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에서부터인가 뉴욕타임스를 필두로 하여 유독 신문사가 띄우는 경제학자가 둘 있었다. 둘 다 프랑스인이면서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둘이 공조하여 리버럴(!) 쪽에 근거를 대줬기 때문이다. 엠마뉘엘 사에즈와 토마 피케티이다. 그중 프랑스 사회당 경제 고문을 지내기도 했던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론(Le Capital au XXIe siècle, 2013)"이 올해 초 미국에서 영어판으로 나왔고, 이 책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피케티는 현재 파리경제대학원(École d'économie de Paris) 교수이다. (EEP는 같은 공립학교인 LSE랑 비슷한 느낌이기는 한데, 2008년부터 원생을 받았고, 워낙 교수진이 튼튼해서 단번에 유명학교가 됐다.)
자, 피케티는 왜 유명해졌을까? 현재 세계 경제의 화두(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업들보고 직원 월급을 올리라는 글까지 기고했다), 소득불평등의 이력을 추적해서이다. 일단 그의 책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최대한 쉽게 써 보겠다. 이글을 작성할 때에는 링크한 르몽드와 관련 기사들, 그리고 로버트 솔로우(경제학 덕후들이 잘 아시는 그 솔로우 맞다)의 글이 많은 도움을 줬다. 나도 아직 책을 읽어보지는 않은 상태이고, 한국어판이 어서 나왔으면 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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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말부터 정의해 보자. 거칠게 말하자면, 상위 1%가 부의 상당 부분을 다 차지한다는 의미이고, 이 정의를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서 역사 통계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면, 현재의 세상이 불평등해졌다는 주장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라. 짜장면이 한 그릇에 500원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당시의 500원은 혹시 현재의 3천원과 비슷한 가치를 가질까? 새우깡 과자도 예전에는 200원이었는데, 지금은 1천원이다(질소 값은 빼겠다). 그렇다면 부의 불평등을 어떻게 증명할까? 일해서 버는 것과, 이자로 버는 것을 구분한 다음, 어느 편이 더 많은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해도 상대적인 물가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잖을까?
우리가 버는 것은 소득이고, 원래 갖고 있는 재산/자산은 부라고 부른다. income과 wealth의 차이일 텐데, 이것을 국가적으로 보면 capital과 GDP의 관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령 2013년의 GDP와 2013년의 자산 총계를 나누면 물가의 문제는 사라진다. 그때 그때의 통계를 갖고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2013년의 총자산은, 몇 년치의 GDP일까? 혹은 몇 년치의 자산이 2013년의 GDP일까?
당연하겠지만 모든 통계에서 GDP보다 총자산이 훨씬 더 많았다. 자산이 누적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총자산이 몇 년치 소득분이냐는 데에 있었다. 이 비율이 20세기 전반부(전쟁이 두 번 있었다)를 빼고는 다 높았고, 현재 다시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현재는 19세기 수준이 됐다고 한다. 거의 7년치의 소득이 총자산이다.)
주의: 추상적으로 표현했지만, 실제 분모와 분자는 GDP 성장률 나누기 저축/투자 비율이다. 계량경제학적 함의는 넘어가겠다.
그렇다면 위의 통계를 기초로, 노동으로 버는 소득, 쌓아둔 자산으로 버는 소득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자산으로 버는 소득이 높아짐의 의미는 사회 자체의 생산성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노동으로 버는 소득을 자본 투자가 능가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겉보기에는 그런 현상이 좋게 들린다. 생산성이 좋아지면 결국 노동 소득도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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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접근을 하는 사람이 이제까지 별로 없었고, 이를 매우 구체적으로, 데이터를 동원해 밝힌 사람이 피케티이다. 당연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경제학 책으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가령 자산으로 버는 소득이 노동으로 버는 소득을 추월하고 있음을 역사적인 맥락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요약은, 총자산과 총소득만을 대상으로 했으니 그것 갖고는 불평등을 얘기하기 힘들잖냐라는 얘기를 할 수 있겠다. 당연하다. 불평등 레벨을 따지려면 역시 소득 상위 10%가 총소득의 몇 %를 갖고 있는지를 거론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상위 10%가 70%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40%까지가 총자산의 25%이다. 그러니까 상위 50%가 모든 자산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소위 중상층(10-40% 사이 구간)의 자산이라는 것이 달랑 부동산 하나 뿐인 것도 함정이겠다. 부동산에 대한 공격을 할 순 있겠으나, 그것이 상위 1%가 아니라 (관심을 분산 시키려는 상위 1%의) 중산층 죽이기에 동원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겠다. 물론 주제와는 좀 다른 얘기겠다.
다만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가 관찰됐다. 최상위 1% 중, 소득의 60%가 실제 노동 소득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부동산이나 채권 등 자산 소득이 훨씬 많을 것 같은데도, 이 1%가 정말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자산 소득이 소득의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계층은 1%가 아니라 0.01% 정도는 돼야 한다. 좋게 봐야 할까? 최고 경영진과 말단 사원의 월급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종합해 보면, (1) 인구/생산성 성장이 느려지는 가운데, (2) 자산 증가율이 경제 성장률을 능가하여, (3) 자산-소득 비중 차이가 19 세기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내용이다. 확실히 경제 성장이 문제를 대거 치유할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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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경우, 해결책으로 연간 자산 누진세를 전세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토빈세와 좀 비스무레하다 여길 수 있을 텐데, 자산과 부의 차이를 별로 두지 않고 있다는 핵심적인 단점 외에 상위 1%가 실제로는 자산보다 노동 소득으로 부를 쌓는다는 사실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논쟁을 일으켰다는 것만으로 그가 기여한 바가 실제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내용만 봐도 아실 수 있겠다만, 꼭 우파 좌파의 문제도 아니다. 통계가 이러한데 이걸 어찌 해석하시겠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일 듯 하다. 어느 출판사가 번역중일지 궁금하다. (이왕이면 불어판 원본을 베이스로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