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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6억짜리인 야생에서 홀로 오래 살아남기 대회

생존전문가 위에 긍정주의자 있고
긍정주의자 위에 과학자 있고
과학자 위에 ㅅㅂ이거만참으면6억 있다


사족ㅋㅋㅋㅋㅋㅋ재밌네요
답은 독기인가요
마지막 살빠진거 보니 보통 멘탈로는 못버틸 것 같네요 대단..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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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생존자 보니까 몸에다가 식량을 비축했었구만
살 빠져서 눈 커진게 ㄷㄷ
병만이형 가야하나
ㅋㄱㅋㅋ 마지막ㅋㅋㄱ뛰는놈위에 나는놈 나는놈위에 타는놈 그모든걸 무용지물로 만드는게 바로 존버하는놈인가ㅋㅋㅋㄱ 쨋든 다들 대단하네.. 여자들도 굉장히 오래 살아남네 몇몇은 외로움만 아니였으면 우승했을지도..특히 생물학자.애생일때문에ㅋㅋㄱ
주황색 모자가 갈색이 됐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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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토가 요새인 나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스위스. 심지어 국기마저도 동서남북의 교차로인 이 교통의 요충지를  천년의 세월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로부터 지켜낸 스 위스인의 투혼이 놀라울뿐임. 하지만 평화는 말로써 지켜지진 않는법. 스위스 국민을 위한 방공호 보급률이 120%수준이다, 집집마다 총을 갖다놔도 된다더라 같은 소린 군붕이들도 많이 들어봤을것이다. 물론 그게 다일까?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프랑스를 한대 때리멕이는 김에 스위스도 먹어버리자라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나치의 침략야욕을 꺾은건 스위스군의 숫자도 무기도 아니었음. 다들 전쟁이 나겠어?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1937년부터 스위스인들은 자체적으로 등화관제를 했고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는 1939년엔 아예 전시체제로 돌입, 예비군총동원체제를 종전까지 유지했음. 그런 스위스인들의 정신이 나치의 침략야욕을 꺾은것임. 하지만 애초에 인구 800만 따리 나라에서 현역이건 예비군이건 다 해봐야 얼마나 나오겠으며 왠만한 강대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점령되는건 시간문제인 나라임. 그건 2차대전이건 냉전때이건 마찬가지여서 스위스인들은 적은 병력으로 최후의 한명까지 침략자에게 저항 할 수 있도록 온국토에 요새를 깔기 시작하는데....... 사실 요새, 벙커, 특화점, 토치카, 진지, 참호 구분 안하고 막 쓸거임 양해부탁. 1. 위장 보병진지 이물건은 흔한 스위스의 농가주택처럼 보이지만 오른쪽은 대전차포 진지, 왼쪽은 기관총 진지로 서로 지하터널로 연결된 물건임. 위치선정부터가 기가 맥힌데, 아마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쪽 들판을 완벽히 감제하는 위치에 지어진 농가주택에 위화감을 느낄지도. 이 물건 역시 마구간으로 위장한 기관총진지임. '뭔놈의 마구간을 사주경계 하기좋게 각지게 지어놨냐'라고 하면 님말이 맞음. 그리고 1993년까지 실제로 병력이 투입되던 감시초소이기도 했음. 이놈은 주택으로 위장한 보병용 기관총진지의 일종임.  근데 건축양식이 중세풍인걸 알 수 있음. 웃긴건 중세시절에 지어진 주택을 보병진지로 재활용한게 아니라  현대에 들어 중세건축양식으로 지은 현대식 기관총 진지임. 심지어 벽에 벽돌, 나무 서까래? 부분은 걍 그림임 ㅋㅋ 내부는 대충 요런식 2. 위장 포진지 집으로 위장한 기관총 진지도 있는 마당에 대포라고 없겠음? 마굿간 문을 여니 야포가 딱! 이것도 집으로 위장된 대전차포 진지의 하나임. 자세히 보면 창문부분 역시 모조리 '그림'임을 알 수 있음. 주차장으로 보이는 부분이 대포진지임. 흔해빠진 야포 한문을 위해 위장건축물에 저런 돈지랄을 할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싶음. 난간하며, 빗물받이 퀄리티 봐라 ㄷㄷ 북괴가 그리도 좋아하는 갱도포문 열었다 닫기 메타의 원조가 아마 스위스가 아닐까 싶음. 장거리 유도미사일이 보편화된 요즘 세상엔 가치가 많이 떨어졌지만 당시 스위스인들은 진심이었던듯. 목진지 지형에 설치된 대전차포 진지임. 가까이서 보니까 티가 나지 당시의 한계론 위성사진은 물론이고 심지어 항공사진을 찍어도 별 티도 안날거임. 아예 연도별로 스위스 전역의 항공사진을 갖고있다가 없던게 갑자기 생기면 저게 진지라는 의심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말도 안되지만 그런 발상을 스위스인들이 과연 못했을까? 그래서 만든게 이 바위위장 포진지임.  이게 뭐냐면 항공정찰을 회피할 목적으로  '원래 있던 바위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다시 포진지를 설치한' 해학의 민족 게르만의 작품임. 저 포신 부분도 실제론 위장포를 씌우거나해서 철저히 위장함. 바위로 위장한 대전차포. 공격자측에선 바위하나하나가 대전차포라고 생각하면 ㄹㅇ끔찍할듯. 그것도 산, 나무, 바위뿐인 스위스에서ㅋㅋ 뭐 지금까지 대전차포 위주로만 보여줬는데, 사실 전통적인 갱도포병은 이동네엔 너무너무 흔해?서 일부러 언급을 안했음. 3. 아예 지하로 들어가기 눈에 보이는 모든 집과 바위를 때려부수며 진격하던 침략자의 머리위에 이젠 난데없이 박격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수상해 보이는 해치가 있다. 실제론 저 해치 조차도 돌부리, 나무그루터기로 보이게 위장함. 해치를 치우니 뭔가 있다 이게 뭘까? 짜잔! 2연장 박격포였습니다. 이물건은 12cm fest mw59란 물건이고 120mm 탄약을 사용하는 2연장 박격포임. 2003년까지 현역이었다 이제는 모든 부대들이 해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음. 이 물건 이전엔 mw56이라는 81mm 버전도 있었음. 첨언하자면 2003년 스위스군의 군제개혁으로 인해 대부분의 위장포병, 요새포병, 지하박격포 부대들은 해체되어 더이상 운용가능한 인원이 없는상태임. 남은 장비들은 관광상품으로 다시 태어났음. 웃기게도 러우전쟁으로 인해 이런 요새포병 부대를 다시 부활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몇몇 스위스 국회의원들과 스위스 군부내에서 나오고 있다는듯. 전국토의 요새화 이런거 씨부리려면 정말 이정도는 해야 되나 싶기도 함 ㄷㄷㄷ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
인간처럼 길러진 특별한 침팬지, 님프로젝트(Project Nim)
인간과 유전자 98%가 일치하는 침팬지 그런 침팬지를 인간처럼 키운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실제 1973년 미국에서 이루어진 실험이야 뉴욕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하버트 테라스 교수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밝히기 위해 한 침팬지를 일반 가정에서 인간 아이와 똑같이 키우고 언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시작해 당시 언어가 인간이란 종족만이 가질 수 있는 내재적 특성이라 주장했던 '노암 촘스키'의 언어이론에 대한 반박실험이었기 때문에이 실험에 참여하게 된 침팬지는 ' 님 침스키 ' 라는 이름이 붙게 돼 그렇게 해서 시작된 실험 님프로젝트 (Project Nim) 총 책임자인 하버트 테라스 교수의 지휘아래 침팬지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사람은 평범한 주부였던 '스테파니'였어 스테파니는 이미 여덞남매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님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어 실험체인 님은 출생 직후 어미와 의도적으로 떨어져  인간을 어미로 인식하게끔 모유를 먹고 인간아이와 같이 자라게 돼 님은 스테파니 가족과 문제없이 잘 지냈고  스테파니 가족 또한 님을 가족으로 여기며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돼 그리고 님이 어느정도 성장하자  실험팀은 님을 스테파니 가족에게 독립시켜 본격적으로 수화 교육을 시작해 아주 간단한 것들부터 어려운 것들부터 차근차근 가르쳤어 님은 생각보다 배움이 빨랐고 이걸 본 하버트 교수는  컬럼비아 대학에 재학중이었던 학생을 님에게 가정교사로 붙여주었어 수화로 소통하는 님 가정교사를 붙여주자 님은 더더욱 빠르게 배우기 시작했어 수백개의 단어까지 습득하는 님에 실험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그리고 이런 사실이 금방 퍼져 님은 유명세를 타게 되고  공중파 티비에도 출연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돼 당시 방송에 나왔던 모습 하지만 곧 님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반항기가 찾아왔어 공격성을 드러내는 님을 실험팀들이 강하게 대하며 컨트롤 하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침팬지기에 결코 쉽지 않았어 실험팀들은 이러한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님을 포기할 수 없었지 님은 점점 더 심해져서 가정교사가 상처가 날 정도로 거센 공격을 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동시에 님의 마음에도 상처가 남게 돼 그런 님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다름아닌 고양이 고양이를 아주 좋아해서 수화로 자주 고양이를 안을 수 있게 해달라 부탁을 했다고 해 고양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님 이후에도 님의 실험을 계속 되었고 수화뿐만 아니라 인간처럼 식기를 쓰는 법도 배우게 되는데 식기를 드는 손과 음식을 먹는 손을 따로 썼다고 해 이렇든 평범해보이는 일상이 이어지던 중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아 베이비시터이자 친구였던 그녀가 학교 갔다 돌아온 님을 그저 안아주려 팔을 벌렸는데 님이 달려들어 구멍이 날 정도로 볼을 세게 깨물었어 피가 철철 흘렀고 그 모습을 본 님이 미친듯이 " sorry "라며 사과했지만 그 사과가 받아질리 없었어 그리고 님에게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어 단어의 뜻을 알고 사용하지만 문장구조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했어 예시 총 책임자였던 하버트 교수는 결국 1977년 실험중단을 선언해 하지만 이미 인간세상에서 사회화가 되어버린 님이 갈 곳은 많지 않았어 완전한 인간도, 완전한 침팬지도 아닌 너무나 애매한 존재였던 님 실험팀들은 어릴 때 떨어졌던 님의 어미가 있는 사육장에 님을 다시 돌려보내기로 했어 하지만 자신의 종족인 침팬지를 본 님의 표정은 어리둥절하기만 했어 공격성이 낮고 소심한 수컷개체를 친구로 만들어주려 하지만 님은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단독 우리에 넣어지게 돼 가족, 친구들과 지내다 갑작스레 갇히게 된 철장 속 님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지만 비극임은 분명했어 물론 이런 상황을 반대했던 연구원들도 많았어 하지만 총 책임자인 하버트의 결정이었고 대안이 없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지 연구팀은 님이 가장 아꼈던 인형 한개를 우리 안에 놓아둔 채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어 차가운 철창 속 님은 그들에게 가족이었을까 실험체였을까 시간이 지나 님이 지내는 사육장에 한 손님이 찾아왔어 그건 바로 당시 총 책임자였던 하버트 교수 님은 하버트를 알아보고 너무 반가워하며 안겼지만 하버트가 온 이유는 순전히 언론을 위해서였어 하버트에 실험에 관심을 가진 매체들이 그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비난을 피하기 위해 언론사들을 대동해 님을 찾아왔던 거야 그 사실을 몰랐던 님은 아직 기억하고 있는 수화로 하버트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을 거야 하지만 짧은 시간만 보내고 냉정하게 님을 남겨두고 다시 돌아가버린 하버트 또 한번 버려진 님은 한동안 먹지도 않고 철창 속에서 울기만 했어 그런 님을 위로해주었던건 바로 사육사 '밥'이었어 님이 수화를 하는 침팬지였던 걸 알았던 밥은 님과 수화로 소통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어 이후 사육장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그림놀이도 하며 님은 그럭저럭 잘 지내는듯 했어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어 1982년, 님이 지내고 있는 사육장이 재정적 위기로 인해 더이상 운영할 수가 없었던 거야 경영자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침팬지들을 모두 뉴욕대학교 임상실험실에 매각해버려 물론 님도 예외는 아니었어 인간에게 안전한 약을 만들기 위해 쥐와 침팬지에게 실험을 해야했기 때문에 특별했던 침팬지인 님도 그곳에선 겨우 침팬지에 불과했어 동족들이 비명을 지르고 축 늘어져 실려져가는 걸 지켜만 봐야했던 님 직원들은 님이 수화를 할 줄 안다는 걸 들어서인지 벽에 이렇게 그림을 붙여서 님에게 명령을 했다고 해 님이 여러 약물 투여를 받으며 실험을 당하던 중 사육사였던 밥과 실험팀의 일부 연구원들은 사랑하던 님을 구해주기 위해 법정 싸움도 벌였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어 하지만 이 법정싸움이 미국 전역에서 유명해져 한 부유한 농장주가 거액을 주고 님을 연구에서 빼내오는데 성공했어 이 농장주가 운영하는 농장은 상처입고 불구가 된 동물들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그야말로 낙원같은 곳이었어 연구실을 벗어나 새로운 집으로 오게 된 님 하지만 님은 이미 너무나도 우울감에 빠진 상태였어 이런 님을 위해 농장주는 님을 철창에 가두지 않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언제든 문을 열어놨어 하지만 님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어 너무나 망가져버린 님의 마음 이후 폭력성을 계속 보이다 결국 사육장에 마련한 티비를 부수고 농장주의 반려견을 집어던져 죽이기까지 한 님은 쭉 철장에 갇혀살아야만 했어 그때 농장주는 농장 앞에 현판을 걸어놨었는데 뜻은 이러했어 '저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나의 비극들이 모두 끝났고 나는 집에 있습니다' 마치 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글이었어 그러던 어느날 농장에 뜻밖에 손님이 찾아오게 돼 바로 님을 처음 만나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던 스테파니였어 님은 스테파니를 알아보자마자 격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어 농장직원들에 만류에도 스테파니는 우리안에 들어가겠다며,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곤 님이 있는 철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어 스테파니가 들어가자마자 사고가 터져 님이 그를 쓰러뜨려 바짓가랑이를 잡고 우리 안을 미친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거야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이 총을 다급하게 꺼내왔지만 님은 거기에서 멈췄어 내팽겨쳐버리곤 몸을 돌렸어 님은 애초에 스테파니를 죽일 마음은 없었던 거야 쓰러진 스테파니와 그런 스테파니를 본 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이후 님은 우리안에 통을 마구 옮기며 지냈다고 해 그리고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또 다른 손님이 님을 찾아와 바로 사육장에서 님과 깊은 교감을 나누며 친구가 되어주었던 밥이었어 밥은 우리 안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일전에 사고 때문인지 농장주는 허락해주지 않았어 그래서 둘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돼 밥을 단번에 알아보는 님 스테파니때처럼 화는 내지 않았어 밥을 본 님은 수화로 '놀자'라는 말을 했고 둘은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밥이 돌아간 이후 님에게는 변화가 찾아왔어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재밌게 공놀이도 하며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어 재회 이후 밥은 자주 님을 보러왔고 님의 마음은 또 다시 밥으로 인해 치유 받은 듯 했어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다시 치유받는 님 그리고 2000년 님은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돼 인간의 아이로 자라 침팬지로써 많은 절망감을 겪어야했던 님 그저 한마리의 침팬지가 아닌 좀 더 특별한 영혼을 가진 무언가로 만든 인간은 그것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지지 못했어 님은 인간다운 침팬지보단 침팬지로 살았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기존나쎈 조선 최초의 주미 대사.jpg
때는 1887년.. 5년전에 구식 군인들이 일으켰던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허겁지겁 부르긴 했는데.. 청나라는 군대 진압했으면 좀 꺼지지 조선에 눌러앉아서 온갖 간섭을 하려 했고 일본은 임오군란때 죽은 일본인과 불탄 일본 공사관을 들이밀며 배상 요구를 하려 한것임 심지어 언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지들 군대도 조선에 주둔시키겠다는 말같지않은 요구도 해버림 하지만.. 고종 고종은 쩔수 없었다.. 그 뒤로 조선은 지겹도록 청나라와 일본 간섭에 시달리게 됨 *잠시 당시 관계 설명* 이 당시 청나라는 서양 국가들에게 탈탈탈 털리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선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들 따까리 자리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하지만.. 원래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는 사대관념에 입각한 조공책봉 관계, 즉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보살펴주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는 그런 관계임. 말그대로 힘에 의한 관계라기 보단 이념에 따른 자발적 관계이고, 당연히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었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청나라가 자꾸 선넘더니 무력을 앞세워 국정에 간섭하기 시작하는 것! 이때부터 조선인들도 머야시발;;하면서 청나라와의 전통적 관계를 끊고 동등한(=근대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조공을 철폐하려고 하는 등 한발자국씩 나아가던 시기였음 ~다시 돌아와서~ 조선의 여러 관료들은 청나라를 비롯한 외세의 개입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시점에, 어떻게 하면 조선이 자주독립을 지키며 근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 또 고민했음 그 당시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외교> 조선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제질서에 편입하고자 했음 그렇게 해서 청나라에도 조공책봉 사신이 아닌 동등한 주청 상주 외교관을 파견하고, (물론 청나라는 전통 질서에 혼란 생긴다고 싫어했음 ㅎㅎ 우짤) 도쿄에도 주일 외교관을 파견하고자 했었음 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바로 조선 최초의 주미 대사 주미특파전권대사 박정양을 파견했다는 것임 고종이 주미 대사를 파견한 것은 미국에 상주 외교관을 파견함으로써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주변국에게 보여주고, 서양의 현재세력 관계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고종의 빅 픽쳐 ㅎㅎ 조선은 당연히 파견하기로 결정한 후에 청나라한테도 알려줬음 : 정양이 일행 미국에 보낼거임 ㅎㅎ 위안스카이(원세개) : 미쳤습니까 휴먼? 갑자기 청나라가 존나게 시비를 거는거임;; 대충 뭐라고 했냐면 조선이랑 미국 사이에는 상민도 없고 무역도 안하는데 전권공사는 왜 보내? 돈도없으면서 외교사절은 무슨 ㅎㅎ 낭비 ㄴㄴ 아니 그리고 니네 왜 우리한테 허락 안받음?? 이거 무효야 무효 응.. 개소리 한거임 당시 조선에 주재하던 미국 공사나 고문관도 청나라가 조선과 미국의 조약을 방해하는건 조약 위반이고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니 냅둬야 한다고 항의했음 이 민폐국 때문에 자꾸 출발이 늦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청나라가 요구하는 영약삼단을 받아들임 고종은 청나라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주면서 박정양 일행에게는 “짐의 뜻을 잘 헤아려 처신하라”고 거듭 당부했다고..(대충 영약삼단 지키지 말라는 뜻) 영약삼단이란?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② 대한제국 공사는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청국공사의 밑에 자리를 잡는다 . ③ 대한제국 공사는 중대사건이 있을 때 반드시 청국공사와 미리 협의한다. =한줄요약: 청나라가 미국에서 조선이 자기네 속국이라고 홍보하기 위해 세가지 약속 지키라고 협박함 조선이 자주독립국인걸 보여주고자 했던게 어지간히 아니꼬웠나 봄 ㅎㅎ 어찌됐건 우여곡절 끝에 워싱턴에 도착한 박정양 일행! 청나라와의 약속 중 첫번째인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를 지켜야 할 차례였음 (조까~) 하지만 기존나쎔 박정양은 청나라 공사가 아닌 미국의 국무부 장관를 먼저 만나러 가면서 영약삼단을 무시해버림 당시 일행 조금 화난 위안스카이 : 영약삼단 지키라해;; 거슬린다해;; 박정양은 청나라가 항의하자 “님 ㅠㅠㅠㅠ 쏴리쏴리 ㅠㅠㅠㅠ 뚜이부치 ㅠㅠㅠ 정부가 청국 공사 먼저 만나러 가라고 나한테 말 안해줬음ㅠㅠㅠ 일부로 그런거 아님 ㅠㅠㅠㅠ” 이라고 해명함 청나라는 그냥 흠....하고 넘어가게 됨 하지만 그 뒤로도 박정양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날 때 청의 외교관을 대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워싱턴에서 공사관의 부임 순서에 따라 방문하는 관례에 따라 28개국 중에 18번째로 청의 공사관을 방문했음 이후에 청국 공사에 방문한 박정양은 더 이상 “몰랐다”고 할 수 없으니 솔직하게 “미국에 도착해서 미국 국무부가 아닌 청 공사를 먼저 방문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이고, 이는 미국이 조선과의 교류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조선과 미국의 국교라는 파견 명분을 해칠 수 있으므로 영약삼단을 지킬 수 없었다.” 고 말했고, 너무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도 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었음. 하지만.. 그 뒤로도 복장같이 사소한 걸로도 다 트집을 잡아서 시비를 걸었음 ㅎㅎ 물론 박정양은 영약삼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나라의 압력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이는 엄청난 의의가 있는 행동이었다는 점 왜냐하면 청의 요구를 벗어나서 주체적으로 외교 활동을 했기 때문임 청나라 공사의 요구들을 거절하고 당당하게 단독으로 활동하며 자주적 외교와 독립국의 지위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 (워싱턴 대한제국공사관) 당시 주미공사관 서기관이었던 이상재가 작성한 편지를 보면 "이곳의 인물 풍속 정치 법령은 오로지 우리나라와 일체 상반된다. 날마다 귀와 눈이 처음 듣고 처음 보는 것"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중국공사가 매번 체제사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고집부리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청나라가 가지가지 간섭해댔던 시절에도 우짤? 마인드로 조선의 외교를 위해 힘써줬던 그 옛날 기존나쎔 조선 외교관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가져와봄 마무리는 이상재의 편지 중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 개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使命)을 욕보이는 것이다." 문제시 삭제 출처
그물에 걸린 혹등고래 구하기.jpg
-저기 있네 사람들이 바다에서 발견한 물에 떠있던 혹등고래 -저는 그 고래가 죽은 게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죠 너무나 가만히 있어서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그런데 갑자기 고래가 쏴- 하고 물을 내뿜음 알고보니 혹등고래는 그물에 몸이 걸려있어 움직일 수 없었던 것 -혹등고래는 15-20분 정도 숨을 참을 수 있습니다 -숨을 쉬려면 숨구멍을 물 위로 내놓아야 하는데 -그물과 각종 파편이 엉켜서 -숨을 쉬러 올라오기가 힘들어진 겁니다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면 익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래가 배를 산산조각 내서 우리를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배에는 여섯 명이 타고 있었고 -제 아내와 다섯 살짜리 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가족을 사랑하지만 고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죠 공포에 사로잡힌 고래의 방어적인 몸짓 한 번으로도 자칫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용기를 낸 사람들 -놀랐나 봐 -맞아 -등지느러미 부분만 끊었어 근데 갑자기 혹등고래가 너무 놀라서 요동치기 시작함 -파이프 붙잡아 -잘라, 잘라 그래서 배를 혹등고래에게 더 가까이 대고 그물을 제거하기로 함 -해냈어요 -혹등고래를 구해 준 거야 -맞아 -헤엄치는 고래를 보며 모두 기뻐했습니다 구조가 성공하고 잘 돌아간 혹등고래 그런데 혹등고래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옴! -저기 왔어 -어디? 계속 뛰어오르면서 고마움을 알리는 듯한 혹등고래 -40번은 뛰어올랐습니다 -배 주위를 돌면서 계속해서요 신났음 -엄마, 왜 저러는지 알아 -왜 저러는데? -이제 자유롭다고 알려주는 거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