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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팝니다
한 소년이 강아지를 판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가게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들어가 강아지를 얼마에 살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 가게 주인은 소년에게 자상하게 말했습니다. “100달러 정도면 살 수 있을 거란다.” ​ 어린 소년은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강아지를 사기에는 한참 부족한 금액이었습니다.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던 소년은 그냥 가게에서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 그런데 한 강아지가 소년에게 뛰어왔는데 그 강아지는 다리가 불편한지 계속 절뚝거리면서 소년 앞에서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 소년은 가게 주인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저 이 강아지 사고 싶어요.” ​ 가게주인이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미안한데 이 강아지는 돈을 받고 팔 수가 없단다. 정 데리고 가고 싶으면 그냥 데려가거라.” ​ 소년은 가게 주인을 보며 다시 말했습니다. “저는 이 강아지를 공짜로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 조금 아플 뿐이지 다른 강아지랑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강아지라 생각해요. 지금은 돈이 조금 부족하지만 매달 조금씩 가져다 드릴께요.” ​ 그리고 소년은 가게 주인에게 자신의 바지 한쪽을 걷어 올려 보여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소년도 다리에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저도 장애가 있어 다른 친구들처럼 뛸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외로웠는데 저 강아지도 자기를 이해해 줄 친구가 필요할 거예요.” ​ 가게 주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소년의 품에 안겨 줬습니다. 나를 이해해 줄 존재가 곁에 있는 것만큼 세상에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어떤 아픔을 가졌더라도 비난하지 않고, 아픈 곳을 채워주고 위로해 준다면 그 어떤 역경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동행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우리 삶에 따스한 것은 없다. – 이정하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소년은 가게 주인을 보며 다시 말했습니다. “저는 이 강아지를 공짜로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 조금 아플 뿐이지 다른 강아지랑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강아지라 생각해요. 지금은 돈이 조금 부족하지만 매달 조금씩 가져다 드릴께요.” ​ 뭉클한 대목이라 다시 적어봤네요.... ​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가?♣ 생활이 궁핍하다 해도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해도 그 동안 나에게 그가 베풀어 주었던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밥을 먹다가 돌이 씹혀도 돌보다는 밥이 많다며 껄껄껄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밥이 타거나 질어 아내가 미안해 할 때 누룽지도 먹고 죽도 먹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대범하게 말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가를 미리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남이 잘 사는 것을 배아파 하지 않고 사촌이 땅을 사도 축하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직위가 낮아도 인격까지 낮은 것은 아니므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나서 좋고 날이 개면 쾌청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비가 새도 바람을 막을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았던 추억을 되살리고 앞날을 희망차게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받을 것은 잊어버리고 줄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 한 번만 바꿔 먹으면 그 순간부터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마냥좋은글.... 엔돌핀 충전소^^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매일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7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시간 지나면 반드시 후회되는 35가지 https://bit.ly/3hPt5LR #마냥좋은글 #좋은글 #좋은글귀 #좋은글모음 #영감을주는이야기 #명언모음 #인생명언 #아름다운시 #좋은시 #맞팔해요 #짧고좋은글 #동기부여 #행복한글 #행복해지는법
"밤 9시 이후 모든 불 끄겠다"… 서울시 긴급대책 발표(전문)
저녁 9시 이후 서울을 멈춥니다. 지금 서울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내일(12.5)부터 저녁 9시 이후 서울을 멈춥니다. 오늘(12.4) 0시 기준 서울 지역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전일 대비 295명이 늘어난 총 9,716명이며, 오늘 0시부터 오후2시까지 추가 확진자는 167명입니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300명 가까이 늘어난 건 코로나19 발생 이후 역대 최대치입니다. 지난 11월25일 일일 신규 확진자가 200명을 처음으로 넘어서더니 확산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방역단계를 조정하며 방역과 민생을 모두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확진자 수는 지금까지의 조치로는 위기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감염병 확산이 특정 시설 등을 넘어 이미 일상 전반으로 퍼졌고, 수능 이후 대학별 평가와 연말연시 모임 확대 등으로 집단감염의 위험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울시는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1시 이후 서울을 멈추는 결단을 했습니다. 생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 사회 활동을 제외한 이동과 활동을 중단하기 위한 선제적인 긴급조치입니다. 서울시는 전반적인 경제, 사회 활동이 마무리 되는 밤 9시 이후 도시의 불을 끄겠습니다. 이번 조치는 12월5일(토) 0시부터 2주간 전면 시행됩니다. 기존 2단계에서 집합금지 됐던 유흥시설과 21시 이후 운영이 중단됐던 음식점, 카페, 실내체육시설, 아파트 내 헬스장 등 편의시설 등의 중점관리시설에 추가해 상점, 영화관, PC방, 오락실, 독서실과 스터디카페, 놀이공원, 이‧미용업, 마트, 백화점 등 일반관리시설도 모두 문을 닫아야 합니다. 단, 필수적인 생필품은 구입할 수 있도록 300㎡ 미만의 소규모 마트 운영과 음식점의 포장, 배달은 허용됩니다. 독서실, 교습소와 입시학원 2,036개소를 포함해 총 2만5천 곳의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카페도 21시 이후 운영을 중단합니다. 21시 이전 수업에 대해서도 온라인 수업을 강력 권고하겠습니다. 서울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와 자치구, 시 투자출연기관이 운영하는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등 공공문화시설 66개소, 청소년시설 114개소, 공공체육시설 1,114개소 등 공공이용시설은 시간에 관계없이, 일체의 운영을 전면 중단하겠습니다. 다만, 사회복지시설은 돌봄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일부만 운영합니다. 서울시는 국공립시설도 같은 조치가 적용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 요청하겠습니다. 대중교통도 야간시간엔 운행 감축을 확대하겠습니다. 21시 이후 대중교통 운행을 30% 감축하겠습니다. 시내버스는 바로 내일(12.5)부터 감축 운행에 들어가고, 지하철은 다음 주 화요일(12.8)부터 감축하겠습니다. 이번 야간시간 감축운행이 서울지하철 외 구간에서도 연계되도록 국토부, 코레일과 긴밀히 협의 중에 있습니다. 비상 상황에선 지하철 막차시간 24시에서 23시로 단축도 추진하겠습니다. 출근시간 대 유동인구 분산을 위해 서울시, 25개 자치구, 25개 시 투자출연기관은 다음 주 월요일(12.8)부터 1/2 재택근무와 시차출퇴근제를 실시합니다. 민간 부문도 1/2 재택근무와 시차출퇴근제에 강력 동참하도록 서울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에 협조를 구했습니다. 종교시설의 비대면 온라인 전환도 요청 드립니다. 이미 동참해주신 불교, 원불교, 천도교, 성균관에 감사드리며, 기독교와 천주교의 비대면 온라인 예배 전환을 간곡하게 요청 드립니다. 즐거운 성탄을 위해선 지금 멈춰야 합니다. 시민여러분께서도 동절기 모임과 각종 회식, 동호회 활동 같은 소규모 단위 모임과 만남을 자발적으로 취소, 연기해주시길 간곡하게 당부 드립니다. 다음으로, 병상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2월3일(목) 20시 기준 수도권 감염병전담병원 병상가동율은 71.2%이고, 서울시는 79.8%입니다. 서울시 중증환자 전담치료병상은 총 61개이고, 사용 중인 병상은 53개로, 입원 가능한 병상은 8개입니다. 서울시 생활치료센터는 7개소 총 1,473병상이고, 사용 중인 병상은 1,098개, 즉시 가용가능병상은 93개입니다. 서울시는 그동안 다각도로 병상을 확충하고 있지만 현재의 발생 추이가 계속되면 병상 부족 사태가 불가피합니다. 서울시는 공공의료체계 유지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일반 병상도 다음 주 월요일 3개 병동, 81병상의 시립동부병원을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추가 운영하는 등 시립병원 인프라를 활용해 107개의 일반병상을 추가 확보하겠습니다. 시립병원 유휴공간에 콘테이너를 활용한 임시병상도 설치하겠습니다. 서울의료원에 12월10일 48병상을 시작으로, 서울의료원 분원, 서북병원, 이렇게 총 3곳에 150개의 임시병상을 설치, 운영할 계획입니다. 기존에 서울시가 운영 중인 생활치료센터 7개소에 더해 ‘자치구 생활치료센터’도 설치하겠습니다. 종로구, 영등포구, 동대문구 등을 필두로 다음 주면 25개 각 자치구별로 1개소씩 생활치료센터가 문을 열게 됩니다. 49세 이하 무증상자는 자치구 생활치료센터에서, 50세 이상 무증상자나 경증환자는 시가 운영하는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서울시는 자택격리치료 사태만큼은 막겠다는 각오로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서울이 처음으로 밤 9시 이후 도시의 불을 끄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지금 서울의 상황은 엄중합니다. 그동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감안해 최대한 경제가 순환되는 범위 내의 방역대책을 고민해 왔지만, 지금으로선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현재 코로나 확산의 중심인 수도권, 특히 전국의 사람과 물류가 모이는 서울의 확산세를 조속히 막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뚫릴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더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결단했습니다. 목표는 2주 내 일평균 확진자를 100명 미만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시민들에게는 각종 생활 불편,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돼야 하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방역당국과 시민이 원 팀이 되어 뜻과 실천을 모은다면 코로나 확산의 불은 끄고 일상의 불은 다시 켜는 날이 조만간 올 것으로 믿습니다. 시민과 함께 여기까지 버텨왔습니다. 항상 방역당국에 협조해주시는 성숙한 서울시민 여러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현재 코로나 확산의 중심인 수도권, 특히 전국의 사람과 물류가 모이는 서울의 확산세를 조속히 막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뚫릴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더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결단했습니다. 목표는 2주 내 일평균 확진자를 100명 미만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시민들에게는 각종 생활 불편,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돼야 하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방역당국과 시민이 원 팀이 되어 뜻과 실천을 모은다면 코로나 확산의 불은 끄고 일상의 불은 다시 켜는 날이 조만간 올 것으로 믿습니다. 시민과 함께 여기까지 버텨왔습니다. 항상 방역당국에 협조해주시는 성숙한 서울시민 여러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모두 조금만 더 버텨봅시다!
팝의 황제 이야기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 대중음악의 주류는 엘비스에서 비틀즈로 대변되는 소위 '백인' 음악이었습니다. 로큰롤과 팝으로 대표되는 음악들은 악기연주위에 목소리를 얹는 귀를 만족시키는 '듣는 음악' 이었죠.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바뀝니다. 백인과 흑인의 음악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며 인종을 뛰어넘는 음악이 등장했고, 난생처음 보는 움직임까지 더해 대중들의 귀 뿐만 아니라 눈까지 만족시키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합니다.  1958년 8월 가난한 흑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가정부였던 어머니와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작고 열악한 집에서 학대를 일삼는 아머지가 계셨고, 너무나 많은 형제와 함께 자랐습니다. 특히 아버지 조 잭슨은 앞으로 일어날 마이클의 모든 일생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 아머지는 전전긍긍하며 일을 하는데 그 중 밴드생활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죠. 이 밴드활동에는 성과는 없었지만 잭슨가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마땅히 놀 장난감이 없었던 아이들은 아버지가 밴드를 하던 당시 사용했던 악기들을 가지고 놀게되죠. 잭슨 형제들, 특히 마이클은 음악에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조 잭슨은 잭슨 브라더스라는 가족밴드를 기획해 거의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아이들에게 시키게 됩니다.  이들 밴드는 마이클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활동하며 스트립 클럽에서까지 공연을 하고, 마이클이 9살되던 해에 <Big boy> 라는 곡이 발매되어 자기 곡을 가진 밴드 잭슨 파이브가 되는데요.  1969년 잭슨 파이브는 지방레코드사를 거쳐  '모타운'이라는 메이저 흑인음악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순식간에 유명세를 탑니다. 마이클은 이 과정속에서 어딜가나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잭슨 파이브 팀내를 넣어 동시에 가수 누구보다 주목을 받았고, '모타운'은 이러한 마이클에게 반하죠.  그래서 데뷔 1년동안 싱글 네 개를 내어주고 잭슨 파이브를 모타운의 간판으로 내세우게 되었죠.  잭슨 파이브는 <I want you back>,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으로 이어지는 네개의 싱글을 모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리며 모타운의 기대에 부흥합니다. <I'll be there>은 차트 1위를 5주동안 기록한 초대박 성과를 이뤄낸 곡이 됩니다. 마이클은 잭슨5와 더불어 솔로 활동도 펼치고 다니게 되죠.  <Got to be there>이라는 앨범으로 솔로 데뷔한 마이클은 <Ben>으로 빌보드 1위에 오르며 고작 12살이라는 나이에 본인 자신만으로도 최고의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그러나 마이클에게는 이런 가족의 성공 가도가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버지로인해 음악하는 기계로 살아야만 했죠.  또한 밴드의 성공은 아버지와 마이클의 형들이 방탕한 삶을 살도록 했고, 어린나이에 그런 것들을 지켜보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을 보냅니다. 또 어린나이부터 시작한 활동과 유명세 때문에도 학교도 다닐 수 없었죠. 동년배들이 학교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유년시절 외로운 기억은 마이클잭슨의 평생 트라우마가 됩니다.  유년기를 지나 마이클의 첫 성인 커리어는 1979년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시작됩니다. 마이클은 첫 성인솔로를 준비하며 그가 출연했던 영화 작업 중 만난 퀸시존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첫번째 홀로서기 앨범이었던 <Off the wall>은 미국에서만 800만장, 전 세계적으로 2천만장이 팔리며 대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만족하지 못하죠.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였고, 평론가들의 찬사도 이어졌지만 그래미에서의 무시, 롤링스톤 표지모델 거절 등 백인 중심의 주류 음악계에서 그는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인종 문제에서 비롯된 이러한 차별은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과는 별개로 음악에 대한 욕심과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마이클에게 독기를 품게 만들었죠. 그는 결국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을 만들어 냅니다. 1982년 마이클 잭슨의 두번째 앨범 <Thriller>는 인종차별에 독기를 품은 마이클의 의도대로 백인,흑인의 음악경계를 무너뜨리며 전 세계 6500만장 이상 팔리게 되죠.  이는 어느정도였냐하면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등재될 정도였습니다. 이 음반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다른앨범까지 구매하면서 그 해의 음악 산업 자체가 성장했을 정도로 큰 획을 그은 앨범이 됩니다. 앨범에 수록된 거의 모든 트랙이 차트 정상 및  상단에 올랐고, 평론가들의 찬사는 물론 본인이 염원했던 그래미와 롤링스톤의 표지까지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키는데요. 1983년 5월 모타운 기념방송 공연무대에서 선보인 그의 무대는 말 그대로 음악의 역사가 바뀌는 현장이됩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중절모와 자켓, 그리고 흰 장갑을 끼고 등장한 마이클잭슨은 화려한 춤과 문워크로 전세계를 뒤흔들게 됩니다.  이 무대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봐도 촌스러움이 없고 완벽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무대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부터 대중 음악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여 춤이라는 요소가 공연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고, 음악은 단지 듣는 것에서 보고 듣는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앨범은 음악계 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죠.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을 펼치던 MTV는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골든타임 대에 마이클잭슨의 영상을 틀었고, 흑인 연애인들이 거의 나올 수 없던 Tv채널이나 라디오에서 마이클의 음악과 영상들이 나오면서 흑백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후에도 마이클은 <Bad>, <Dangerous>, <History>등의 앨범을 남깁니다. 앨범의 모든 트랙이 완벽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대로 각각의 앨범은 4-5년이 걸릴 만큼 긴 시간을 두고 발매되었죠. 역대급이었던 <Thriller>만큼의 히트는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그의 이름값에 걸맞는 성공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연예인 마이클 잭슨의 유명세는 자연인 마이클잭슨의 삶을 점점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그가 움직이는 모든것이 화제가 되고, 등장하는 모든 매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다보니 언론은 자극적이고 근거 없는 루머들을 무차별적으로 생산해 내기 시작했죠.  가장 대표적인 루머는 마이클의 피부색과 외모에 대한 것이었는데 언론은 점점 하얘지는 그의 피부색과 날카로워지는 외모에 대해 '마이클 잭슨이 백인음악을 하는 것을 넘어 백인이 되고 싶어한다'라며 끊임없이 기사화를 시킵니다. 사실 그의 피부는 백반증이라는 질병이었고, 코와 턱의 성형수술은 어린시절 아버지 조잭슨의 얼굴에 대한 폭언과 폭력으로 생긴 외모 콤플렉스였습니다. 이런 무차별적인 루머들은 3류 타블로이드지뿐 아니라 주류 언론에서도 다뤄지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게되고 이 밖에도 그가 사는 네버랜드에 관한 근거없는 이야기를 이용해 마이클 잭슨을 미친 마이클잭슨 'Wacko Jacko'로 칭하며 그를 현실과 분리된 존재처럼 만들어내죠. 그를 괴롭힌건 언론뿐만이 아니었죠. 엄청난 부를 이룬 그는 많은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는데요. 마이클이 호의로 초대한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그를 소아추행범으로 고소했고, 헐리우드의 악덕 변호사들과 손을 잡고 마이클을 괴롭힙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약물을 사용해 진술을 바꿀만큼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사건은 1500만달러의 합의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죠.  합의라는 명분때문에 아직도 마이클잭슨을 소아성애자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고 LA아동 복지국의 조사 결과도 잭슨의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되죠.  이후에도 그는 또 다른 어린아이의 성추행에 관한 재판을 다시 한번 겪게 됩니다.  두번째 사건도 마찬가지로 마이클의 혐의에 대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는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마이클은 수색과정에서 알몸수색을 당하고, 타블로이드지의 보도를 기정사실로 가정한 수사당국의 압박을 받기도 하는 등 큰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죠.  특히 유년시절을 통째로 잃어 버려 어린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이클잭슨의 순수한 마음에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에 대한 괴로움은 그를 결국 불면증에 시달리게 하고, 약물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불면증으로 인한 약물 의존은 훗날 그를 사망까지 이끄는데요. 2009년 6월 그가 사망한 자택에서는 매우 많은 양의 프로포폴 병이 발견되었죠.  그리고 그를 괴롭히던 언론과 대중들은 그가 죽고나서야 루머를 멈춥니다.  어린 나이부터 단 한번도 최고의 자리를 벗어난 적 없던 마이클 잭슨,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그가 썼던 왕관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했을 지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아직까지 제 2의 마이클 조던이 나오지 못한것처럼, 여전히 팝의 제왕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이클 잭슨. 언젠가는 그의 아성을 넘어뜨릴 또 하나의 레전드 아티스트가 나올 수 있을까요? 펌) 출처 정말 순수했던 사람... 너무 힘든 삶을 살다 갔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고 있기를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