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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몇 시간 전에 뜬 네이트판 역대급 하객룩
결혼식은 약 세달전에 했었습니다. 결혼식 준비에만 거의 10개월이 걸렸고, 준비하던 와중에 코로나가 터져서 정말 마음고생 많이했었어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말 판에서만 보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제 결혼식에서 벌어졌어요. 중학교 동창중 한명이 이런 하객룩을 입고 왔더라구요? (참고로, 결혼식 초대할만큼 친하거나 연락하던 사이도 아님. 작년 12월쯤 그친구가 결혼하는데 부케 받을 사람이 없다며 저한테 부탁을 했고, 어차피 어려운 일은 아니다싶어 결혼식 참여해서 부케를 받아줌.) 그렇게 제 결혼식에도 부르게 되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네요. 화이트 드레스같은 원피스에 화이트 구두, 그리고 화이트톤의 가방 .. 사실 그친구가 신부대기실에 도착하기 전에 카톡이 왔었어요. 옷이 없어서 밝은톤을 입게 되었다며. 구석에만 있겠다는식으로 카톡이 왔었고, 너무 정신없어서 잠깐 화면에 뜨는 내용만 보고 별생각 안했는데.. 정말 보자마자 너무너무 놀랬어요;; 티아라만 쓰면 누가 신부인지 모를만큼 이쁘게 꾸미고 왔더라구요 심지어 어깨 뽕... 너무 경악해서 뒤로 나자빠질뻔 했네요. 해봤자 얼마나 심하길래 라고 생각하실분들은 아래 사진 봐주세요. 구석에만 있겠다던 그아이는 함께 사진도 많이 찍고 단체사진 때 맨~~~앞줄에서 찍어주었어요 ^^ 아래 사진처럼 이쁜 화이트 원피스가 모두 나오게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결혼식 특성상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카메라 두대 + 영상카메라 1대 총 3대의 카메라가 찍고 있기에 표정관리하랴, 인사하랴, 너무나 정신없었습니다ㅠ 그렇게 피로연까지 마치고, 다음날 오후에 연락을 했습니다. 도대체 왜이렇게 입고 왔냐고, 그랬더니 이친구가 기분상했다면 정말 미안하다며 옷장에 단정한 원피스도 없고, 하객룩으로 입을 옷이 없어서 구입한 옷이 아래 사진의 원피스라고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은 화이트를 너무 좋아해서, 자기 결혼식에 모든 하객이 화이트톤 하객룩을 입고와서 같이 사진을찍는게 로망이였대요.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본인 결혼식에 화이트색 입고 오라고도 했대요. 그래서 제가,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결혼식에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데 올화이트로 입고 가는 생각을 상식적으로 하지도 않고, 왜 그 로망을 내 결혼식에서 이룰려고 하냐고.. 신부가 저친구한데 뭐 크게 잘못한거 있어? 라는둥, 그런소리 듣는것도 기분나쁘고 올 화이트로 입고온 것도 상당히 기분나쁘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어요. 뒤에서 욕하는것도 제성격상 맞지않지만, 아닌건 아니다 알려주어야 그 친구가 다른 결혼식에 가서도 실수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보살) 어쨌든, 그렇게 그친구가 기분상하게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기에 저도 100프로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기분이 풀렸고 카톡상으론 잘 마무리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친구가 저를 먼저 언팔했더라구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에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뒤에선 기분나빴나봐요?? 결혼사진 올리는 제피드가 꼴보기 싫었을까요? 아님, 솔직하게 말한 제가 미웠을까요? 본식 촬영 사진을 전달받고 있는 요즘, 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을 다시 곱씹게 되는데 아래와 같은 사진을 보고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제가 너무한건가요? 출처 : 네이트 판 으아닛!?!?!?!?!?!?! 저건 너무 오바아닙니까아!?!?!?!? (경악) 어깨뽕은 대체 무엇!?!?!? (동공지진) 심지어 맨 앞줄!?!?!?!?!!?!?!?!? (소름) 집에 저 옷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입을 옷이 없어서 새로 샀다면서... 저런 옷을 사서 입고 오면 어떡합니까 ㅠ 심지어 안 예뻐요.. 남의 기분 망쳐놓고 언팔까지 하다닝.... 거참나 너무하시네~
[로맨스는 별책부록] 한 부부가 이혼한 이유
셋이 술먹는 중 근데 공팀장이랑 이혼은 왜 했어? 아니 이상하잖아 갑자기 공팀장님 없는 집 둘째 아들인거 몰랐던 것도 아니고 시조카들이랑 여행 다니고 조카들이 다 자식같다며 근데 왜 갑자기 이혼이냐구 이상하잖아 내 편이.. 내 편이 아니더라고 (회상) 쇼핑중 신발 사자 나 신발 사야돼 - ㅇㅇ 갖고싶으면 하나 사 어머 이거 이쁘다~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들어와서 구경하세요 안에 예쁜 거 많아요 계속 만지작거리며 구경 중 아저씨 이건 얼마에요? 이거 240 있어요? 신발이 마음에 드시면 그냥 한 번 신어보세요 사지도 않을거면서.. 아니 가격도 모르고 어떻게 ㅎㅎ.. 하얀거는 19만원 까만거는 22만원 - 너무 비싸다.. 요즘 수제품들 다 그정도 해요 사지도 않을거면서 만지작만지작.. 첫손님부터 재수가 없을라니까 아저씨 말을 왜 그렇게 해요? 여보, 그냥 하나 사자 지금 그런말이 나와? - 아저씨 그냥 이거 주세요. 가자. 안산다고. - 알았어 알았어 가자 진짜 기분 나빠. 아니 내가 뭘 했다고. - 밥먹는데 짜증났겠지. 아니 장사하다보면 이상한 사람 많잖아. 짜증났겠지. 아니 솔직히.. 당신 신발 살 생각도 없었잖아. 계속 가격만 물어보고. 지금 누구 편 드는거야? 지금 누굴 감싸고 있는건데? 저기 저 신발가게 주인이 당신 형이야? 당신 아들이야? 여보..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이 당신 부인한테 재수가 없네 마네 하고 있는데 자빠져서 시집이나 읽고있다가 내가 남이야? 니가 지금 누구 편을 들어야 되는데!!! 여ㅂ.. 니가 이해해야 될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고 나야!!!!! 당신 지금 이해해야 될 사람 저 사람 아니고 나야 나!!!!!!!!! 알았어.. 알았어.. 놔. 나는 진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사람들 오가는 지하상가에서 미친 사람처럼 막 소리를 지르더라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쳐다보고 지한텐 별 일 아니었겠지. 뭐 허구헌 날 그랬으니까. 근데 있잖아, 나는 문득 그날 딱 깨달아지는거야 아.. 서영아 인생 헛살았구나 나 이 세상에서 딱 하나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난 정말 죽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은 내 남편이구나 하고 살았는데 진짜 옆에 있으면 뭐하나 자기 마누라 마음 단 한 순간도 모르는데 나도 구두 사고 싶지 내가 월급이 작냐? 내가 왜 안 사는데 내가 왜 자꾸만 가격 물어보고 그러는데 그래 그럼 마누라 마음 몰랐다고 쳐 근데 그 남자가 나 재수 없다고 쫓아내려 그러는데 지가 남편이면 내 와이프한테 말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따져서 묻기라도 했어야지 그래야 남편 아니야? 어? 바로 다음날 이혼서류 만들어 놨더라고 도장 찍어달라는데 그래, 내가 그동안 영아랑 살면서 잘못한 일이 이거 하나 뿐이겠냐 그래서 찍어줬어 나 만나서 고생만 시켰는데 내가 뭘 어쩌겠냐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마량 계상 (馬良 季常) A.D.187 ~ 222
지난번 칼럼의 주인공이던 정대리가 워낙에 막강한 인물이였던지라... 이번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지간한 사람으로 해서는 도저히 빛을 볼 거 같지 않았기에 오히려 한 템포 쉬어가는 인물을 정해 보았으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마량" 이다. 사실 마량은 그 역사속에서나, 삼국지연의에서나 임팩트는 강한 인물이 아니긴 하다. 무엇보다 너무 단명했고, 그 짧은 삶을 강렬하게 빛낼만큼 정대리같은 강대한 재주가 있던 것은 아니였기에. 그럼에도 우리가 일상 속에 잘 쓰는 표현들 중 하나인 '백미(白眉)' 라는 고사의 유래가 된.. 의외로 우리들의 생활 속에 묻어져 있는 삼국지 속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급식체가 판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이제는 백미라는 표현은 거의 안쓰는 듯 싶긴 하다만.... 형주일대에서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과 나이대비 깊은 학식으로 날리던 유망주 중 하나였다. 본인을 필두로 한 다섯 형제들이 모두 대단 했다는데 백미라는 고사처럼 이 다섯 중 마량이 가장 그 재주가 뛰어났다고 하지만... 다섯 형제들 중 마량이 몇 째인지는 사료에 남은건 없다. 다만, 재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말은 있는데 그러다보니 의례 마량이 첫째로 인식되는 감이 있다. 확실한 건 마속이 마량의 아우라는 기록으로 볼 때, 당근 막내는 최소한 아니였다. 단, 이건 있다. 예전 칼럼에서 '자' 에 대해 다루며 자는 주로 어른들이나 부모님께서 지어준다는 말을 했었는데 당시에도 자는 이름을 대신하다보니 막 짓진 않았고 형제가 많아 돌림자를 쓸 경우에는 그 형제간 순서를 나타내는 의미로 '백(伯)-중(仲)-숙(叔)-계(季)-유(幼)'  순서에 뒤로 돌림자를 넣었다고 한다. 그러니 사료에서 딱 꼬집진 않았으나 아마 마량은 다섯 형제 중 넷째로 추측된다.(마속은 막둥이) 그러나 남존여비가 끝장이던 저 시절이니 딸은 카운팅에 넣지 않아서 실제로 중간에 누나가 한 둘이라도 끼어 있을 수도 있고... 아무튼 형주를 주름잡던 마씨 오형제라지만 막상 마량의 세 형들은 어디 기록이 없다. 어려서만 공부 잘 하신 듯. 고향이 형주 양양군 의성현으로, 당시 유표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였지만 아직 임관하진 않은 상태였고 유표 사후, 유비가 형주를 장악하며 재야인재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초청받고 유비 휘하에 임관하게 된다. 쉽게 말해, 기업에서 먼저 입사제의받고 면접보러 가서 합격한 후 채용된 그런 케이스다. 제갈량이 발탁했다는 말도 있으나 그런 기록 없고 다만 제갈량이 가능성을 알아보고 마침 코드도 맞아서 중용한 건 맞다. 일처리 스타일을 보면 지금 환생해도 어느 회사가나 사랑받을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상당히 꼼꼼하고 빈틈없는 일처리로 이름 높았고 하나를 시키면 센스있게 연관된 두 세 가지도 같이 미리 알아서 척척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일처리까지 빨랐으며 그 방식이 매우 효율까지 좋았다고 하니 이쪽 방면의 만렙인 제갈량이 보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저리 잘나게 일하면서도 자기 방식만을 고집않고 이리저리 여러 사람의 의견도 묻고 다른이의 방식도 살피며 두루두루 참고한 후 업무를 진행했으며 이 와중에 다른 이의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하면 반드시 업무진행자의 필두에 그 사람의 이름을 앞세워 적어 넣었다. 게다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정중하고 깎듯한 오피스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직장인 마량이였다. 심지어 말도 잘 했는데 달변가타입은 아니지만 조리있고 상대의 신뢰를 얻는 스타일의 화자였는 듯. 게다가 인물도 훤하고 좋았다는 말까지 있으니 변태가 아니고서는 이런 사람을 적으로 둘 사람이 없다. 이런 상기된 숱한 이유들 덕에 제갈량과 코드가 잘 맞아 큰 신임을 얻었으며 업무적으로는 물론 사적으로도 꽤 둘은 죽이 잘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형동생을 먹었다. 제갈량은 우리야 삼국지연의만 보니 충신에다 완전 전략의 신같은 느낌이지, 인간 자체가 사람 개피곤하게 만드는 슈퍼깐깐이였고 어지간하면 자기 외에 (업무관련)사람을 잘 안믿어서 뭐든 직접 처리, 설령 누굴 시켜도 본인이 다시 하나하나 체크하는 스타일에 잔소리도 대박이였다. 게다가 본인이 제일 새벽같이 출근 후 오밤 늦도록 퇴근할 생각없이 워커홀릭이니 밑엣것들 입장에, 감히 " 그럼 군사님!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이게 될 수가 없다. 기록은 안남았지만 보아하니 제갈량은 분명 부하들에게 밤 11시에 퇴근하면서 " 서촉의 모든 군수현황들 내가 내일 새벽출근하면 바로 볼 수 있게 좀 부탁해요~ " 이딴거 시켰을 인간이다. 여튼 이 미친 일기계 제갈량이 살아 생전 몇 안되게 일을 믿고 맡겼고 또 아낌없는 일폭격을 감행했으며 또 이를 문제없이 다 해낸 게 마량이다. 심지어 저 제갈량보다 먼저 출근하여 보고될 서류들의 검토를 미리 해두고, 제갈량보다 늦게 퇴근하며 제갈량의 업무들을 정리하던 워커홀릭을 넘어서 워커오타쿠 마량이였다. 제갈량 말이면 꺼뻑 죽는 유비의 입장에 심지어 사람 보는 안목이 귀신같던 유비가 보기에 제갈량이 입 닳게 칭찬하지, 자기가 봐도 진국이던 마량은 당근 유비의 신임도 한 껏 받게 되어 나이가 상당히 젊고 임관시기가 오래되지 않음에도 유비진영에서 마량을 쉽게 대할 이는 감히 없었으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칭 No.2 관우가 말을 놓지 못한 몇 없는 이들 중 하나였다. 관우가 저러니 장비도 덩달아 마량에게는 말을 낮춰하지 못했고 물론 이는 마량 역시 워낙에 처신도 잘 하고 인격자인 덕에 가능한 일이였다. 이러한 부분들이 누적되며 훗날,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며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시중" 에 임명되는 등... 절대 그 직위가 낮은 이가 아니였다. 일각에서는 마치 외교의 스페셜리스트처럼 표현되나 손건같은 전문 외교관 포지션까진 아니였고, 왜 지금도 외교관이 아님에도 국가간 중대사안으로 UAE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다녀오듯, 중대사안을 전하는 경우에는 더러 직접 다녀오는 경우들도 있었던 것이다. 주로 오나라에 승상급 내지 손권을 직접 만나 유비나 제갈량의 친서나 외교사안을 논할 때같은 무게 있는 외교를 진행할 때 갔었다. 이런 마량이 처음으로 손권을 만나러 오에 가기 전, 대개 상대국으로 사신을 보낼 때 처녀행인 이가 갈 때는 군주 또는 그에 준하는 이가 추천서를 지참해 보냈다. ' 이 친구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 보낼만해서 보낸다 ' 이런 느낌으로다가... 마량은 제갈량에게 추천서를 요청했으나 제갈량이 마량에게 장난으로 본인이 직접 써가라 하며 끝내 써주지 않자, 마량은 제갈량이 미리 찍어준 직인만 있는 빈 추천서에 한 가득 셀프칭찬을 가득 채웠고 이를 모르는 손권은 그 추천서를 받고는 지금껏 여러 촉의 사자들이 왔으나 제갈량이 이처럼이나 칭찬한 이는 없었다며 마량을 극진히 대하니 이는 다시 제갈량의 귀에 들어가, 제갈량은 바쁜 틈틈히 이를 갖고 마량을 놀리니 마량의 남은 여생 이불킥을 책임지는 에피소드가 되고 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닥 조명받지 못 하는 사건이지만, 유비가 온 나라를 들어 동방원정을 가는 "이릉대전" 앞두고 형주남방의 무릉만들의 참전을 설득하러 가는 역할을 맡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당시 누굴 보낼지에 대해 여론이 분분했다. 한족 대상이 아닌 외교기에 외교의 패턴도 기존과 많이 다른데다 매우 위험한 종족들이였기에 무사귀환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굴 추천하기도, 내가 가겠다 나서기도 애매한 시점에 무려 황제인 유비의 시중인 마량이 직접 나선 것. 제갈량은 애초 이 원정 자체를 강하게 반대했고 역시 이 동맹제안행이 위험하다여겨 마량이 가는걸 반대했고 유비 역시 내켜하지 않았으나 마량은 본인 외에 적임자가 없다며 나섰고 이에 유비도 당시 중국 어딜 가도 먹어주는 만능템인 서촉의 최고급 비단을 잔뜩 같이 보내줘 동맹의 성공을 이끈다. 삼국지연의에는 마량이 이릉대전에서 촉한의 총 군사작전을 책임지는 참군으로 참전했다가 유비의 진형도를 제갈량에게 전하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마량은 제갈량의 불참과 법정의 사망 등으로 제대로 된 전략가들이 부재한 이릉대전에 참군으로 참전이 결정되었고 무릉만들을 설득한 후 바로 유비가 있는 본군으로 합류하러 가던 중 육손의 칠백리 불싸지름에 휘말려 전사하고 만다. 당시 마량의 나이가 겨우 서른 다섯.... 역사기록 상에는 기혼여부조차 나와 있지 않으며 응당 자녀의 기록도 없다. 제갈량이 직접 챙기고 동생 마속을 상주로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후로 마량과 직간접 연관 기록이 내내 없는 걸 보면 결혼여부는 모르겠지만 자녀는 없었던 거 같다. 한편 생각해보면 위에서럼 젊은 양반이 내내 일에만 치여 살았는데 여자만날 틈이 어디 있었을까 싶다. 어려서부터도 학문으로 이름 날렸던 것을 보면 그냥 공부쟁이에 일쟁이였던거 같고 몹시 슬프게도 마량은 모쏠로 죽은 것은 아닐런지 싶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제갈량같은 사람은 게임에서나 만나야지,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건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으며, 물론 지금 내가 마량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은 더욱 눈물짓게 만든다.. .., 마량은 그래도 황제의 시중이였지, 우리집 개고양이의 시중인 나로서는... 삼국지연의에서 화타에게 무마취 외과술을 받는 동안 같이 바둑을 둔 것은 허구다. 그냥 관우의 ㅎㄷㄷ함을 어필하고자 만들어진 일화고 관우가 형주사령관을 맡으며 관우의 행정보좌역으로 남겨지긴 했으나 얼마 안되 유비에게 부름을 받고 일찌감치 서촉으로 들어갔다. 여러모로 참 촉에 빛과 소금같은 인재였음에도, 건강상의 문제조차 없었음에도 유비의 무리수에서 비롯된 사망자 중 하나라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제갈량 사후 내정업무면에서는 비위와 동윤 등의 내정천재들이 이미 있었기에 법정같은 전략귀재가 아니였기에 조금은 희소성이 아쉽다. 허나 만약 천수를 누렸다면 제갈량 다음 서열의 문관이였을 거란 점은 이견이 없고, 제갈량 사후 마량 승상 - 대장군 강유의 배터리라면 조금은 더 수월한 북벌 및 촉한의 운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마량처럼 일 열심히 잘 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주변인들에게도 잘 대해서 인격자로서 인기얻은들, 그래서 중요한 일 맡고 높은 자리 오른들..... 마량처럼 인생 한 방에 훅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직장상사 잘못 걸려 일만 하며 갈려지다 해외 출장 중에 사망한 가엾은 남자. 마량을 반면교사삼아 우리 다같이 왕성한 성생활 하며 막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