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terrible
6 years ago1,000+ Views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밀양>의 감동 이창동씨는 2002년 <오아시스>를 만들고 행복해 했습니다. <오아시스>가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되고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오아시스>는 각종 여성단체들에게 물매를 맞았습니다. 여성의 시각이 왜곡되었다는 것이 이유였죠. 특히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평론이, 이창동씨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여성을 도구로만 보고 있다. 이 시각은 <오아시스>뿐 아니라 그의 이전작들에도 끊임없이 보이고 있고, 이 요소는 불쾌감을 안겨준다." 정성일씨의 평론을 들은 이창동 감독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창동씨는 며칠간 자신의 학생들과 연락을 끊은 채, 방안에서만 1주일을 보냈다고 하죠. 5년이 지난 후, 그는 <밀양>을 만들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가 지적한 '여성 도구화'의 이슈에 당당히 맞써 싸우기라도 하듯, 이창동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여성 주인공을 내새웠죠. 뿐만 아니라, 이창동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소설을 각색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5년동안의 시간이, 왜 이창동 감독을 이청준 소설가의 <벌레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했는지, 또 그 각색의 과정에서 이창동 감독은 어떤 요소를 새롭게 추가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는지- 같이 알아보아요! ------------------------------------------------------------------------ '이청준의 절망론 vs 이창동의 희망론'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은, '송강호'의 존재 유무입니다. 소설은, 오로지 '전도연'씨의 절망만을 끊임없이 다룹니다. 사회와 종교의 모순 속에서 자기구원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자살하고 끝나죠. 하지만, 영화는 송강호 씨가 투입되면서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영화 내 송강호씨는 전도연씨에게 끊임없이 핀잔을 듣습니다. '속물' '멍청한 촌놈' 따위로. 그런 핀잔을 줌에도, '송강호'씨는 끊임없이 전도연씨를 쫓아갑니다. 전도연씨를 향한 순정도 변함이 없죠. 그야말로 '그림자'같습니다. 전도연씨는 그런 '그림자'를 무척이나 싫어하죠 - 돈 따지고 술 좋아하고... 전도연씨의 이상형과는 판이하게 틀립니다. 하지만, 결국 전도연씨는 송강호씨를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받아들인다'란, 둘이 사귄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머리를 짜르는 데 거울을 들어주는 것을 승낙해 준 수준입니다. 그것만으로, 전도연씨는 죽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즉, 전도연씨에게 송강호씨는 보이지 않는 '빛', 즉 '밀양' 그 자체입니다. 어둠속에서 혼자 흐느끼고 울 때, 전도연씨의 등 위에는 자신도 모르는 빛 한줄기가 올라타 있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영화를 보신다면 알겠지만, 송강호씨는 항상 전도연 씨 등 뒤를 쫓아가고 있죠- 송강호씨가 전도연 씨의 맞은 편에 서서, 그것도 앉아있는 전도연 씨 앞에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마지막 장면밖에 없습니다. (마치, 전도연 씨 앞에 빛이 다가오는 것 같이..) 여기서, 이창동 감독이 끊임없이 말하고자 했던, 그만의 희망론이 탄생합니다. 종교도, 사랑도, 사회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촌스럽게술만 마시는 주위사람이나, 멋 모르고 지나가는 행인마저도, 자기구원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즉, 작은 관심이라도 상처받은 인간에게는 커다란 구원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반쪽짜리 희망론인 것입니다. (몇몇 평론가들은, 이창동식 구원론을, '속물적인 구원론'이라고도 합니다.) ---------------------------------------------------------------------- 이청준씨의 <벌레이야기>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통해 한 여성의 심리흐름을 세세하게 따라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이창동씨의 <밀양>은 자신의 구원론을 삽입함으로 원작의 메세지를 침범하지 않는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제로, <밀양>에서만큼은 정성일 평론가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죠. 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더 쓰다가는 너무 길 듯 하여... 이 정도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 (주의: 주관적인 생각이 무척이나 많이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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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oppy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송강호씨의 역할이 작으면서도 큰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우와... 카드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존재'가 주제가 되는 글은 언제나 자꾸 스토리를 곱씹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오래 전 본 영화인데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말씀해주신 것 처럼 송강호의 존재 유무를 기준으로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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