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Young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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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생각나는 잔치국수

날이 쌀쌀.

종일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서 결국엔 끊었던

국수를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땡초 잔뜩 넣어 매콤하고 진하게 우린 멸치다시육수에

볶은 채소 넉넉하게 ....

잔치국수하면 생각나는 울할머니.

시원찮은 틀니로 오물오물 아기마냥 드시던

모습이 선하다.

국수를 약간 불려서 부드러워진 상태를 좋아하셨다.

그러고보니 국수는 우리가족들 모두 좋아하는 음식중하나.

얼른 가족들이 들어와 뜨끈한 국숫국물에 종일 얼었던

몸과 마음이 온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Alice_in_Wonderland #Seo_Young_Ran #간단레시피 #내맘대로레시피 #냉장고파먹기 #서양화가서영란 #서영란 #오늘의요리 #요리 #요리스타그램 #이상한나라의앨리스 #일상_페르소나 #일품요리 #코로나_일상 #잔치국수 #국수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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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주기生涯週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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