서 선체에 페인트 칠하는 고된 일을 자주해야 했다.
걸핏하면 선장의 구타를 당해야 했다.

우리가 불평을 하면 적게나마 주었던 음식물조차 빼앗아
가져가 버리고 조금도 주지 않았다.




(선원 '맥과이어'의 증언)

1855 년 6월26일 부로튼 만 맞은 편의 타타르(조선) 연안에서 우리 네 사람은 본선의 보트 1척을 탈취하여 탈출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남쪽으로 향하여 갔는데 7월1일 조선연안에서 상륙할 때, 우리의 보트가 부서졌다.
해안에는 원주민들(조선인)이 있었으며 그들은 우리를 잘 대우했고 의복과 음식을 후하게 주었다.



(선원 '번스'의 증언)


우리는 위도 약 40도 동해 조선 해안 근처에서 6월26일 밤 12시에 포경선 투 브라더즈를 떠났다.
우리는 배에서 보트 한 척을 훔쳐 타고 6일 동안 남쪽으로 갔다.
그때 광풍(狂風)이 불어서 그날 밤 우리는 육지에서 떨어진 곳에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상륙했는데 상륙 도중에 보트가 부서졌다.
우리를 발견한 원주민들은 우리를 잘 보살펴 주었다..
조선인들은 우리를 인간답게 대우하였다.






하멜 같은 경우는 사실 운이 무척 나쁜 케이스 였고

당시 조선은 청에 대한 전쟁을 준비 중이었기에, 이들을 중국으로 놓아줄 수 없었음.
- 이들이 조선이 전쟁 준비 중이라는 것을 발설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 

하지만 본래 조선은 표류자는 후하게 대접해서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전통이었음 (柔遠之義 : 멀리서 온 손님을 잘 대접하다)

조선은 이후(10년 뒤, 1865년)에 표류한 미국인들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줌 



출처 : 쭉빵카페


모야^^

조선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아휴 우리 조상님들 따뜻한 것 좀 보소~~~
저 외국인들 인생은 엄청 파란만장하네ㅇㅇ
나였음 죽는 그 날까지 내가 말여... 그 시절 배에서 탈출해서 동양의 작은 나라에.... 구구절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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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다른건 다 돼도 고양이 기르는건 절대 안된다
밑에 분들은 모두 딸/아들이 고양이 기르자고 하는걸 완강히 반대하시던 분들임 몇개월 뒤.. 고양이 털이 싫다던 분 가족 캠프파이어 행사하는데 고양이 다칠까봐 조심하시는 중 일하실 때 '키티 익스프레스'라고 하면서 박스끌고 고양이 놀아주시는 모습이라고 함 ㅋㅋㅋㅋㅋㅋㅋㅋ 몇개월 전 : 고양이 키울거면 너 나갈때마다 데리고 나가. 몇개월 뒤 : 진짜 얘 데리고 나갈거야...? 방 안에 고양이 들이는건 절대 안된다던 분 고양이보고 창밖 구경하라고 들어주시는 모습 '고양이 있으면 가구공간만 좁아지잖아 ㅡㅡ' 라고 하시던 분 '고양이 데려오면 내가 다 빡세게 훈련시켜버려야지' 하시던 분 주말에 장보고 온 것들 고양이한테 보고하시는 중 고양이에게 노래들려주시는 중 '고양이는. 진짜로. 안된다.' 하시던 분 '그 망할 고양이좀 침대에서 내려가라고 해!!!' 하시던 분 고양이는 그냥 싫다고 하시던 분. 저러고 있는 이유: 고양이한테 뽀뽀하려고 출처: Boredpanda 사진 속 모습은 너무 사랑스럽고 따숩지만.. 어떤 동물이든 입양을 결정할 땐 꼭 같이 사는 사람들과 합의를 해야됩니당 ( •̀_•́ ) 안그러면 유기, 학대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돼욧 ๑•̀㉨•́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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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2008년으로 되돌아간다. 2008년, 캐나다의 청년 빈센트 라모스는 "누군가는 절대 들키지 않는 사생활을 원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블랙베리 핸드폰에서 카메라, 마이크, GPS를 제거하고 전용 메신저를 탑재한 단말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2010년대 북미를 떠들썩하게 만든 "팬텀 시큐어" 의 시작이었다. 빈센트 라모스는 개인사생활 보호를 위해 팬텀 시큐어를 운동선수나 인플루언서들에게 제공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암호화 메신저를 노리는 것은 범죄조직이었고, 빈센트는 대놓고 범죄조직에게 팬텀 시큐어를 판매해 수백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2018년, 결국 빈센트 라모스는 범죄단체로 묶여 체포당했고 FBI는 팬텀 시큐어에 백도어를 설치해달라는 조건으로 사법거래를 제안했으나 라모스는 해당 거래를 거절했고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팬텀 시큐어는 서비스를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 범죄단체들은 수사기관에게 걸리지 않는 새로운 암호화 메신저를 찾아다녔다. 그게 바로 안드로이드 기반 커스텀 OS인 "아케인OS" 와 전용 메신저 "AN0M" 이 설치된 스마트폰이었다. 휴대전화 본체만 200만원, 연간 사용료만 150만원 지하세계에서 입소문과 추천인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AN0M 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하지만 AN0M 자체가 FBI의 함정이었다. 팬텀 시큐어의 대표 라모스는 FBI에 협력하지 않았으나 그 부하직원들이 사법거래에 응하면서 약 2억원의 원조를 받아 AN0M 단말기를 만든 것이었다. 사실 만드는 것보다 AN0M 을 퍼트리는 것이 더 중요했는데 호주의 가장 거대한 마약상인 Hakan AYIK 가 우연히 AN0M 을 사용하면서 그와 연계된 다른 범죄자와 범죄조직들이 AN0M 을 세계 곳곳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마약 거래라면 증거를 한번에 모아 일망타진하면 좋겠지만 AN0M 에는 살인 모의 등의 사건도 지속해서 올라왔고 결국 18개월간 21개의 사건에서는 직접 개입했는데 이는 AN0M 감시가 드러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일망타진, 일명 "빅뱅" 예정일은 절대적 보안이 지켜졌고 2021년 6월 7일 "빅뱅" 작전이 실행. 전세계에서 800명 이상의 범죄자가 검거 톤단위가 넘어가는 마약, 수백개의 총기, 엄청난 양의 현금과 최소 수백억원 규모의 암호화폐가 압수되었다. FBI, 유럽연합, 호주경찰의 주도로 전세계 각국의 경찰이 참여한 이 계획이 바로 "트로이의 방패" 였다. (출처) 존멋이네 영화 한 편 벌써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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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 재생하고 보면 효과 X100 (영화 속 BGM) 임수정 (수미)과 문근영 (수연)이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시골에 내려오는데  신경이 예민한 새엄마 염정아 (은주)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 (+ 아버지 김갑수 (무현))  + 그리고 집안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엔딩) 임수정과 문근영 엄마에게는 엄마가 병이 있는 상태 <- 이 엄마를 옆에서 간호하던 사람이 염정아  그리고 김갑수와 염정아는 불륜  불륜 충격으로 엄마는 문근영 방 옷장에서 목 매달아 자살, 문근영이 엄마 꺼내려다가 옷장이 무너지고 옷장 + 엄마 시체 밑에 깔리게 된 문근영  그 소리를 듣고 올라온 염정아  처음엔 구해주지 않으려다가 이건 아니지 싶어 뒤돌아서 구하려다가 방에서 나오는 임수정이랑 마주침  염정아 : 무슨 소리 못 들었니?  구해줘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임수정 : 여긴 왜 올라온 거야? (불륜중일 텐데) 안방은 아랫층 아냐? 이제 엄마 행세까지 하려고 하네  쏘아붇이는 임수정  염정아 : "너 지금 이 순간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명심해."  임수정 : "당신이랑 이렇게 마주하는 것보다 더 후회할 일이 있겠어?"  집 밖으로 나가는 임수정과 흘러나오는 BGM 제목이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  그 순간에 문근영은 압사당해 죽어가는 중. 그걸 알 리 없는 임수정은 창문 발코니 쪽 염정아만 보게 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는 임수정 즉  문근영의 죽음에 임수정은 미쳐버리고  정신병원에 내내 갇혀있다가 아빠 김갑수랑 둘이 요양하러 집에 도착  미쳐버린 임수정은 혼자서 염정아+문근영+본인 1인 3역을 하면서 기이한 일들을 벌이고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갇힘  모든 사건과 죄책감으로부터 회피하는 아버지, 죄책감을 덜어버리려 하지만 사실은 시달리고 있는 염정아  죄책감으로 인해 인격이 분리되어 임수정, 그리고 피해자인 문근영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구하지 못한 그날) 자신과 염정아를 벌하는 임수정의 망상   출처 : https://theqoo.net/1719862406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공포영화인데 영상미에 스토리에 ost까지 다 잡은 명작이죠 지난 7월 재개봉 했는데 못본 걸 아직까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ㅠ..
숙종이 내가 돼지냐며 송편을 내동댕이 친 이유.txt
숙종은 평소에 신분을 가린 채 궁궐 바깥에 나가 민심을 살피는 것을 즐겨 했는데 그 일화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숙종은 밤에 미행으로 남산골을 순시하였다. 밤이 깊은데 어디서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나서 소리를 쫓아가 보니 어느 오막살이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창 사이로 안을 엿보니 젊은 남편은 글을 읽고 새댁은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젊은 선비 내외의 모습은 비록 가난하지만 귀엽고 흐뭇해 보였다. 얼마쯤 지나 젊은 남편은 책을 덮으며 속이 출출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새댁이 조용히 일어나 벽장 속에서 주발 뚜껑에 담은 송편 두 개를 꺼내 놓으며 드시라고 한다. 남편은 반가워하며 얼른 한 개를 집어먹더니 두 개째 집어 들었다. 그러자 임금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시장하기는 마찬가지 일 텐데 어찌 혼자서 두 개를 다 먹나?'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송편 하나를 입에 물고 새댁의 입에 넣어주는데 서로 사양하며 즐기는 것이었다. 숙종은 부부의 애정에 감동하며 부러운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나인을 불러 송편이 먹고 싶다고 하자 수라간이 온통 난리를 치르며 큰 수라상이 들어오고 큰 푼주에 송편을 높다랗게 괴어 전후좌우 옹위를 받으며 요란스럽게 들고 오지 않는가... 눈앞에 아른거리던 어젯밤의 아름다운 광경은 깨어져 버리고 울컥 화가 치민 왕은 "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 하면서 송편 그릇을 뒤집어엎으며 내동댕이 쳤다. 모두 왕의 심정을 알리 없어 의아해 할 뿐이었지만 그 후 내막을 알게 되고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의 맛보다 못하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근데 이런데다 담아주니 나라도 씅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야 성질머리 보소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사이즈면 ㅅㅂ 마을잔치 아니냨ㅋㅋㅋ 내가 수라간 궁녀였어도 주상전하께 송편을 대령하라~~~~~~~~~~~~~~ 해서 허겁지겁 다들 모여앉아 500개정도 만들고 그중에 제일 예쁜놈 2~30개만 올린건데 그걸 걷어차시네 ㅇㅇ 현타 오지게 올듯 ㅠ
각 월별 여행가기 좋은 우리나라의 도시들
1월 - 전라북도 무주/장수 눈꽃산으로 유명한 덕유산 일출 스팟으로도 유명하고 산이 눈에 쌓인걸 보고 있으면 평화로워짐 2월 - 경상남도 통영 굴 처돌이들 모이십시오,,,, 2월은 굴을 먹는 달입니다,,, 굴도 굴이지만 예술가가 많이 나온 지역답게 경관이 너무 이쁨 3월 - 전라북도 전주 전주는 언제 가도 괜찮은 지역이지만 3월에 가면 향교에 산수유 꽃이 피어서 한복입고 사진찍기 너무 좋음 ㅠㅠ 음식 흡입하는거 잊지 말기. 4월 - 경상남도 진해 군항제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4월만 되면 사람이 미어터지지만.. 그래도 벚꽃이 다발이다 느낄만한 곳은 아직 진해말고는 못봤넴.. + 대구 이월드나 제천, 김제 모악산 등 다른 벚꽃 지역도 있다고 함! 5월 -  전라남도 순천만 5월이 되면 순천에서는 봄꽃 축제가 열립니다,, 기사로 찾아봤을 때는 총 1억송이가 심어져 있다고 합니다,,, 6월 - 전라남도 담양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은 꼭 6월에 느껴보도록 하십시오 더 늦게 가면 덥습니다. 더워 뒤집니다. 7월 - 전라남도 여수 제가 쳐먹는걸 좋아해서 그런지 쓰다보니 전라도 여행지가 많긴 하네요,, 크흠, 큼,,그래도 여수 밤바다 보기에는 여름이 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8월 - 충청남도 태안 몇년 전부터 여름 여행지에 종종 언급되기 시작한 태안입니다,, 갯벌, 휴양림, 해수욕장, 빛 축제 등등 즐길거리가 무척이나 많아요 9월 - 경상북도 경주 9월 밤에 경주에서 본 밤하늘을 아직도 잊지못훼,,, 왜 수학여행때는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이쁜 관광지가 너무 많았음 경주월드는 덤임 10월 - 충청남도 아산 온천 ㅎㅇ 딱 날씨 쌀쌀해질때 온천가면 이것만큼이나 행복한게 없음 천안에서도 매우 가까워서 서울에서 가기 편함! 11월 - 전라북도 정읍 어르신들이 11월만 되면 내장산 가는 관광버스를 괜히 타는게 아녀유 정읍 내장산 단풍보면 압도당함 그냥 집에서 디즈니 보는게 좋은 시절에 엄빠 손잡고 끌려가서 봤던 단풍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음 12월 - 강원도 인제 인제라고 하면 그냥 군대 있는 곳 아냐? 했었지.. 근데 겨울만 되면 분위기 난리남 라임 좀 쩌는듯ㅋ 한가지 단점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교통이 마비될 수 있음 전남 장성 백양사도 이쁘대! - 맨날 가든/모텔 간판들만 잔뜩 붙은 여행지만 생각하지 말고 잘 돌아보면 좋은 여행지 넘넘 많은듯해서 써봄! 경험을 바탕으로 쓴 거니까 여긴 왜 없어 라는 댓보단 여기도 좋더라는 댓으로 달아줬으면 좋겠어 ㅠㅠ 출처ㅣ쭉빵카페
어마어마하게 뒤끝 쩔어줬던 미군 장교.history
1905년 상반기  일본, 요코스카시 장갑순양함 USS 신시내티가 일본에 잠시 정박해 있는 동안 승조원들이 일본 관광을 하고 있었고, 그 중 한 소위가 가마쿠라 불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 불상 꽤나 멋있네."  "이 지갑은 이제 제 겁니다!"  그런데 불상에 정신이 팔린 그의 지갑을 어느 소매치기가 훔쳐갔다.  "야, 야 이 새끼야 내 지갑 내놔, 어이 거기 순사님 저 새끼 좀 잡아봐요!"  "귀찮은데스" "이 시발년이" 그렇게 그 소위는 경찰을 포함해 다수의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협조해주지 않았고 결국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두 번 다시 일본은 쳐다보지도 않기로 결심한다.  애석하게도 일본인들이 그렇게 좆같이 취급한 소위는 바로 어니스트 킹 (Ernest J. King)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 총사령관이자 동시에(!) 해군참모총장이 되시는 리히, 니미츠, 홀시와 함께 유일한 미 해군 원수가 되실 몸이었다. 킹은 이 사건 이후로 일본에 대해 악감정을 많이 품고 내내 일본 욕을 해댔으며, 미 해군이 일본 본토 공격에 찬성하자 태평양함대 최고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이제 40년 전에 잃어버린 지갑의 복수를 하러 가시겠군" 이라고 농담을 날렸다고 한다. 출처 뒤끝 쩌네 ㅋㅋㅋ 하지만 적이 같으므로 나는 참 싱글벙글 ㅋㅋㅋㅋ 이거 보니까 또 생각나는 현대인 내한했을 때 공항에서 어떤 팬이 싸인받으려고 가져온 매직으로 노엘이 아끼는 자켓에 그만... 하지만 노엘은 한국을 매우 사랑하지 싱글벙글
호랑이...아니 노예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인싸된다
아유바 슐레이만 디알로는 세네갈의 금수저 노예상인이었다. 노예가 아니라 노예상인이라는데 주목 30살에 a4용지 좀 사고 겸사겸사 노예 두명도 팔려고 시장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다 다른 아프리카 부족에게 납치 당해서 노예상인에서 노예로 다운그레이드를 당했다 저런! 사실 흑인 노예 무역은 상당수가 부유한 흑인이 가난한 흑인을 납치하거나 사들여서 되팔렘하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뭐 이걸로 노예무역을 정당화하진 말구 노예제와 인종차별은 둘 다 굉장히 나쁜 짓인거에오. 흑인노예는 우사스 침대 위에 묶여있는 사이가 하나로 충분해 아무튼 30세의 아유바씨는 노예라는걸 나타내기 위해 머리가 빡빡 밀린후 팔려나갔다. 이 와중에 우리집은 금수저라 내 몸값 낼 수 있다고 열심히 설득했다. 노예가 노예주한테 애원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게 정상인데 인싸력이 워낙 좋았는지 집에 우편까지 보내는데 성공했다! 근데 정작 배달부가 농땡이를 까느라 늦어서 몸값 가져오기 전에 노예 핫플레이스 미국으로 팔려가고 말았다. 끌려간 곳은 메릴랜드의 담배농장이었다. 저런! 금수저 엘리트로 일하다가 담배나 따게된 아유바씨였지만 기죽지 않고 특유의 인싸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주목을 받았다. 담배 말기를 개못해서 외양간에서 근무했는데 유식하고 성격이 개인싸라 많은 백인들의 호감을 샀다. 머리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두꺼운 꾸란을 기억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배껴서 썼다고 한다. 무슐림이다보니 노예 주제에 하루 다섯번 꼬박꼬박 기도타임을 지켰는데 들켜도 인싸력으로 어떻게든 넘겼다 3년동안 하얀불알친구들을 만든 아유바씨는 불알친구들을 꼬셔서 헬메리카를 탈출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도 상류층과 어울리면서 또 불알친구들을 잔뜩 만들면서 친목질을 했다. 백인 친구들이 아유바씨를 기독교인으로 만들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그때도 인싸력으로 요 프렌즈 난 프렌즈를 배신하지 않듯 알라도 배신하지 않아 와썹 대충 넘겼다. 가끔 신앙인들과 토론배틀을 뜨기도 했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 인간 지금 노예임 얼마나 인싸였단 말인가. 맨 위의 초상화도 이때 그렸는데 영국옷이 아니라 고향옷을 입고 찍었다 아무튼 그렇게 아유바씨는 영국에서 3개월 정도 지내면서 돈 많은 인싸친구들을 잔뜩 만들었고 친구들이 60파운드나 되는 거금을 모아준 끝에 탈노예에 성공했다 인싸친구들과 씬나는 작별파티를 즐긴 후에 대서양을 건너 당당하게 집에 돌아왔다. 겨우 4년 걸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세네갈이 전쟁에 초토화됐고 아빠도 죽었고 아내들은 다 아유바가 죽은줄 알고 재혼한 상태여서 살짝 마음이 아팠지만 또 인싸력을 발휘해서 금방 금수저로 복귀하고 신나는 노예탈출기를 책으로 써서 돈을 많이 벌었다. 아유바가 쓴 책은 굉장히 인기있어서 영국이랑 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인싸는 노예굴에 끌려가도 4년이면 충분하다 인싸 강해! (출처) 인싸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