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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그맨이 말하는 한일관계 입장 차이

이런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이 사람이 말한 것처럼 교육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죠 쯧쯧...

원본 영상은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 콘텐츠는 일본인들에게 테러 당하는 중이지만
댓글을 남기는 일본인들 반응은 이게 역사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등 생각보다 정상적인 것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자 역사 공부 같이 하자 일본사람들아!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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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토착왜구들은 진실을 말하면 개거품 물고 덤비는데 일본에서도 진실엔 등을 돌리는구나.
없기는ㅉㅉ 군함도 같은곳도 왜곡해서 오히려 세계문화유산으로 탈바꿈 시키고 관동대지진때 조선인 학살현장 탄광등 강제징용 현장 많이 있는데 뭔 말도안되는 핑계야.. 물리적으로 어려운게 아니라 그냥 니들 쪽바리 종특이야
저 개그맨 내용을 다봤는데 어이가 없네요. 한국은 현대사 즈음 생겨난 국가라서 현대사를 제대로 배우고 저들 일본은 역사가 길어서 그 역사들을 배우느라 현대사는 찔끔 배우고 지나간다니~~역사는 우리나라가 더 길 것 같은데....게다가 왜 식민지배 당하다가 세계 2차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 침범해서 38선을 기점으로 한반도 지배권을 빼앗았다는 식으로 말하네 그 전에 이미 독립했는데 그런 얘기는 언급도 없고 제대로 역사를 배우질 않으니 그런 거 겠지만,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mayatan730 아 저 개그맨도 제대로 모르고 말하는 거였군요ㅜㅠ
됐고ᆢ너거가 무슨생각하는지를 꼭알아야하나? 사람이ᆢ원숭이 생각까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ᆢ그냥 아닥하고ᆢ 바나나 쳐묵고ᆢᆢᆢ
원숭이나라 정치꾼들이 만든거지. 극우 우동사리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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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하위계층이라 백성들에게 차별받는 계급제에 희생당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백정 많은 역사서에서는 조선 계급제 사회로 인해 사람취급 못받은 사람으로 설명하고 여기에 영감받은 드라마, 소설에서는 신분제에 핍박받다 백정이 반란이나 도적이 된다는 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서술함 당장 EBS에서 제작한 영상이나 혹은 다른 미디어들을 봐도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음 하지만 왜 조선정부에서 버림받고 백성들한테 극도의 차별을 받았는지 서술하는 곳은 별로 없음 왜 조선사람들의 증오는 백정에게 향했는가? 다시 조선전기로 돌아가보자 이제 한반도에서는 유목생활로 먹고사는게 불가능한데 양수척, 화척(통합해서 백정)이란 자들이 그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네, 근데 그런 생활로는 배고픔을 면할 수 없으니 그들을 위해서 토지를 나눠주고 농업기술을 가르쳐주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들도 우리 백성이지, 걔네한테 토지 제공해준다고 하고 우리가 기술도 가르쳐주고 다 지원해줄테니까 그렇게 굶고 살지말고 정착해서 살라고해 그리고 백정이라고 딱지붙이면 차별하는거처럼 느낄거아냐, 일단 노력하겠다고 들어오면 백정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일반 양민하고 똑같이 대우해주도록 해주고 케어도 해줘 백정: 우리보고 일하라고요? 왜요? 그냥 배고프면 백성들꺼 뺏으면 되는거 아님? 쉬운 길 놔두고 왜 땀흘리며 일하라고 해요? 뭐지...이 색히들...땅도 준다고 했는데 왜 일해요? 뺏으면 된다니...엄청 신박하게 돌아이들인데? 전하, 큰일입니다. 거란과 왜구가 국경을 침략해 마을을 약탈했다합니다. 그러니까 백정아? 이렇게 들어가면 더 빠르게 약탈할 수 있다 이거지? 너가 길 안내해주니까 그냥 네비게이션이 따로 없네, 고맙다 거란형님들 뭘 고맙다해요ㅋㅋ저도 같이 약탈하며 먹고 사는거죠 그리고 쳐들어온 왜구들 사실 우리임. 약탈하고 죽이고 그냥 책임은 왜구들한테 돌려야지ㅋㅋㅋㅋ 군사를 강원도 경상도로 보내서 약탈한 놈들을 진압하고 주모자들을 엄하게 처벌해라 봐준다 봐준다하니까 이놈들이 미쳤네  잘 진압하고 처벌은 했다만 백정들은 숫자도 너무 많아서 어떻게 다 처리할 수가 없네 그래, 범죄저지르고 악하게 행동하는 놈들은 처벌하고 그래도 어느정도 말통하는 친구들은 포상도 줘서 그래도 최대한 정착하게 지원해줘야지 당근과 채찍을 써야되겠군 그딴 당근 안 통합니다. 걔네 일하는거 싫어해서 백성들한테 기생해서 삽니다. 그나마 착한 놈들은 강제구걸하며 돌아다니고 강간,살인, 약탈,방화 다 백정들이 저지르고 다닙니다. 감옥에 가면 10명중 9명이 백정놈들인데요? 백정이랑 저희 같이 일 못합니다 농사하러 온 놈들도 하다가 좀만 힘들면 바로 도망가고 동네에 걔네들 때문에 약탈당하거나 죽거나 강간당한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같이 일하고 같은 동네에 사랍니까? 그냥 백정들은 방법이 없나보다...일단 아직 나라초기라 그러니 행정이 자리잡고 치안을 강화해서 해결해야되겠다 이제 나라도 자리잡히고 마을마다 치안도 세져서 뭐 우리가 털어서 먹고 살 방법이 없네... 조선형, 우리도 이제 정착하고싶은데... 백성들은 너네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단다, 이제 융합정책은 끝났어 그래도 니네 손놓고 놔두면 또 문제 일으킬거 같으니 책임은 진다. 너네 원래 도살로 용돈벌이했잖아 묵인할테니까 그걸로 먹고살아, 대신에 백성들이랑 따로 살고 건들지 말아라 에이, 이제 빼앗으면서 먹고살지도 못하니 뭐 지네가 갑이네 알겠어,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하지 뭐 너네 진짜 그냥 거기살고 우리한테 다가오지마 살인마들 마을인 백정부락에는 도축할때 빼고는 가지도 말자 결국 조선의 백정에 대한 유화책은 정착에 성공한 소수를 제외하고 실패로 끝남. 백정들도 결국 장기적으로는 선택권이 없으면서 정착하게 되지만 양민들의 백정에 대한 증오는 하늘을 찔럿고 처음 조선의 의도였던 양민으로의 정착은 불가능해짐 이렇게 되면서 양민과 백정의 계층은 완벽하게 분리되면서 자리잡게 된다. 이게 현대에 이르어서 앞의 과정들을 다 생략하고 백정들이 신분제로 인해 차별대우받았다고 서술하면서 백정은 조선시대 최약층 신분으로 주류사회에 따돌림받는 약자이미지로만 표현되어짐 1줄 요약) 조선족보다 100배는 악랄했던 계층도 이미지메이킹되면 불쌍한 약자된다 아, 참고로 스브스 뉴스에서 (무슨 백성들이 악의 집단이고 백정 여자들을 희롱하는 악의 집단으로 그렸네) "백정각시놀음"이라는 백성들이 백정의 아내나 딸들을 데리고 희롱했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만화로 만들어 제작했는데(스브스 뉴스뿐만 아니라 몇몇 영상매체에서도 이ㅈㄹ함) 아무 근거없다. 애초에 아무리 백정이라도 법의 보호는 받았고 백성들은 그냥 백정을 접촉하기도 싫어했는데 무슨 풍습으로 정해서 백정의 아내, 딸을 희롱하고 싶지도 않았음. 물론 백성과 백정간에 충돌이 간혹적으로 있었겠지만 저딴식은 절대 아님. 그리고 뇌피셜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 기록덕후인 조선이 백정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봐보자(이거는 읽기 복잡하니 관심있는 사람만 보셈) 왕조실록(王朝實錄) 세조 2년 백정(白丁)을 구처(區處)하는 것입니다. 대개 백정을 혹은 ‘화 척(禾尺)’이라 하고 혹은 ‘재인(才人)’, 혹은 ‘달달(韃靼)’이라 칭하여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니, 국가에서 그 제민(齊民)하는 데 고르지 못하여 민망합니다. 백정(白丁)이라 칭하여 옛 이름[舊號]을 변경하고 군오(軍伍)에 소속하게 하여 사로(仕路)를 열어 주었으나, 그러나 지금 오래 된 자는 5백여 년이며, 가까운 자는 수백 년이나 됩니다. 본시 우리 족속이 아니므로 유속(遺俗)을 변치 않고 자기들끼리 서로 둔취(屯聚)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혼가(婚嫁)하는데, 혹은 살 우(殺 牛)하고 혹은 동량 질을 하며, 혹은 도둑질을 합니다. 또 전조(前朝) 때, 거란(契丹)이 내침(來侵)하니, 가장 앞서 향도(嚮導)하고 또 가 왜(假 倭) 노릇을 해 가면서, 처음은 강원도에서 일어나더니 경상도에까지 만연(蔓延)하여 장수를 보내어 토평(討平)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대소(大小)의 도적으로 체포된 자의 태반이 모두 이 무리입니다. 친척(親戚)과 인당(姻黨)이 팔도(八道)에 연면(連綿)하여, 적으면 기근(饑饉)되고, 크면 난리를 일으키니, 모두 염려가 됩니다. 빌건대 이제부터는 따로 1호(戶)도 짓지 못하게 하고, 모두 갑사(甲士)·시위(侍衛), 진군(鎭軍)의 봉족(奉足)을 삼아 일일이 끼어 살게 하고, 이어서 그 다른 군으로 왕래함을 금하며, 그 홀로 산골짜기에 거처하면서 혹 자기들끼리 서로 혼취(婚娶)하거나 혹은 도살(屠殺)을 행하며, 혹 구적(寇賊)을 행하고 혹은 악기(樂器)를 타며 구걸하는 자를 경외(京外)에서 엄히 금(禁)하여, 그것을 범한 자는 아울러 호수(戶首)를 죄 주고 또 3대(三代)를 범금(犯禁)하지 않는 자는 다시 백정이라 칭하지 말고, 한가지로 편호(編戶)하게 하면, 저들도 또한 스스로 이 농상(農桑)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도적이 점점 그칠 것입니다. 왕조실록(王朝實錄) 태조 1년 재인(才人)과 화 척(禾尺)은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농업을 일삼지 않으므로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지 못하여 상시 모여서 도적질하고 소와 말을 도살하게 되니, 그들이 있는 주군(州郡)에서는 그 사람들을 호적에 올려 토지에 안착(安着)시켜 농사를 짓도록 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죄주게 할 것이며 세종 4년 임인 병조(兵曹)에서 계하기를, “군적(軍籍)에 오르지 않은 재인(才人)이나 화척(禾尺)들은 검찰(檢察)할 길이 없으므로, 이로 인하여 으슥한 곳에 모여 살면서 간음과 도적질을 몰래 행하고, 혹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니, 청컨대, 각도로 하여금 군적(軍籍)에 오르지 않은 재인과 화척을 샅샅이 찾아내어 군적에 등록시키고, 평민들과 섞여 살아서 농업을 익히게 하고, 3년마다 한 번씩 출생된 자손(子孫)들을 찾아내어 호적(戶籍)에 올리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 만약 출입(出入)할 일이 있거든 날짜를 한정하여 여행증[行狀]을 주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개드립 펌 호오. 몰랐던 사실이구려. 다만 '도축'이라는 직업때문에 천대받았던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면 싫어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소.
빵 대신 케이크 이야기
조금은 지겨울 수 있는 이야기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런 말 한 적 없다' 라는 이제는 알 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이 놈이 원흉임.  '고백록'이라고 쓴 에세이에 이런 대목이 나옴. 마침내 나는 어느 공주의 궁여지책이 생각났는데, 그녀는 농부들이 빵이 없다는 말을 듣고 "브리오슈를 먹으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거임.  근데 이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자기는 안주가 없으면 술을 못먹는 사람이라, 술안주로 먹을 빵이 없으니, 브리오슈를 사먹어야겠다!고 하는 부분임.  그러니까 뭐 어떤 혁명적 사상을 담아서 저런 나쁜 공듀가 다 있다니! 라고 비난한다거나 그런건 1g도 담기지 않은 그냥 자기 이야기임. 이 이야기는 장자크 루소가 어느 집에 얹혀살면서 가정교사 노릇을 할 때의 일임. 가정교사도 둘 정도니까 술창고도 따로 있는 부잣집이고 집주인도 마음씨 넓은 훌륭한 신사였음. 근데 이 집 술창고에 있는 와인이 약간 변질되서 술이 탁해졌음. 잘난체 좋아하는 루소놈이 잠자코있지 못하고 '와인 이렇게 다루는거 아닌데~'라는 식으로 아는체하면서 자기가 돌려놓겠다고 큰소리 뻥뻥침. (술이 탁해지면 젤라틴같은 걸로 엉겨붙게 해서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음. 제조할 때부터 넣기도 함.) 자기는 그런식으로 하는걸 잘 안다고 생각해서 큰소리치고 계란 흰자를 써보았는데 성공하지 못함. 이게 '맑게'하는 것만 성공한 것이었음. 술맛은 가버렸지만, 어쨌든 반쪽짜리 술은 만들어냈기 때문에 '오? 선생이 술 좀 아시나봐요?' 이러면서 술 관리 좀 부탁받게됨. 집주인 허락을 받았으니 술창고에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면서........... 술을 슬쩍하기 시작함.  자기 방에서 몰래 술을 마시려는데....술을 못 마심. 앞서 언급했듯이 안주가 업ㅂ으면 술을 못 마시게 되버린 몸이었기 때문임.   그렇다고 그 집 하인보고 '빵 좀 갖다줘'라고 할 수 도 없음.  왜냐? 그것은 '빵 갖다줘'→'왜?' '먹고 싶어서'→ '왜?'→ '배고파서' → '왜?'→'이 집 식사가 부실해서!' 이런 전개가 되서 집주인을 모욕하는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지 방에 술이 있는 것 조차 집주인꺼 도둑질한 것인데, 하인이 의심하면 탄로날 것이고. 집주인 기분상하게하면 결말이 안 좋을게 뻔하기 때문에 술안주를 몰래 마련해야할 처지가 됨.  그래서 옷을 차려입고 집 바깥에 나가게 되는데.... 나 자신이 빵을 사자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칼을 찬 훌륭한 신사가 빵 한 조각을 사러 빵집에 가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마침내 나는 어느 공주의 궁여지책이 생각났는데, 그녀는 농부들이 빵이 없다는 말을 듣고 "브리오슈를 먹으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브리오슈를 샀다. 그러기까지 또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위해 혼자 나가 때때로 시내 전체를 돌아다니고, 30개나 되는 제과점들 앞을 지나친 후에야 겨우 어느 가게로 들어갔다. 내가 가게 문턱을 감히 넘기 위해서는 가게에 단 한 사람만 있어야 하고 그 사람 인상이 대단히 내 마음에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일단 이 사랑스런 작은 브리오슈를 손에 넣고 내 방에 꼭 틀어박혀 벽장 깊숙한 곳에서 내 포도주 병을 찾았을 때는, 소설 몇 쪽을 읽으면서 거기서 혼자 얼마나 맛있고 조촐한 술잔치를 벌였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먹지 않을 때면 나는 언제나 엉뚱하게도 먹으면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없는 사교모임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나는 번갈아 가며 책 한 쪽을 맛나게 읽고 한 입 맛나게 집어삼켰다. 마치 내 책이 나와 함께 회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술안주가 필요한 장자크 루소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게 '빵 대신 브리오슈'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였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마침내 '빵이 아닌' 브리오슈를 사와서 도둑질한 술과 먹었다는 것이 전부인 이야기임. 근데 장자크 루소가 이것저것 써놓은게 많다보니 프랑스 혁명기에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읽었구만유.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 먹으라 했다고 루소 선상님이 써놓으셨다니께유!' '루소 선상님이?! 그럼 틀림없겠구만....그 오스트리아년이 그러고도 남지 아무렴!' 이런 식으로 날조되서 퍼져버린 것임.  프랑스 혁명기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빵 대신 케이크'이야기는 일단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음. 근데 '케이크'는 영국애들이 '브리오슈'가 뭔지 잘 와닿질 않으니 '빵이 아닌' 케이크로 바꿔서 영문으로 cake로 해버린 것임. 1. 장자크 루소가 어디선가 주워들었다는 '빵 대신 브리오슈'라고 써놓은 것이 2. 프랑스 해외로 전파되면서 '빵 대신 케이크'로 둔갑하게 된 것. 브리오슈는 쵸큼 어려우니까 '케이크'라고 합시다! 해서 널리 퍼진 것인데... 읭? 빵이구만? 그거슨 밑에 나오는 코스에 답이 있음. 디-저트로 제공되는 되는 음식임.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면 빵이겠지만 후식으로 제공되는 약간 빵과 과자의 중간지점에 있는 빵 아닌 빵. 그래서 칼찬 훌륭한 신사인 장자크 루소가 빵집에서 빵을 사는 것은 매우 부끄럽지만 '브리오슈'를 사는 것은 쵸큼 부크러운 정도로 끝나는 것임.  영국에서는 그것을 '케이크'로 초월번역해버린 것. 이 시점에서 '어느 공주'가 했다는 그 부분에서 그 '어느 공주'가 마리 앙투아네트 였던 거 아니냐?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발행이 1782년인데, 그것은 말 그대로 '발행'한 년도고 쓰기시작한 것은 1766년, 완성한 것은 1769년임.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에 태어나서 장자크 루소가 저거 쓰기 시작할 때에는 불과 12살이고 장자크 루소가 '빵대신 브리오슈'라는 카더라가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술도둑 시절은 1740년임.  1740년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태어나지도 않았음.  결론적으로 장자크 루소가 카더라로 전해들은 '어느 공주'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될 수 가 없음.  그러니까 '알고보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농민들을 가엾게 생각해 브리오슈라도 먹으라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한 것 뿐인데 그것이 이 와전된 것이다'라는 주장 역시 성립 안되는 것임.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을 수 도 있겠지만, 그 발언의 주인공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될 수 없음.  (루이14세의 왕비인 마리테레즈가 한 거다! 라는 설도 있긴 함.) 3줄 요약 1. 장자크 루소가 젊은 시절에 가정교사하던 집에서 술 몰래 훔쳐먹다가 술안주로 '빵 대신 브리오슈'라는 이야기를 자기 자서전에 써놓음. 2. 프랑스 혁명기에 반 왕당파들이 유명한 장자크 루소가 적어놓은 구절을 가지고 선동과 날조로 승부했는데, 그 승부에서 이긴 것. 3. 마리 앙투아네트가 장자크 루소가 써놓은 '어느 공주'가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 그외에 그런 말 했다는 증거도 없음.  출처 이제 마리 앙트와네트의 누명을 벗겨 줍시다!
스페인의 핵무기 개발
주말 특집, 하면 역시 핵이지. 독재자들은 으레 핵무기에 대한 끌림이 있게 마련인데 알아보니까 역시나, 스페인의 프랑코도 핵무기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었다. 역사의 여러 사건이 그러하듯 우연한 계기에 이곳 저곳의 상황이 맞물려서 돌아가다가 결국은 미국이 승리하는 그런 이야기다(참조 1). 시작은 프랑스다. 워낙 기초가 든든했고, 대학원에 가라는 장모의 명에 따라 착실하게 학위를 받은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참조 2)와 부인인 이렌 퀴리가 이끈 핵에너지위원회(CEA), 이걸 무조건 지원해 준 드 골 덕분에 50년대 말이 되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는 나라가 프랑스였는데 문제는 시장성이었다. 수출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라팔과 비교하지는 맙시다.) 원래 프랑스는 자신의 천연우라늄흑연가스(UNGG) 원자로를 인도에 판매하려 했었는데(라팔 아니라니까), 미국 관점에서 이 UNGG 방식의 원자로의 가장 큰 단점은 플루토늄을 생산해내는데 쓰인다는 점이었다. 미국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인도가 결국 프랑스 원전을 못 사게 하는데 성공했고, 그대신 미국이 개발한 비등경수로(BWR)를 넘긴다. 판매가 아니라 “넘긴다”에 주안점을 두셔야 한다. 인도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물론 미국의 노력과 의도와는 관계 없이 인도는 1974년, 캐나다의 도움으로 얻은 플루토늄으로 핵실험에 성공한다. 이건 다른 주제다.) 그렇다면 어디에 팔아야 할까? 이 때 접근한 곳이 스페인이었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코가 독재를 하는 국가였으며 비록 소련보다는 서구에 가깝기는 했어도 데면데면하는 사이였다. 특히 민주주의하는 국가 미국이 대놓고 돕기 좀 뭐한 나라였다는 얘기다. 그래도 미국이 스페인에게 웨스팅하우스의 가압수경수로(PWR)를 설치해준다. 이걸로 만족하라는 예방용이다. -------------- 이 틈을 프랑스가 파고들었다. 우리가 제공하는 원자로를 사시면 플루토늄을 얻으실 수 있다는 점이 세일즈의 포인트, 게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은 지리적 인접성때문에 이미 전력 교환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있어서 스페인의 장점은? 장사가 된다는 점 외에, 우라늄 광산이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접경 지역이다. 게다가 드 골 치하의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을 믿지 않았고, 그렇다고 하여 서독에게 핵무장을 하라고 권유하기는 참 뭐하기 때문에 파트너로 스페인을 택한 것도 있었다. 나중에 미국이 프랑스를 돕는 이유와도 꽤 유사하다(참조 3). 스페인에 있어서 프랑스의 장점은? 위에 썼지만 뭣보다 플루토늄이다. 또한 EEC 가입을 장기적으로 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게다가 프랑스 남부 산업지대와 연결해서 전력을 팔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위치는 카탈루니아로 정해진다. 바로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 반데요스(Vandellòs) 원자력 발전소다. 이때가 1964년. -------------- 스페인에는 유명한 투우사도 있지만, 투우사를 죽인 소는 더 유명세를 얻는다. 그중 하나로 이슬레로(Islero)라는 소가 있었는데, 프랑스와 함께 핵발전소 건설 발표를 한 1964년보다 1년 앞선 1963년, 스페인의 1급 비밀 핵무기 프로젝트가 바로 이 이름을 갖고 탄생한다(참조 4). 프랑코와 프랑코의 2인자였던 카레로 블랑코(Carrero Blanco) 제독의 걱정거리는 당시 독립 직후, 에너지가 충만한 모로코가 언제든 스페인 영토(참조 5)를 빼앗으려 들 것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독립 직후, 에너지가 충만한 모로코가 언제든 스페인 영토(참조 5)를 빼앗으려 들 것지도 모를 일이었다. 포르투갈이 인도의 침략을 받아 고아를 그냥 넘겼을 때처럼, 미국은 그런 상황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 뻔했었다. 그래서 스페인은 1968년 있었던 비확산조약(NPT)에도 서명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론은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뇌관과 같은 핵심 부품을 어떻게 만들지 몰랐기에 연구는 그다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결국 바깥에 노출된다는 프랑코의 걱정도 있었고 말이다. 이걸 해결해 준 건 의도치 않게 일어난 한 사건이었다. -------------- 1966년 1월 17일에 있었던 Palomares 사건(참조 6)이다. 스페인 영공을 지나던 미국 공군의 B-52 폭격기가 급유를 받으려 하다가 급유기(KC-135)와 충돌하여 추락했는데(승무원 7명이 사망했다), 대단히 큰 문제가 있었다. B-52 폭격기에 있었던 핵폭탄이 유실된 것이다. 소련이 가져가면 안 될일이기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게다가 방사능 물질마저 떨어져 있었다(물론 당시 프랑코 정권은 안전하다면서 여행부장관과 주스페인 미국 대사가 해당 지역에 가서 해수욕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스페인이 당시 떨어진 폭탄의 잔해(떨어진 4개 중 2개가 파괴됐었다) 일부를 회수했고 그걸 조사분석한다(참조 7). 미군에 알리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 스페인은 1967년, 핵폭탄 제조 가능 상태가 됐다(참조 7). 두 번째 필요한 건 플루토늄, 위에서 프랑스의 도움을 얻어 추출이 가능한 발전소를 짓기로 했지만 일단은 마드리드 대학 내에서도 군사용 플루토늄을 뺄 수 있는 고속반응로를 설치한다. 당연히, IAEA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말이다. -------------- 이제 준비가 됐다. 프랑코 정권의 2인자였고 장래 프랑코의 뒤를 이을 것으로 촉망받았던 블랑코 제독은 이슬레로 프로젝트에 대한 서류를 들고 1973년 12월 19일 헨리 키신저를 만난다. 미국과 보다 대등하게 관계를 설정하기에 앞서 스페인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점을 비밀리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키신저와 만나고 나오면서… 그는 암살당한다. (일단, 범인은 바스크의 ETA였다.) -------------- 물론 고위급 암살이 스페인의 핵개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블랑코 제독이 암살당한지 2년 후 프랑코도 사망했고, 스페인은 민정이양이 됐지만, 이슬레로 프로젝트 자체는 민간 정부도 중단시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독재자 킬러 지미 카터 정부는 이전과 달랐다. 미국은 스페인에게 NPT 가입을 촉구했고, 경제제재를 위협한다. 어차피 농축우라늄을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고, 미국이 지어준 핵발전소 부품은 미국이 제공하고 있었으니, 미국 말을 들으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81년 스페인에서 쿠데타 시도(Golpe de Estado en España de 1981)가 일어났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직접 나서서 쿠데타 시도를 막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미국은 이를 계기로 새로 성립된 스페인 정부(Leopoldo Calvo Sotelo)를 압박하여, 핵무기 불사용 및 반데요스 핵발전소에 대한 감시를 조건으로 IAEA에 스페인을 가입시킨다. 이슬레로 프로젝트의 종말이었다. NPT는? EEC에 스페인이 가입(1986년)하는 조건이었다. 결국 스페인은 NPT도 1987년 체결했다. -------------- 참조 1. 당연히 느끼셨을 텐데, BBC의 해설가 Gary Lineker의 유명한 발언, “Football is a simple game; 22 men chase a ball for 90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always win.”의 패러디다. 2. 핵의 무기화에 반대했던 공산주의자이자 실제로 공산당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드 골이 직접 임명했다. 그의 중용은 좌우 모두의 협공을 받았던 드 골 정권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인사 중 하나랄 수 있겠다. 3. 프랑스의 핵잠수함(2020년 9월 15일): https://www.vingle.net/posts/3109164 4. Proyecto Islero, la bomba atómica que España pudo tener durante el franquismo(2016년 11월 13일): https://www.elconfidencial.com/tecnologia/2016-11-13/proyecto-islero-la-bomba-atomica-que-espana-pudo-tener-y-no-tuvo_1288538/ 5. 페레힐 / 라일라 섬 사건(2002)(2020년 4월 17일): https://www.vingle.net/posts/2877201 6. Incidente de Palomares : https://es.wikipedia.org/wiki/Incidente_de_Palomares 7. La bomba atómica que Franco soñó(2001년 6월 10일): https://www.elmundo.es/cronica/2001/CR295/CR295-12.html 8. 짤방 출처는 여기, https://twitter.com/Mangeon4/status/1352152792065040384 이 책의 저자가 이슬레로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동화 같은 실화' 마법의 나무에 사는 고양이, 루나
올해 17살의 고양이 루나는 아기 고양이 시절부터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나무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나무,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는 날이기 때문이죠. 밤만 되면 반짝이는 불빛을 아름답게 뽐내는 신기한 나무를 보며 잠이 들곤 했습니다. 반면, 루나가 가장 슬퍼하는 날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치우는 날입니다. 가족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철거할 때마다 허겁지겁 달려와 팔을 붙잡고 말리곤 하였죠. 17년째 루나를 모셔온 집사, 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 트리를 다시 내려야 할 시기가 왔을 때, 어느 때처럼 루나가 달려와 숀 씨의 팔을 붙잡고 만류했습니다. 그녀는 어느 때와 같이 웃으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철거하려 했으나, 그날따라 훌쩍 늙어버린 루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소원이라고. 그렇게 느껴졌어요." 비로소 평생 아기일 것만 같았던 나의 반려동물이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깊게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숀 씨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루나의 표정을 보며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며 크리스마스 트리와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꼭 크리스마스에만 트리를 밝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요." 이것이 루나네 집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1년 내내 환하게 빛나는 이유입니다. 고정관념이 한 번 깨지자 숀 씨의 눈에 더욱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루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숀 씨는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캣타워와 집을 배치했고, 루나는 밤만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 옆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이 듭니다. 어린이 책의 작가이기도 한 숀 씨는 '마법의 나무에 사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집필해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것이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에 근거해 작성했음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때론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많은 행복을 포기하곤 해요. 하지만 고정관념만 조금 깨면, 행복은 결국 우리 나름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여름에도 꺼지지 않는 마법의 크리스마스 나무처럼 말이죠." 여러분이 반려동물에게 걸어줄 수 있는 마법은 무엇인가요? 사진 The Dodo, @SHAWN MEYER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한국의 농업 혁신 기업; Farm8
팜에이트 Farm8. 2004년 설립된 한국의 농업회사임 수직 농업 회사이기 때문에 논과 밭이 아닌 공장을 가지고 있음 영화속 장면 아닙니다. 공장 내부임 핑크색인 이유는 led의 빛을 조절해서 식물의 생장을 돕기 때문에 시간 맞춰 색색깔의 색을 비춰줌 이렇게 깜빡깜빡하면서 최적의 빛조합을 뿌려줌 그래서 햇빛이 없는 곳에서도 잘자람 그래서 남극에도 이렇게 서울 지하철에도 설치했음(상도역 외 4곳) 햇빛 없이 수도랑 전기만 있으면 되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채소를 서브웨이, 버거킹 롯데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롯데리아, KFC, 스타벅스, CU, GS25 에 납품해서 2020년에 한 해 매출 560억원 달성함 일본에도 설비 수출했고 내년엔 싱가폴, 몽골, 중동에도 설치하러 감. 참고로 기존 양상추가 1년 2번 수확에 6-7명이 필요하다면 1년에 9번 재배 가능, 0.5명의 인력만 필요 재배기간도 90일에서 40일 단축. 빛과 비료 온도 습도 모든 걸 데이터화해서 최적의 양육환경을 제공하기 때문 (폭우, 폭염, 가뭄, 폭설 다 상관없음) 이 회사는 3대 아시아 어그테크 기업으로 손꼽힘(세계 10대 스마트팜 회사) (어그테크=농업기술) 아직 상장 안함(내년에 코스닥IPO 예정이라는듯?) (출처) 여태 매번 (주로 해외) 작품들을 제 방식으로 소개했지만 이건 다른 분이 써놓은 글을 가져왔습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너무 멋있는 회사네요 :)
찬실이는 복도 많지(LUCKY CHAN-SIL, 2019) 쓰잘데기로 환원될 수 없을 삶
제목 : 찬실이는 복도 많지(LUCKY CHAN-SIL, 2019) 감독 : 김초희 출연 :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외 국가 : 한국 러닝타임 : 96분 시작 전에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짧은 찬사부터 보내겠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정말 오랜만에 본 예쁜 영화였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영화는 막상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잔잔한 울림도 있고 아무튼 저는 참 좋았습니다. 상업영화의 세련됨은 없지만 촌스럽더라도 우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독립영화 특유의 그런 느낌도 좋았고요. 솔직히 살짝 지루한 감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정말 X 3 좋았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 결코 '쓰잘데기'로 환원될 수 없을 삶 그 사람 무슨 일하는데? 그래서 연봉이 얼만데? 사람의 가치를 경제력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쓰잘데기' 로 규정하는 것은 속물 같지만 동시에 잔인하도록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걔네 집 아파트 베란다에 장미꽃이 있니 빨간 벽돌집이니의 감성적인 이야기보다는 '얼마짜리' 집이냐,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의 경제적 지표가 어른들에겐 더 많은 걸 알려줍니다. "사람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명제는 참이지만 동시에 "빵 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라는 명제는 더 잔인한 참이거든요. 세상 천지에 돈 아닌 게 없죠.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어린이 여러분들은(아무도 없겠지만) 어른들이 너무 돈 돈 거린다고 미워하지 말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 품었던 막연한 환상과 달리 세상은 그리 천진난만하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리는 일 따위는 아무런 쓸모도 없고 먹고살려면 좋든 싫든 비행기가 추락해 사막에 표류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파일럿이 돼야만 하죠. 정말 많은 어른들이 먹고살려고, 남들에게 '쓸 데 있는' 일을 하는 '쓸 데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아등바등 기를 쓰며 살아갑니다. 좋은 집, 좋은 차 기타 등등의 것들을 위해 말이죠.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 '찬실이(강말금)'는 어린 왕자의 주인공보다는 어린 왕자 같은 인물입니다. 오랜 세월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별게 없습니다. 사람 넷이면 충분한 단출한 이삿짐, 그 속에는 영화인의 꿈을 꾸게 해준 철 지난 비디오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열심히 일했건만 집도 차도 없는 그녀는 정말 본인의 말처럼 땡전 한 푼 없이 망해버렸습니다. 맘을 다잡고 그래도 모처럼 열심히 살아보려는데 연애도 뜻대로 잘 안돼, 재취업도 잘 안돼 뭐 되는 게 없어요. 영화사 대표는 굳이 당신이 아니라 누가 PD를 해도 상관없이 영화는 만들어진다며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맥입니다. 말하자면 "메시가 혼자 축구 다 한 거지 뭐 다른 애들이 별게 있겠니?"의 느낌이랄까요. 연애에서 자존감을, 대표님과의 만남에서 자존심을 두드려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찬실이의 멘탈. 그녀는 이사 간 집에서 만난 장국영 귀신의 조언대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이, 아주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장고 끝에 찬실이는 결심합니다. 영화를 버리기로 말이죠. 아름다운 이름과는 다르게 찬실이의 젊음을 다 바쳤건만 아무런 '영화' 도 가져다주질 않았던 영화를 버리고 늦었지만 비로소 부귀영화, 입신양명의 다리가 되어줄 '쓰잘데기'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했습니다만 그녀의 어린왕자병이 도집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 영화일. 대표님 같은 속 모르는 남들 눈에는 하등 쓸데 없는 일로 비친다 해도 본인은 죽어도 영화가 아니면 안 되겠답니다. 결국 찬실이는 지구인의 바람직한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고향 소행성의 법대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하기로 합니다.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쉬이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달려 허송한 세월은 다시 돌아올 수 없어도, 주인집 할머니의 말처럼 "사람은 꽃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해도 포기 않는 삶은 아름답지 않겠냐고. 본인을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삶일 수 있지 않냐고 말이죠. 사랑도 돈도 명예도 모두 쉬이 가질 수 없다고 해도, 끝내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본인을 응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세상의 눈에는 쓸데 없는 삶으로 비치는 생(生)도 그럭저럭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하여 우리의 가치를 '쓰잘데기'로 규정하고 삶을 단지 쓰잘데기만으로 환원하기엔 아깝게 버려지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못생긴 모과를 올려다보며 잡생각에 빠지는 일은 하등 쓸데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일축해버릴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일 역시 하등 쓸데 없는 일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쓰잘데기가 없다고 해서 본인이 사랑하는 행위들을 죽여버리고 지극히 계산적으로 쓰잘데기만 챙기는 건 또 옳은 일입니까. 역시 지지리 철 못 드는 저란 인간은 이런 차가운 계산기 같은 분들에게 술 취한 어린 왕자처럼 한 마디 쏴주고 싶습니다. 당신드뤼 노을의 낭만을 아러?! 쉬1불, 의자 위치 바꿔가면서 하루종일 보는 그 맛을 아냐고. 마, 느그 집엔 바오밤나무 없제?! 책을 열심히 읽지 않으신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사실 어린왕자 개정판에는 생땍쮜뻬뤼 행님이 주정뱅이 행성에서 주정뱅이와 어린왕자가 양장피 안주로 빼갈에 맥주를 말아마시는 장면을 넣어놓으셨거든요. 물론 넝담ㅋ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세상의 모든 루저들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스스로를 위너보다는 루저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저 역시 영화를 보며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를 쓰겠다는 바보 같은 꿈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 사이, 본인이 비대한 꿈과 비루한 날개를 가진 불쌍한 닭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고 아예 접어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차에 생각도 못한 영화에서 위로를 받네요.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해 보니 닭은 날지 못해도 어느 새보다 기똥차게 울어제낄 수 있는 새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시계가 없었을 그 시절에 닭 울음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소음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침을 깨우는 고마운 소리였을 겁니다. 감히 제 글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는 그런 작은 바람 하나로 또 쓸데없는 글을 몇 자(몇 자라고 하기엔 조금 양심 없는 분량인가요?) 적어봤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음에 불과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면 울음을 멈추진 말아야겠죠.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서 문득 예전에 본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그 때도 비슷한 위로를 받았었는데 말이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뷰도 조만간 업로드 하겠습니다. 혹시나 까먹을지도 모르니 우선 원문 주소를 첨부해 놓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fox11142/221972259217
나라와 나라를 잇는 시소, 본 적 있나요?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핑크색 막대기 바로 시소. 근데 시소가 왜 한 쪽 밖에 없냐고요? 왜 벽에 붙어 있냐고요? 이 시소들은 바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 시소는 2020년 Beazley에서 올해의 디자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텍사스 엘파소와 시우다드 후아레스 사이에 설치됐고, 20피트(피트 단위 정말 싫네요-_- 감을 잡을 수가 없네) 길이의 장벽임에도 시소 덕분에 장벽 너머의 사람들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트럼프 임기중 분열됐던 시기라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해요. 오클랜드에 기반을 둔 Ronald Rael과 Virginia San Fratello 두 사람이 만들어낸 프로젝트. 비록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너무 행복해지지 않나요. 시소는 그렇잖아요. 한 쪽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움직임이 달라지게 되니, 그래서 시소라는 아이디어를 착안한 게 아닐까 싶어요. 찾아보니 작가들도 이렇게 이야기를 했군요. "한 쪽의 행동이 다른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두 사람, 두 국가가 평등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균형을 나타냅니다. 시소가 흔들리는 것은 황금률의 물리적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기를 바라는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십시오. 모든 문화와 종교가 공유하는 격언입니다. 흔들리는 기쁨을 경험하려면 상대방도 기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프로젝트들도 많이 만날 수 있으니 확인해 보시길.
영국왕실에서 여왕 다음가는 티아라 컬렉션을 보유한 사람
은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포함한 조지5세(여왕 할아버지)의 아홉 손주 중 가장 어린 현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의 아내, 글로스터 공작부인 브리지트 수십개에 달하는 여왕의 티아라 컬렉션과 달리 브리지트는 단 네개의 티아라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여왕 다음가는 컬렉션을 보유했다고 평가받는데 그 이유는 1. 며느리 둘과 고명딸, 세사람이 나눠가져야 했던 켄트 공가와는 다르게 브리지트는 아들만 둘이었던 글로스터 공가의 유일한 며느리로서 시어머니 앨리스 공주의 컬렉션을 온전히 물려받음 2. 마지막 ‘플러스원’이 있음 이 두가지가 주로 언급되더라구 그럼 티아라 네개를 한번 살펴보지 않을래~?~?~? 1. [글로스터 허니서클 티아라] 약간 머리띠 같기도 하고? 화려한건지 심플한건지 그냥 봐서는 종잡기 힘든 이 티아라는 절대다수의 영국왕실 티아라들이 그렇듯, 메리 왕비(조지5세의 아내. 현 여왕의 할머니)의 소유였어ㅋㅋㅋ 왕실규모나 국력을 생각하면 빈약하기 그지없던 영국왕실의 주얼리 컬렉션은 이분이 거의 재창조 했다고 보면 됨... (주얼리 뿐만 아니라 이집안 근간을 다시 세운 인물) 1935년, 셋째 아들 헨리가 버클루 공작의 셋째딸 레이디 앨리스 몬태규 더글라스 스콧과 결혼할때 메리는 이 티아라를 새 며느리에게 결혼선물로 주었고 2004년 메리가 102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이 티아라는 며느리 브리지트의 소유가 되었고, 그녀가 가장 즐겨 착용하는 티아라야 이 티아라에는 재밌는 기능?이 하나 있는데 요렇게 또 요렇게 공주놀이 세트에 들어있는 티아라 마냥 센터스톤을 바꿔서 착용할 수 있다는 점ㅋㅋㅋㅋ 한가지 티아라로 여러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는 특이점이 있어 2. [테크 터콰이즈 티아라] 그동안 막연하게 터키석은 촌스럽고 안예쁜 보석이라고 생각했던 나새기... 반성중... 카보숑컷의 질 좋은 터키석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 티아라는 1893년에 테크 공가의 메리 공녀가 부모님께 결혼 선물로 받은 티아라라고 해. 메리 공녀가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겠어 또 메리 왕비야...ㅋㅋㅋㅋㅋㅋ 근데 위의 티아라와는 약간 모양이 다르지? 이 티아라도 앨리스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는데, 그당시에 촬영된 이 영상을 보면 현재의 형태와 같은 모습이야! 메리가 1912년에 왕실 보석상에게 의뢰해 모양을 변형했다고 해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이 티아라는 앨리스의 최애 티아라가 되었고 본인이 사망하기 이전에도 종종 며느리 브리지트에게 티아라는 물론 귀걸이와 목걸이, 브로치까지 풀 스윗을 빌려주다가 위의 허니서클 티아라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브리지트의 소유가 되었어 3. [Iveagh 티아라] 이 티아라는 디테일샷이 없어서 원주인의 착샷으로 대신할게. 메리 왕비야. 이쯤되면 놀랍지도 않음ㅋㅋㅋ 메리에게 이 티아라를 선물한 사람은 가족도, 남편 조지5세도 아닌 아일랜드 최고의 갑부이자 귀족 Iveagh 경이었어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냥 ‘아이비’로, 저 집안 사람들은 ‘아이브어~’로 발음한다길래 그냥 영어 그대로 표기할게) tmi인데 이 귀족 아저씨 이름이 뭔줄 알아? 에드워드 ‘기네스’래 아일랜드 사람인데... 기네스...? HOXY...? YES... 그 기네스 맥주가 이 아저씨 집안꺼였음... 위인이야 진짜... 암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메리는 1953년 사망하면서 이 티아라를 일평생 사람 취급도 안했던 첫째 며느리, 왕비가 될 둘째 며느리, 말 많고 탈 많았던 막내 며느리 그리고 단 하나뿐인 딸 대신 셋째 며느리 앨리스의 몫으로 남겼고 앨리스는 1974년 남편 헨리가 사망하고 아들과 며느리가 새로운 공작부인이 되기 전까지 이 티아라를 즐겨 착용하다 이후로는 브리지트가 몇번 착용하고 공식석상에 등장함 2008년 브리지트의 둘째딸 레이디 로즈 윈저가 웨딩 티아라로 착용해서 재조명 되기도 했어! 4. [까르띠에 인디안 티아라] 드디어 나왔다 플러스원!!! 까르띠에가 만든 주얼리 중 가장 exquisite한 피스라는 찬사가 붙는 이 티아라는 빅토리아 여왕의 셋째딸, 헬레나 공주의 막내인 마리 루이즈 공녀의 소유였어. 마리 루이즈는 자식 없이 남편과 이혼한 후(남편의 동성애 성향 때문이었다고 함) 재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녀의 대자(godson)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 브리지트의 남편 리처드야! 마리 루이즈는 이 티아라를 리처드에게 유품으로 남겼고 이는 브리지트가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지 않은 유일한 티아라가 되었어. 혹자는 브리지트의 티아라 컬렉션이 여왕의 그것과 견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 티아라의 존재라고 말할 정도로 존재감이 어마무시한 티아라야 보기만 해도 그 평가가 이해되지 않니? 진짜 엄청나다는 말이 어울리는 티아라라고 생각해! 프로필 사진 촬영중에 딸과 이 티아라로 장난치는(ㄷㄷ) 브리지트 사진으로 글 마무리 할게! ㅊㅊ 디미토리 와 뭐야 부내 개쩐다ㅇㅇ; 글 퍼오면서 대체 이런 글은 어떤 사람들이 쓰는 건가 궁금해짐 살면서 1도 몰랐을 이야기인데.. 덕분에 개흥미돋 꿀잼 근데 티아라.. 한번 실물 봐보고 싶다 눈뽕 오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