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otgye
10,000+ Views

축사에 불나자 외양간 부수고 주인한테 알리러간 소.jpg

소주인 자고있는 조용한 새벽에 외양간 불나니까
뿔도 없는 어미소가 머리로 외양간 문 들이받아서
억지로 열고
그대로 주인집 마당에 뛰어가서 온몸으로
쿵쿵 거리며 주인 깨움

다행히 송아지들 다 구함

평생 축사에서만 길렀고 집에는 한번도 안 데려왔는데
제발로 찾아와서 깨움

외양간 문 들이받다가 머리뼈 부러져서 어미소만 죽음..
18 Comments
Suggested
Recent
으헝~😭😭😭😭😭 다음번 생이 있다면, 꼭 편하고 걱정없는 존재로 태어나길~~🙏🏻🙏🏻🙏🏻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다음생애에 태어나거든 꼭 사람으로 태어나 행복하거라 소지만 명복을 빌어
슬프다 ㅠㅠ
ㅠㅠㅠ
ㅜㅜ 다음생엔 인간으로태어나길
@wens 그건 저주 아닌가요?!;
@Roadst 악마가될기회를주는거쥬 물론 천사로살겠지만
@Roadst ㅋㅋㅋㅋㅋ 저주 맞음ㅋㅋ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자살현장 청소중 발견된 다이어리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월 어느 한 여성이 자신의 원룸 집안에서 자살을 하였다. 겨울인 관계로 모두들 창문을 닫고 생활해서일까 그녀가 사망 후 부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웃 주민들은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결국 그녀는 6개월 동안 시신이 방치되었으며 다음 해 5월 미라 상태로 발견이 되었다.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가족, 친구, 지인, 이웃 주민도 아닌 바로 건물주였다. 그녀가 사망 후 6개월 동안 시신이 방치되는 동안 원룸의 월세 미납금은 점점 더 쌓여만 갔다. 결국 보증금을 모두 소진한 상황까지 다다르자 건물주는 월세를 받기 위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건물주는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수십 번 연락을 해보고 문을 두들겨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그녀의 집 안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순간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 느낌이 든 건물주는 경찰관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한 후 현장에 출동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경찰관은 현장에 도착하였고 건물주는 경찰관의 입회하에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건물주가 발견한 것은 이미 늑골이 드러나고 살이 메말라 거죽이 붙어버린 채 바닥에 누워있는 그녀였다. 198X년에 태어난 이 여성은 어릴 때부터 불우한 시절을 보내왔다. 그녀가 아기일 때 이미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여 출가 후 인연을 끊은 상태였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는 어머니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은 채 방치하였다.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일까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발육과 학습능력이 남들에 비해 떨어졌다. 이 때문에 그녀는 어릴 적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성장해 나갔다. 그녀가 철이 들 무렵 그녀는 왜 어머니가 자기한테 무관심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원치 않는 임신을 하였다.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를 유산시키기 위하여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뱃속의 아기가 너무 커져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후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를 유산시키기 위하여 약을 먹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결국 하는 수 없이 아기를 낳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이때부터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성인이 되는 해 그녀는 집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의지할 사람 없이 세상을 혼자 살아나가야만 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직을 하였지만 일처리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얼마 못가 직장을 그만두기 십상이었다. 결국 그녀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여러 회사를 이직하며 근근이 생계를 버텨나갔다. 그녀는 이런 생활이 계속되어 재정적인 문제가 지속되자 대출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당장의 급한 문제는 해결하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출금은 쌓여만 갔다. 재정적인 문제와 잦은 취업 및 이직 문제는 그녀를 점점 더 어둡게 만들었다. 게다가 우울증, 무기력감이 겹쳐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가 의지할 수 있거나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 다다르자 자살을 선택하였다. 건물주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고인의 유일한 유가족인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입수하였다. 건물주는 어머니에게 연락하여 이런 사건이 발생하여 집안의 대공사를 진행할 것이니 그전에 한번 와서 딸의 유품을 챙겨가라고 말하였다. 며칠 뒤 어머니는 딸의 자살현장에 방문하였다. 어머니를 만난 건물주는 어머니를 위하여 현관문을 열어주었고 어머니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서있는 채로 몇 분 동안 방안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무런 유품도 챙기지 않은 채 빈손으로 집 밖을 나오면서 건물주에게 딱 두 마디를 하였다고 한다. "이제 됐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사실 건물주는 어머니를 만나는 날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 비용, 인테리어 비용 등 자신이 피해를 본 금액을 모두 청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를 보는 순간 보상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그날 이후 어머니가 다시 현장에 찾아온다던가 연락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건물주는 씁쓸함을 뒤로한 채 우리에게 유품정리를 의뢰하였다. (고인이 학생 시절 작성한 다이어리 일부) 출처 유품정리 특수청소 업체 마음이 아프네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커뮤 난리났던 어제자 그알 내용.jpg
이상한 체험을 한 무속인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지역을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섬은 어디였을까? 그리고 울음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섬의 이름은 선감도(仙甘島). 이곳에는 1942년 일제 강점기부터 1982년까지 ‘선감학원’이라는 소년 수용시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소위 ‘부랑아’ 즉, 고아나 걸식아동을 구호한다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졌다고 한다. “일하는 양이 적고 동작이 느리다면서 이제 머리통도 치고 조인트도 까고.” “새우젓에 구더기가 이렇게 간다고요. 그걸 우리는 먹었어요.” “밤마다 성폭행을 당해야 했어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말이다. ‘선감학원’에 온 아이들의 2/3는 부모나 연고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길에서 막무가내로 경찰이나 공무원들에 의해 ‘수집’되었다. 선감학원에 입소한 후, 가족이 있다고 말하면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폭력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상당수의 아이들이 섬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갯벌과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아동 삼청교육대’라 불리는 선감학원의 운영 주체는 국가였다. 경기도가 보관하고 있는 4,691명의 선감학원 원아대장 기록에 의하면 선감학원에서 사망한 아동은 24명. 그러나 피해생존자들은 실제로 사망한 아동의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고 말한다. 2017년, 전문가들이 GPR(지하탐지레이터) 탐사를 통해 선감도의 한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유골들을 조사한 결과, 매장된 시신은 150구 이상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상규명과 유해 발굴은 숙제로 남아있다. 제작진은 피해생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피해생존자 중 성인이 된 이후 ‘형제복지원’으로, ‘삼청교육대’로 다시 끌려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또다시 끌려가야만 했던 걸까? 아이들을 강제로 수용시켜 쓸 만한 인적 자원으로 개조하려던 일제의 계획은 해방 이후 군사정권에 그대로 대물림돼 각종 인권유린 시설을 탄생시켰다. 형제복지원, 서산개척단, 삼청교육대 등 수많은 인권유린 시설의 뿌리는 바로 일제가 만든 선감학원이었다. 땅 속에는 아이 고무신이 발견되기도 함 = 8살~12살 짜리 애들 강제로 납치시키고 때리고 고문하고 심지어 성폭행도 하고 아이들 밥도 제대로 안먹이고 심지어 담요를 뜯어먹었던 적도 있다고 함 어릴때 선감학원 잡혀갔다가 한 생존자가 탈출했는데 형제복지원 끌려감 그알에서도 다뤘었고 심심치않게 거론되는 형제복지원과도 연관되어 있음 김상중 마지막 내레이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이 그런 일은 흔했고 시대가 만들어낸 불가피한 일이었다고요. 이 일을 당한 사람이 나와 내 가족이라면 그렇게 얘기할수 있었을까요, 피해자의 아픔이 과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현재에서도 계속되고 있고 그것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떤 사과도 위로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번 과거사법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선감학원 사건 역시 재조사가 가능하게 됐고 오는 12월 진실화해위원회에 재가동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시 가해자였지만 지금의 경기도는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진상조사를 약속했습니다. 부디 그 약속을 꼭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선감학원 사건은 단지 과거사가 아니고 오늘의 문제고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일제의 잔재임을 국가는 무겁게 받아들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천육백아흔한명 원생 중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생존자는 100여명. 많은 이들이 고인이 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생존자들은 팔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선감학원의 비극은 왜 피해자의 몫이며 왜 일제가 남긴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더 늦기전에 국가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피해 생존자에게 남은 시간, 그리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