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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순간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 짧디 짧은 몇 분의 장면에는 지난 영화사의 여러 해와 달이 뒤섞인 채 담겨 있어. 이제는 자리에서 은퇴한 이름들.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어떤 이의 이름. 그리고 극장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들. 몇 번이고 들었던 대사를 그때 그 순간 다시 들을 때 전해져 오는 새로운 느낌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분명 이 순간도 언젠가는 길가에 떨어진 숱한 낙엽들 가운데 하나쯤의 것처럼 희미해져버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떤 것은 끝내 잊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해두고 싶은 감각들로 가득해,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떠올릴 때마다 너무도 생생한 것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그건 단 한 개의 장면만으로도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의 합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180분짜리 영화의 단 5분으로부터. 우리는 왜 이렇게 시간에 매여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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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절대반지는 왜 제작되었는가
한창 반지의 제왕 신나게 정독중에 든 생각 '이거 반지를 왜 파괴해야하고 그런 건 다 아는데, 왜 사우론이 자기 힘 쏟아서 반지 만들었는지는 좀 가물가물하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저 이유가 1편 도입부 정도만 나오고 또 반지전쟁 시점에서는 딱히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임 반지전쟁이 벌어지기 수천년 전, 중간계에 '안나타르 (선물을 주는 자)' 라는 군주가 등장함 그는 짤과 같이 몹시 아름다운 외형으로 많은 지도자들의 환심을 샀음 안나타르는 요정들에게 '세월의 풍파를 막아주며, 가운데땅에서의 영광을 지속시켜주는 반지를 주겠다'라고 설득을 시전. 종족의 운명이 가운데땅을 떠날 것임을 아는 요정들에게는 몹시 반가운 제안이었음 엘론드와 갈라드리엘 등 상당수의 요정들이 출신을 알수 없는 안나타르를 꺼려했지만, 집단 안에서 님 취존요 하면서 다른 소리는 나오기 마련. 걸출한 솜씨를 갖춘 요정 장인 '켈레브림보르' 이 이름 좀 복잡한 양반은 안나타르의 기예를 빌려, 16개의 반지를 주조해냈음. 그리고 안나타르의 힘을 빌리지 않은 3개의 반지를 더 만들어냈지. 문제는 그 안나타르라는 새끼의 정체가 사우론이었다는 것과 운명의 산 중심부에서, 자신의 힘과 존재까지 쏟아부은 최고의 반지를 만들어버렸다는거지 아무도 모르게 만든 자신만의 반지이자 유일무이한 반지. 모든 반지를 지배할 반지, 모든 반지를 찾아낼 반지 모든 반지를 암흑 속에 가둘 단 하나의 반지. 바로 절대반지를 말이지. 즉 사우론의 목적은 이랬음. 1. 요정들에게 힘의 반지를 선물해 착용하게 한다 2. 자신은 그 모든 반지를 지배할 절대반지를 몰래 주조한다 3. 요정들은 타락죽에 빠져 지배될 것이다. 2 까지는 잘 흘러갔는데....? 사우론: 흐하하하 이제 모두가 내 발밑에 조아리게 될 것이다 요정들: (침착하게 반지를 손에서 뺀다) 로 아주 스무스하게 타락죽을 회피해 버림. 계획이 파토난 사우론은 뭐 별수 있나 본색을 드러내고 전쟁을 일으켜, 켈레브림보르를 고문해 죽이고 그에게서 반지 16개를 빼았음. 오직 사우론이 손대지 않고, 켈레브림보르가 직접 만든 반지 3개만이 요정들에게 남았음. 하늘 아래 요정왕들에게는 세 반지 사우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세 개의 반지를 의미함. 사우론의 힘이 개입되지 않아 타락죽 위험이 없었고, 사우론은 요정에게 좋은 템만 건내준 꼴이 되었다나? (어디까지나 착용시 타락죽만 없고, 제작기술 자체는 사우론의 영향이 있어서 절대반지에게 좌우되는건 같음) 이 반지는 요정 군주들에게 주어졌고, 반지제왕 시점에서는 엘론드, 간달프, 갈라드리엘이 소유함. 이렇게만 보면 사우론의 장대한 삽질기 같지만, 그 양반이 재활용을 은근 잘하더라고 돌 전당의 난쟁이 왕에게는 일곱 반지 사우론은 난쟁이들에게 반지를 나누어줬고, 그들을 지배하고 타락시키려 했음 하지만 난쟁이들은 부숴질지언정 지배당하진 않는 종족이어서, 효과는 미미했고 그렇지만 반지는 난쟁이들의 탐욕을 부추겼고 금과 보화에 대한 욕심이 심했던 난쟁이 군주들은 탐욕에 미쳐가며, 멸망하고, 반지들은 다시 사우론에게 회수됨 죽을 운명의 인간에게는 아홉 반지. 어떤 종족보다 나약했고 타락에 약했던 인간들은 바로바로 타락 반지의 효과로 영생을 살았지만, 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린 것이기에 점점 투명하고 말라비틀어져갔고 결국 아홉 나즈굴, 반지망령으로 변해 사우론의 가장 충직한 부하 노릇을 하게 됨. 이들은 사우론의 명을 받아 곤도르를 괴롭혔으며, 북왕국을 침공해 멸망시킴. 이 즘에서 결산해보면, 사우론이 반지를 만든 목적인 '요정의 지배와 타락'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가운데땅의 난쟁이와 인간 세력을 상당수 조져놓는 성과는 달성한 셈. 나름 본전치기는 했지. 하지만 사우론에게도 큰 페널티가 걸렸는데, 바로 절대반지에 자신의 운명과 존재가 속박되었다는 것. 저 이후에 사우론은 육신을 잃었고, 그때마다 그의 존재는 점점 절대반지에 깊이 묶이게 되어 반지전쟁 시기에는 반지를 가지면 본래의 권세를 되찾지만, 반지가 파괴되면 완전히 무력화될 정도로 반지에 의존하게 되버렸고, 결국 최종적으로 절대반지가 파괴되면서 강력한 존재에서 무력한 유령정도로 변하게 되버린것. (출처)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잘 정리된 글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다시 봐야겠네 반지의 제왕
영화 <캡틴 마블> 리뷰: 세상에 영웅이 필요한 이유, 새 '어벤져스'를 앞두고
세상에 영웅이 필요한 이유, 새 '어벤져스'을 앞두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개봉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페이즈 3' 발표가 있던 2014년 당시, 케빈 파이기는 <캡틴 마블>의 제작 확정 소식을 전하며 '캡틴 마블'의 이름이 '캐럴 댄버스'임을 이미 밝혔다.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이나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한 2019년 지금을 염두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기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준비된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물론 디즈니와 마블의 동향을 주시해온 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캡틴 마블>은 어떤 영화인가. 먼저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브리 라슨)의 주변을 살펴보자. "너무 감정적이면 안 된다", "여자가 조종석에 앉는 건..." 같은 말을 들어야 했던 시기의 여성 파일럿과 과학자, 외계 종족(여기서는 단지 지구 밖을 의미할 뿐 아니라 지구에서의 '소수'임을 동시에 내포한다), 그리고 흑인. 그렇다면 <캡틴 마블>은 소위 '페미니즘 영화'인가? 그렇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여성영화의 계보로는 그렇다고 봐야만 하겠다. (한데, 불매 운운하던 이들 중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보다 덜 페미스럽다'는 식의 반응을 내보이는 이들은 대체 영화에서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 그러나 MCU의 첫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임을 지칭하는, 예고편에서의 헤드카피(HER - A HERO)만 가지고도 마치 이 영화가 영화의 만듦새보다 무조건적인 'PC'를 의식한 작품이라며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무엇인들 마음에 들겠는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 <블랙 팬서>(2018)에 대한 온라인 일부 반응 역시도 비슷한 맥락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과연 'PC'가 영화를 망치기만 할까. '캡틴 마블'이 '캐럴 댄버스'였든 누구였든, <캡틴 마블>은 솔로 히어로 무비의 익숙하고도 친숙한 전형을 따른다. 과거의 숨은/잊힌 기억이 전개의 실마리가 되고 나아가 일종의 반전으로서 기능하는 것 역시 처음 보는 게 아니다. 크리 종족의 일원이면서 지구에서의 기억을 (자신도 모르는 새) 가지고 있다는 외면상의 설정도 후반에 이르면 이질감 없이 MCU의 치밀한 기획의 일환이었음에 수긍하게 된다. 젊은 '닉 퓨리'(사무엘 L. 잭슨)를 비롯해 '콜슨'(클락 그레그) 요원과, 무엇보다도 고양이 '구스' 등 <캡틴 마블> 속 '캡틴 마블'의 각성과 도약의 과정에는 매력 가득한 조연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유머가 함께한다. '캐럴 댄버스'의 성장은 타자가 정해놓거나 구획해놓은 '전사'(戰士, 前史)에서 벗어나 진짜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조차 모르던 인물이 스스로의 능력과 스스로의 의지를 확고히 하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다. 단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의 보너스 영상에 등장해 '어벤져스'의 새 멤버가 되리라는 것 정도만 짐작했던 '캡틴 마블'이 실은 '어벤져스'라는 명칭의 기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쉴드'가 또 다른 '히어로'들을 찾아 규합해나가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캡틴 마블> 자신이 단독 영화로서 세계관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세계관에 이물감 없이 녹아드는 결정적 요인은 다름 아닌 한 달 후의 개봉작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캡틴 마블'이 등장한다는 점일 텐데, 실질적으로 <퍼스트 어벤저>(2011)와 <어벤져스>(2012)의 프리퀄로서의 역할까지 해낸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순간, 그 누구로부터의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순간 그는 스스로가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모아, 세상과 타인을 능히 움직이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크리 종족과 스크럴 종족의 갈등 역시 표면적으로 보이던 것과는 달리 '전쟁'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전쟁이 "Universal Language"라는 말을 '닉 퓨리'가 하는데, 이는 외계 종족이 어디에나 있으리라는 뜻인 동시에 지구든 어디든 전쟁이 없는 곳이 없으리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우주에서 '캡틴 마블'은 정말로 '어벤져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해 <캡틴 마블>은 힘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는 영화다. '캐럴'이 '마리아'(라샤나 린치)의 딸인 '모니카'(아키라 아크바)를 대하는 모습은 자연히 영화가 동시대의 관객, 특히 어린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블랙 팬서>의 개봉 당시 옥타비아 스펜서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와 비슷한 시사점을 주는 말을 한 적 있다. 원문 일부를 그대로 싣는다. "I will buy out a theatre in an underserved community to ensure that all our brown children can see themselves as a superhero."([TIME], 2018년 2월 19일 'A Hero Rises' 호에서 재인용) 이는 인종이나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수퍼히어로'라는 존재이자 명사 자체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 영웅은 힘이 세거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악당이 된다.) <캡틴 마블>이 이 점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아닐지라도, 요컨대 이런 것이다. "너도 영웅이 될 수 있어." <캡틴 마블>은 무난한 '솔로 무비 1편'으로서 충실할 뿐, 정치적 함의를 노골적으로 설파하는 영화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니, 글라스 실링이나 가스라이팅과 같은 것들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1990년대를 배경으로 여성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에서 자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요소로 다가올 뿐, 작품에서 두드러지거나 영화의 톤 앤 매너와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한데, 메시지를 담는다고 한들 그게 조금이라도 문제 될 바가 있는가? 모든 건 관객의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에 달린 것이다. 같은 이야기와 같은 메시지라도 무수한 영화 언어의 교직에 따라 다양한 화법으로 저마다에게 달리 닿는 것이고. 여태껏 수퍼히어로가 대부분, 거의 모두 남성이었다는 건 다시 주지 시킬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DC 진영의 <원더우먼>(2017)의 등장이 그랬던 것처럼, 성별이 바뀐다고 하여 영화가 일순간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페미니즘 사상 영화' 같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더 정치적인 건 '캡틴 마블'과 브리 라슨에 대해 특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들의 반응이다. (덧: 브리 라슨은 정말로 스탠 리를 '모욕'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는 대중들이 '추모에 바람직하다고 허락한' 사진을 올려야 하고 대중이 '그럴 수 있다'라고 허락한 방식으로 악플에 대응해야 하는가?) 그것도 포털과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그간 보여왔던 아주 익숙하고도 전형적인 방식으로. 나는 오히려 <캡틴 마블>의 러닝타임이 지금보다 15분에서 20분가량은 더 길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블랙 팬서>에서처럼 캐릭터를 넘어 문화를 세밀히 담아내거나, 혹은 '닉 퓨리'나 '마리아'와 '캐럴'과의 관계를 더 밀도 있게 그려낼 수 있었으리라. 지금의 '잘 만든 기획영화'이자 '세계관 내 다음 영화로 향하는 단단한 다리' 역할로도 충분하겠지만. 아, 지금껏 배우들의 연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브리 라슨, 사무엘 L. 잭슨(그가 고양이 '구스'를 상대로 혀짧은 소리를 내며 대화하는 신은 정말 귀하다!), 주드 로, 벤 멘델슨, 아네트 베닝. 말해서 무엇하리. 사적으로는 <어벤져스> 시리즈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같은 소위 '떼샷' 영화보다는 단독 영화를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디즈니와 마블의 기획력과 그것을 실현하는 치밀함에 대해서는 의심하거나 회의할 여지가 없겠다. 이제는 익숙하고 예상 가능하다고만 생각할 때, 마블의 영화는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선보인다. 그리하여 동시대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원문 출처: https://brunch.co.kr/@cosmos-j/480
거의 xxx급! '극한직업' 영화 솔직후기/리뷰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드디어 보고 왔어요ㅋㅋ아 아직도 웃음이 멈추지 않네요ㅋㅋ 정말 기회만 된다면 n차도 가능합니다! 같이 보실분~!~ 오늘의 영화는 액션인가 코믹인가 영화 '극한직업'입니다. 정말 한국액션코미디의 바이블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네요. 정말 딱 이 정도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오락영화도! 웃음을 전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나선 스쿼드예요ㅋㅋ 개그맨들인지 경찰인지 헷갈리실 수도 있어요~ 제가 정말 영화보고 잘 안 웃는 사람인데 오늘 영화는 꽤 많이 웃어가지고 신기하네요 웃음요소가 많고 계속해서 관객들의 웃음을 사냥하기 때문에 자칫 B급 코미디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리조절과 밀당을 적절히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미친듯이 가볍고 때로는 꽤 심각하고 걱정도 됐지만 결국 시원한 액션과 마무리로 오락영화의 본분을 다 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웃었던 장면ㅋㅋㅋㅋㅋㅋ정말 너무 좋다 이 팀... 극한직업 마약전담팀의 매력은 출구가 없습니다. 제발 이들의 매력을 못 느껴본 사람이 없게 해주세요ㅠㅠ "기다려~" 잊지 못할 대사입니다ㅋㅋ 영화가 좋았던 건 시종일관 웃기지만 과하게 웃음에만 치중하지는 않았습니다. 액션영화답게 액션마저도 화려하더군요. 배테랑을 떠올리게할만큼 시원하고 멋있는 액션이 또 준비됐습니다. 거의 저에겐 배테랑급의 인상적인 영화였고 액션영화는 이 정도만 해다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테랑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제발 속편을 주세요ㅠ 하...속편 나오면 평점 상관없이 당일날 보러 가겠습니다! 배우들의 케미도 너무 좋고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고 균형있게 활약합니다. 누구 하나 겉돌거나 튀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간략하게 요약하며 총평을 해보자면 이동휘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존재감이 가장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이하늬는 세련된 외모와 달리 진정한 배우의 모습을 가진 사람입니다. 진선규는 앞으로 범죄액션을 선도할 대단한 배우로 더 성장할 거라 봅니다. 공명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웃긴 인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류승룡은 서민의 편에서, 가장 처절할 때 가장 큰 힘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자세한 부분은 직접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영화 '극한직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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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유형인가요? ISTJ 소금형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는 성격인 당신! 이 책을 읽고, 삶의 지혜와 부의 철학을 일깨울 수 있을 거예요 :) 부자의 언어 존 소포릭 지음 | 윌북 펴냄 > https://bit.ly/2xwAQ78 ISFJ 권력형 성실하고 온화하며 협조를 잘하는 당신!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 더 큰 내가 되길 :) 열한 계단 채사장 지음 | 웨일북 펴냄 > https://bit.ly/2VkSEv4 INFJ 예언자형 사람에 관한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당신! 소설 속 인물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즐길 것 같네요 :)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 푸른숲 펴냄 > https://bit.ly/2VgTd8Y INTJ 과학자형 전체를 조합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당신!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는 힘이 주인공과 닮았어요 :) 마션 앤디 위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 https://bit.ly/2KhajND ISTP 백과사전형 논리적이고 상황 적응력이 뛰어난 당신! 타인의 신뢰를 얻는 데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는 카네기와 닮았어요 :) 사람을 움직이는 처세술 데일 카네기 지음 | 지성문화사 펴냄 > https://bit.ly/2xsZgyl ISFP 성인군자형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겸손한 당신은 나무보다 숲을 보는 타입 :) 일상에서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길!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 김한승 지음 | 추수밭 펴냄 > https://bit.ly/3etB4MJ INFP 잔다르크형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은 당신!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세계를 넓혀줄 책 :)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 지음 | 김영사 펴냄 > https://bit.ly/2ynau7t INTP 아이디어형 뛰어난 아이디어로 남다른 시선을 갖고 있는 당신! 예술가 프리다 칼로를 만나 그녀의 인생도 이해해보는 시간이 되길 :)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지음 | 비엠케이 펴냄 > https://bit.ly/2KbDTUZ ESTP 활동가형 친구, 운동, 음식 등 삶의 다양함을 선호하는 당신!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 나만의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돼줄 책!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https://bit.ly/2yoMQrn ESFP 사교형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사교적이고 우호적인 성향의 당신 :) 트렌드에도 민감한 당신에게 추천하는 신인류 행동 양식이 담긴 책! 포노 사피엔스 최재봉 지음 | 쌤앤파커스 펴냄 > https://bit.ly/2S3i1zx ENFP 스파크형 열정적인 성향으로 새로운 관계가 두렵지 않은 당신! 담백한 1일 1지식으로 대화를 이끌 수 있을 거예요 :)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데이비드 S. 키더 외 1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 https://bit.ly/2yoNMvI ENTP 발명가형 풍부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즐기는 당신 :) 파피용 속 자유로운 이야기가 당신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줄 거예요! 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열린책들 펴냄 > https://bit.ly/3bkMXma ESTJ 사업가형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당신! 유대인의 생각이 담긴 책으로 당신이 선호하는 범위가 넓어질 거예요 :) 1% 유대인의 생각훈련 심정섭 지음 | 매경출판 펴냄 > https://bit.ly/3bl4tGZ ESFJ 친선도모형 타인에게 상냥하고 가끔 봉사도 하고 싶은 당신, 그렇지만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도 부려보세요. 지칠 때 읽으면 좋아요 :) 행복한 이기주의자 웨인 다이어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https://bit.ly/2RO0OJZ ENFJ 언번능숙형 타인의 성장을 도모하고 협동하는 걸 즐기는 당신에게 어릴 적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때 기운을 주는 책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 동녘 펴냄 > https://bit.ly/2XRPU9Q ENTJ 지도자형 비전을 갖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당신,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시와 명화로 마음의 안정감을 찾아줄 책!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윤동주 외 17명 지음 | 저녁달고양이 펴냄 > https://bit.ly/2xHJu2D 플러스 정기구독 신청 더 알아보기 > https://bit.ly/3akPBHn
[덕질하면 돼지]: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해서 아끼고 거듭 다시 보기
영화를 좋아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직접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N차 관람' 하면서 계속해서 즐긴다. 누군가는 그 영화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쓴다. 내 경우에는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 외의 모든 것이 포함되는데, 말하자면 특정한 영화나 특정 영화인(배우, 감독 등)을 '덕질'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콘텐츠, 혹은 영화라는 무형의 매체 그 자체를 덕질 하는 것이겠다. 빙글에서 마련한 이벤트를 계기로 지난 한 해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스스로의 영화 덕질 라이프를 점검해보게 되었다. 덕질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방법은 물리적인 것을 모으는 일이다. 몇 년 전부터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티켓이 대부분 영수증을 겸한 종이표로 바뀌면서 영화표 하면 생각나던 특유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 후 CGV에서 이런 아쉬움을 눈치챘는지 '포토티켓'이란 걸 만들었다. (최근에는 메가박스에서도 CGV의 포토티켓과 비슷한 서비스를 게시했다) 여느 책보다 두꺼울 만큼의 높이로 쌓인 저 포토티켓을 거슬러 올라가니 2014년 9월까지 흘러간다. 차마 수량을 세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최근 티켓들을 몇 장 꺼냈다. 작년 연말의 <아쿠아맨>부터 최근 <메리 포핀스 리턴즈>, 그리고 CGV 아카데미 기획전을 통해 재관람(4차)한 <스타 이즈 본> 등이 눈에 띈다. 포토티켓 모으는 분들이 꽤 늘면서 CGV에서는 포토티켓 전용 앨범도 출시했지만 나는 그런 것 안 쓴다. 위쪽 사진에 쌓여있는 포토티켓 옆에 나온 틴케이스가 지금 내 포토티켓을 수납하는 공간인데, 저게 다 차서 더 이상 수용하지 못하면 이 티켓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물론 그런 건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2019년도 벌써 3월이 다가오고 있는데, 확실한 건 올해도 수십 장의 티켓들이 쌓이리라는 점이다. 한 가지 2018년의 가장 뿌듯한 일은, 영화 <쓰리 빌보드>를 보면서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재(옥외광고판)에 쓰인 문구를 따라 그대로 포토티켓을 만든 것이다. 물론 구글링 따위 하지 않고 직접 디자인 해서 만들었다. 포토티켓에 사용하기에 최적화된 이미지 사이즈(가로x세로 px)는 구글을 검색해보긴 했다. 앞에서부터 각각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이라는 내용으로,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 단지 소재를 넘어 극 중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모티브다. 그러나 포토티켓은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만하다. 전단이나 포스터, 엽서 등 좀 더 물리적인 성질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영화 덕질계에는 많이 있다. 전단이야 개봉 몇 주 전에 각 영화들마다 전국 극장에 뿌리는 것이니 쉽게 구할 수 있고, 2절이나 대국전 크기의 포스터나 각종 엽서는 영화사에서 마련하는 여러 이벤트(IMAX 예매 이벤트, N차 관람, 리뷰 이벤트 등등)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최근에는 주로 예술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 홍보를 위해 제작한 굿즈를 관람 후 증정하는 '스페셜 패키지 상영'이 늘었다. 하나 더, 뒤에서 또 얘기하겠지만 DVD나 블루레이를 구입하면 예약 구매 혹은 초판 한정으로 포스터나 엽서 같은 증정품을 얹어주기도 한다. 앞선 사진과 포스터의 배치가 다소 다른 걸 볼 수 있다. 지금 거주하는 곳으로 이사온 후, 이 책상은 마치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답답했다. 엽서든 포스터든 뭐라도 붙여야겠단 생각이 들어 나만의 '영화의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여름맞이, 겨울맞이 등 일정한 주기를 두고 몇 개월마다 포스터 배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기존의 것을 떼고 다른 걸 붙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스카치 테이프를 떼서 양면처럼 만들어 뒷면과 벽 사이에 붙이기도 했고, 지금은 마스킹 테이프를 써보고 있는데 이게 벌써 몇 개월이 지나서인지 어떤 건 괜찮은데 사진의 <라라랜드>처럼 조금 큰 포스터의 경우에는 테이프가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떼어지기도 한다. 다시 스카치 테이프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 영화의 벽은, 고스란히 자신의 취향이 담긴 것이다. 좋았던 영화, 블루레이를 소장하고 있는 영화, 너무 좋았던 영화, 아주 좋았던 영화, 진짜 좋았던 영화, 극장에서 일곱 번 본 영화 등. 앞서 영화의 물리적 성질을 이야기 한 건, 영화라는 게 사실 스크린 안에서 영상이 끝 모를 듯 펼쳐지고 나서, 그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땐 오로지 머리와 마음에만 영화가 남아 있을 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켓이나 포스터, 엽서 같은 것들은 그 영화를 좀 더 오래 기억하고, 나아가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만들어준다. 각종 뱃지들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물성을 체감하게 해주는 최고봉은 블루레이와 DVD다. 요즘에야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도 영화를 많이 볼 수 있고 IPTV나 VOD 매체가 발달했지만, 턴테이블에 LP를 돌리거나 CD플레이어에 CD를 넣듯 영화가 담긴 디스크를 넣고 영화를 재생하게 해주는 블루레이와 DVD는 내게는 최고의 매체다. 물론 이건 정말 비효율적인 일이다. 영화 티켓값보다 훨씬 비싼(블루레이 기준 보통 3만원이 넘는다.) 값을 주고 사야 하고, 책처럼 진열하거나 수납할 공간이 필요하며, 디스크를 컴퓨터나 전용 플레이어에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비효율적인 수집 행위의 모든 장점은 '만질 수 있는 영화' 하나로 귀결된다. 블루레이나 DVD에 담긴 각종, 제작진의 인터뷰나 촬영 현장의 스케치 영상, 주요 삭제 장면 등의 보너스 콘텐츠는 덤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2018년 2월 ~ 3월 당시 극장에서 본 영화 중, 북미에서는 이미 2017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보니 해외에는 블루레이가 이미 출시되어 있는 영화도 있었다. 집에서 그 영화들을 너무 다시 보고 싶은데 아직 극장 상영 중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아마존 사이트를 드나들며 블루레이를 검색했다. 그 중 <쓰리 빌보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북미판 블루레이를 결국 구입했다. (DVD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지역 코드가 달리 분류되지만, 블루레이는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와 미국의 지역 코드가 같다. 그래서 문제없이 재생할 수 있다.) 물론 국내화된 자막 같은 걸 포기하고 영상을 택한 것이지만, 운 좋게도, 아주 드물게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쓰리 빌보드>의 경우 국내 극장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번역 자막(황석희 번역가)이 삽입되어 있었다. 두 영화는 국내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북미에서 블루레이가 출시되었고 각각 소니와 폭스의 직배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쉽게도 <셰이프 오브 워터>의 북미판 블루레이는 영어와 스페인어만 지원한다. 현재는 위 사진의 세 영화 모두 국내판 블루레이가 정식 출시되어 있다.)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을 한동안 진행하면서 참석자들에게도 나름의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 이미지들을 활용해 일종의 포토티켓과 같은 카드를 만들었다. 초기에 만든 것들은 별 다른 실용성이 없었는데, 나중에는 앞면에 영화 이미지를 담으면서도 뒷면에는 각자 메모를 하거나 감상을 적어볼 수 있는 여백을 만들었고 크기도 좀 더 크게 만들었다. 영화 덕질의 방법은 이렇게 다양하다. 아래 사진의 경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볼 당시 스필버그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의 원작, 스필버그 감독의 다른 영화들 중 내가 갖고 있는 DVD, 스필버그 감독에 대한 글이 실린 영화잡지 등을 모두 꺼내며 본격 '레디 플레이어 원 덕질'을 시작했었다. 이건 절대로 내가 똑똑해서 할 수 있는 '통섭' 같은 게 아니다. 물론 똑똑해지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혼자서 하는 덕질도 소중하고 좋지만, 조금 더 삶의 질(?)이 높아지는 방법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이들과 그 덕질을 함께하는 것이다. 내게는 만나면 음식 사진이나 서로의 사진이나 셀카 같은 건 단 한 장도 찍지 않으면서 오직 서로가 (자주 만나지는 못해서 대체로 다시 만나려면 몇 달이 걸리곤 한다) 그동안 쌓아온 각자의 덕력(?)을 뽐내며 서로 굿즈나 카드 같은 것들을 하나 둘 꺼내놓는, 그런 지인들이 있다. 커피 마시고 밥 먹고 다시 커피. 점심 때 만나서 저녁에 헤어지는 이 사람들과는 영화 이야기와 책(주로 시, 소설 등)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내게 있어 빙글은 사실상 혼자의 기록을 이따금 남겨두는 저장소 같은 곳인데, 2019년의 작은 목표 같은 것을 하나 더 만들어보자면, 이 소중한 공간을 주변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영화덕질 이야기는 2박 3일 정도 더 글로 늘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내 몇 안 되는 지인에게 빙글 앱 설치를 권유하러 가야겠다. 이제 3월이 다가온다. 영화와 함께 내 봄날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그리는 여성
지브리 팬들도 알겠지만 스튜디오 지브리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애니메이션의 여성캐릭터들은 공통점이 있어 그건 바로 남자의 도움 없이 어떤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수동적인 여성캐릭터(민폐여캐)가 없다는 거야 그 예시로 1984년에 개봉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를 보면 주인공은 자연재해를 막는 영웅성이 강한 여자고 그와 대응하는 악역도 여자야 오히려 남자주인공은 서포터 역할을 해 그럼 이제 민폐여캐가 아닌 지브리 애니메이션 여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여성상을 투영하는지 알아보자 이웃집 토토로 (1988) 주인공이자 언니 역할인 사츠키 부모의 부재중에도 독립적이고 자존감이 강한 여성 마녀배달부 키키 (1989) 키키 환경을 탓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주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여성 원령공주 (1998)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인간과 싸우고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강인한 여성 산 작품 중 난폭한 자연을 상징함 오히려 남주는 부드러움과 타협, 평화를 상징 인간측을 대표하는 악역 리더 에보시 비록 자연을 파괴하는 악당이지만 남성지배문화를 극복하고 나병 환자와 여성에게 동등한 노동의 기회를 주기도 한 입체적이고 양면성을 가진 여성이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고 용기를 내며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여성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모자 가게를 계승하는 장녀 소피 극 중 전쟁이라는 문제와 하울의 마법을 풀어주는 구원자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가 각기 다른 여성상을 투영하고 참 입체적이지?? 그렇다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여성 만세!" 하면서 여성을 숭배하는건 아니야 *천공의 성 라퓨타* 극 중 남자주인공들 또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해 다만 다른 작품과 차이점은 여자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받는것이 아니라 남자와 동등한 비중을 갖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거야 때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리더십과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묘사가 되기도 해 이는 남주의 구원만을 기다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흔해빠진 여성캐릭터와 큰 차이가 있지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성캐릭터는 남자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노출이나 섹스어필을 하지 않아 다른 작품과의 비교 *너의 이름은* 치마를 입은 여성캐릭터는 속바지를 입고 절대로 가슴이나 팬티 노출을 하는 경우가 없으며 바지를 입은 여성캐릭터도 있고 여자 주인공들의 외모도 개성있고 독특하고 정통 미소녀 얼굴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아 *벼랑 위의 포뇨* 물론 지브리 애니매이션 여성캐릭터도 리본이나 악세사리를 착용하는 등 여성성의 상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아 *키키의 왕리본* *산의 귀걸이와 목걸이* +) 하지만 바지를 입거나 리본을 다는 등.. 선입견 없이 다양한 여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더 매력적인 것 같아 34년 전부터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가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을 꾸준히 묘사해온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럼 다들 재밌게 읽었길 바라고 좋은 하루 보내! 참고문헌: 백선기 - 영화 그 기호학적 해석 이사벨 마이어스 - 성격의 재발견 마르틴 졸리 - 이미지와 기호 김은주 -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이데올로기적 이미지 출처: 쭉빵 , 꽃과 사슴
[ 반딧불이의 숲으로 ] 📝 R E V I E W
2011.09.17 개봉 / 50분 미만 반딧불이의 숲으로 (蛍火(ほたるび)の杜(もり)へ, 2011) 44분 이라는 짧은 단편 애니로,여름 방학의 판타지를 그려낸 만화로 간단하게 힐링물과 잔잔한 로맨스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 스 포 주 의 ✂️ 요괴의 숲에서 미아가 된 호타루(여주)는 울다가 숲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에의해서 구해지게 되지만 남자는 자기가 요괴라며 인간이 만지면 사라진다고 말 했다.호타루는 다음날에 보답을 하겠다며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자 요괴는 긴(남주)이라며 대답 했다. 그 이루로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데 보다가 심장마비 걸려서 죽을뻔 함.둘은 만질 수 없는 사이였기때문에 집에 데려다줄 때도 나뭇조각에 손을 잡고 데려다주고 여름방학때마다 할아버지네 집에 놀라왔던 호타루는 여름방학에 요괴의 숲에 오기만을 기다리곤 하고 호타루는 점점 성장하지만 긴은 그대로고 어느새 긴과 호타루는 키가 비슷해지고 호타루는 어린아이에서 고등학생이 됐다. 그 사이에 둘은 조금씩 보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이 더 커지고 고등학생이 된 호타루를 보는 긴은 호타루를 여자로 본다. (사실 그 전부터 마음 있었음) 긴은 그러다 요괴의 축제에 호타루를 부르고 호타루는 저녁에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긴과 만난다.축제 안에서 서로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서로의 손목에 끈을 매단다. 호타루는 마치 데이트 하는거 같네요 라고 말 하자 긴은 데이트네요~라며 설레게 말 한다..둘은 진짜 연인 처럼 축제에서 즐겁게 놀고 늦은 저녁에 같이 집을 가다가 긴이 호타루에게 고백하는 멘트를 하고 긴은 자기가 쓰고있던 가면을 호타루에게 씌어주며 가면 위에 키스를 한다.(이 장면만 610837번 돌려봤음) 그리고 나서 앞으로 어떤 남자아이가 지나가다가 요괴인 줄 알고 넘어지는 애를 긴이 붙잡아 줬는데 갑자기 몸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긴은 드디어 널 안을 수 있어 라며 호타루와 포옹한다. 사실 마지막 부분이 조금 허전 하긴 했는데 남주가 잘 생겼으니 봐주도록 하자
영화 '허스토리' 리뷰 (6월 27일 개봉)
단지 살고자 버텨낸 그녀들의 이야기, 끝내 역사가 되다 때는 1991년, 여행사 사장인 '정숙'(김희애)은 자신의 집에서 가사 일을 돕는 '정길'(김해숙)이 과거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갔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산 지역 여성경제인연합회의 일원으로 당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할머니들을 후원하던 '정숙'은 그들의 사연을 외면하지 못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 동참한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시모노세키(하관)와 부산을 오가며 공판에 참여해 '관부 재판'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해 최초이자 유일하게, 부분적으로나마 책임과 잘못을 인정한 사례다. (그러나 1998년 판결 이후, 2000년대 들어 이 판결은 번복되고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부는 경질되었다.) 여기까지는 조금만 자료를 찾아보면 알게 되는 내용이다. <귀향>을 비롯해 <눈길>, <어폴로지>, <아이 캔 스피크>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들이 겪은 일을 다룬 영화가 최근 여러 편 관객들을 만났다. 소재를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애국심에 기댄 채 정서에 호소하기도 했고 세대 간의 관계로 접근하기도 했으며, 유쾌한 휴먼 드라마의 톤으로 대중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미 이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나본 이들이라면 <허스토리>(2018)가, 제목에서도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헤아릴 만한 이 이야기가 무슨 새로운 가치가 있을지 반문할 만하다. 위안부 합의 파기 혹은 재검토 등 첨예한 이야기가 재기되기도 하면서도 점차 생존자가 줄어가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라면 '그녀들의 이야기'는 문제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부연하자면 '한국인이라면 봐야 할 영화' 같은 건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좋은 영화는 특정한 소재로도 능히 배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전달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스토리>는 대체로 민족적 정서나 감정에 열을 올리는 대신 1990년대 당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시작의 가치를 드높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지난 이야기 무엇 하러 들추냐며 핀잔할 때, 창피하지도 않느냐며 폄하할 때, 당시로서는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던 '정숙'이 겪는 물적, 심적 어려움은 관객이 기대할 승리와 반전의 쾌감보다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그것은 2018년, 지금도 그때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허스토리>는 승리의 드라마도 아니요, 반전의 쾌감을 주는 법정 영화도 아니며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적 서사도 아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반항적으로 툴툴대던, '정숙'의 딸 '혜수'(이설)가 수요집회에서 마이크를 쥐고 선 모습은 <허스토리>의 다른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정숙'에게서 딸 '혜수'에게로 목소리가 옮겨가는 순간, 영화는 뿌듯함과 감격의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는 동료들 곁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가만히 딸을 바라보는, 머리 희끗해진 '정숙'에게 잠시 시선을 둔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시대를 타고 사라지지 않고 흐른다는 이야기, 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 멋대로의 추측이지만 그렇다. 수 년 간의 단조로운 공판 과정보다 <허스토리>에서 눈에 띄는 건 상기의 모녀지간과 같은, 인물들의 관계다. '정숙'과 '혜수', '정길'과 아들, '귀순'(문숙)과 그녀의 옛 소학교 교사, '정숙'과 변호사 '상일'(김준한)의 관계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통해 공감, 이해, 화해, 응원, 그런 것들을 서로 나눈다. 사건 자체보다는 대화의 내용과 양상이 중요히 여겨지는 이 영화의 힘이다. 소재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차근차근 관계를 성장시켜 가는 것. 섣불리 앞서나가지 않고 아픈 현실을 직시하되 일말의 희망을 남겨둔 <허스토리>의 맺음이 마음에 든다. 실은 약간의 곁가지처럼 여겨졌던 맨 마지막 신을 제외하면 말이다. 중급 규모 이상의 한국 영화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성비의 캐스팅 앙상블 역시도 이 영화에 동하는 이유다. <허스토리> 속 처음의 목소리는 결말에 이르러 지금 여기, 오늘날 그것에 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비로소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전한다. 그녀들의 용기는 그렇게 역사가 되었고, 되고 있다. (★ 8/10점.) <허스토리>(Herstory, 2018), 민규동 2018년 6월 27일 개봉, 121분, 12세 관람가. 출연: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김선영, 김준한, 이설, 이유영 등. 제작: 수필름 제공/배급: NEW https://brunch.co.kr/@cosmos-j/300
라라랜드, 그 영화는 상영되지 않았다.
흡사 마법의 터치가 곳곳에서 꽃길을 내고 폭죽을 쏘며 샘물을 파는 것만 같다. 쓸쓸한 결말임에도 보고 나면 이상하게 행복감이 차오른다. 엠마 스톤은 한없이 사랑스럽고 라이언 고슬링은 더없이 뭉클하다. <라라랜드>는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신나는 공연장으로 만드는 첫장면이 지나간 후, 이 뮤지컬 영화는 마치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처럼 펼쳐지기 시작한다. 첫만남부터 으르렁거렸던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마주친 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려간다. 또한 전형적인 멜로처럼 두 남녀는 사랑의 봉우리에 오르고도 어느덧 세파에 밀려 서로에게 지쳐간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간추려진 스토리일까. 더구나 이건 안과 밖, 표층과 심층이 사뭇 달랐던 <위플래쉬>의 감독 데미언 채즐의 신작이 아닌가. 빠진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꿈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꿈과 사랑의 관계다. 둘은 각자의 세계와 불화하는 아웃사이더였다. 배우인 한 사람은 망설이며 주저앉는 게 문제고, 음악인인 다른 사람은 잘못된 자리에 가 있는 게 문제다. 중반까지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북돋아주는 사이였다. • 그러니까 이건 경적을 울려주는 자와 이름을 붙여주는 자의 사랑과 꿈이 어떻게 화합하거나 충돌하는지를 그려내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여자의 차는 교통체증으로 서 있거나, 견인되어 사라지거나, 주차되었지만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런 여자에게 길이 뚫렸으니 빨리 가라면서 처음부터 경적을 울리며 나타난 남자는 요소요소마다 경적을 울려대며 계속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남자가 속한 밴드명이 메신저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에게 경적과 함께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음악 스타일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지녔음에도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자꾸 엉뚱한 자리에서 원하지 않는 연주를 한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는 요소요소마다 이름을 붙여준다. 그를 조지 마이클이라고 부르고, 그가 운영하길 원하는 클럽명을 셉스라고 지어주며, 그가 연주해야 할 다음 곡명 'I ran'을 지정해준다. 남자에게 진짜 이름이 있고 지어둔 다른 클럽명이 있으며 예정 목록에 다른 노래가 있어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름이 붙여지게 되는 상황 자체가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 그렇게 경적을 울려주는 자는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이름을 붙여주는 자는 정체성을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사랑이 환상의 날개를 떼고 현실로 내려와 발을 내딛는 순간 꿈과 유리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사랑은 예술이 제공하는 허구의 환상에 늘 젖줄을 대고 있었다. 로맨스가 펼쳐질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첫키스 장면만 해도 그렇다. 뒤늦게 극장으로 달려간 여자가 스크린을 등진 채 객석에 있을 남자를 찾을 때, 여자의 몸은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는 <이유없는 반항> 장면과 겹쳐져 영화의 일부가 된다. 이어 객석에 나란히 앉은 두 연인은 서로의 입술을 찾지만 갑자기 필름이 타버리고 상영이 중단되는 바람에 키스가 유예된다. 그러자 잠시 민망해진 여자는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 그건 영화 속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디어였다. 두 사람은 차를 몰고 그리피스 천문대로 감으로써 <이유없는 반항>의 한 장면을 재연한다. 그리고 천문대의 돔형 상영관에서 재차 키스를 시도하지만 또다시 중단된다. 상영 레버를 작동할 때 썼던 손수건이 그들 사이로 날아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금, 그들이 먼저 해야 할 것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영화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부드럽게 하늘로 밀어올린다. (이 영화에서 하늘은 시종 꿈을 시각적으로 은유한다.) 뒤따라 올라가 영사된 은하수를 배경으로 함께 왈츠를 춘다. 그리고 마침내 음악과 춤이 끝나고 영화가 끝난 후에야 내려와 키스를 하는데 성공한다. • 먼저 영화가 끝나고, 환상이 끝나고, 꿈이 끝나야 비로소 키스를 할 수 있다. 그게 이 영화에서의 사랑이 처한 위치다. 극중 도시는 무척이나 로맨틱하게 보이지만 정작 연인들은 낭만적이기 이를 데 없는 2인무를 두 차례나 선보이면서도, 정작 춤이 펼쳐지는 두 공간 모두에 대해선 "경치가 별로"라고 굳이 말한다. 그러니까 멋진 것은 세상이나 현실이 아니라 그 위를 수놓는 예술이나 꿈이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 채색하는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한시적으로 그랬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둘은 그들 사랑에 매혹적인 정점을 찍었던 천문대를 올려다보다가 볼품 없는 광경에 실망감을 토로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낮에 온 건 처음이야." 그때 연인들은 밤의 판타지가 제거된 사랑의 앙상한 현실을 비로소 목도한다. 남자의 꿈은 타인들과의 관계를 반드시 필요로 하진 않는다. 맘에 맞는 동료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공연장을 순회하는 게 아니라, 사장이 되어 클럽을 직접 운영하며 원하는 음악을 맘껏 하고 싶어하니까. 그건 여자의 꿈 역시 마찬가지다. 손수 돈을 대서 공연장을 빌린 후 직접 쓴 극본에 따라 혼자 연기하는 일인극을 펼치고 싶어하니까.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각자의 홀로서기를 돕는 사랑이고,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둘보다 하나인 게 자연스러워지면서 소진된다. (예언처럼 다가오는 극 초반 장면에서, 남자의 충고에 따라 여자가 "이제 나도 오디션 집어치우고 역사를 쓸래요"라고 하자 남자는 말한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났네요.") 두 사람 간의 마지막 대화에서 남자는 여자가 파리에서 촬영할 영화 출연을 위한 오디션에 합격하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면서 "그게 네 꿈이잖아"라고 말한다. 그건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꿈에 대한 배려였고 격려였다. 하지만 그 말은 그게 내 꿈은 아니라는 뜻 역시 내포한다. 그러니 남자가 그 직후에 "난 여기 남아서 계획된 것을 할 거야"라고 덧붙인다고 해서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여자 역시 침묵으로 그 말을 수긍한다. • 둘은 함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둘보다 하나를 택했고, 사랑보다 꿈을 택했다. 같이 보낸 네 계절은 분명 달콤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은 지났다. •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보면 새드엔딩이지만, 꿈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결국 둘 모두 성공하게 되는 결말은 해피엔딩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영화가 아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다보면 관계는 망실된다고 암시하는 영화다. 선택이란 하나의 성취보다는 다른 하나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읊조리는 영화다. <위플래쉬>에 이어 음악영화를 계속 만들면서도 음악(꿈)과 삶(관계)을 구분 짓고 끝내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그려내는 데미언 채즐의 비관주의는 기이하고 아프다. 5년이 흐른다.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하늘이 그려진 커다란 천을 스태프들이 옮기는 이 영화 에필로그의 도입부는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그 사랑에 내내 활력을 부여했던 하늘은 허구였다. 그 사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된 여자는 배우 친구의 연극 무대를 보러 가다가 교통체증에 맞닥뜨리자 가볍게 계획을 바꿔 옆길로 샌다. (이전의 그녀는 길이 풀릴 때까지 계속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자신의 연극 무대에 오지 않았던 일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던 사람이었다.) 우연히 한 클럽에 남편과 함께 들어간 여자는 그곳의 이름이 셉스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발생할 수 있었던 그러나 끝내 존재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을 간절한 가정법으로 떠올린다. • 그 속에서 둘은 내내 함께였다. 하지만 가정법 형식 속에서조차 두 사람이 함께 가정을 꾸리는 모습은 둘이 보는 영화 속 장면들로 묘사된다. 다시 한 번, 영화가 끝나야 비로소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상영된 적이 없었다. 출처ㅣ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라라랜드” / 그 영화는 상영된 적 없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영화와 글입니다 :) 재개봉 기념으로 ( 지난 12/31부터 CGV에서 상영 중입니다 ! ) 가져왔는데 . . 극장에서 볼 수 없음에 눈물 한 방울 또륵 😢
영화 '트루 시크릿' 리뷰 : 새로운 자아로부터 시작된, 여러 개의 이야기들
어떤 영화는 그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하나 이상 더 있다. 영화 전체의 줄거리가 어떤 인물이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든지 하는 액자식의 구성을 갖춘 경우가 주로 그 예가 될 텐데, 지금 다룰 영화 <트루 시크릿>(2018) 역시 그렇다.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클레르 미요'는 불문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다. 아들이 둘 있지만 이혼을 했고 가벼운 관계로 만나는 남자 친구 '뤼도'(귀욤 고익스)가 있다. '클레르'는 최근 '뤼도'가 자신에게 소홀해졌다 느끼고 그의 근황을 살필 목적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다. 그런데 관건은 이 계정이 '클레르' 자신이 아니라 조카 '카티아'(마리-앙주 카스타)의 사진이 도용된 채로 만들어졌다는 것. 자신을 숨긴 채 '클라라'라는 이름으로 '뤼도'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주변인을 살피던 중 '뤼도'가 잠깐 언급한 사진작가 '알렉스'(프랑수아 시빌)의 계정에 들어간 '클레르'는, 사진들을 보다가 '좋아요'를 남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리고 이 이야기 안에 포함된 몇 개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시작된다. 단지 '뤼도'와 그 주변인을 염탐하기 위해 가공의 자아 '클라라'를 만들었던 '클레르'는, 우연한 페이스북 메시지로 시작된 '알렉스'와의 대화에서 점점 그에게 이끌린다. '알렉스' 역시 '클레르'가 만들어낸 '클라라'에게 이끌린다.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마침내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하고, 연인이나 다름없는 관계로 발전한다. 프랑스 영화인 <트루 시크릿>의 원제는 'Celle que vous croyez'인데, 대략 '당신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Who you think I am) 정도의 뜻이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이 제목으로 개봉했다) 국내 개봉용 제목인 '트루 시크릿'과 원제를 모두 살핀다면 영화가 남기는 질문에 대해 답을 어렴풋이 찾아나갈 수 있겠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클레르'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점. 이 영화는 소셜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맺는 인간관계의 허상을 들춰내기 위한 작품인가. 그렇다면 줄리엣 비노쉬의 출연작 중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논-픽션>(2018)이 크게는 종이책과 전자책을 소재로 현대인의 문화적 취향을 다룬 것처럼 <트루 시크릿>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한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인간의 비밀스러운 혹은 본연의 특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영화로도 볼 수 있다. <트루 시크릿>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클레르'의 이야기는 '클레르'가 심리학 박사인 '캐서린'(니콜 가르시아)을 찾아가 들려주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클레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선 '클라라'와 '알렉스' 사이에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여기엔 '클레르' 본인의 삶과 내면의 고백이 포함돼 있는 한편 '알렉스'와 '뤼도' 등 '클레르' 주변인의 이야기가 있다. 중간자의 입장에 있는 '캐서린'이 '클레르'가 들려주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도 살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이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클라라'와 '알렉스'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교류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나는가? 이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지는가? 이런 건 빙산의 일각이다. 소셜미디어 밖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클레르'는, '클라라'와 '알렉스', 그리고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소설 형태로 가공해 하나 더 만든다. <트루 시크릿>의 결말은 어쩌면 모호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클라라'와 '알렉스'가 주고받은 대화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클레르'가 만들어낸 새 자아 '클라라'는 과연 '클레르'와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클레르'가 '클라라'를 통해 '알렉스'에게 이끌리게 된 건 단지 내면의 욕망 때문이기만 할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 '클레르'는 '캐서린' 박사와 헤어지기 전 이렇게 말한다. "다시 무엇이든 가능하게 되었다는 게 안심이 되네요. 결말이 하나가 아니라는 게." 이제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관객 자신에게 달렸다. 이야기의 주체는 이제 당신이다. 10월 3일 국내 개봉, 102분, 청소년 관람불가. (★ 8/1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