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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명화그리기~♡
언니네 작은 조카가 선물해준 DIY 명화그리기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 를 받고 몇년동안 지인들의 소개를 받고도 어른용 색칠공부?!라는 어줍짢은 생각으로 등한시하던 명화그리기에 드디어 손을 댔어요~^^;; 오만하기 짝이없었던 생각이라는걸 시작하면서 절실히 깨달았고 생각보다 더 즐거운 기분도 만끽하고 넘 좋았던 터라 저녁한나절이나 가끔은 두아들과 신랑이 집안일도 대신 해줬던 덕에 꼬박 한달이 걸려서야 완성했던 첫 그림~♡ 혼자 도안부터 컬러까지를 책임지는 창작화엔 오랜시간 손을 거두면 처음의 느낌이 사라지거나 중간에 시들해지면 포기하는등등의 여러 난제가 있었지만... 요녀석들은 지정된 컬러만 찾아서 칠하다보니 시간차가 생겨도 부담도 없고 생각보다 정말 흡족해지더라구욤~ 간간히 아프면 2~3일씩 앓아누웠다 일어나 다시 붓을 잡아도 전혀 부담도 없고 맘에 드는 작품을 선택해서 컬러링 하다보니 지치기보다는 묘한 성취감도 주더라구요~^^ 그렇게 고흐와의 데이트는 한달간 유효했답니다~♡ 조카덕에 시작해본 명화그리기가 은근한 매력이 있어 바로 두번째 작품들을 선별해서 구매하고 있는 제가 있었다는 웃픈?!!현실속에서 첫 컬러링 작품과 일주일이 걸린 두번째 작품을 공유해요~ 요즘 같은 때는 꾀나 적절한 취미생활이 되더라구요~^^ 한동안 푹 빠져있던 미니어처는 두아들의 알러지를 유발시키는 본드향으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 무지 심심했거든요~^^
[퍼오는 귀신썰] 죽은 멤버의 베이스 소리 (+ 날씨 이야기)
덥다 덥다 계속 말했더니 정말 덥다 그치 더우면 안 되는 나라가 40도가 넘게 절절 끓고 열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갑자기 우리도 여름에 우박을 보고 스콜이 퍼붓고 하는데 그래도 평균 기온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날씨는 기분이고 기후는 성격이라고 하더라 기분은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지만 성격이 바뀌면 '사람이 죽을 때가 됐나' 하잖아. 지금은 기후가 이상해지는 상황이니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건 맞지. 재미없는 얘기지만 ㅎㅎㅎㅎ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기후 관측이 시작된 1880년부터 시작해서 평균 기온이 1.5도 오르면 인간의 힘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고 해. 그리고 지금은 1880년에 비해 평균기온이 1도가 올랐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0.5도 뿐인 거야. 알래스카와 남극의 빙하들이 녹고 있는데, 문제는 현재로서는 측정 불가능한 '깨진 빙하'가 녹는 거래. 우리는 지금 그냥 빙하가 녹는 걸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빙하가 깨지고, 그게 떨어지고 하면 훨씬 빨리 녹게 되는 거잖아. 근데 어떤 빙하가 언제 어떻게 깨지는지 알 수가 없으니... 사실은 우리가 측정하고 있는 시기보다 훨씬 빨리 지구는 더워지게 되고, 해수면이 엄청나게 상승하게 되는 거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길게 하고 있지 더위 먹었나봐 ㅋㅋㅋㅋ 귀신썰이나 시작하자 문제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빙글에서도 종종 보여서 이 말이 하고싶었어 ㅎ 지구 기온은 당장 우리가 어떻게 하긴 힘들지만 각자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그리고 우리 신체 기온이라도 ㅋㅋ 떨어뜨리도록 귀신썰을 보쟈 ㅋㅋㅋㅋ 시작할게! ____________________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은 영적인 현상 같은 거다. 무서운 얘기는 아닐 듯. 약간의 소름 정도. 2천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당시에 음악에 관심이 있는 애들 중에, 힙합을 좋아하는 애들은 보통 비보잉을 했고, 나머지는 밴드를 했다. 미사리나 통기타 카페에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오부리(가라오케처럼 노래 연주를 해주는 것)를 하며 짭짤하게 돈을 버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애들은 약간 사파 취급을 받곤 했다.  이쯤 되면 내 나이가 대충 짐작되리라 본다(아재). 그 당시에 버스킹 같은 문화도 없었고, 나는 밴드에서 기타를 쳤었다. 보컬, 드럼, 나(기타) 그리고 영재(가명 / 베이스)라는 친구로 이루어진 4인조 하드록 밴드였다. 말이 하드록이지 그냥 하드록을 좋아하는 꼬맹이들 모임이었지. 연주 다들 못했다(ㅋㅋㅋ). 신기한 건 다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의 친구들이었는데, 보컬이 자기 밴드하고싶다고 하니까 보컬의 친구들이 어, 내 친구 기타치는데 소개해줄까? 내 친구는 베이스치는데 소개해줄까? 해서 4명이 모이게 된 것이었다. 보컬이 그나마 활발하고 나머지는 다 내성적이고 좋아하는 음악이 음악이다보니 성격도 모난 부분이 있어서, 어느새 이 4명은 밴드 멤버이자 가장 친한 단짝 친구가 되었다. 홍대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하고 같이 동네에 가서 밤새 술을 퍼먹거나 당구를 치고, 각자 집으로 가거나 서로의 집에 가서 같이 자거나 하고, 일어나서 알바뛰러 가고. 참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 당시에 거의 다 카피곡이었고 자작곡은 딸랑 2개 있었는데, 그마저도 다른 음악에서 따오고,말도 안되는 구간들 이어붙이고 해서 만든 난장판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엔 워낙에 '인디밴드' 라는게 적은 시대여서 그랬는지 홍대에서 같이 공연하는 형들이 참 예뻐했었다. 야! 니네 얼른 자작곡 더 만들어서 우리 레이블 들어와야지! 같은 얘기들.  솔직히 멤버 모두 직업으로 음악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며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영재가 죽어버린 것이다. 음주운전 차량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영재를 치었고, 호프집에서 서빙 알바를 마치고 돌아가던 영재는 목부터 떨어져 어찌 손 쓸 사이도 없이 그대로 즉사했다.  지금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개판이지만 그 당시엔 더 개판이어서, 피의자는 얼마 되지도 않는 형량을 받았다. 영재나 나나 둘 다 말이 없는 성격이어서, 멤버 모두가 친했지만 우리 둘은 특히 더 친했다. 같이 밤에 알바를 하는 것도 컸고, 끝나는 시간이 비슷해서 둘이 같이 돌아가기도 했으니까.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멍하니 장례식 3일 간을 지키다 집에 돌아갔다. 물론 밴드는 그대로 활동중지였다. 그리고 한 3개월 흘렀을 때였나. 같은 합주실을 쓰던 다른 밴드의 두 살 어린 동생놈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엔 합주실을 당구장이나 피씨방처럼 시간별로 렌탈해서 썼다. 1시간에 얼마... 그런 식으로.  그러다 보니 같은 합주실을 쓰는 다른 팀들끼리 친해지는 경우도 많았고, 오래 다니다보면 사장님이 시간 서비스를 주거나 가격을 좀 깎아주거나 그런 경우가 있었다. 문자 내용은 이랬다. [형 우리 합주실에서 영재형 귀신나온대요. 합주실에 아무도 없는데 베이스 소리 난다던데ㅋㅋ  ㅇ팀 보컬 여자애도 들었대요. 개무서움]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너무 화가 나서 문자를 받자마자 전화를 해서 쌍욕을 퍼부었다. 이 씨x놈아 장난쳐? 영재가 어떻게 갔는데... 그따위 장난들을 쳐. 이딴 문자 한번만 더 보내면 다 죽여버릴 줄 알아. 걔는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괴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날이 왔다. 합주실 사장님이 마누라랑 결혼기념일 여행을 간다고, 나한테 하루만 합주실을 봐달라고 한 것이다. 연습해도 좋고 잠도 여기서 자도 좋으니 오는 손님만 받아달라고. 일급은 그 당시에도 엄청 쎈 10만원이었다. 나야 뭐 설렁설렁 손님만 받으면 되는 거고, 오랜만에 손도 풀고 싶어서 콜을 했다. 손님들 다 받아서 보내고. 나는 거기서 잘 요량이었으므로 맥주를 몇 캔 비우고 카운터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2시쯤 됐나. 기타를 치고 있는데 합주실에서 진득한 저음이 울려퍼졌다. 둥, 두둥... 두두둥... 나는 이미 그때 문자 건은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고(머리가 나쁘다), 별로 영감이 있거나 겁이 많은 편도 아니어서, 누가 자기 연주를 녹음한 카세트를 틀어놓고 갔나, 싶은 생각에 '에휴 시x' 하면서 합주실로 들어갔다. 카세트는 꺼져있었다. 베이스 엠프에서 희미하게 둥, 두둥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밴드 합주를 할 때의 베이스 소리와는 달랐다. 밴드 합주할 때의 베이스소리가 엠프를 뚫고 튕겨져 나오는 느낌이라면 이 소리는 엠피스피커를 간신히 두드리는 느낌...  굉장히 희미하고 작고, 힘이 없었다. 한참동안 멍하니(약간은 쫄아서) 그 소리를 듣자니 어딘가 익숙했다. 그 진행이, 어설프게 귀로 들리는 그 코드가. 우리가 결성 초부터 쭉 연주해오던 어떤 카피곡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리고 나도 자리에 앉아서, 들고온 기타로 그 곡에 맞춰 연주를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카피한 그 노래는 원곡과 좀 달랐다. 중후분쯤의 베이스 연주가 굉장히 어려운 곡이었는데, 사실 영재가 베이스를 그닥 잘 치는 애가 아니어서, 곡을 편곡했기 때문이었다.  '야, 거기 어려우면 걍 루트음 위주로 찝어. 내가 솔로 한번 더 후릴게ㅋㅋ'  '아 진짜? 땡큐ㅋㅋㅋㅋ'  '시x 락커 가오가 있는데 못 쳐서 쪽팔 순 없잖냐ㅋㅋㅋ' 그 부분이 똑같다. 희미하게 들리는 저음 소리가. 현란하지 않고, 단촐하다. 루트음만 간간히 들린다. 그때부터는 정말 꺼이꺼이 울면서 기타를 치다 혼절하듯 합주실 바닥에서 잠들었다. 그날 꿈에 영재가 나왔다. 영재랑 나는 아침에 집 앞 공원에서 종종 운동을 하곤 했다. 락커는 체력이란 말과 함께. 뜀뛰기를 하거나 철봉을 하곤 했는데, 푸른 아침의 그 공원에서, 영재가 벤치에 앉은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에게 뭐라 자꾸 말을 하는데, 주파수를 잘못 잡은 라디오처럼 잘 들리지가 않았다. 내가 몇번이나 뭐라고?! 뭐라고?! 하자 그제야 목소리가 살짝 들리기 시작했다. 같이 놀아줘서...고마워... 다음에 또... 같이... 밴드하자.... 자고 일어나니 얼굴이 온통 눈물 투성이였다. 나는 그렇게 영재를 마음 속에서 떠나보냈다. 난 이제 밴드를 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 아재일 뿐. 그래도 내 방 거실 뒷켠엔 아직도 영재와 밴드할때 쓰던 기타가 넥도 다 휘고, 줄도 다 녹슨 채로 세워져 있다. 영재가 또 같이 밴드를 하자고 하면 그거라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역시 다 쓰고 다니 무섭진 않네...ㅎㅎ 그냥 신기한 경험이었어.  아주 옛날의.  [출처] 죽은 멤버의 베이스 소리 ____________________ 무섭기보단 슬픈 이야기였지? 보고 또 봐도 계속 울컥하네 이건 음주운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흉기라는 사실을 알까? 제발 자각하고 술 마시면 운전대 좀 잡지 말자... 그리고 제발 음주운전 뿐 아니라 음주로 일어나는 범죄들은 모두 가중처벌 하길.
방역 수칙 말하자 위협하는 손님들
거리두기가 4단계가 되면서 가뜩이나 힘든 자영업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면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손님들입니다. 헬스 트레이너도, 치킨집 주인도 봉변을 당했습니다. 공다솜 기자입니다. 한 남성이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러닝머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너가 방역수칙으로 정해놓은 시속 6km보다 빠르다며, 속도를 낮춰달라고 하지만 통하지 않습니다. 러닝 머신을 끄려고 하자 손을 치우고, 물병을 던지려 하기도 합니다. 같은 날, 서울 구로구의 한 치킨집입니다. 저녁 6시가 넘었지만 3명의 손님이 모여 앉아 있습니다.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나가달라고 하자 직원에게 욕설이 날아옵니다. 계속되는 시비에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테이블을 걷어차며 난동은 계속됐고 몸싸움까지 이어집니다. https://youtu.be/iY3jfTYjDKY 저 손놈 개지랄 하는거 듣고싶으신 분은 1분8초부터 들어보세요 경찰은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해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방역수칙을 무시하는 시민들로, 가뜩이나 힘든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ㅊㅊ 이종 왜저러고 살아 진짜 ㅡㅡ 대가리에 대체 뭐가 들어있냐 벌금이라도 ㅈㄴ 쎄게 때려야 안 저러지 ㅉㅉ 수준 진짜
1930년대 지어진 전주폐가 리모델링 레전드
저는 오래 전부터 기와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기와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기야말로 꿈만 꾸던 그 집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치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 차근히 완성해나간 집을 지금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적산가옥 제가 마주했던 첫 모습입니다. 긴 시간을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폐허로 있다보니 무너지기 일보 직전 처럼 보였어요.  어떻게 고쳐야하나 심란한 마음 뿐이였죠. 보시다시피 전문가도 기피할 것 같은 상태여서 골조만 살리고 나머지는 거의 새로 지어야 했습니다. 다시 짓는다고 해도 이 집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느낌은 최대한 살리기로 했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너무 파괴하면 제가 이 집을 선택했던 이유가 없었거든요.  쓸 수 없는 기와는 모두 걷어내고 보수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기와와 비슷한 걸 구해 남아 있는 기존 기와와 함께 사용해 지붕을 만들었어요. 16평 주택의 재발견, (직접 그린 도면) 평수로 치면 크지 않는 크기여서 방을 다 오픈해 공간이 전부 이어지도록 미리 스케치한 후 시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거형태 상 겨울엔 추위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어 이를 감안해 거실엔 냉난방기를 두고 방엔 보일러를 깔아 보온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어요.  나무 자체만으로 오랜 시간을 머금은 듯한 분위기를 풍겨 철거를 하면서 나온 목재들은 버리지 않고 문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문 앞에 놓여 있는 디딤돌도 철거에서 나온 돌을 재활용해 흔적들을 조금씩 남겨두었어요. 문을 열면 드르륵 정겨운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중문.  시간이 얽힌 거실 거실에서 바라본 마당 모습입니다. 마당 앞 툇마루처럼 생긴 곳엔 옛날 교실 바닥 자재를 깔아 거실과 공간을 분리하면서 통로의 느낌을 더 강조했습니다. 거실 안쪽까지 햇살이 깊숙히 들 수 있도록 큰 창은 철을 사용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어요.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차를 마시기에 딱 좋은 툇마루. 오죽과 감나무를 마당에 심어 겨울이 되면 다니 단 홍시를 먹을 수 있는 재미. 이런 즐거움이 마당 있는 집의 매력인 듯 해요. 사계절을 가장먼저 느낄 수 있는 작은 뜰.  복도 끝에 자리잡은 화장실.  낡은 것들이 모여 편안한 분위기를 주는 거실. 작은 심야식당 지인이 놀러와 얼굴을 보며 요리를 할 수 있도록 11자 형태의 아일랜드 주방으로 시공했습니다. 그리고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편히 오갈 수 있도록 식당 주방처럼 싱크대와 테이블 사이에 작은 문을 만들었습니다.  주변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고재를 사용한 주방.  노출 천장엔 인더스트리얼 조명을 달아 스타일리쉬함을 더했다. 거실 큰 창으로는 이곳까지 햇볕이 닿지 않아 주방 천장 가운데를 뚫어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비가오는 날이면 천장 유리를 통해 들리는 빗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더욱 운치있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들게 해요.  주방에서 바라본 모습.  운치 가득한 사랑방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한 유리문 너머엔 쉼을 위한 침실입니다. 폴딩도어문을 설치해 공간이 이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날씨가 더운 여름엔 활짝 개방해두고 추워지는 겨울엔 도어를 닫아두어 온도를 최대한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외국에 살았던 기억을 되살려  침실은 아늑하게 꾸몄습니다. 조명은 간접조명으로 대체하고 유리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독특해보이는 침대는 나무를 사러 갔다가 얻은 텃밭 상자를 이용해 침대 프레임 만들었습니다.  기성용품이 주는 획일화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 직접 만들거나 리폼한 가구들이에요.  느긋하게 책을 읽기에 좋은 곳.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곳  작은 휴양지. 낡은 질감의 나무문을 열고 나오게 되면 작은 테라스가 나타납니다. 늦은 점심 은은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있을 때면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곤 해요. 몸과 마음이 풀리는  개인 야외온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공간 욕실.  평소 반신욕을 좋아해 인테리어를 하면서 욕실에 힘을 가장 많이 주었어요. 꽉 막혀 있는 것 보다 자연풍경이 눈 앞에 보여지면 더 좋을 것 같아 통창을 내고 밖엔 단풍나무를 심었습니다.  창을 낼 때는 옆집 주변과 시야가 차단될 수 있는 높이를 고려하는게 가장 중요했어요. 여기에 누워 반신욕을 하다보면 가을엔 단풍나무가 겨울엔 소복이 쌓이는 눈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는 것 같아 너무 좋아요. 야외 온천에 온거 같기도 하고요. 은근한 나무냄새가 베일 것 같은 욕실 벽.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  저는 집을 고치거나 꾸밀때 항상 제가 뭘 좋하하는지 생각하고 저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떤지를 생각해서 반영하려고 하는거 같아요. 그래야지 집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고 편한거 같아요.  이제는 이사를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조금 마당이 넓은 집으로 가고 싶어요. 요즘은 내가 뭘 좋아하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에 새로 이사를 가면 집에서 시간을 조금더 생산적으로 쓸수 있고 또 좋아하는 걸 하면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출처 와 감각이 대단하시네요 *_* 금손 재능러 저 폐가가 이렇게 다시 태어날줄 누가 알았을 까요 ! 지금은 또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기신 것 같은데 인스타 구경 갔다가 저도 모르게 팔로우 하고 왔어요 :) 인스타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
좆본 덕분에 룰 갈아 엎어버리고 존나 핫해진 태권도 근황.jpg
태권도 경기하는 두 선수 뒤로 보이는...? 어디서 많이 본 게이지.. ??그래.. 이거 아냐? 아니고 실제 태권도 선수 경기 현장임. 상대방 선수한테 맞을 때마다 게임처럼 뒤에 게이지가 줄어듦. (W O W) 게이지가 다 줄어들어 0이 되면 패배. 라운드가 종료됨. 8번 봐도 킹오파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새로운 태권도 규칙 적용된 태권도 시범경기라고 함. 원래 태권도 점수 체계는 0점에서 시작해 가격 부위별로 점수를 얻는 득점제였다면 바뀐 룰은 100점에서 시작해 점수가 깎이는 감점제 방식. 그것을 게임처럼 게이지를 통해 표현해 경기 흐름와 내용을 쉽게 바로 알 수 있게 함 (아이디어 미침...역시 e-스포츠의 나라..) 이렇게 룰을 파격적으로 바꾼 이유는 한국을 성장하게 하는 힘(^^) 일본의 역할이 컸음. 원래 태권도는 특정 부위를 가격하기만 하면 점수를 따는 터치 개념의 방식이었음. 그렇다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기술(돌려차기 같은)이나 흥미 진진 타격전 대신  득점만을 위한 잔기술만 사용해 재미없단 비판이 많았었음. 그러던 중 도쿄 올림픽에 일본의 가라테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됨ㅋ 태권도협회: "감히 너네가...?!" IOC는 보통 비슷한 종목의 경우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종목을 없앤다고 함. 이렇게 될 경우 가라테에 태권도가 밀릴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 위기감을 느낌 대태협은 변화하기 시작했고 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전자 호구와 감점제를 도입해 새로운 룰을 만들어낸 것. (배 부분 가격 강도에 따라 최소 1점 ~최대 40점까지 차이가 난다고 함. 원래는 갖다 대기만 하몀 똑같은 점수 가져감) 또 경기를 방해하는 소극적 플레이나 반칙을 하는 경우 상태방 선수에게 10초간 파워 2배를 적용하는 '패널티 타임'도 적용. 패널티 타임에 상대방 선수들은 더 강한 공격을 시도해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음. 아직 시범경기만 치른 상태고 개선점도 많겠지만 새롭게 바뀐 태권도 룰과 경기 모습에 국내외 반응은 뜨거운 상황이라고 함..! 태권도 앞으로 더 더 흥하길..! 2차출처: 디미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