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writerl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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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_때문에_배가_아파와 (1)

“야, 이거 봤냐?” 시끄러운 호프집 소음에 대화가 잠시 끊겼던 사이, 한참을 꿈지럭거리던 혜령이 냅다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모서리가 살짝 깨진 스마트폰엔 내 또래 젊은 여자의 페이스북 사진첩이 떠 있었다. “연예인이야?” 왼손으로 감자튀김을 집으려는데, 혜령이 손등을 찰싹 때린다. “야, 정신 차리고 자세히 좀 봐봐. 누군지 모르겠냐?” 손에서 떨어진 감자튀김을 무안하게 입에 가져 물곤 다시 화면을 살폈다. 고작해야 인지도 낮은 여자 연예인 셀카 정도일까. 심지어 이름도 ‘헬렌 킴’이다. 굵은 웨이브를 낸 염색머리, 가슴골이 보이는 화려한 튜브탑에 손바닥 반 뼘은 될까 한 반바지… 뒷 배경으로 봐선 동남아 쪽 어느 풀빌라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얼씨구! 수영장에서 칵테일 잔까지 들었다. 헐벗었지만 보기 좋은 몸매. 그냥 돈 많은 허세녀 정도? “누군지 모르겠어. 왜? 알아야 해?” 우적우적 감자튀김만 씹는 내 반응이 못마땅한지, 혜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 똑바로 알아야 돼. 바로 이 헬렌 킴이, 우리의 샹.련.이기 때문이지. 기억나냐? 김선련, 샹련이 그 나쁜년!” 김선련…? 갑자기 입 안이 바짝 말라 감자튀김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한줌짜리 허리에 C컵짜리 가슴을 달고 있는 여자가, 연예인 사진인 줄 알았던 저 여자가 내 중학교 동창 ‘샹년’이라고? “…대박. 아 진짜 대박!” “그치, 자세히 봐봐. 장난 아니라고.” 제법 튜닝된 얼굴이긴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예전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난다. 사진첩을 넘길 수록 ‘선련이'와 나 사이의 간격이 가까워진다. 아! 아... 아니. 잠시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찰나... SNS에 가득한 멋진 사진들이 갑자기 그녀를 별세계 공주님으로 변신시킨다. 불과 몇 초 만에. 선련이는 지금 LA 해변가의 리조트에서 (동남아가 아니었다!) 칵테일까지 손에 들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고, 나는 새벽 2시에 찌린내 나는 동네 호프집에서 감자튀김을 쳐먹는 백수니까. 그저 평범한 연예인인줄 알았던 헬렌 킴이 샹년이임을 알았다가, 그녀가 다시 헬렌 킴이 되는 순간,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목이 타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다, 거대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김선련은 언제부터 헬렌 킴이 되었나? “몰라 나도. 고등학교 때 어디 미국 간다 했었잖아. 그때 애 때려서 사고치고 그러니까 부모가 무리해서라도 멀리 보낸 거지. 한국에서 답이 없다고 하니까.” “…근데 돈 많나 보다. 얼굴 제법 고친 거 아냐?” “원래 약간 이쁘장했지. 인정하긴 싫지만. 너, 걔가 나 괴롭힌 거 기억나?” “혜령이 너 그날 울고불고 난리였잖아. 너 걔한테 당하고 나서 거의 한 달은 울었지 아마.” “아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진짜. 그걸 뜯어 가냐. 진짜 나쁜 년이야.” 동네 친구이던 우리가 나란히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혜령이는 내게 어마어마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자기가 ‘이십만 원’을 모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모아오던 돼지저금통과, 엄마에게 애걸복걸해 얻어낸 (엄마들은 세뱃돈을 왜 가져가는 것일까?) 세뱃돈 몇 만원, 여기에 주말마다 치킨 집 전단지를 돌리고 받은 몇 달치 일당이 보태진, 소중한 재산이었다. 이십만 원이란 갓 중학생이 된 우리에겐 괜히 가슴 뿌듯해지는 큰돈이었다. 단짝이었던 우리 둘은 운동장 구석에서 돈 세는 흉내를 제법 내보기도 하고,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공중에 돈을 흩날려 보기도 하면서 –심장이 쿵쾅거려 한 번만 시도했다- 만 원짜리 세종대왕님 스무 명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그 소중한 돈을 빌려간 게, 아니 앗아간 년이 바로 김선련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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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궁금해요 ! 언제 연재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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