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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 1일1댕댕(40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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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jdwjddnjs717 정장댕...💙
안과장님💙
@chldntjd7312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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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때문에 연예인됐다는 어느 일본 여돌이 은퇴한 이유.jpg
제목의 주인공 노기자카46의 하시모토 나나미. 돈 때문에 데뷔했다가 은퇴한 연예인으로 알려져있지만 그거보다는 좀 더 자세하게 얘기를 해보려고 해 일단 나나밍 집은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자랐음 곁에 없는 아버지의 빚을 감당해야 했는데 건물 구실만 겨우 하던 임대아파트에서 살며 가스나 수도가 끊기는 일은 뭐 다반사였다고. 이런 나나밍이 초딩 때부터 줄곧 꿈꿔왔던 장래희망은 "공무원" 이었음 많은 돈을 벌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유 하지만 당시 담임은 속사정도 모르면서 어린 애가 꿈이 없다며 나나밍을 혼냈다고 함 꿈은 그저 "평범하고 안정된 생활" 이었던 건데 매니저로 활동하던 농구부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 홋카이도를 벗어난 그때 화려하고 낯선 오사카를 보고 더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고 함  그 날 이후 나나밍은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졌고, 해외에 가고 싶기도 했지만 일단 제일 가까울 것 같은 도쿄로 가겠다고 결심하게 된 나나밍 부모님이 상경을 반대 할 걸 알았기에 도쿄여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했음 그래서 도쿄에만 있는 미대로 입시를 준비했고 아사히카와에서 통학 2시간 거리의 삿포로의 학원을 다님. 알바 열심히 뛰고, 열공한 결과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미대라는 무사시노 미술 대학에 당당하게 합격하게 됨 그럼에도 부모님은 나나밍의 상경을 반대했는데 이유는 집이 풍족하지 않았고, 나나밍은 어릴때부터 몸이 약했기 때문 결국 학비와 생활비 전부를 본인이 직접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도쿄에 오게 되었는데 해결해야 될 일: 학비+(미친 물가)생활비+아버지 빚 해야할 일: 알바 N잡+수업+과제 본인 피셜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갔었다고 함 장학금은 학비에 쏟아붓고 안 해본 알바가 없었다고 머리 자를 돈도 없어서 헤어모델에 지원했고 그 때 무료로 숏컷까지 자르게 됨 이후에는 돈 때문에 머리를 기르지 않았음 생활고+미대의 돌아버린 과제량이라는 문제를 겪은 본인에게 대학시절은 어땠는지 직접 들어보자 노기자카46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온 인터뷰 부분 " 대학생활의 추억은 화려했다기보다는...  그저 생활이 힘들었던 게 전부네요. 주먹밥을 사서 걷다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서 그 자리에서 주먹밥을 바닥에 확 집어던지는 이상한 짓도 했고… 부모님한테서 완전히 자립할 거라면서  단언하고 나왔으니까 우는 소리도 못 하겠고… 그런 부분에서 점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졌어요. 같이 상경한 친구들과 상황을 보러 온 부모님께서는  못 봐주겠으니까 일단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홋카이도로 돌아와 버리면 편하겠지만,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했어요.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돈도 모아서 상경했는데 지금 돌아가 버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끝나버린다고 생각했으니까 다시 도쿄로 돌아간 걸지도 몰라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어떻게든 도쿄에서 스스로 생활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때에 연예계의 로케벤이 생각났어요.  연예인이 되면 로케벤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쥐 파먹은 머리 스타일로 오디션 도전 Q. 취미가 뭐예요 A. 독서입니다. (음? 음....) Q.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군가요 A. 갈릴레오 갈릴레이입니다. (????) 그... 여시들 일본 아이돌 이미지 알지... ❤😘😋🤗💘 이런 이미지 뽑는 곳에서 지금 갈릴레오 갈릴레이 얘기를 하고있는거임 근데 마침 이 그룹이 원하는게 저런 모습이었음; 이전에 냈던 에케비 같은 그룹과는 차별성이 필요했는데 그게 명문고, 명문대를 나왔다거나하는 이미지었던거 결론=무사시노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나나밍은 인재상 그잡채. 합격~!!! 아래는 나나밍이 데뷔 후에 뮤지컬 오디션을 받으면서 읽었던 작문 "어린 시절의 저는 굉장히 안정만을 쫓았습니다 하지만 19살의 저는 도무지 안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 무대에 서있습니다 안정의 '안'자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목표로 해야 할 곳은 이 곳이었습니다." 뭐 아무튼 데뷔 한 이후로는 인기 멤버 중 한사람으로 활약하면서 "계속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요 이런 일을(연예인) 하고 있으면 굉장히 자신에게 투자하게 되는 일이 많아요 자신을 좀 더 높이고 싶어 좀 더 이렇게 되고싶다고 하는 자신의 대한 리퀘스트랄까  계속 위를 바라 볼 수 있는 일이라 이 이상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보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연예계에 정도 붙이게 된건가 했는데... 2014년에 사건이 터짐 여름콘서트 첫번째 공연 뒤에 쓰러진 것임. 학업과 스케줄을 병행하다가  '아나필락시스 쇼크'라는 병명으로 입원. 그 결과 악착같이 매달렸던 학교를 자퇴하게되고 한달정도 활동 휴지에 들어감. 개인적으로는 그룹 졸업까지 고려했다고 함. 몸무게도 30키로 후반대까지 빠졌다며.... 아나필락시스는 알레르기성 쇼크인데 호흡곤란이 오고, 응급처치가 제대로 안되면  위험한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함. 근본치료가 안되는 질병이라 그냥 노...답임 지금도 나나밍은 자주 아픔. cm 기자회견이나 각종 공식석상에  건강문제로 빠지는 일이 잦음. "힘든 일이 일 하면서 있었을 때마다 아 그만두고 싶다 라던가 하지만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니게 돼버려 라던가 이런 걸로 굉장히 고민 했었는데 이러면 안된다고, 지금 그만두면 들어온 의미가 없어져버려 라고 생각했더니... 제가 그만둬도 (가족 전원이) 잘 살아갈 수 있을 환경을 전부 갖추고 딸을 이렇게 키우길 잘했구나 하고 부모님이 생각 해주실 수 있게 된다면 이 3, 4년 해온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너무 슬픈 이야기만 쓴 것 같지만 나나밍은 현재 소속사 소니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고 있음 - 여기까지가 원글쓴이 적은 2016년 3월까지의 하시모토 나나미고 7개월 뒤 나나미는 마침내 집안의 모든 빚을 갚고 딸처럼 생각한 멤버가 그룹을 졸업 했을 무렵 엄마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게 됨 하츠로(남동생)가 4년 장학생이 되어서 학비가 무료래 생활비 정도는 자기가 알바해서 쓸 수 있대 나나미 정말로 지금까지 미안했어 이제 무리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했으면 해 하츠로도 많이 컸고 자기 스스로 어느 정도는 생활할 수 있으니까 (모두 고마워) 저 하시모토 나나미는 이번 싱글을 마지막으로, 내년에 오는 제 생일 2월 20일을 기준으로, 노기자카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연예계 또한 은퇴합니다 24살이 되고 나서는 평범한 일반 사회로 가서, 평범한 여성으로써 살아가려고 합니다 노기자카의 하시모토 나나미로 연예계에 들어왔으니 끝도 노기자카의 하시모토 나나미로 마치겠습니다 엠씨: 연예계를 전부 그만둔다는건 조금 대단하네... 엠씨: 하고싶은 마음이 없었던거야? 지금까지 나나밍: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일쪽이 저에겐 맞지 않을까 해서... 엠씨: 뭐 할지는 정했니? 고향으로 돌아갈 거니? 슬프지는 않고?...니 팬들 기절해버리겠다 미련 같은 건 없는 거야? 나나밍: 졸업을 생각하고 발표할 때는 전혀 없었어요 중략 미련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볼걸 그랬다 후회가 많이 남아요 엠씨 : 근데 너가 성격이 막 엄청 ❤아이돌입니다❤ 하는 타입은 아니잖아 그래서 은퇴까지 한다니까 어쩌다 아이돌이 된 건가 싶긴 한데 혹시 너 마음 속으로 연예계에 선을 긋는다거나 졸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어? 아님 그냥 연예계가 싫었어? 나나밍: 조금은 그렇긴 해요 솔직히 저는 애초에 들어온 이유가... 어디까지 말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돈 때문이었어요 나나밍: 제가 첫째라서 집에서 그래도 여러가지 해주셨지만 남동생한테까지 여유가 있으려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ㅜㅜ 나나밍: 그래서 어떻게든 해야지 싶으니까... 이 연령대에 일할 수 있는 여러 곳을 찾아보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엠씨 : 그래도 제대로 이상적인 곳까지 도달한다는 게 사실 어려운 건데 그걸 무난하게...아니 무난하게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걸 해내서 어느 정도는 목표에 도달했단 거잖아 진짜 대단하다 너 나나밍: 그러게요 남동생도 대학에 잘 갔고 엠씨: 아이고 아이고 나나밍: 1학년인데요 공부 열심히 해서 학비 면제 받았어요 (자랑) 엠씨: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엠씨: 대단하긴 한데 너 임마 아이돌을 그 신념 하나로 계속해온 거야? 정말 가족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단 그 마음 하나로? 나나밍 :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어요 아이돌이 되니까 눈 앞에 계속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서 매일매일이 필사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때는 가족 남동생은 생각도 안 나고 그냥 뭐라도 해야하니까 필사적으로 매달렸어요 그래도 점점 그룹 상황이 나아지는 게 보이고 아 아이돌 일이 이렇게 해나가는 거구나 하고 파악됐을 때쯤에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가족 생각이었어요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곤란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저를 지탱하게 해줬어요 엠씨: 하지만 돈만 생각하면 이곳만한게 절대로 없지않아? 엠씨: 결혼하는 거야? 나나밍: 어지간히 좋은 사람 없는 한 (결혼) 안할거같아요 그렇게 나나밍은 지금까지도 겨울마다 역주행하는 졸업 곡을 남기고 마지막 졸업 콘서트를 마친뒤 여기서 나의 5년 반은 정말로 끝이야 모두 정말로 고마워 나는 절대로 지금이 절정이 아니야 앞으로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게요 최후의 약속 힘낼게요 안녕 이라는 말을 남기고 마무리 출처 아름다운 결말이라 다행이에여 ㅠㅠㅠ 잘은 모르지만 모쪼록 행복했으면,,
김혜수 업계평이 항상 좋은 이유.jpg
13년지기 스탭들에게 "너희가 나한테 잘해주는건 당연한게 아니야, 내가 감사한거지. 잘해줘서 고마워.." 이선균 曰 "스탭들을 대하거나 후배들 대할 때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셨다." 여자 스탭들 먼저 타라고 뒷자석 문 열어주는 김혜수 본인은 앞자리 조수석에 탐 콜 타임 2시간 전부터 현장에 도착하고, 스탭들이 자신 때문에 기다리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 이번 드라마(하이에나) 스탭들이 김혜수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 드라마 하이에나 제작자 20년전, 19살 고딩이 촬영장 알바하다가 전선에 걸려 넘어지면서 이빨 나감 촬영 중단되고 욕하는 사람들 사이로 김혜수가 조용히 다가와서 위로해주고 병원보내줌 심지어 김혜수 매니저가 등장해서 병원비 다내줬다고 함 "김혜수처럼 유명한 배우가 나처럼 잘 알려지지도 않고,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후배까지 마음을 써줘서 감동했다" - 배우 송지인 스탭들, 후배들, 막내들... 현장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한테 35년째 잘함 아주 당연한 일인데 이게 절대로 쉽지 않다는 걸 연예계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알거야 ㅋㅋㅋ 김혜수 레게노 업계평 ㄷㄷ 출처: 더쿠 역시 여신님 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 내면까지 완벽하시네욥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ㅠㅜㅠㅜ
어린시절 가난했던 손흥민 일화.txt
< 손흥민 에세이 일부 발췌 > 우리집은 가난했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컨테이너에 산 적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세 가지 돈벌이를 하시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학원은 꿈도 꾸지 못했고, 또래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이었을 게임이나 여행, 놀거리들을 나는 별로 해 본 기억이 없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며 소형 중고차 한 대를 구해오셨다. 120만원을 주셨다고 했다. 비가 오면 창문 틈으로 빗물이 줄줄 샜지만 그래도 자가용이 생겼다며 우리 가족은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차가웠다. 주위에서 아버지가 '똥차'를 몰고 다닌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17세 함부르크 유소년 시절 > 독일 유소년 구단 시절은 참 힘들게 버텼다. 한국 식당에 갈 돈이 없어서 허기를 꾹꾹 참았다. 유럽에서 뛴다는 판타지의 실사판은 늘 배고픈 일상이었다. 구단 전용 숙소에서 지내야했는데 나처럼 없는 형편에는 감사했으나, 숙소의 식사가 한국인 청소년에게는 너무 부실했다. 시내 한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불가능했다.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싶어 인터넷으로 음식 사진을 검색해 구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 봐 그런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한국일을 정리하고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끌어모아 독일까지 날아오셔서 숙소 근처의 가장 싼 호텔을 거처로 삼으셨다. 그때까지 유소년 신분이었던 나는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1군 선수가 되고,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함부르크 팬들을 열광시킬 때도 나와 아버지는 어렵게 지냈다. 가족과 함께 지낼 집도 없었고, 아버지는 자동차가 없어서 매일 호텔과 클럽하우스, 훈련장 사이를 몇 시간씩 걸어다니셨다. 훈련이 시작되면 갈 곳이 없어 혼자 밖에서 몇 시간씩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셨다.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내가 함부르크 1군에서 막 데뷔했을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 실제 생활은 정말 차이가 컸다. 함부르크에서 골을 넣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11 아시안컵에 출전하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며 한국 언론으로부터 칭찬이 쏟아질때도 나와 우리 가족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숙소에서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밥솥을 벽장 안에, 밑반찬을 책상 아래 숨기며 생활했다. '라이징 스타' 아들을 둔 아버지는 매일 몇시간씩 추위를 뚫고 먼 거리를 걸어다녔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매일 마음졸이며 기도만 하셨다. TV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신성 손흥민의 일상은 대중의 짐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2019년의 손흥민은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에요. 프리미어 리그의 인기 팀에서 뛰는 프로 축구선수죠.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서 뛰어봤어요. 남들이 보기에 이런 제 모습이 화려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겉모습입니다. 힘들었던 과거와 뒤에서 이루어지는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죠. 지금까지 어려웠던 날이 훨씬 많았어요. 좌절하고 눈물을 흘린 순간도 많았고요. 사실 지금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살고 있어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죠. 제 인생에서 공짜로 얻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드리블, 슈팅, 컨디션유지, 부상방지 전부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믿어요. 어제 값을 치른 대가를 오늘 받고, 내일 받을 대가를 위해서 오늘 먼저 값을 치릅니다. 후불은 없죠. 저는 지금 자제하고 훈련하면서 꿈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 어려운 시절을 겪어봐서 그런지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선수가 되고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좋은 환경에서 축구할 수 있도록 아카데미 설립했다고 함. 사실 대안학교까지 생각했는데 절차가 까다로워서 못했다고 손아카데미 현재 상황 = 아카데미에서 키운 애들 독일로 3명 보냈고 올해,내년에도 유럽 진출할 계획 "현재 아카데미 출신 3명이 독일에 가있고, 올해와 내년에도 출국 예정인 아이들이 있어 외국어가 가장 시급하다. 몇몇 학부모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외부강사를 초청해 외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카데미에서는 협소하나마 공간을 지원해 축구에 전념할 수 있는 부분을 충족시켜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사실 대안학교도 생각해봤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그게 너무 하고 싶었는데,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힘들었다. 우리가 부족해 하지 못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출처 : 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