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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
검찰개혁이 최전선이 된 이유(이재성)

"검찰은 리버럴 정부의 딜레마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과의 싸움이란 명분이 검찰의 방패가 되어줄 거란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정권 핵심부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검찰개혁이 최전선이 된 이유(이재성)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탄핵 촛불항쟁이 한창일 무렵, 경남 창원에서 열린 소규모 집회를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자신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소개한 청년이 연단에 올라 청중에게 물었다. 박근혜가 탄핵당하면 나의 삶은 나아지는 거냐고, 최저임금에 고용마저 불안한 나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거냐고. 나는 그가 면전에서 묻는 것처럼 느껴져 마땅한 답을 찾느라 허둥거렸다.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는 냉정한 비관도 답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나는 이내 침울해졌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촛불항쟁의 보수적 성격  청년의 낮은 절규는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의제와 열망에 묻혀버렸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청년의 삶이 달라지진 않는다. 학력의 서열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노동의 서열화는 총자본의 요구가 한국 사회에 관철된 결과다. 노동자끼리의 경쟁과 차별이 촘촘해질수록 자본의 지배는 용이해진다. 경쟁과 차별을 내면화한 노동자들은 선망의 눈으로 위를 보며 경멸의 눈으로 아래를 본다. ‘노오력’도 없이 정규직이 되려는 자들은 염치없는 불한당이 되었고, 앉아서 불로소득을 챙기는 건물주는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이 되었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는 더욱 빠르게 보수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쟁과 능력을 숭상하는 신자유주의 바이러스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폐세포 깊숙이 퍼져 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2016년의 촛불 광장에서도 보수적인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촛불의 도화선이었다고 평가받는 이화여대생들의 평생교육원 반대 투쟁은 이대 졸업장의 희귀성과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류적이며 보수적인 저항이었다. 이때 맹아를 보였던 2030의 보수성은 몇 년 뒤 이른바 ‘인국공 사태’ 같은 계기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분출한다.  촛불의 최대공약수였던 대통령 탄핵도 다분히 보수적인 의제였다고 나는 평가한다. 경쟁과 차별을 강요하는 체제의 작동 원리를 그대로 둔 채 지배그룹의 얼굴을 바꾸자는 요구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 부패와 억지에 지친 국민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는 따뜻하고 성실한 대통령을 원했다. 시대가 문재인을 택한 것은 그가 박근혜의 반대 지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선하고 정직하지만 보수적인 사람이다. 선도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고 앞장서 해결하기보다는 대중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답답하다. 과감한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사퇴를 제안했다가 호된 비판에 직면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원했던 건 강력한 개혁이 아니라 따뜻한 포옹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촛불항쟁은 경제적 불만이 쌓여 체제 변혁을 요구한 혁명이 아니었다. 백낙청 교수의 제안대로 혁명이라 부른다 해도, 좀 더 인간적인 얼굴로 지배그룹을 바꾼 명예혁명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이 최전선이 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재인 정부가 좀 더 선명하기를 바랐다. 촛불정부라는 강력한 상징성과 지지를 바탕으로 좀 더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폐청산에 치우쳐 개혁은 뒷전이었다. 반대의 여지가 있는 개혁은 시도하지 않았다. 70%가 마지노선이라는 듯 지지율에 집착했다. 출범 첫해부터 부동산이 들썩거렸다. 대통령이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반대하는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주자 시장은 미친 듯이 반응했다.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라는 탄성이 흘러넘쳤다. 따뜻한 포옹이 가져다준 안도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교조 재합법화, ILO 핵심협약 비준, 차별금지법 제정 등 주요 진보적 이슈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보수적 태도로 일관했다. 최근 비판을 받고 있는 공정거래위 전속고발권 폐지 방침 철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도 큰 틀에서 같은 흐름에 있다. 이런 보수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촛불항쟁 과정에서 이미 잉태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이라고 할 만한 정책을 추진한 게 있는지 애써 떠올려 본다. 4대강 복원을 위해 몇 개(!)의 보를 열었고, 오랜 주저함 끝에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으며, 탈원전 공약을 실행에 옮겼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논점이 너무 많아 생략한다) 탈원전 공약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와 검찰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지만, 나라를 흔들어 놓을 정도로 강력하진 않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있어서만은 사생결단의 전선이 형성돼 있다. 이게 단지 문재인 대통령과 지지 세력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만)일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선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의 공방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검찰개혁이 최전선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 상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다른 분야와 달리) 개혁 의지를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리버럴 정부의 딜레마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과의 싸움이란 명분이 검찰의 방패가 되어줄 거란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정권 핵심부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수구세력은 리버럴 정부의 약한 고리가 된 검찰개혁 전선에 총집결해 있다. 특권이 특권인 줄도 모르는 괴물이 된 윤석열은 그 대표선수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남은 개혁 전선이라는 지적은 맞지만, 집권세력의 의지만으로 형성된 전선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엘리트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엘리트 카르텔 깨기다  최근 한 사회비평가가 검찰개혁을 주류 엘리트끼리의 싸움이라고 비하하는 글을 봤다. 이 비평가 말고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이들은 대체로 노동문제를 비롯해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불평등 문제에 별 관심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보수적인 경우도 있어서 불만이 많은 것이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엘리트들끼리(보수엘리트 : 진보엘리트)의 싸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검찰의 특권과 반칙과 내로남불을 없애는 게 엘리트끼리의 싸움(일뿐)인가.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으로 앉혀 노골적으로 검찰을 장악하는 권위주의 정부에선 충직한 개가 되었다가, 검찰개혁을 위해 검찰의 중립을 보장해주는 리버럴 정부가 되면 정부를 물어뜯는 불공정성을 고치자는 게 주류 지향인가.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들은 변호사 수임도 하지 않고 전화 한 통에 몇 억씩 챙긴다. 검찰이 수사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진짜 이유가 여기 있다. 진실을 덮어 이익을 취하는 이 편법적 비리를 근절하자는 게 엘리트끼리의 싸움인가. 오히려 제대로 된 검찰개혁을 이뤄내야만 엘리트 카르텔을 깰 수 있으며,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법치주의에 이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류가 교체되었다는 헛소리  나에게 올해 최고의 헛소리를 꼽으라면 박성민이라는 정치평론가의 4·15 총선에 대한 촌평을 들겠다. 총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패배할 거라고 예측하던 그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으로 대한민국의 주류가 교체됐다고 말풍선을 부풀렸다.(이런 사람이 여전히 언론의 주요 코멘테이터이자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게 지금 우리 언론의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주류가 교체되었다는 주장은 눈뜨고 하는 잠꼬대에 불과하다. 교체된 건 4년짜리 의회와 5년짜리 청와대 등 일부 선출권력뿐이다. 교체되지 않는 권력(재벌·언론·관료 등)은 여전히 강고한 수구의 아성이다. 살아있는 권력은 임기가 정해진 선출권력만이 아니다. 검찰과 삼성, 조선일보야말로 우리 사회의 딥스테이트가 아닌가. 정부가 검찰개혁을 제외한 다른 사회경제 개혁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는 건 온당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이라고 해서 주류 지향이라고 폄하하거나 비아냥대는 행위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수구의 이익에 복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검찰개혁을 비판한다고 창원의 청년이 바라는 세상이 빨리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영혼을 휘감고 있는 사유재산에 대한 맹신과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부수고, 노동자들끼리의 경멸과 질시를 포용과 연대의 정신으로 압도할 때 비로소 그가 바라던 세상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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