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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차트와 까망베르

시작은 로체스터 공대의 한 교수 트윗이었다. 프랑스어 저널에 등재할 논문을 리뷰하다보니 파이차트를 까망베르(camembert)라고 읽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짤방도 이 트윗 글타래에서 가져왔으며, 정리된(?) 그래프도 이 글타래에서 보시기 바란다. https://twitter.com/ElephantEating/status/1360647164012027907
그렇다면 다른 언어로는 파이차트를 뭐라 부를까? 이게 한 나라에서도 언어가 다를 경우 당연히 통일되지 않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나라가 다를 경우 명칭이 달라진다.

가령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는 파이 차트를 까망베르라 부르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의 경우 파이차트라 부른다. 스페인어의 경우 콜롬비아는 파이 차트라 부르지만 아르헨티나와 칠레, 멕시코는 케이크 표라 부르고, 스페인에서는 치즈조각표라 부른다.

같은 나라라 하더라도 프랑스 브르타뉴는 케이크 표라 부르는데, 나머지는 까망베르다. 영국의 경우 갤릭어 사용자들은 원형 표라 부른다.

그래서 히팅거 교수는 음식과 음식이 아닌 명칭으로도 나눴다. 자세한 건 위 글타래롤 보시도록. 프랑스어의 경우처럼 까망베르, 혹은 피자(브라질 포르투갈어), 케이크(덴마크, 이스라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브르타뉴, 네덜란드, 터키 등), 빵(불가리아, 중국), 치즈(스페인), 그리고 원래의 파이(영어권, 퀘벡, 콜롬비아, 그리스, 체코) 등이 있다.

(덴마크의 경우 정확히는 “레이어 케이크표(lagkagediagram)”라 부른다.)

음식이 아닌 것은? 우리나라나 포르투갈, 러시아, 이란, 일본, 인도(힌디어), 폴란드 등 다수가 사용하는 원형 그래프가 있고, 그 외에 태양표(?), 슬라이스, 디스크, 섹터 다이어그램 등의 명칭이 있다고 한다.

사실 파이 차트가 데이터를 나타내기에는 부적합할 때가 꽤 많다. 눈금이나 지표 같은 기준이 나타나있지 않고, 하나의 원 안에 있는 영역으로만 보여주기 때문에, 차이가 매우 큰 변수에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변수 간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그 영역”만” 보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형태이긴 하다.

결론은 까망베르가 귀엽고 맛있다는 겁니다. 사실 각 나라, 혹은 언어권이 원형 그래프를 왜 저렇게 부르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영원히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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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그리고 프랑스어
왠지 한 번 써보고 싶었던 주제,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러시아 귀족들의 프랑스어 습관이다. 톨스토이가 그냥 있어보이려고 전쟁과 평화의 대사 상당부분을 불어로 쓴 것은 아니었다. 당시 러시아 귀족들이 죄다 불어를 모국어로 사용해서 그랬던 것인데… 사실 프랑스어가 갑자기 유럽의 국제어가 된 과정은 예전에 이미 설명했었다(참조 1). 그때까지 해서 불어만큼 사전도 나오고 문법도 정리되고 한 언어가 없다시피 했었고, 다른 나라가 싸우더라도 프랑스 출신 장군들끼리 협상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었다. 즉, 조약 언어로서 불어가 먼저 퍼지고, 표준화된 언어와 막강한 콘텐츠의 힘으로 유럽 표준어가 됐었다. 프랑스가 초강대국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러시아 귀족들이 대거 프랑스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표트르 대제와 예까쩨리나 2세 때문이었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서구화시켰고, 에까쩨리나 2세는 독일인이었지만 불어로만 대화했으며 아예 궁중 공식언어를 불어로 바꿔버린다(참조 2). 독일 프리드리히 대제처럼 그녀 또한 볼테르의 카톡 친구이기도 했고 말이다. 여담이지만 프로이센 황제도 불어만 쓰려 노력하던 시기가 그때였다. 볼테르의 역할이 황제의 불어 교정이던 때이다(참조 1).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추가된다. 프랑스 혁명이다. 혁명 때문에 왕족과 귀족들이 대거 프랑스를 탈출했고, 그들은 합스부르크의 도움을 받으러 오스트리아로 갔다가 오스트리아마저 프랑스에 패배할 것으로 보이자 러시아로 도망친다. 러시아는 당연히 이들을 받아들이는데, 규모가 만 5천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아마 제일 좋은 사례가 왕립미술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 최초의 여성 화가, 루이즈 비제 르브룅(Élisabeth Louise Vigée Le Brun)일 것이다(참조 3). 그녀 또한 러시아로 들어가서 예까쩨리나 대제의 전속화가가 됐었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소설 대사를 아예 프랑스어로 쓰고, 푸쉬킨이 여자들에게 프랑스어 연애 편지를 쓰던 것처럼 하던 러시아 지식인들이 어째서 프랑스어를 안 쓰기 시작했을까? 나폴레옹 때문이었다. 그가 러시아에게 민족주의를 심어버렸기 때문인데, 당시 러시아 귀족 장교들 또한 더 이상 프랑스어를 쓰면 위험하기도 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러시아 농민들이 자기나라 장교가 아닌 걸로 생각하고 공격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좀 약해 보이지 않은가? 나폴레옹이 몰락했다 하더라도 불어는 계속 국제어로 쓰였으니까 말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불어가 유행한 이유는 프랑스가 강력해서가 아니라 우연과 콘텐츠의 힘이었다. 즉, 러시아 귀족들이 갑자기 불어 사용을 한꺼번에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귀족들이 불어 사용을 더 이상 안 하도록 쐐기를 박은 순간은 아마 러시아 혁명일 것이다. 그때는 되려 러시아 귀족들이 대거 프랑스로 망명을 했었고, 혁명 이후부터는 정말 러시아어밖에 모르는(여러 의미가 있다) 이들이 집권층을 이뤘기 때문에 상류층의 언어 환경이 급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할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불어가 러시아어에 발자취를 안 남긴 것은 아니다. 참조 4) 짤방은 1825년 당시 제정 러시아의 외무성이 발간하던 관보(Journal de Saint-Pétersbourg, 참조 5)이다. -------------- 참조 1. 프랑스어의 미래(2019년 11월 4일): https://www.vingle.net/posts/2695327 2. The Late 18th Century: The Reign of Catherine the Great: https://www.guggenheim.org/arts-curriculum/topic/the-late-18th-century 3. 르브룅 전시회(2015년 8월 13일): https://www.vingle.net/posts/997539 4. 어휘만이 아니다. 동사를 들여오면서 목적어와 전치사가 뭔가 불어스럽게 바뀐 것도 있다고 하는데, 내 노어 실력이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어서 사례는 못 들겠다. 5. La presse en français dans la Russie impériale(2015년 10월 6일): http://rusoch.fr/fr/guests/pressa-na-francuzskom-v-imperatorskoj-rossii.html
오토만투르크의 언어
목요일은 역시 언어지. 주제는 오토만 제국의 언어다. 짤방은 1911년 오토만 제국에서 나왔던 달력이다. 이런 형식을 당시 오토만 제국에서는 “로마력(Rumi takvim)”이라 불렀는데, 율리우스식 달력을 탄지마트 개혁 당시(1839)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왼쪽 위는 오토만 제국 당시의 터키어로서, 숫자는 정통(…) 아라비아 숫자로 쓰여 있다. 1327년인데, 이것이 로마력에 따라 1327년이라 해서 그렇다. 오른쪽 위에는 히즈라 이슬람력인 1329년이 쓰여 있다. 두 번째 행에는 아랍어 숫자 날짜가 커다랗게 적혀 있고(월/일 순서다), 세 번째 조그마한 행에는 불가리아어 달력이 적혀 있다. (러시아어가 아니다.) 네 번째 행에는 커다랗게 라틴식 아라비아 숫자와 함께, 왼쪽에는 그리스어, 오른쪽에는 불어로 되어 있고, 다섯 번째 행에는 아르메미나어, 맨 아래에는 셰파르딤의 언어인 라디노어(참조 1)로 적혀 있다. 어떠신가? 동유럽-발칸-중근동-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의 영토에 따라 대단히 많은 언어가 쓰여 있음을 알 수 있겠다. 물론 오토만 제국을 투르크 민족이 세웠기 때문에 공식어의 위치는, 아랍어 글자를 사용한 오토만식 터키어라 할 수 있을 테고 실제로도 정부 문서는 주로 터키어로 작성됐다. 물론 취직과 교양을 위해서는 파르시(페르시아어)와 아랍어 습득이 중요한 역할이기도 했다. 그 풍조가 바뀌는 것이 바로 1830년대 말부터 시작된 동도서기의 탄지마트 개혁이다. 내용은 19세기 유럽을 본받자는 것이다(참조 2). 시작은 번역실(Tercüme Odası) 설치였다. 그전까지는 이스탄불의 그리스계 사람들을 번역에 썼다가 1821년 그리스 반란이 나면서, 아예 오토만 제국 외교부 안에다가 설치한 것이다. 이들은 온갖 법과 조약, 공공 문서를 터키어에서 불어로, 불어에서 터키어로 번역한다. 18세기 이래, 당시 외교어가 불어였기 때문이다(참조 3). 오토만 제국의 지식인들 역시 러시아처럼(참조 4) 불어가 교양어의 역할을 하기도 했었고, 심지어 탄지마트 개혁을 두고 오토만 제국 내 대립했던 당파들 모두 다 불어를 사용했었다. 그래서 탄지마트 개혁을 끝낸 1876년 오토만 제국헌법의 경우, 초안 자체를 불어로 작성했으리라는 추측이 많다. 뭣보다 중요했던 점은, 오토만 제국 내에서 투르크 계열 빼고는 모두 다 불어를 터키어보다 선호했다는 점일 것이다. 19세기 후반기에 오토만 제국 내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신문들도 대체로 불어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역시 의대 아니겠습니까. 좀 앞선 시기인 1827년, 당시 술탄은 오토만 제국 내, 이스탄불에 최초로 군 병원 및 의대(Mekteb-i tıbiyye)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교육용 언어가 불어였다. 그래서 국립 의대이든, 민간 의대이든 불어로 수업을 했었는데 투르크 민족주의자 의대생들과 비-투르크 의대생들이 교육 언어를 두고 부딪힌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비-투르크 의대생들은 당연히(?) 불어를 선호했다. 그래서 이 짤방의 달력에 서구 언어는 불어만 들어가 있던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터키 내에서의 불어 우선 풍조는 오토만 제국의 멸망과 아타튀르크의 등장(참조 5)으로 사라져갔다. 다만 19세기 이래 특히 레반트 지방의 크리스트교도들과 비-투르크인들이 대거 불어를 받아들였던 점을 돌이켜 보면, 프랑스가 괜히 이곳에 보호령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이 또한 일반적인 식민지 경영의 이력과는 궤도가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다. -------------- 참조 1. 셰파르딤은 이베리아-북아프리카에 분포해 있(었)던 유대인들을 의미하며, 그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바로 라디노이다. 히브리어 계열이 아니다. 오히려 히브리어 철자로 작성한 스페인어 계열이라고 봐야 한다. 2. 가령 동성애가 형법상 범죄 목록에서 이때 사라졌다. 프랑스의 동성애 합법화(2020년 7월 5일): https://www.vingle.net/posts/3024191 3. 프랑스어의 미래(2019년 11월 4일): https://www.vingle.net/posts/2695327 4. 전쟁과 평화, 그리고 프랑스어(2020년 1월 2일): https://www.vingle.net/posts/2732143 5. 터키 공화국 설립(1923년) 이후의 외국어 교육은 아래 논문을 참조하시라. The History of Foreign Language Policies in Turkey: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1877042813001638?via%3Dihub 6. 그 외 참조 문헌 오토만 제국의 언어(짤방도 여기서 얻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Languages_of_the_Ottoman_Empire Alliance Israélite Universelle(이들의 활약으로 투르크 내 유대인들이 프랑스어 학교를 많이 설립한다, 지금도 있는 단체다): https://fr.wikipedia.org/wiki/Alliance_isra%C3%A9lite_universelle
R의 발음
부처님 오신 날 특집, 프랑스어에서 “R”의 발음이다. https://youtu.be/YCw_lEb1qXk 기억하기로 예전 독일어 배울 때 회화 선생님이 뮌헨 출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파벳 R 발음을 듣고 상당히 좀 ???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어 알파벳 R이 목 끓는 소리가 나던데 독일어도 비슷하게 들려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맞았다. 흔히들 생각하는 목 끓는 R은 프랑스 지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등 불어권을 빼고 남부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 일부, 그리고 (난데 없이) 덴마크와 남부 스웨덴 등에서 R을 그렇게 발음한다. 물론 이들이 독자적으로 R을 그렇게 발음했을 수도 있을 텐데, 여기에는 사회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예전에 말했듯(참조 1), 프랑스어는 근세 유럽에서 링구아 프랑카였고 특히 왕실은 구성원들이 불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어의 R 발음을 알고 자기들도 도입했다는 의미다. 물론 이것이 증명된 바는 아니고, 지역 분포를 봤을 때 그랬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하는 정도일 뿐이다. 증명되는 날은 영원히 안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프랑스어에서 R 발음이 그렇게 /ㅎ/ 비슷하게 됐을 때가 그리 옛날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다. 몰리에르의 희곡, “서민 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 1670, 참조 2)”에 R 발음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즉, 17세기 루이 14세 치하의 궁정에서 R 발음을 그렇게 하는데, 서민들은 그렇지 않더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니, 길게 잡아야 300년이 넘었다. 이전에는 라틴어/스페인어 R과 발음이 비슷했으리라고(apical) 한다. 그렇게 오래된 현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예전의 프랑스어는 (유럽, 참조 3) 포르투갈어와 마찬가지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rr을 r보다 좀 강하게 읽었고, 처음 오는 r도 어느정도만 강하게 읽는 식이다. 그것이 현대 들어와서 모든 r을 강하게 발음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으며, 불어 쓰는 것이 지위와 교양의 상징이었던 다른 나라들에도 확산됐다는 의미다. 즉, 생각보다 “굴리는 r”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타임머신 타고 날아간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화하기 힘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 참조 1. 프랑스어의 미래(2019년 11월 4일): https://www.vingle.net/posts/2695327 2. 주르댕에게 자음 발음을 알려주는 철학박사의 대사다. “그리고 R은 혀끝에서 입천장까지 머금고, 힘과 함께 공기로 살짝 내뱉는 소리입니다. 그 다음에는 바로 같은 장소로 혀를 되돌려서 ‘RRA’처럼 떨리는 방식이죠.” (제2막 제4장) Et l'R, en portant le bout de la langue jusqu'au haut du palais; de sorte qu'étant frôlée par l'air qui sort avec force, elle lui cède, et revient toujours au même endroit, faisant une manière de tremblement, RRA. (Acte II, Scène IV) 3. 브라질 포르투갈어의 경우 지역에 따라 스페인 식으로 발음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내가 배운 포어는 상파울루 포어라서 그러하지는 않았다. 다만 맨 앞에 위치하는 r의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ㅎ/로 소리를 낸다. 물론 프랑스어 r과 포르투갈어 r 등의 설명을 한국어 발음에서는 /ㅎ/ 하나로만 설명할 수 있으나, 지역별 차이가 있기는 하되 실제로는 좀 다르다.
https://www.brut.media/fr/news/pourquoi-a-t-on-des-tics-de-langage--66ef885b-7329-4ea2-9fd0-c3ec8ffd6ba7 상당히 흥미로운 영상이다. 틱(tic)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en vrai(사실은), du coup(그런데), voilà(자) 처럼 관용여구처럼 사용하는 표현인데, 이 표현들이 곧 관용어구는 아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뜻이 없고 맥락상 추임새 정도로만 쓰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말하자면 you know(…캐럴라인 케네디 대사는 잊읍시다)를 말 중간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석 안 해도 되고, 해봤자 문장 이해에 별 도움 안 되는 경우다. 이를 불어에서는 tic이라고 하는데, 17세기 정도에 들여온 단어로서, 원래는 이탈리아어 단어 ticchio/티키오/에서 왔다고 한다. 직역하면 말의 트름?에서 나오는 비자발적인 음성이다. 설명을 가다듬기 위해, 혹은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내뱉는 말이다. 사회성을 위해 사용한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세대별로 유행하는 tic이 다르다. “쥑인다(c’est mortel 혹은 c’est une tuerie)”는 표현도 마찬가지, 요새 들어 유행하는 tic이다. 가령 tic에 대해 말해주는 영상의 교수는 자기 어렸을 때, 비슷한 의미로 “톱(c’est top)”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말인즉슨, 젊은 세대가 계속 이를 바꿔가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you know를 거론했지만 영어로는 이 tic을 filler라고 부른다. I mean, okay, actually, basically, right 등등이 있으며, 당연히 다른 나라 말에도 유사한 표현이 있다. 독일어에서도 Füllwort라고 하는데, 가령 지금 생각나는 것으로는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지방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 끝마다 붙이는 -oder?가 있겠다. 지역마다 Füllwort가 다 다른데, 다른 단어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재밌는 건 이탈리아어, 위에서 얘기했던 ticchio가 아닌, intercalari라고 부르는데, 역시나 인테르칼라리에 종교적인 의미가 많다. mio dio/나의 하느님, madonna/성모님/, per dio/하느님이여/ 등의 표현이 쓰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심한 욕으로 쓰이는 cazzo도 다양하게 변주를 이룬다. 전혀 욕이 아닌, “진짜/è vero”도 있겠다. 이게 짧아져서 “evero”로도 쓰인다. 한국어는? 진짜? 정말? 뭐… 그냥… 이런 표현들이 속할 것이다. 명칭이 뭔지는 모르겠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건 마크롱 대통령, 그분은 말을 할 때마다 en même temps(“동시에”라는 의미인데, 앞 문장과 뒷 문장이 서로 반대 내용이어야 어울린다)을 붙이기 때문인데, 한 번은 내가 손따옴표를 붙여서 그 표현을 하니까 상대방이 무척 웃던 기억이 난다. 여러분도 한 번 해 보시라.
프랑스의 사회언어학사
사실 영어의 역사는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로 영어를 공부하고 외국어 하면 일단 영어만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라고 쓰긴 했는데 사실 영어의 역사도 잘 모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아래의 도식만 생각하면 된다. E = F + G / 영어 = 불어 + 독어 그렇다면 불어와 독어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나… 하면 영어보다 안습일 것이다. 그래서 읽은 책이 이 책이다. 가령 프랑스어는 왜그리 발음 생략하는 자음이 다른 언어에 비해 많을까? 그 답부터 알려드리자면, 라틴어 단어를 빠르게 읽다보니… “혹은” 원래 읽던 단어를 라틴어스럽게 보이려고 일부러 있을 법한 자음을 집어 넣었다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프랑스어가 옛날부터 통일되어 있지는 않았다(지금도 통일됐다고 하기는 힘들다). 대표적으로 북부의 프랑스어와 남부의 오크어가 있으며, 정치적 지배를 북부가 공고히 하면서 북부(일 드 프랑스)의 말이 바로 “프랑스어”가 됐다. 특히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이단, 알비 파와 카타리 파에 대한 중앙 정부의 공격은 이단만 없앤 것이 아니라, 남부의 고위 세력을 파리로 편입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중앙정부는 백년 전쟁 이후 남부를 제압할 때마다, 도시마다 법원을 하나씩 세웠고, 공공업무에 대한 언어를 “법률화”시킨다. 이를테면 1490년 물랭 칙령(Ordonnance de Moulins de 1490, 참조 1)은 법률 용어를 모두 프랑스어 또는 모어로 정했다. 프랑스어는 파리를 위주로 한 불어를 의미하고 모어는 지방 언어를 얘기함인데… 1539년 프랑수아 1세는 빌렉코트레 칙령(Ordonnance de Villers-Cotterêts)을 발표한다. 이 칙령은 오로지 프랑스어(en langage maternel françois, 당시 표기법으로 썼기에 좀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참조 2)만을 법률용어로 사용할 것을 지정했다. 참고로 Collège de France 또한 같은 국왕 프랑수아 1세가 1530년에 세웠다. 아마 프랑스어가 본격적인 표준화로 갔을 때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랬다가 당시 선진국인 이탈리아 지역 사람들이 넘어오면서(레오나르도 다 빈치? 카테리나 데 메디치?) 피렌체의 Accademia della Crusca를 본딴 Académie Française가 생기고, 이탈리아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은 프랑스어의 우수성(La Précellence du langage françois)이라는 책도 만들어낸다. 요새도 영어 단어를 불어식으로 바꾸는 고집(가령 computer를 ordinateur)이 500년 된 역사를 가졌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때부터 프랑스어는 복잡해진다. et(그리고) 정도만 사용해서 긴 문장을 만들던 그들이 이때부터는 접속사나 관계사를 빈번하게 구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후로 “세련미”를 갖췄다는 의미로서, 이때부터는 문법과 사전으로 초점이 옮겨간다. 단일어 사전으로서 의미가 있는 첫 사전이 1606년(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 참조 3) 게다가 부르봉 왕가 이후로는 궁정 문학이 꽃을 피운다. 지금도 (과연?) 그렇지만 당시의 파리는 유럽 문화의 선도/선두 주자였고, 프랑스어만큼 체계가 잡힌(문법과 사전이 정비된) 언어가 당시 드물었다. 나폴레옹의 민법이 끼친 영향도 생각하시라. 불어가 국제어 역할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영국(참조 4)과 독일, 러시아 귀족들도 서로는 불어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이는 거의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다. 이 정도면 프랑스어 역사를 프랑스 내 사회적/역사적 맥락으로 알 수 있다고 할 순 있을 텐데, 단어나 문법 자체의 변화를 다루는 책은 아니다. 그 내용은 다른 책에 있을 것이며, 나로서는 오랜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하나 잡았다. 지금도 유럽사법재판소의 작업언어가 불어 하나 뿐인 이유다. -------------- 참조 1. 중세 프랑스에서 칙령으로 해석되는 단어는 두 가지다. édit 및 ordonnance인데,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édit는 특별법이고, ordonnance는 일반법에 가까운 개념이지만, 그렇다고 칙령을 일반 칙령, 혹은 특별 칙령으로 해석하기는 매우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위에 사례로 든 물랭 칙령은 왕국 내 모든 법정 심문과 조서의 언어를 규정하며, 가장 잘 알려진 칙령 중 하나인 “낭트 칙령(Édit de Nantes, 1598)”은 신교도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규율을 다루고 있다. 2. 불어판 위키피디어 설명을 참조하시라. https://fr.wikipedia.org/wiki/Ordonnance_de_Villers-Cotterêts 3. 미묘한 차이를 아시겠나? Langage françois가 Langue française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langage와 langue의 뉘앙스 차이는 말/언어로서, 전자는 “일-드-프랑스의 말”의 의미이고, 후자는 “프랑스 언어”의 의미다. 4. 특히 영국 법원은 17세기까지 법률용어로 불어(Law French)를 사용했다. : https://en.wikipedia.org/wiki/Legal_English 가령 법률이 확정되면 “Le roi le veut / 국왕이 그것을 원하신다”라고 발표한다. 물론 지금은 여왕으로 말할 것이다. https://legal-dictionary.thefreedictionary.com/Le+roi+le+veut
프랑스어 부정형은 어째서 2단계인가?
수요일은 역시 외국어이지. 짤방부터 봅시다. 이 사진은 프랑스어의 부정형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초-간단하게 그려낸 그래픽이다. 맨 위는 당연히 옛날 불어의 부정형, 중간은 현대 표준 불어의 중간형, 맨 아래는 현재 대화 불어에서의 부정형이다. 이러한 변화를 덴마크 언어학자의 이름을 따서 예스페르센 주기(Jespersen's Cycle, 해당 위키피디어에서 짤방을 가져왔다)라고 한다. 자, 자세히 봅시다. 불어는 문장에서 부정형을 만들 때 동사의 앞뒤에 각각 ne와 pas를 붙인다. 아마 고대영어를 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고대 영어(참조 1)에서도 부정형을 붙일 때, 처음에는 동사 앞에 ne만 붙이다가, 후에는 동사 앞뒤에 ne와 nawiht(참조 2)를 붙였기 때문이다. 뭔가 공통점이 느껴지실 텐데, 아이러니한 건 현대에 와서 둘 다 앞의 ne가 약해지거나(프랑스어) 사라졌다는(영어) 점이다. 사실 현대 프랑스어에서, 특히 말로 할 때 예외적 표현(가령 문장 끝에 붙이는 추임새인 n’est-ce pas)이나 무슨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는 이상 ne를 발음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Sais pas(몰라)의 사례처럼 심지어 주어도 생략할 때가 있으며, 시험볼 때 외에는 ne를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공식적으로 ne pas인가? pas는 “걸음”를 의미한다. 더 이상 걸어가지 않는다의 뉘앙스를 의미하는데, 원래는 짤방의 사례처럼 그냥 ne 하나로 하다가 pas가 덧붙여져서 부정을 강조하다가, 아예 그냥 부정형의 문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이상 사람들은 Sais pas를 “걸음을 안다”로 해석하지 않는다. “모르겠는걸…”의 뉘앙스로 받아들인다. 의문이 들 것이다. 애초에 왜 두 단계로 했을까?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는 각각 no나 não로 퉁친다. 동사 뒤에 별도의 부가 단어가 붙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부정형에 대한 강조 사례가 비단 pas에만 있지는 않다. point, rien, personne, plus, jamais, que, aucun, nul, nul part와 같은 용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시라. no와 não는 분명히 들리지만 ne/느/는 거의 들리지 않는(사라져가는 이유가 있다), 굉장히 약한 단어다. 그래서 불어의 경우, 뒤에 pas부터 시작하여 부정형을 강조해주는, 보충해주는 표현이 꽤 발달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불어에만 있지 않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나 노르웨이어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참조 3). 가령 고대 고지 독일어(참조 4)에서의 부정형은 ni + niwiht였다고 한다. 이게 후에는 niwiht만 살아남아 nicht로 바뀐다. 게다가 독일어의 경우는 명사 부정에 쓰이는 kein(참조 5)의 존재 때문에… 프랑스어와는 좀 다른 형태의 부정형 강조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서 never가 출동한다면…? 프랑스어의 경우 위의 강조사례에 들어가 있는 jamais를 쓰는 두 단계 형태의 부정형 문장을 구성한다. 사실 never가 워낙 강력한 부정적 뜻을 갖고 있기에 이 형태에서는 두 단계인 언어가 꽤 있다. 가령 러시아어(никогда не…)라든가 이탈리아어(non mai…)가 있는데, 독일어는 이 경우 nie 하나로 오히려 간단해진다. 그래서 결론은, 언어는 변하고 미래는 문장 구성이 어떻게 또 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바로 위의 내용만 하더라도 이중부정은 긍정이라는 상식과 배치되는 면이 있잖던가? 물론 프랑스어에 있는 두 단계의 부정형 구성은 순전히 프랑스인들이 부정하는 걸 좋아해서… 아 아닙니다. -------------- 참조 1. 고대 영어의 정의는 앵글로-색슨이 영국 섬에 정착할 때부터, 그러니까 5세기부터 프랑스 노르망디 제후의 잉글랜드 정복 시기(11세기) 까지 정도를 의미한다. 즉, 켈트어에서 벗어난 다음부터, 프랑스어의 점령을 당하기 전까지다. 이때부터는 중세 영어(Middle English)이다. 이 언어는 대충 셰익스피어 시기 전까지다. 2. not + it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이것이 후에 nought 혹은 naught로 변하고, 그 다음에는 부정형으로 남는 단어인 not으로도 간단하게 바뀐다. 보너스로 not a thing이 단순화된 형태가 nothing이다. 3. Jespersen’s Cycle and the History of German Negation: https://www.uni-salzburg.at/fileadmin/multimedia/Germanistik/documents/Mitarbeiterinnen_und_Mitarbeiter/Elspaß/Elspass_Schriften_in_Auswahl_pdfs/Elspaß_Langer_Jesp_Cycle_in_Neuphil_Mitt_2012.pdf 4. 표준 독일어의 출현(2019년 12월 1일): https://www.vingle.net/posts/2709049 5. 고대 고지 독일어의 no one을 의미하는 nihein에서 나왔다. ni의 음가가 떨어져나가고 h 음가가 강해지면서 kein으로 바뀐 것.
모로코의 언어
https://orientxxi.info/magazine/maroc-la-guerre-des-langues,3055 이 나라는 내가 직접 살았었고 교육기관에서 직접 강의를 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여러분들 어떤 언어가 제일 많이 쓰이는지 지도를 볼 때,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지도에 프랑스어가 표시되어있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모어 화자는 한국어 화자가 프랑스어 화자보다 많다는 말도 있고 말이다. 당연히 거짓 정보에 가깝다. 북아프리카 3국(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은 그 나라 사람들이 식민지배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계 없이 프랑스어 사용 국가들이고 모어 화자들도 얼마든지 많은 나라들이다. 설사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프랑스어가 그냥 나오기 때문에, (정말 말그대로 거의 100%) 프랑스어로 말하고 듣고 쓴다. 관공서 서류도 그냥 프랑스어로 다 인정된다. 게다가 과거 한국의 경기고나 서울고처럼, 여기도 고등학교를 어디에 나왔는지에 따라 장래가 많이 갈리는 나라인데(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고 보셔도 되겠다), 모로코의 경우는 "카르떼시엉(cartésien)"이라는 명칭이 있다. 명문 고등학교인 데카르트 고등학교 출신을 가리킨다. 이름부터 불어임을 아실 수 있을 텐데, 1919년에 설립된 이 고등학교는 중고등 과정과 쁘레빠(그랑제꼴 준비)를 모두 가르치는 프랑스 해외교육청 산하 교육기관으로서... 여야를 막론하고 모로코 국왕 가족은 물론 모든 엘리트 계층의 아들딸들을 보내려 혈안인 학교이다(그 외에도 리쎄 앙드레 말로, 혹은 기사에서도 언급된 카사블랑카에 있는 리쎄 Lyautey 등등). 그 학교를 나와야 유학가기도 좋고(어지간한 프랑스 국내 고등학교보다 성적이 좋다), 다녀와서 고급 공무원/기업간부 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기사의 내용으로 돌아오자면, 중고등 과정에서 수학과 과학 교육을 프랑스어로 지정하자는 개혁안을 집권 연정 중 하나인 이슬람당(PJD)에서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어 연기했다는 내용이다. 이미 교과서가 다 불어이고 어차피 아랍어를 이용한다고 해도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조사 빼고 다 불어로 해야 할 판이니, 그냥 통과시킬 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이슬람당 지도부 자제 분들도 다 프랑스 학교에... 아, 아닙니다. 이미 당 내 "옛날 분"들의 저항에 현재 각료들은 별 의미 없다는 반응(참조 2)이다. 뭣보다 이건 국왕의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모로코인들 스스로도 잘 알 텐데, 마그리브의 다리자(الدارجة, 지역어/사투리의 의미)는 표준/클래식 아랍어와 (아주) 많이 다르다. 그래서 다리자는 역사적으로 정리된 적 없고, 학문의 언어가 된 적이 없었으며, 모로코 내에서 인위적으로 표준/클래식 아랍어와 함께 아마지그(amazigh, 참조 3)를 공식 언어로 채택했기 때문에 (클래식) 아랍어를 교육어로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자기들도 안 쓰니까. 여담인데, 위와 같은 내용 때문에 식민지의 언어 사용을 거론할 때는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클래식 아랍어는 먼 지역의 언어이고 윗분들(!)도 사용 안 하는데 자꾸 국어이자 모국어라고 세뇌를 받으니 그냥, 실용적이고도 쓸모가 많은 불어로 더더욱 집중되고, 교과서마저 불어이니 그냥 불어를 쓰고 있었다. 재밌는 방송도 다 불어이거늘. 이들을 서양 제국주의의 희생자들인양 묘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세상이 역시 단순하지가 않다. ---------- 참조 1. 리세 데까르뜨 : https://fr.wikipedia.org/wiki/Lyc%C3%A9e_Descartes_(Rabat) 카르테시앙 중, 우리나라에 알려진 인물로는 소설, "달콤한 노래"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있다. 2. Ramid: "Benkirane n'est pas au dessus du PJD"(2019년 4월 16일): https://www.medias24.com/ramid-benkirane-n-est-pas-au-dessus-du-pjd-1603.html 3. 베르베르의 언어다. 아프로아시아족 언어에 속하며, 아랍어와는 많이 다르고 알파벳도 별도로 사용한다.
COVID-19의 성(姓)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또 아카데미 프랑세즈 짓을 했다(참조 1). COVID를 명사형으로 쓸 때 여성형으로 써야 한다고 발표(참조 2)한 것이다. 이제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쪽 프랑코폰 언론들은 대체로 COVID를 남성 명사로 표기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무의식적으로 covid 하면 왠지 남성명사 같은 느낌이었다. https://www.huffingtonpost.fr/entry/pour-lacademie-francais-il-faut-dire-le-covid-19_fr_5eb56339c5b62d0addad9af8?ncid=other_twitter_cooo9wqtham&utm_campaign=share_twitter 그런데 말입니다. 캐나다(참조 3)하고, 결정적으로 WHO에서 covid를 여성 명사로 써오고 있었다. 즉,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캐나다/WHO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논리는 간결하다. 어차피 COVID의 핵심 명사는 병(disease)이며, 이 병의 불어 명사(maladie)는 여성명사다. 따라서 COVID는 여성 명사. 두둥탁.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뭐라고 하긴 뭐한 점이 있다. 논리에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말에 따르면 철도청(SNCF)의 Société가 여성명사이니 철도청은 여성 명사, IOC/CIO의 C는 Comité이니 남성 명사, 미국 CIA의 Agence는 여성 명사이니까 CIA는 여성 명사다. 캐나다의 Radio Canada의 경우는, 사내 직원들에게 3월달에 이미 사전조사(참조 5)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논리는 같았다. 바이러스를 지칭하는 경우에는 바이러스가 남성 명사니까, 남성 명사로, 병을 지칭할 때는 병이 여성 명사이니까 Covid는 여성 명사가 맞다는 결론이었다. 참고로 스페인 왕립아카데미도 같은 이유로 COVID를 여성명사로 정했다고 한다(참조 5). 독일어의 경우, 병을 지칭하면 여성명사다. 병(病, Krankheit) 자체가 여성 명사라서 그렇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지칭한다면? das Sars-CoV-2, 즉 중성 명사다. 바이러스가 중성 명사라서 그렇다. 역시 언어에 모름지기 중성도 있어야 제맛(…참조 6). 참고로… 프랑스 주요 언론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발표를 거의 개무시하는 분위기다. 그냥 쓰던대로 남성 명사로 쓰고 있다. -------------- 참조 1. 포괄형 글쓰기(2017년 12월 24일): https://www.vingle.net/posts/2303961 2. Le covid 19 ou La covid 19(2020년 5월 7일): http://www.academie-francaise.fr/le-covid-19-ou-la-covid-19 3. 가령 트뤼도 총리의 트윗을 보시라. https://twitter.com/JustinTrudeau/status/1259140052510281729 4. L'Académie française rappelle que Covid est féminin et non masculin(2020년 5월 11일): https://www.laliberte.ch/news-agence/detail/l-academie-francaise-rappelle-que-covid-est-feminin-et-non-masculin/563331 5. coronavirus, claves de escritura(2020년 2월 27일): https://www.fundeu.es/recomendacion/coronavirus-claves-de-escritura/ 6. 파리의 성은 무엇인가?(2017년 6월 10일): https://www.vingle.net/posts/212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