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b15
4 years ago10,000+ Views
사랑을 시작할 때는 그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며 시작한다. 20살 초반의 나의 사랑 또한 그랬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풋풋하기도 설렘 가득하기도 한 연애였다. 핑크빛으로 물들어 생기발랄한 연애의 끝은 피비린내 가득 품은 능지처참으로 끝이났다. 전 남친의 죄목은 바람이었다. 그 아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여자를 탐닉하길 바라면서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헌신짝같은 나 또한 필요로 했다. 그 아이의 레파토리는 항상 같았다. "너랑 싸우고 잠시 정신이 나갔었다. 그 여자가 모텔로 끌고 들어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그여자랑은 감정이 없었다. 내가 사랑한 여자는 너 뿐이다" 믿지 못할 얘기였지만 믿고 싶었다. 어린날의 청춘을 바쳐 5년을 사랑했는데, 그 시간들을 부인 하는 것 같았기에 언제나 '한번만. 이번이 마지막'. 이길 믿어주었다. 그럴 수록 그 아이는 나를 더 능멸했다. 하룻밤에서 그치지 않고 먹잇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헤어져달라' 이번엔 진짜 헤어지자. 다짐했다. 나의 강력한 한마디에 그는 무릎을 꿇었다. 처음으로 그는 눈물을 보였다. 그의 거짓 눈물에 속아 '정말 마지막' 용서를 해주었다. '정말 마지막'을 느낀 그 아이는 결혼을 서둘렀다. 나를 옆에 두어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단 이유였다. 결혼에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마음은 공허해져갔다. 거짓 사랑인 줄 알면서 내 욕심에 나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있음을 알기때문에. 빛을 잃고 비릿내 가득한 피의 색을 띄던 파멸의 그 때, 상처를 이겨낸 한 남자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그와의 첫 술자리에서 그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지난 사랑얘기를 조금 했을 뿐. 그의 사랑은 보랏빛이었다. 핑크빛이라기엔 세상을 너무 알아버린, 핏빛이라기엔 사랑을 더 믿고자하는. 순간순간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며 다채로운 눈빛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진심을 보았다. 안경 너머로 슬픔을 감추고 지친 손길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는 그의 모습은 무언의 위로였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고작 이런 연애에 바칠 하찮은 인생이 아니었다. '용기'가 났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용기. 그에게 고마웠다. 핏빛 가득한 욕망을 떨칠 수 있게 해준 그에게.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겠노라 만난 자리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서서히 물들어버렸다. 영원을 기약하는 것이 아닌 영혼을 다독이는 사랑이 물들듯 피어나버렸다. 우리의 시작은 핑크빛이 아닌 핏빛에 가까운 보라색이었다.
silverb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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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잇어요
영화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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