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1년 전, 출판사를 만들다
주말 특집, 움베르토 에코가 그린 만화, 그리고 그가 설립한 출판사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면, 이탈리아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책(참조 1)은 그동안 에코의 책을 절찬리에 출판해왔던 봄피아니(Bompiani)에서 나오지 않고, 테세우스의 배(La nave di Teseo, 참조 2)라는 신규 출판사에서 나왔었다. 궁금하지 않으신가? 어째서 갑자기 에코의 책이 새로운 출판사에서 나왔는지? 해답은 간단하다. 이 출판사의 창립자가 움베르토 에코입니다. 그렇다면 한때 봄피아니의 편집자를 지내기도 했던 움베르토 에코는 어째서 봄피아니를 나와서 테세우스의 배라는 출판사를 세웠을까? 봄피아니와 싸웠나? 아니다. 회사의 인수 합병과 관련이 있었다. 봄피아니는 1929년에 설립된 오래된 출판사다. 파시스트 치하에서도 살아남았던 봄피아니를 1972년 피아트 그룹이 인수했다가 1990년부터 RCS MediaGroup(Corriere della Sera 신문을 발행하는 곳이다, 참조 3)이 다시 이를 인수했는데, 경영난때문에 RCS는 봄피아니를 Gruppo Mondadori에게 매각하려 했었다. 문제는... 이 몬다도리 그룹의 사장은 마리나 베를루스코니(참조 5).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을 이름이다. 다름아닌 Il Cavaliere,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장녀다. 여기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가 격노했던 것(참조 6). 그는 이탈리아 방송에 이어 출판계까지 장악하려는 베를루스코니에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작가들을 이끌었고, 아예 봄피아니 편집장까지 모두 다 끌고 나가서 2015년 새로이 출판사를 세우는데(참조 7), 그것이 바로 "테세우스의 배" 출판사였다. 사실 이 사건은 결국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의 이탈리아 시장 및 경쟁보장기구(Autorità garante della concorrenza e del mercato)의 개입 및 결정(참조 8)에 따라 해결된다. 몬다도리는 봄피아니를 되팔아야 했고 이탈리아 출판시장 점유율은 40%로 내려가게 됐다. 그러나.... 봄피아니 매각이 움베르토 에코의 사후(2016년 2월에 사망했다)였다는 점이 함정. 그렇다고 봄피아니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 아예 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테세우스의 배는 움베르토 에코가 직접 세운 출판사이니만큼 에코의 저서 출판에 보다 더 광대한 자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움베르토와 평생을 함께 했고 아직 살아계신 미망인(Renate Eco-Ramge, 1935-현재) 및 에코의 가족들(아들 Stefano와 딸 Carlotta)이 소유하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자료를 출판사가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출판사측과 에코 가족이 협상을 안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드디어 오늘 짤방의 해설(참조 9)을 할 수 있게 됐다. "테세우스의 배" 출판사에서 장미의 이름을 2020년 5월에 새로 낸 것이다. 그냥 재탕인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1970년대 후반에 남긴 장미의 이름 작성을 위한 노트를 책 안에 부록처럼 수록했다! 이 자료를 보면, 수도원의 계단을 움베르토 에코가 어떻게 계산했는지, 어떻게 계단 올라가는 동안의 대화 시간을 구성했는지, 캐릭터들의 얼굴이 어떤지를 에코가 직접 종이에 그려 놓았다. 바로 이 짤방 속 인물들이 등장인물들을 만화처럼 에코가 직접 그린 것이다(참조 10). 연도는 1976년부터 1977년 사이로 추정, 그가 장미의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8년이었다. 이쯤 되면 다른 에코의 책들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겠다. 에코가 남겨놓은 메모나 스케치는 대단히 많다고 하며, 뭔가 아예 다른 새로운 책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 참조 1.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2021년 1월 28일): https://www.vingle.net/posts/3554080 2. 사실 출판사 이름으로서는 재밌고도 묘한 느낌을 준다.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에서 따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배를 오랜 기간동안 이것 저것 수선하고, 아예 다른 판자로 바꾸고 하면 이것은 과연 계속 테세우스의 배라 부를 수 있겠는가? La nave di Teseo : http://www.lanavediteseo.eu/ 3. 이 RCS 역시 1927년에 설립된 오래된 출판그룹이며 1970년대 후반 프리메이슨이 제공한 융자를 받았다가 스캔들이 터지고 런던에서 “자살”로 발견된 은행가 Roberto Calvi(참조 4)때문에 부도나기 직전에 이르른다. 4. 이탈리아 프리메이슨, P2(2018년 5월 27일): https://www.vingle.net/posts/2414093 5. 마리나 베를루스코니의 서한(2019년 9월 10일): https://www.vingle.net/posts/2669020 6. Let’s Not Allow Berlusconi’s Mondadori to Devour the Entire Rizzoli–Corriere Group(2015년 4월 2일): https://www.nybooks.com/articles/2015/04/02/berlusconi-mondadori-rizzoli-corriere/ 7. Elisabetta Sgarbi lascia Bompiani e fa una nuova casa editrice(2015년 11월 23일): https://www.ilpost.it/2015/11/23/elisabetta-sgarbi-lascia-bompiani/ 8. Mondadori dovrà vendere Bompiani(2016년 3월 24일): https://www.ilpost.it/2016/03/24/antitrust-mondadori-bompiani-marsilio/ 9. È uscita una nuova edizione di “Il nome della rosa”(2020년 5월 21일): https://www.ilpost.it/2020/05/21/nome-della-rosa-nave-teseo/ 10. Torna 'Il nome della rosa' con i disegni inediti di Eco(2020년 5월 21일): https://www.ansa.it/sito/notizie/cultura/libri/narrativa/2020/05/20/ansa-il-nome-della-rosa-con-i-disegni-inediti-di-eco_f86b5f2e-f3b2-499e-bb44-ba76f04869a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