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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실화' 마법의 나무에 사는 고양이, 루나

올해 17살의 고양이 루나는 아기 고양이 시절부터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나무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나무,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는 날이기 때문이죠.

밤만 되면 반짝이는 불빛을 아름답게 뽐내는 신기한 나무를 보며 잠이 들곤 했습니다.
반면, 루나가 가장 슬퍼하는 날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치우는 날입니다. 가족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철거할 때마다 허겁지겁 달려와 팔을 붙잡고 말리곤 하였죠.

17년째 루나를 모셔온 집사, 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 트리를 다시 내려야 할 시기가 왔을 때, 어느 때처럼 루나가 달려와 숀 씨의 팔을 붙잡고 만류했습니다.

그녀는 어느 때와 같이 웃으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철거하려 했으나, 그날따라 훌쩍 늙어버린 루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소원이라고. 그렇게 느껴졌어요."

비로소 평생 아기일 것만 같았던 나의 반려동물이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깊게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숀 씨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루나의 표정을 보며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며 크리스마스 트리와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꼭 크리스마스에만 트리를 밝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요."

이것이 루나네 집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1년 내내 환하게 빛나는 이유입니다.

고정관념이 한 번 깨지자 숀 씨의 눈에 더욱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루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숀 씨는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캣타워와 집을 배치했고, 루나는 밤만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 옆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이 듭니다.

어린이 책의 작가이기도 한 숀 씨는 '마법의 나무에 사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집필해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것이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에 근거해 작성했음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때론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많은 행복을 포기하곤 해요. 하지만 고정관념만 조금 깨면, 행복은 결국 우리 나름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여름에도 꺼지지 않는 마법의 크리스마스 나무처럼 말이죠."


여러분이 반려동물에게 걸어줄 수 있는 마법은 무엇인가요?

사진 The Dodo, @SHAWN 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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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고정관념을 깨게 한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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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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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경력의 히키코모리를 채용한 회사 썰
우리회사는 채용면접을 전부 내가 담당하는데 과거에 딱 한명 전직 히키코모리를 채용한 적이 있다. 이력서를 처음 봤을 때 35세였는데 경력 공백이 10년 이상이었다. 보통은 망설이지 않고 서류심사에서 떨어트렸을 텐데 왜 그 타이밍에 우리회사에 응모했는지 흥미가 돋아 면접에 불러봤다. 처음 만난 인상은 햇볕을 쬐지않은 콩나물처럼 비실비실한 청년이었다. 사람은 태양을 보지않으면 이렇게나 하얘지는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회사가 맞지않아서 바로 퇴직하고 그때부터 계속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해 집에서 게임만 하다보니 10년이 지났다고 했다. 응모 이유를 들어보니 그속에는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마음과 각오가 보였다. - 양친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 - 더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 - 일할 기회가 온다면 죽을 각오로 하고싶다 - 자신을 바꾸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매우 불안한듯이 말하면서도 눈동자 속에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도심에 있는 일류기업이라면 채용면접에서 그 사람의 실적이나 기술레벨, 인간성을 보겠지만 우리같은 회사의 채용면접에서 그런 짓을 하면 채용할 사람이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강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딱 맞는 사람이었다. 얼마간 불안은 있었지만 내 사람 보는 눈을 믿고 파트타이머인 창고 작업원으로 채용하고 이틀후부터 일하기로 했다. 출근 당일 정말로 출근할지 어떨지 왠지 나까지 두근두근하면서 회사에 가보자 거의 샤우팅에 가까운 레벨로 사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날부터 그는 10년 경력의 히키코모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창고안을 종횡무진 달리면서 어떤 일이든 열심히 임하는 자세에 회사내의 평가도 아주 높았다. 처음 월급을 받는 날에 그는 내게 일부러 찾아와서 감사인사를 하며 가족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갈거라며 기쁜듯이 말했다. 그로부터 몇개월이 지났을 때 그가 내게 매우 긴장된 표정을 짓고 찾아왔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내게 그런 표정을 짓고 오는 직원은 거의 100% 사직서를 가지고 왔다. 이봐, 모처럼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회의실로 데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안해하면서도 그는 "매일 충실한 직장생활을 하니까 너무 즐겁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고싶다. 그러니까 정직원으로 채용해주면 좋겠다" 는 내용의 상담을 했다. 나는 너무 기쁜나머지 울어버릴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정직원으로 등용을 결정했다. 그후 정직원이 된 그는 점점 더 활기차게 일하게되어 창고에 관한 일이라면 그에게 물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 어느날 회사에 어떤 여성분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직 히키코모리인 그 직원에 대해 할 말이 있으니까 내게 직접 이야기를 하고싶다고 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의 어머님이었다. 그가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된 뒤부터 집안에서도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라고 울면서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나까지 기뻐서 울었다. 사람을 고용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라고 배우게 된 일이었다.  출처 멋지다.. 알아봐준 고용주도 대단하고 본인도 대단하네요
상남자 그 자체의 삶을 살았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
오늘의 주인공은 잘생긴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야  다들 막연하게 X선 발견한 사람 정도로 알고있는데 이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 상남자 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어린 시절 뢴트겐은 위트레흐트 기술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어. 문제아였기 떄문에 퇴학을 당한것이 아니라 친구가 선생님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낙서를 보고 웃었는데 그 낙서를 누가 그렸는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서 였음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한번 퇴학을 당하면 독일과 네덜란드에 있는 다른 학교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뢴트겐은 끝까지 친구를 밀고하지 않았어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대충 동문으로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프리츠 하버, 등등이 있다.> 그래도 뢴트겐은 아주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없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 당당히 합격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마치게 돼 그리고 졸업하고 6년만에 호켄하임대학 물리학 교수, 10년만에 기센대학 물리연구소 소장직을 얻었어 사소한일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던 초 천재 엘리트였던거지  <"크룩스관" 이라고 불리는 고전압의 진공관. 극초기의 입자가속기라고 생각하면 됨>  뢴트겐은 1895년 고전압의 진공관에서 나오는 음극선을 금속판에 쏘는 실험을 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빛이 두꺼운 마분지를 뚫고 나오는것도 모자라 책상 위에 있는 감광지까지 감광시켜 버리는거야  전혀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한것이지 하지만 이것도 마냥 운이 좋았다 라고 할 수는 없는게 실험에 사용했던 음극선관을 발명한 "윌리엄 크룩스"도, 동료 과학자였던 "레나르트"도 발광현상을 목격했지만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버렸지  동료 과학자였던 레나르트도 4년뒤에 노벨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X선 발견이라는 대업적을 놓친걸 아주 아쉬워 했다고 해 < 내가 직접 본 것만 믿는다고? 나는 내가 직접 본 것도 못 믿어 > 하지만 뢴트겐의 통찰력은 이 기현상을 그냥 놓치지 않았어 검은 마분지마저 뚫어버리는 미지의 광선이 두꺼운 책도 뚫을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지 하지만 놀랍게도 이 미지의 광선은 책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손까지 투과해서 뼈 모양까지 고스란히 드러내 버린거야  나같으면 곧바로 뛰어나가서 온갖 설레발을 다 쳤겠지만 뢴트겐은 그러지 않았어.  오히려 조수들을 모두 내보내고 연구실에서 박혀서 뭔가 잘못된것이 아닌가, 내가 미쳐서 헛 걸 보는게 아닌가 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을 했지 < 나는 내 죽음을 보았다! -안나 베르타 루드비히(뢴트겐 와이프) > 그리고 일주일 후 자기 부인을 조용히 연구실로 불러서 그 의문의 빛에 아내의 손을 찍어봤어  그랬더니 아내의 손 뼈와 반지가 선명하게 감광지에 비춰졌지 그제서야 뢴트겐은 자기가 틀린것이 아니였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해  아내는 저게 죽음을 예고하는 해괴한 장치라고 다신 얼씬도 안했다고 했지만 말이야  <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 설레발 장인 > 반면 프랑스에서는 독일의 뢴트겐이 X선이라는 대발견을 하자 빨리 우리도 뭔가 발견해야된다 라는 조급함이 생기고 X선 발견 2년 뒤,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는 X선과는 다른 미지의 광선 N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해 그리고 수백편의 논문이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이게 프랑스 과학자들에게만 발견이 되는거야  < "로버트 W 우드" 최초의 가짜 UFO 사진도 이 양반이 찍었음 > < 오컬트, 유사과학 후두려 패면서 낭만을 없애는 아주 못된 사람임 > 그래서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우드"는 특히 오컬트나 미신에 회의적이었는데 이런 회의론자의 시선에 N선도 예외일 수는 없었지  원래 장난기가 많아서 남들 골탕먹이는걸 좋아하던 우드는 블랑들로가 납종이가 N선을 차폐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납종이를 끼웠다 뺐다 하면서 N선이 검출되는지 블랑들로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블랑들로는 납종이를 끼우니까 N선이 안보인다고 했고 빼니까 N선이 보인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건 우드의 함정이였음  애초에 프리즘을 빼놨던 거임  납종이를 끼우던 말던 N선이 보이면 안되는것이였지  결국 블랑들로는 은퇴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해   < 사랑니로 고생한 개붕이들은 모두 뢴트겐에게 감사하도록 하자 >  아무튼 뢴트겐은 1901년 최초의 노벨상을 수상하고 X선 발견은 인류에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 줬어 하지만 뢴트겐은 이런 대발견을 하고도 매우 겸손했는데 X선의 X도 엄청난 뜻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고 자기도 뭔지 몰라서 X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 오히려 자신의 이름으로 뢴트겐 선이라고 부르는걸 본인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고 하네 < 최초의 노벨 수상자 라기엔 너무나도 검소했던 그의 연구실 >  게다가 뢴트겐은 대중들이 자유롭게 X선을 이용한 장비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 등록도 포기했어  조너스 쇼크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를 포기하면서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라는 말로 유명한데 쇼크 박사가 태어나기도 전에 뢴트겐은 "이미 존재하는것을 발견했을뿐 X선은 인류의 것이다." 라고 말했었지 거기에 노벨상의 막대한 상금도 전부 다 대학에 기부했고 말년은 위대한 과학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파산 직전의 생활을 하다 77세의 나이로 악성 종양으로 사망했다고 해 1994년에는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111번 원소를 "뢴트게늄"이라 명명했고 오늘날에도 X선 사진은 "뢴트겐 사진" 이라고 불리고 있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진정한 상남자의 삶 그 자체를 살았던 뢴트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나는 예언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는 연구를 위해 계속 노력할 뿐이며, 그 결과가 확인되면 가능한 빨리 공개할 뿐이다. 우리는 보고자 한다면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시작을 했을 뿐이다.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 빌헬름 뢴트겐 (출처) 내 뺨을 타고 흐르는 이 뜨거운 것이 바로 눈물이란 말인가 아아 뢴트겐 오지게 멋있는 사람이여...!
윙크 날리는 16살 꼬맹이 '입양해줘서 고마워요, 엄마'
얼마 전, 캐서린 씨는 20살의 노령묘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습니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녀석에 대한 그리움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녀석의 마지막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녀석이 행복했는지 궁금했습니다. 해주지 못한 게 많은 것 같아 미안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반려묘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젖어있던 그녀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곤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아 지역 보호소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반려묘에게 마지막까지 전하지 못한 사랑을 사랑이 가장 필요한 녀석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장 필요한 녀석들은 보호소에 있는 유기 동물입니다. 그중에서도 못다 한 사랑을 주고 싶은 아이들. 즉, 나이가 많은 동물이었습니다. 캐서린 씨는 홈페이지를 꼼꼼히 살펴봤고, 그중 소니라는 이름의 16살 핏불 믹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니의 사연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소니는 지금도 당신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만 소니를 사랑하면 됩니다.' 그녀는 소니의 표정을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미안함, 동정심, 사랑. 그 모든 것들이 섞였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충동적인 입양이 되지 않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소니와 함께 살 때 문제가 없는지 주위 환경과 개의 성격에 대해서도 꼼꼼히 공부했습니다. 마침내 결심한 그녀는 보호소에 전화해 말했습니다. "소니의 입양을 고려 중인데, 이번 주말에 직접 보러 가도 될까요." 약속의 날, 캐서린 씨는 슬픈 표정의 소니와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소니는 그녀의 따듯한 손길에도 긴장한 듯 보였고, 보호소는 그녀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고민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약 30분 후, 캐서린 씨가 담당자를 호출해 말했습니다. "네. 소니는 제가 생각하던 모습 그대로예요. 제가 입양할게요." 캐서린 씨는 소니를 차 뒷좌석에 태우고 집으로 향하던 중, 잠시 뒤를 돌아보고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소니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너도 행복하니? 나도 행복해." 소니는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녀석은 눈을 마주친 그녀에게 가벼운 윙크를 날렸습니다. 소니는 집에 온 첫날부터 엄마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캐서린 씨는 본래 소니가 잘 침대를 따로 마련했지만, 소니는 엄마 품에서 자길 원했습니다.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16살의 아기를 바라보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녀는 사랑을 베풀고자 소니를 입양했지만, 오히려 소니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래요. 동물들은 우리가 주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돌려주거든요. 동물들은 전생에 우리 부모님이라도 됐던 걸까요." 소니를 껴안고 잠이 든 캐서린 씨는 꿈속에서 만난 반려묘에게 마지막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내게 준 사랑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꼭 돌려주겠다고 말이죠. 사진 The Dodo, @KATHRYN LAROCHE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우리 행복했지?'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집사들
꼬리스토리는 여동생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먹 만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제자리에 서기만 해도 비틀거리다 픽 쓰러집니다. 행복하게 살았으니 웃으면서 보내주자고 다짐했건만,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01. 인형의 마음 나는 그대로인데 너의 시간은 참 빨리 가네. 그래도 우리 사랑 변치 말자. 02. 시간을 멈추는 방법 눈을 몇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확확 커 가는구나. 눈을 감지 않으면 너도 그대로일까. 03. 몰랐다 너를 만나기 전까진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몰랐다. 04. 날 좀 봐요 네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너의 눈을 보았다면 그 말이 느껴졌을까. 05. 뽀뽀 뽀뽀를 할 때마다 두 발로 격하게 밀어냈던 너. 이젠 날 밀어낼 힘도 없구나. 06. 간식 살 빼라고 타박해서 미안해. 먹던 간식 뺏어가서 미안해. 지금이라도 한 입만 더 먹어보렴. 07. 생일 언젠간부터 너의 생일이 참 싫더라. 안 한다고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닌데. 08. 그립다 내 허벅지에 느껴지던 너의 작은 두 앞발에 실린 무게감이. 눈을 뒤집고 정신없이 자는 너의 코 고는 소리가. 내 종아리를 적시던 너의 촉촉한 콧물과 잠결에 들려오던 너의 발톱 소리도. 정말 미안하다 글 제임수 사진 Bored Panda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