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in
6 years ago1,000+ Views
"내가 당신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건 말이오, 페오폴딘을 목 조르면서 내가 그애를 진정한 죽음으로부터, 즉 망각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거요. 당신은 나를 살인자로 생각하지만 사실 난 아무도 죽인 적 없는 지구사에 몇 안 되는 인간들 중 하나라오. 당신 주변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바라보시오. 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고? 망각은 대양이라오. 그 위엔 배가 한 척 떠다니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란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억의 배는 초라한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오. 조금만 잘못해도 금세 물이 스며드는 그런 돛단배 말이오. 그 배의 선장은 양심 없는 자로, 생각하는 거라곤 어떻게 하면 항해 비용을 절감할까 하는 것뿐이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오? 날마다 승무원들 중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골라내어 처단하는 거요. 어떤 이들이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지 아시오? 잡놈이나 게으름뱅이나 바보천치일 것 같소? 천만에. 바다로 내던져지는 이들은 선장에게 이미 봉사한 적이 있는 이들이라오...... 한 번 써먹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거지. 단물 다빨린 것들한테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겠어? 자, 사정없이 쓸어내버리자고, 여엉차! 그들은 바다 위로 내던져지고, 바다는 무자비하게 그들을 삼켜버린다오. 그렇소, 기자 양반, 그런 식으로 날마다 수 없이 많은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다오. 처벌도 받지 않는 살인이지. 난 단 한 번도 그런 무시무시한 살인행위를 모의한 적이 없소. 그런데 그렇게 결백한 나를,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정의라 부르는 것으로 단죄하려 하는구려. 그런 걸 달리 말해 고소라고 한다오." <살인자의 건강법>『타슈의 말』 ====================================== 적의 화장법은 먼저 읽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때에 접하게 되었던 아멜리 노통의 데뷔작.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과 그를 인터뷰하려는 다섯명의 기자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 마지막 인터뷰가 정말로 하이라이트. 정말 콕콕 찌르는 언쟁이 오간다. 그 중 너무 찔렸던 문구를 적어놓았던 걸 다시 찾아봤다. 여전히 나도 모르게 날마다 하나 둘 죽여가고, 남들에 의해 한 두번 죽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특히나 선장에게 이미 봉사한 적이 있는 이들을 바다에 던진다는 말은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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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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