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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이야기] 대전의 서명원의 활약!

포츠머스 유소년 출신. 오늘까지 두경기 연속 골 기록 했습니다. 서명원의 활약에 힘입어, 대전은 안산경찰의 뒤를 이어 현재 K리그 챌린지 2위입니다. 물론 3R 밖에 되지 않았으나, 과연 서명원은 대전의 승격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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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티즌 K리그 챌린지 깡패모드죠 ㅋㅋ 이러다 클래식가서 또 팔려갈까 걱정이네요 ㅠㅠ
오 이런 유망주가 있었군요.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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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헬짱이야. 오늘부터 다양한 운동자세, 스트레칭, 건강 정보를 올리려고 해 빙글의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반말이 편하니 반말을 주로 사용할게 불만 있으면 말해줘 구워먹을 고기가 많거든. 뭐. 암튼 나 팔로하고 스크랩해놓으면 당신도 몸짱이 될 수 있을거야 꾸준히 보자~~~~~~~~~~~~~ 태양경배자세 (수리야 나마스카라) 생리통 요통 두통 오십견 하지불안증 수족냉증 혈액순환에 좋고 살도 빠지고 근육도 바르게 자리잡히며 자세가 좋아지고 지병이 낫고 집안 사정이 좋아지며 월급이 오르고 삶의 질도 오르고 암튼 다 좋다고 함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거임 ㅇㅇ 수족냉증이 있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몸에 순환이 안된다 느껴질 때, 겨울에 넘 추울 때, 운동하기 전에 웜업으로 하기 좋은 자세임 두 번 정도 쌔리면 바로 쟈라르르르~~~ 느껴지는 열기 인도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태양이 떠오를 때 경의를 표하는 마음을 담아 이 동작을 반복해왔다고 함 그래서 이름이 태양경배자세 ㅇㅇ 요가 조빱인 내가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자세임 순서는 이렇게 진행되는데, 그냥 보면 참 쉬워보이지 않음? 아주 간단하게 내 몸을 깨울 수 있다 이 말이지 요즘 코로나때문에 집에만 있어 온 몸이 찌뿌둥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함 속는셈 치고 따라해보시오. 외워두면 뭔가 있어보이기도 하고 이곳 저곳에 효과도 좋으니 개꿀 아닌지~? 아 그리고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 꼭 자신의 신체에 맞는 자세로 천천히 할 것. 아니면 시간 낭비거나 근육을 다치게 됨ㅇㅇ 잘 모를 땐 살살해도 되는 게 태양경배자세의 좋은 점임 2번 허리를 뒤로 젖히는 대신 위로만 곧게 펴기, 3번 전굴할 때 무릎을 많이 굽히기, 6번은 어깨만 살짝 들기 등 얼마든지 본인 몸에 맞춰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으므로 무리하지 않아도 됨. 다들 오늘 자기전에 한번씩 해보는게 어떨까? https://www.youtube.com/watch?v=gHcpJv9E0x4
[상식축구]이승우 사건, 도대체 뭐가 예의입니까
(사진=네이버 KBSN SPORTS 캡처) 후반 35분 우리나라 선수가 쓰러졌다. 심판은 다급히 휘슬을 연달아 불었다. 동료, 상대 선수 할 것 없이 달려왔다. 팀닥터들이 뛰어 들어갔다. 몇 초, 몇 분이 흘렀을까. 그제야 구급차가 경기장으로 들어갔고 쓰러진 정태욱은 그대로 구급차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다행히 정태욱은 검사 결과 이상이 없음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이승우의 태도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대한민국 U-20 대표팀은 지난 3월 27일 아디다스 U-20 4개국 친선 축구대회서 잠비아를 만나 4-1 대승을 거두었다. 한국의 초특급 유망주로 손꼽히는 이승우가 이 날 경기서 2골을 몰아넣으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역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유망주다. 이승우는 전반 40분, 바르셀로나 동료 백승호의 패스를 받아 골로 성공시키며 2-1로 한국의 리드를 가져왔다. 이어 후반 24분 상대 골키퍼가 나온 것을 보고 환상적인 칩샷을 터트렸다. 이승우의 클래스를 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이승우 인성, 논란거리인가? 세계는 이승우의 성장세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승우의 인성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이승우는 후반 35분, 헤딩 경합을 하다 쓰러진 정태욱에게 달려왔다. 다급히 구급차를 불렀다. "빨리 오라고! 빨리 오라고! XX." 문제는 이 발언이었다. 경기장 안으로 빨리 들어오지 않은 구급대원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핵심은 '욕까지 해야 했었나?'라는 것이다. 빨리 들어오라고만 하면 될 것을 그렇게까지 분노하면서 소리쳐야만 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이승우의 감정은 모두가 이해할만 하다. 팀 동료가 심각한 부상일지도 모르는 머리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며 다급한 마음에 구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행위다. 과장된 표현일수 있지만, 세월호 사건을 이 사건에 대입해본다면, 마치 '가만히 있어라' 같은 내용이 될 수도 있다. 큰 부상을 당했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방방 뛰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맞다. 주변에 팀닥터가 있어서 괜찮다? 그렇다면 주변에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좋다는 말인가? 글쎄. 충분히, 100% 이승우의 행동에 동의한다. 비유가 적절치 못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내 입장은 이승우 편이다. 또한 이승우는 현재 스페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유럽의 시스템이 다 잘 갖추어져있고 우리나라는 그에 비해 형편없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적으로 스페인의 의료 시스템은 최고 수준일 것이다. 특히, 선수가 부상당했을 때의 대처 요령 등과 같은 것 말이다. 이승우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진에게 불만이었을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승우의 태도, 사진=네이버 KBSN SPORTS 캡처)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하자 이승우가 화낸 것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왜' 이승우가 그랬는지를 근본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대체 왜 이승우가 화를 냈을까. 그 이유는 의료진의 초동 대처가 미흡한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위급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상황 대처 요령을 숙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체감할 때 분명 우리나라 스포츠 의료 체계는 문제가 있다. 과거 2000년 4월 18일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2회 초 2루로 진루하던 故임수혁(롯데 자이언츠, 향년 42세)선수를 떠올려보자. 2000년대라면 분명히 의료 기술이 발전한 시기였다. 지금은 그보다 더 발전했겠지만 그 당시도 충분히 구급차, 의료 체계가 갖춰졌을 기술력이다. 하지만 당시 구급차도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사고 대책이 미흡해 결국 故임수혁 선수는 식물인간 상태로 10년을 지냈고 끝내 2010년 눈을 감았다. 당시에 누군가 소리쳤다면, 구급차를 애원하며 울부짖었다면, 초동 대처가 확실했다면 故임수혁 선수는 야구 팬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故임수혁 선수 사건 이후 스포츠계는 의료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특별히 큰 사건을 겪지 못했다. 내가 알기론 큰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무엇이 예의인 것일까. 예의를 생명보다 먼저 갖춰야 하는 것일까. 정태욱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혹여나 초동 대처의 미흡으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기라도 한다면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그 때는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잘잘못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역대급 터프함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준 김형일
어제 전북vs상하이 경기에서 나온 중국 선수의 미친 하이킥입니다. 중국의 클래스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중국도 중국이지만 실점 앞에서 온몸을 내던지는 한 수비수의 모습이 더 눈에 띕니다. 당시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 선수는 몸을 던지는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 김형일 누가봐도 위협적인 이 장면에서 과연 공에 머리를 가져다 대는 선수들이 몇명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하튼 축구화 스터드에 얼굴을 가격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형일 선수는 이내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벌떡 일어나 선수들을 독려하고 파이팅을 불어넣어주는 김형일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스터드에 얼굴을 가격당하는 심각한 파울을 당했음에도 금새 일어나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 나아가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모습...... 보는 내내 소름이 돋습니다 사실 터프함하면 바로 이분이죠? 젠나로 가투소 하지만 어제 김형일은 아시아에서 터프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인데, 사실 국축이 그렇게 인기있는 상황이 아닌데 국대도 아닌 클럽 선수로서 이렇게 검색어에 오르게 된다는것 자체가 그의 플레이의 클래스를 알게 하는 상황입니다. 원래도 파이팅형 수비수이긴 했지만 어제 있었던 저 장면을 기점으로 5: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가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기세면에서 이때 상하이는 꺾이게 됐습니다. 김형일은 상대의 퇴장과 우리의 사기까지 한 번에 끌어올린 최고의 한 수 뒀고 상대를 침몰시키는데 보이지 않는 가장 큰 공헌을 했습니다. 김형일 선수 너무 멋있었어요 ㅠㅠㅠ
복근 개박살 루틴, 야 너두 빨래판 될 수 있어!
이제 내일부터 황금연휴네? 제주도나 강원도쪽으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코로나 또 확산되는게 아닐까 걱정이다 ㅠ 우리 빙글러들은 연휴에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홈트로 건강해지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맞다 5월부터 나랑 같이 홈트 한달 챌린지 할 사람!!!!!!!!! 항시 모집중이니까 편하게 댓글 달아줘~ -------------------------------------------------- 복근이야말로 노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죠. 근육이 생긴다고 해도 체지방을 제거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제대로 볼 수 없는 근육이기도 하구요. 함께 해보시죠. 어렵진 않으나 동작이 조금 많으니 잘 보고 따라해주세요. 1. 마운틴 클라이머 산을 오르듯이 한 발씩 가슴쪽으로 당기는 동작입니다. 무릎이 가슴쪽으로 당겨져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코어를 단단히 유지합니다. 힘이 빠지게 되면 무릎이 앞으로 오지않고 당나귀 뒷발 차듯이 발을 구르게 되는데 그러면 운동 효과가 없습니다. 2. 더블 크런치 머리는 손에 고정하고 팔꿈치가 허벅지에 닿을 때까지 상체를 일으켜 줍니다. 상복근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운동. 3. 더블 탭 트위스트 크런치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상체를 들어 왼쪽 팔꿈치가 먼저 오른쪽 다리에 닿게하고 차례로 왼쪽을 대주면 됩니다. 반대발도 마찬가지로 하면 됩니다. 측면 복부, 복사근을 자극하는 운동입니다. 4. 시티드 니 턱스 손으로 뒤를 짚고 앉은 상태에서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가 다리를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쭉 펴줍니다. 5. 플러터 킥 고개를 들고 다리를 쭉 뻗어 물장구를 치듯 반복해 내렸다 올렸다 합니다. 하복부를 자극하는 운동이며 코어에도 좋습니다. 6. 크런치 홀드 상체를 들어 버티는 동작. 다리를 사진처럼 고정해도 되고 땅에 닿을 듯 말 듯 띄워서 하셔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복부를 자극하는 운동
도장 선택 가이드 : 격투기 시작하는 놈들은 정독해라.txt
1. 타격vs유술 격투기를 가장 간단하게 나누면 타격계와 유술계로 나눠짐. 타격계: 줘 패는 무술. 복싱, 킥복싱, 기타 등등. 처음 동작을 배울 때는 예스잼이지만 3개월 넘어서서 기본기를 대충 다 배우고 반복연습, 자세교정, 콤비네이션 연습할 때부터 재미가 뚝 떨어지기 때문에 3개월차에 때려치는 사람이 많음. 그래서 도장이 분기별로 한번씩 물갈이가 됨. 유술계: 잡아서 던지고 꺾고 비트는 무술. 유도, 주짓수, 삼보, 레슬링 등등. 입문 후에 한동안 재미없는 낙법, 새우드릴, 기본자세 무한반복 등으로 인해 1개월안에 다수가 떨어져 나가지만. 강해진다는 느낌을 빠르게 받기 때문에 초반만 버티면 재미있어짐. 다만 스파링에서 초보 때려잡다가 뽕을 심하게 맞아서 빠돌이, 빠순이로 진화하는 경우가 생김. 일반적인 취미로 하기엔 타격계 쪽이 더 좋음. 입문비도 낮고 좀 더 동작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워서 배우기도 편함. 둘 다하는 MMA도 있는데 초심자에게는 추천하기 힘듬. 이유는 나중에. 2. 종목선택 사실 도장을 선택할 때 종목보다는 거리가 우선임. 운동은 일주일만 쉬어도 몸이 늘어져서 운동 나가기가 귀찮고 싫어짐. 괜히 먼데 있는 도장을 선택했다가 ‘아 피곤한데 하루만 쉴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끝장임. 억지로라도 도장을 나가서 운동을 할수 있도록 가까운데 등록하는게 좋음. 어쩄든 계열을 골랐으면 이제 운동을 고를 차례. 추천 종목 및 특징에 대해 써보자면 1) 타격계 1> 복싱: 대중적이고 회비도 저렴. 생활체육 대회도 많아서 실력 확인해보기도 좋음. 단점: 도장에 양아치들이 많음. 자율방임형 도장이나 새로운 이론 이런거 없이 일단 굴리면 강해진다는 올드 스타일의 무식한 도장이 많아서 도장을 잘 골라야 함.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뮤직 복싱 써 있으면 거를 것. 2> 킥복싱: 운동량이 많고 역동적임. 배울게 많다보니 다니는 재미가 있음. 단점: 도장에 껄렁거리는 고딩들이 자주옴. 자율방임형 도장이 많고, 기술이 하도 많다보니 제대로 자세 잡아주는 도장이 좀 적음.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성인이 도복입고 있으면 거를 것. 합기도 관장 출신이 운영중인 경우 격투기(무술명)or킥복싱 시합에 관원들 안보내고 있으면 거를 것. 3> 무에타이: 킥복싱과 거의 같음. 차이가 있다고는 하는데 사실 그게 그거. 가끔 태국식 용어로 가르쳐서 딴데서 배우다 온 사람들 헷갈리게 하는 도장이 있음. 단점:4개월만 하면 시합에 내보내려 함.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단체 보고 들어가면 됨. 유튜브에서 태국 애들 미들킥 차는 자세좀 보고 도장가서 수련생들이 뺵 차는거 보고 대충 비슷한거 같으면 들어가도 됨 (미들킥 자세 잘 잡아준다=코칭 능력 최소 ㅍㅌㅊ). 그리고 관장님 잘에 각종 메달, 트로피, 시합사진 안 걸려있는 곳은 걸러라. 짭 도장들 특징이 놀아주는 단체가 없어서 시합에 못나가니까 포스터만 구해다가 덕지덕지 붙여놓고 이빨로 속인다는 거임. 이런 데에 잘못 걸리면 좃 되는거다. 하 시팔 내가 짭 도장 한곳 이름을 ㅈㄴ 불고싶은데 법 때문에.. 공통적으로 샌드백 꾸진거 쓰면 걸러라. 내가 봤던데중 최악은 군용 더블백에 천쪼각 채워서 샌드백으로 매달아둔데 있었는데 거기는 정말.. 4> 태권도 : 굳이 이걸 하려고? 도장은 대부분 초~고딩 놀이터. 어른들이 배우려면 동아리나 성인부 전문으로 운영하는 도장을 찾아야 함. 단점: 동아리 찾기가 좆같음.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9시부에 갔을 때 중~고딩 비율이 60% 넘으면 걸러라. 특히 고등학교때까지 양아치짓 하다가 뒤늦게 태권도 배워서 대학가겠다고 설치는 얘들 있는 도장은 필히 거를 것. 고딩들이 운동 끝나고 도장 나와서 담배에 불부터 붙이는거 구경하게 될거임. 5> 가라데 (스포츠) : 우리 집 앞에 도장 하나 있더라. 옛날에 단체 대빵이 우리 무술은 무식한 놈은 못하는 무술이니 한자 급수 따와야 승단시켜 준다고 해서 난리난적 있음. 섬전같이 파고들어서 얼굴을 후려갈겼는데 이게 정타로 맞아서 상대가 기절하면 때려서 기절시킨 놈이 반칙패 하는 희한한 무술이라… 생활체육으로는 솔직히 좋을 듯? 카타(품새)도 간지나고. 단점: 도장이 없음.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도장이 없음. 2) 유술계 1> 주짓수: 재능충들이 다 씹어먹는 타격계에 비해서 노력충이 어느정도까지는 통하는 동네. 6개월만 열심히 해도 갖 들어온 일반인 능력치의 초보는 사이드 타고 관광보낼수 있어서 강해졌다는 체험을 하기 좋고, 흥미도 가지기 쉬움. 단점: 사이비 많음. 관장님들이 돈을 좀 많이 좋아함. 존나 잘다침. 싸이코&빠순이가 많음. 다쳤다 하면 최소 전치 3주부터 시작함.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네이버,구글,다음 까페에 도장명 쳐보고 갈 것. 2> 레슬링: 있으면 다녀라. 배워서 나쁠건 전혀 없음. 단점: 도장 찾기가 힘듬. 있어야 다니지 시발.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집 근처에 없다는게 문제. 3> 합기도 : ㅈㄴ 애매한게 열심히 하는 관장님이 있는 동네면 어설프게나마 킥복싱, 주짓수, 호신술 등등의 맛을 다양하게 볼수 있는데. 90%가 대충 연수받고 도장 간판에 한 줄 더 써놓은 거라는게…. 전통파 합기도 써있는데는 걸러라. 도주가 손목 잡고 힘 주면 갑자기 비명지르면서 감전된 사람 흉내 내다가 쓰러지는 종교단체 같은 동네임. 단점: 사이비가 조오오온나 많음. 98% 확률로 초딩 놀이터. 도장 선택시 주의사항: 반경 30km 내에 도장 없으면 한번 가볼 것. 비추천 종목에 대해 써보자면. 크라브마가 : 뭐 이스라엘 사냐? 솔직히 호신술은 가르치는 교관도 그 상황 되면 못함. 그리고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운동인데 단체가 벌써 몇 개씩이나 생긴 데엔 다 이유가 있음. 우슈: 잘 고르면 타격기 최강무술인 산타를 배울 수도 있지만. 대부분 비싼 비단옷 입고 희한한 개폼잡다가 끝날거임. 그리고 병장기 사라고 꼬심 당하겠지. 나도 산타 가르쳐준다고 해서 들어갔든데 한달동안 탄퇴인가 뭔가 하는 이상한 품새 비슷한거만 하다가 때려침. 유도: 저렴한 가격에 최소 시대표급 한테 배울 수 있는데다가 운동 자체가 진짜 좋은 운동인데. 이건 한방에 몸 병신 만들기 딱 좋은 무술임. 발 삐끗해서 쇄골 부러진 사람이나 뒷통수부터 박고 기절한 사람은 실제로 봤고, 떠도는 전설 중에 유도 선수가 신검받으러 가서 어깨를 뻈다 끼우는 마술 한방으로 공익을 받았다는 둥… 여튼 생업에 지장주기 딱 좋은 무술 극진: 유도보다 생업에 더 지장을 줌. 끝. 그리고 단체도 뭐 그렇게 많은지.. 아는 친구 하나는 예전에 S 동의 K 사범 도장에서 일본제 도복이라는 말에 혹해서 비싼 값 주고 도복을 샀는데 사이즈 안맞는 걸레쪼가리를 받기도… 여튼 이거 하는 사람을 거르는게 좋음. 여자친구가 “라면 먹으러 갈래?” 라고 제안했는데 “미안 커팅기간이야” 이러면서 싸대기 쳐서 날려보낸다는 헬스가이들보다 독한 넘들임. 기타 잡 중국무술: 가르치는 사람들이 예전에 투로 하나에 아파트 한채 값씩 받은 다음에야 가르쳐 줬다는 전설을 기억하는 양반들이라… 그리고 뽕 너무 맞고 주화입마를 당했는지 2010년도에 진지하게 “UFC 선수들은 2차원적인 움직임이지만 우리는 보법을 포함한 3차원 움직임이라 실전에서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더라. 이런거 배우지 마라. MMA는 애매한게 좋은 도장에서 배우면 펀치, 킥, 주짓수, 레슬링을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데. 잘못 골랐다간 태권도 킥, 고양이 펀치, 합기짓수, 몽골 씨름을 겉 핥기 하다 끝낼수도 있음. 그리고 큰 MMA 도장은 추천을 못하는게 모 팀처럼 드넓은 도장에 수십명 풀어놓으면 코치가 3~4명이어도 다 감당을 못해서 자세 잡아주기, 코칭은 기대도 못함. 도복 주짓수 전문 도장에서 운영하는 MMA 시간은 조금 애매하다고 보면 됨. 주짓수에 방해 된다고 샌드백 하나 없는 도장이 많아서 타격 연습도 힘들고… 기타 잡 무술 : 니가 못들어본 데엔 다 이유가 있는거다. 여자 많은 도장은 운동을 할꺼면 모르겠는데 격투기를 하고 싶으면 거르는게 좋다. 별 생각 없이 등록했다가 1달 내내 에어로킥인가 뭔가 하는 이상한 에어로빅 댄스만 한 적도 있고. 여자가 너무 많으면 남자는 미트 대주고, 머리통 대주고, 샌드백도 잡아주는 노예로 전락함. 뭣 좀 하려고 하면 불러다가 쟤 미트좀 잡아줘라, 쟤는 공격만 하고 넌 피하기만 해라, 펀치 치게 샌드백 좀 잡아줘라 등등.. 가능하면 시설 좋은데로 가는게 좋다. 오래된 도장 특유의 퀘퀘한 땀내는 운동에 대한 흥미를 깎고, 미트 절반은 터진거라 운동할때 미트 멀쩡한거 고르려고 박터지게 싸우다보면 기분도 안좋다. 심지어는 무에타이 도장에서 돈아낀다고 렉가드 대신 태권도용 아대 가져다 놓은데도 봤는데, 시팔 이런데서 배우고 싶냐? 3. 코칭 방식 & 시설 도장은 대부분 둘중 하나임. 자율시간제 or 타임제. 자율시간제는 아무때나 와서 알아서 몸 풀고 운동하고 있으면 와서 자세 잡아주고 사람 좀 모이면 모아다가 기술 가르치고. 가끔 미트 잡아주고 하는 방식. 타임제는 시간표대로 끊어서 가르치는 방식. 자율시간제가 운동 맛좀 본 사람한테는 편한데, 초보가 가면 허둥지둥 하다가 도장 구석에서 하루종일 백만 두들기다 올 확률이 높음. 초보면 엔간하면 타임제로 가라. 가끔 도장 중에 두 타임 뛰면 눈치 주는데 있는데 그런데는 그냥 거르면 됨. 이런데 없을거 같지? 세상은 존나 신비하다. 오래된 도장은 사람이 어느정도 있고 충성층이 많다보니 실력자도 꽤 있어서 배울게 있긴 한데. 웨이트 도구라고 해봐야 녹슨 아령 몇개, 옷걸이 대신 쓰는 복합운동기구 한두개, 고장난 싸이클 한대 정도에. 체력훈련도 올드스타일로 무식하게 굴리는 도장이 많아서 웨이트랑 병행하면서 운동하기는 어려움. 근데 묘하게 이런데서 구르던 얘들이 체력은 겁내 좋은 경우가 많더라. 최신 도장은 각종 운동기구, 신형 운동법으로 굴려대서 웨이트, 격투기를 병행하기는 좋은데. 가끔 야매로 배운 방식으로 굴려서 운동 효과가 되려 안나올때도 있고.. 그래도 가능하면 시설은 좋은데로 가는게 좋음. 4. 회비 & 비용 6(동아리)~15(대부분 주짓수) 생각하면 됨. 입관비는 왜 받는건지 모르겠는데 대부분 받더라. 대부분 3만원 정도? 타격계는 솔직히 헛돈 쓸 필요 없다. 집에 굴러다니던 티셔츠와 반바지로도 충분. 밴디지 정도만 사면 오케이. 호구 놈들이 말빨에 넘어가서 글러브, 빽장, 트렁크 풀세트 사놓고 티셔츠 받았다고 좋아하기도 하는데. 6개월 안에 장롱 구석에서 굴러다닐 확률이 높음. 몇개월 해보고 사라. 단 깔끔한거 좋아하면 뺵장정도는 킹스톤꺼 싸구려 하나정도는 사도 됨. 도장 빽장은 대부분 돌림빵 당하고 제대로 건조도 안된거라 끼면 손에서 발 냄새가 맡아지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거임. 그리고 초장부터 베넘 같은 비싼거 사는 놈들 있는데. 글러브는 소모품이지 소장품이 아님. 싼거 사서 쓰다가 운동이 맘에 들고 계속 다닐떄 쓰레기통에 버리고 좋고 비싼 새거 사면 됨. 유술계는 도복이 좀 비싸서 초기비용이 조금 쎔. 인터넷에서 사면 싸긴 싼데 눈총받으니 처음에 연습용 도복정도는 도장에서 사자. 마우스피스는 하나 사서 나쁠건 없음. 어짜피 이쪽 계열은 빠져들면 알아서 장비병에 걸려서 각종 도복, 래쉬가드, 배틀팬츠 등을 알아서 막 지르게 되어있음. 3개월 끊으면 입관비 면제+할인에 낚여서 3개월부터 덥썩 지르는 놈들 있는데. 끊었는데 와보니 도장 분위기가 좃같거나 대충 가르쳐줘서 다니기는 싫은데 3개월 낸 돈 아까워서 꾸역꾸역 다니다가 운동에 영원히 발 끊는 놈들 많~이 봄. 처음에는 1개월치씩 끊어서 다녀보고 3개월 끊는 걸 추천함. 5. 운동 내용 대부분 몸풀기(타격계는 영원한 친구 줄넘기 3~5r)-> 기술 수련-> 응용(빽치기, 미트치기, 기술연습)-> 유술계는 스파링, 타격계는 뺵or 미트치기-> 마무리 체력운동. 처음 가면 줄넘기만 한달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있는데. 요샌 그렇게 하면 손님 다 떨어져 나간다. 하루 이틀정도는 기본 스텝이나 낙법, 주짓수는 새우드릴이랑 암바, 삼각 같 같은 가르치고. 한 일주일이면 훅 어퍼 콤비네이션 치던가 포지셔닝 연습하고 있음. 체력운동은 가끔 크로스핏으로 굴리는데 있는데. 폐 튀어나올 것 같은데 억지로 하다가 집에가서 토하지 말고 못하겠으면 구석에 찌그러져도 아무도 눈치 안준다. 무리 ㄴㄴ. 6. 걸러야되는 인간. 가서 친해져서 좋은 사람이 있고 친해져서 나쁠 사람이 있음. 좋은 사람은 알아서 판단하고 대부분의 경험에서 나온 거를 사람을 얘기해주면 40대 덩치 큰 아저씨: 스파링때 무조껀 풀파워 후려갈김. 사범한테 메도우 복싱 하자고 하더니 풀파워로 죽빵 후려갈겨서 사범이 헤드기어 집어던진 일도 있었음. 이런 양반들이랑 하면 90프로 확률로 주둥이 터지거나 코피난다. 대부분 자세도 개판인데 풀파워로 때리면서 자기가 잘하는 줄 아는데다가 교정도 안됨. 걍 안어울리는게 상책이다 배울것도 없음. 양아치 고딩 : 니가 얘보다 쎄면 쟤가 밥이고, 니가 쟤보다 약하면 니가 밥임. 줘 패주면 얌전 해지는데 니가 맞으면 곤란함. 친구가 사범으로 있는 도장에 껄렁거리는 애새끼가 있었는데 스파링 때 풀파워로 죽빵 때리길래 딥으로 명치차서 주저앉혀 주니까 다음부턴 얌전하게 굴더라. 그러니까 훈련 열심히 해라. 정신이 1/20쯤 빠진 지체자 : 솔직히 말하자 얘들 곤란하다. 왠지는 모르지만 정신지체인 얘들이 운동신경은 떨어져도 힘이 ㅈㄴ 쎄다보니 재활 운동으로 격투기 많이 시키는데. 본인한테는 좋은데 도장에서 사고 진짜 많이 침. 나도 주짓수 하다가 정신지체아가 스파링중에 팔 확 돌려서 팔 인대 심하게 다쳐서 전치 4주 받아봤다. 스파링 할때도 힘조절이란걸 못하니까 너무 쎄게 쳐서 사고 여러건 터트리기도 했고. 솔직히 부모들한텐 미안한데 제발 딴 운동 시키면 안됨? 사람 여럿 다친다. 부자 전문직 아저씨: 이분들은 도장에 운동하러 오는게 아니라 말하러 온다. 7. 운동의 마음가짐 선수할꺼 아니고 취미로 할꺼면 그냥 적당히 하자. 다치면 생업에 지장생긴다. 오버하면서 보충제까지 먹어대고 술 끊는다고 난리쳐서 친구 기분 상하게 하던가, 회의자리에서 단백질 똥빵구 뀌어서 사람들 기분상하게 하지 말고 적당히 즐길정도만. 초보일때 지는거 부끄러워 하지 말것. 괜히 주짓수 하면서 탭 안치고 개기다가 다치거나, 킥복싱에서 몇대 맞고 발근해서 쎄게 하다가 감정상해서 쌈나지 말고. 배우고 즐긴다는 식으로 편하게 하다 보면 실력은 알아서 늘어남. 그럼 새해인데 다들 이거보고 결심해서 도장에 등록해서 즐겁게 운동했으면 좋겠다. 난 술먹고 놀 테니 운동들 열심히 해라. ㅊㅊ 디씨 격결
[울산 레전드 특집]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사람들에게 있어 팀에서 '레전드' 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공통분모격으로 해당되는 기준이 '해당팀의 원클럽맨' 이라거나, 아니면 '최소 그 팀에서 오랫동안 뛴 선수' 로 클럽에서 얼만큼 뛰었는지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물론 그 클럽에서 오랫동안 뛴 시간은 중요하다. 그만큼 클럽을 지지하는 이들과 오랫동안 추억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나 국내나 레전드로 꼽는 선수들에게 '멘탈' 부분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즉,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피치 위에서의 행동이라던지,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모습이 프로의식이 투철해야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 또한 선수들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예외도 분명 존재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에릭 칸토나,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출신인 슈테판 에펜부르크의 경우에는 각각 맨유와 바이에른에서 5시즌 이상 뛴 것도 아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혈질이며, 어느 순간에는 시한폭탄같은 분노를 피치에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두 클럽의 레전드 반열에 올라있으며 팀의 영광과 함께했다.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4번째 울산의 레전드는 이것과는 정반대격인 스타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유상철, 김현석, 김병지와 달리 오랫동안 울산에서 뛴 것도 아니며, 진중하거나 겸손한 스타일이 아닌, 화끈하면서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이 선수는 울산 팬덤 내에서는 말그대로 '언터쳐블(Untouchable)' 이며, 2000년대 이후 울산 팬이 된 사람들이 울산에 빠져들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쯤되면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밀레니엄 특급' 이자, '2000년대 K리그 대표 사기유닛' 으로 언급되는 이천수다. 이천수의 일대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울산 레전드 특집 -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1. 모든 이들로부터 주목받던 '밀레니엄 특급' 10대 소년, 그렇게 2002년 월드컵까지 종횡무진 이천수는 프로 데뷔하기 전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주목받는 '슈퍼 탤런트' 였다. 그가 고등학생 신분일 당시인 1990년대 후반에 고교리그는 이천수가 다녔던 부평고가 주름잡고 있었고, 이천수와 더불어 최태욱-박용호를 '부평고 귀각 3인중' 이라 불렸다. 그들을 앞세운 부평고는 국내 대회를 제패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청소년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1999년에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방가반두 컵에 청소년대표팀 주전으로 참가하였고, 태국 올림픽 대표팀을 7대2로 대파하였고(이천수가 무려 4골을 기록하였다),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까지 격파하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비록 일본 실업리그 팀에게 2대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에서 통합 8골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올라섰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천수를 '밀레니엄 특급' 이라 불렀고, 그는 10대의 나이에도 벌써부터 전국의 축구팬들이 주목하는 유망주로 등극했다. 이천수는 곧바로 1년 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고 동시에 국가대표팀 데뷔까지 끝마쳤는데, 그 때 그의 나이 겨우 19세에 불과했다. 이천수는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고, 2년 뒤인 2002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당당히 엔트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물론 비슷한 연령대였던 박지성처럼 주전선수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대표팀이 치뤘던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 주로 그는 교체선수로 투입되곤 했는데, 득점이나 도움을 기록하진 않았지만 폭발력 있는 스피드와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역할을 하였고,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동점골을 기록하고 쇼트트랙 세러모니를 할 때 오노 역할로 전파를 타기도 하였고, 이탈리아전에서는 최고 수비수로 평가받는 파올로 말디니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등 팬들 뇌리에도 상당히 강렬하게 남았다. 거스 히딩크가 이끌었던 한국대표팀은 '월드컵 4강' 이라는 한국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23인에 대한 해외 클럽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져갔다. 월드컵 때 모두의 시선을 끌었던 박지성과 이영표는 히딩크의 부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따라 네덜란드로 날아갔고, 차두리도 아버지인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에 성공했으며, 이을용은 한국인 최초로 터키 수페르리가 진출을 하는 등 대표팀 선수들의 해외이적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에 맞물려 이천수 또한 월드컵 직후 곧바로 해외이적을 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였다(월드컵 시작하기 이전에 이천수는 2001년에도 유럽 진출할 기회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의 달리, 그는 해외보단 국내리그를 택했다. 이미 그는 월드컵이 시작하기 이전에 국내 프로팀 입단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 반시즌만에 K리그를 접수한 '사기 유닛' 으로 등극하다(2002 ~ 2003 여름) 2001년 말, 고려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천수는 학교를 자퇴하고 울산과 계약하면서 프로 선수가 되었다. 계약금 3억원에 연봉 2000만원, 당시 신인선수가 받을 수 있는 역대 최고액을 갱신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계약에 붙어있는 특별조항들이다. 우선 울산은 이천수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의 이적료 전액을 이천수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당시 이적료의 10%를 선수에게 주는 관례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뿐만 아니다. CF 광고시에도 이천수에게 전액 보장되었다. 예를 들어, 그가 이천수의 이적료가 10억원이고 CF 광고를 몇차례 촬영한다고 가정하면 그는 1년에 무려 20억원을 버는 구조인 셈이다. 사실 그는 모교였던 부평고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입단하길 갈망했었고, 함께 뛰었던 최태욱은 졸업 후 안양 입단을 확정지었다. 집안형편도 어려웠던 상황이었기에, 그는 하루빨리 집안에 큰 힘을 보태기 위해 프로전향을 강력히 원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교 진학을 택하기 되었던 케이스였다. 그렇게 오매불망 프로선수를 꿈꿔왔던 이천수는 실질적인 프로데뷔는 2002년 여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그 전까지는 히딩크 감독 지도 하에 월드컵 이전까지 대표팀 선수들을 합숙식 해외 전지훈련이 연달아 소화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반시즌간 공백이, 울산이나 이천수 양 쪽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후반기에 울산은 무시무시한 팀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가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순간, K리그 모든 클럽들은 그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는데 2002년 시즌 그의 기록이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18경기 출전에 7골에 9도움으로 데뷔 첫 해에 K리그 도움왕과 신인상, 나아가 AFC 신인상까지 거머쥐었고, 그는 유상철과 함께 팀을 리그 준우승까지 끌어올렸다. 만약 울산이 성남을 제치고 2002년에 리그 챔피언에 올랐더라면 이천수가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쥘 뻔 했을 것이다. 데뷔 첫 시즌에 보여준 그의 능력 때문에 그의 별칭이 괜히 '밀레니엄 특급' 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각인시켜주었다. 울산에서의 두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이천수, 그를 막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03년 여름이 되기 전까지 이천수가 기록한 스탯은 18경기 출전 8골 6도움, 가히 "리그를 씹어먹는다" 는 표현의 적절한 예시였다. 그렇기에 이천수를 보는 상대팀은 그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2003년 5월 21일, 상대팀이 얼마나 이천수를 견제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던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당시 울산은 수원 원정을 왔던 상황이었고 후반 23분, 이천수는 수원 수비수와 충돌하다가 어깨가 빠져 한동안 피치 위에 누워있었다. 그 때, 수원 서포터즈는 이천수를 도발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던 이천수는 화가 나서 서포터즈를 향하여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응수했다. 이에 뒤질세라 수원 서포터즈는 '삽질개천수' 라는 플랜카드를 내걸며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그 날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마쳤고, 이천수는 이후 벌금 3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수원 쪽에서 이천수를 도발했던 것은 그가 수원킬러로 유명할 정도로 수원전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지난 시즌 7골 중 2골은 수원이었고, 공교롭게도 데뷔무대도 빅버드였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천수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천수는 참지 못하고 화답해버린 셈이다. 그 후, 이천수는 수원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천수가 울산 선수로 있는 동안 수원은 거의 이겨본 적이 없었다. 이 당시엔 서로가 몰랐을 것이다. 몇 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이다. 3. 한국인 최초 프리메라리가 1호, 하지만 순탄치 않았던 스페인 생활(2003 여름 ~ 2005 여름) 워낙 국내무대를 손바닥 위를 내다보듯이 마음껏 휘젓고 있던 이천수, 그는 분명 국내에서 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이천수에게 뜻하지 않는 손님이 스페인에서 찾아왔다. 그를 보러 멀리서 온 손님은 바로 레알 소시에다드. 소시에다드는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줄곧 이천수의 모습을 지켜봤었고, 그의 K리그 활약상을 보고 확신을 가져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기본 3년 계약에 이적료 42억원에 연봉 6억원, 의식주 부분 모든 것을 지원받게 되었다. 먼저 유럽으로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이었고, 울산 입단 시에 체결한 계약 조건이 발효되어 그는 이적료의 70%인 27억 3천만원을 챙기게 되었다. 성남과 리그 우승경쟁을 벌이고 있던 울산 입장에서는 전력상 상당한 타격이지만, 울산 성향이 선수들의 해외진출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의 스페인 진출은 마치 1990년대 후반에 안정환이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하는 것과 맞먹을 만큼의 이슈를 몰고 왔다. 등번호 19번을 받은 이천수, 때마침 레알 소시에다드가 지난시즌 리그 2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무대까지 진출한 상황이었기에 그는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출전할 수 있는 영광까지 누렸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렀는데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진출하는 것이 꿈" 이라는 발언이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레알 마드리드와 앙숙 관계였는데 이천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인터뷰 도중 실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가 입단할 당시 매우 환영했던 현지 팬들과 구단은 그의 인터뷰 때문에 소시에다드를 그저 "거쳐가는 클럽"으로 생각한다며 반감이 생겼다. 논란 속에서 레알 소시에다드 선수로서 라리가에 모습을 드러낸 이천수, 하지만 K리그에서 보여줬던 이천수 특유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오히려 위축되어 있었다. 2003/04 시즌, 그는 총 13경기에 무득점으로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쳤고, 팀 또한 중위권으로 추락하며 시즌을 마쳤다.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소집될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2004/05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 2부리그에서 갓 승격된 팀인 누만시아로 임대가게 되었다. 당시 소시에다드에선 Non-EU 규정 때문에 카르핀, 니하트, 코바체비치 등에 밀려 출전기회가 다소 적었고, 반면 누만시아는 스쿼드가 빈약했기 때문에 다소 출전기회는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누만시아로 임대가서도 이천수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누만시아와의 임대가 끝난 후, 국내로 복귀할 준비를 하였다. 그의 유럽 진출기는 실패로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4. 한국으로 돌아온 '사기 유닛' 울산의 제2 전성기를 만들다(2005 여름 ~ 2007 여름) 국내 복귀를 모색하던 이천수, 그에게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바로 친정팀이었던 울산이었다. 이천수가 떠난 이후, 울산은 막강한 수비를 앞세워 최강방패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경기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거나 상대의 심장을 꿰뚫을 창끝이 무뎠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울산이 번번히 우승으로 가는 문턱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고, 팀을 이끌던 김정남 감독의 발목을 잡고 있던 주요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김정남은 이 문제를 이천수로 해결하기로 결심한 셈이다. 그렇게 2005년 여름, 그는 호랑이굴로 컴백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으로 컴백할 때, 사람들은 과연 이천수가 스페인 생활동안 잃어버렸던 감각과 자신감을 재빠르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고 보통 웬만한 선수들은 복귀하고 난 뒤에 적응하는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이것은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론의 상식을 완전 뛰어넘어버렸다. 이천수를 다루는 법을 잘 알았던 김정남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고, 그는 최대한 이천수를 최전방에 배치하면서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천수는 그에 보답하는 듯한 모습으로 반시즌 밖에 소화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7골 5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 선보였던 그의 모습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플레이오프 3경기동안 무려 3골 2도움을 기록했고 그 중 챔피언결정전이었던 인천과의 홈&어웨이 경기 중 1차전에서 3골 1도움으로 혼자서 인천을 초전박살내는 말그대로 끝판왕의 아우라였다(이것이 후에 제작된 인천의 다큐멘터리인 '비상'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졌다). 결국 울산은 이천수의 맹활약 덕분에 2005년 두번째 별을 달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이천수처럼 반시즌동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건 이전에도 없었고, 오늘날까지도 찾아볼 수 없다. 리그 MVP와 베스트 11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이천수, 그 다음해인 2006년에도 선봉장에 선 그는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들을 여러가지 만들어냈다. 짧고 굵직한 족적이 바탕이 되어 그는 딕 아드보카트의 간택을 받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첫 경기인 토고전에서는 안정환이,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서는 박지성, 그리고 마지막 조별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는 심판판정 논란이 부각되긴 했지만, 이천수는 박지성에 버금가는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였고, 토고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4년 전 무득점의 한을 풀기도 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가 나오니 바로 A3 챔피언스컵 대회였는데, 울산은 한국 대표로 출전하였고, 감바 오사카와 제프 유나이티드, 그리고 다롄 스더와 풀 리그 형식으로 치뤘다. 특히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가 이천수라는 이름을 아시아 전역에 떨치는 경기가 되었는데, 당시 이천수는 감기기운으로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교체출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전에 무려 해트트릭을 달성하면서 감바 오사카를 6대0으로 격파하는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다롄 스더 경기에서도 2골을 쓸어담아 울산이 대회 우승을 하는 데 1등 공신으로 떠오르면서 득점왕과 MVP까지 싹쓸이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울산은 '아시아 깡패' 라는 별칭까지 탄생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울산의 위용은 대단했다. 특히나 8강전이었던 알 샤밥(사우디)와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로, 1차전에서 6대0 대승, 그리고 2차전에 1대0 승리로 통합 7대0 승리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선사하였다. 이천수는 역시나 이 경기에서도 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록 4강전인 전북과의 두 차례 경기에서 통합 6대4로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천수의 역량이 가장 만개하던 시기가 아니었나하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2007년 2월,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그리스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골은 후에 팬들이 선정한 아름다운 골이 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못다 핀 꿈이었던 유럽 진출을 다시 한 번 노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 무대였고, 송종국이 뛰었던 페예노로트였고, 그 해 8월에 이적완료하였다. 5. 날개가 꺾인 비호(飛虎), 악마의 재능으로 불리게 되다(2007 여름 ~ 2012) 페예노르트에서 등번호까지 부여받은 이천수, 하지만 그는 페예노르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새 팀에 적응해야할 시기에 한국에서 소송문제로 심적으로 묶여있는 상태였고, 이천수가 여기에 신경쓰다보니 페예노르트에 제대로 녹아들 리가 없었다. 그의 부진한 모습에 네덜란드 현지 언론들과 팀에서는 당연히 그를 곱게 보질 않았다. 결국 2008년 7월, 이천수는 한시즌만에 페예노르트를 떠나 다른 팀으로 임대가야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그는 K리그 무대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울산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를 가장 껄끄러워했던 수원이 당시 차범근 감독의 요청 하에 그를 임대영입한 것이다. 가장 싫어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빅버드에서 뛰게 되었으니 당시 수원팬들은 말그대로 '충격' 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이천수가 부진과 부상으로 3경기 밖에 소화하지 못한데다가 팀 내 항명사건까지 일으키니 그를 증오 수준으로 배척하였다. 항명 도중 팀 내 동료 폭행을 저질러으니 차범근 또한 억누르던 분노를 참지 않고, 그를 임의탈퇴로 공시해버렸다. 임의탈퇴 처분을 받게 된다는 것은, 사실상 이천수는 더이상 K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고, 그의 선수생활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위기에 봉착했던 이천수를 구원해준 인물은 바로 과거 2002년 월드컵 때 함께했던 전남의 박항서 감독이었고, 극적으로 임의탈퇴까지 가진 않았다. 이천수는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전남으로 임대가는 모양새로 광양에 둥지를 틀었다. 7경기 4골을 기록하는 등 기량은 서서히 예전의 모습으로 찾아나가는 듯 했지만, 다른 문제가 이천수의 발목을 잡았다. 쉽게 설명하면, 2009년 2월, 이천수가 전남에서 뛰기 직전에 선수 본인 동의 없이 에이전트와 전남이 말도 안되는 계약을 체결했었다. 그러던 와중, 원소속팀인 페예노르트는 그 해 여름 사우디의 알 나스르로 이천수를 이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천수 또한 알 나스르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이 사실을 안 전남은 이천수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껴 그의 이적에 제동을 걸려고 했었고, 이천수는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려고 하는 전남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한 번 그는 코치스태프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고,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면서 전남의 뒤통수를 쳤다. 전남은 이에 이천수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였고, 연맹은 그것을 받아들여 그를 임의탈퇴로 처분하였다. 사실 이 문제는, 양 측의 잘못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전남은 선수가 알지 못하게 어떻게 해서든 갑의 입장에 서기 위해 치졸한 모습을 이적과정에서 보여주었고, 이천수는 전남에서 뛸 때에도 적잖게 사건사고를 일으킨 데다가 떠나는 과정까지도 트러블을 만들어 모든 이의 비난을 샀던 것이다. 모든 논란을 만들고 사우디로 떠났던 이천수, 알 나스르 선수로서의 삶도 그렇지 평탄치 못했다. 알 나스르에서 15경기 출장하여 3골을 기록하며 나쁘진 않았으나, 문제는 구단에서 급여를 제 기한에 맞춰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 체불이 길어지자, 이천수는 이 명목 하에 무단 이탈하였고, 다음 행선지는 J리그의 오미야로 정했다. 이천수는 오미야에서 연습생 신분부터 시작하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했었던 시절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말 계약이 종료되면서 그는 무적신세가 되어 새로운 팀을 알아봐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듬해 호주 A리그의 어느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이천수는 거절했다. 그는 K리그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타향살이가 힘들었던지, 이천수의 마음 한 켠에는 'K리그에 복귀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국내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바로 전남과의 틀어진 관계를 되돌려놓아야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가 간단해보이면서도 쉽지 않았다. 비록 전남 또한 잘못한 점은 있지만, 이천수가 전남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부분 등이 합리화시킬 수는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고, 전남의 공식 입장 또한 "진정성이 부족하다" 고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전남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감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그러던 2012년 10월, 이천수는 직접 광양까지 내려가 전남의 홈경기를 보러온 관중들 한 명 한 명 대상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것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천수는 이후에도 본인이 용서받을 때까지 홈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와서 사과하겠다고 말했으나, 축구인 상당수는 그의 진정성을 여전히 의심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3년 2월 5일, 프로축구연맹에서 그의 임의탈퇴 신분을 풀어주었고, 22일에는 전남도 그를 풀어주기로 확정지은 것이다. 드디어 이천수의 고난의 연속이 끝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6.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마음으로, 고향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2013 ~ 2015) 극적으로 K리그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천수, 전남이 임의탈퇴를 풀어주기로 한 소식과 동시에 그의 입단소식이 보도되었다. 팀은 자신의 고향팀인 인천이었고, 등번호는 10번을 받았다. 4년만의 복귀라 그런지, 이천수는 절주선언에 이어 오로지 가족과 축구에만 전념하겠다고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1년동안 무적신세였던 탓이 예전같은 기량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당시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절실히 필요했던 인천 입장에서는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팀 전력에 충분히 보탬이 되었다. 그러던 4월 16일,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풀타임 소화한 후에 전남 서포터들이 포진하고 있던 원정석으로 다가가 깍듯이 인사하였고, 이에 박수로 화답하는 등 서로간의 앙금이 완전히 풀렸다. 그 후 4일 뒤에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면서 1,428일만에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급작스런 현역복귀로 몸이 적응안되었는지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적도 있지만, K리그 복귀 후 첫시즌은 19경기 2골 5도움으로 팀 성적을 고려하면 제법 괜찮은 스탯이었다. 그리고 이천수는 연봉 삭감까지 감수하면서 인천과 2015년까지 함께하며 인천과의 의리를 과시함과 동시에 팀 내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풍미하던 사기유닛도 나이에는 장사 없었고, 예전과 달리 날카로움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가 부상 빈도 또한 높아져서 출전 횟수조차 점점 줄어들었다. 부상으로 인천이 FA컵 결승전에 진출하던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5년 11월 5일 JTBC 뉴스룸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고, 11월 28일인 마지막 홈경기는 부상으로 인해서 은퇴식으로 대체하여 그의 파란만장했던 선수로서의 생활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이천수는 "게으른 천재", 또는 "트러블메이커" 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는 적합하지 않다. 그가 경기 때마다 번뜩이는 모습이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그는 승부욕이 강해서 그 어떤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 악바리 스타일이며 이천수 본인 또한 악바리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트러블메이커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도 조금 억울한 것이, 해외 사례만 하더라도 이천수보다도 더 심하면 심한 선수는 끝도 없다. 호마리우, 안토니오 카사노, 조이 바튼, 아드리아노, 마리오 발로텔리, 하르템 벤아르파 등 피치 밖에서 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으면서도 잘만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국내에서 이천수 같은 유형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가 비록 언론에서 보여줬던 인터뷰 방식 등이 경솔했던 것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이천수의 업적이나 기량 등을 폄하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하는 바다. 인천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통해 개과천선 했으니 이만하면 훈훈한 결말이다. 은퇴식을 치르고 나서 인천 서포터즈는 "풍운아를 품은 우리가 행운아" 라는 걸개를 내걸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플레이어를 배웅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쓰고 싶었던 것은 울산 쪽이 아니었나 싶다. 이천수의 전성기는 곧 울산의 전성기 중 하나로 꼽힐만큼 일종의 공동운명체로 함께 해왔다. 김정남 감독이 이천수에게 모든 걸 맡기듯이, 울산에게 있어서 이천수는 "쟤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이천수는 무언가 해줄 것이다." 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고, 이천수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여 결국 울산을 리그 챔피언에 올려놓은 후에 아시아 깡패라는 칭호까지 선사했다. 실제로 이천수가 임의탈퇴 신분으로 K리그에서 한동안 떠나있을 때에도 남들은 다 적으로 돌아서도 항상 그의 편에 서있었던 것은 울산 팬들이었고, 그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오더라도 집 나갔던 자식이 돌아온 것마냥 환호해주곤 했다(심지어 울산으로 돌아오라는 걸개도 걸렸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JTBC 해설위원으로 종종 울산 문수경기장을 방문할 때마다 울산 팬들로부터 이천수콜을 받는다. 누가 뭐래도 그는 울산의 또 하나의 레전드였고,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K리그 사기 유닛' 이다. 두고두고 기억하리, 이.천.수.
이재성에게 관심 보인 클럽 목록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 이재성 프로 데뷔 후 1년 만에 유럽 클럽팀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이번 시즌 중반에 유럽으로 이적하는게 점처졌었습니다. K리그 클래식 스타로서는 권창훈과 함께 유럽 리그로 건너갈 유력한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죠. 그렇다면 이재성에게 관심을 보인 클럽들을 살펴볼까요 분데스리가 - 함부르크 SV 손흥민 선수도 뛰었었고 빅리그 이적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좋은 팀입니다. 분데스리가 - 아인트하르트 프랑크푸르트 차범근을 레전드로 대우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입니다. 역시 동양권 선수에게 개방적인 분데스 분데스리가 - 베르더 브레멘 15년 12월, 분데스리가의 3개 팀이 이재성에게 관심을 표명했고 이적료를 문의하기도 했음. 출처 http://www.fussballtransfers.com/bundesliga/verstarkung-aus-fernost-drei-bundesligisten-buhlen-um-neuen-heung-min-son_60187 라 리가 - 발렌시아, 세비야 동아시아컵에서 이재성+권창훈 등을 관찰하기 위해 스카우트 파견. 특히 발렌시아가 큰 관심. 출처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aid=0000443588&oid=111& EPL - 에버튼, 왓포드 꽤 신뢰도 있는 기자의 보도. EPL의 여러 클럽들이 이재성을 주시하고 있으며 에버튼과 왓포드가 영입 레이스를 주도하고 있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양팀 감독이 모두 바뀐 상황이라 변수가 있음. 출처 http://www.teamtalk.com/news/exclusive-everton-watford-chase-south-korean-ace-lee 최근 이재성 수준.gif 말이 필요없음 그야말로 케클 쌈싸먹고 다니는중 엄청 기대되네요!
안타까운 죽음, 아킨슨을 ‘추모할 아스톤 빌라 팬’
ⓒ아스톤 빌라 공식 홈페이지 [청춘스포츠 3기 이종현]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5일(현시시간) 1985년 프로로 데뷔해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톤 빌라, 맨체스터 시티 등 다수의 팀에서 뛰었고, ‘프리미어리그 출신 1호 K리거’로 대전 시티즌과 전북현대 소속이기도 했던 데일리언 아킨슨(48)이 경찰이 발포한 테이저건을 맞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영국의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이에 아스톤 빌라 서포터즈는 아킨슨을 위해 다가올 챔피언십 허더즈필드와 경기에서 그를 기리는 추모 행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아킨슨은 1991년 입단해 1995년까지 5년간 아스톤 빌라 소속으로 85경기에 나서 23골을 기록한 스트라이커입니다. 특히 1992/93시즌 윔블던을 상대로 자기 진영에서부터 80M가량을 질주하고 로빙슛으로 득점한 것이 회자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1992/93시즌 윔블던을 상대로 한 아킨슨의 득점 영상(클릭) 구단과 서포터즈는 16일(현지시간) 펼쳐질 리그 5라운드 허더즈필드와 홈경기서 전반 10분, 1분간 박수를 치며 그를 추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구단 관계자는 “그가 아스톤 빌라 소속이었을 당시 10번 셔츠를 입고 있었기에 결정한 사안”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윔블던을 상대로 기념비적인 득점을 한 이후 한 팬이 내려와 그에게 우산을 씌워준 것에 착안해 경기장 곳곳에 우산을 놓은 추모 행사도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그의 죽음에 대해 많은 비판이 따르고 있습니다. 흑인에 대한 과도한 대응이 아니었나, 테이저건의 안정성에 대한 불신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국 내무성은 성명을 통해 “영국 내 흑인이 테이저건을 맞는 비율이 백인에 비해 3배가 더 높은 게 오늘날 영국의 현실이다”면서 이것이 잠재적으로 흑인들에 의한 시위로 나타낼 수 있다며 걱정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조카 파비안은 “테이저건을 사용하려면 엠블런스를 대기시켜 놓고 사용하는 방안을 법적으로 지정해야 한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죽음에서부터 인종과 정치적인 문제까지 이어진 아킨슨의 테이저건 사태. 아스톤 빌라 팬들이 20년 전 자신의 팀 선수였던 아킨슨을 잊지 않고 추모하려는 건 축구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행동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축구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그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We Make Sports Media, 청춘스포츠 ⓒ청춘스포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지.성 국가대표 TOP5 골!!!
지난 2016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접전을 펼치며 조 2위로 월드컵 예선을 마쳤습니다. 이제 남은 5경기에서 지금의 순위를 지켜야 2018 러시아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유독 박지성 선수가 생각나는 한 해였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주장으로 활약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이란을 상대로 2골이나 넣으며 이란을 탈락 시켰죠~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레전드 박지성의 대표팀 TOP5 골!!! 먼저 박지성을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 시켰던 그 골!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프랑스와의 평가전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최종 엔트리 탈락 1순위였던 박지성은 잉글랜드전 헤딩골로 언론들을 잠재우더니 이어진 98 프랑스월드컵 우승팀 프랑스와의 월드컵 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환상적인 동점골을 기록합니다! 이 골로 박지성이라는 이름 석자를 온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죠. 2002.5.26 두 번째 골은 너무나도 유명한 골이죠. 바로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골입니다. 이 골로 당시 FIFA랭킹 5위인 포르투갈이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89년, 91년 청소년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멤버들이 모여 월드컵 우승을 바라봤던 멤버들이죠. 결국 박지성의 결승골로 대한민국은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를 발판으로 4강 신화를 이룹니다! 2002.6.14 세 번째 골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이었습니다. 당시 맨유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영국에서 곧바로 이란으로 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죠. 네쿠남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패색이 짙어지던 후반 35분 기성용의 프리킥이 골키퍼 손에 맞고 나오자 다이빙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역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무 5패로 단 한번의 승리도 없는 대한민국이 이란 원정에서 따내온 귀중한 승점이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도 동점골을 기록한 박지성 덕분에 북한이 월드컵에 나가고 이란이 탈락했죠~ 2009.2.11 네 번째 골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직전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입니다~일본도 월드컵 직전 국내에서 가지는 마지막 평가전이었는데 박지성의 전반 5분 선제골로 결국 0-2 패배를 당했네요. 당시 경기 전 박지성을 바라보던 일본 선수들의 존경스러운 표정이 기억나에요.(맨유의 위엄) 이날 경기서 박지성은 나카토모를 끝까지 쫓아가 태클을 시도해 투지의 아이콘임을 보여줬죠~또한, 골을 넣고 일본 관중을 바라보며 산책 세레머니를 보여줘 화제가 됐었습니다~ 2010.5.24 마지막 골은 박지성의 A매치 마지막 골입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차전에서 나온 추가골이었죠~유럽예선을 잘 치르고 온 그리스를 상대로 2-0으로 달아나는 추가골을 넣었는데 박지성에게 볼 수 없었던 개인 플레이 골이었습니다. 집중력 좋게 상대 수비의 공을 가로채 두 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네요~1차전에서 첫 승을 올린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죠~(16강에서 수아레스가 박지성에게 유니폼을 교환하러 뛰어오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2010.6.12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로 넣은 13골 모두 소중하지만, 재미로 5골을 선정해본 만큼 넓은 아량 부탁드립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좋아요 한 번 부탁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