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오는 공포썰) 나는 뱀이 싫다 -완-
주말은 잘 쉬고 있을까 몇달만에 맞는 연휴인지 오늘 쉬고도 하루가 더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아 그럼 이제 뱀이 싫은 이야기의 끝자락으로 가볼까? 시작! ______________ 에피소드 7 - The Snake Network re: 뱀이 불쌍하다. 저런 미개한 짓이 관광 상품이라고? re: 미개하다 하지마라 저 사람들은 생계가 걸린 일이다. re: 저 관광객은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님? 싸이코패스 ㄷㄷ re: 죽인 다음 먹는 것까지 한 코스입니다. 동남아에 저런 레스토랑 많음. re: 저 사람 칼 잘 쓴다. 근데 따지고 보면 생선 손질하는 게 더 잔인함. re: 현지인이 아니었네, 저 사람은 관종아닌가? 지가 저 짓을 왜함? re: 뱀은 죽여도 괜찮지 않음? re: 강아지나 고양이는 안 괜찮고? re: 반려동물하고는 다르지, 비교할 걸 비교해라 re: 다르기는 똑같은 생명이지, re: 위에 너는 모기도 죽이지 마라 re: 정상은 아닌 거 같음. 미친 거임 re: 저런 것들은 뱀한테 물려 뒤져야함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나는 생명경시를 하는 사이코패스다. 뱀을 싫어하는 건 사실이지만 저 행위가 욕먹을 일인가? 생계를 위해 죽이는 건 이해가 되고, 그냥 죽이는 건 죄의식을 가져야하는 건가? 뱀을 죽인다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데. 코브라를 죽인 덕분에 살인범도 잡았는데, 만약 사람들이 전후사정을 알았다면 욕을 했을까? 명분이 중요한 것인가? 혼자서 뱀을 죽이며 정신병을 치료할 때는 몰랐는데, 내가 한 행위가 사람들에게 보여 지고, 지탄을 받으니 지금까지 내가 행한 ‘뱀을 죽이는 행동’에 죄의식이 느껴진다. 내게는 정신병을 치료하는 과정이었는데. 죄의식? 사실 무언가를 싫어하는 감정, 혐오감 자체에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싫어하는 감정, 혐오감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다. 싫으면 싫은 거다. 어떤 연예인이 싫을 수도 있다. 괜히 짜증나는 인간들도 있고, 듣기 싫은 노래도 있고, 죽어도 먹기 싫은 음식이 있다. 뱀이 싫을 수도 있는 거다. 문제는 싫어하는 감정, 그것을 표출했을 때 나타난다. 갈등이 생길 수가 있고, 사회 규범에 반하는 행동일 경우 범죄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구성원의 눈치를 보는 선에서 싫어하는 것을 표현한다. 그런 경우에 내면에서 죄의식을 느끼는데 그것을 완화시킬 수 있는 나만의 3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나와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나랑 똑같이 싫어하는 사람들. 같은 편을 만드는 것이다. ‘나만 싫어해?’, ‘나만 불편해?’ 다수가 싫어하니 혐오 표현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모두가 싫어하니까 혐오표현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얘는 욕 좀 먹어도 돼. 다들 싫어하니까’ 나 같은 경우에는 뱀을 싫어하는 사람, 더 나아가 뱀을 죽이는 사람을 찾았다. 뱀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다.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해서 불호가 확실히 많은 동물이다. 외형도 흉하고, 이미지도 나쁘다. 대체로 뱀을 싫어한다. 뱀을 죽이는 사람은? 뱀을 죽이는 사람도 역시 많다. 뱀술을 담그는 사람도 있고, 뱀을 잡아먹는 사람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뱀 공장을 보면 하루에 수백 수천 마리의 뱀을 죽인다. 대체로 지갑이나 핸드백을 만들기 위해 죽인다. 가죽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커다란 드럼통에 뱀이 들어간 자루를 한 번에 넣고, 드럼통에 물을 채워 익사시킨다. 그리고 죽은 뱀을 삶고, 자르고, 벗긴다. 그곳에 일하는 사람도 뱀이 무섭다고 했고, 뱀이 나오는 꿈을 꿀 때도 있다고 했다. 나름의 불쾌감을 참아가며 뱀을 죽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죄의식이 줄어든다. 나만 뱀을 죽이는 게 아니구나하고. 죄의식을 낮추는 두 번째 방법. 나보다 심한 사람을 찾는 거다. 무언가를 싫어할 때 그 대상에 대해 과격하게 혐오 표현을 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내 행위에 죄의식이 덜하게 느껴진다. ‘나보다 더 한 사람도 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쟤는 나보다 더 함’ 나의 경우에는 나보다 뱀을 잔인하게 죽이는 사람들을 찾았다. 뱀 공장에서 뱀을 떼거지로 죽이는 것을 보며 나는 저들에 비하면 적게 죽이는 편이다. 위안으로 삼는다. 자신의 반려 견을 공격하려는 뱀을 도끼로 찍어 죽이는 사람도 있었다. 차고에 나타난 뱀을 일부러 차로 밀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뱀을 죽인 행위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심지어 죽인 뱀의 사체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그걸 본 일부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잘 죽였다고. 죄의식을 덜어내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죄의식을 느끼는 그 행동을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레 죄의식이 사라진다. 음주운전을 반복해서 하는 경우, 계속해서 악플을 다는 경우, 바람을 피우는 경우도 그렇고, 도둑질도 그렇고 도박도 그렇고 반복하다 보면 점차 죄의식이 사라지고 행위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가장 죄의식을 덜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코브라를 죽이는 동영상이 널리 퍼지고 난 후, 뱀을 죽일 때마다 스스로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 그 시작은 회사 신입을 닮은 콘 스네이크였다. 파충류 숍에서 구매해 온 콘 스네이크, 형의 수사를 도와주고 청구한 돈으로 사서 기분이 좋다. 다음 주부터는 신입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겠다. 콘 스네이크는 사육 난이도가 낮고, 색깔도 다양해서 애완 뱀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대체로 뱀을 키우는 경우는 교감보다는 관상용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작은 뱀을 죽이려는데 문득 코브라를 죽이고 박수를 받던 순간이 떠올랐다. 스스로 괴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나는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작은 뱀을 임팩트 있게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칼은 코브라를 죽일 때 사용했다. 익사는 보기보다 약하다. 태워죽일까? 찢어 죽일까? 고민의 결론 끝에 딱 한 번 토마토 주스를 만들 때 사용한 믹서를 꺼냈다.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믹서를 세팅하고 콘 스네이크를 넣는다. 넣자마자 나오고 싶어 대가리를 내민다. 그 대가리를 뚜껑으로 지그시 누른다. 콘 스네이크는 투명한 벽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이잉” 소음이 적다더니, 꽤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투명한 플라스틱이 붉게 물들었다. 손을 떼자 돌아가던 칼날이 멈췄다. 들여다보자 아직 신경이 안 끊긴 조각난 뱀의 몸뚱이가 조금씩 꿈틀거린다. 역겨운 광경이다. 다시 버튼을 눌러 더욱 잘게 뱀의 몸뚱이를 분해한다. 플라스틱 윗부분에 빨갛고 조그마한 영문자 Y가 붙어있다. 뱀의 혓바닥이었다. “why?” #IHATESNAKES 계정을 만들고 외국 동영상 채널에 업로드 했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때 나는 죄의식 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re: Cooooooooooooooooooooooool!!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있는 첫 댓글이다. 그 댓글이후로 수 만개의 댓글이 달렸다. '뱀을 죽이는 것이 멋지다고, 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 때 브레이크는 사라졌다. 비리를 저지른 국회의원, 자숙하고 복귀한 연예인, 팬을 홀대하는 스포츠 스타, 갑질하는 재벌 2세 등 미디어에는 뱀으로 보이는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디 미디어뿐인가? 도둑, 강도, 사기, 성범죄 등 범죄자부터 길에서 담배 피는 사람,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는 사람, 욕하는 사람, 침 뱉는 사람,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 잘난 척, 없는 척, 부정행위, 위선자, 매국노, 내로남불 등 싫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덕분에 내가 죽여야 하는 뱀들도 넘쳐났다. 그렇게 뱀을 죽이는 영상을 올리고 많은 관심을 모으니 광고도 많이 붙었다. 자극적인 영상일수록 조회수는 가파르게 올랐다. 그리고 그 숫자는 통장에 찍히는 숫자와 비례했다. 계정에 등록된 계좌에는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돈이 들어왔다. $의 S자가 뱀으로 보인다. 싫어하는 뱀을 죽이면, 사람이 원래 모습으로 보이고, 돈도 벌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불과 몇 개월 만에 내가 기존에 받던 연봉에 훨씬 상회하는 금액을 벌었다. 전부 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내게 벌어다준 돈이었다. 나 역시 그 돈을 뱀을 싫어하는 데 사용했다. 우선교외 지역에 지하실이 딸린 집을 구하고 트럭도 샀다. 본격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많은 돈을 뱀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여러 뱀들을 샀고, 죽이고, 동영상을 만들어 업로드 했다. 뱀을 많이 사다보니 자연스럽게 뱀을 관리해야 했다. 지하실에는 뱀 판이 펼쳐져 있었다. 온도 조절, 습도 조절, 피딩 등 나름 숙련된 상태였다. 뱀을 키운다고 딱히 죽일 때 망설임 같은 건 없었다. 그 중에서 가장 비싼 놈은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 성격이 온순하고, 먹성이 좋아 성장속도가 빨라서 성체가 되면 6m이상까지 큰다. 국내에서 분양되고 있는 대표적인 인기 있는 대형 뱀이다. 살 때부터 꽤 큰 녀석을 사서 피딩이 좀 힘들었다. 그래서 굶겼다가 한 번에 먹이를 줬다. 구매하는데 몇 달치 월급이나 되는 돈이 나가서 나름 신경 써서 키웠다. 덕분에 파충류 숍의 VIP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VIP에서 죽일 놈이 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파충류 숍 사장님이 집까지 왔다. 배송 때문에 주소는 알고 있다고 쳐도, 집까지 찾아 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주한 그는 얼굴이 상당히 굳어있었다. “어유, 사장님 무슨 일로 오셨죠?” “애기들 잘 크고 있나 궁금해서요. 워낙 선생님께서 우리 숍에서 애들을 많이 데려가셔서”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말끝을 흐리자 사장님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틀었다. 최근에 내가 올린 영상이었다. 파충류 숍에서 구매한 리본 스네이크를 끊는 물에 넣는 영상이었다. 뱀은 미친 듯이 커다란 냄비 안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이거 얼마 전에 저희 숍에서 데려가신 애 맞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귀여운 뱀들한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하실 수가 있죠? 이거 동물 학대입니다. 당신은 완전 사이코예요. 보니까 동영상도 많이 올렸던데, 이런 짓으로 번 돈으로 우리 숍에서 애들 데려간 겁니까?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당신 내가 가만 안 둘 겁니다.” 나를 경멸하듯 바라보는 사장님의 얼굴이 점차 뱀으로 바뀐다. 얼굴에는 비늘이 돋아나고, 눈동자는 타원형으로 바뀐다. 점차 살모사로 바뀌는 그를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뱀은 나를 보며 몇 마디 더 소리친 뒤 뒤돌아 걸어갔다. '뱀 주제에 나를 능멸해?'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죄의식과 수치심, 모멸감 등이 분노로 치환되었다. 대문 옆에 세워뒀던 삽을 들고 뱀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그것이 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숨은 붙어있었다. 그를 집 지하실로 끌고 왔다. 달력을 보니 마침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에게 먹이를 주는 날이다. 나도 잘 안다. 이건 선을 한참 넘는 생각이다. 사실 사람은 뱀의 먹이가 되기엔 부적합한 형태이다. 뱀이 큰 먹이를 삼킬 수 있는 건 그 먹이의 폭이 서서히 넓어지는 경우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머리부터 삼킨다고 가정했을 때 목에서 어깨로 넘어오면서 급격히 폭이 넓어져 먹기 부적합하다. 실제로 미얀마에서 성인 남자가 뱀의 뱃속에서 발견 되었는데 발부터 삼켜진 자세였다고 한다. 역시 뱀에 대해 공부해 두길 잘했다. 나는 사장님을 단단히 포박한 후, 어깨를 톱으로 썰어냈다. 확실히 뱀보다 잘 썰리지 않았다. 뱀의 얼굴을 한 사장님은 욕을 했고, 비명도 지르고, 애원도 했다. 하지만 뱀의 얼굴이라 그다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를 몇 개월간 굶긴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에게 건넸다. 굶주린 그 녀석은 천천히 다가갔다. 묶여있던 사장님은 발버둥 쳤다. 그 모습이 마치 뱀에게 먹이를 줄 때 관심을 끌기 위해 생닭을 흔드는 것처럼 보여 졌다. 뱀은 사장님의 머리를 문 뒤, 몸을 칭칭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사장님의 머리통을 자기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도 뱀이 예뻐요? 좋아요?” 태연히 사장님을 삼키는 뱀의 눈빛과는 다르게 사장님의 눈은 공포심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매우 천천히, 느릿느릿 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에피소드 8 – 뱀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실제로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 느끼는 기분보다 더 끔찍할까? 사람을 삼키는 뱀도 엄청나게 큰 뱀인데 코끼리를 삼킬 정도라면 어느 정도일까? 배가 부른지 꿈쩍도 안하는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에게서 파충류 숍 사장님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정말로 뱀을 사랑했던 분이었는데, 뱀에게 머리통이 삼켜질 때도 과연 뱀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삐걱삐걱 움직이는 뱀의 턱뼈가 그의 몸을 서서히 구겨 넣을 때, 그가 의식이 남아있어 발을 구르며 몸부림칠 때, 나는 내심 그가 뱀을 증오하기를 바랐다. 나처럼. 나는 뱀을 죽였다. 그리고 사람도 죽였다. 물론 뱀을 죽일 때마다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줄곧 해왔지만, 뱀으로 보이는 사람을 직접 죽인 건 처음이었다. 실종된 파충류 숍 사장님을 찾기 위해 형사들이 찾아왔지만, 뱀 뱃속까지 뒤지기에는 형사들의 상상력이 부족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의문을 가졌다. 나는 왜 사람을 죽였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원인을 뽑자면 굶주려 있던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 파충류 숍 사장님이 나를 찾아와서? sns에 내가 코브라를 죽인 영상을 올린 사람? 아니면 코브라를 죽이라고 나를 태국에 보낸 형? 까치 살모사로 보였던 쓰레기 군대 선임? 나를 괴롭혔던 동창들? 아니면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 어머니? 나는 비겁하다. 언제나 탓 할 것만 찾는다. 군에 입대하기 전, 어린 시절 나를 치료해준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내 조건에 군대 면제는 힘들었고, 적어도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람들의 신체부위가 뱀으로 보이는 증상을 어떻게든 고치기 위해서였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기억나요. 사물이 뱀으로 보였던 어린이었는데 벌써 군대를 간다니, 정말 많이 컸네요. 들어보니까 증상이 더 심해졌네요. 사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뱀으로 보인다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굉장히 흥미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치료법을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 “뱀으로 보이는 신체에 해를 가하면 증상이 괜찮아집니다. 실제로 겪어봐서 압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환각이 치료된다면 좀 위험하네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요. 그나저나 어머니는 괜찮으신가요?” “네?” “원진 군이 어렸을 때, 어머니도 같이 상담치료를 받으셨거든요.” 나는 의사선생님께 뱀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빨간 양파주머니에 들어있던 뱀은 내 팔을 타고 올라와 내가 물고 있던 막대사탕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뱀의 대가리를 막대사탕과 같이 입에 반쯤 문 채 어머니께 다가갔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비명을 지르시며 힘껏 밀쳐냈다고 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내 입속에서 뱀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셨다. 덧붙여 어머니도 뱀을 끔찍이 싫어하셨다고 했다. 나처럼. 그 후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환각에 시달리는 어린 아들에게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모성애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유로 환각에 시달리던 나와 함께 치료를 받으셨다고 했다. 뱀 공포증과는 별개로 말이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충격이었다. 상담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지금 어머니는 내게 무슨 감정일지, 아직도 내게 모성애를 못 느끼는지, 나를 싫어하신 건지 뱀을 싫어하신 건지 묻고 싶었다. 그 시절, 나는 내 존재에 의문을 가졌다. 가족구성원으로써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란 녀석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으로 구성된 행복한 가정에 사족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사족보다도 쓸모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날 나는 집에서 어머니를 마주했지만 질문은커녕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하고 당장 집을 뛰쳐나왔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황을 하다가 즉시 되는대로 입대를 했고, 그 후부터 어머니와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날 집에서 마주한 어머니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아나콘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뱀에게 모성애가 있을까? 약 3000종의 뱀 중에 10종의 뱀이 모성애가 있다고 한다. 0.3%가 모성애가 있는 셈이다. 나머지 99.7%는 자신의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그 시절 나에겐 어머니는 뱀과 다를 바 없었다. 아나콘다는 난태생이다. 알과 새끼를 동시에 낳는다. 알을 몸속에서 부화시켜 낳기 때문에 포유류와는 엄연히 다르다. 많은 뱀들이 알을 낳은 자리를 떠난다. 그 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에게 먹히든 말든. 그리고 암컷 아나콘다는 출산 후 자기가 낳은 새끼나 알을 먹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가 고파서.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차가운 눈으로 자기가 낳은 새끼를 꾸역꾸역 삼키는 아나콘다가 내 어머니였다. 자기 새끼에게 모성애는커녕 불쾌감을 느끼셨다니. 언젠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지만 어머니와 나 둘 모두 뱀을 싫어하니까 거절했다. 안 그래도 미움을 많이 받는 아들인데 말이다. 자기 자신한테조차. 영상을 올리고부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급격히 늘어났다. 해외 채널에 올리던 나의 영상들이 국내로 퍼지면서 그 현상이 가속화 되었다. #IHATESNAKES 동영상 채널을 보면 나를 증오하는 댓글들이 넘쳐난다. 영어댓글보다 한글 댓글이 많아졌고, 욕도 많아졌다. 대게 그런 이유였다. 불쌍한 뱀을 죽였다는 이유. 그래봤자 윤리적 잣대에 그친다. 나는 그런 댓글들을 보며 생각했다. 왜 싫어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들은 길거리에서 뱀을 마주치면 어떻게 행동할까? 만지고 싶은 길 고양이들처럼 어떻게든 쓰다듬으려고 할까? 아니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 지르며 도망칠까? 뱀을 잔뜩 사서 트럭에 실었다. 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뱀을 뿌리고 다녔다. 사립 도서관 책꽂이, 대형 마트의 아이스크림 통, 공중화장실 세면대, 코인 노래방, 영화관 좌석 등 실내부터 학교 운동장,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주차장에 주차된 차 선루프 등 실외까지. 가는 곳마다 뱀을 뿌렸다. 그 뱀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감정을 겪기를 바라면서, 뱀을 증오하고, 한 사람이라도 나와 똑같은 증상이 생기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나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린 그 빌어먹을 머릿속의 뱀이 나라는 허물을 벗고 떠날 것만 같았다. 그들이 똑같이 뱀을 증오해야만 내가 저지른 행동들이 합리화 될 것만 같았다. 그 이후, SNS에는 뱀 영상들이 많이 올라왔다. 뱀에게 물린 사건 신고도 늘어났다고 했다. 전국에는 내가 뿌린 뱀을 마주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놀라 도망가거나, 소리 지르거나 했다. 소름끼쳤을 것이다. 정상정인 반응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뱀이 환영받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일상에서 튀어나오는 뱀들, 뱀으로 보이는 사람들, 평생을 그런 고통 속에 지냈으니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내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껴줬다면 나로썬 감사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뱀을 죽이거나 사람을 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뱀을 마주한 모든 사람이 뱀을 죽이지는 않는다. 뭐 돌에 맞아 죽은 뱀들도 있다고는 했지만. 수 많은 뱀을 죽이고나서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뱀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뱀에게는 잘못이 없다. 도끼에 대가리를 잘렸던 뱀도, 믹서에 갈리던 모습이 인터넷에 퍼진 그 뱀도, 삽으로 때려죽인 그 뱀도, 파충류 숍 사장님도, 그 사장님을 삼켜버린 뱀도. 혐오감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 혐오감을 행동으로 옮긴 건 어쨌든 나였다. 나는 내가 살면서 느낀 다양한 혐오감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해소했다. 어쩌면 나는 뱀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거울을 봤다. 언제나 거울 속에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뱀이 있었다. 하긴 뱀은 동족을 잡아먹는 종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뱀이 싫다. '자기 혐오'를 떠올리니 스트레스에 못이겨 자신의 꼬리를 마구 먹는 뱀이 떠오른다. 삶을 마감하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뱀뿐이다. 밧줄에 목을 매고, 의자를 발로 차서 쓰러뜨린다. 마치 두꺼운 구렁이가 내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 든다.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궁금해졌다. 내 머릿속의 뱀을 보고 싶어졌다. 눈을 위로 치켜 올려 뒤집었다. 눈깔을 뒤집자 머릿속,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뱀은 도망치듯 유유히 내 입을 열고 빠져나와, 가슴팍까지 몸뚱이를 늘어뜨렸다. 나는 뱀이 싫다. [출처] 나는뱀이싫다 | 패랭이꽃 _______________________ 아... 너무 슬프네 충격적인 장면에 트라우마가 생긴 어머니, 그 때문에 모성애조차 사라져 버린 어머니에 어머니가 자신에게 가진 악감정을 알게 된 아들이라니 그것도 모성애가 없는 뱀의 얼굴로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