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her
10,000+ Views

일본 국민가수의 비극

일본의 전설적인 국민가수 사카모토 큐
그는 60년대부터 70년대 80년 대까지 30여 년간 일본의 국민가수였다.
특히 그의 많은 히트곡들 중 '위를 보고 걷자'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얼마나 인기가 많았냐면 3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하였는데 이는 동양인 최초의 빌보드 차트 1위였다.
사카모토 큐는 그 후에도 여러 장의 앨범을 히트시키며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가 되었고 영화배우 mc 연기자 등 다방면의 활동으로 일본인들의 큰 사랑과 인기를 받았다.
그런 사카모토 큐에게는 한가지 특이한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비행기를 탈 때는 무조건 일본항공이 아닌 전일본공수의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과거 일본항공의 사고들 때문이었는데.
과거 일본항공은 예전 대한항공만큼이나 사고가 잦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프로덕션과 가족들에게 전일본공수의 비행기 표만을 구해달라고 하였다.
그런 그가 딱 한 번 전일본공수의 표를 구하지 못하여 일본항공을 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바로 1985년 8월 12일이었다.
그날 사카모토 큐는 오사카에 있는 지인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위해 도쿄에서 비행기에 탑승한다.
마침 그땐 일본의 추석인 오봉이어서 사카모토 큐는 한사코 전일본공수의 표를 원했지만 전일본공수의 표는 다 매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프로덕션은 일본항공의 표를 구매해주었다.
사카모토 큐는 아침 일찍 공항으로가 전일본공수로 표를 바꾸려 했지만 오봉 때문에 남는 표가 도저히 없어 어쩔 수 없이 도쿄발 오사카행 일본항공 123편에 탑승한다.
그리고 그가 비행기에 오른지 55분 뒤 일본항공 123편은
군마현 능선에 추락한다.
(사고 당일 이륙 직전의 123편의 모습)

이 사고가 바로 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인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이다.
이 사고는 탑승자 524명 중 520명이 사망하고
단 4명만이 생존한 일본항공 최악의 참사였다.

그렇다면 이 비행기에 탑승했던 사카모토 큐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시간, 같은 노선에 ANA 항공편도 있어서 가족들과 소속사는 JAL의 사고 소식에 처음엔 안도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발표된 승객 명단에 사카모토의 본명인 오시마 히사시와 매니저인 고미야 카츠히로가 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

안타깝게도 사카모토 큐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탔고 남은 치아와 결혼식을 올린 신사에서 받은 펜던트만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한다.
평생을 일본항공을 기피하던 사카모토 큐는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탄 일본항공이 추락하여 비극적으로 삶의 끝을 맞이한다.

이 사고로 열도는 충격에 빠졌으며
지금까지도 일본 국민들은 사카모토 큐를 비롯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위를 보고 걷자 (上を向いて歩こう)

*

上を向いて歩こう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思い出す春の日 一人ぼっちの夜

上を向いて歩こう にじんだ星をかぞえて
思い出す夏の日 一人ぼっちの夜
幸せは雲の上に 幸せは空の上に

上を向いて歩こう 淚がこぼれないように
泣きながら步く 一人ぼっちの夜

(口笛)

思い出す秋の日 一人ぼっちの夜
悲しみは星のかげに 悲しみは月のかげに
上を向いて歩こう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泣きながら歩く 一人ぼっちの夜
一人ぼっちの夜

위를 보고 걷자 눈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생각이 나는 봄날 혼자뿐인 밤

위를 보고 걷자 번지는 별을 세면서
생각이 나는 여름날 혼자뿐인 밤
행복은 구름 위에 행복은 하늘 위에

위를 보고 걷자 눈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울면서 걷는 혼자뿐인 밤

(휘파람)

생각이 나는 가을날 나 혼자뿐인 밤
슬픔은 별그늘에 슬픔은 달그늘에
위를 보고 걷자 눈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울면서 걷는 나 혼자뿐인 밤
나 혼자뿐인 밤



+) 뒷 이야기

참고로 참사시 블랙박스기록은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를 고려하여 공개하지 않고 조사 후 삭제하나 일본방송국이 몰래 녹취본을 유포하여 추락전 20여분간의 조종석 음성이 남아있으며 유튜브에서 쉽게 들을수있다.

- 여기서 일본정부가 뻘짓거리한게 기체가 추락후 얼마 안있어 비가 왔다. 그래서 불이 크게나지않아 생존자가 많았는데 일본정부가 비오니 생존자가 없을듯 내일 구조해야지 하고 추락 12시간 후에 구조를 시작.

그래서 생존자들 저체온증으로 거의 다 사망.... 생존자 4명의 증언을 들어보면 추락후 여기저기 생존자들이 많았고 서로 이름부르고 말도했다고 한다.

헬기가 접근하자 다들 필사적으로 손흔들었는데 비온다고 무시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 미군이 구조하려했으나 일본정부에서 막았다고 한다. 세월호와 많이 비슷한 사건

- 당시 미군이 추락을 감지하자마자 C-130 수송기를 그 한밤중에 띄워서 추락 단 20분만에 추락 현장을 찾아냈다. 1시간만에 구조헬기가 현장에 투입되어 바로 주일미군 투입으로 구조가 가능하다고 일본 정부에 말했지만 일본 정부는 구조를 거부한다.

근처의 자위대 부대에서도 구조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고 당장 투입이 가능하다며 구조 승인을 내려달라고 하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화가 난 당시 자위대 지휘관은 구조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자발적으로 부대를 움직여 구조에 나서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해당 지휘관은 이후 모반 위험이 있다며 좌천되었다.


-

일본의 대처도 정말 형편없었군요.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다니... 정말 세월호와 비슷한 사건이었네요 ㅠㅠㅠ

그나저나 이쯤 되면 누군가가 사카모토 큐에게 일본항공을 타면 죽는다고 귀띔해 준 게 아닐까요. 하지만 운명을 바꿀 수 없었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7 Comments
Suggested
Recent
박그네랑 비슷
이 분 은하철도999 일본 원곡 부르신 분 아닌가?
저거 예전에 녹음소리 들었는데 한동안 경고음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음 비행기 사고는 왠만함 전원사망이더라..;;
당시 자위대 훈련과 관계가 있어서 그거 감추려고 구조 늦췄다는 얘기도 있던 그 사건이군요...
운이없으려니 이렇게 운이 없네요 그동안 안타던 항공기가 하필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미국 흑인들이 백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
[터스키기 매독 실험] 1932 ~ 1972년, 40년간 이루어진 흑인 생체실험으로 미국의 한 미치광이 과학자가 독단적으로 생체실험한 것도 아니고 '미국정부'에 의해 공식으로 이루어진 생체실험. 당시 터스키기 지역에 매독에 걸린 흑인이 많았는데 가난한 탓에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생체실험을 하기로 한다. 테마는 '매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인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 정부에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에 걸린 흑인에게 'bad blood'이라는 병에 걸려있으니 치료해주겠다고 접근 뇌척수액을 뽑고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약이라고 나누어 주었으며, 좀더 많은 실험값을 얻기위해 흑인들에게 무료 처방을 해준다며 '광고' 까지 진행했다. 더욱이 웃긴건 매독을 치료할수있는 페니실린이 1943년에 나온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참고로 얼마나 악질이냐면 매독에 감염된 흑인이 아이를 낳으면 매독에 감염된 채로 태어난다는것을 알고 산모의 매독 감염 진행상황에 따라 태어난 아이의 매독 심각도의 상관관계도 연구했으며 매독에 걸린 아이를 살리기위해 매일같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왔던 흑인부부의 아이도 백인 의사들은 별다른 치료없이 경과를 지켜보며 꼼꼼히 보고서'만' 작성했다. 1972년 7월 25일 이 실험은 언론에 공개되었고 이후 실험은 중단되었다. ㅊㅊ 더쿠 진짜 미친거 아닌가... 찾아보니까 결국 1973년 실험은 중단되었고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까지 열리게 되었지만 생체실험에 직접 참여했던 의사들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들은 어차피 가난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사람들인데 그냥 죽을 바에야 의학발전에 기여하고 죽는 게 낫지 않는가" 라고 발언하여 공분을 샀다. 이딴 개소리도 했다고 하니 진짜 사탄도 혀를 차고 뭔 일 나기전에 지옥으로 돌아갈듯;;;
펌) 남편이 가위를 5개월 넘게 눌리고 있습니다 + 후기
안녕하세요.. 주변에 물어봐도 딱히 명쾌한 답을 들을 수가 없어서 여쭤보고자 합니다. 저는 결혼 1년반차인 헌댁이고요 남편과는 34살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저희는 시댁이나 친정 문제도 없고.. 맞벌이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남편이 가위를 눌리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하게는 가위+악몽에 가깝다고 해야하나요 자다 새벽에 비명을 지르면서 깨거나 발작적으로 기겁하면서 일어나거나 발을 허공을 향해 걷어차거나  제 팔을 너무 세게 쥐어서 피멍이 든 적도 있습니다. 요즈음엔 제가 침대 밑에서 자다가 상태가 안좋으면 깨워줍니다. 일주일에 4~5일정도를 가위를 눌린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꿈이나 가위의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디테일할때도 있고 그냥 압박감을 느끼고 몸을 못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너무 다양해서 뭐가 원인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부부사이에는 문제가 없고, 회사에서도 크게 별 다른 일은 없다고 하는데 이 가위때문에 남편 몸무게가 17키로 정도가 빠졌습니다. 거의 하루에 제대로 자는게 2시간 남짓도 안될 때가 많아서 다크서클에 회사생활이 힘들어서 커피를 대여섯잔씩 달고 삽니다. 수면유도제 처방도 받았는데 수면유도제를 먹으면 가위를 눌리진 않는데 하루종일 상태가 술 덜깬것처럼 멍하고 잠을 자도 잔 기분이 아니라 눈 감았다 뜬 기분이라고 합니다. 매트리스도 바꿔보고, 베개, 침구류, 자세, 바닥에서도 자보고 다 했는데 원인이 뭔지를 모르겠고.. 저는 잠은 잘 자는데 남편때문에 신경쓰느라 밤에도 몇번씩 깨서 확인합니다. 그리고 제가 요즘들어 더 기분이 이상한것은 가위나 악몽의 내용이 점점 디테일하고 소름끼치는 내용으로 바뀌어갑니다. 가장 최근에 눌린 가위는  남편이 김포쪽에 있는 회사 창고를 가는 꿈을 꿨는데 동료와 함께 창고 안에 들어서니까 창고에 이상하게도 양쪽으로 사천왕처럼 생긴 불상들이 서 있었고 저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누구세요? 여기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되는데요!" 하니까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고 몰랐어요. 금방 나갈게요." 하시더랍니다. 근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잠겨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왔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까이 가면서 "근데 여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누구신데요?" 하고 코너를 도는데 코너 안쪽에 검은 옷을 입은 아줌마 4명이 쪼그리고 앉아있더랍니다. 근데 아줌마들이 한명은 키가 2미터50은 될거 같이 생겼고 한명은 입이 귀까지 찢어진채로 얼굴을 까맣게 칠했는데 웃고 있고 한명은 눈동자가 한쪽에 2개씩 있고 한명은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 있는데 쉴새없이 뭘 먹고 있더랍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죽음입니다." 라고 대답했대요 그래서 그 순간 진짜 ㅈ됐다 라는 생각밖에 안들어서 동료분과 동시에 뒤돌아서 밖으로 뛰는데 뒤에서 팔 여러개가 자기를 붙잡고는  귀에다 대고 "기기기긱 기기긱 끼기기긱" 이런 소리를 계속 내면서 키득거리더랍니다. 그 순간 제가 비명지르는 남편을 깨웠고 그게 새벽3시였는데 남편 심장이 진짜 미친듯이 뛰어서 얼른 따뜻한 차를 끓여서 먹였는데 그게 너무 생생해서 저한테 저렇게 설명해준겁니다. 들으면서 저도 너무 오싹해서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 전번에 눌린 가위는 집에 있는데 누군가 안방에서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도둑인가 싶어서 당황해서 밖으로 나오면서 112에 전화를 하는데 전화가 안되어서 일단 도망치려는데 뒤에서 낫을 들고 쫒아오더랍니다. 그래서 뛰는데 잡혀서 한쪽 발목을 잘렸는데 다른쪽 발과 팔로 기어서 도망치는데 다른쪽 발목도 자르더래요 그리고는 분명히 따라잡을 수 있는데도 기어가는걸 천천히 뒤에서 따라오기만 하다가 기는게 너무 힘들어서 멈추면 와서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더랍니다. 다시 기어가기 시작하면 또 천천히 따라오고요 그래서 결국엔 팔 하나만 남고 다른 부위를 다 잘리고 기어가다가 멈춰서 제발 그냥 죽이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와서  "안돼. 아직 팔 한쪽이 남았잖아." 라고 했답니다. 이건 제가 들은거중에 제일 소름끼쳤던 두 건에 대한 내용이고 이외에도 새벽에 자다깨서 얘기해준 것들이 너무 많아요 이젠 제가 가위를 눌리는건지 남편이 눌리는건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이런 경우 뭐가 문제일까요 저나 저희 남편 전부 무교이긴한데 혹시나 진짜 모르지만 효험이 있다면 굿이라도 해야할까요..? 아니면 정신과 진료를 받아봐야 하는걸까요? 정신과는 솔직히 남편이 좀 꺼려해서 아직 못 가봤는데 이젠 제가 가야할 지경에 이르러서 어떻게 해야할지 좀 심각하게 걱정됩니다. 현명한 조언이나 이런 경험 있으신 분들은 꼭 좀 알려주세요.. +) 후기1 많은 의견 감사합니다. 일단은 왜 여태 손 놓고 있었냐고 하셔서 처음에는 그냥 잠을 좀 못자는 증상이었는데 점점점 순차적으로 심해진거예요. 최근 들어 증상이 심해지니까.. 그리고 정신과는 남편이 좀 확고했어요. 정신병이나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고해서요ㅠ 근데 이젠 진짜 가야할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여러 다른 영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저희 둘 다 종교나 신앙 등이 없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어느정도 뭐 사후세계나 그런거까지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고 또 그런 방식으로 플라시보 효과라도 얻어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하고싶은 심정이예요. 건강상으로 뇌질환이나 수면장애 등의 문제 부분도 제기하셔서 일단 그쪽을 먼저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5개월 전에 새로 들어온 가구나 물건..은 없고요 남편도 별다른 특이한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기억을 못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이건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봐서 얘기를 안했는데 자고 일어나면 팔 다리에 자꾸 멍이 들어있어요 부딪힐만한 구조가 아닌데도..  그래서 조금 더 찝찝했던 거고요. 일단 지금 제 생각으로는 신경정신과-무속신앙-종교 순으로 해보자고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작이라는 분들이 좀 계셔서  당시에 남편이 친한 형님분과 했던 카톡내용을 찾아서 첨부드립니다.  제가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기억이 안나서 좀 내용이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남편이 꾸는 악몽과 가위의 내용이 너무 사실적이고 본인이 얼굴 생김새 하나하나 기억할정도로 꿈을 꾼다는게 이상해서 저에게 매번 설명을 해줘서  저도 기억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꿈꾸면 3분 지나면 다 잊거든요. 아무튼 어느정도 일이 해결되면 걱정해주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알려드릴게요. 조언주신 모든 여러분들 감사하고 이런 일 생기지 마시길 바랍니다ㅠ + 후기2)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글을 계속 썼다 지웠다 반복했네요. 두서가 없더라도 이해하시리라 믿어요. 사실 이런 일로 글을 써야할지도 몰랐는데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나니 생각이 나서 오게되었어요. 여러모로 걱정해주신 분들께 감사라도 드리는 마음에서 입니다. 저희 남편은 지난 7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종합검진 후 수면클리닉 치료를 병행중이었고 수면중 각성장애와 행동장애 등의 수면질환 판정을 받고 휴직과 함께 통원치료, 심리상담을 진행중이었습니다. 댓글들에서 종교 또는 무속신앙 쪽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셨으나, 병원 진료로 상태가 호전되는 듯하여  그쪽으로는 따로 진행하지 않았구요. 남편의 사인은 심장마비입니다. 자던 중에 벌어진 일이라 손쓸 틈이 없었습니다. 많은 충격과 조금 더 빨리 병원을 찾았어야 한다는 생각 등으로 자책하는 시간과 정리하는 시간이 좀 걸렸네요. 따로 뭔가를 구구절절 설명드리는 것은  불필요한 일인것 같아 여기까지만 말씀드립니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병원을 빨리 가야한다는걸  너무 늦게 깨달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분이  너무 크게 다가와버렸네요. 겨울 따뜻하게 보내시고 결과야 어찌되었건 많은 조언 감사했었습니다. 다시는 글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남은 생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ㅊㅊ ㄴㅇㅌㅍ 아.......................... 후기 읽다가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이...ㅠㅠㅠㅠㅠㅠ 참고로 첫 글 쓰신 건 올해 5월달, 그러니까 6개월 전이구여 ㅠㅠㅠㅠ 하...... 자책하지 않으시면 좋겠는데 ㅠㅠㅠ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구글어스'에 찍힌 미스터리한 사진들.jpg
"히말라야의 블랙홀" 히말라야의 캉테가 봉이라고 불리는 곳은 고도 6,782m에 이르는 굉장히 높은 곳이라 사람의 발걸음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구글 어스를 통해 본 산의 일부에는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까맣게 된 부분이 있다. 이곳을 보고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어느 나라의 정부 기관이 몰래 만들어 놓은 출입구 혹은 외계인이 만들어 놓은 UFO의 게이트다 등등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구글 어스의 이미지 처리 오류라는 허무한 판정이 났고 현재는 일반적인 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 수중괴물" 뉴질랜드의 오키에 만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마치 길게 뻗은 뱀 같은 형상이 보이고 있다. 일반 사람들과 전문가들도 보트가 지나가면서 만든 흔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위성 촬영 타이밍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보트의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길고 선명하게 남았으며, 보트의 흔적은 금세 사라지기 때문에 그 가설은 아닐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좌표를 확대하면 해변 근처에 떠 있는 배들과 달리 사진 속 라인은 전혀 빛을 반사하고 있지 않고 해류의 움직이라고 하기에는 수중에 그림자 같은 라인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거대한 바다뱀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지만 사실 여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비행기 추락 현장" 구글 어스에서 발견한 비행기 추락 현장은 매우 참담했다. 캘리포니아의 한 활주로에서 보기에도 심각한 비행기 사고 현장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었다. 비행기 본체는 반으로 두 동강이 나 있고 날개는 부러졌으며 주위에 파편들이 많이 흩어져 있었다. 주위에는 경찰 차량과 더불어 트레일러트럭도 포착되었다. 일반적인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방송에서도 사고의 전말을 밝히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이 사건은 미국 드라마 ‘트라우마’의 촬영을 위해 연출된 장면이었다. 2009년 촬영을 했는데 구글 어스에서는 이 지역 위성사진을 2009년 말쯤 업그레이드하면서 이런 오해를 만들게 됐다. "기이한 색상의 칼륨 호수" 마치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보는 듯한 이곳은 미국에 있는 칼륨 풀이라는 곳이다. 누군가가 호수에 대량의 페인트나 색소를 풀어 장난을 친 듯한 느낌도 들고 어떤 오염에 의해 생긴 것인지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연구로 이곳 호수의 색은 자연현상에 의함이 밝혀졌다. 과거 이곳은 바다였는데 바닷물이 빠지면서 밑에 있던 칼륨 침전물이 이곳에만 남아 결정화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수단 붉은 입술" 수단의 사막은 정말 아무것도 없기로 유명하다. 건조하고 40도를 훌쩍 넘기는 타오를 듯한 온도로 마치 지옥으로 가는 문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싶게 무덥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온통 모래색만 갖고 있는 이곳에 뜬금없이 붉은 입술이 등장했다. 이렇게 뜨거운 대지에 웬 붉은 입술일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는데 사실 이것은 800m 정도에 이르는 긴 바위라고 한다. 하지만 그 바위의 노출부만 붉은색으로만 보이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지도에는 있지만 실제는 없는 섬" 뉴칼레도니아에 위치해 있다는 샌디 섬은 1876년 영국의 포경선에 의해서 발견이 된다. 지도에 없던 섬이 나타나자 만약을 위해 따로 지도에 표기를 해두었고 1908년 정식으로 지도에 등록됐다. 구글 어스에서도 까맣게 이곳의 위치를 표기해놨는데 호주 시드니 대학의 연구팀이 이곳을 지나갔지만 망망대해만 있을 뿐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섬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해역은 화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여러 표류물이 있었을 수 있고 예전에 뗏목과 같은 표류물을 섬으로 착각해 지도해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진다. "네덜란드 시체 유기" 2013년 네덜란드 알미르 베아트릭스 공원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어느 한 사람이 피 흘리는 시체를 질질 끈 채로 호숫가로 가는 듯한 장면인데 나무판자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이 장면은 ‘시체 유기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큰 이슈가 됐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사실 확인 결과 개와 산책하던 주인이 그 주인공이었다. 물에 젖은 개가 걸으면서 떨어진 물이 나무판자를 적셨고 마르는 과정에서 붉게 보인 것이었다. "바다 위 옆으로 누워있는 배" 2012년 1월 13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해안에서 11만 4천5백 톤에 달하는 초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침몰했다. 객실 1,500여 개를 갖춘 유람선 안에는 4229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35명의 한국인도 있었다. 해안가에서 좌초해 침몰한 모습의 배가 구글 어스에 촬영됐는데 마치 바다 위에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다. 이 사고로 인해 3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사고 당시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에게는 2697년 형이 구형됐다. "황무지의 인디언 얼굴" 캐나다 앨버타주 월시의 황무지에서 찍힌 장면은 매우 유명하다. 워낙 자연경관이 빼어나기로 잘 알려진 캐나다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정교하게 사람의 얼굴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았던 시절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은 우연치고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원주민 추장처럼 보이는 경관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에 배드 렌즈 가디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옥 문" 사우디아라비아 활화산이 있는 지역에서 문 같은 것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단순한 자연의 조형물처럼 보였지만 전문가들이 실제 답사한 결과,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구조물로 밝혀졌다. 웨스트 호주 대학교 고고학 교수와 연구진에 의하면 그 구조물은 2000~9000년 전에 유목 민족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구조물이라며 그 개수만 400여 개에 달했다. 직사각형 모양인 이 구조물은 다양한 크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땅에서 보면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동안 연구가 힘들었지만 구글 어스를 통해 대규모 유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출처 저만 무서운가요 ㅜㅜ 재밌는데 너무 무섭다 ㅠㅜㅜ
펌) 마지막 인사
가을 비가 내리는 수요일 컨디션은 지금 바닥을 찍다 못해 내핵 뚫고 지구 반대편에서 발견될 지경이군요 암튼 오늘 가져온 썰은 공포보다는 좀 감동..? 맴찡..? 계절을 타는 건지 저는 퍼오려고 읽다가 살짝 콧물을 좀 흘렸습니다.(tmi) 저도 참 주책이네요 핳핳 자 Voyou의 공포파티 태그ㄱㄱ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sy0371sy 저의 공포 소설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오늘 내가 사는 도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이 비에 만개했던 벚꽃들은 다 질 것 같군. 자연이란 참 신기한 힘이 있는가봐. 철이 바뀌거나 새로운 어떤 것들이 시작되려면 꼭 비가 오잖아. 늦가을 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초겨울로 접어들고 늦겨울에는 가벼운 봄비가 내리면서 봄이 찾아들고…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여름이 시작되고.. 캬.. 감수성 돋는구먼..ㅋㅋㅋㅋ 이렇게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보고 있자니 한참 장마철에 돌아가신 왕 할아버지 생각이 나대. 그래서 오늘은 왕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줄게. 무섭기보다는, 과학적인 견해로 해석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그런 이야기이니까 임산부나 노약자도 이리이리 모여서 다들 정독해도 상관없음. 우리 가족은 내가 어려서는 농사를 짓고 내가 조금 더 커서는 읍내로 이사를 나와 장사를 시작했고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쯤엔 옆 동네로 주거지를 옮겨서 장사를 더욱 크게 확장했지. 어렸을 때는 정말 집이 똥꼬가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해. 정확히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 내내 밀가루죽만 먹어서 엄마한테 밥 좀 달라고 울고 떼쓰던 기억이 남아있는 걸 보면 말도 못 하게 가난했을 거야. 그런데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살림이 점점 피더니 이젠 동네에서 제법 돈 좀 있다는 소리를 듣는 축에 끼게 되었어. 그만큼 부모님이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셨기 때문이지. 지금에야 이렇게 웃으며 글을 쓰지만 이사 온 동네 주민들의 텃세가 너무 심해서 부모님이 꽤나 고생하셨어. 원래 시골이고, 지역사회일수록 토박이를 우대하는 습성? 그런 게 강해서 아무리 고작 옆 동네 사람이라도 이주민은 무리에 끼워주질 않거든. 암튼 개업하고 한 2년 동안은 상가 주민들이랑도 서먹서먹하고 알 수 없는 따돌림에 마음고생을 했으나 역시.. 시간이 친구를 만들어 주더라고. 시간이 흐르니까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사람들처럼 사이좋은 이웃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지. 흠흠. 왕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건 우리가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그쯤의 일이야. (우리 부모님 업종이 조금 특수해서 정확히 어떤 가게인지는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해 ㅜㅜ) 우리 가게는 어린이부터 학생 아가씨 청년 중년 할아버지 할머니 등등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모든 고객을 상대하는 업종이야. 한마디로 고객의 폭이 많이 넓지. 어느 날, 가게에 웬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필요한 물건을 찾으셨는데 마침 우리 매장에는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주문을 하시겠냐고 물었더니 알겠다고 꼭 가져다 달라고 주문을 하시더래. 그런데 보통의 할아버지완 다르게 할아버지의 성품이 정말 보통 이상으로 점잖으시고 형색도 뛰어난 멋쟁이에다가 음.. 뭐랄까 멋쟁이 프랑스 할아버지? ㅋㅋㅋ 좀 배운 신지식인 양반? 같은 ㅋㅋ 기품이 느껴지더래. 그래서 엄마가 “영감님~ 영감님은 보기 드문 멋쟁이 신 거 같아요~ 어디서 그렇게 멋진 옷을 사입으셨데용~ 하면서 칭찬을 해드린 거지.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엄청 좋아하시면서도 쑥스러우셨는지 그 길로 내빼시더래 ㅋㅋㅋㅋ 그 후로, 엄마의 작은 칭찬이 활력이 되었는지 할아버지는 자주자주 가게에 들리셨고 우리 집의 단골 손님이 되신 거야. 물론, 우리 엄마뿐만 아니라 우리 아빠까지도 그 할아버지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좋은 이웃이 되었어. 나는 그 당시에 대학엘 다니느라 집에 잘 내려가지 않았거든. 그런데 내가 집에 전화를 걸 때마다 엄마는 그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무런 연고가 없던 동네에서 하루하루가 심심했었는데 그 할아버지 덕분에 말동무도 하고 사람 사는 거 같다며 할아버지의 고마움을 막 말씀하시더라고. 그러다 주말을 맞아서 집에 내려가 가게를 보는데 그 할아버지를 뵙게 되었지. 정말 말로 듣던 대로 멋쟁이시더라고. 위아래, 하얀 모시 한복을 갖춰 입고 하얀 중절모에 하얀색 구두를 신고.. (정말 광 번쩍번쩍 나는 백구두) 잘 정돈된 하얀 백발 머리에 눈썹조차도 하얀.. 와.. 진심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간달프가 강림하는 줄 알았음..ㅋㅋㅋㅋ 어색해서 쭈뼛쭈뼛하며 ‘안녕하세용’ 인사를 했더니 나를 아주 그냥 원래 알고 지냈던 손녀처럼 “오오옹. 학교 다니다 올라왔구먼”하시면서 지갑에 있는 지폐 몇 장을 손에 덥석 쥐여주는 거 아니겠어. 이걸 받아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몰라서 얼음이 되어 있자 엄마는 그냥 받으라고 막 그래서 받았지. 그게 왕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이었어. 그날 밤 엄마랑 자려고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뒹굴하다가 엄마에게 왕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되었지. 왕 할아버지한테는 자식도 3명이나 있고 그 자식들을 다 잘 가리켜서 다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대. 물론,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시니까 그 자식분들도 중년이 훨씬 넘은 어른들이겠지. 할머니와 동네에서 소문난 닭살 커플로 지내셨는데 몇 해 전에 할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혼자되셨다는 거야. 그런데 하나둘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할아버지가 적적하기도 하고 외로웠던 거지. 돌아가면서 1년씩이라도 자식들하고 함께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더니 그다음부터 자식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명절에 아무도 내려오지 않더라는 거야. 그래서 송장처럼 집구석에 누워지내느니 읍내나 돌아다니면서 쇼핑하며 지내는 게 삶의 낙이 된 거래. 그러다 어쩌다 우리 가게에 들러서 엄마 아빠와 친해지게 된 거고. 그 친해진다는 게 별다른 것도 없어. 항상 정해진 시간에 가게를 들르신다는 거야. 날마다 오전 11시 정도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짠~하고 오신대. 그럼 그때 시간 맞춰서 엄마 아빠랑 같이 커피도 마시고 어쩔 때는 다과도 같이 하고 또 어쩔 때는 숟가락 한 개 더 얹어서 밥도 먹고 말이야.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할아버지는 가게에 머물다 가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고 더 많은 대화를 할수록 할아버지와 우리 식구들은 가까워졌지. 어느 정도였냐면 으레 토요일 점심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거나 내가 시골에 내려가는 주말에는 가족들이 삼겹살을 사서 할아버지네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던가 하는. 정말, 이웃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재미있게 지냈던 것 같아. 사실, 우리 아빠는 유복자로 태어나셨거든. 우리 아빠가 6남매 중의 막내인데 할머니가 아빠를 임신 중이셨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우리 아빠는 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자란 터라 마치 그 할아버지가 아버지인 것처럼 정말 정말 잘 모셨고 또 그 할아버지도 어른으로 빈틈없이 아빠랑 엄마께 잘하셨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렇게 사이좋은 이웃 생활이 길어지자 어디선가 시기하는 무리들이 나타났지. 그 무리는 바로! 할아버지의 자식들이었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날 코빼기도 안 비추던 작자들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날을 잡고 가게에 찾아왔더라는 거야. 마치 우리 엄마랑 아빠가 계획적으로 할아버지한테 접근해서 뭔가를 빼돌릴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아들 둘, 딸 하나가 가게에 와서는 하는 말이 “아니, 자식이 멀쩡이 셋이나 있는데 왜 댁들이 자식 노릇 딸 노릇이냐. 왜 가만히 있는 사람 동네에서 욕을 먹이냐고.” 하면서 다시는 할아버지랑 엮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아들들 중 며느리 하나가 할아버지랑 같은 동네 사람인지라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우리 식구들이랑 어울리고 같이 밥 먹고 놀러댕기고 이렇다는 걸 친정을 통해서 들었나 보더라고. 참. 우리 부모님은 기가 막혔지. 물론, 할아버지가 알게 모르게 우리 집으로 뭔가를 끊임없이 날라주셨다는 건 인정! 예를 들어 이번 주에는 쌀 두 가마니. 그 다음에는 사과 한 박스. 그 다음다음에는 포도즙 한 박스. 그 다다다음에서 고춧가루 몇 포대 이런 식으로. 꼭 자식새끼 챙기는 부모마냥. 그런데 문제는, 우리 부모님도 그걸 그대로 받기만 한 분들이 아니라는 거지. 할아버지 모시고 가서 겨울 패딩 사드리고, 할아버지네 겨울 동안 쓰실 기름 세 통 넣어드리고, 따뜻하시라고 옥장판 넣어드리고, 눈이 잘 안 보이신다고 하니까 안경점 가셔서 돋보기 새로 맞춰드리고, 전화기 잘 안 터진다 하니까 전화기 바꿔드리고. 내가 보기엔 정말 주거니 받거니 전래동화에 나올 만큼 사이좋게 잘 지냈던 것 뿐인데 말야. 우리 엄마는 그날 아랫목에 들어누워서 밤새 끙끙 앓더라고.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사람을 꽃뱀+사기꾼 취급을 하며 그것도 3명에게 둘러싸인 채로 그 막말을 들었으니.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도 못했거든. 그 이후로 한동안 왕할아버지는 걸음이 뜸하셨다고 해. 같은 동네분들께 들리는 말로는 화병으로 앓아누웠다고도 하고 감기로 오래 아팠다고도 하더래. 아빠는 걱정이 되어서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러지 말라고, 괜히 남의 가정사에 우리가 끼어서 더는 오해받는 일 없게끔 하자고 ㅜㅜ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날들이 갔던 거지.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음이 안 좋더라고.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는 주말을 이용해서 엄마 아빠에게 말도 없이 왕 할아버지 집에 몰래 찾아갔어.  갔더니 정말 2주 정도 되는 사이에 뭔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완전 5년은 더 늙어버린 거 있지.  완전 깔끔하시고 멋쟁이던 분이 자기를 돌볼 겨를도 없었는지 머리는 산발에, 옷은 땀내가 풀풀 나고 밥은 대충 물에 말아 드시는지 냉장고에 반찬은 다 말라있는 거야.  할아버지께서 정말 힘겹게 일어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를 다시 볼 면목이 없다고. 자식들이 다 커버려서 혼을 내도 듣는 나이가 아닌지라 어떻게 가르칠 방법도 없다는 거여.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마도로스 셨데. 그래서 돈은 무지무지 많이 벌어서 집안은 윤택했는데, 자식들과 오랜 세월 떨어져 살다 보니 아버지로서의 정은 거의 없어서 자식들이 커가면서도 데면데면했다는 거야.  생각해보니 자식들 입장에서는 그런 아버지가 이제 와서 가까이 가족처럼 살자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더라고.  암튼 할아버지는 지금 당장 현금은 얼마 없고 산이랑, 밭이랑, 논이랑, 집이랑 이런 것들이 좀 있는데, 혹시 그걸 야금야금 팔아서 우리 집에 갔다 바치는 줄 알고 자식들이 파르르 분노해서 그 난리굿을 친 거더라고.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오히려 너희들한테 받은 것보다 글쓴이네 아범한테 얻어먹고 입은 게 곱절은 많다고 막..  고래고래 화내시고 그러셔서 자식들이 오해를 풀고 다시 올라가셨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내가 모를 일이었지  할아버지 집엘 다녀와서 부모님께 할아버지가 몸져 누워계시더란 말을 드리자  아빠는 놀래서 차로 달려가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입원시켰어.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말에 같이 밥을 먹고 종종 커피타임을 가지고 또는 할아버지네 비닐하우스를 빌려서 주말농장도 짓고 재미나게 보냈지.  그런 세월이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자 우리를 이상 야리꾸리하게 생각하던 자식들의 오해가 풀렸는지  큰아들이라는 남자가 명절에 찾아와서 전에는 정말 미안했다며 과일상자를 들고 왔더라고.  그 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우리 아빠가  "우리는 식구라고 해봤자 우리 부부랑 글쓴이 밖에 없다. 아버지는 예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몇 해 전에 돌아가셔서 이웃을 사귄다는 게 참 좋다. 실제로 아버님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바겠지만 나보다 어른이 있다는 게 늙어갈수록 좋은 거더라. 앞으로 자주자주 연락하자" 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ㅜㅜ 어휴 부연 설명이 길었네.  그렇게 오해도 다 풀리고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들이 흘렀어.  그런데 있잖아. 사람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는가봐. 그날도 주말이었거든.  원래는 주말이면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던가 우리가 할아버지네 집으로 놀러를 가던가 하는데 하필 그 주가 우리 외할머니 생신이셨어.  그래서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모여 1박 2일로 놀러를 갔단 말이여.  물론, 왕할아버지껜 우리 놀러 다녀오니까 오늘은 목욕 다녀오셔서 이발하시고 그냥 집에 계시라고 일러두었지.  우리 가족은 남해 어딘가 펜션을 잡아서 하루 죙일 지지고 볶고 먹고 마시며 놀다 보니 곧 밤이 되었지.  엄마 아빠는 일찍 주무시고, 잠이 오지 않던 나는 뒹굴뒹굴 거리며 엄마 옆에서 테레비를 보고 있었어.  잠을 곤히 자던 엄마가 벌떡, 강시가 일어나듯이 말 그대로 벌떡 일어나더니 "야! 글쓴이! 핸드폰 내놔봐 핸드폰!" 하시는 거야.    갑자기 웬 핸드폰 타령인가 싶어서 "엄마, 꿈꿨떵?" 하고 배시시 웃었더니 내 머리통을 주먹으로 완전 세게 후려치면서 "아 진짜, 휴대폰 달라고 이년아!" 하는 거야.  그래서 아 뭐지? 자다 말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나는 정말 억울했지만 ㅜ ㅜ 한 대 더 맞기 전에 얌전히 휴대폰을 찾아 드렸지.  엄마는 어딘가로 막 전화를 거시더라고. 아마도 상대가 안 받는 모양.  그래도 연달아 두 번, 세 번, 네 번 차례까지 거시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서  "응~ xx엄마, 나야. 혹시 xx동네 이장님 누군지 알아? 그 동네 이장님 번호 알면 나 좀 가르쳐줘"  xx동네는 왕할아버지 동네거든.  나는 갑자기 싸~한 느낌에 사로잡혀서 엄마, 대체 왜 그래? 응? 왜 그래? 물었어.  엄마는 손을 후들후들 떨면서 굉장히 흥분된 사람처럼 진정을 못하시더라고.    전화번호를 받아 적더니 동네 이장이라는 분께 전화를 하는 거야.  "네. 안녕하세요. 이장님이시죠. 늦은 시간에 정말로 죄송한데요.  왕할아버님 댁에 한 번만 가보시면 안 될까요. 제가 멀리 나와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러는 거야.  나는 그제서야 짐작이 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더라고.  단지, 엄마가 나쁜꿈을 꾸었을 거야. 그냥 걱정이 돼서 그랬을 거야.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윽고 다시 걸려온 전화에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집으로 다시 가야만 했어.  이장님이 할아버지 댁에 찾아갔더니 집이 훤하게 불이 켜져 있더란다. 마치 누군가 찾아올 것처럼.  그래서 웬걸~ 안에 계시나 보네~ 싶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더래.  대문을 슬쩍 열어봤더니 그냥 열리더래. 마찬가지로 현관문도 잠가두질 않아서 그냥 열리더래.  집에 들어가 봤더니 하얀색 두루마기에 모자까지 쓴 채로 쇼파에 앉아 돌아가셨더래.  처음엔, 할아버지가 그렇게 앉아 계신 채로 테레비를 보고 계신 건 아닌지 생각했는데 불러도 기척이 없고 흔들어도 미동이 없어서 피부를 만져봤더니 ......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지.  그렇게 왕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었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퍼풋더라고.  정신없이 부랴부랴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고 우리는 틈 나는 대로 장례식장을 오가며 일손을 도왔지.  그런데 탈상을 하루 앞둔 새벽.  할아버지 자식 분들이랑 우리 엄마 아빠랑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곱씹고 있던 중.  큰아들 되는 분이 엄마에게 묻더라고. 그런데 그 시간에 아버지 돌아가신거 어떻게 알았냐고.  모두들 엄마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눈치더라고. 사실 나도 궁금했는걸.  모두가 궁금해하자 엄마가 차분히 말씀을 해주시더라.  내 짐작처럼 엄마는 꿈을 꿨대.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평소에 아껴 입던 하얀 모시옷을  입으시더래. 그러고는 활짝 웃더란다.  그리고는 한지(종이)로 된 종이 신발을 조심조심 신으시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흰 소, 하얀 소 등에 올라타셨다는 거야.  왠지 그 모습이 불길해서 "아버지! 내리세요! 내려요!" 하고 흰 소 등에 올라탄 할아버지를 끌어내리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괜찮어. 나는 이제 가. 너는 삼십 년 후에나 온나." 하시고는 흰소를 채찍으로 내려쳐서 터벅터벅 안개 사이로 사라졌다는 거야.  엄마는 그대로는 보낼 수가 없어서 짙은 안갯속을 계속 계속 달렸대.  한치 앞도 안 보였지만 왠지 계속 달리면 할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더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만큼 달렸더니 안갯속에서 앞서가는 흰 소 궁둥이며 꼬리가 보이더래.  손을 뻗어서 앞서 달리는 흰 소 꼬리를 붙잡았더니 할아버지가 정말 생전 본 적 없이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며  "땡땡 어멈! 네가 정녕 나를 따라 오려고 그래? 어서 그 손 치우지 못하겠어!" 하면서 채찍으로 손목을 사정없이 내려쳤다는 거야.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사실 아파서 잠에서 깼는데 깨고 보니 보통 꿈이 아니었다는 거지..  그 이야기를 하자 옆에서 술을 드시고 계시던 동네 왕할아버지 친구분들께서 "너는 그 꼬리 붙잡고 계속 달렸으면 왕할배랑 같이 저 세상 간 거여. 정 떼고 갈라고 그랬는 갑다."고 하시더라.  어쨌든 저쨌든 그렇게 왕할배는 우리의 곁은 떠났고. 한동안 우리 부모님은 많이 슬퍼하셨어. 나역시.  그리고 한두 달이 흘렀나, 할아버지 집을 처분하겠다고  자식들이 이것저것 짐을 정리하다 발견했다며 우리 부모님께 통장 한 개를 내밀더라고.  보니까 할아버지가 고추 팔고, 마늘 팔고 할 때마다 차곡차곡 모았는지 통장에 오만 원, 십오만 원, 많을 땐 삼십씩.  푼돈을 조금씩 모아서 5백만원을 모으셨더라고.  그 통장을 왜 우릴 주냐고 했더니 통장 맨 앞 칸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땡땡 어멈 신혼여행' 이렇게 적혀있는 거야..  언젠가 우리끼리 놀 때 엄마가 신세 한탄 반, 농담 반으로 나는 여즉껏 신혼 여행도 못 가보고 살았다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대.  왕할아버지는 우리 엄마를 친딸로 생각했는지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돈을 모으셨던 거였어.  자식 분들이 그건 꼭 우리 엄마께 드려야겠다며 내미는 걸 엄마는 한사코 거절했어.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그러자 자식분들께서 이제는 본인들도 오해였다는 걸 다 안다고 아버님 집 정리하다 보니 땡땡 엄마 손 안 탄 곳이 없더라면서..  그래서 그 통장을 엄마는 받게 되었고. 정말, 그날 우리 엄마는 가게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우셨어.  그리고 작년에. 엄청난 폭우로 산사태가 나고, 지반이 내려앉고 그랬잖아.  왕할아버지 무덤이 좀 비탈진 곳에 있었는데 비가 계속 오면서 무덤이 허물어졌거든.  다행히 관까지 밀려나가고 그런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는데 엄마가 너무 걱정이 된다고 그래서..  그 돈으로 포크레인 불러다가 주변 정리 다시 깔끔하게 하고 잔디 새로 깔고  비석 대따시 큰걸로 떡하니 올려놓고 묘송 사다가 예쁘게 박아놨다.  동네 사람들이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 뭐라고 했지만  우리 엄마는 나중에 죽어서 할아버지 만나면 칭찬 많이 받을 거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청 뿌듯해하셨어.  오늘 이야기는 뭐 정말 무섭지도 않고 별거 아닌 이야기다 그치.  근데 나에겐 사연이 있는 이야기인지라 쓰면서 몇 번 울컥울컥했어.  엄마랑 둘이 자려고 누울 때 왕할아버지 이야기 자주 하거든. 엄마 생각엔 할아버지가 옷을 다 갖춰 입고 쇼파에 앉아 있던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고 하셔.  그날, 아무래도 우리가 일찍 돌아와서 집에 들를 거라 생각하신 건 아니었나 싶다고.  그래도 꿈에서라도 그렇게 인사하고 가셔서 참 고맙다고..  출처 : 네이트판
펌) 너네 절대 장난으로라도 뱀 죽이거나 잡거나 그러지마
진짜 뱀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사실은 아니겠지만, 저는 절대. 죽어도. 뱀과 엮이지 않으려합니다. 무서워. 짱무서워. 저는 얇고 길게 살고 싶거든요. 여러분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혹시 모르잖습니까.. 자 Voyou의 공포파티 태그ㄱㄱ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kimhj1804 @jungsebin123 @lsysy0917 @lzechae @whale125 @oooo5 @hj9516 @cndqnr1726 @hy77 @yws2315 @sonyesoer @hyunbbon @KangJina @sksskdi0505 @serlhe @mstmsj @sasunny @glasslake @evatony @mun4370 @lchman @gim070362 @leeyoungjin0212 @youmyoum @jkm84 @HyeonSeoLee @HyunjiKim3296 @226432 @chajiho1234 @jjinisuya @purplelemon @darai54 @vkflrhrhtld @babbu1229 @khkkhj1170 @choeul0829 @gimhanna07 @wjddl1386 @sadyy50 @jeongyeji @kmy8186 @hjoh427 @leeyr0927 @terin @yjn9612 @znlszk258 @ww3174 @oan522 @qaw0305 @darkwing27 @dkdlel2755 @mbmv0 @eyjj486 @Eolaha @chooam49 @gusaudsla @sy0371sy 저의 공포 소설 알림을 받고 싶은 빙글러는 댓글에 알림 신청을 해주십쇼. 그러면 앞으로 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해드립니다.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저저번주에 추석 전에 벌초하려고 여창조주랑 밑에 여혈육, 이모부부네랑 산소같다가 돌아오는데 갑자기 이모부가 잘 가다가 차를 슬슬 멈추시더라고 그래서 여혈육이 왜 멈추시냐고 물어보면서 앞으로 고개를 빼서 보는데 길 중간에 엄청 큰 구렁이 한마리가 볕쬐고 있더라. 진짜 살면서 야생에서 그렇게 큰 구렁이는 실제로 처음봐서 신기해서 계속 보고있는데 걔가 움직일 생각을 안하는거임;; 아마도 햇빛쬐느라 안움직이는거 같았는데 독도 없으니까 그냥 치우고 가면안되요? 했더니 여창조주가 안된다고, 스스로 지나갈때까지 그냥 놔두라는거야  그래서 진짜 한 3,40분 동안을 꼼짝않고 멈춰있다 구렁이가 슬슬슬 움직여서 지나가니까 그때서야 다시 운전하시더라. 그리고 집에 와서 아까 왜 그랬는지 얘기해주시는데 남창조주가 원래 살던 동네랑 여창조주가 살던 동네랑 차로 한 20분? 15분 거리인지라 항상 외가집 가려고 하면 남창조주네 옛날 집이 있던 곳을 지나가는데 그 시골 가다보면 도로 양옆에 막 서있는? 그런 집들 중 하나가 남창조주네였음. 근데 그 맡은편에 다 쓰러져가는 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원래 살던 가족이 나름 그 동네에서 잘 살던 집이였다고 하더라. 무튼, 한창 새마을 운동이네 뭐네 해서 초가집처럼 볏집으로 엮은 거랑 흙으로 된 담벼락 다 무너뜨리고 시멘트로 된 벽 세우고 지붕도 다시 덮는데 거기서 엄청 큰 구렁이 한마리가 나왔다함. 옛날 집은 다 황토흙에 나무기둥이고 그러다보니 구렁이 한마리씩은 다 살았다고 하던데 여튼 그 구렁이를 거기 집 할아버지가 안 풀어주고 잡아서 고아먹었다고 하더라. 동네 아저씨들이랑 술 드시면서 드셨다고 하는데 그때 어렸던 남창조주도 꼭 닭삶는 냄새가 나서 한점 얻어먹으려고 하다가 대창조주한테 혼나고 못 얻어먹었고. 근데 그 구렁이 잡아먹었던 할아버지 꿈에서 집채만한 구렁이 한마리가 나와서  "너가 내 죄업는 낭군을 잡아먹었으니 나도 너와 너네집 삼대의 씨를 말려버릴것이다." 하고 사라지는 꿈을 꿨다고 다음날에 동네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녔다고 하더라. 근데 뭐 딱히 그 동네에 무속인이 있던것도 아니고 한창 새시대 어쩌구~하던 때라 그런꿈을 꿨다고 해도 다들 그냥 웃으면서 개꿈이라고 하고 넘어갔다고 함.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그 집 큰아들이 일 나갔다가 논두렁에 가볍게 자빠졌는데 목뼈가 부러져서 죽고, 큰며느리는 솥간에서 밥하다가 타죽고, 둘째아들 부부네는 잠깐 읍내 나갔다가 다른 집 소한테 들이받혀서 죽고(그 소가 뭐 잘못된거 먹고 그러지도 않았다고함), 마지막 막내아들은 쥐약 잘못먹고 죽고, 손자 둘중에 큰놈은 학교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실종되서 사라져버리고, 작은놈은 폐렴?인가 그걸로 어린나이에 죽었다고 하더라. 남아있던 다른 가족들도 사고나 병걸려서 죽으니까 그 집 할머니가 대들보에 목매달아서 돌아가셔 버리고 결국 그 할아버지도 충격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그 집 큰손녀가 자기는 죽기 싫다고 아예 집을 떠나버렸다함. 동네 사람들은 무서우니까 큰손녀 떠나는것도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그 집은 아무도 안들어가서 폐가가 되는걸 남창조주가 군대들어가기 전까지 보고 자랐다고 하시더라. 근데 정말로 무서운게 그렇게 군대갔다가 돌아오신 남창조주가 오랜만에 친구분들 만나려고 읍내 다방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어떤 아저씨 옆에 앉아서 커피따르던 종업원 여자 하나가 자기 얼굴을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서 막 뒷문으로 도망갔는데 알고봤더니 그 종업원여자가 죽기싫다고 n년전에 나갔던 할아버지 큰손녀... 결국에 나중에 소식 들은거는 국도 어느 부근에서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너무 소름돋는게 거기가 2차선이고 완전 시골 국도라 가로등 하나없을 때였는데 거길 밤중에 여자혼자 걸어갈 일이 뭐가 있냐고... 그리고 아마 뭔가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을거라고 하시더라. 결국 그 할아버지집은 정말로 3대가 다 죽어버림. 한명도 남기지 않고ㅇㅇ 무튼 남창조주가 이 일 때문에 종교나 귀신같은거 하나도 안믿으시는데 뱀은 절대 함부로 만지지도 않는다고 하시더라. 진짜 비오는날 이얘기 여혈육이랑 듣는데 전설의 고향 생각도 나고 겁나 무서웠었음... 출처 해연갤
유명 대학교가 이름을 갑자기 바꾼 사건
때는 1986년 8월 14날 벌어진 사건 유명했던 대학교의 이름까지 바꾸게 만든 경악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서울목포파 12명이 같은 룸사롱에서 출소파티를 벌이고 있던 맘보파 조직원들을 회칼과 도끼로 난도질한 사건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이다. 원래 서진 룸살롱은 서울목포파 애들이 관리하던 곳으로 사실 서울목포파라는 이름은 경찰들이 수사과정에서 생긴 이름이고 원래는 유도대학교 출신 젊은 20대 청년들이 논두렁 무리식으로 어울리던 무리들이였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 하필 서진룸살롱 17호실에는 교통사고로 인하여 교도소에 있다가 출소한 맘보파 조직원 고용수를 축하하는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총 7명의 맘보파 조직원들이 있었음) 하필 꼬일 운명이였는지 바로 옆 16호실에서는 당시 서울목포파 조직원 12명이 같은 시간에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게 된 계기는 어이가 없게도 웨이터가 맘보파가 있는 17호실에서 얻어맞게 되고 울면서 나오는것을 서울목포파 일행이 보게 되면서 시작됐다. 자기들이 아끼던 동생같은 웨이터가 얼굴이 부은채 울면서 나오는걸 보고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이 왜그러냐고 따져 묻자 17호실에 있던 맘보파 행동대장이자 전라도에서 싸움꾼으로 널리 알려진 조원섭에게 얻어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고 깔봐왔던 조원섭이 자신들이 봐주는 가게에서 그랬다는 사실을 안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은 분노했다. 때마침 화장실로 가려던 조원섭이 나오게 되고, 앞에서 웨이터와 같이 있는 서울목포파를 마주치게 된다. 당시 서울목포파 고참격이던 김승길은 조원섭을 마주치자 넉살 좋게 인사를 건냈다. (김승길은 조원섭의 고향후배) 허나 김승길 옆에 있던 고금석은 달랐다. 이미 열이 받을대로 받은 고금석은 조원섭을 노려 보았고 조원섭은 그게 마음에 안들었다. 한참 어린 고금석이 노려보자 열이 받은 조원섭은 사정없이 고금석을 일방적으로 구타했다. 당시 유도대 선출로 은메달까지 딴 실력자 였던 고금석이였지만 실전 싸움에서 잔뼈가 굵은 조원섭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일이 벌어지자  김승길은 급히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을 불렀고 밖에서 소란이 나자 룸에있던 맘보파 조직원들도 쏟아져 나왔다. 허나 서진룸살롱은 서울목포파가 상주하던 곳으로 전부다 회칼과 도끼로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그에 비해 맘보파 조직원들은 맨몸으로 그들과 대치하게 된다. 서울목포파가 전부 무장한걸 본 조원섭은 열이 받을대로 받아 덤빌테면 덤벼 보라고 소리쳐댔다.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조원섭의 싸움실력을 익히 들어온 목포파 조직원들은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조원섭은 비웃으며 말했다 "근본도 없는 유도대 양아치 새끼들." 자신들이 숫자도 많고 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무시를 당하자 열이 받은 서울목포파 조직원 김동술이 도끼로 조원섭을 내려찍으며 공격이 시작됐다. 이때 공격으로 팔이 잘린 조원섭은 급히 자신들 방으로 후퇴하고 맘보파 조직원들은 문을 가로 막으며 필사적으로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을 막았다. 허나 칼과 도끼로 무장한 유도대 출신들을 숫자가 적었던 맘보파 조직원들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였고, 결국 문이 뚫리며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이 방으로 들이 닥치게 되었으며 룸을 피로 적시며 맘보파 조직원들과 조원섭을 칼과 도끼로 난도질 하게 된다. 때마침 화장실에 갔다가 광경을 목격한 맘보파 조직원 한 명과 문이 뚫리면서 운좋게 도망간 2명을 제외한 조원섭과 맘보파 조직원 3명은 무참히 살해된다. 일을 벌린 목포파 조직원들은 시체들을 인근 병원에 던져놓고 뿔뿔히 흩어져 도주 했으나  얼마되지 않아 전부 검거하게 된다. 가뜩이나 유도대 출신 조폭들이 많았던 터라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유도대학교는 서진 룸살롱으로 학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결국 기존 용인 유도대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용인대학교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끝 출처
미국 대통령들에게 내려진 저주
테쿰세는 인디언 쇼니족의 추장으로, 인디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윌리엄 헨리 해리슨 장군 (9대 대통령)에게 목숨을 잃었는데, 그가 죽으면서 이런 저주를 남겼어. "매 20년 마다 0자가 붙는 해에 당선되는 미국 대통령들은 저주를 받아 임기 중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저 말만 봐선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 쉽게 말하면 20년 주기로 당선되면 죽는다는 뜻인 듯해. 그래서 테쿰세의 저주에 걸려 죽은 대통령들을 나열 해 볼게. 1. 윌리엄 헨리 해리슨 (1840년 당선, 병사) 테쿰세를 죽인 장본인인 윌리엄 해리슨,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1달 만에 폐렴으로 병사한다. 2. 에이브라함 링컨 (1860년 당선, 암살) 에이브라함 링컨은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에 포드 극장에서 존 부스에게 암살 당한다. 3. 제임스 가필드 (1880년 당선, 암살) 제임스 가필드는 취임 한지 4달도 안되서 찰스 J.가토에게 암살된다. 참고로 그는 고통스럽게 11주를 버텼지만, 의사들은 끝내 그의 몸속에 박힌 총알을 찾지 못했다. 4. 윌리엄 매킨리 (1900년 당선, 암살) 매킨리는 버팔로에서 레온 촐고츠라는 무정부주의자의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5. 워렌 G.하딩 (1920년 당선, 병사) 하딩은 임기중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기차안에서 쓰러져,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병사했다. 6. F.D.루스벨트 (1940년 당선, 병사) 미국 최초로 4번 대통령을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번째 임기중 병사했다. 7. 존 F.케네디 (1960년 당선, 암살) 케네디는 인기가 최절정이었던 1962년 11월22일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8. 로널드 레이건 (1980년 당선, 암살 미수) 레이건은 1981년 3월 30일,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 당할 뻔했는데, 빠른 대처 덕분에 겨우 살아났다. 테쿰세의 저주에서 최초로 죽지 않은 대통령 레이건이 인디언들에게 잘 해줘서 저주를 피해갔다는 속설도 있음 9.조지 W.부시 (2000년 당선, 암살 미수와 자기 부주의로 죽을 뻔함) 부시는 죽을 뻔한 위기가 2번이나 있었는데, 2005년 연설 중에 수류탄이 날라왔지만, 수류탄이 불발되어서 목숨을 구했고, 2002년엔 프레첼 과자를 맛있게 먹다가 과자가 목에 걸려서 죽을 뻔함 미국 역사상 임기 중에 죽은 대통령은 총 8명인데 그 중에 12대 대통령인 재커리 테일러만 빼고 7명이 테쿰세가 예언한 기간에 당선되어 죽었어ㅎㄷㄷ; 참고로 재커리 테일러도 참 허무하게 죽었는데, 무더위 속에 체리와 우유를 급하게 먹다가 체해서 사망함 당시 워싱턴의 위생 상태로 보아 콜레라로 죽었다는 설도 있어. 아무튼 미신이긴 하지만 섬뜩한 저주임ㅇㅇ 2020년에 당선되는 대통령이 어떻게 될지.. ㅊㅊ ㅍㅋ 오 모야 무서워잉 바이든... 할배는 테쿰세의 저주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출마했을 때부터 너무 늙어보여서 (사실 바이든은 이맹뿌보다 1살 동생임) 저러다 임기중에 자연사하는 거아니냐; 하는 걱정도 많았는데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