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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일름보 레전드.jpg


배달의민족에서 나온 스티커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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줘도 고자질 쟁이 ㅋ ㅋ
흔히들 오지랖 이라하죠?
일름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자질 개웃기넼ㅋㅋㅋㅋㅋ
알바생이 쏜다는데 큰도둑이 될꺼라고 해고해라고? 넌 어떤놈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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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가능성을 말하는 기사가 뜨자: 한국의 에이스 따위 데려와봐야 써먹지 못한다. 다른 좋은 용병 데려와라. 입단 확정 기사 뜨자: 부상으로 못 뛸게 뻔한데 왜 데려왔냐. 쓰레기 같은 스태프들 첫 해외 진출이었고 하필 그게 일본 최하위권팀 출국전에 일본어 공부도 하고 기초체력운동도 열심히하겠다는 당시 기사  근데 막상 처음 간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분위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첫날 결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구나 생각했다함 2연승 후: 좀 하는거 같은데, 얼마나 가겠냐. 10연승 후: JT 경기는 일방적이라 재미없다. 15연승 후: 가끔 김연경 빼고 일본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뤄보자. 20연승 후: 김연경 상태로 승패가 결정되는 팀이 되버렸는데, 김연경 내년에 나가면 JT는 리그 꼴찌. 아이돌급 인기 ㅋㅋㅋㅋ 한국엔 한류 열풍이라고 뉴스에 나오기 시작하고 역시 섬국배구 컨텐츠... 굿즈도 잘팔림 25연승 후: 전승 우승이 보인다. 코드 밖인데 벌써 스포츠만화 시작이다 2년째 JT 탈퇴가 결정된 시즌: 제발 가지마. 결국 일본가기 전에 말한대로 최하위팀 JT마블러스을 2번(2009-2010 시즌 정규리그 우승·2010-2011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시켜버리고 돌아옴 일본선수들의 텃세 등을 실력으로 제압하고 최고 인기선수 + 팀 우승 시키고 덕후몰이 당시 연경신 찍으려고 배구코트 안밖에서 대기탔다함..... 이게 레알 만찢스토리... 하,, 진짜 전나게 멋있다.. 실력으로 다 뿌숴버리는 삶. 약간 스포츠 만화로 만들어도 너무 멋있어서 개연성 없다고 욕먹을 스토리. (ㅊㅊ - 여성시대 처음과 같이)
[퍼오는 공포썰]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와 얼마만이야 진짜 오랜만이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던 비가 그치고 해가 쨍하고 뜨니 또 이렇게 더울 수가. 이렇게 더울 때는 역시 무서운 이야기잖아!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왔어 ㅋㅋ 오랜만에 왔더니 거짓말처럼 어제 메시지 하나가 와있더라구 그래서 이건 @rudtjs1273 님에게 보내는 답장이기도 해 잘 지내요! 라고 말하면서 우리 오랜만에 다같이 무서운 이야기 보쟈 시작해볼까?! __________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신다. 이불을 젖히고 허물처럼 싸 맨 내 옷을 한 겹씩 벗겨낸다. - 뱀 처럼 요망한 년. 당신 말은 틀렸다. 내겐 뱀이 없다. 당신 눈에 뱀이 산다. 난 당신 눈꺼플에 물려 죽었다. 깜빡일 때 마다 푸른 독을 뿜던 당신의 홍채. 낙수로 돌을 뚫는다 했던가? 당신이 계속 노려보면 눈빛으로 뼈를 부술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 코에 삭풍이 분다. 난 당신 콧바람에 얼어 죽었다. 킁킁댈 때 마다 허연 서리를 내뿜던 당신 숨. 얼린 새끼 쥐 한마리 생명값이 400원이라 했던가? 당신이 계속 코를 벌렁대면 숨결로 살을 얼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 입에 날이 달렸다. 난 당신 혓바닥에 저미어 죽었다. 검은 구덩이를 드나들때마다 예리하게 갈리는 날. 세치 혀만큼 무서운 게 없다 했던가? 당신이 계속 핥아대면 내 몸으로 사시미를 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의 눈 코 입 또 날 만지던 손길 작은 손톱까지 다 당신의 모든 부위가 섬짓하다. 당신이 나를 눌러 엎어지면 압축기 사이 끼인 빈 깡통이 된 기분이었고, 당신 위에 내가 올라타 앉으면 깨진 유리 조각들을 잔뜩 박아 넣은 콘크리트 담 위에 뒹구는 느낌이었다. 나는 당신 위에서 아래에서, 물려서 얼어서 베여서, 매일 매 순간, 죽었다. 나는 자라지 말았어야 했나보다. 여물기 전 내 육체는 당신에게 고결했는데. 당신은 눈에 나를 담았고 당신 코로 내 볼을 부볐고 당신 입에서 나는 소리는 날 웃게 했었다. 그런 당신이 언제부터 날. 그런 당신이 무엇때문에. 내 유년의 당신은 따스했는데. 욕망은 불현듯 당신을 사로잡은걸까? 아님, 본래 당신 안에 있던 욕망이 여무는 내 몸 보며 서서히 커져간걸까? 나의 눈 코 입 또 온 몸을 때타월로 벅벅 밀고 성긴 손톱으로 피부겹을 긁어내며 당신이 방에 들어올 긴 밤을 생각한다. 내겐 더 이상 여력이 없다. 욕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끈을 줍다가 당신이 떨구고 잊었을 면도날을 발견한다. 나는 면도날을 삼켜 온 장기가 난자당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알 수 없는 짜릿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당신 눈 아래에서 삼키리라. 당신 코에 피 냄새를 풍기리라. 그리하여, 당신 입에서 절규를 듣게 되리라. 나는 당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일테니. 나는 입 안에 면도날을 품고 욕실 문을 연다. 한 겹 허물 걸치지 않은 허연 육체 그대로. 누워 담배를 피우던 당신 눈에 뱀이 기어오른다.  - 바로 들어와라.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나는 기꺼운 맘으로 당신을 따른다. 당신은 내 머리채를 잡아 그것을 내 입에 욱여넣는다. 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 삼키지 못한 면도날이 아직 입 안에 있다. 내 존재가 시작된 통로에서 존재의 종말을 맛본다. 당신 위에 불뚝 솟은 나의 고향. 정액과 타액이 흐르던 땅 깊숙히 면도날을 박아 씹는다. 본래 내가 보려던 건 당신 피 맛이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다. 사람 손에 길러진 서커스 사자가 처음 산 것의 피 맛을 보았을 때 처럼, 말뚝에 매여 자란 코끼리가 우연히 제 힘으로 그것을 뽑아낼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 처럼, 나는 미쳐 날 뛰었다. 분노가 불현듯 나를 사로잡은걸까? 본래 내 안에 있던 분노를 서서히 키워온걸까? 자지를 붙잡고 자지러지는 당신 뒤를 덮쳐 브라를 당신 목에 둘러 맨다. 조를수록 쪼그라드는 당신이 느껴진다. 당신이 쪼그라들수록 내 온 몸 신경이 조여온다. 당신이 내게 오르가즘을 선사할 줄 꿈에도 몰랐는데. 당신 눈에 뱀이 동면을 취한다. 당신 코에 삭풍이 미풍이 된다. 당신 입에 날이 녹슨다. 나는 축 늘어진 당신을 내려다본다. 다락 창고를 열어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본다. 톱과 망치, 하우스비닐과 마스크, 장갑, 먼지 앉은 커다란 캐리어. 당신은 이제 부위로 불리운다. 몸에서 몸과 손. 몸과 손에서, 몸과 손과 팔뚝. 몸과 손과 팔뚝에서, 몸과 손과 팔뚝과 발. 몸조차 몸을 나누는 것들과 속의 여러 부위로 명칭이 갈리고, 불어난 부위들이 가방을 가득 채운다. 붉은 방 한가운데 가장이 든 가방 하나 우뚝 섰다. 그 안에 모든 당신이 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출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부제 : 눈 코 입) ____________________ 섬찟하고 쓸쓸하고 씁쓸하고 슬픈 이야기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해봤어 곧 너무 늦지 않게 또 올게 기다려줘!
태종 이방원만 나왔다면 사극이 재밌는 이유 (서사부터 불꽃같은 남자 ㄷㄷ)
태종 이방원 (드라마 나의나라에서 이방원 역 맡았던 장혁) 17세의 나이로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한 존나 엘리트 특히 대대로 무인집안인 이성계 집안에서 유일하게 과거에 붙은 초초엘리트 지능캐 (여기서부터 설정 끝남) 고려말 조선초 굵직한 사건에 대부분 관여했고 조선건국 1등공신 정치력 쩌는 야망충 킬방원이라 부를정도로 숙청과정에서 비정함을 보여줬으나 왕권강화라는 측면에서 이해가는 숙청이라는 반응도 있어서 까빠들끼리 토론할거리도 넘치는 캐릭터 심지어 아빠는 전쟁의 신 이성계 (수군의 전설이 이순신이라면 육군의 전설은 이성계라는 말이 있음) 아들은 우리나라 역대 넘버원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대왕 젊은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할얘기가 많아도 너무 많은 캐릭터 또 조선에서 즉위와 선위 각각 자신의 의지로 한 거의 유일한 왕이 이방원, 태종. 형제나 가신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었지만 역사상 역대급 아들바보였던 태종 이방원의 숨겨진 면모 대표적인 예로 태종은 조선 역사상 최고 성군인 세종의 아버지. 자기 아들 세종이 정치에만 매진할 수 있게 모든 환경을 조성해줌. 체제정비해서 왕권강화하고 처갓집 식구들이랑 사돈네 몽둥이찜질 해서 외척 없애고 악역을 자처하며 아들을 위해 희생함 권력 정점에서 살아있을 때 다음 후계자에게 권력 넘겨준게 거의 세계 역사에 없을 일이라고 함. 태종 이방원이 세종을 세자에 책봉하고 선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두달 양녕을 폐하고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선위를 통한 왕위계승을 하기로 마음을 먹음 세자 책봉 후, 한달만에 육대언들에게 선위 의사 표시 육대언들이 반대하자 한 말 '그 뜻을 드러내지 말라' 세자 책봉 후, 두달만에 세종에게 국보 전달 '호랑이를 18년동안 탔으니 그걸로 족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린 이도, 세종대왕 역을 맡았던 송중기) 그리고 그 두달 동안의 준비기간에 태종이 한 여러가지 일 중 눈길을 끄는 몇가지 1. 백성을 괴롭게 한다고 몇번 미뤄뒀던 토목 공사를 시작 '토목 공사는 백성을 괴롭게 하는 일이나 필요하다. 나 때에 끝내어 세자는 민심을 얻게 할 것이다' 훗날에도 한 말 '괴로움은 내가 감당하고 주상에게는 편한 것으로 내려주겠다' 2. 신분이 미천한 인재가 세자를 만나게 하는 것을 막지 말라 '양녕과 달리 세종은 게으르지도 않고 학문을 사랑하여 양녕과 같이 보호,단속할 필요가 없다. 세자에게 깊이 인심을 얻게 할 것이다. 전규에 얽메여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지마라. 세자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인재가 있다면 초야의 미천한 신분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하라' 태종이 넘겨준 인재들 중 황희. 장영실. 박자청. 김인. 윤득홍. 전흥. 하영 등은 모두 얼자 출신이거나 노비 출신 태종 픽으로 시작하여 세종 시대 오랜 기간 활약한 인재들 3. 세종의 장점은 뽐낼 자리 마련하고 아직 경험이 없는 분야는 자신을 보조하게 함 서연에서 세종의 학문에 대한 사랑을 널리 늘어놓은 후 10일 뒤 바로 세자의 첫 서연 자리를 마련했지만 군사지휘에 있어선 세자의 경호를 강화하고 의용위를 새로 설치하여 감무(왕을 도와 직무를 봄)하게 함. 후에 선위하고도 병권은 태종이 잡고 있지만 일은 태종이 하되 병조의 신하들 역시 두명을 제외하곤 전부 세종의 조회에 참석하게 하는 등 세종에게 힘을 실어줌 태종이 상왕이 된 후, 의식대로 병조의 조회를 받은 것은 단 한번 '주상이 어려 아직 군무에 경험이 없어 내가 잠시 맡고 있는 것이나 경험이 쌓이면 넘겨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주상에게 군무에 대해 경험을 주었다면 어찌 주상이 지금껏 못하겠는가? 다만 동궁에 양녕이 있어 경험을 쌓게 하지 못했다' 태종이 상왕으로 있은 것은 총 4년 선위 직후, 군권은 내가 관리하고 국가의 중대사는 가신의 하나로 같이 참여하겠다 선언했으나 2년이 지난쯤엔 내가 늙었으니 얼른 세종이 정사를 다 보는 것이 효도다 언급하기도 그외 어록들 4. 세종은 비대하니 내가 끌고다니며 사냥을 하겠다(?) 5. 세종은 어진 왕이 될 것이다. 성심성의껏 보좌하라 주나라의 문왕같은 왕이 될 것이다(유교에서 가장 칭송받는 왕) 문화와 태평을 지킬 왕이다 6.우리 부자 간과 같은 일은 역대로 없었는데 작은아버지에게 자랑 못하는 것이 한이다 7.흉년이 왔으니 방물과 전은 세종한테만 올려라 8. 세종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 주상이 안움직이면 안움직일 것이고 움직이면 움직일 것이다 9. 심히 사랑하노라 10. 주상이 번거로운 것은 아나 항상 보고싶어 부른 것이니 비난하는 신하들이 있어도 어쩔수없다 11. 정종의 승하로 육식을 끊자 수척해지는 것 역시 불효이니 고기를 먹어라 12. 자식이 왕이 되어, 그 아비가 되어 누리게 되니 너무 행복하다( 왕의 아들이자 왕이셨던 분이..?) 이리 효심이 넘치니 근심이 없다 13. 원래도 너가 현명한줄은 알고 있었으나 훨씬 잘해나가는구나 14. 나라를 맡김에 이토록 사람을 잘 얻었으니 나같이 걱정없이 노닐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 것이다. 역대에 중국에서도 부자간의 사이가 진실로 이런 경우는 없었고 고려에서도 부자간의 사이에 비평할 만한 것이 있었는데 나같은 경우는 천하에 없었는듯 하여 행복하다. 15. 매일 보고싶지만 참는다 16. 또한 주상은 힘드니 매일 오지 말라 17. 왕후를 간병하는 세종에게 대비의 병이 걱정되나 끼니를 잘 챙겨먹어 늙은 나에게 효도하라 안먹으려는 세종에게 같이 식사하게 함 18. 주상같은 임금은 얻기 어려우니 슬픔에 몸이 상하지 않게 잘 보필해라 (자매품 내가 죽어도 고기는 먹여라도 있음) 19. 어릴때부터 고기없이는 밥을 먹지 못했는데 초상 후에 고기를 이리 오래 끊다니 어찌 안이쁘겠는가 (그래도 몸 상하지 않게 먹여라) 20. 내가 여러날 어디 놀러가면 내 생각이 날텐데 어찌하나 "이 애비가 모든 악업을 지고 갈테니 주상은 성군이 되시오" (ㄷㄷㄷ)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 맡았던 유동근) +그외 백성에게도 따뜻했던 태종 이방원 일화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4월 18일 경인 2번째기사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시골 사람 손귀생이 창덕궁을 구경하고 광연루까지 들어와 구금되었으나 석방하다국역원문.원본 보기 손귀생(孫貴生) 등 두 사람을 석방하도록 명하였다. 손귀생 등은 시골 사람인데, 창덕궁(昌德宮)을 구경하고 들어와서 광연루(廣延樓)의 못 아래에 이르렀었다. 순금사(巡禁司)에서 장(杖) 80 대로 조율(照律)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이들은 무지한 시골 사람이니 방면(放免)하는 것이 옳다. 예전에 조서(趙敍)가 대언(代言)이 되었을 때, 시골 선비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숙직하고 이른 아침에 내 보냈었는데, 그 사람이 갈 길을 잃어서 곧바로 침전(寢殿)의 뜰안으로 들어왔었다. 궁인(宮人)들이 놀라서 꾸짖으니, 대답하기를, ‘나가려고 한 것뿐입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는 무지한 자이다. 좌우(左右)에서 들으면 반드시 법대로 처치하도록 청할 것이니, 빨리 놓아보내서 가게 하고, 이 말을 드러내지 말도록 하라.’고 하였었는데, 바로 이와 똑같은 일이다." [요약본] 시골 사람이 서울 올라와 구경하다 창덕궁 들어옴. 우왕 굿,, 하면서 돌아보다 경비에 걸림 - 근데 정문은 안 지켰나??? 장 80대 때리자 - 이거 죽으란 것임. 성인도 10대 맞으면 골병들었다던 장. 60대면 초죽음. 태종에게 아뢰니 쿨하게 보내줘라,,, 예전에 숙직하던 관원이 지 지인 들여보내 궁궐 구경시킨 일이 있다. 그때도 몰래 보내줬다. 해할 마음 없이 진귀한 궁궐 구경하고 싶어 들어온 무지랭이를 그렇게 심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나? 하고 보내줌. 권신에게 칼 같아도, 일반백성에게 어느정도 따뜻했던 태종.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 역 맡았던 유아인) 피도 많이 보고. 자기 사람은 끔찍히 아끼기도 하고.. 참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인듯.. 서사에 나오기만 하면 흥미진진한 이유가 있었네... 흥미로워서 가져옴... (ㅊㅊ -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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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티베트 만행
이 사건을 설명하려면 우선 티베트불교의 환생과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의 관계, 중국과 티베트에 대해 설명해야함 1. 티베트에서는 모든사람이 환생한다고 믿음 2. 티베트불교의 몇 고승들은 환생을 찾아 지위를 이어감 3. 판첸라마와 달라이라마는 현재 11대, 14대째 환생자임 4. 중국은 티베트지역을 봉쇄하고 티베트승려들을 탄압중 환생이라는게 우리한테는 흠..스럽지만 암튼 저쪽지역에서는 쭉 이어져온 세계관(?)이라 하니 뭐 걍.. 그런갑다..하고 읽으면 사건이 이해가됨 이 사람은 티베트 불교서열 1인자 13대 달라이라마임. 중국과 티베트가 영토분쟁 중이던 1933년에 죽음 티베트 불교계의 서열 2인자인 판첸라마가 달라이라마의 환생자를 찾고, 공인하고, 교육하는 임무를 맡고 있음 이에 따라 9대 판첸라마가 현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아서 교육했음 이사람이 9대 판첸라마임 ↓ 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는 2년후 티베트 국경지역 농민의 아들로 태어남 그리고 네 살의 나이에 티베트 국왕에 즉위함 아래 막 찾았을당시 아기 달라이라마 우리가 아는 얼굴은 이거일거임 1937년에 9대 판첸라마가 급사하고 14대 달라이라마가 10대 판첸라마를 찾아서 교육함 50년대에 같이 찍은 사진임 왼쪽이 10대판첸, 오른쪽이 14대달라이 이 10대 판첸라마는 1989년에 죽음 10대 판첸라마가 죽었기 때문에 11대 판첸라마를 찾아야 했고 달라이라마와 판첸의 제자들이 수년동안 환생자를 찾아다닌 끝에 1995년 한 티베트 마을에서 6세의 소년 '게둔 최끼 니마'를 판첸라마의 환생자로 확인하고 공표함 얘가 게둔 최끼 니마임↓ 환생자를 찾고나면 일정한 의식을 거쳐 즉위식을 한 후 대대로 판첸라마가 주지로 있던 타쉬룬포 사원의 주지가 되어야함 그러한 절차를 남겨놓고 있었는데.. 여기서 짚고 가야할것이 타쉬룬포 사원은 현재 중국에 속해있음 환생자를 찾았다고 공표한지 3일만에 중국 정부가 이 소년과 가족들을 납치함ㅋ 그리고 자기들이 진짜 판첸라마를 찾았다면서 기알첸 노르부라는 애를 11대 판첸라마라고 마음대로 앉힘ㅋㅋ ↓기알첸 노르부 즉위식 참고로 이 애의 부모는 공산당원이었음 그리고 이 아이는 사원의 주지스님으로 중국의 비호 아래 자랐고 성인이 되고나서 아래처럼 중국인민정치위원이됨 ㄷㄷㄷ 이런 상황이 당연히 문제일 수 밖에 없는게, 리얼 판첸라마의 환생자를 찾고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4대 달라이 라마 사후 환생한 15대 달라이 라마를 찾아서 공인할 자격은 판첸라마에게 밖에 주어지지 않았음 현 달라이라마는 알다시피 언제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임 중국은 이 점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내세운 판첸라마를 이용해 후대 달라이 라마 역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인물로 내세우려는 것..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독일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환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침 (오래된 전통을 끝낼수도 있다) 그러자 중국이 노발대발함ㅋㅋㅋㅋ "왜 니맘대로 환생 안한다고함? 너 환생해야됨ㅋㅋ 니맘대로 정하지마" 라고함ㅋㅋㅋㅋㅋㅋㅋㅋ 미신같은거라면서 티베트불교를 탄압하던 중국정부가 달라이라마보고 환생하라고 윽박지르는 상황이됨ㅋㅋㅋㅋ 아래는 2011년 유툽에 올라온 티베트 잠입취재인데 티베트지역에 들어가면 폰이안터지고 인터넷도 안되며 외국인은 출입금지임 저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있음 중국정부는 중국에 반대하는 승려들을 다 죽이거나 강제로 파계시키고 (강제로 남승과 여승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관계를 맺게해서 스스로 파계하게 만들거나 자살하게 만들기도 함 개막장임) 친중국성향 승려들로 그 자리를 채워넣고있음 현재 티베트지역은 이주 한인들이 기득권을 차지해버렸고 경제난속에 회유당한 티베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 이러한 상황이라 달라이 라마가 죽고나면 지도자를 잃은 티베트의 독립은 정말로 힘든 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 참고로 중국정부에 의해 납치된 게둔최끼니마는 아직까지 행방이 불분명함 중국정부가 몇년전에 "우리의 보호아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며 부모는 당에 고용되었고 아이의 형제자매는 대학에 다니고 있음^^" 이라고 말했지만 진실은 알 수 없음 ㄷㄷㄷ 이종격투기카페 펌
생존을 위해 식인을 했던 사례들 ㄷㄷㄷ
만일 너희들이 아사 직전의 극한 상황에 몰린다면 끝까지 이성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이때 식인(cannibalism)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극단적인 생존 방법이야 물론 그 선택은 당하는 사람이나 행하는 사람이나 의심할 바 없는 엄청난 비극이지 자 그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식량으로 삼았던 몇가지 사례들을 알아보자 맥퀴리 하버 탈출 사건 (macquarie harbour) 1820년대 초, 영국의 감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영국정부는 좀도둑부터 살인마까지 다양한 죄질의 범좌자들을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 남부 해안의 섬, 타스메니아(Tasmania)로 이동시켰어 지도 남쪽을 보면 주황색으로 칠해진 'TASMANIA' 라는 섬이 보이지? 바로 저기야 특히나 살인과 같이 죄질이 나쁜 죄수들은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시킨 맥쿼리 하버로 보내져 수년간 고된 노역을 해야 했지 이곳에서의 노역 생활은 악명이 자자했는데 죄수들은 차라리 교수형 당하는 것이 낫다 생각할 정도였다고 해 덕분에 몇몇 죄수들이 동료 죄수를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어 1822년 9월, 공동 작업에 동원된 8명의 죄수들은 고된 노역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기로 결심해 그들은 간수를 뒤에서 덮친 후 나무에 묶고 약간의 식량과 도끼 하나만을 들고 도주하지 탈출한 8명은 배를 훔쳐타고 아시아쪽이나 남미로 가려고 했어 죄수들은 배를 훔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탈출 사실은 바로 들통나면서 간수들에게 알려졌고 결국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항구가 폐쇄당하고 말지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수정해 숲이 울창한 미개척지를 지나 육지의 다른 거주지로 향했어 육지로의 탈출을 감행한 죄수들은 여태 꽤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그 중 단 한번도 성공한 탈옥은 없었다고 해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죄수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다른 방안은 없었어  핑크색 화살표 보이지? 저게 죄수들이 이동한 경로야 왼쪽에 항구라고 적혀있는 곳이 맥쿼리 하버고 쨋든 그들이 가는 길목에 위치한 100km에 달하는 가파른 산맥에는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고 해 시간이 지나면서 8명의 죄수 중 로버트 그린힐이란 죄수가 무리의 리더가 되었지 그린힐은 선원 출신이었어서 태양과 별로 방향을 가늠할 줄 알았고 유일한 무기였던 도끼를 가지고 있던 자였어 탈출을 감행한지 8일째 그들은 완전히 기아상태가 되었지 앞서가던 5명의 죄수들은 체력이 약해서 자꾸 뒤쳐지기만 하던 3명을 귀찮게 여겼고 결국 무리는 강한 쪽과 약한 쪽 두 무리로 나뉘게 돼 리더인 그린힐과 그의 친구였던 트레버스, 보든햄, 매더스, 피어스가 한 무리를 이뤘고 달튼, 캐널리, 브라운이 또 다른 한 무리를 이루었지 밤이 되자 두 무리가 따로 불을 피우고 잠을 청했어 그때 리더인 그린힐이 자신의 무리에게 소름끼치는 제안을 했어 선원이었던 그린힐은 선원의 관습을 예로 들며 얘기를 꺼냈지 선원들의 관습이란 생존이 어려울 시 최후의 수단으로 제비뽑기를 해서 선택된 한 명을 먹고 나머지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거였어 절박했던 그린힐의 무리는 전원이 찬성하지 하지만 그들은 제비뽑기로 희생자를 정하는 대신 약한 3명의 무리에서 그들의 희생자로 골랐어 희생자로 선택된 인물은 달튼이었어 선택의 이유는 죄수 캠프에서 달튼이 규율을 어긴 동료 죄수들을 간수 대신 채찍질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지 약한 무리의 3명이 모두 잠들자 그린힐은 달튼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쳤어 죽은 달튼의 시체는 농부 출신인 트레버스가 양을 도살해본 경험으로 손질했지 다들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었지만 그날 밤 달튼의 살점을 먹은 사람은 그린힐과 트레버스뿐이었어 하지만 아침이 되자 고기 냄새에 이성을 잃은 나머지 죄수들도 달튼의 살점을 먹었어 배를 채운 죄수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어 죽은 달튼과 같은 무리였던 브라운과 케널리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고 앞의 5명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다시 맥쿼리 하버로 돌아갔어 다음 희생자는 자신들이 될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린힐의 무리는 한참 후에야 2명이 없어진 것을 알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생존 게임에는 큰 차질이 생겼어 5명의 죄수들은 한 번의 살인으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무리 중 또 다른 누군가가 죽게 되리란걸 알게 됐지 5일 후 고기가 바닥나자 다음 희생자를 정할 때가 왔고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어 결국 제비뽑기를 했고 당첨자는 보든햄이 됐어 보든햄은 그 즉시 도살당했고 나머지는 그의 살로 굶주린 배를 채웠지 이제 남은 사람은 4명뿐이었어  4명의 관계를 살펴보면 도끼를 가진 그린힐과 그의 친구 트레버스가 무리 중 우위였고 나머지 매더스와 피어스가 약자였지 시간이 지나면서 굶주림이 다시 그들을 덮쳤고 어느덧 다음 희생자를 정할 때가 왔어 신변에 위협을 느낀 매더스는 피어스에게 둘이서 그린힐과 트레버스를 덮쳐 도끼를 빼앗자고 제안했어 하지만 피어스가 택한 건 강한 쪽이었어 피어스의 배신으로 매더스는 그들의 식사거리가 되었지 이제 친구 사이인 그린힐과 트레버스, 외톨이인 피어스 이렇게 세 사람이 남게 된다 누가 봐도 다음 차례는 피어스였지 트레버스에게 불행한 사고가 닥치기 전까진 말이야 숲에서 트레버스가 독사에 발목을 물린거야 그린힐은 그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트레버스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물린 부위는 썩기 시작했지 가망이 없음을 직감한 트레버스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어 결국 트레버스가 다음 희생자가 됐어 마침내 두 명만 남게 되었어 그린힐과 피어스 사이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어 언제든 상대방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둘은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맹세했지만 그게 지켜지지 않으리라는건 둘 다 알고 있었겠지 때문에 둘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이제 누가 오랫동안 안 자고 버티냐의 싸움이 시작된거지 그들은 삼일 밤낮을 꼬박 샌 채로 계속 걸었어 상황은 극으로 치달았지만 죽지 않으려면 견디는 수 밖에 없었지 4일째가 되던 오후 결국 잠이 든 쪽은 그린힐이었어 그린힐이 잠들자 피어스는 곧바로 도끼를 집어들고 그의 머리를 쳐버렸지 이로써 알렌산더 피어스가 유일한 생존자가 됬어 피어스는 그린힐의 고기를 먹고 일주일을 더 걸어 탈출 50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어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 그는 다시 붙잡히는데 피어스에게 숲에서 일어난 식인에 대해 들은 간수들은 처음엔 이를 믿지 않았어 기독교를 믿는 영국인이 식인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간수들은 피어스가 나머지 죄수들이 추적을 피해 달아날 수 있도록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어 피어스는 다시 맥쿼리 하버로 이송됐고 다른 죄수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어 그 중 젊은 청년이었던 토마스 콕스란 놈이 재탈출하자고 피어스를 꼬드겨 지옥을 경험했던 피어스로는 처음엔 내키지 않아 했으나 결국 탈출에 동의했지 육로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단걸 알고 있던 피어스는 이번엔 킹 리버를 헤엄쳐 건너기로 했어 그런데 5일간 걸어 킹 리버에 도착해 강에 뛰어드는 순간 킹 콕스가 갑자기 수영할 줄 모른다고 하는거야 개빡친 피어스는 변명을 늘어놓는 콕스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 피어스는 콕스의 허벅다리와 종아리 살을 챙겨들곤 그 자리를 떠났지 그렇게 2~3일 가다 보니 후회가 엄습해왔고 피어스는 해안가에 맥쿼리 하버를 오가던 배를 붙잡고 자수를 해버렸어 따라서 피어스가 유죄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지 1824년 7월 19일 알렉산더 피어스는 식인 행위로 교수행에 처해졌어 미뇨넷호 난파 사건 (mignonette ship) 1884년 여름 미뇨넷호 4명의 선원들은 요트 한 척을 본국인 영국에서 호주의 새 주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어 미뇨넷호에는 경험 많은 경주용 요트 조타수인 선장 탐 더들리랑 역시 경험 풍부한 선원 네드 브룩스 항해 담당 에드윈 스티븐스, 처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잔심부름꾼 리처드 파커가 승선해있었지 미뇨넷호는 14년 전에 만들어진 꽤나 오래된 배였고 상태는 아주 개판이었어 19세기에는 배들이 부실했기에 선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직업이었대 미뇨넷호가 침몰한 1884년만 해도 550여척의 영국 배가 침몰했다고 해 항해를 시작한지 7일 후인 7월 2일, 풍랑을 만나자 미뇨넷호는 어찌해 볼 새도 없이 침몰해버렸어 다행히 더글리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무사히 소형 보트에 옮겨탔지만 그대로 대서양을 표류하게 된거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통조림 2개, 나이프 하나, 경도 측정 시계뿐 마실 물조차 없었다고 해 배가 난파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세인트 헬레나'와 '트리스탄 드 코나'라는 곳으로 각각 북쪽과 남쪽 1200km 지점에 있었고 희망봉은 동쪽으로 2600km, 남미는 서쪽으로 3200km나 떨어져 있었어 빨간 점 보이지? 저게 그들이 난파된 지점이야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희망봉을 지나는 배들의 항로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지 표류한지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심한 갈증이 찾아왔어 통조림이랑 빗물, 바다거북따위로 잠깐 동안은 이를 견뎠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나니까 그들은 허기와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했지 표류한지 일주일 쯤 되었을까 갈증이 최고조에 다다랐고 항해가 처음이었던 파커는 목마름에 바닷물이라도 마시려 했어 선장인 더글리는 바닷물이 탈수증을 초래하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를 저지했지 더글리는 빨리 구조되지 못하면 선원관습에 따라 제비뽑기로 희생자를 골라 인육이라도 먹어야 될 거라고 생각했어 더글리는 이를 선원들에게 말했고 다들 망설이는데 브룩스가 격하게 반발했어 결정은 유보되었고 표류한지 3주 가량이 지난 7월 20일 밤 파커는 갈증을 못참고 바닷물을 마셨어 아침에 잠에서 깬 동료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파커를 보게 되지 파커가 죽으면 혈액이 응고되서 마실 피가 없어질거라 판단한 선원들은 결단을 내려야 했어 반발하던 브룩스에게 더글리는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라고 했대 파커만 빼고 모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거든 이 사람이 리처드 파커야 모두가 동의한 가운데 더들리가 파커의 목을 찌르고 그 피를 통에 담았지 더들리와 스티븐스, 맹렬히 반발하던 브룩스도 갈증을 못이기고 파커의 피를 허겁지겁 마시게 되었어 세 사람은 파커의 피로 목을 축인 후 살을 발라 날것으로 먹었고 남은 살점은 햇볕에 말렸어 작은 보트 안은 피와 살점들로 난자했어 위 사진의 배가 실제로 1884년 미뇨넷호 선원들이 탔던 구명보트야 그로부터 4일이 지났고 남은 고기는 거의 부패한데다 피는 상했어 7월 24일 또 한명의 희생자가 필요해진 순간 기적적으로 그들 눈 앞에 독일 배 한 척이 나타났어 그들은 다행히 구조되었고 2주간을 먹고 자기만 했다고 해 체력이 어느정도 회복되자 더들리 선장은 독일인 선장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상황을 털어놓았지 더들리는 동료를 죽이고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어 한 명을 희생해 나머지 3명을 살렸기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거지 얘가 토마스 더들리다 구조된 지 3개월이 지난 후 미뇨넷호 생존자들은 본국인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미뇨넷호의 주인에게 모든걸 털어놨어 더들리는 이걸 이유로 소송 당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나봐 결국 세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고 그들은 분노했지 선장이었던 더들리 입장에서는 선원 대부분을 살렸기 때문에 체포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봤는데 영국 정부는 아무리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식인은 용납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라고 규정지었어 당시 영토를 확장 중이던 대영 제국은 원주민들이 야만적이라 구원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있었거든 그에 대한 증거로 원주민들이 식인을 한다고 주장한거지 때문에 영국 선원이 식인을 했다는 사실은 정부 입장에선 영토 확장에 문젯거리가 되었던 셈이지 영국 정부는 선원 관습을 금지하기 위한 선례로 삼으려고 미뇨넷호 선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려고 했어 그들을 기소하기 위해 검찰은 살인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던 브룩스를 검찰 측 증인으로 세워 브룩스는 증인을 해주고 기소를 면할 수 있었지만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리처드 파커에 대한 살인죄로 법정에 서게 돼 하지만 당시 여론은 선원들의 편이었지 이렇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림 1884년 11월 배심원들은 더들리와 스티븐스에게 동정적이었기때문에 무죄를 결정해 하지만 판사는 이를 무효화시키고 특별법을 이용해 자신에게 전권을 넘기도록 압력을 행사했어 결국 재판에서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어 하지만 선원들의 관습에 제재를 가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영국 정부는 수감 6개월만에 두 사람을 석방했어 당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더들리는 이런 말을 했대 " 이것으로 선원들의 관습을 금지시킨 줄 알겠지만 진실을 감추게 됐을 뿐이다. 조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관습을 따르되, 구조된 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 증언을 했던 브룩스는 떠돌이 서커스단에 스카우트되었어 서커스단에서 브룩스는 식인마로 분장하고 관객들 앞에서 날고기를 씹어댔지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결국 궁핍한 삶을 살다 죽었어 불행하긴 스티븐스도 마찬가지였지 그는 당시의 충격으로 다신 배를 타지 못했고 브룩스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어 더들리는 호주에서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페스트로 사망한 최초의 호주인이 되었다고 해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 조난사고 1972년 10월 13일 금요일 우루과이 공군의 쌍발 터보 프로펠러기인 페어차일드 FH-227D는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스텔라 마리스 대학의 럭비 선수단을 싣고 칠레의 산티아고를 향해 안데스 산맥을 거치는 항로를 비행하고 있었어 페어차일드는 칼라스코 국제공항에서 출발했지만 출발 전날인 10월 12일부터 산맥상공의 날씨로 인해 아르헨티나 멘도사 부근에 착지해 있었다고 해 이게 그 페어차일드임 왼쪽에 산티아고 보이지? 저기로 이어지는 선이 본래 예상경로이고 굵은 선은 실제로 항해한 경로, X는 추락 지점이다 추락 후 동체만 남은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하 40도의 극한 환경에서 72일간을 생존해야 했어 사고 당시 사망 12명 행불 5명으로 생존자는 총 28명이었지 구조대가 오길 기다렸지만 정작 구조대는 2주간의 수색 동안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자 이들이 죽었다고 단정지어 버려 이틀 후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찾는 구조 비행기가 지나가는걸 목격하게 돼 그 중 한 비행기가 좌 우로 흔들어대며 신호를 보냈다는데 이걸 목격한 생존자들은 구조대가 자기들을 봤다가 착각을 하지 결국 생존자 중 하나가 구조대가 곧 올거라며 그동안 모아두었던 식량 대부분을 먹어치웠어 하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어 수색대를 만들어 비행기 잔해로부터 약간의 식량을 찾았지만 그들이 모두 먹기엔 부족했지 그러던 중 탑승객이었던 의사 두 명이 식인을 하자고 주장해 생존을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고 최고의 단백질은 자신들이 매장한 시체로 섭취할 수 있다고 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먹어도 좋다며 설득해 탑승한 럭비팀의 이름이 'Old Christians'이었던 만큼 탑승객 대부분은 카톨릭 신자들이었어  이들은 계기판에 몸이 끼어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던 조종사가 권총으로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종교적 신념으로 거절했던 아주 독실한 신자들이었던거지 거기다 이들이 꺼내 먹어야 했을 시체들은 다름 아닌 친구, 형제, 부모였다고 해 하지만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들은 결국 시체에 손을 대지 구조대에 대한 희망이 점차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건장한 몇몇 생존자를 뽑아 안데스를 넘어 칠레로 구조 요청을 보내기로 했어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지만 재차 시도하여 결국 칠레 진입에 성공해 그들은 20km나 되는 눈밭을 뚫고 지나간거지 다행히 한 농부를 발견하여 구조 요청을 하고 나머지 생존자들도 결국 구조되는데 성공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6명의 생존자들 1줄 요약 인간은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살기위해서 윤리고 나발이고 사람도 잡아먹음 끝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퍼오는 귀신썰) 아무도 믿지 못 할 그때의 이야기
안녕! 다들 뭐하고 지내? 이야기 많이 나눠주던 사람들 다 어딜 갔는지 궁금하구만 이제 그때만큼 자주 와주지는 않는 것 같지만(물론 나도) 그래도 가끔 와서 이야기 읽고 쓰고 또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늦게라도 댓글 남겨주면 아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오랜만에 으스스한 이야기 또 같이 읽어볼까? ______________ 경험담입니다. 예전에 이런걸 다루는 프로가 있었죠? 거기에 응모했다가 된 거였는데, 친구분 어머님께서 반대하셔서 결국 방영하지 않았던 이야기입니다. 참 오랫만에 꺼내는 이야기네요. 좀 길답니다. ---------------------------- 내가 대학교 때 일이다. 한 7년정도 된거 같다. 난 경기도에 모 대학교를 다녔는데, 그 대학교는 엄청 넓은 부지와 중앙에 호수가 있고, 주위의 산들이 어마어마했다. 건물수 또한 엄청 났었다. 난 이 호수에서 낚시질도 하곤 했다. 붕어를 잡곤 했는데 워낙 오래되서, 그 날이 무슨 날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그 날 내 친구들이 먼곳에서 올라온 날이었다. 한 친구와 난 같이 살았는데 원룸에 살았다. 그 원룸 지하에 피씨방도 있었다. (여기서 나는 그 당시 포트리스라는 오락을 자주 하곤했다.) 이 날 나는 친구들과 족발과 닭과 소주 등등... 엄청난 안주들과 술을 섭취했다. 그리고 같이 살던 친구놈 애인이 왔었는데, 이 애인포함. 총 7명이서 미친듯이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친구가 눈치를 줬고 우리 5명은 자리를 피해서 학교로 올라갔다. 그때 시각이 새벽 1시쯤 되었던거 같다. 친구들과 학교를 오르는데 그 어두움 속에 무서움이란 우리에게 없었다. 그래서 우린 무얼할까 하던 중 술래 잡기를 하기로 했다. 술래는 우리가 아니다 경비아저씨인것이다. 경비실에 돌던지고 도망가기 말이다 푸하핫... 지금 생각하면 미친짓인거 같은데 그땐 유치했던 탓에 이런짓을 자주했단 말이다. 술까지 얼큰한데 그 무엇이 두려우랴? 정말 엄청난 스피드로 따라오는 경비를 본 적 있는가? 소름 돋는다. 여튼 도망가던 도중 난 호수가 앞에서 혼자 때구르르 굴러버렸다. 그래서 발목이 살짝 나가버렸다. 그래서 난 혼자 호숫가에 우두 커니 앉아있는데, 조금 무서워지는게 아닌가. 아마도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이 은연 중에 날 공포에 떨게 만들었었나 보다. "어. 지현아 나야." "자기. 안자고 모해? 이시간에..." "나 장난치다가 호수에서 굴렀어. 다리다쳐써 아팡 ㅋ" "친구들한테 얼른 전화해봐." "엉.ㅋ 어라? 앞에 머 지나간다." "먼데?" "잠만 잘안보여. ㅋ나 술취했나봐. 호수 맞은편에 어떤 미친년이 붉은 미니스커트 입고 산에 올라가" "ㅋ 미쳤어 장난치지마." "찐짜. 보이긴 하는데 술을 마니 마셔서 그런가봐 ㅋ" 갑자기 여자친구 목소리가 얼어버리더라. "너 혹시 바지 만져봐봐. 차가워?" "아닝. 왱?" "혹시 물에 발 담궜어??" "아닝. 왜? 왜 진지한데? 무섭게..." "아냐. 별거 아냐. 니가 무서운것도 있냐? ㅎ" "어. 나도 무섭고 그런거있어. ㅋ" "몬대? ㅋ" "자기? ㅋ" 깔깔깔 거리며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이때 여자친구는 내가 혹시나 물에 빠져 죽었지않을까 했다고한다. "어. 지현아. 저기 친구들 온다." "그랭 ㅋㅋ 잘됬네. 얼른 같이가 ㅎ" "엉 ㅋ " "ㅇ ㅑ~진수야 진우야 상진아~" 난 정말 크게 외쳤다. 미치도록 크게 말이다. 전화기를 들고 외친게 문제였지만... 여자친구가 시끄럽다고 머라하긴하드라ㅋ 근데 말이다. 친구들이 날 스윽 쳐다보더라. 뚝처럼 되있어서 윗길로 사람들 다니고 밑은 벤치 한 두개 있는 곳이었거든. 난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친구놈들이 날 스윽 쳐다보곤 그냥 지나가버린 것이다. 아주 차가운 듯한 그 눈빛... 여자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너 찐짜 물에 빠진적 없지? 정말이지? 혹시 친구들이 빠지거나, 그런거 아니지? 친구들한테 전화해 볼께. 잠시 너 끊어봐." 그 후 여자친구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고한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온 여자친구의 전화. 6명 다 전화를 안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왠지 불안하다고, 무섭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그 때 다시 뚝 위에서 친구들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 "유빈아..유빈아........" 그런데 여자친구가 하는말... "대답하지마. 이상해 대답하지마." 그래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친구들이 날보며 막 화를 내면서 욕하더라. '이 시XX 어쩌구 저쩌구...' '너 찾는다고 이 학교를 다 뒤졌다고... 왜 전화도 안받고 뭐하냐고...' '나도 전화했는데 너희들이 안받더라. 어쩌구 저쩌구...' 그러는도중 여자친구가 바꿔 달라고하더라. 안심이 안된다고... 바꿔줬다. 친구들 다 돌아가면서 다 통화 하더라.어지간하다 너도...ㅋ 그리고 안심이라고 얼른내려가라고...(얼마나 자세히 캐물었던지 친구들이 화내더라...) 그리고 움직일려는데 발목이 너무 부어서 걷지도 못하겠더라. 그래서 제일 덩치가 큰 친구 하나가 날 부축하고 내려가는데, 앞에서 불빛이 엄청 크게 비치면서 막 '너희 거기 서' 하면서 오더라. 순간 경비얼굴이 딱 생각나면서 친구들이랑 겨우겨우 도망다녔다. 그러다가 날이 밝아오고... '우리는 이제 내려가자'. 하고 내려왔다. 근데 친구들이 그러더라. '너 잠시 겜방에 가 있어. 뭐 좀 찾아올께.' 하면서 피씨방까지 부축해주고 담배도 사주고 갔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조금 있다가 여자친구가 전화왔다. 시계를 보니 5시30분쯤... "어? 안자고 있었나? " 하고 전화를 받는데 받자말자 욕이란 욕을 다하더라. 어디냐고? 도대체 전화를 안받고 머하냐고? "뭔소리고? 너 안자고 모하노? 하니까 여자친구가 그러더라. 친구한테 전화하고 바로 전화했는데, 그때부터 너안받더라고... 소름이 쏴악............ 그럼 난 누구랑통화한거고, 그러고있는데 그 겜방 문이 덜컥 열리면서 "유빈이 이개새..." 등등 온갖 욕을 난무하면서 들어오는 친구놈들. 왜 저럴까? 날 부축해줬던 친구가 날 벌컥 일으킨다. "아...아... 아퍼 쎄게 당기지마." 친구 왈 "왜 어디가 아픈데? ㅅㅂㄹㅁ" "다리 삐었잖어. 그래서 니가 여기까지 부축해줬잔어." 그 친구 왈 내가 언제? 너 찾는다고 우리 다 밤샜다. 애들 차들고 와서 난리나고, 경비아저씨들 다 깨워서 온 학교를 다 찾았다." 아. 어쩐지 내려오는데 학교에 불이 다 들어와 있더라. 그럼 난 누구한테 업혀온거고, 난 멀보고 도망 다닌건가? 친구들이 그러더라. 화장실앞에서 너봤는데 니가 우릴 처다 보곤 막 산위로 도망가더라고... 미쳤냐. 다리아파 죽겠는데 도망을 가게...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알바생한테 이놈이 담배사주지 않았냐고 하니, 알바생이 맞다고 당신이 사줬다고했다. 그 때 내친구들의 표정들은 몹시나 당황해 하더라. 먼가 이 때부터 심상치 않은듯 돌아가는 상황. 애들이 올라가서 이야기하자고 방으로 갔다. 그때가 6시쯤... 서로 상황을 맞춰보니, 난 친구들을 보고 도망다닌거고, 친구들은 나 찾아다닌거고... '이거 예삿일아니다. 집에 전화하자' 하고 친구놈이 집에 전화를 했다. 난 하지말라고 짜증냈는데 신호가 가자말자 받는 울엄마. 친구놈이 한마디했다.. "어머니. 좀 올라오셔야겠는데요." 더 웃긴건 울 엄마다. 집에서 차로 달려도 4시간 걸린다. 그런데도 이유를 묻지않으시고 그 시간에 올라오신단다. 먼가 심상치 않다. 분명 뭔 일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다 오시고 다짜고짜 집에 가자고 하신다. 내려와서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 어머니가 나랑 똑같은 꿈을 꾸셨단다. 다른게 있다면 내가 막 쫒기더란다. 칼을 든 여자애한테... 동시에 엄마, 아버지 깨셨단다. 서로 보고 놀라셨데... 왜 갑자기 일어나냐고... 그리고 서로 꿈이야기하니 '아들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 아닌가 이럴 수 없다' 하고 있는데, 엄마 휴대폰에 걸려 온 친구의 전화. 그래서 바로 내려 오신거란다. 이후... 난 정신과 성당 교회 상담실 다 가봤다. 다 정신차리고 살란다 술마니 먹어서 그렇다고 ㅋㅋ 근데 울 아버지가 귀신이랑 놀면, 귀신에 씌여 오래 못산다고 여기저기 안가본 곳이 없다. 아무래도 서로 인정은 안했지만 귀신이었던거같다고... 그러다가 친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아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 귀신을 잡으시는 분이 계시단다. 그 길로 전라도까지 달렸다. 정말 촌구석까지 갔다. 많이 늙으신 할머니. 올해 90을 바라보고 계신다더라. 그 할머니가 나를 딱 보자말자 '어이구어이구' 하시더라. 나, 엄마, 아빠, 동생, 여자친구 이렇게 6명 있었다. 할머니가 마음에 준비를 하고 다시 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하루 지나고 마을회관에서 굿? 글쎄...굿은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그게 굿인지 먼가를 하셨다. 사과 등등 막 올려놓고 절하고... 어이없더라. 저런거 안믿거든... 참나. 그래서 난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 짜증나' 하고있는데 할머니가 다가오신다. 그러면서 날보고 아주 걸걸한 목소리. 무미건조한... 인간의 말투같지 않은 그런 목소리... 들어본 사람만 알 듯하다. "창성아." 난 못들은 척했다. "창성아." "아놔. 엄마 이런거 하지말자. 머하는데..." 하는데 가족들을 보니까, 가족 전부 다 심하게 놀란 얼굴을 하고있더라. 설마? 창성이는 내 원래 이름이다. 어릴 때 이름을 바꿔야만 할 이유가 있어 재판까지하고 바꾼 이름. 그 이름을 어떻게 할머니가알지? 난 부모님이 가르쳐 준 줄 알았다. 근데 아닌가보다. 속으로 '아 머야? 하고 있는데... "창성아. 나 모르겠어? 임마." 이런다. "내가 널 어떻게 알어?" "나야 jjj야 임마." j는 그 친구 이니셜이다. 3글자에 다 j가 들어간다. 순간 욱했다. 그렇게 어른들이 많은데서 내가 쌍욕을 했으니... "이씨X 개xx 좆xxx 왜 죽은애 이름은 꺼내고 지X이고 이쉽X야" "야. 실망이야 .내 목소리 벌써 잊은거야?" 하면서 할머니가 다가오시는데, 허리굽은 할머니가 허리를 딱 펴고 터벅터벅 걸어오시더라. 그 때 그 눈빛, 그 자세. 아마 죽을 때까지 못잊겠지. 나뿐만 아니라 거기 있던 모두가... 그러곤 귀에 속삭이시더라... "창성아. 나 jjj야. 못믿는거야?" 하면서 꺼낸 이야기는 놀랄 노자였다. 아무도 모를 우리이야기. 중학교 3학년때, 학교 옥상에서 그날 그 놈이 본드 마시고, 오토바이를 탔다. 바닷가 길을 달리고... 난 진술서에서 그 이야긴 안썻는데...쓸수가 없었다. 죽은 친구 앞에서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아니었기에... 친구는 전봇대를 들이박고 약 20여 미터 날라가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난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그 놈을 봤고, 그걸로 내 기억은 끝이다. 몇 달을 움직이지 못했고, 밥도못먹었다. 그래서 힘들게 이름도 바꾸고, 정신과도 다니고, 제일 친한 친구의 죽음을 잊는 듯했는데, 내 앞으로 다가오는 이 할머니가 말한 것이다. 그 때. 내 몸에 돋았던 소름은 아무도 못 들었을꺼다. 귓속말이니까. 다시 또 이야기 하더라. "그 때 봐서 너무 좋았다. 담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등등... 사사로운 이야기들. 그리고 할머니가 갑자기 손에 찹살인가 좁살인가 그걸 들고 바닥에 곱게 까시더라. 그리고 나보고 거기에 절하라더라. 난 바로 절했다. 그때는 내가 내가 아니었다. 먼가 정신이 나가 버리는 느낌.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의 눈 앞에서 좁살 위로 천천히 새 발자국이 차근 차근 차근 찍혀나가더라. 천천히... 정말 새가 밟고 지나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 아빠, 동생, 여자친구까지 완전 얼어서 쳐다보고 계시더라. 그리곤 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시더라. "그 날이 너 살이 낀 날이다. 너가 죽을 날이었다. 그런데 니 친구가 기일날 하루 내려올수있는데, 그날 안오고, 너 때문에 일찍 왔었다. 너를 업고 다닌건 니 친구다. 그리고 너를 따라 다녔던 것은 귀신들이다. 너를 해할려는... 그게 니 업이고, 니 살이다. " 라고 하시더라. 친구 덕분에 살은거라고... 식은땀이 등 뒤로 흐른다는거... 더운거랑은 다른거다. 정말 그 느낌. 더럽다. 그리고 내려와서 친구어머님을 뵙고, 그 놈을 떠나 보냈던 강에 백화를 뿌려주었다. 사랑하는 내 친구...안녕. [출처] 아무도 믿지못할 그때의 이야기 ____________________ 친구가 최선을 다해서 살린거였구나 ㅠㅠ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마찬가지인가봐 무섭고 나쁜 귀신들도 많지만 이렇게 고마운 영혼들도 많으니 위안이 되는 듯 살아있는 사람들도 그러니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또 그런 사람들이 소중해하는 나를 위해 기운내보자 모두!
어느 몽타주에 담긴 이야기
영국의 한 경찰서에서 형사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사람의 머리스타일은 어떻게 생겼나요?' '정돈이 안된 더벅머리 였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그의 손은 천천히 범인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복장은요?' '짧은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럼 종합해 보면... 이렇게 생겼겠군요.' 그렇게 범인을 묘사한 몽타주는 완성되었고 이것은 결국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몽타주가 작성되고 난 뒤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이 이야기는 25년간 영국의 한 마을을 두려움에 떨게한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다. 리틀 헤이븐은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영국 펨브룩셔에 위치한 손꼽히는 명소이다. 해안가의 절경으로 인해 휴일을 맞이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리틀 헤이븐은 영국에서 제일 낮은 범죄율을 가진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89년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아름다운 해변 마을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리틀 헤이븐으로 여행을 간 저의 부모님의 행방을 찾을수가 없습니다.' 리틀 헤이븐 경찰서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자신을 토마스 딕슨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부모를 찾았고  그 즉시 경찰은 해안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색이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2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두 사람은 휴일을 맞이하여 옥스포드에서 리틀 헤이븐으로 여행을 온 피터와 그웬다 딕슨 부부였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누구나 그들과 친구가 되고싶을 정도로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딕슨 부부는 휴일을 맞아 리틀 헤이븐의 해안가를 따라 캠핑을 하며 주변의 절경을 탐사하는 것을 즐겼지만 휴일의 마지막 날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발견 당시 부부의 시신은 양손이 묶인채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피터는 마치 '처형' 당하듯 묶인 채 뒤통수에 3발의 엽총으로 인한 총상을 입었고, 그의 지갑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부인인 그웬다는 하의가 사라진 채로 강간 당한 흔적과 범인에게 저항을 하다 입은 것으로 보이는 후두부의 치명적인 총상이 있었다. 이후 경찰의 감식 결과 범인은 피터를 먼저 살해한 뒤 그웬다를 살해하기전 성폭행을 시도한 것으로 보여졌다. 단순 강도의 의한 살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경찰들은 치를 떨수 밖에 없었다. 평화롭던 작은 해변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금새 마을 전체로 퍼졌고 마을 사람들은 4년 전 마을에서 일어난 '그 일'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햇다. 4년전인 1985년 한창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던 12월 23일 새벽 리틀 헤이븐 한 근교의 농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연기를 본 주민들이 급히 신고를 했고 이 후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불은 크게 번지지 않고 빠르게 진화되었다. 소방대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욱한 연기사이로 집주인였던 헬렌과 리처드 토머스 부부는 시신으로 발견 되었고  화재를 진압한 뒤 발견한 부부의 상태는 일반적인 화재 사고의 시신과는 매우 달랐다. 헬렌의 시신은 2층의 자신에 방에서 두손이 묶인 채 꿇어앉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리처드의 시신은 카페트에 말린 채로 발견 되었기때문이다. 이것이 사고가 아닌 범죄현장임을 느낀 대원들의 신고로 그 즉시 경찰들이 출동했다. 경찰들의 조사 결과 두 부부의 사인은 화재로 인한 질식이 아닌 근거리에서 맞은 총탄이였다. 두 부부의 사인과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집에 혼자 있던 헬렌을 범인이 제압한뒤 결박했고 그 후 그녀의 뒷머리에 엽총을 발사하여 살해한 뒤  뒤늦게 돌아온 리처드를 집 밖 마당에서 엽총으로 살해하고 리처드의 시신을 집안으로 끌고 와 카페트 로 감싸고 그 위에 불을 지른것' 경찰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결국 범인을 찾을 수 없게 됬고 이는 그동안 평화롭던 작은 마을 리틀 헤이븐의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그 후 토마스부부의 끔찍한 사건이 잊혀질 무렵 발생한 딕슨 부부의 사건은 토마스 부부의 사건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범죄가 일어난 시각은 두 사건 모두 새벽이였으며, 두명의 남녀가 살해당했고 그들을 살해한 무기는 '엽총'이였기 때문이었다. 이 천인공노할 범죄는 곧 주민들에게 퍼져 주민들은 '엽총 살인마:Shotgun Killer'가 나타났다며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더벅머리에 정돈이 안된 수염을 가진 건장한 체격의 백인 남성. 목격 당시 자전거를 탄 상태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었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격자의 기억력에 의지하는 한장의 몽타주만으로는 범인을 찾기란 무리였다. 1989년 당시에는 체계적인 과학수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는 점점 어려움을 겪게되었고 총 6000여명의 용의자를 조사했지만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진 못한채 수사는 미궁으로 빠지게 되었다.  결국 영국경찰은 팸브룩셔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엽총 살인마'는 끝내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시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엽총 살인마에 대한 기억을 점점 지워나갔고  결국 리틀 헤이븐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끔찍한 범죄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아마도 범인은 자신의 완전범죄가 영원히 세상밖으로 밝혀지지 않기를 바랬을것이다. 하지만 범인의 희망과 달리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딕슨부부가 살해된 지 17년이 지난 2006년 미제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담반의 팀장 '스티브 윌킨스'는 자신의 전담반을 이끌고 이 작은 소도시 리틀 헤이븐에서 일어난 2건의 미제사건인 '엽총 살인마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두 사건에 사용된 범행도구인 '엽총'이었다. 윌킨스의 팀은 지난 20년간 팸브룩셔 일대에서 엽총을 사용한 살인사건 용의자들을 토대로 조사했지만 엽총살인마에 대한 수사는 몇달이 지나간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채 난황을 겪게 되었다. 지지부진한 수사가 계속되던 어느날 윌킨스의 눈에 한 용의자가 포착되었다. 용의자의 이름은 '존 윌리엄 쿠퍼' 그는 팸브룩셔 일대에서 30여건의 강도 및 강간 혐의로 1998년에 16년형을 받은 범죄자였고 범행도구는 '엽총'이었다.  윌킨스는 이 점을 주목했고 그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역시 쿠퍼가 미제사건의 용의자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윌킨스는 한가지 기묘한 사실을 알게됬다. 바로 쿠퍼가 오래 전 한 유명한 TV쇼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 방송국 ITV의 협조를 통해 경찰서 내부의 자료실에서 오래된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불스아이' 다트를 던져 경품을 받는 TV쇼 불스아이는 25년 간 영국에서 인기를 끌던 장수 TV쇼였으며  평균 시청자 수 17만명의 인기 프로그램이였다. 1989년도 영상속의 사회자는 호기롭게 TV쇼의 이름인 불스아이를 외치며 등장했고, 곧 이어 출연자들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바라보던 윌킨스의 눈에 젊은 시절의 쿠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윌킨스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윌킨스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로 그때 영상 속 쿠퍼가 등을 돌리는 화면이 나오자 윌킨스는 영상을 멈추었고  자료실을 뒤엎으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찾아낸것은 바로 한장의 몽타주였다.  17년전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담았던 몽타주를 말이다.  떨리는 손으로 TV화면속의 쿠퍼와 자신에 손에 들린 몽타주를 비교하던 윌킨스의 입에서 외마디의 말이 튀어나왔다. '놈이다.' 16년전의 몽타주가 오랜 세월을 지나 끔찍한 살인범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이였다. TV화면속의 쿠퍼는 만면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회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회자 : 혹시 하고 계시는 취미가 있나요? 쿠퍼 : 스쿠버 다이빙을 즐깁니다. 특히 리틀 헤이븐의 해안가에서 즐기는걸 좋아합니다. 쿠퍼가 말하던 곳은 바로 딕슨부부가 살해당한 그 해안가였다. 만약 진짜 쿠퍼가 범인이라면 쿠퍼는 이 방송에 나온 뒤 1달 뒤에 딕슨부부를 살해한 것이었다. 윌킨스는 쿠퍼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특이한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쿠퍼가 강도죄로 검거 될 당시의 경찰서 내의 조사실의 영상이였다. '어째서 범행을 저질렀나.' 담당형사의 말에도 수갑을 찬 쿠퍼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형사의 계속되는 취조에도 입을 다물고 오히려 벽을 등진 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형사의 취조를 계속 듣고있던 쿠퍼는 영상이 끝날 무렵 단 한마디의 말만 꺼냈다. 형사 : 혐의를 인정하나? 쿠퍼 : 네 장시간에 걸친 취조끝에도 입을 열지 않던 쿠퍼가 형사의 마지막 말에는 멀쩡히 답변을 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범죄자라면 보통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변명을 늘어놓는것이 일반적인 예지만 쿠퍼의 상황은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인 것이다.  마치 한시라도 바삐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싶은 것처럼  윌킨스는 이것이 단지 강도 혐의만을 받고자 하려는 쿠퍼의 속셈임을 알아차렸다. 그가 감옥에 간다면 사람들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리틀 헤이븐의 살인사건들은 잊혀질거라는 속셈 하지만 쿠퍼가 간과한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바로 과학수사의 발전이였다.  1985년과 1989년에는 과학수사의 개념조차도 없었기때문에 범죄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쓸만한 증거를 찾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였지만  2006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윌킨스는 쿠퍼의 자료와 증거물들을 모아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지만 증거물들의 기간이 너무나도 오래됬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시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성공유무 자체 또한 매우 희박했다.  하지만 2년뒤 2008년 윌킨스가 그토록 기대하던 유전자 검사가 결과가 나왔고 증거품들에 묻어있던 DNA들은 쿠퍼가 범인임을 알리고 있었다. 바로 쿠퍼가 강도 혐의로 압수당한 물품에서 지난 두 건의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의 DNA가 나온것이었다. 쿠퍼가 사용한 엽총의 총구부분과 쿠퍼의 집에서 압수한 바지에서 피터 딕슨의 DNA가 나왔고 그가 범행 당시 사용 착용했던 장갑에서 리처드 토마스의 DNA가 나왔다. 2010년 윌킨스는 조사실에서 쿠퍼에게 명백한 살인의 증거물들을 보이며 그를 추궁했고 쿠퍼는 1999년의 조사실에서와는 달리 신경질적이며 화난 목소리로 자신은 결백하다며 소리쳤다. 결국 2011년 쿠퍼는 2건의 살인사건과 5건의 강도질 그리고 2건의 강간사건의 용의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완벽 범죄를 꿈꾼 범인은 단 한장의 몽타주로 인해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최악의 마약 펜타닐, 그리고 중국.
펜타닐 -최악의 마약이라는 헤로인의 50~100배의 위력과 중독성을 지녔으며 완전치사량은 위 사진과 동일한 약 2mg. 애초에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나 절단 환자, 복합부위통증 증후군을 겪는 일반적인 수술이나 진통제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투여하는 용도의 약물이며 이것도 일반적으로 고통을 어느정도 줄여주기만 할 뿐 해소해주진 못한다.. 애초에 치사량이 너무나도 적기때문에 투여량 또한 극미량이기 때문... 근데 이게 왜 문제라는거임?..어차피 의료목적인데.. 왜냐면 이 마약은 합성도 쉽고 중독성도 그만큼 강하기에 중국의 패권경쟁의 주요 수단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마약이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그럼 중국은 펜타닐이라는 마약을 어떻게 주요 전략으로 삼는거지? 그럼 중국의 외교전략인초한전이라는걸 먼저 알아야됨. 이 사진에서유격전- 마약전을 봐야한다. *참고로 밑의 이데올로기전이 요즘 중국이 한복입고 김장하는 짓거리를 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문화예속의 시도라는 것.. 그럼 중국은 이짓거릴 어떻게 하나? 1. 불법 펜타닐 제조 2. 싼값에 알리나 알리바바등 쇼핑몰에 유통 3. 현지 중국인이 구매 후 현지 유통업자에게 판매 3-1 . 또는 외국인이 온라인 직구매 4. 중독자 양산 . . . 이게 끝이다. 참 쉽다. 한마디로 중국은 지금 총만 안쏠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생화학무기를 날리고 있는셈이다. 그럼 얘네 대체 왜 이러는거임? 마약에 트라우마도 있는 새끼들이? 단속하기 힘드나? 얘넨 단속을 못하는게 아니라일부러안하는거다. 위에 언급했던 어떻게 보면 미중 패권경쟁의 전략이기때문. *마약 : 마취 작용을 하며, 습관성이 있어서 장복(長服)하면 중독 증상을 나타내는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아편ㆍ모르핀ㆍ코카인ㆍ헤로인ㆍ코데인ㆍ페티딘ㆍ메타돈ㆍ엘에스디(LSD) 따위가 있으며, 의료에 사용하지만 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므로 취급 및 사용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펜타닐 - 최악의 마약이라는 헤로인의 50~100배의 위력과 중독성을 지녔으며 완전치사량은 위 사진과 동일한 약 2mg. 애초에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나 절단 환자, 복합부위통증 증후군을 겪는 일반적인 수술이나 진통제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투여하는 용도의 약물이며 이것도 일반적으로 고통을 어느정도 줄여주기만 할 뿐 해소해주진 못한다..애초에 치사량이 너무나도 적기때문에 투여량 또한 극미량이기 때문... 근데 이게 왜 문제라는거임?..어차피 의료목적인데.. 왜냐면 이 마약은 합성도 쉽고 중독성도 그만큼 강하기에 중국의 패권경쟁의 주요 수단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역시 모든 원인은 대부분 다 그곳이다. “이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마약이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 - 도람뿌 그럼 이새끼들은 펜타닐이라는 마약을 어떻게 주요 전략으로 삼는거지? 그럼 중국의 외교전략인 초한전이라는걸 먼저 알아야됨. 출처 : 국방일보 이 사진에서 유격전- 마약전 을 봐야한다. *참고로 밑의 이데올로기전이 요즘 중국이 한복입고 김장하는 짓거리를 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문화예속의 시도라는 것.. 그럼 중국은 이짓거릴 어떻게 하나? 1. 불법 펜타닐 제조 2. 싼값에 알리나 알리바바등 쇼핑몰에 유통 3. 현지 중국인이 구매 후 현지 유통업자에게 판매 3-1 . 또는 외국인이 온라인 직구매 4. 중독자 양산 . . . 이게 끝이다. 참 쉽다. 한마디로 중국은 지금 총만 안쏠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생화학무기를 날리고 있는셈이다. 그럼 얘네 대체 왜 이러는거임? 마약에 트라우마도 있는 새끼들이? 단속하기 힘드나? 얘넨 단속을 못하는게 아니라 일부러 안하는거다. 위에 언급했던 어떻게 보면 미중 패권경쟁의 전략이기때문. ...근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 우리 마약청정국 아녔음? 당연히 상관있다. 중국은 미국은 경쟁상대로 보지만 대한민국은 복속시키고 흡수 시켜야 할 속국으로 보기때문. 이런 뉴스가 언젠가부터 자주 보이고..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뉴스까지 점점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중국은 미국에겐 단속하겠다라는 포장이라도 했지.. 한마디로 위의 문화예속 시도 및 마약류의 유통망 공급으로 인해 먼 미국보단 가까운 중국을 의지하게끔 만들어 최종적으로는 한반도를 대륙과 동화되게 만드는것이 중국의 목표다. 중국이 아무 이유없이 일대일로니 뭐니 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주요 거점들을 99년 임대 이딴식으로 점점 먹어가고 있는것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중국은 점점 패권주의를 내세우며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방법으로 주변국들에게 마수를 뻗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제껏 말한마약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제껏 마약청정국이란 이미지도 어느순간부터 무색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단순히 사회 문제를 넘어선 좀 더 거대한 위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탁스 펌
남편 바람으로 가정 파탄난 분들 꼭 상간녀 소송 하십시요. (사이다 주의)
현재 저는 이혼한 30대 후반 여자입니다. 유부남 남친이 있다는 글을 보고 빡이 쳐서 글을 씁니다. 제 남편도 바람이 주특기인 새끼였습니다. 처음 걸렸을 때 제가 봐주고 넘어간게 화근이었죠. 바람핀 거 걸리고 4개월도 안 지나서 또 바람을 피우더군요. 일단 제가 한 첫마디가 뭔지 아시나요? 부부사이에 믿음이 깨졌다고 폰 검사하고 그런거 아닌 거 같다. 믿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근 한다고 해서 고생한다고 일부러 술자리도 보내줬어요. 그리고 그놈 잘때 카톡 스샷, 통화내역 다 찍어놨습니다. 블랙박스도 꼼꼼히 확인해서 동영상으로 남겼구요. 그리고 증거가 모일만큼 모였다고 판단되서 남편한테 말도 안하고 상간녀 소송을 했습니다. 소장이 날아갈때까지 그냥 이가 갈리고 치가 떨렸는데 최대한 참아가면서 살았습니다. 소장 받고 난 뒤 그 상간녀랑 남편은 화들짝해서 오해다 그런 거 아니다 난리를 쳤지만 저는 남편에게 나는 너랑 이혼 안해. 상간녀만 조질거야. 라고 말했고 남편은 결국 가출해서 그년이랑 동거 상태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전 이러한 내용을 회사에 내용증명으로 보내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할수 있는 모든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그 상간녀 주소지가 본가로 되어있고 부모님 명의로 얻어주신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고 그 집까지 내용증명 다 보냈습니다. 그리고 민사를 걸면 통장 가압류 부동산 가압류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전 민사 걸고 통장 가압류를 걸어 놓은 상태로 1년 4개월 만에 승소해서 월급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재판 결과를 또 내용증명하여 보냈습니다. 결국 그 여자는 회사에서 짤리고 퇴직금도 가압류 조치를 해놓고 제가 다 챙겼습니다. 그러자 그 천년의 사랑같은 남편과 상간녀 싸우고 헤어지더니 남편은 집에 들어와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너랑 이혼 안해라고 말하고 일다니고 제 생활 열심히 했고요. 남편은 결국에 시댁으로 가서 생활하고 별거 아닌 별거 상태로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 상간녀가 혼전 임신으로 결혼한다는 sns를 봤습니다. 결혼식장 날짜 다 아는 순간 저는 판결문 둘이 나눈 카톡 프린트 하고 블랙박스 usb에 담아 그 상간녀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 통에 5만원 제 남편 이름으로 축의금 냈고 사돈되실 어른들한테 가서 증거가 담신 봉투를 건내고 식이 끝나면 보셔라 말하고 집에 왔습니다. 결국 그거 보고 혼전임신이지만 결혼식만 치룬채 그 상간녀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고 남편은 저보고 끝난 사이인데 그랬다고 노발대발 하길래 조용히 말했습니다. 니가 그런거야. 누가 먼저 꼬셨든 넌 가정을 지켰어야 했어. 니가 나를 이렇게 만들고 쟤가 저런 불행을 겪게 했어. 너는 나, 저 여자, 저 여자랑 결혼할 남자 이렇게 셋 인생을 쓰레기 통에 집어 넣은 거야. 너가 그런 거니까 앞으로 바람필 때 늘 생각해. 라고 말하고 이혼 소장을 내밀고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에 친정 부모님과 동행해서 부모님은 그놈한테 개쌍욕을 퍼부으셨고 고소를 하네 마네 하길래 고소하는 순간 이혼은 없다. 너가 또 누군가 만나고 있는 거 안다. (그냥 찍은 겁니다.) 걔 인생도 한번 나락 보내줄까? 했더니 입 쳐닫고 조용히 이혼 절차 밟았고 제가 그 놈한테 한 말은 병신이었습니다. 지금 유뷰남 만나시는 년님들아 결혼식장에 저같이 판결문으로 축의금 내서 잣되기 싫으시며 남의 남자랑 쳐자는 창x같은 짓 하지 마시구요. 남편이 바람피는 분들아 울지 마세요. 화내지 마세요. 겁 먹지도 마세요. 애 있어서 이혼 안하고 ATM으로 쓰실려면 쓰세요. 단, 상간녀 소송은 꼭 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람피는 그 새끼한테 꼭 말해주세요. 니가 쟤 인생을 망쳤다고. 니 양심 있다면 조금이라도 자책하고 죽고 싶길 바란다다고. 최고의 복수가 잘 사는 거라는 말 거짓말이예요. 최고의 복수는 잘 괴롭히다 버리는 겁니다. 내 인생이 괴로워서 그렇게 안하면, 이혼하면 그때 뭐라도 할걸 후회합니다. 꼭 복수하시길. 그리고 이 상간녀 미친x들아 니들이 만만해서 데리고 자는 거야 병신들 진짜. ㅊㅊ 혹시 엥? 간통법 없어졌자나ㅠ?? 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들~ 형사는 없어졌지만 민사는 쌉가능이야 ㅇㅇ 손해배상으로 진행된대 이혼할 때 상간자소송을 하면 가정법원에서 가정파탄의 원인을 두고 소송 진행하는 거고 이혼 안 하고 소송만 걸면 민사로 위자료 청구 하는 거고 ㅇㅇ 둘 다 위자료 청구하는건데 이혼하면 더 많이 내야 한다고 함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은데 상간녀, 상간남 소송 중복소송 걸수도 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