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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의 걷는 독서 1.14

사람이 사는 동안 중요한 건
오늘 내가 진정으로 살았구나,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의 날이
얼마나 있었는가이다

- 박노해 ‘삶의 숫자’
Turkey, 2005. 사진 박노해


어느 흐린 겨울날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습니다.
묘비 하나 하나에는 3·5·8···
숫자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마을에는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서
어린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습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석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석의 숫자가 참 삶의 나이라오.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삶의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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