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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대충 축구공 업체가 수류탄 만든썰

온갖 등신짓이 다 나오던 냉전이 한창이던 1973년의 이야기다
양키들은 빨갱이 새끼들의 탱크물량에 존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빨갱이 탱크가 물량으로 밀고 내려오면 우린 다 육포가 될거야 이러면서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런고로 육포가 되기 싫었던 탱크를 관광보낼 수 있는 무기 개발에 고심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싸고 가성비가 좋은 물건에 주목했다
대전차수류탄이란 물건이 있다
딜도처럼 생긴 모양새답게 땅크들을 천국(물리)로 보내주는데 쓴다

요즘에야 대전차로켓들이 많이 나와서 거의 멸종했지만 대전차수류탄은 그 특성상 싸다. 존나 싸다. 저글링처럼 밀고 내려오는 빨갱이 탱크떼를 경계하던 미군에게 이점만큼 매혹적인 장점이 없었다.

하지만 대전차 수류탄이 좆망한 이유를 해결해야만 했다. 손으로 던지는 수류탄 특성상 사거리가 존나 짧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전차수류탄은 덩치 큰 전차를 보내버리기 위해 다른 수류탄보다 훨씬 무겁고 커서 더 던지기 개같다.

여기서 바로 미식축구공 회사가 등장하는 것이다.
너프사는 오늘날도 잘 나가는 공만드는 회사다
양키들은 이 회사가 만드는 미식축구공의 무게가 14온스, 딱 대전차수류탄 무게에 맞는다는 것에 주목했다

거기다 미식축구가 뭐냐
뭔가 모르면 아이실드 21을 봅시다
존나 틀딱 만화임
미국 인싸들의 상징이 치어리더를 옆에 끼고 걸어다니는 미식축구남이다

그 정도로 국민스포츠기 때문에 대부분들의 미군들은 미식축구공을 던질줄 알았다. 별 교육할 필요도 없이 대부분의 장병이 이미 능숙하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처럼 보였다. 거기다 미식축구공은 그 특유의 형태 때문에 상당히 멀리 날아가고 정확한 편이다

수류탄을 미식축구공처럼 만들자는 소리가 꽤나 그럴싸하게 들렸던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자리에 당당하게 미식축구공 대전차 수류탄이 등장하는 것이다

너프 사의 미식축구공에 그대로 대전차화약을 쑤셔박는 형태로 완성된 이 수류탄은 무게도 거의 원본 미식축구공과 비슷했다. 싸고 모든 장병이 쉽게 다루며 사거리도 길고 정확하기까지 한 완벽한 무기로 보였다

분명히 양키들은 무시무시한 빨갱이 탱크들이 쳐들어오는 족족 미식축구맨이 던지는 수류탄에 작살나는 장밋빛 미래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을 것이다

물론 바보같은 짓의 절반 정도는 해보고 난 후에야 바보짓이라는걸 알게된다. 나머지 바보짓은 해보기도 전에 바보짓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전자에 속했다

미식축구공이 잘 날아가는 이유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차 조지겠다고 화약을 존나 집어처넣은 미식수류탄은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무게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 수류탄공은 던질 때마다 매번 사거리와 각도가 달라져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미식축구공이 각도를 예측할 수 없다면 점수를 잃고 치어리더한테 뺨맞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이건 수류탄이다. 치어리더랑 같이 천국으로 사출되기 딱 좋다 이 말이다

결국 미군과 축구공회사가 야심차게 개발한 수류탄은 양산조차 되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오늘도 재밌는 냉혹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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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차대전에서 독일놈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던 러시아 제국 아직 황제가 빨갱이들에게 총맞고 뒤지기 전이라 러시아 대빵은 황제였는데 그 황제 앞으로 편지 하나와 설계도 하나가 배달됐다 독일을 개작살낼 슈퍼 비밀무기 '롤링 포트리스 오보이'의 설계도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위엄찬 무기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이 초코볼이 바로 그 위대한 프로젝트 되시겠다 롤링 포트리스라는 이름답게 굴러서 적을 깔아뭉개는 요새를 만들자는 간단한 아이디어다 개병신좆밥 같아보인다고? 근데 사이즈를 들어보면 적어도 좆밥은 때야될걸 죽음의 초코볼의 사이즈는 무려 960x605m. cm가 아니다. 미터다. 600미터의 데스스타다. 내부에는 주둔보병과 포병부대, 군수공장, 배럭, 하수구에 환기시스템까지 깔린 도시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었다. 진짜 데스스타다. 사이즈가 무지막지하게 커졌기 때문에 무지막지한 크기의 엔진을 때려박을 수 있고 자체형상의 도움까지 받아 예상시속은 최대 321km/h였다 덧붙여서 장갑은 제일 얇은 곳도 100mm이상의 곡면장갑이라 당시 존재하던 어떤 수단으로도 러시안 데스스타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참호 독가스 포격 폭격 철조망이건 뭐건 모조리 무시하고 뭉개고 다니는 것이다 크기 600m의 볼링공이 독일을 깔아뭉개면서 평탄화하는 장관은 틀림없이 존나게 웃길...볼만했을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병사한테 줄 총알도 빌빌대면서 만드는 가난한 러시아 제국이 이런걸 만들 능력이 있을리는 없어서 실현되지는 않았다 저게 성공했으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전쟁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겠지 빨갱이들의 광기는 과연 특별한 부분이 있다 (출처) 이왜진... 소비에트의 광기는 쫓아갈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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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윗덩어리는 그리스에 가면 볼 수 있는 '아레스의 바위(아레이오스 파고스)'인데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세상 최초의 재판소란다 여기서 전쟁난봉꾼 아레스가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아레스...라고하면 별로 좋은 이미지는 없다 일단 전쟁의 신이긴한데 옆에 가슴도 크고 이쁘고 똑똑한 아테나라는 상위호환이 있어서 걍 양아치 새끼 같다 신화 속에서도 취급이 똥인데 이 새끼는 명색이 전쟁신인데 허구한 날 털리기 바쁜 로켓단이다 그래도 이 개양아치한테 좋은 점이 없는건 아니었는데 애비로서의 마음가짐은 제대로 되어있어서 강간마 새끼인 제우스 새끼랑은 다르게 자식들을 지극히 아꼈다 아무튼 문제는 바로 그 가족애에서 시작됐다 아레스한테는 알키페라는 딸이 있었는데 이쁘고 쭉쭉 빠졌다고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쁘고 쭉쭉 빠졌다는건 3페이지 뒤에 강간당한다는 뜻이지 그리스신화는 히토미월드니까 신의 딸인데 누가 강간하냐 싶겠지만 신의 아들이 있다 포세이돈이 싸제낀 강간범 할리로티오스가 알키페한데 개꼴린 것이다. 제우스만큼은 아니지만 포세이돈도 강간으로 이름 높은 새낀데 그 애비에 그 아들이었다. 알키페가 목 말라서 강물을 마시자 강간범 할리로티오스가 나타났다 난 바다신 아들->그러니까 강의 신->넌 강을 마심->즉 날 펠라했음->이건 화간 이라는 환상적인 논리를 대며 알키페를 덮치려 든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이란걸 안 알키페는 파파를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하늘에서 아레스가 즉시 떨어져서 강간범 할리로티오스를 호랑이 카페트로 바꿔버렸다 창 던져 죽였다는 말도 있고 주먹으로 때려죽였다는 말도 있고 레일건으로 저격했다는 말도 있고 아무튼 좋은 카짓은 카페트가 된 카짓이지 동네 양아치가 웬일로 착한 일을 했다싶겠지만 문제는 강간범이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포세이돈은 개빡쳤다 남자새끼가 여자를 추구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냐며 실로 그남충 그 자체의 적반하장을 보여주며 방방뛰던 포세이돈은 아레스를 고소해버렸다 이렇게 올림포스의 열두신이 강간범 살인 재판을 위해 바위덩어리 위에 모이게 되는데 이게 그 세계 최초의 재판장이 되는 것이다 암만 봐도 공정한 재판이 아니었다 일단 판사가 이 새끼임 그남충 오브 그남충 제우스 거기다 고소인 포세이돈은 판사 동생이다 누가 봐도 딸내미를 지키려고 한 애비 아레스의 패배가 확실하다 근데 의외로 그렇게 되진 않았는데 왜냐면 헤라나 아르테미스 같은 여신들 거기다 아레스랑 맨날 으르렁대던 라이벌 아테나까지 모든 여신들이 뭉쳐서 강간범 그남충 뒤져를 외친 것이다 아무리 그리스 신화 일인자와 이인자라고 해도 여신들이 똘똘 뭉친 여론을 무시할 수가 없었는지 제우스는 우물쭈물대다가 그래서 살인현장 목격자는 있음?이라고 물었고 몰카충의 신 헤르메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래서 목격자가 없으니 포세이돈 아들내미는 자연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전쟁신 딸 따먹으려다 레일건 맞아 죽었으면 자연사 맞지 아무튼 그렇게 세상 최초의 살인재판은 무죄로 결론났고 최초의 재판소가 그렇게 탄생했다 레일건 빔- (출처) 오늘은 사진도 몇 장 변경하고 여전히 열심히 순화했지만 어떻게 순화해야 할 지 모르겠는 단어는 그냥 그대로 뒀습니다 아무튼 신화 공부도 꾸르잼
CCTV 공개 못해준다 할때 대처법
사고가 나면 증거자료를 확보 해야함. 요새 CCTV가 여기저기 깔려있고, 경찰에서 교통관제하는 CCTV가 있겠지? 운전자들이 경찰에게 그걸 달라고 함. 근데 경찰은 거의 대부분 안 준다고 함. 사유?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그렇다고 함. CCTV에 다른 사람도 찍혀있기 때문에 초상권 및 기타권리가 침해된다고… 달라고 해도 무조건 아 ㄴ되다고만 말하고 안 줌. 무조건 안 될까? 거짓말. “정보공개청구”라는 제도가 있음. 공공기관이 접수, 생산한 정보중 국민이 청구하면 기관은 원칙적으로 정보를 내줘야 함. 예외사유는 국가안보등 뭐 거창한 사유가 있고. 개인정보가 침해되면 안 된다의 사유가 있음. 정보공개포털 http://www.open.go.kr/ 에서 신청하면 됨. 자. 그럼 이 제도를 언급하고, 자료 좀 주세요.. 하면 경찰이 줄까? 아니요. 정보공개법 “제 9조(비공개 대상 정보) 1.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는 공개 대상이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6호 6. 해당 정보에 포함되어 있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에 관한 사랑으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를 피하기 위해 모자이크를 하게 되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든다고 경찰이 말함. 역시 거짓말. 한문철 변호사에게 의뢰하는 사람들은 시청, 검찰등에서 정보공개청구해서 받아냈다고 함. 모자이크를 하는게 어렵지 않다고 함. 시청에서 중요한 부분 (사건 현장) 빼고 전부 모자이크 처리해서 공개해줬는데. 무료하고 하더라고. 프로그램을 쓰는게 어려웠는지. 종이를 붙여(…) 놓고 현장만 나오게 해서 줬다는 경우도 있다는데. 뭐 어차피 증거능력은 문제 없을테고… 그리고 관청에서 그걸 못하면 업체에 맡기면 된데. 업체에 맡겨서 해도 1~5만원이면 된다고. 애초에 수십 수백은 그냥 거짓말… 요약 : 사고나면 CCTV랑 블랙박스 확보해야하는데, 시/구청이나 검찰에 정보공개청구하면 확보할 수 있다. 개인정보상 문제가 될만한 부분 모자이크 처리하고 달라고 하면 거부할 수 없음. 모자이크 하는 비용은 무료지만, 가끔 담당 공무원들이 무능해서 외주줘야하는 경우도 있음. 그렇더라도 실비는 1~5만원선. 모자이크 처리 해도 못주겠다고 비공개 통보하면. 정보공개 이의신청 -> 행정심판 -> 행정소송 순으로 가면 된다. 공무원이 뭐 안 된다고 하면 본인이 귀찮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되는 대로 말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잘 알아보고 자기 권리 찾아야 한다. 다만 법은 그러한데 공무원들이 무지하고, 고집 피우면 공개가 늦어질 수 있음. 경찰 공무원이나 일반 공무원이나 정보공개 무지 싫어함. (생기는 거 없이 해줘야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제도를 잘 모르고, 일을 안 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땐 정보공개법 보고 계속 내놓으라고 요청해야 함. 안 줄수가 없음.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 모르는 꿀정보는 클립해둬야겠죠?! 이렇게 읽어보니까 공무원들 증말 ㅂㄷㅂㄷ
러시아 상남자 레전드.jpg
알렉세이 나발니 러시아 진보당 대표 당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야당 유력 정치인임 사실 나발니가 다른 푸틴 라이벌에 비해 정치적 파워는 약함 진보당은 국회 의석도 없고 대선 후보를 낼 힘도 없음 그런데 나발니가 푸틴의 '정적'이라 불리는 이유는 '반부패' 컨셉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 2009년부터 블로그 SNS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푸틴 일당의 부패를 까발리는 활동을 해옴 그냥 까발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향력을 바탕으로 각종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옴 메드베데프 총리(예전에 푸틴 바지대통령 한적 있음)도 나발니의 부패 고발로 올해초에 사임함 그러니까 푸틴 입장에서 나발니는 대놓고 덤비진 않지만 계속 좆같이 잽 날리면서 싸우는 아웃파이터 느낌 당연히 제거하려고 노리고 있었고 러시아 공항에서 '그 차'를 마시고 비행기에서 혼수상태에 빠짐 다행히 한달만에 깨어나서 베를린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음 당연히 러시아에서는 '우린 아무것도 모름'이란 입장이었지만 나발니 자신이 높은분인척 하면서 러시아 요원 조인트를 까서 독살 자백을 받아냄 그리고 회복한 나발니는 몇일 전에 모스크바에 돌아옴 돌아오자마자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당함 집행유예 상태인데 외국을 나갔으니 위법이라는 명목임 하지만 순순히 당할 나발니가 아니었으니 이럴 줄 알고 푸틴의 비리를 집대성한 2시간짜리 영상을 찍어놓았었던 것 그가 남긴 영상은 어제 업로드되었고 올라가자마자 하루도 안돼서 1500만 조회수 찍는중 (출처) 아수라장에 살려면 자신이 아수라가 되어야..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그 곳 아아 마더로씨아
빵 대신 케이크 이야기
조금은 지겨울 수 있는 이야기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런 말 한 적 없다' 라는 이제는 알 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이 놈이 원흉임.  '고백록'이라고 쓴 에세이에 이런 대목이 나옴. 마침내 나는 어느 공주의 궁여지책이 생각났는데, 그녀는 농부들이 빵이 없다는 말을 듣고 "브리오슈를 먹으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거임.  근데 이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자기는 안주가 없으면 술을 못먹는 사람이라, 술안주로 먹을 빵이 없으니, 브리오슈를 사먹어야겠다!고 하는 부분임.  그러니까 뭐 어떤 혁명적 사상을 담아서 저런 나쁜 공듀가 다 있다니! 라고 비난한다거나 그런건 1g도 담기지 않은 그냥 자기 이야기임. 이 이야기는 장자크 루소가 어느 집에 얹혀살면서 가정교사 노릇을 할 때의 일임. 가정교사도 둘 정도니까 술창고도 따로 있는 부잣집이고 집주인도 마음씨 넓은 훌륭한 신사였음. 근데 이 집 술창고에 있는 와인이 약간 변질되서 술이 탁해졌음. 잘난체 좋아하는 루소놈이 잠자코있지 못하고 '와인 이렇게 다루는거 아닌데~'라는 식으로 아는체하면서 자기가 돌려놓겠다고 큰소리 뻥뻥침. (술이 탁해지면 젤라틴같은 걸로 엉겨붙게 해서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음. 제조할 때부터 넣기도 함.) 자기는 그런식으로 하는걸 잘 안다고 생각해서 큰소리치고 계란 흰자를 써보았는데 성공하지 못함. 이게 '맑게'하는 것만 성공한 것이었음. 술맛은 가버렸지만, 어쨌든 반쪽짜리 술은 만들어냈기 때문에 '오? 선생이 술 좀 아시나봐요?' 이러면서 술 관리 좀 부탁받게됨. 집주인 허락을 받았으니 술창고에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면서........... 술을 슬쩍하기 시작함.  자기 방에서 몰래 술을 마시려는데....술을 못 마심. 앞서 언급했듯이 안주가 업ㅂ으면 술을 못 마시게 되버린 몸이었기 때문임.   그렇다고 그 집 하인보고 '빵 좀 갖다줘'라고 할 수 도 없음.  왜냐? 그것은 '빵 갖다줘'→'왜?' '먹고 싶어서'→ '왜?'→ '배고파서' → '왜?'→'이 집 식사가 부실해서!' 이런 전개가 되서 집주인을 모욕하는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지 방에 술이 있는 것 조차 집주인꺼 도둑질한 것인데, 하인이 의심하면 탄로날 것이고. 집주인 기분상하게하면 결말이 안 좋을게 뻔하기 때문에 술안주를 몰래 마련해야할 처지가 됨.  그래서 옷을 차려입고 집 바깥에 나가게 되는데.... 나 자신이 빵을 사자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칼을 찬 훌륭한 신사가 빵 한 조각을 사러 빵집에 가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마침내 나는 어느 공주의 궁여지책이 생각났는데, 그녀는 농부들이 빵이 없다는 말을 듣고 "브리오슈를 먹으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브리오슈를 샀다. 그러기까지 또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위해 혼자 나가 때때로 시내 전체를 돌아다니고, 30개나 되는 제과점들 앞을 지나친 후에야 겨우 어느 가게로 들어갔다. 내가 가게 문턱을 감히 넘기 위해서는 가게에 단 한 사람만 있어야 하고 그 사람 인상이 대단히 내 마음에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일단 이 사랑스런 작은 브리오슈를 손에 넣고 내 방에 꼭 틀어박혀 벽장 깊숙한 곳에서 내 포도주 병을 찾았을 때는, 소설 몇 쪽을 읽으면서 거기서 혼자 얼마나 맛있고 조촐한 술잔치를 벌였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먹지 않을 때면 나는 언제나 엉뚱하게도 먹으면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없는 사교모임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나는 번갈아 가며 책 한 쪽을 맛나게 읽고 한 입 맛나게 집어삼켰다. 마치 내 책이 나와 함께 회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술안주가 필요한 장자크 루소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게 '빵 대신 브리오슈'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였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마침내 '빵이 아닌' 브리오슈를 사와서 도둑질한 술과 먹었다는 것이 전부인 이야기임. 근데 장자크 루소가 이것저것 써놓은게 많다보니 프랑스 혁명기에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읽었구만유.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 먹으라 했다고 루소 선상님이 써놓으셨다니께유!' '루소 선상님이?! 그럼 틀림없겠구만....그 오스트리아년이 그러고도 남지 아무렴!' 이런 식으로 날조되서 퍼져버린 것임.  프랑스 혁명기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빵 대신 케이크'이야기는 일단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음. 근데 '케이크'는 영국애들이 '브리오슈'가 뭔지 잘 와닿질 않으니 '빵이 아닌' 케이크로 바꿔서 영문으로 cake로 해버린 것임. 1. 장자크 루소가 어디선가 주워들었다는 '빵 대신 브리오슈'라고 써놓은 것이 2. 프랑스 해외로 전파되면서 '빵 대신 케이크'로 둔갑하게 된 것. 브리오슈는 쵸큼 어려우니까 '케이크'라고 합시다! 해서 널리 퍼진 것인데... 읭? 빵이구만? 그거슨 밑에 나오는 코스에 답이 있음. 디-저트로 제공되는 되는 음식임.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면 빵이겠지만 후식으로 제공되는 약간 빵과 과자의 중간지점에 있는 빵 아닌 빵. 그래서 칼찬 훌륭한 신사인 장자크 루소가 빵집에서 빵을 사는 것은 매우 부끄럽지만 '브리오슈'를 사는 것은 쵸큼 부크러운 정도로 끝나는 것임.  영국에서는 그것을 '케이크'로 초월번역해버린 것. 이 시점에서 '어느 공주'가 했다는 그 부분에서 그 '어느 공주'가 마리 앙투아네트 였던 거 아니냐?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발행이 1782년인데, 그것은 말 그대로 '발행'한 년도고 쓰기시작한 것은 1766년, 완성한 것은 1769년임.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에 태어나서 장자크 루소가 저거 쓰기 시작할 때에는 불과 12살이고 장자크 루소가 '빵대신 브리오슈'라는 카더라가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술도둑 시절은 1740년임.  1740년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태어나지도 않았음.  결론적으로 장자크 루소가 카더라로 전해들은 '어느 공주'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될 수 가 없음.  그러니까 '알고보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농민들을 가엾게 생각해 브리오슈라도 먹으라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한 것 뿐인데 그것이 이 와전된 것이다'라는 주장 역시 성립 안되는 것임.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을 수 도 있겠지만, 그 발언의 주인공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될 수 없음.  (루이14세의 왕비인 마리테레즈가 한 거다! 라는 설도 있긴 함.) 3줄 요약 1. 장자크 루소가 젊은 시절에 가정교사하던 집에서 술 몰래 훔쳐먹다가 술안주로 '빵 대신 브리오슈'라는 이야기를 자기 자서전에 써놓음. 2. 프랑스 혁명기에 반 왕당파들이 유명한 장자크 루소가 적어놓은 구절을 가지고 선동과 날조로 승부했는데, 그 승부에서 이긴 것. 3. 마리 앙투아네트가 장자크 루소가 써놓은 '어느 공주'가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 그외에 그런 말 했다는 증거도 없음.  출처 이제 마리 앙트와네트의 누명을 벗겨 줍시다!
SNP
수요일은 역시 역사지. 창씨개명(創氏改名)의 기억이 있는 우리들로서는 식민 통치당국이 이름을 바꿔라 하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지 잘 알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이 아닌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원주민들에게 성과 이름을 가지라고 압박한 적이 있으며, 이건 알제리의 창씨 이야기이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성씨와 이름을 모든 국민이 다 갖춘 건, 제국주의 국가 내에서도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식민지 지역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높고 고귀한 사람들이 아니면 대부분 성이 아닌 이름만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확실히 뿌리 박으려면 결국은 “개인”이 탄생해야 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성과 이름이 주어져야 하는 것도 맞다. 다만 알제리의 경우 희안한 성씨가 하나 태여난다. SNP /에센페/로도 읽고, /상뻬/로도 읽는다. 이 글자모음의 원래 뜻은 Sans Nom Patronymique, 그러니까 “부계 이름이 없음”의 준말이다. 꽤 많은 알제리인들에게 SNP가 성씨가 되어버렸다? 현재 알제리에 SNP로 되어있는 성씨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알제리계가 많이 들어온 프랑스에 SNP라는 성씨가 버젓이 전화번호부에도 올라와 있다. 이걸 지금까지 고치지 않은 채 그냥 정체성으로 넣어버린 것이다. 프랑스 당국이 이름이 없던 알제리인들에게 창씨를 강요했던 것은 1882년, “알제리 무슬림 원주민의 시민화(l’État civil des Indigènes musulmans de l'Algérie)” 법이 실행되던 때부터였다고 한다. 흉터나 수염, 혹은 동물의 불어 혹은 아랍어 조합에서 민족 이름, 혹은 주인으로 따르는 이의 성씨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는데, 성명을 등록하는 프랑스 관헌을 놀리려는 혹은 모욕을 주려는 목적으로 관헌들이 이해 못 하는, 일부러 이상한 이름을 대는 관행도 있었다. 물론 프랑스 식민정부 측도 장난을 안 친 것은 아니다. 한 구역은 모두 A로 시작되는 성씨를 주고 다른 인접 지역은 모두 B로 시작되는 성씨를 주기도 했었다. 누구든, 이름만 들으면 어느 지역 출신인지 쉽게 알기 위해서였는데, 본토인 브르타뉴에서도 일반인들에게 성씨를 줄 때 사용했던 관행이라고 한다. 이미 1808년, 본토 내 모든 유다인들에게 성씨를 갖도록 한 조치와 맥을 잇는 것이다. 짤방은 1896년 알제리 관보에 실린 한 집의 경매 처분에 대한 광고이다. 해당 집의 소유주는 3명의 SNP로 이뤄져 있다! 사실 그때는 디지털도 아니고 다 수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펠링도 별다른 것이 대단히 많았고 알제리인들 역시, “아무렇게나” “놀리려고” 등록시킨 이름이 후손에게 폐를 끼치는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알제리는 독립 후 1975년부터 전국민 주민등록을 시작하면서 이름 변경도 허락했고 SNP로 되어있는 이들도 다른 성씨를 의무적으로 갖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괴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상천외한 성씨는 여전히 있으며 자세한 건 알제리 성명학 논문의 p252 하단부를 보시라. -------------- 참조 문헌 1. Algérie : changer de nom pour tirer un trait sur le passé colonial ?(2014년 1월 31일): https://www.jeuneafrique.com/165948/societe/alg-rie-changer-de-nom-pour-tirer-un-trait-sur-le-pass-colonial/ 2. 짤방은 여기서 가져왔다. On les appelait Sans Nom Patronymique(2020년 8월 4일): https://blogs.mediapart.fr/yves-faucoup/blog/040820/les-appelait-sans-nom-patronymique 3. 참조 논문, “알제리 성명(姓名)학(Éléments d’anthroponymie algérienne)”, 알제리 Bouzaréah 고등사범학교(ENS/LSH) Ouerdia Yermèche (2013년) : https://www.persee.fr/doc/onoma_0755-7752_2013_num_55_1_1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