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eckim
6 years ago1,000+ Views
투쟁!! 서슬퍼런 두 글자가 굵게 박힌 빨간 머리띠와 빨간 조끼. 단호한 눈빛으로 쓰러져가는 재계발 건물을 사수하는 영세업자들.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 검은 티와 바지 차림의 용역업체 직원들의 무력 진압에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명동의 어느 뒷골목. 지키려는 자와 얻으려는 자. 그 긴박했던 대치가 끝난 뒤에 카메라 렌즈의 초점은 두 곳에 맞춰진다. 울부 짖는 자와 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자. "내몰린 우리들. 더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무거운 나레이션이 끝나고 난 후, 채 1분도 되지 않아 요즘 대세라는 한 연예인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따다 준다는 컨셉의 은행 광고가 시작된다. 서로 웃으며 행복 뭉테기를 떼다가 사이좋게 나눠 가지는 사람들만큼이나 희망 돋는 핑크빛 캐치 프레이즈가 내 넋을 빼놓았다. "같이의 가치." 믿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2011년을 사는 우리들의 대한민국, 그 가장 적나라한 단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게 "노동"하면 "투쟁"을 떠올린다. 투쟁하면 자극적인 "빨강색"을 생각하고, 그 빨강색은 소위 말하는 "좌빨주의"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 개념 자체만으로도 숭고하고 존중받아야 할 노동이 왜 우리사회에서는 진보 진영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정도로만 인식되어 괄시받고 있는 것일까? ------------------------------------------------------- 몇 주전에 인권연대 스터디에서 사회 주의의 형성이 산업화를 통해 인권 의식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공부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노동이란 정말 무엇일까였다. 내 짧은 이해력으로 짧게 해석한 걸수도 있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을 열변으로 토해낸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에서도 그의 초점은 노동보다 노동자에 더 맞춰져있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이란 "인간이 자연과의 질료 변환을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매개하고, 규제하고 통제하는 과정이다"라고 간단 명료하게 정의한다. 언뜻 들춰보면 인간 그 자신이 사회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개체로써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듯이 묘사된 것처럼 보여도 왠지 내가 해석한 그의 노동에 대한 정의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그가 자연이라고 표현한) 환경적 제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 자신을 행동으로써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함으로써 사회라는 틀 속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몇가지 의구심이 생겼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로부터의 탈피에 너무 치중했던 나머지 노동력의 상품화와 착취라는 다소 선정적인 카드를 들고나와 산업화된 사회구조에 대한 심도있는 비판보다는 "자본주의"와 "자본"의 표면적 영향만을 들춘 것이 아닐까? 불평등한 부의 균배에서 비롯된 계급화를 벗어 던지자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단순히 노동자 또는 자본가로 획일화시킨 그의 노동적 개념이 결국 경제적 계층이라는 새로운 사회 피라미드를 견고히 다지는 이중적 잣대 노릇을 한 셈이 아닌가? 자본가와의 끊임없는 비교와 대치를 통해 노동자를 무력한 피지배자로 고착화시켜버리고, 그의 관점 속에서 불필요하게 그어진 불균등한 지배관계 통해 형성된 노동자의 자격지심과 자본가의 이기주의가 두 계층간의 감정의 골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자본주의는 이기적이고 잔인하다. 돈의 흐름으로 인생을 사버리는 이 사회의 잔인한 틀을 깨기 위해서 자신 안의 혁명을 강조하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노동에 대한 개념이 아직 자발적으로 잡히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혁명을 일으키라고 낫과 곡괭이를 쥐어준다면 이건 혁명을 일으키라는 건지, 귀농을 하라는건지... 노동자만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본가라고 해서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고 있다. 육체적 노동, 정신적 노동, 감정적 노동...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공장에서 기계부품처럼 일하는 불쌍한 인민들"에게 국한된다 할 수 있을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대화가 통하려면 공감이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중요한 연결고리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조차도 그것이 뭔지 몰랐다는 거다. 아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는 거다. 노동이란 나에게 무엇일까?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생존 수단일까? 삶의 가치를 영위하는 숭고한 행위일까? 아니면? 에잇, 또 머리가 아파온다. 그냥 깔쌈하게 미시적인 관점에서 출발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알바란 무엇인가? 6년간의 알바인생을 통해 비춰본 노동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알바를 시작하게 됬던 이유는 크게 세가지였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떼쓰는 막내딸 뒷바지를 하시기 위해서 뼈빠지게 벌어서 꼬박 꼬박 학비 보내주시는 부모님께 생활비까지 손을 벌린다는 것이 너무 죄송했고, 그렇게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돈으로 편하게 노니는 유학생쯤으로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싫었다. 또 경제적인 자립을 해야 정신적인 자립도 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믿음도 있었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버라이어티한 알바생활을 했었다. 게중 제일 노동이란 (고생스러운?) 이미지에 부합하는게 빠리의 딱딱한 빵에서 일한건데, 일주일에 이틀 내지는 삼일, 하루에 8시간씩 일했었다. 공휴일엔 페이가 1.5배라 감사한 마음으로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손님들과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안구에 서리가 내려 서리가..) 알바 첫날 퉁퉁 부운 다리를 주무르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고 다음 날 다시 출근을 하는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ㅜㅜ"였다. 나에겐 알바를 하루 하지 않으면 내일 뭘 먹어야 하나 걱정을 해야하는 생존과 직결된 간절함은 없었다. 설령 일터에서 내몰린다한들, 나에겐 돌아갈 학교가 있었다. 삶의 가치로써의 알바도 엇비슷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는 일터도 좋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가치를 눈에 띄게 향상시켜준다는 생각도 못해본 것 같다. 노동은 삶의 터전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일에서 해고당했다고 살인이라니! 그래서 노동이란 말에 이질감부터 든 것도 사실이다. -------------------------------------------------------- 몇주전에 인권 더하기 법률 캠프를 갔다가 순박하게 생기신 한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익살스러운 미소와 함께 듣기도 민망하리만큼 뻔한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 학교에서 공부만 하십니까?" 우리 대학생 일동은 대답 대신 일제히 의미심장한 미소 머금은 채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설마 공부만 하러 학교를 가겠어요?"하는 눈빛과 함께. "이중에서 학교에 가서 학생이라고 공부만 하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없어야 하구요. 학교를 배움의 터전이라고 하죠. 배움이 바탕으로 깔리는 터이긴 하지만, 우린 그곳에서 지식만을 배우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런 의미에요.학교에서 우린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같이 밥도 먹고, 그리고 사랑도 합니다. 일터도 똑같은거에요. 노동은 단순한 생존수단만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만도 아닙니다. 노동은 우리가 그 순간을 살아 숨쉬는 시공간, 그 자체인겁니다."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이 멍-했다. 짜장면이 좋니, 짬뽕이 좋니. 콜라가 좋니, 사이다가 좋니. 아빠가 좋니, 엄마가 좋니. 아. 장난하나. 초딩때 이런 질문들을 듣기만 해도 유치하다고 아연질색을 하던 내가, 레파토리만 다른 질문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생존수단이냐, 삶의 가치이냐 아니면 그 어떤 색다른 뭐시기이냐.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애초에 없었던 거였다. 같이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 그 사회로 가는 상생의 첫걸음은 노동을 우리가 그 순간을 살아 숨쉬는 시공간, 그 자체로 보는 것이다. ------------------------------------------------------- 요즘 부쩍 "노동"과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 글은 작년 이맘 때쯤 쓴 글로 기억하는데, 1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 정작 제가 변화시킨 것은 하나도 없더군요. 오늘 길거리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쳐다봐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열심히 피켓을 흔들고 있었고, 가던 길을 잠깐 멈추고 눈을 마추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팠던 하루였습니다.
1 comment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마르크스는 그 당시의 노동자들을 대변했을 지는 몰라도, 오늘날의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되려, 오늘날 막시즘은 노동자들을 이용하면서 그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물질적인 빈곤을 겪었으니... 모든 걸 물질적으로 생각을 했겠죠? (내 말이 맞는 건지...) 오늘날 몇몇 단체에서는 여전히 빈곤한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며 막시즘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빈곤한 노동자들은 그나마 삶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적 빈곤함을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그들은 '막시즘'의 논리에 따라,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0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시작하겠죠. 저는 그래서, 막시즘이 되려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무시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이란 개념에 생존의 수단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갑과 을'의 관계만 조명하면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노동자 문제가 시급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노동자 문제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막시즘의 설명으로는 상생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맞나?) 새로운 철학 내지 이론 형성의 가능성이 없는 채,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몇 십년째 똑같은 레파토리만 반복하고 있죠- 그래서, 한국의 진보나 보수나... 모두 다 시대적 흐름을 타지 못하는, 낡은 정치만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싫어하겠죠?)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생각해 볼만한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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