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Voldem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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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삶을 그만 둘 이유를 찾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삶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점심 즈음 문득 ‘유서를 써보면 내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족을 비롯한 내 주변에 어떤 말을 남길지 생각하다 보니 ‘유서를 써본다 한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지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힘든 삶은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기 위해선 스스로 제 삶을 책임져야 하는데, 저에겐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청혼까지 한 애인도 있습니다만, 지금으로선 그 친구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도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지금은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고 두 번째 직장에서 8개월 가까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전엔 7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백수로 놀고먹었죠. 몇 달간 실업급여를 받다가 다행히 지금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전에 일했던 곳과 다른 분야지만 업무 연관성이 있어 경력직으로 뽑혔죠. 긴장도 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애인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했습니다. 마침 얼마 뒤가 제 생일이라 그때 가족들에게도 취업 소식을 전했습니다. 덤덤한 척하던 모습과 달리 안도하시던 아버님의 표정, 깜짝 선물이라며 드렸던 새 명함에 어리둥절하다 놀라서 몇 번을 다시 물어보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날 가족들과 함께했던 저녁 식사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시 사람 노릇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제 취업에 한시름 놓으신 것 같던 아버님께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갑작스레 돌아가셨죠. 장례를 치르고 회사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뒤 몇 달간은 아버님의 여러 사후 처리를 하느라, 또 회사에서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위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던 계획도 미뤄졌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제게 할당된 업무들이 소화하기 힘들어지더군요. 처음엔 이제 막 시작한 일이고 적응하는 중이니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전 직장과 달리 여러 업무를 동시에 고려하며 순발력 있게 쳐내야 하는 곳이니 더 그럴 거라 여겼습니다.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입사 후 8개월이 지난 지금, 제 업무 능력은 저와 동료들의 기대를 비웃듯 더디게 늘고 있습니다. 인원도 부족한 판에 제 일을 다른 동료가 가져가서 처리해야 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가르치면 나아지겠지’ 하던 동료들이 지쳐가는 모습도 훤히 보입니다. 저라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업무마다 꼼꼼히 챙기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구멍 난 곳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경력이지만 신입 같은..... 능력 없는 경력인 거죠.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이 되면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합니다. 출근 전날 저녁엔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밥 값 아껴보겠다고 샀던 도시락은 어느새 먼지만 쌓여가고 회사에선 아예 점심을 굶습니다. 야근을 해도 밥도 안 먹죠. 퇴근 후 술을 마시기 위해 먹는 안주가 저녁이 된지 오랩니다.

그렇게 곯아떨어지듯 잠들고 다음 날 출근할 때면 ‘오늘은 제발 일 좀 잘하자’ ‘실수 없이 일하자’고 곱씹습니다. 하지만 그날 하루도 별다를 바 없이 마무리됩니다. 지친 팀장은 따로 저를 불러 앉혀놓고 업무를 하나하나 다시 짚어주며 ‘실수가 이어지면 실력’이라 합니다. 대표는 제 실적이 기준보다 한참 모자라다 합니다. 내년 인사고과에서 연봉이 깎이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결혼은 해야겠다 싶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소주를 따라주며 비전을 묻는 (예비) 장인의 물음에 취업 면접 보듯 준비해 간 말을 읊었습니다. 술잔이 몇 차례 더 꺾이는 동안 비슷한 질문을 다시 하시더군요. 제가 명확하게 답을 해드리지 못했으니까요. 몇 년 후의 장래는커녕 당장 내년 혹은 올해가 지나기 전까지 이 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그날 저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곤 그다음 주에 애인과 함께 저희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적이 있으나, 제 애인과 어머님 모두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인지 그날 식사는 생각보다 조용했어요. 너무 조용해 제가 더 떠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님께서 문득 그 친구에게 결혼 의사를 물으시더군요. 조용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하신 질문이었지만 제가 답했습니다. 할 거라고.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며칠 뒤 산책을 하던 중 그 친구가 그 일을 이야기하더군요. 제가 모아둔 돈도 넉넉하지 않다 보니 본인도 어쩔 수없이 결혼 후의 생활이 걱정돼서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저축현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으니, 제대로 저축액을 들은 건 일전에 (예비) 장인을 뵈었을 때였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저도 행복한 결혼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애써 숨기고 설득했습니다.

설득과 미심쩍음이 오가던 대화는 ‘그러니까 열심히 돈 모아!’라는 그 친구의 장난 섞인 말로 마무리됐지만 그날 저는 더 취했습니다. 가족들이 결코 저에게 생활의 부담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어머님도 동생도 모두 본인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제 가정을 꾸려야 하고, 어머님과 동생도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점점 이루기 어려운 일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도태되고 있고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 노릇 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봐도 여기저기서 접하는 생존전략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 간의 삶을 떠올려보니 가장 즐거웠던 때는 올해 초 제 생일, 가족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하던 날 같습니다. 그 외엔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요. 왜 그럴까요? 저는 제 삶에 만족해본 지 너무나 오래됐고, 그 기간만큼 다른 사람과 저의 삶을 비교했습니다. 남들은 나와 같은 나이에 이만큼의 돈을 벌고 있으니, 나도 그만큼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나와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니, 가정이 없는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일은, 다음 주는, 한 달 뒤는, 내년엔 제가 어떤 삶을 살지 불안합니다. 기분과 컨디션은 바닥을 찍었다 조금 나아지기를 반복합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 중 자기 통제감, 자기 효능감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전자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과 정서,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후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너무나 느끼고 싶은 것들입니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도 주말을 보내는 집에서도 느껴본 지 너무나 오래된 것들이니까요.

몇 년 간 잊고 지냈던 충동, 삶을 멈추고 싶다는 충동을 다시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남아있는지 이 저녁에 글을 쓰고 있네요. 당분간 글이라도 써보며 저를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우울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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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퇴근하고 좀 뛰세요. 한달이라면 30일을 무조건 뛰세요. 술은 드시면 안됩니다. 가슴이 터지도록 뛰십시오. 그리고 그 터질듯한 가슴을 느끼십시오. 님을 뛰게 한 가슴. 그리고 님을 뛰게 한 모든 부분에 감사하세요. 숨을 쉬게 한 코에 입에 다리에 팔에, 다른 신체에,... 30일이 된다면 습관이 되게 3달은 하세요. 그럼 조금 자신감이 차오르며 적극적이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게 중요한데 "계속하세요. Keep going" 머릿속에 생각이 많을 땐 몸을 쓰세요. 이거 하나로 3개월 후면 당신은 바뀝니다. 그리고 당신만의 주문을 2개 정도 만드세요 그걸 매일 외치세요. 우뚝 선 모습도 상상하세요. 외친 그 말에 부끄럽지 않게 더 실수하고 더 열심히 사세요 님은 분명히 우뚝 설 것입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셨네요 남들 기대에 못미치는 내가 싫을거같아요 삶이 생각대로 흐르지 않으니 그게 다 스트레스고. 그래도 건강할때 살던대로 사세요 단, 내 식대로 사세요 남들비웃음 따윈 내알바아니다 하고 ... 어쩌라고! 내 방식대로 걍 살끼다 하고 업무도 신입처럼 다시 습득하시고 약혼자에게도 지금상황얘기하고 시간달라하시는게 어떠세요 세상에서 제일쉬운게 포기래요 포기하는순간 그전의 내삶보다 더지옥같을수도 있지않을까요. 그냥 뭐든 하십시요. 살아있어야 행복해질수도 있잖아요
당신께 글로써 살아야할 이유를 말하려니 참 어렵네요 말로는 잘할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마세요 그냥 사세요 살다보면 그냥 살다보면 살아집니다 절대 이유같은거 찾지마세요 앞으로 어떤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현재에 놓인 상황만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는건 아주 불리합니다 살아야할 이유를 왜 찾아요? 그딴거 없어요 그냥 사세요 그냥 사는겁니다 저도...살았습니다 그냥 살다보니 살아집디다
사람마다 삶의 철학과 방식이 다르기에 제가 뭐라고 하든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길게 말하진 않을게요. 이곳에 매일 정리를 하다가 어느날 살아가야 할 이유를 글 안에서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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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에 잘라내야 할 나쁜 습관
조선 중기, 존경받는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 선생은 평소 나쁜 습관에 대해서 경고를 하였습니다. 율곡 선생께서 쓴 '격몽요결'이라는 책에는 인생을 망치는 8가지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일하지 않고 놀 생각만 하는 것. 둘째, 할 일 없이 하루를 허비하는 것. 셋째,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 넷째,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헛된 말과 헛된 글을 쓰는 것. 다섯째, 풍류를 핑계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 여섯째, 돈만 목표로 삼아 살아가는 것. 일곱째,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 여덟째, 절제하지 못하고 돈과 여색을 탐하는 것.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을 통해 이 나쁜 습관을 벗어나는 방법은 칼로 잘라내듯 습관을 뿌리 뽑는 방법뿐이라고 하셨습니다. ​ 말은 쉽지만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나쁜 습관 때문에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기보다 어렵고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 # 오늘의 명언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 존 드라이든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모든 망조는 열등감에서 오는겁니다....!!!" -유령 생각- ​
한국에서 업적이 잘못 알려진 과학자
는 바로 우장춘 박사. 보통 씨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이 분은 씨없는 수박을 만들지도 않음. (만든 사람은 일본 과학자) 그냥 한국에 와서 "유전학을 연구하면 이런 신기한 작물도 만들수 있다." 라며 보여준 것인데 워낙 충격이 커서 씨없는 박사 = 우장춘 으로 알려졌을 뿐. 그가 남긴 업적 중 가장 유명한건 다윈이 만든 종의 기원 - 진화론을 일부 수정하게 만든 것으로 이것만으로 한국인으로서는 몇 안되는 과학자적 업적을 세계에 남긴 사람이다.(해당 논문은 아직까지도 십자화과 식물(배추, 유채, 양배추)의 연구 논문이면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논문이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친일파였고, 우장춘의 연구 대부분은 일본 시절에 이뤄진 것들이었다. (엄마가 일본인) 하지만 우장춘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각하고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스스로 조선인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며 한국에 들어옴. 일본은 세계적인 과학자를 잃고 싶지 않아 그의 귀국을 막기위해 구속까지 하려했지만 본인이 귀국함. 한국에서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종 개량에 힘썼는데 대표적으로 고급 식물이였던 배추를 개량하여 생산성과 맛을 높여서 김치하면 배추김치를 만들었고 (요즘 우리가 먹는 바로 그 배추임, 이 품종은 외국에선 거의 구하기 힘들고, 외국에서 재배하더라도 한국 토양과 기후가 아니어서 다른 맛이 남) 무의 맛과 생산성을 높이며, 수출을 위해 화훼산업용 꽃 종자들을 개량하고, 당시만해도 대표적인 작물이 없다시피했던 제주도에 감귤사업을 위해 귤 개량에 나서 제주도의 감귤사업을 만듦. 그가 한국에 와서 죽기전까지 연구했던건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맛이 좋은 쌀 종자의 개발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냥 씨없는 수박 만든 사람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긴 몇 안되는 한국인 과학자이며, 일본에서는 아직도 중요한 과학자로 가르칠 정도. 펌) 출처 아니. 씨없는 수박보다 훨씬 훌륭한 업적을 가진 분이셨구려! 배추김치에, 이제는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귤에, 수출용 꽃 종자에 생산성과 맛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쌀 종자 개발이라니... 이 분 없었으면 지금 우리의 세상이 많이 바뀌었을 정도 아니오. 비록 아비가 친일을 했지만 본인은 수용소까지 들어가면서 한국에 돌아와 한국인들을 위한 연구를 하다 돌아가시다니... 존경하는 인물 리스트에 우장춘 박사를 더해야 겠소.
이런 연애 정상인건지 제가 바보인건지..#연애 #이별
긴글 읽기 힘드시다면 뒤로가기.. 심심하시다면 댓글 한번씩 달아주세요.. 저 정신좀 차리게.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20살 여자 입니다. 만나고 있는 남자는 저와 11살차이 31이구요 지금 5개월째 연애중입니다 중간에 한번 한달 헤어졌다가 다시 만납니다.. 연애 한달차 일땐 만날때마다 텔을갓어요 점차 편해질때쯤 제가 남친집에 들어가서 동거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동거라고 봐도 되죠.. 처음엔 서로 호감을 갖고 만났지만 지금은 제가 많이 좋아해서 연애를 이어가는 느낌입니다 중간에 한번 헤어졌을때도 남친쪽에서 헤어지자 해서 헤어졌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여자로 안보이고 다른여자가 만나고 싶다네요 그래서 헤어졌어요.. 한달차때 남자쪽에서 다시 연락와서 만나구요. 지금 남친일이 힘들어져서 제가 밥 사거나 해주고 돈도 거의 다 제가 내고 있습니다 평소에 빨래 청소 설거지 온갖 집안일은 제가 다해요 남친은 집에서 게임하구요.. 저는 남친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다 해줍니다 해달라는거.. 사달라는거..근데 남친은 저에게 매번 장난으로 머리도 치고 발로 차고 막 팬다 이게 아니고 뭐랄까 장난인데 당연하듯..? 대하고 맨날 집에서 같이 게임하자하고 매번 저 퇴근하고 집오면 밥해달라 청소해라 쓰레기 버려라 하고 저는 남자친구가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서 다해주는데 이게 당연하다고 느끼는건지 물론 제가 좋아해서 다 해주는거 맞습니다.. 근데 남친은 어떤전여친을 만났길래 저한테 전여친은 월 100만원씩 용돈도 줬었다 그러고 제가 아직 어려서 매월 그런돈을 못줍니다.. 그냥 바라는게 많아요..또 그냥 여친취급을 안합니다 그냥 가끔 기분파인건지 평소엔 안그러다가 제가 친구랑 전화하면 제가 여친인게 쪽팔리다고 밖에서 자기 여자친구라고 하지말라네요.. 친구랑 대화해봤자 일얘기, 평소에 머하냐 이런얘기 뿐인데 후.. 물론 남친입장에서 어려보일수 있습니다 근데 가끔 그래요 쪽팔리다고 그리고 장난으로 우리가 s파지 연애하는거야? 또 다른여자랑 섹스해도되? 딴여자랑 섹스하고 싶어 이럽니다 다 장난 이라는데 첨엔 상처받았는데 이젠 너무 많이해서 아무렇지 않구요 또 음.. 그냥 평소에 개새끼야 뭐 좆같은 땡아 는 기본으로 말하다가 또 기분 좋으면 자기야 합니다 만나면서 데이트 한번 했습니다 저도 일땜에 시간이 없고 남친도 한땐 바빠서 시간이 안맞아서요 근데 이번에 남친이 어려워져서 생활비부족해서 제가 일을 매일 나갑니다.. 그냥 이게 연애인지 모르겠어요 근데 오늘도 갑자기 헤어지자네요 ㅋㅋㅋㅋㅋㅋㅋ 후.. 알아요 저도 이게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란걸 근데 제가 너무 좋아서 그끈을 못놓네요 어떻게 하면 놓을수 있을까요 정말 힘드네요 제가 정말 멍청힌건지 남들이 봣을때 다 아니란걸 알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 하는건지 제 얘기라 판단력이 흐려져요 헤어져도 저만 힘들거 같고.. 남친은 헤어져도 아무렇지 않고 더 좋은 여자 만나겠죠..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인 조언좀 해주세요 누구한테 말하기도 어려워서 여기다가 올려봅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위대함
2006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중교통국(MTA) 직원 아서 윈스턴이 100세를 맞아 모든 직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퇴직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서는 어린 10살 때부터 목화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18살이 되어 버스 운전사가 되고 싶어 교통국 직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20년대에 흑인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아서가 교통국에서 맡은 일은 정비실에서 버스를 닦고 기름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비실에서 76년을 일했습니다. 76년 동안 아서는 매번 새벽 6시에 칼같이 출근했습니다. 결혼 직후 다른 회사에서 6년간 일했던 시기를 포함해서 아서의 출근 기록부에는 단 하루의 병가만 있었습니다. 단 하루의 병가는 1988년 어느 월요일로, 이틀 전 토요일에 아서의 아내 프랜시스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맞은 근무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화요일, 아서는 여전히 새벽 6시에 출근했습니다. 그에게 직장은 네 아이를 키우고,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과 함께한 평생의 동반자였습니다. 아서가 퇴직하기 10년 전인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세기의 일꾼'으로 표창했고, 1997년 로스앤젤레스 대중교통국은 그가 담당하던 5구역을 '아서 윈스턴 구역'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아서의 퇴직을 앞두고 많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는데 한 기자가 아서에게 퇴직 후 계획을 물었습니다. 아서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평범한 버스 수리공인 나에게 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다니, 모두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쉬지 않고 움직일 거예요. 내 나이에 누웠다가 못 일어나면 큰일이니 말이오." 아서 윈스턴 씨는 퇴직한 해인 2006년 4월 13일, 100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100세에도 자기 일을 할 수 있었고 100세가 넘어서도 일하고 싶어 했던 그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중요한 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놀라운 축복과 존경이 쏟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간에 적당히 대충 하지 말라. 열 가지를 해야 한다면 스무 가지를 하라. – 데니스 웨이틀리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내 최고의 인생작은 아내입니다
그는 사생아였습니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서 동네 어르신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드디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가지고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10살 때 처음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린 그를 폭행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살을 결심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반대로만 행동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거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성인이 된 후 20년 동안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우가 된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촬영 중에 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촬영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정도 촬영장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렸습니다.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빈소는 집에서도 가까웠지만, 그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서 발인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20년을 안 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아들이라고, 찾아가는 게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발인이 있는 날, 비록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내가 먼저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여보, 사실 나... 아버님 뵙고 왔어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던 아내는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두 아이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고 했습니다. 아직 아버지가 의식이 있으실 때, 며느리로서 손주들을 데리고 처음 인사를 간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 며느리입니다. 이 아이가 첫째고요, 얘는 둘째예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처음 손주를 본 아버지... 아버지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편이 싫어할까 봐 말하지 않은 아내는 발인이 끝난 저녁에 이 사람도 마음은 가고 싶을 텐데...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망설이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에 그는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유독 가족에 대한 사랑이, 특히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애틋한 그는 바로 배우 성동일입니다. 성동일은 과거 방송을 통해 힘든 시절 함께 버텨주고,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준 아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최고의 인생작은 바로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쓸쓸한 뒷모습만 봐도 평소보다 잦아진 한숨만 들어도, 다 압니다. ​ 지친 마음을 알고 진정으로 위로해주는 한 사람... ​ 그녀가 아내입니다. 그가 남편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전체가 되는 것이다. – 반 고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한국 1등 부자 故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편지
♣ 한국 1등 부자 故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편지♣ 故 이건희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쓰러진지 만 6년 5개월 만입니다. 향년 78세로 현재 평균수명을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2014년 5월 10일 따뜻한 봄 어느날, 그는 그렇게 갑자기 쓰러져 6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병상에서 투병하며 안타까운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마냥좋은글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살면서 이건희회장 만큼 큰 돈을 번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대한민국 부자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1등 부자도 건강을 잃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가 가기 전 마지막 남긴 편지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마냥좋은글과 함께 읽어 보아요. ----------------------------------------------------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한번 살아보세요. 돈과 권력이 있다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 할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세요. 3천원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주고, 3천만원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주고, 5억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 주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바로 건강한 몸이요! 건강에 들인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고요. 건강할 때 있는돈은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뒤 그대가 쥐고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뿐입니다.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차를 몰아줄 기사는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사람도 역시 있을것이요! 하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테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뿐인 생명이라오!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진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겠지요.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너무 총망히 살지들 말고, 후반전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만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 ... 힘없는 나는 이제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 소중한 자료인 이 글을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시면 어떨까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마냥좋은글과 교류하며 함께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축복합니다.^^ 마냥! 좋은글..... 꽁짜로 책 요약해주는 곳 무료 책 핵심 내용들 정리! 하루 10분, 한 권 책 읽기 세상의 모든 북 다이제스트 https://bit.ly/3ieIQMz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암(癌)'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적 소식! https://bit.ly/3hPt5LR 매일 마늘 한쪽씩 먹으면 일어나는 기적같은 변화 6가지 https://bit.ly/3hPt5LR 보약보다 좋은 누룽지의 효능 3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7가지 https://bit.ly/3hPt5LR 아침 공복에 먹으면 보약보다 '좋은음식' 몸에 독 '나쁜음식' https://bit.ly/3hPt5LR 몸이 죽어가는 위험 신호 20가지 https://bit.ly/3hPt5LR 얼려 먹으면 몸에 더 좋은 의외의 음식 5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간기능 이상 신호 18가지 증상 https://bit.ly/3hPt5LR 눈이 건강해지는 의외의 습관 10가지 https://bit.ly/3hPt5LR 쉽게 간과하면 큰 코 다치는 건강 적신호 8가지 https://bit.ly/3hPt5LR 이것 즐겨 먹으면 장수하는 7가지 이유 https://bit.ly/3hPt5LR 뇌건강을 강화하는 확실한 방법 50가지 https://bit.ly/3hPt5LR #마냥좋은글 #건강정보 #건강상식 #건강관리 #건강음식 #건강식품 #건강유의 #건강식사 #건강하게사는법 #잘사는법 #행복해지는법
한 편의 시같은 노래 가사 모음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 이소라, track9 긴긴밤 몰아세우며 달려가는 기차의 검은빛 창박으로 흔적뿐인 바람 부네 가난한 고향 하늘 너를 처음 본 그곳에선 하늘도 여름 바다도 나를 반기지 않네 - 루시드 폴, 풍경은 언제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눈을 감아보았지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뭔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과 시들지 않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우리 영원까지 함께 가자고 말할 수 있을 텐데 - 요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 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 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랑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 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 아이유, 이름에게 그대 춤을 추는 나무 같아요 그 안에 투박한 음악은 나예요 네 곁에만 움츠린 두려움들도 애틋한 그림이 되겠죠 그럼 돼요 - 카더가든, 나무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넓고 환하고 젊은 나는 내 젊음을 절망하네 일월의 태양처럼 무기력한 내 청춘이여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별을 나는 늘 갈망한다 - 자우림, 청춘예찬 점점 좁아지던 골목의 막힌 끝에 서서 외투 위의 먼지를 털다 웃었어 벽에 기대어 앉으며 짐을 내려놓으니 한 줌의 희망이 그토록 무거웠구나 탓할 무언가를 애써 떠올려봐도 오직 나만의 어리석음 뿐이었네 - 나이트오프, 잠 헛된 꿈은 쌓이고 거리 위 세상은 차갑게 식었네 안개비라도 오길 긴 밤 지새우며 별빛에 기도해 어린 가지 사이로 잎새 끝끝마다 뻗어올리는 건 그리움도 아니요, 핑계도 아니요 살아있다는 증거 - 심규선, 피어나 조금만 힘주어도 성마른 눈빛이 부서져 이른 밤 널 버려도 모를 테지 당신은 기억도 못하는 언제의 일들만 안고서 나 잠에 들어 별처럼 쏟아진 나의 님 병처럼 쏟아진 나의 맘 - 정우, 척애 약간의 미열이 남아있는 듯한 어지러운 기분이 숨에 닿았었어 저 멀리 전철이 지나가고 하나 둘 일렁이던 불빛 속에 말이 없던 두 그림자 조그맣게 터져 나오던 너의 흐느낌은 말했었지 난 너에게 늘 꿈이고 언제나 넌 밤이었음을 - 프롬, 봄은 겨울이 꾸는 꿈 할까 말까 고민 끝에 한겨울밤 몰래 간 도둑눈에 숨이 멎어 도망가 버린 고백말이 저하늘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는 은하수로 흘러갔을까 - 악동뮤지션, Galaxy 어젯밤 전화기 너머 한숨소리처럼 꽉 막힌 세상 우리들은 어디쯤에 성난 파도 폭풍우가 와도 나는 헤엄치네 나의 섬을 찾아서 - 전기뱀장어, 거친 참치들 잊혀진 그림의 작가 줍지 않은 시간 뜻 없는 웃음들 사이에 의미 없는 인사 나의 라즈베리 나무를 안고 사라진 어제를 모아 노래해 빗물을 머금고 가지 말라 하네 속아버린 나날 - 스웨덴세탁소, 쓰여지지 않은 삶 괜찮아 잘해온 거야 길 떠나 헤매는 오늘은 흔적이 될 거야 시원한 바람 불어오면 우리 좋은 얘길 나누자 시간을 함께 걷자 - 무한도전, 그래 우리 함께 나를 묶은 희망을 끊어버리고 난 천천히 떨어지네 끝나지 않는 긴 한낮을 바랬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가고 싶었지 난 많은 바람들을 조심스럽게 묻고 아 그토록 비웃던 현실에 발을 딛네 - 쏜애플, 플랑크톤 모두가 돌아간 자리 행복한 걸음으로 갈까 정말 바라던 꿈들을 이룬걸까 밀렸던 숙제를 하듯 빼곡히 적힌 많은 다짐들 벌써 일어난 눈부신 해가 보여 - 한희정, 내일 길을 걸었지 아무도 없는 깜깜한 숲속에 난 혼자 밤을 새고 있었고 나를 따라온 밤하늘의 별들과 달만이 유일한 나의 친구였다네 그대여 그대여 여긴 언제까지 밤이 오나요 그대가 그대가 여기 오면 다시 밝아질 텐데 - 김뜻돌, 밤산책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나에게 넌 너무나 먼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이곳에선 우린 연락도 없는 곳을 바라 보았지 -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아름다운 결정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연일 득점포를 터뜨리며 한국인으로서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 지금의 그가 슈퍼스타가 되기까지는 든든한 조력자인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로, 때로는 엄격한 호랑이 코치로 아들을 가르쳤고, 결국 남자를 최고의 축구선수로 키워냈습니다. ​ 그런데 아버지는 비단 아들에게 축구 실력만 가르친 게 아니었습니다. 아들에게 인성을 먼저 가르쳤고, 겸손한 삶의 자세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 내년 1월 춘천에 문을 열 예정인 체육공원도 아버지의 설득으로 시작됐습니다. ​ “아들아, 170억으로 건물을 사면 너와 나는 앞으로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돈을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 투자한다면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다.” ​ 아들은 아버지의 권유에 망설이지 않고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축구 꿈나무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축구장 2면과 풋살장 2면 족구장 1면 등의 시설을 갖춘 7만 1,000여㎡ 규모의 체육공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얻은 부를 자기 자신과 가족들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지만, 아버지와 그는 자신들을 위해 쓰기보다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기억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을 돕기로 한 것입니다. ​ 이 남자가 바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축구 선수 손흥민입니다. 누구에게나 작고 초라했던 과거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를 기억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 어려운 환경 때문에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축구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손흥민 체육공원’ ​ 초심을 기억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결정을 하게 해준 아버지 손웅정 감독과 손흥민 부자를 응원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힘들었던 과거와 뒤에서 이뤄지는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살고 있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 손흥민 –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