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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유로 지폐

짤막한 주말 특집, 0유로 지폐이다. 링크를 보시면(2020년 10월 기사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동독박물관에서 독일 통일 30주년 기념 0유로 짜리 기념지폐를 낸다고 적혀 있다. 이 동독박물관이 0유로 짜리 지폐를 낸 것이 2020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가 벌써 7번째이며, 수집가 아이템으로 인기도 좋다고 한다.

이 0유로 지폐는 실제 유로 지폐와 동일하며, 중앙은행인 ECB로부터 허가도 받았다(참조 1). 당연한 말이지만 0유로 짜리가 아닙니다. 장당 2유로에 판매된다. 그리고 금번 7번째 발행은 1만장만 인쇄했으며,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전례로 볼 때 아마 이번에도 금세 완판됐을 듯 하다. 이런 건 시간이 지날수록 매매가가 액면가를 능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0유로 짜리 지폐의 아이디어를 낸 인물(EU 내의 무슨 기구에서 낸 것이 아니다)이 따로 있는데 그가 독일인은 아니다. 프랑스인 사업가 리샤르 파이(Richard Faille, 참조 2)이며, 그는 이미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프랑스 내에서 유서깊은 프랑스 주전국(Monnaie de Paris)과 함께 기념메달 사업을 하고 있었고, 2012년에는 성공리에 엑싯까지 해냈다. 프랑스 주전국이 그의 사업체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후 그가 새로 낸 아이디어가 바로 0유로 짜리 기념 지폐다. 처음에는 당연히 관광명소 홍보용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주전국과는 얘기가 잘 됐어도 프랑스 중앙은행과의 협상은 잘 안 됐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ECB가 조폐를 위탁하는 Oberthur Fiduciaire와 계약을 맺었다. 실제로 유로를 내는 곳에서 만든다는 얘기다.

(시리얼 넘버도 있고 그 외 워터마크와 같은 보안 기능도, 진짜 지폐랑 동일하게 들어 있다.)

드디어는 2015년부터 제로 유로 지폐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구상은 소위 “대박”을 터뜨린다. 공유한 독일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 심지어 영국과 스위스도 제로 유로 지폐를 냈고, 유럽과 관계 없는 나라들도 제로유로 지폐를 생산했다(참조 3). 기사(참조 2)에 따르면 그의 노리는 최종 시장은 미국인 듯 하다. 제로 달러다.

세상에 많이 알려진 계기는 아무래도 독일에서 낸 카를 마르크스 기념 제로 유로 지폐일 것이다. 그야말로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일어날 지경으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었다. 그리고 위의 동독 박물관의 경우처럼, 이게 죄다 한정판이다. 그래서 수집가들 사이에서 천 유로에 거래되는 것들도 있는 모양이다.

경고, 실제로 사용하는 지폐는 절대로 아니다. 이 지폐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기계에서도 통과 못 한다(참조 4). 물론 중국도 가만 있으면 안 된다. 이미 0유로 위폐도 만들었다고 한다(참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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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In Germany released a note of the value zero Euro(2017년 6월 25일): https://intmassmedia.com/2017/06/25/in-germany-released-a-note-of-the-value-zero-euro/

2. Créé par un Auvergnat, le billet de zéro euro cartonne partout(2020년 12월 26일): https://www.lamontagne.fr/chamalieres-63400/actualites/cree-par-un-auvergnat-le-billet-de-zero-euro-cartonne-partout_13896372/#refresh


4. Test securite magnetique d'un Billet Touristique 0 Euro Souvenir(2020년 4월 19일): https://youtu.be/hWtB20uEc_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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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D
화요일은 역시 독일이죠. 상당히 묵직한 사진이다. 시대에 따른 독일 사민당(이하 SPD)의 대표와 지지율을 보여주는 그래프(참조 1)인데, 지금은 20%도 안 된다. 집권하기 매우 힘들다. 결론부터 얘기해 보자. 앞으로 역사책은 SPD에 대해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 그리고 게르하르트 슈뢰더 3명만 인물로 거론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독일 현대사의 주역은 아무래도 기민당/기사련(CDU/CSU)일 테고 기민당에 리더십 안에서의 위기(참조 2)가 들이닥칠 때, SPD에서 "인물"이 나와 투표를 휩쓴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만한 "인물"이 안 보이네, 단적으로 올라프 숄츠는 메르켈의 집권 파트너였지, 메르켈의 대안이 아니라는 인상이 대단히 강하다. 첫 번째. 좀 더 오른쪽으로? 경선 당시, 바이든은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에게 겉으로든 속으로든 양보하지 않았고, VP로 해리스를 택했었다. 당내 좌파를 억눌러야 중도층에 어필한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두 번째. 그에 따라 분배의 공정성과 같은 이념은 깨끗이 묻을 수 있었다. 바이든이 직접 무기를 쥐고 이리저리 휘둘렀으며 팬데믹과 싸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그렇게 하고 있고 말이다. SPD는? 집권 파트너로서 예산 갖고 CDU와 협력해야 한다. 세 번째. 바이든은 나쁜놈은 나쁘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러고는 당근과 채찍을 같이 휘두르지만 SPD는 오직 당근만 휘두른다. 네 번째. 두 번째 이유와 연결되는데 바이든은 화끈하게 적자를 밀고나가지만 SPD는... 이건 독일이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검은제로를 얘기하는 것이다(참조 3). 다섯 번째. 아마도 이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집권 의욕도 없어 보인다. 미국 민주당이 독일 SPD와 결이 같다 하더라도, 미국 민주당은 "힘"을 구사하려 하고 실제로 휘두른다. 프로그램보다는 "집행"이 먼저라는 얘기다. 슈미트와 슈뢰더 이후 SPD에는 그런 인물이 안 나왔고, 정당이라기보다는 NGO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SPD에게 꿈도 희망도 안 보인다는 것, 그 빈자리는 대거 녹색당이 가져가버렸고, 이제 독일 녹색당은 CDU/CSU와 1-2위를 다툴 정도가 됐다.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 계층이 급속히 줄어들었고, 그나마 지지층으로 남아있던 고학력자들이 대거 녹색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9월 총선에서 라셰트가 될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 녹색당이 누구를 K(총리) 후보로 내놓느냐에 달려있겠지만 말이다. 주말 사이 CSU의 죄더가 자기도 총리후보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CDU는 라셰트를 택하잖을까 싶다. CSU 후보가 K-Kandidat가 되어서 잘 된 사례가 없는데.... 모르지, 또. 어떤 드라마가 나올련지. ---------- 참조 1.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Gabor Steingart Briefing)에서 나온 것이다. 구독하실 분은 https://www.thepioneer.de/briefings 2. 집권자와 후계 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 1920-2015) 전 대통령에 따르면, „machtversessen und machtvergessen“ 즉, "권력에 집착하여 권력을 잃고마는"의 의미이며, 실제 사례로는 아데나워와 에르하르트, 콜과 메르켈의 싸움이다. 총리의 권모술수, 콘라트 아데나워의 경우(2017년 10월 7일): https://www.vingle.net/posts/2238356 CDU와 CSU(2015년 11월 1일): https://www.vingle.net/posts/1168542 헬무트 콜의 서거(2017년 6월 18일): https://www.vingle.net/posts/2129116 진격의 메르켈(2018년 2월 20일): https://www.vingle.net/posts/2350250 Wo bleibt das Prinzip Verantwortung?(1992년 7월 10일): https://www.zeit.de/1992/29/wo-bleibt-das-prinzip-verantwortung 3. 검은 제로(Schwarze Null), 2014년 10월 23일: https://www.vingle.net/posts/549950
함락된 도시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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