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ubon
1,000+ Views

스페인의 핵무기 개발

주말 특집, 하면 역시 핵이지. 독재자들은 으레 핵무기에 대한 끌림이 있게 마련인데 알아보니까 역시나, 스페인의 프랑코도 핵무기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었다. 역사의 여러 사건이 그러하듯 우연한 계기에 이곳 저곳의 상황이 맞물려서 돌아가다가 결국은 미국이 승리하는 그런 이야기다(참조 1).

시작은 프랑스다. 워낙 기초가 든든했고, 대학원에 가라는 장모의 명에 따라 착실하게 학위를 받은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참조 2)와 부인인 이렌 퀴리가 이끈 핵에너지위원회(CEA), 이걸 무조건 지원해 준 드 골 덕분에 50년대 말이 되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는 나라가 프랑스였는데 문제는 시장성이었다. 수출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라팔과 비교하지는 맙시다.)

원래 프랑스는 자신의 천연우라늄흑연가스(UNGG) 원자로를 인도에 판매하려 했었는데(라팔 아니라니까), 미국 관점에서 이 UNGG 방식의 원자로의 가장 큰 단점은 플루토늄을 생산해내는데 쓰인다는 점이었다. 미국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인도가 결국 프랑스 원전을 못 사게 하는데 성공했고, 그대신 미국이 개발한 비등경수로(BWR)를 넘긴다. 판매가 아니라 “넘긴다”에 주안점을 두셔야 한다. 인도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물론 미국의 노력과 의도와는 관계 없이 인도는 1974년, 캐나다의 도움으로 얻은 플루토늄으로 핵실험에 성공한다. 이건 다른 주제다.)

그렇다면 어디에 팔아야 할까? 이 때 접근한 곳이 스페인이었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코가 독재를 하는 국가였으며 비록 소련보다는 서구에 가깝기는 했어도 데면데면하는 사이였다. 특히 민주주의하는 국가 미국이 대놓고 돕기 좀 뭐한 나라였다는 얘기다. 그래도 미국이 스페인에게 웨스팅하우스의 가압수경수로(PWR)를 설치해준다. 이걸로 만족하라는 예방용이다.

--------------

이 틈을 프랑스가 파고들었다. 우리가 제공하는 원자로를 사시면 플루토늄을 얻으실 수 있다는 점이 세일즈의 포인트, 게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은 지리적 인접성때문에 이미 전력 교환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있어서 스페인의 장점은? 장사가 된다는 점 외에, 우라늄 광산이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접경 지역이다. 게다가 드 골 치하의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을 믿지 않았고, 그렇다고 하여 서독에게 핵무장을 하라고 권유하기는 참 뭐하기 때문에 파트너로 스페인을 택한 것도 있었다. 나중에 미국이 프랑스를 돕는 이유와도 꽤 유사하다(참조 3).

스페인에 있어서 프랑스의 장점은? 위에 썼지만 뭣보다 플루토늄이다. 또한 EEC 가입을 장기적으로 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게다가 프랑스 남부 산업지대와 연결해서 전력을 팔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위치는 카탈루니아로 정해진다. 바로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 반데요스(Vandellòs) 원자력 발전소다. 이때가 1964년.

--------------

스페인에는 유명한 투우사도 있지만, 투우사를 죽인 소는 더 유명세를 얻는다. 그중 하나로 이슬레로(Islero)라는 소가 있었는데, 프랑스와 함께 핵발전소 건설 발표를 한 1964년보다 1년 앞선 1963년, 스페인의 1급 비밀 핵무기 프로젝트가 바로 이 이름을 갖고 탄생한다(참조 4).

프랑코와 프랑코의 2인자였던 카레로 블랑코(Carrero Blanco) 제독의 걱정거리는 당시 독립 직후, 에너지가 충만한 모로코가 언제든 스페인 영토(참조 5)를 빼앗으려 들 것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독립 직후, 에너지가 충만한 모로코가 언제든 스페인 영토(참조 5)를 빼앗으려 들 것지도 모를 일이었다. 포르투갈이 인도의 침략을 받아 고아를 그냥 넘겼을 때처럼, 미국은 그런 상황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 뻔했었다.

그래서 스페인은 1968년 있었던 비확산조약(NPT)에도 서명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론은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뇌관과 같은 핵심 부품을 어떻게 만들지 몰랐기에 연구는 그다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결국 바깥에 노출된다는 프랑코의 걱정도 있었고 말이다. 이걸 해결해 준 건 의도치 않게 일어난 한 사건이었다.

--------------

1966년 1월 17일에 있었던 Palomares 사건(참조 6)이다. 스페인 영공을 지나던 미국 공군의 B-52 폭격기가 급유를 받으려 하다가 급유기(KC-135)와 충돌하여 추락했는데(승무원 7명이 사망했다), 대단히 큰 문제가 있었다. B-52 폭격기에 있었던 핵폭탄이 유실된 것이다.

소련이 가져가면 안 될일이기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게다가 방사능 물질마저 떨어져 있었다(물론 당시 프랑코 정권은 안전하다면서 여행부장관과 주스페인 미국 대사가 해당 지역에 가서 해수욕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스페인이 당시 떨어진 폭탄의 잔해(떨어진 4개 중 2개가 파괴됐었다) 일부를 회수했고 그걸 조사분석한다(참조 7). 미군에 알리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 스페인은 1967년, 핵폭탄 제조 가능 상태가 됐다(참조 7). 두 번째 필요한 건 플루토늄, 위에서 프랑스의 도움을 얻어 추출이 가능한 발전소를 짓기로 했지만 일단은 마드리드 대학 내에서도 군사용 플루토늄을 뺄 수 있는 고속반응로를 설치한다. 당연히, IAEA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말이다.


--------------

이제 준비가 됐다. 프랑코 정권의 2인자였고 장래 프랑코의 뒤를 이을 것으로 촉망받았던 블랑코 제독은 이슬레로 프로젝트에 대한 서류를 들고 1973년 12월 19일 헨리 키신저를 만난다. 미국과 보다 대등하게 관계를 설정하기에 앞서 스페인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점을 비밀리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키신저와 만나고 나오면서… 그는 암살당한다. (일단, 범인은 바스크의 ETA였다.)

--------------

물론 고위급 암살이 스페인의 핵개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블랑코 제독이 암살당한지 2년 후 프랑코도 사망했고, 스페인은 민정이양이 됐지만, 이슬레로 프로젝트 자체는 민간 정부도 중단시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독재자 킬러 지미 카터 정부는 이전과 달랐다. 미국은 스페인에게 NPT 가입을 촉구했고, 경제제재를 위협한다. 어차피 농축우라늄을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고, 미국이 지어준 핵발전소 부품은 미국이 제공하고 있었으니, 미국 말을 들으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81년 스페인에서 쿠데타 시도(Golpe de Estado en España de 1981)가 일어났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직접 나서서 쿠데타 시도를 막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미국은 이를 계기로 새로 성립된 스페인 정부(Leopoldo Calvo Sotelo)를 압박하여, 핵무기 불사용 및 반데요스 핵발전소에 대한 감시를 조건으로 IAEA에 스페인을 가입시킨다. 이슬레로 프로젝트의 종말이었다.

NPT는? EEC에 스페인이 가입(1986년)하는 조건이었다. 결국 스페인은 NPT도 1987년 체결했다.

--------------

참조

1. 당연히 느끼셨을 텐데, BBC의 해설가 Gary Lineker의 유명한 발언, “Football is a simple game; 22 men chase a ball for 90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always win.”의 패러디다.

2. 핵의 무기화에 반대했던 공산주의자이자 실제로 공산당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드 골이 직접 임명했다. 그의 중용은 좌우 모두의 협공을 받았던 드 골 정권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인사 중 하나랄 수 있겠다.

3. 프랑스의 핵잠수함(2020년 9월 15일): https://www.vingle.net/posts/3109164

4. Proyecto Islero, la bomba atómica que España pudo tener durante el franquismo(2016년 11월 13일): https://www.elconfidencial.com/tecnologia/2016-11-13/proyecto-islero-la-bomba-atomica-que-espana-pudo-tener-y-no-tuvo_1288538/

5. 페레힐 / 라일라 섬 사건(2002)(2020년 4월 17일): https://www.vingle.net/posts/2877201


7. La bomba atómica que Franco soñó(2001년 6월 10일): https://www.elmundo.es/cronica/2001/CR295/CR295-12.html

이 책의 저자가 이슬레로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casaubon
5 Likes
2 Shares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역사에서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이유
조선시대 최하위계층이라 백성들에게 차별받는 계급제에 희생당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백정 많은 역사서에서는 조선 계급제 사회로 인해 사람취급 못받은 사람으로 설명하고 여기에 영감받은 드라마, 소설에서는 신분제에 핍박받다 백정이 반란이나 도적이 된다는 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서술함 당장 EBS에서 제작한 영상이나 혹은 다른 미디어들을 봐도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음 하지만 왜 조선정부에서 버림받고 백성들한테 극도의 차별을 받았는지 서술하는 곳은 별로 없음 왜 조선사람들의 증오는 백정에게 향했는가? 다시 조선전기로 돌아가보자 이제 한반도에서는 유목생활로 먹고사는게 불가능한데 양수척, 화척(통합해서 백정)이란 자들이 그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네, 근데 그런 생활로는 배고픔을 면할 수 없으니 그들을 위해서 토지를 나눠주고 농업기술을 가르쳐주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들도 우리 백성이지, 걔네한테 토지 제공해준다고 하고 우리가 기술도 가르쳐주고 다 지원해줄테니까 그렇게 굶고 살지말고 정착해서 살라고해 그리고 백정이라고 딱지붙이면 차별하는거처럼 느낄거아냐, 일단 노력하겠다고 들어오면 백정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일반 양민하고 똑같이 대우해주도록 해주고 케어도 해줘 백정: 우리보고 일하라고요? 왜요? 그냥 배고프면 백성들꺼 뺏으면 되는거 아님? 쉬운 길 놔두고 왜 땀흘리며 일하라고 해요? 뭐지...이 색히들...땅도 준다고 했는데 왜 일해요? 뺏으면 된다니...엄청 신박하게 돌아이들인데? 전하, 큰일입니다. 거란과 왜구가 국경을 침략해 마을을 약탈했다합니다. 그러니까 백정아? 이렇게 들어가면 더 빠르게 약탈할 수 있다 이거지? 너가 길 안내해주니까 그냥 네비게이션이 따로 없네, 고맙다 거란형님들 뭘 고맙다해요ㅋㅋ저도 같이 약탈하며 먹고 사는거죠 그리고 쳐들어온 왜구들 사실 우리임. 약탈하고 죽이고 그냥 책임은 왜구들한테 돌려야지ㅋㅋㅋㅋ 군사를 강원도 경상도로 보내서 약탈한 놈들을 진압하고 주모자들을 엄하게 처벌해라 봐준다 봐준다하니까 이놈들이 미쳤네  잘 진압하고 처벌은 했다만 백정들은 숫자도 너무 많아서 어떻게 다 처리할 수가 없네 그래, 범죄저지르고 악하게 행동하는 놈들은 처벌하고 그래도 어느정도 말통하는 친구들은 포상도 줘서 그래도 최대한 정착하게 지원해줘야지 당근과 채찍을 써야되겠군 그딴 당근 안 통합니다. 걔네 일하는거 싫어해서 백성들한테 기생해서 삽니다. 그나마 착한 놈들은 강제구걸하며 돌아다니고 강간,살인, 약탈,방화 다 백정들이 저지르고 다닙니다. 감옥에 가면 10명중 9명이 백정놈들인데요? 백정이랑 저희 같이 일 못합니다 농사하러 온 놈들도 하다가 좀만 힘들면 바로 도망가고 동네에 걔네들 때문에 약탈당하거나 죽거나 강간당한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같이 일하고 같은 동네에 사랍니까? 그냥 백정들은 방법이 없나보다...일단 아직 나라초기라 그러니 행정이 자리잡고 치안을 강화해서 해결해야되겠다 이제 나라도 자리잡히고 마을마다 치안도 세져서 뭐 우리가 털어서 먹고 살 방법이 없네... 조선형, 우리도 이제 정착하고싶은데... 백성들은 너네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단다, 이제 융합정책은 끝났어 그래도 니네 손놓고 놔두면 또 문제 일으킬거 같으니 책임은 진다. 너네 원래 도살로 용돈벌이했잖아 묵인할테니까 그걸로 먹고살아, 대신에 백성들이랑 따로 살고 건들지 말아라 에이, 이제 빼앗으면서 먹고살지도 못하니 뭐 지네가 갑이네 알겠어,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하지 뭐 너네 진짜 그냥 거기살고 우리한테 다가오지마 살인마들 마을인 백정부락에는 도축할때 빼고는 가지도 말자 결국 조선의 백정에 대한 유화책은 정착에 성공한 소수를 제외하고 실패로 끝남. 백정들도 결국 장기적으로는 선택권이 없으면서 정착하게 되지만 양민들의 백정에 대한 증오는 하늘을 찔럿고 처음 조선의 의도였던 양민으로의 정착은 불가능해짐 이렇게 되면서 양민과 백정의 계층은 완벽하게 분리되면서 자리잡게 된다. 이게 현대에 이르어서 앞의 과정들을 다 생략하고 백정들이 신분제로 인해 차별대우받았다고 서술하면서 백정은 조선시대 최약층 신분으로 주류사회에 따돌림받는 약자이미지로만 표현되어짐 1줄 요약) 조선족보다 100배는 악랄했던 계층도 이미지메이킹되면 불쌍한 약자된다 아, 참고로 스브스 뉴스에서 (무슨 백성들이 악의 집단이고 백정 여자들을 희롱하는 악의 집단으로 그렸네) "백정각시놀음"이라는 백성들이 백정의 아내나 딸들을 데리고 희롱했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만화로 만들어 제작했는데(스브스 뉴스뿐만 아니라 몇몇 영상매체에서도 이ㅈㄹ함) 아무 근거없다. 애초에 아무리 백정이라도 법의 보호는 받았고 백성들은 그냥 백정을 접촉하기도 싫어했는데 무슨 풍습으로 정해서 백정의 아내, 딸을 희롱하고 싶지도 않았음. 물론 백성과 백정간에 충돌이 간혹적으로 있었겠지만 저딴식은 절대 아님. 그리고 뇌피셜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 기록덕후인 조선이 백정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봐보자(이거는 읽기 복잡하니 관심있는 사람만 보셈) 왕조실록(王朝實錄) 세조 2년 백정(白丁)을 구처(區處)하는 것입니다. 대개 백정을 혹은 ‘화 척(禾尺)’이라 하고 혹은 ‘재인(才人)’, 혹은 ‘달달(韃靼)’이라 칭하여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니, 국가에서 그 제민(齊民)하는 데 고르지 못하여 민망합니다. 백정(白丁)이라 칭하여 옛 이름[舊號]을 변경하고 군오(軍伍)에 소속하게 하여 사로(仕路)를 열어 주었으나, 그러나 지금 오래 된 자는 5백여 년이며, 가까운 자는 수백 년이나 됩니다. 본시 우리 족속이 아니므로 유속(遺俗)을 변치 않고 자기들끼리 서로 둔취(屯聚)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혼가(婚嫁)하는데, 혹은 살 우(殺 牛)하고 혹은 동량 질을 하며, 혹은 도둑질을 합니다. 또 전조(前朝) 때, 거란(契丹)이 내침(來侵)하니, 가장 앞서 향도(嚮導)하고 또 가 왜(假 倭) 노릇을 해 가면서, 처음은 강원도에서 일어나더니 경상도에까지 만연(蔓延)하여 장수를 보내어 토평(討平)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대소(大小)의 도적으로 체포된 자의 태반이 모두 이 무리입니다. 친척(親戚)과 인당(姻黨)이 팔도(八道)에 연면(連綿)하여, 적으면 기근(饑饉)되고, 크면 난리를 일으키니, 모두 염려가 됩니다. 빌건대 이제부터는 따로 1호(戶)도 짓지 못하게 하고, 모두 갑사(甲士)·시위(侍衛), 진군(鎭軍)의 봉족(奉足)을 삼아 일일이 끼어 살게 하고, 이어서 그 다른 군으로 왕래함을 금하며, 그 홀로 산골짜기에 거처하면서 혹 자기들끼리 서로 혼취(婚娶)하거나 혹은 도살(屠殺)을 행하며, 혹 구적(寇賊)을 행하고 혹은 악기(樂器)를 타며 구걸하는 자를 경외(京外)에서 엄히 금(禁)하여, 그것을 범한 자는 아울러 호수(戶首)를 죄 주고 또 3대(三代)를 범금(犯禁)하지 않는 자는 다시 백정이라 칭하지 말고, 한가지로 편호(編戶)하게 하면, 저들도 또한 스스로 이 농상(農桑)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도적이 점점 그칠 것입니다. 왕조실록(王朝實錄) 태조 1년 재인(才人)과 화 척(禾尺)은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농업을 일삼지 않으므로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지 못하여 상시 모여서 도적질하고 소와 말을 도살하게 되니, 그들이 있는 주군(州郡)에서는 그 사람들을 호적에 올려 토지에 안착(安着)시켜 농사를 짓도록 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죄주게 할 것이며 세종 4년 임인 병조(兵曹)에서 계하기를, “군적(軍籍)에 오르지 않은 재인(才人)이나 화척(禾尺)들은 검찰(檢察)할 길이 없으므로, 이로 인하여 으슥한 곳에 모여 살면서 간음과 도적질을 몰래 행하고, 혹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니, 청컨대, 각도로 하여금 군적(軍籍)에 오르지 않은 재인과 화척을 샅샅이 찾아내어 군적에 등록시키고, 평민들과 섞여 살아서 농업을 익히게 하고, 3년마다 한 번씩 출생된 자손(子孫)들을 찾아내어 호적(戶籍)에 올리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 만약 출입(出入)할 일이 있거든 날짜를 한정하여 여행증[行狀]을 주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개드립 펌 호오. 몰랐던 사실이구려. 다만 '도축'이라는 직업때문에 천대받았던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면 싫어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소.
마지막 수컷들의 이야기.Last Survivor
인간들이 짱돌을 들고 아프리카 대륙 위에 나타난 뒤로 지구는 무수한 비극을 겪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인간의 짱돌에 운석이 꼬라박았을 때보다도 많은 생물종이 멸종해버렸다는 것이다 이건 지구에 남았다가 사라진 (대부분 인간 때문에) 마지막 수컷들의 이야기다 '테레네의 나무'는 사하라 사막에 살았었던 아카시아 나무다 존나 흔해 빠진 아카시아가 왜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소지를 다시 보도록 하자 사하라 사막이다 모래밖에 없다 해뜨면 평균온도가 50도라는건 일단 제쳐두고 여긴 비가 일년에 10mm 오는 동네다 나무가 사하라 사막에 산다는 건 너네를 와이파이 안 나오는 인싸들의 유희장에 던져두는 것만큼이나 가혹하다 테레네 나무는 그런 헬인페르노에서 혼자 살아남은 위대한 생존자였던 것이었다 물을 얻기 위해서 뿌리는 바위를 뚫고 45m나 뻗어있었고 수명은 무려 300년이 넘었었다 반경 400km 안에 나무라곤 딱 이거 한 그루. 당연히 존나게 눈에 띄는 이정표가 될 수 밖에 없으니 나무 한그루 주제에 지도에도 당당히 그려져있었다 사막을 타조를 타고 건너는 상인들이 이 나무를 등대삼아 여정을 떠나곤 했던 것이었다 었다었다었다었다 그래 전부 과거형이다 왜냐면 1973년에 술치한 리비아 딸배 트럭기사가 박치기로 쓰러뜨려서 죽였거든 다시 말하는데 반경 400km의 평평한 사막에서 딱 한 그루 서있는 나무다 그걸 굳이 음주운전으로 쓰러뜨렸다니 운이 나빴다는 말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리비아 딸배는 진짜 존나게 나무를 증오했던 것이 틀림없다 어렸을 적에 두부딸을 하는 스님을 목격하고 모든 나무를 증오하는 나무 슬레이어가 된 것이지 아마도 나무에게 죽음을! 300년동안 지옥같은 열기와 갈증을 견디면서 살아남은 테레네 나무는 그렇게 나무 슬레이어의 트럭짓수에 폭발사산한 것이다. 현재 테레네 나무가 서있던 자리에는 바로 그 트럭으로 만든 나무 조각상이 대신 서있고 '여기에 나무가 있었다'라는 묘비만 남아있다 나무삼...나무삼....나무죽음... 인간들이 벌이는 병신짓의 50% 정도는 아마 꼬추랑 긴밀하게 관련되어있는데 코뿔소들의 대량멸종도 그 꼬추의 결과물이다 저 웅장하게 솟아있는 꼬라지를 보고 얼마나 많은 인간 수컷들이 프로이트적 망상을 떠올렸는진 몰라도 존나 개병신새끼들이다 코뿔소 뿔은 그냥 각질이다 각질 비듬이랑 똑같다고 코뿔소 비듬 뭉쳐먹는다고 소추가 옥보단 말쥬지가 되겠냐 북부흰코뿔소들은 서지도 않을 소추들을 위해 존나게 학살당했고 끝내 3마리만 남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종족의 멸종까지도 꼬추와 참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비극을 겪게 되는 것이다 3마리나 남았으면 많이 남은거 아녀? 싶겠지만 문제는 그 3마리의 구성원이었는데 종족의 마지막 수컷인 '수단'과 나머지 라스트 걸즈 두 마리였다. 종족 최후의 수컷 하나에 암컷 둘이라니 19금 라노벨 불쏘시게에 딱 어울리는 소재다만 문제는 수컷 주인공께서 라노벨 전개를 따라갈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수단은 40살의 늙은 몸이었던 것이다 보통 코뿔소가 교미를 시작하는 시기가 10살 정도니까 인간으로 환산하면 최소 80세는 넘어간 노인양반이었다 그리고 불쌍한 노인 코뿔소는 코뿔소 특유의 체위를 소화할 수가 없었다 코뿔소들의 웅장한 몸땡이와 짤뚱한 다리를 보시라 유감스럽게도 이 친구들은 후배위 외의 다른 체위가 불가능하다. 물론 후배위가 쉽지도 않다. 애초에 너네는 모든 체위가 판타지의 영역이겠지만 인싸 코뿔소에게도 그렇다는 소리다. 이족보행에 가벼운 인간들과 달리 톤단위 체중에 사족보행인 코뿔소들이다 두 다리만으로 몸을 일으켜세우고 암컷 위에 올라타서 열심히 톤단위 육체를 앞뒤로 움직이는 것은 이미 교미의 영역이 아닌 헬창의 영역이다 늙은 수단의 뒷다리는 이런 가혹한 헬창짓을 감당할 수 없었다. 모든 교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늙은 최후의 수컷의 몸은 나날히 야위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2018년에 종족의 마지막 수컷은 죽었고 라스트 오리진도 물건너 갔다. 체위 때문에 멸종하다니 그야말로 종족적 비극이 아니라 할 수 없겠다 수단의 꼬추에서 정자를 채취해 다른 코뿔소를 대리모 삼아 인공출산하려는 계획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긴 하다. 물론 인간도 좆간질에서 예외는 아니다 사실 좆간질을 가장 많이 당한 동물은 누가 뭐래도 인간일 것이다 드넓은 아마존 정글에는 수십년 동안 홀로 살고 있는 최후의 수컷이 있다 구멍의 남자(man of the hole)가 바로 그 사람이다 아이야이야이야~하는 신나는 브금이 같이 나올 것 같은 칭호와는 달리 에이자의 적석을 찾아다니진 않는다 몸에서 매직핫슈퍼나이프가 나오지도 않는다 구멍의 남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부족의 최후의 생존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가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구멍의 남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어차피 소용없다 구멍의 남자라는 칭호도 이름을 아무도 몰라서 그냥 구멍 파고 동물 잡는 행동만 보고 붙인 이름이다. 구멍의 남자가 최후의 생존자가 된 이유는 80년대 후반쯤에 벌목업자들이 나무 베는데 방해된다고 부족들을 싸그리 벌집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쭉 정글을 방랑하면서 혼자 살고있다가 최근에 발견되어서 보호받게 됐다 브라질의 토착민 담당부서에서 구멍의 남자를 감시하고 보호하는데 아무래도 좀 대충했던 모양이다 구멍의 남자는 2009년에 여러명의 총잡이들에게 습격당했다 다행히 놀랍게도 상처 하나 안 입고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아마 완전생물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학살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다른 인간과 접촉하는걸 거부하고 혼자 살고 있고 지금은 50대쯤 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우 건강하다고 한다 진짜 완전생물인가 아이야이야이야 (출처) 인간조차 견디지 못 한 좆간질...... 세상에 인간이 미안해 근데 마지막은 겨우 80년대인데 다 벌집으로 만들다니 인간들은 대체 언제까지 미개할 건지 ㅉㅉ 아 오늘도 심한 욕과 몇몇 단어들과 문장들은 대체하거나 뺐습니다 ㅋ
로마가 현대 문명에 끼친 영향 중 가장 큰 것?
철도 궤관의 국제 표준 규격인 1435mm 표준궤  로마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철도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이 표준궤가 로마시대 건설된 도로를 기반으로 만들었음 표준궤를 처음 사용한 나라가 영국인데 영국의 마차 도로에서 철도 표준궤를 만들었고 이 마차 도로는 로마시대에 만들었던 도로였음 로마시대에 만든 도로는 로마 전차 폭에 맞춰서 도로를 건설함 그리고 로마 전차는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두 말의 엉덩이 폭에 맞춰서 로마 전차의 크기가 설계됨 영국이 만든 표준궤가 국제 철도의 표준이 되면서 협궤나 광궤를 쓰는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 표준궤를 사용하게 됨 역시 미국도 표준궤를 사용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우주 왕복선을 만들때 추진로켓이 기차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기차 선로에 맞게 추진로켓을 설계함 이것 때문에 기술자들은 추진로켓을 크게 만들면 더 향상된 성능의 로켓을 만들수 있는데 표준궤의 크기 때문에 결국 불완전한 추진로켓을 만들게 됨 말 엉덩이 2개 -> 로마 전차-> 로마 도로 -> 국제 철도 표준궤 -> 우주 왕복선 추진로켓 로마시대에 말 엉덩이 2개의 넓이로 만든 도로가 미국 우주 왕복선에 영향을 끼침 (출처) 이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 건가 (아님) 오늘도 재밌는 역사공부!
경주 가볼만한곳 골굴사 템플스테이
<<경북 경주 가볼만한곳 골굴사 템플스테이, 선무도 시범 >> #경북가볼만한곳 #경주가볼만한곳  -오늘의 명언- 사랑 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벤자민 프랭클린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토요일 눈이 내리는 아침입니다. 날씨는 아주 춥지는 않은데 눈이 조금 쌓이고 있습니다. 함박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토요일 외출 시 눈길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소개할 여행지는 경주 골굴사 템플스테이로 다녀왔던 이야기입니다. 7년 전 사진 동호인들과 출사하러 갔다가 골굴사에서 선무도 시범도 보았고 예불 드리는 개도 만났답니다.  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은 상당히 높은 바위 절벽에 있는데요. 함월산 석회암 절벽에는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꼭대기에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 4m, 폭 2.2m  겨울 여행지로 참 좋았던 경험입니다. 골굴사에서 가까운 문무대왕릉에서 장엄한 해돋이와 선무도 시범 정말 근사했습니다.  #경북가볼만한곳 #경북경주가볼만한곳 #경주가볼만한곳 #골굴사 #템플스테이 #골굴사선무도 #국내겨울여행지추천 #국내여행지추천 #경주문무대왕릉 #국내여행 #경주여행지 #경북여행지 #랜선여행 #선무도 #동해일출 #동해안여행 #일출명소 #해돋이명소 #랜선여행 #경북가볼만한곳 #경북여행 #경북경주여행 #경주골굴사 #국내가볼만한곳 #문무대왕릉 #국내1박2일여행
냉혹한 시대착오의 세계.armor
1차대전은 그야말로 망가전성시대였다  물론 manga가 아니고 MG를 말하는 거다 아직 현대전의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았고 일단 줄맞춰 닥돌하는게 보병전술의 기초였던 시절이라 망가놈들이 그야말로 양학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최초로 진지하게 방탄복에 대해서 고려한 시대기도 했음 근데 결과물이 요즘 보기엔 진지하지 않다는게 문제지 나중에 나치로 진화하는 독일 제국 새끼들이 만든 방탄복은 생긴건 좀 그럴싸했다 문제는 이게 앞만 가려준다는 거랑 통짜 금속으로 만들어서 뭐같이 무거웠다는 거다 얼마나 무거웠냐면 이거 입고 나면 소총도 제대로 못 겨눌 정도였다고 하니 이거 똥같은 장비다 문제는 화력이 -50정도 된다는 거지 이렇다보니 실전에 투입될 때는 빨리 움직여야 하는 공세부대에는 지급하지도 않았다 잠깐 존나 이상하지 않냐 기관총한테 뚝배기 들이밀어야하는 부대가 공세부대말고 도대체 어딨다고 그래도 독일새끼들은 와꾸라도 좀 괜찮아보이지 딴 나라 놈들 같은 경우엔 와꾸마저 끔찍하게 파멸적이었다 이 걸어다니는 오스트리아 소화기를 보자 머리까지 보호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좋은데 니들 저런 소화기 뒤집어쓰고 조준사격 할 자신 있음? 어찌저찌 서서쏴까지는 가능하다 쳐도 문제는 엎드려쏴 자세였음 저게 고개를 들어올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땅바닥에 엎드리면 엎드려쏴는 커녕 앞을 보지도 못했음 더 코미디인게 뭐냐면 저게 개같이 무거워서 한번 엎드려버리면 투구 무게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단 거임 이게 개병신같은 거란걸 깨달은 오스트리아군은 또 이상한 시도를 함 무거운게 문제면 입고다니는게 아니면 벗고다니면 되잖냐는 아이디어였음 이 갑옷은 평상시엔 이렇게 목에 걸고 앞치마같이 입고 다니다가 총격을 받으면 이렇게 접어서 땅에다 설치하고 방탄판까지 세운 다음 뒤에서 엎드려쏘는 일종의 개인용벙커였음 아예 입고다니는 용도가 아닌걸로 설정했기 때문에 좆같이 무거워도 어느 정도 참을 수는 있었고 실제로 방탄성능도 있었음 게다가 밑에는 바퀴를 달 수 있게 개량한 버전도 있어서 밀면서 앞으로 전진도 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도 괜찮고 실용성도 있어보이지? 근데 옆에서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걸 일단 막아주는 영역이 존나게 쫍아터졌다 정면에서도 어깨가 노출되면 퍽퍽 터져나가면서 오 마이 뻐킹 숄더를 외치게되는데다가 옆에서 총격이 날아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즉사임 거기다 1차대전은 진짜 지랄맞게 수류탄이랑 포탄이 쏟아지는 동네라서 이런거엔 아무쓸모도 없었다 그래서 실전에서 활약한 기록도 거의 없음 가장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바로 아이언맨이었다 해저탐사할 때 쓰는 금속제 잠수복을 보강해서 전쟁터에 밀어넣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거임 와! 빅대디! 물론 당연히 실현되지는 않았는데 물속에서도 뭐같이 무거워서 존나 움직이기 힘든 이 고철덩이를 육지에서 움직일 수 있을거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임 실현되었다면 정말 개간지였을거 같아서 아쉽긴 하다 존나 멋있었을 텐데 뭐 결국 기관총 막으면서 돌격하자는 아이디어는 갑옷을 만드는게 아니라 탱크를 만들면서 겨우 실현되게 된다 그 전까지는 그냥 망가에 들이대면서 신나게 녹아나야만 했다 전쟁은 참 뭐같네 (출처) 쓸모없지만 아이언맨 겁나 멋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