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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LUCKY CHAN-SIL, 2019) 쓰잘데기로 환원될 수 없을 삶

제목 : 찬실이는 복도 많지(LUCKY CHAN-SIL, 2019)
감독 : 김초희
출연 :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외
국가 : 한국
러닝타임 : 96분



시작 전에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짧은 찬사부터 보내겠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정말 오랜만에 본 예쁜 영화였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영화는 막상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잔잔한 울림도 있고 아무튼 저는 참 좋았습니다. 상업영화의 세련됨은 없지만 촌스럽더라도 우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독립영화 특유의 그런 느낌도 좋았고요. 솔직히 살짝 지루한 감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정말 X 3 좋았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 결코 '쓰잘데기'로 환원될 수 없을 삶

그 사람 무슨 일하는데? 그래서 연봉이 얼만데?


사람의 가치를 경제력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쓰잘데기' 로 규정하는 것은 속물 같지만 동시에 잔인하도록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걔네 집 아파트 베란다에 장미꽃이 있니 빨간 벽돌집이니의 감성적인 이야기보다는 '얼마짜리' 집이냐,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의 경제적 지표가 어른들에겐 더 많은 걸 알려줍니다.

"사람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명제는 참이지만 동시에 "빵 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라는 명제는 더 잔인한 참이거든요. 세상 천지에 돈 아닌 게 없죠.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어린이 여러분들은(아무도 없겠지만) 어른들이 너무 돈 돈 거린다고 미워하지 말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 품었던 막연한 환상과 달리 세상은 그리 천진난만하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리는 일 따위는 아무런 쓸모도 없고 먹고살려면 좋든 싫든 비행기가 추락해 사막에 표류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파일럿이 돼야만 하죠.

정말 많은 어른들이 먹고살려고, 남들에게 '쓸 데 있는' 일을 하는 '쓸 데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아등바등 기를 쓰며 살아갑니다. 좋은 집, 좋은 차 기타 등등의 것들을 위해 말이죠.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 '찬실이(강말금)'는 어린 왕자의 주인공보다는 어린 왕자 같은 인물입니다.


오랜 세월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별게 없습니다. 사람 넷이면 충분한 단출한 이삿짐, 그 속에는 영화인의 꿈을 꾸게 해준 철 지난 비디오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열심히 일했건만 집도 차도 없는 그녀는 정말 본인의 말처럼 땡전 한 푼 없이 망해버렸습니다.


맘을 다잡고 그래도 모처럼 열심히 살아보려는데 연애도 뜻대로 잘 안돼, 재취업도 잘 안돼 뭐 되는 게 없어요.


영화사 대표는 굳이 당신이 아니라 누가 PD를 해도 상관없이 영화는 만들어진다며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맥입니다. 말하자면 "메시가 혼자 축구 다 한 거지 뭐 다른 애들이 별게 있겠니?"의 느낌이랄까요.

연애에서 자존감을, 대표님과의 만남에서 자존심을 두드려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찬실이의 멘탈. 그녀는 이사 간 집에서 만난 장국영 귀신의 조언대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이, 아주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장고 끝에 찬실이는 결심합니다. 영화를 버리기로 말이죠. 아름다운 이름과는 다르게 찬실이의 젊음을 다 바쳤건만 아무런 '영화' 도 가져다주질 않았던 영화를 버리고 늦었지만 비로소 부귀영화, 입신양명의 다리가 되어줄 '쓰잘데기'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했습니다만 그녀의 어린왕자병이 도집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 영화일. 대표님 같은 속 모르는 남들 눈에는 하등 쓸데 없는 일로 비친다 해도 본인은 죽어도 영화가 아니면 안 되겠답니다. 결국 찬실이는 지구인의 바람직한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고향 소행성의 법대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하기로 합니다.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쉬이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달려 허송한 세월은 다시 돌아올 수 없어도, 주인집 할머니의 말처럼 "사람은 꽃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해도 포기 않는 삶은 아름답지 않겠냐고. 본인을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삶일 수 있지 않냐고 말이죠.

사랑도 돈도 명예도 모두 쉬이 가질 수 없다고 해도, 끝내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본인을 응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세상의 눈에는 쓸데 없는 삶으로 비치는 생(生)도 그럭저럭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하여 우리의 가치를 '쓰잘데기'로 규정하고 삶을 단지 쓰잘데기만으로 환원하기엔 아깝게 버려지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못생긴 모과를 올려다보며 잡생각에 빠지는 일은 하등 쓸데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일축해버릴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일 역시 하등 쓸데 없는 일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쓰잘데기가 없다고 해서 본인이 사랑하는 행위들을 죽여버리고 지극히 계산적으로 쓰잘데기만 챙기는 건 또 옳은 일입니까. 역시 지지리 철 못 드는 저란 인간은 이런 차가운 계산기 같은 분들에게 술 취한 어린 왕자처럼 한 마디 쏴주고 싶습니다.


당신드뤼 노을의 낭만을 아러?! 쉬1불, 의자 위치 바꿔가면서 하루종일 보는 그 맛을 아냐고.
마, 느그 집엔 바오밤나무 없제?!


책을 열심히 읽지 않으신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사실 어린왕자 개정판에는 생땍쮜뻬뤼 행님이 주정뱅이 행성에서 주정뱅이와 어린왕자가 양장피 안주로 빼갈에 맥주를 말아마시는 장면을 넣어놓으셨거든요. 물론 넝담ㅋ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세상의 모든 루저들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스스로를 위너보다는 루저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저 역시 영화를 보며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를 쓰겠다는 바보 같은 꿈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 사이, 본인이 비대한 꿈과 비루한 날개를 가진 불쌍한 닭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고 아예 접어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차에 생각도 못한 영화에서 위로를 받네요.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해 보니 닭은 날지 못해도 어느 새보다 기똥차게 울어제낄 수 있는 새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시계가 없었을 그 시절에 닭 울음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소음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침을 깨우는 고마운 소리였을 겁니다.

감히 제 글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는 그런 작은 바람 하나로 또 쓸데없는 글을 몇 자(몇 자라고 하기엔 조금 양심 없는 분량인가요?) 적어봤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음에 불과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면 울음을 멈추진 말아야겠죠.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서 문득 예전에 본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그 때도 비슷한 위로를 받았었는데 말이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뷰도 조만간 업로드 하겠습니다.

혹시나 까먹을지도 모르니 우선 원문 주소를 첨부해 놓겠습니다.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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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사랑스러운 영화였어요. 요즘 와이키키브라더스 얘기하는 주변 사람들이 종종 보여서 저도 다시 보려고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너무 어릴 때 봐서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지금 보면 또 다른 기분이겠죠?
@uruniverse 맞아요. 어제 보고 오늘 리뷰 적고 했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네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저는 옛날에는 못 보고 비교적 최근에 봤는데 엄청 짠하고 그렇더라구요 ㅠㅠ
@uruniverse 아마 다시 보시면 분명 감회가 다르실 거에요. 😁
제작비를 김영민옷팔아 충당했단 소문이
@maniform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한 겨울 같은데 엄청 추워보이시긴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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