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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때, 우울하고 싶을때 / 시와 -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나의 꿈이 뭐인지 묻지 않고서 나의 꿈이 뭐인지 묻지 않고서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만 가라고 멈춰있는 시계는 나의 것이 아닌데 시와 - 아무도내게묻지않았네 - [음반] 이야기해주세요: http://youtu.be/n9u0xbVqi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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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요절한 천재 알앤비아티스트이자 배우.jpg
미국 국적 가수이자 배우 알리야(Aaliyah) 1979년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2001년 향년 22세에 나이로 요절한 가수 알리야 알리야는 9살이 되던 해에 티비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얼굴과 이름을 알렸음 11살때 미국 알앤비 가수 글래디스 나이트 콘서트에서 공연을 함 12살 때는 PD인 삼촌 배리 행커슨의 Blackground Records 와 계약하며 세계적인 R&B 아티스트 알 켈리 (R. Kelly)의 도움으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첫 앨범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발표했습니다. 수록곡 중 Back & Forth 와 The Isley Brothers 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곡인 (At your Best) You Are Love 가 빌보드 차트 Top 10을 기록하며 알리야 (Aaliyah) 의 인기는 물이 올랐지만 그녀가 알 켈리 (R. Kelly)와 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사실로.. 알리야 (Aaliyah)는 15살이었지만 혼인 증명서에는 18살로 기재되어 있었으며 이런 불법 결혼은 알리야 (Aaliyha)의 부모님에 의해 무효화됐고, 당사자들은 결혼한 적이 없다며 소문을 일축했습니다. 그 후 알리야 (Aaliyah)는 1996년 Atlantic Records 와 계약하며 두번째 앨범 One in a million 을 발표했습니다. If you girl only knew 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히트송이 되었어요. 1997년 미국 기준, 2백만장의 판매량 기록 ! 알리야 (Aaliyah) 는 디트로이트 예술학교에서 드라마학을 전공했습니다. 1997년 졸업 후에 드라마 'New York Undercover'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영화 'Romeo Must Die' 에 출연하며 사운드 트랙 4곡을 불렀는데 그 중 Try Again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고 2011년 알리야 (Aaliyah)는 세번째 앨범을 발매 했습니다. The Queen Of The Damned 퀸 오브 뱀파이어 가 촬영에 들어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튜디오를 오가며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퀸 오브 뱀파이어의 수록곡 중 무려 4곡이나 빌보드 싱글차트 Top 10 에 들었습니다. 앨범은 2002년 기준으로 2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앨범이 나온 지 약 한달 후에 알리야 (Aaliyah) 는 두번째 싱글 'Rock the boat'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바하마로 갔습니다. 2001년 8월 25일 촬영을 마친 후 알리야 (Aaliyha)와 7명의 스태프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경비행기를 탔으나 이 비행기가 중량 초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조종사 및 알리야 (Aaliyah)를 포함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비보가 전해졌고 전세계의 알리야 (Aaliyah)의 팬들은 그녀를 추모했습니다. 사후 알리야 (Aaliyah)는 2002년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소울/알앤비 아티스트,앨범 부무을 수상했습니다. 그 이후 타미힐피거 커머셜 광고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던 올드스쿨 피메일 아티스트 알리야 (Aaliyah)의 Aaiyah Babygirl 이 다시 한번 주목받으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알리야는 수많은 기록을 씀 빌보드 선정 올타임 여성 아티스트 명단 47위에 이름을 올리고 ESSENCE 선정 가장 위대한 알앤비 아티스트 30위에 선정 알리야의 대표곡 One in a Million Try again At your best(You are love) Miss you Back & Forth 출처
국뽕이 차오른다! 가자! (feat.온스테이지)
2020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들 2019년 마무리는 잘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뭐 평소와 똑같이 보내고 평소와 똑같이 출근을 했습니다. 뭔가 한 살 두 살 먹을 수록 연말, 연초의 설레임이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그려.. 뭔가 센치하고 오늘의 날씨처럼 우중충한 저의 마음에 환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유튭을 켰고, 제가 좋아하는 국뽕 시리즈를 재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몰려오는 흥! 깡! 멋! 최근 온스테이지에서 우리의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결합한 음악가들의 작품과 공연 영상을 많이 소개해주는데 (아주 멋진 모습이라구~ㅎ) 이게 아주 고막에 챡- 챡- 달라 붙는다고요. "떼잉~! 요즘 그런 틀* 음악을 누가 듣니? 히빱이나 Lo-fi나 틀어봐~!~!" 이런 생각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겠지만.. 이게 뭐랄까.. 엄청 힙해보이는 느낌이라니까?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니까? 진짜로? 나중에 상모 하나 가방에 숨겨놓고 공연장 찾아가면서 일찍 이런 음악을 접하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지 말고 오늘은 나랑 같이 즐겨보자궁 ㅎ 한국인의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 재생목록을 공개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심장박동은 자진모리 장단으로 뛸 것 입니다. 민요 메들리 / 난봉가 / 사설난봉가 - 씽씽 지난번에 씽씽에 대한 카드를 쓴 적이 있는데, 기억하는 빙글러가 있을까요? 걍 몇 백번을 돌려 봐도 절~대~ 질리지 않는 마법의 영상입니다. 갠적으로 베틀가를 진짜 좋아합니다... 에헤이 요오~~ 베짜는 아가씨이~~~ 나는 왜 씽씽 밴드의 공연을 보러가지 않았는가.. 과거 나년의 뺨을 후려치고 싶습니다. 범 내려온다 - 이날치 얼마전에 어떤 예능에서 범 내려온다가 나오길래 반가운 마음에 계속 돌려듣고 있는 노래. 베이스 라인 진짜 미친거 아닙니까? 쫀득 쫀득함이 초코퍼지급; 이것이 바로 조선의 클럽이다! 라고 외치는 듯한 이날치.. 야야.. 막걸리 좀 가져와봐.. 이 노래를 듣고 고개 한번, 다리 한번 안 흔들어본 사람 있으면 손 좀 들어보세요... 죄송하지만, 당신은 방금 국적을 잃었습니다. 경북 스윙 - 상자루 아니 왜 기타에서 우리 민족의 소울이 느껴지는 거죠? 따끈한 에스프레소에 겨란 노른자 톡! 올려서 마시는 느낌적인 느낌 바이올린 활을 이용해 거문고를 켜는 모습도 생소하지만 전혀 이질적이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 기억난다.. 1930년대 다방에서 내 님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혼 - 동양고주파 처음 보는 악기 아닌가요? 저 악기는 바로 '양금'이라느 우리나라 전통 현악기라고 합니다. 국악기중에서는 유일하게 쇠줄을 가진 현악기라고 하네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지만 정확한 음을 찍어내시는 연주자님.. 아니 저게 가능한건가요? 영상을 아무리 봐도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전혀 모르겠는걸요 (띠용) 이 영상도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데, 음악이 좋은 이유도 있지만 양금 연주자님의 저 순수하게 행복한 표정을 바라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죠 ㅎ 조금은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지만 꼭 한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Rain, Grey - 신박서클 갑자기 섹소폰이 등장해서 놀라셨나요.. 가야금과 섹소폰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신박서클 가능해? 싶지만 ㄹㅇ 찰떡같이 어울리는 이 조합ㅠ 그래 맞아 섹소폰도 우리 민족 전통악기였어!!..!!!!... 아 그렇다면 그런거야!!! 베이스, 섹소폰, 드럼 이 모든게 다 우리 전통 악기였다고!!!!!!! 아 이곳은 서양인가 동양인가.. 아.. 중양인가.. (혼미) 길군악-강권순x송흥섭 앙상블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조선 블루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조선의 클럽이였다면 길군악은 조선의 재즈바 느낌이랄까요? 뜨끈-한 소머리 국밥에 갓파더 한잔 마시는 듯한 길군악. 아스트랄할 것 같지만 중독될 것 같아..☆ 마이크가 쫓아오지 못하는 그녀의 목소리.. 3:07 부터 소름 조심하세요; 진심 눈 번쩍 손 줄줄 눈물 벌벌각;;; 그나저나 선생님.. 숨은 어디서 쉬시나요?..??.. 영정거리 - 악단광칠 유교걸의 심장에 사정없이 노크하는 악단광칠 잘 보면 세션도 모두 전통 악기입니다. 징으로 드럼 치는거 보고 진짜 와; 뭐야 이 배운 사람들; (경악) 와 나 국악 좋아하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영정거리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더군요? 여러분도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후회는 없다. 이쯤되면 예상되는 빙글러들 현재 상태 다들 국뽕 든든하게 챙기셨습니까? 이제 국악은 올드하고 낡아빠졌다는 생각이 낡아빠진 시대가 찾아왔군요 여러분 모두 국악 듣고 천국가시길 바랍니다 피쓰-
Halestorm - TerribleThings
아티스트: 헤일스톰 첫번째 앨범: Back from the Dead 발매일: 2022년 장르: 록, Rock, 헤비 메탈,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얼터너티브 메탈, 포스트 그런지, Traditional heavy metal 헤일 스톰은 1997년 결성된 미국의 헤비 메탈, 하드 록 밴드. Back from the Dead 는 미국 록 밴드 Halestorm 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입니다.  2022년 5월 6일 Atlantic Records 를 통해 발매 되었다. 앨범에 앞서 2021년 8월 싱글로 발매된 타이틀곡 "Back from the Dead", 2022년 2월 "The Steeple"이 뒤따랐다. Halestorm은 2020년 COVID-19 대유행 이 시작되기 약간 전에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 봉쇄 기간 동안 밴드는 스태프와 승무원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찾는 동안 빈번한 투어 일정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밴드는 2021년 초에 정식 앨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앨범 가사의 대부분은 가수/기타리스트 Lzzy Hale 이 팬데믹 기간 동안 팬 및 밴드 동료들과 단절된 음악가로서의 자기 발견 경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정신 건강은 앨범 가사의 공통 주제입니다 . Hale에 따르면 "이 앨범은 그 심연에서 나 자신을 조각내는 이야기입니다. 정신 건강, 방탕, 생존, 구속, 재발견을 탐색하고 여전히 인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여정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6UEDl6reAc 헤일스톰 좋아하는 락 뮤지션이다. 가창력 최고 !!!
악플러의 거짓말로 결성된 락밴드.txt
2016년 활동을 종료한 한국의 인디 락밴드 '언니네 이발관'. 2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6장의 정규앨범을 발매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장기하와 얼굴들, 잔나비를 비롯한 인디 음악들의 시초격이 되어 큰 영향을 준 밴드이다. 즉 한국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선구자와 같은 존재인 셈인데, 당신은 이들의 음악이 오로지 거짓말로 다져졌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때는 1993년. 아직 인터넷이 'PC 통신'이라고 불렸을 시절, 당시 하이텔에는 여러 음악 관련 커뮤니티들이 많았고 이곳에서 버벌진트, 신해철 등 다양한 음악가들이 활동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인 이석원 역시 이곳에서 네임드 유저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위에서 설명한 음악가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유명했는데, 사실 이석원은 당시 하이텔 음악 커뮤니티에서 온갖 곳에 시비를 털고 다니는 네임드 악플러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었기 때문. (대충 이석원이 당시 달고다녔을 걸로 예상되는 댓글) 당시 경계선 성격장애로 인해 군면제를 받고 음반가게를 하던 이석원은 이런저런 음반들을 찾아들으며 나름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당시 인기를 끌던 신해철의 음악을 가루가 되도록 까며 네임드 악플러가 되었는데 이 럭키 야붕이는 이후 본인의 유명세를 이용해 당시 그가 속해있던 메탈 동호인 커뮤니티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모던 락 소모임' 이라는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떨어져나온다. 당시 그가 만들었던 '모소모' 에는 스웨터의 보컬 이아립, 델리 스파이스의 윤준호와 김민규 등 당시 인디 락 밴드를 하고 있던 이들 여럿이 속해있었는데, 어느날 저들 중 한명이 이석원에게 "님은 무슨 밴드 하시나요?" 라는 질문을 하고 찐따무직백수아싸였던 이석원은 당연히 기타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몰랐고 밴드를 할리도 없었지만, 악플러로 쌓아온 악명에 금이 갈까 걱정했던 그는 꿇리지 않기 위해 대담한 거짓말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가상의 인디 밴드를 급조하여 그 밴드에서 보컬이자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같았으면 '병신ㅋㅋ 인증해보셈' 이 기본으로 들어갔을테지만 이 럭키 야붕이는 키보드 앞에서 이빨을 꽤 잘 털었는지 성공적으로 구라가 먹혀들어갔다. 이후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졸지에 이석원은 어릴 때 봤던 야동 이름에서 밴드명을 따와 밴드 이름을 '언니네 이발관'이라고 짓더니 국내에서 몇 안되는 모던 락을 전문으로 다루는 밴드라는 설정까지 덧붙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를 눈여겨보던 KBS에서 라디오 음악 방송에 초대 요청까지 받게 되었는데, 물론 이 시점까지 이석원은 밴드 리더는 커녕 악기도 무엇 하나 다룰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전국적인 구라를 까고 나서야 본능적인 ㅈ됨을 감지한 이 미친놈은 런각을 재기 위해 인디밴드를 하고있던 친구 윤병주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고, 이 미친놈은 "차라리 그럴거면 진짜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지 그래?"라는 친구의 한 마디에 진짜로 밴드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이후로 이석원은 커뮤니티에 적당히 만든 구라글로 새로운 멤버를 모집한다며 글을 작성했고, 이내 키보드, 기타리스트, 베이스를 정식으로 구해 처음으로 합주를 하는 날이 되었다. 합주하기로 한 곡은 너바나의 'Come As You Are' 였는데, 이석원은 속으로 '남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뭐' 라는 생각으로 대충 합주하는 척만 하려고 했으나 이내 이석원은 이 결정이 완전히 틀려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실력있는 연주자라고 서로를 소개한 멤버 전원이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라디오에서 곡을 연주하기로 한 날짜까지는 어언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이 지옥에서 온 연주를 들은 윤병주는 구석에서 조용히 이를 갈더니 이들을 몇 주간 반 강제로 어느 외진 곳에 펜션에 감금해 합숙시키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가르치는 지옥의 트레이닝을 시키게 된다. 그렇게 라디오 생방송을 하기로 한 날, 이석원과 멤버들은 라디오 스튜디오로 들어가 전날 급조한 자작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건냈고 이는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인터넷에서 악명을 떨치던 악플러가 만든 밴드가 라디오에 떴다는 소식은 이내 온 커뮤니티를 달궜고 다행히도 그들의 음악은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여기에 추가로 이들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은 정바비가 멤버로 합류하며 이들은 홍대의 모 클럽에서 정식으로 데뷔 공연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한국 음악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가짜 록 밴드 사건은 이들이 실제 록 밴드가 되어 세상에 나타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이후 발매된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한국 인디 음악의 시발점'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대중음악 명반에도 실리게 되었다. 3줄 요약 - 1. 인터넷에서 입털던 악플러가 밴드만들었다고 구라깜 2. 구라깐거 들킬까봐 진짜로 밴드 만들었는데 아무도 악기 못다룸 3. 2주동안 개빡쎄게 연습해서 진짜 전설의 락밴드가 되어버림 출처 : 디씨싱벙갤
수십년 전 예언대로 전설이 된 밴드
때는 1960년대 미국, 뉴 햄프셔주의 어느 한 가정에선 전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빠 - 오스틴 위긴스 딸들아. 미안하지만 내일부터 너희 셋 다 학교 그만둬야한다... 딸들 - 위긴스 자매 헉! 대체 왜때문에요? 아빠가 일하던 공장이 망했나요?? ㅠㅠ 힘들겠지만 저희도 힘을 내서 가계를 돕는 걸로... 응? 아냐 공장이 왜 망해ㅋㅋ 그냥 너희는 이제부터 밴드를 해야 하거든 그래서 학교에 다닐 시간따위 없단다. ...?? 아니 우리가 왜 밴드를 해야 하죠? 내가 어릴 때 시장에서 손금 점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점쟁이가 이런 예언을 남겼지. 오오...님, 인상이 참 좋더니 님의 운명에 처녀궁의 가호가 있네양...! 조상신이 도와주시는 게 분명해양...! 님은 나중에 금발녀랑 결혼하고 딸 셋이 태어날 거에양...! 안타깝게도 이후 아내는 죽게 되겠지만... 그 딸 셋은 분명 나중에 유명한 밴드가 될 거에양...! 이제 복채 주시죠 손님 나도 처음엔 이걸 믿지 않았지만... 이후 나는 금발인 너희 엄마랑 결혼해서 실제로 딸 셋이 태어났잖니. 게다가 지금 1960년대 중후반이란다. 이때 미국 대중문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 그래! 영국에서 온 비틀즈라는 밴드 덕분에 다 죽어가던 록 음악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때잖아! 이 때가 아니면 너희가 언제 밴드를 하겠니. 너희는 학교에서 썩기 아까운 아이들이야. 이 아빠가 너희를 위대한 밴드로 만들어줄게! 그러니, 오늘부터 학교도 금지, 친구랑 연락하는 것도 금지 오직 방 안에서 음악만 한다! (하...ㅅㅂ) 까짓거 한 번 해보져 뭐... 근데 아빠는 왜 음악도 못 듣게 하는 거지 우리는 음악 잘 모르는데...힝구...ㅠ 그렇게 위긴스 자매는 아버지의 지도 하에 정체불명의 폐관수련을 1년 동안 하고 무려 앨범까지 내는 데 성공한다. 마침내...마침내 완성했어...! 지금까지 번 돈을 꼴아박아서 앨범을 만들었다고!! 이제 우린 부자가 될 거야! 그렇게 완성된 앨범이 지금은 전설이 된 더 섀그스의 Philosophy of the World이다. 음악에 별다른 관심도, 재능도 없던 세 시골 처녀들이 만든 이 앨범은 놀라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괴상한 불협화음이 났다. 듣고 있기 괴로울 정도. 완벽한 실패작이었던 것. 앨범은 1000장을 뽑았지만, 900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증발되고(도난으로 추측)나머지 100장 조차 당연하게도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이후 1975년 아버지 오스틴이 사망하자 자매들은 밴드 활동을 그만두고 이는 흑역사로서 잊혀지는 듯 했다.... 몇 달 뒤...... 내 이름은 프랭크 자파. 누구나 인정하는 미국의 위대한 아-티스트지. 오늘은 마이너한 밴드들의 음악에서 영감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 어디...더 섀그즈? 이거 왠지 삘 오는데, 한 번 들어보지. ...세상에...! 이 아방가르드하고 직설적인 사운드....!! 진심으로 대단한데? 얘네가 비틀즈보다 훨씬 낫군! (실제로 한 말) 나도 앞으로 이 곡들 연주해봐야지. 히히. 그 시절 록찔이들 야! 그거 들어봤냐? 그 프랭크 자파가 더 섀그스라는 밴드가 개쩐다고 말하고 다녀! 나도 꼭 한 번 들어봐야겠는데? ...뭐지 귀가 간지러운데 누가 우리 얘기 하는 거 아니야? 음반 회사 오, 요즘 뭔가 더 섀그스라는 앨범이 입소문 도는 모양인데? 이거 재판해야겠다 히히. 용돈벌이는 되겠지? ?? 뭐야 시발 우리 흑역사 그냥 내버려 둬요;; 막 등장하기 시작한 펑크 밴드들 꼭 천재들만 음악 하라는 법은 없잖아! 우리같은 사람들도 밴드를 할 수 있어! 그런 펑크 정신을 생각했을 때 더 섀그스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펑크의 시초라고 할 수 있지 저 커트 코베인도 완전 동의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앨범 50선 중 5위에 더 섀그스를 넣었어요. ㅅㅂ......왜 우리의 흑역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ㅠㅠㅠㅠㅠㅠ...... 그리하여 더 섀그스의 음악은 훗날 펑크와 인디 뮤지션들에 영향을 주는 데까지 성공한다. 자매들의 아버지가 들었던 예언처럼 그녀들은 실제로 유명한 밴드가 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음악 못하는 밴드로... (출처) 이쯤 되면 대체 어떤 노래를 했길래?! 궁금해 지시죠? .....;; 우리도 음반내 야너두 할수있어! 의 시초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걸 진짜 음반으로 냈다고?!
비틀즈가 대중음악계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원탑인 이유.jpg
vs글을 좋아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국인들에게 '비틀즈 vs ???'는 가끔마다 게시판에 나오는 주제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비틀즈를 넘어서는 대중음악 뮤지션은 그 누구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틀즈라는 이름만 알거나, 비틀즈의 히트곡 몇몇만 알지만, 비틀즈가 왜 그렇게 높은 칭송을 받는지 몰랐던 분들을 위해 조금 알기 쉽게 글을 쓰고자 합니다. 비틀즈가 역대 원탑으로 일컬어지는 세가지 이유입니다. 1. 그 당시 최고의 아이돌 대중음악에서의 의미를 넘어서, 60년대 전체를 대표하는 사건 중에 하나로 비틀즈의 '브리티쉬 인베이젼' 이 있습니다. 1964년 2월 7일, JFK 공항에 나타난 비틀즈의 등장과 함께 대중음악은 대변혁을 겪습니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미국 팝계를 지배하던 로큰롤 스타들은 보수적이던 미국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점점 힘을 잃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목사가 되어버려서 로큰롤을 사탄의 음악이라 하지 않나(리틀 리처드), 미성년자 태우고 주 경계를 넘지 않나(척 베리), 이미지 관리를 위해 군대를 가버리거나(엘비스 프레슬리), 비행기 사고로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등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빅 바퍼) 정상인 상태가 아니였는데, 이 로큰롤의 불씨를 다시 당긴 것이 비틀즈로 시작된 브리티쉬 인베이젼이고, 이는 꺼져가던 록 음악의 불씨를 다시 피운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당시 비틀즈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비틀즈를 보러 수만 명의 미국 팬들이 JFK 공항에 모인 것은 몰론, 그들이 나온 TV 쇼의 전국 시청률은 무려 40%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5위 줄세우기 등 곧 비틀즈는 1964년부터 2년 간 전세계를 투어하며 호령하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서 방탄소년단을 무려 그 비틀즈와 비교하는 것도 그들의 음악 때문이기보다는, 이러한 광적인 인기를 연상시키게 한다는 점에서 예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탄 노래가 뭐가 좋다고 비틀즈에 비비냐 ㅉㅉㅉ"라는 비판은 핀트가 맞지 않다는 것이죠. 이 당시 비틀즈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더 투어링 이어즈>가 있는데 비틀즈 팬이거나 팝송 팬이면 추천드립니다. 2. 그 당시 최고의 히트곡 메이커 그냥 그 당시 인기만 많았고 지금까지 불러지는 곡들은 적은 케이스의 당대 가수들이 우리나라든 해외에든 몇몇 있지만, 비틀즈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발매된 노래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찾습니다. 지금까지 생명력이 유지되는 곡들은 대부분이 당시 가장 인기를 끌던 로큰롤 스타일보다는 포근하고 조용한 느낌의 팝송입니다. 그래서 비틀즈를 잘 모르는 이들은 비틀즈에게서 발라드 팝 밴드 느낌을 받고는 하죠. 비틀즈 초기의 대표 명곡인 'Yesterday' 후기의 'I will', 'Ob-La-Di, Ob-La-Da', 'All You Need Is Love', 'Hey Jude', 'Let It Be' 등이 비틀즈를 모르는 이들도 아는 명곡이고, 비틀즈를 파다 보면 이 이상의 셀 수 없는 명곡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찾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비틀즈의 명성이죠. 3. 그 당시 최고의 혁신가 (비틀즈가 역대 원탑이며 그 누구와도 비빌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그렇다고 해서 비틀즈가 명곡 몇 개 좀 있고 인기 좀 있던 그 정도 수준의 밴드였냐? 절대 아니올시다입니다. 우리가 비틀즈를 떠올리면 대부분이 먼저 연상하는 모습인 똑같은 머리, 똑같은 정장을 입은 4명은 미국에서 아이돌이 된 비틀즈 초기죠. 그러나 비틀즈가 지금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위처럼 산적같이 머리를 기른 비틀즈 후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틀즈가 원탑으로 평가받게 된 이유인 비틀즈 음반의 놀라운 발전 과정을 시대순으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3-1. <Rubber Soul> (1965) 비틀즈의 음악에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건 1965년에 나온 6집 <Rubber Soul> 때부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의 음반이 그저 2~3분 짜리 곡 여러 개를 묶어 놓기만 한 '곡 모음집'의 개념에 불과했다면, <Rubber Soul>은 이 음반은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작품'으로 진화시킨 최초의 음반으로 평가 받습니다. 미국에서 인기 막 얻고 있던 시기엔 사실 비틀즈의 가사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사랑 노래를 위주로 하던 럭키 씨앤블루(..) 수준의 가사에서 서서히 자전적이거나 문학적인 의미의 다양한 가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Norwegian Wood And when I woke, I was alone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나 혼자뿐이었어 This bird has flown. 귀여운 작은 새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지 So I lit the fire 나는 난로에 불을 지폈어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노르웨이산 가구, 아주 근사하지 않아요?" (대중음악에 인도 악기(시타르)가 들어간 첫 사례이자, 조지 해리슨을 본격 인도빠로 인도한 곡) Nowhere Man Doesn't have a point of view 그는 이렇다 할 관점도 없고 Knows not where he's going to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지 Isn't he a bit like you and me? 너와 나와 좀 닮은 것 같지 않아? Nowhere man, please listen 어디에도 없는 자여, 들어봐 You don't know what you're missing 넌 너가 놓치는 게 뭔지 몰라 Nowhere man, The world is at your command 어디에도 없는 자여, 세상은 너의 손에 달렸어 (존 레논이 본인의 심정을 투영해 자아의 성찰을 주제로 작곡한 노래) 이것이 음반 전체의 '주제'로 승화되면서 개별 한 두곡만 찾아서 듣는 것이 아닌, 대중들 사이에서 앨범 전체를 작품으로서 듣게 되는 새로운 경향이 생겼으며, 이 음반에 충격을 받은 많은 뮤지션들이 (대표적인 예로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인데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 역시 오늘날 최고의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음반의 작품화'에 착수하면서 서양 대중음악은 대변혁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존 레논 인생 최대 어그로인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 발언과 필리핀 가서 독재자 안 빨아줬다고 살해 협박을 받고 가까스로 탈출한 사건, 또한 밥 딜런을 만나 서로 약을 졸라 빨면서 (씨잼처럼 가짜는 아니였음) 창작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던 그들은 투어와 앨범 발매로 병행되는 지겨운 일정을 아예 접었고, 인도빠 조지 해리슨은 힌두교로 전향해버립니다. 그리고 4명의 멤버들은 스튜디오에 박혀 온갖 음악적 실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3-2. <Revolver> (1966) 그리고 투어를 그만두기 직전 나왔던 7집 <Revolver>부터는 각자 멤버들의 개성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서로 뻗어나갔는데, 존 레논은 사이키델릭과 포크의 결합, 폴 매카트니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결합, 조지 해리슨은 인도음악과 대중음악의 결합으로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음반으로 어우러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링고 스타는 그냥 드럼을 열심히 쳤... Tomorrow Never Knows Turn off your mind relax and float downstream 몸에 힘을 빼고 마음을 진정 시켜 봐요 It is not dying. It is not dying. 그것은 죽음이 아니에요, 죽음이 아니에요. Lay down all thoughts, surrender to the void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공허함에 몸을 맡겨 봐요. It is shining. It is shining. 그것은 빛나고 있어요, 빛나고 있어요. That you may see the meaning of within 그렇게 하면 그속에 있는 의미를 보게 될지도 몰라요. It is being. It is being. 그것은 존재하고 있어요, 존재하고 있어요. <Revolver>의 대표곡이자 사이키델릭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Tomorrow Never Knows'는 서양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곡으로 뽑히는데, 'Rain', 'I'm Only Sleeping'과 함께 곡을 역방향으로 재생하면 들리는 소리나 메시지를 삽입하는 기술인 백마스킹이 음악 역사상 최초로 쓰인 곡입니다. 그리고 이 기법은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하나의 장르의 탄생을 야기했습니다. 즉, 비틀즈가 이 음반으로 록의 한 장르를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그리고... 3-3.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역대 500대 명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음반. 비틀즈의 이름이 아닌, 앨범과 동명의 밴드가 공연한다는 컨셉의 음반으로,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된 역사상 최초의 '컨셉트 앨범'입니다.  이 음반은 서양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명반인데, 이러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ㄱ. 10대들의 오락에 불과하던 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첫번째 시도이며, 동시에 그러한 시도에 성공했다는 점. ㄴ. 록이 다른 음악들과 만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 ㄷ. 20세기까지의 서양음악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서양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 ㄹ. 비틀즈가 확보했던 대중성에 기초해 위대한 예술이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덕목인 '보편성'을 획득한 첫번째 락 음반이라는 점. A Day In the Life (Lennon) I saw a film today, oh boy 난 오늘 영화 한 편을 봤어, 세상에 The English Army had just won the war 영국 군대가 전쟁에서 이겼고 A crowd of people turned away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지 But I just had to look 그러나 난 그저 지켜보았지 Having read the book 책을 읽으면서 말이야 I'd love to turn you on 당신을 취하게 하고 싶어 (McCartney) Woke up, fell out of bed 잠자리에서 일어나 dragged a comb across my head 빗을 찾아 머리를 빗어 Found my way down stairs and drank a cup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을 한 컵 마시고 and looking up, I noticed I was late 올려다보니, 내가 늦었다는 걸 깨달았지 Found my coat, and grabbed my hat 외투를 찾고, 모자를 집어들고 나와서 made the bus in seconds flat 빨리 버스에 탔어 Found my way up stairs and had a smoke 위층에 올라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누군가 내게 말을 건냈고 난 꿈에 빠져 들었어 특히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A Day In the Life'은 곡을 완성하지 못하던 존 레논의 멜로디를 폴 매카트니가 아예 다른 멜로디를 붙여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중음악에 40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삽입을 이뤄낸 최초의 시도로, 비틀즈 팬들이 꼽는 최고의 명곡 중 늘 1, 2위를 다툽니다. (아마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분들께서는 퀸의 'Bohemian Rhapsody'에서의 그 전환이 생각날 겁니다.) 3-4. <The Beatles(The White Album)> (1968) 여기서 그 커리어가 끝났어도 이미 원탑 레전드였을텐데, 비틀즈는 1년만에 또 다른 전환을 시도하고, 그것이 맘껏 발현된 음반이 <The Beatles>입니다. 커버부터 화려했던 1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앨범 커버부터가 아무런 바탕도 없이 비틀즈의 영어 표기만 달랑 붙어있는데, 화려하고 꽉 찬 느낌과 정반대의 대조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음반은 하나의 주제로 모여있는 <Sgt...>와 달리, 모든 멤버가 제각각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버리는 컨셉이었습니다. 더블 앨범(2CD)으로 발매된 이 음반은 장르를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습니다. 로큰롤, 록, 팝, 하드록, 발라드, 챔버팝, 사이키델릭 록, 블루즈 록, 브라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 포크 록, 재즈, 컨트리, 스카, 펑크, 자장가, 헤비메탈, 아방가르드 등.... 그리고 그 장르들의 대부분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엄청난 가치를 지닙니다. Helter Skelter When I get to the bottom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I go back to the top of the slide 난 정상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 Where I stop and I turn and I go for a ride 떠오르려고 멈추고 돌아서서 가는 거야 Till I get to the bottom and I see you again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널 다시 보겠지 Do you, don't you want me to love you? 너, 넌 내가 널 사랑하길 바라지 않니? I'm coming down fast but I'm miles above you 빠르게 무너지고 있지만 너보단 훨씬 나아 Tell me, tell me, tell me, come on, tell me the answer 말해줘 말해줘 제발 답을 말해봐 Well, you may be a lover but you ain't no dancer 넌 내 사랑은 받아도 날 즐겁게는 못해주겠지 예를 들어, 이 음반에 들어있는 곡 'Helter Skelter'는 헤비메탈의 시초로 불리고 있으며, 비틀즈를 조용한 팝 음악 곡들로만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 '록밴드'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곡입니다. Ob-La-Di, Ob-La-Da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되네요. La-la how the life goes on 랄라 인생은 계속된다고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되네요. La-la how the life goes on 랄라 인생은 계속된다고 또한 이 음반에서 가장 분위기가 따로 놀지만 가장 인기를 얻었던 곡 중에 하나인 'Ob-La-Di Ob-La-Da'는 대중음악 최초로 레게 비트와 스카를 차용한 곡입니다. 이렇듯 멤버들이 서로 따로국밥 형식을 한 <The Beatles> 더블 앨범은 멤버 각자의 개성들을 자유롭게 표출해낼 기회가 된 것이고 그 결과로 한계가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사운드와 다양한 정서가 담긴 방대한 더블앨범이 탄생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앨범에는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는 음악색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비틀즈 자신이 전작들에서 선구적으로 정립시켰던 관념을 비틀즈 스스로가 뒤엎는 결과가 된 것이죠. 3-5. <Abbey Road> (1969) 비틀즈 하면 떠오르는 사진 중 하나, 바로 <Abbey Road>의 앨범 커버입니다.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 이미 멤버들은 서로 반목에 반목을 거듭해 해체 직전에 있었으며, 저 앨범 커버 역시 본인들 스튜디오 옆에서 촬영한 것으로, 어디 멀리 가기 귀찮고 서로가 싫어지기도 해서 대충 찍은겁니다. 아마 저 횡단 보도를 건너던 순간, 멤버들은 아마도 '요코 보고 싶다' '인도 가고 싶다'같이 딴 생각만 가득했을 겁니다. 그런 최악의 팀워크 아래에서도 비틀즈는 또다시 명반을 만들어냅니다. Come Together He wear no shoeshine he got toe-jam football 빛나는 신발은 신지는 않고, 발가락 묶인(?)축구공을 가지고 있지 He got monkey finger he shoot coca-cola 원숭이 같은 손가락에 코카콜라를 쏘아대 He say "I know you, you know me" 그는 말해 "난 널 알아, 넌 날 알아" One thing I can tell you is you got to be free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Come together right now over me 지금 당장 모여서 내게로 와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해가 떠올라요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해가 떠오르며, 난 좋다고 말하죠 Little darling, It’s  a long cold lonely winter 귀여운 내 사랑, 춥고 외로운 겨울이였어요 Little darling, It feels like years since it’s been here 귀여운 내 사랑, 겨울이 몇 년처럼 느껴져요 1년 후에 나온 마지막 정규 앨범 <Let It Be>보다 더 늦게 녹음된 이 음반은 레논-매카트니에 가려져 있던 조지 해리슨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앨범 후반부에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폴 매카트니의 메들리, 그리고 대중음악 최초의 히든 트랙 삽입까지 이전의 음반에 뒤지지 않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녔던, 비틀즈 최후의 스완송이며 아름다운 마무리였습니다. 이렇게 비틀즈가 무려 13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매년마다 진화해오고 대중음악의 선두에 서있었던 채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8년. 그리고 비틀즈 결성 전과 비틀즈 해체 직후까지의 대중음악 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들의 머리스타일 변화만큼이나 그야말로 땅과 하늘의 차이입니다. 로큰롤에 불과했던 밴드 사운드를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진정한 '록 음악'으로 발전시킨 기여자이며, 그로 인해 팝 음악의 발전에도 엄청난 기여를 한 뮤지션. 그 뜻은 지금의 모든 장르의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비틀즈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틀즈는 다른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긴글 3줄 요약 1. 비틀즈 인기 쩔었음 2. 비틀즈 히트곡도 쩔었음 3. 비틀즈는 매우매우 혁신적이었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