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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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기도 해서 오늘은 운동도 생략하고 귀가했다. 퇴근 후 오랜만에 바로 집으로 오니 너무나 좋다. 운동은 내일 오전에 해야겠다. 어제 찾아온 동생은 위를 잘라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좋은 의미로. 작년 여름만 해도 덩치 좋은 사내였는데 호리호리한 자가 되어 있었다. 핏이 좋아지다 보니 심지어 키도 커 보이고. 무엇보다 8년 전 처음 보았을 때의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세상에. 계기는 암이었지만 차라리 그는 이참에 더 건강한 자로 거듭난 느낌이다. 건강. 그래, 건강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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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와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치즈라면과 참치김밥. 이 집이 이 근방 로컬 맛집이라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얼마 전부터 가끔 찾게 되었는데,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소규모의 가게였다. 남편은 주로 주방을 담당하고, 홀과 김밥 말기 정도는 아내가 담당하는 형태의. 라면은 아직 나오기 전이고, 동료와 나는 홀 담당 사장님이 말아준 김밥을 먼저 먹고 있었다. 나는 출입구를 등지고 식사 중이었는데, 손님 한 명이 들어온 것 같았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문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앳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돌솥비빔밥 하나 주세요. 우렁찬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서빙을 담당하는 사장님은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아예 제대로 듣지를 못해서 네? 하고 재차 물어봤다면 좋았겠지만, 잘못 알아들은 메뉴를 대며 확인했다. 쫄볶이 한 개요? 젊은 여자 손님은 아뇨, 돌솥비빔밥이요, 했다. 나는 처음부터 알아들었기에 이번에도 다시 분명하게 들었다. 돌솥비빔밥이라고. 그러나 서빙 담당 사장님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확인 차원에서 쫄볶이 하나요? 하고 되물었지만, 예, 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고 뭐라고 다시 대답을 하니, 이번에도 쫄볶이 한 개요? 라고 차마 묻지는 못하고, 잠시 침묵한 채로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쫄볶이라고 한 거 같은데, 쫄볶이가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쫄볶이인 걸,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 영영 침묵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네? 하고 다시 물었다. 여자 손님은 다시 말했다. 돌솥비빔밥 하나요. 물론 이번에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심지어 내 앞의 동료도 들은 듯이 회심의 미소 같은 것을 짓고 있었다. 뭔가가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듯. 세상에. 사장님은 이번에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쫄볶이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녀를 구원해줄 사람은 정녕 없단 말인가. 그녀의 남편은 주방에서 동료와 나의 라면을 끓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하필 가게에는 여자 손님을 제외하고는 동료와 나뿐이었고, 오지랖이라거나 뭐 그런 것이 넓은 그런 종류의 다른 손님은 없었다.  잠시 나라도 대신 다시 말해주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그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일까 생각하며 망설이는 사이, 홀 담당 사장님은 기지 비슷한 것을 발휘했다. 그녀는 확신에 차 여자 손님에게 말했다. 아아, 쫄볶이 포장이요? 홀 담당 사장님이 뱉은 방금 그 말에는 아주 여러 가지의 의미가 함축된 느낌이 있었다. 그래,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게 아냐, 나는 너의 말을 아주 잘 알아들었지만 쫄볶이 뒤에 포장이라는 단어 하나를 못 알아들어서 이 사달이 난 것뿐이야. 나는 손님의 말에 아주 경청을 잘 하고, 실수 따윈 잘 하지 않지. 난 말귀를 못 알아 먹는 사오정이 아니라고. 봐, 내 말투에 확신이 들어차 있는 게 바로 그걸 증명하는 거야. 근데 이번에도 잘못 들은 거면 어떡하지? 설령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도 의도는 아니니 이해하길 바라, 정도의 의미가 들어 있는 듯한 대사와 말투로 느껴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홀 담당 사장님은 연속된 실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사장님을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쫄볶이가 아니라는 걸. 쫄볶이 포장은 더더구나 아니라는 걸. 여자 손님은 쫄볶이를 시킨 적도 없거니와, 홀에서 먹고 갈 거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어째서 신은 홀 서빙 담당 사장님에게 이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련을 주는지. 우선 두 단어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았다. 돌솥비빔밥. 쫄볶이하나. 발음되는 대로 적어보자면, 돌쏘삐빔빱. 쫄뽀끼하나. 돌쏘삐 쫄뽀끼 아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여자 손님은 인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가 더 당황하여, 벌서고 있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침착을 잃지 않고 말했다. 아뇨, 돌솥비빔밥이요. 먹고 갈 거예요. 정말 안타깝지만 홀 담당 사장님은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했고, 기어코 피날레를 장식했다. ...네? 가여워라. 되묻는 사장님의 말에는 거의 필사적인 자조가 담겨있는듯 했다.  동료와 나는 육성으로 뱉진 않았지만 한마음으로, 여리지만 단호한 여자 손님의 마지막 일격 같은 대답에 힘을 실어 보냈다. 아, 물론 동료도 그랬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치자. 돌. 솥. 비. 빔. 밥. 이요. 아. 드디어 알아들은 홀 담당 사장님의 장탄식이 이어졌다. 나는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그사이에 나온 감격의 면발 흡입을 이어갔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본 가게의 풍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쫄볶이가 아닌 돌솥비빔밥을 먹는 여자와 테이블을 정리하는 사장님,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주방에서 분주한 또 다른 사장님.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봄이었다.
[토박이말 살리기]1-37 느루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느루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토박이말 살리기]1-37 느루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느루'입니다. 말집(사전)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오래도록'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길게 늘여서'로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쓴 보기월로 "하루라도 느루 쓰는 것이 옳고, 그래서 세 끼 먹던 것을 아침과 저녁 두 끼로 줄이었다."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버릇처럼 쓰는 보기가 여럿 있는 것을 보면 많이 썼던 말이고 앞으로도 자주 쓸 수 있는 말이지 싶습니다. 먼저 '느루 가다'가 있는데 '먹거리(양식)이 미루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가다'는 뜻이랍니다. '느루 먹다'는 '먹거리를 아껴 먹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먹다'는 뜻입니다. 또 '느루 잡다'는 '손에 잡은 것을 느슨하게 가지다.'는 뜻이고 '느루 재다'는 '하기 싫어서 억지로 느리게 움직이다'는 뜻이랍니다. 그릇을 느루 잡다가는 떨어뜨리기 쉽다는 것과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느루 잰다고 하면 느낌으로 아시지 싶습니다. 저는 허드렛종이도 느루 쓰려고 찢어서 쓰는 분이 많다고 들었던 게 생각났습니다. 이렇게 몰랐던 말도 알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을 살려 쓸 데가 떠오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느루'를 어디에 어떻게 쓸 수 있겠는지요?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무지개달 아흐레 닷날(4월 9일 금요일) 바람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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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오후에는 잠시 샐러드를 사러 나갔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조금 서러워졌다. 내내 비가 오다가 일요일에 이럴 건 뭐니. 온종일 속이 좋지 않아서 골골댔다. 누워서 글을 쓴다. 누워서 글을 쓴다니. 신인의 단편을 겨우 하나 읽었다. 오타가 서너 군데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랄지. 위생 관념이 형편없는 젊은 업주를 혼내는 백종원을 보며, 맞춤법이 형편없는 글을 보는 기분이 저런 걸까, 생각한다. 이건 기본 중에도 기본이에요. 시가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 아주 오래전 문학 수업을 받을 때, 시를 정말 잘 쓰는데 맞춤법이 형편없는 사람이 있었다. 올바른 맞춤법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몰라서 못 쓰는 거였다. 그래도 중요한 자리에 시를 내야 할 때는 맞춤법을 그럭저럭 맞춰왔다. 알고 보니 그건 사전을 뒤적여, 겨우겨우 교정교열을 봐온 결과였다. 돌이켜보면 그건 전적으로 독서 체험의 문제다. 많은 독서량이 반드시 맞춤법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또 독서량이 부족해도 맞춤법을 잘 틀리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후자의 경우는 대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나 뭐가 됐든 시를 쓰는 사람이 맞춤법을 모른다? 토씨 하나에 의미가 왜곡될 수 있는데 맞춤법을 무시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식재료 관리며 청소 관념 자체가 없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요리하겠다는 꼴이다. 맞춤법이 심각한데 시는 잘 쓰는 사람? 이미 어불성설이다. 백종원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기본. 그래, 기본은 중요하다 정말. 요리고 문학이고, 그런 뒤에나 할 얘기다. 저녁이다. 냉장고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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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두 달째. 코치님과 공식적으로 세 번째 인바디를 쟀다. 그러니까 첫 등록한 날 한번,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던 날 두 번, 그리고 두 달째 된 오늘 세 번. 물론 중간중간 자주 쟀지만, 달 주기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제대로 살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등록에서 한 달간 빠진 체지방량과 그 후로 오늘까지 빠진 체지방량이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대로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수치가 한 달 전보다 더 빠졌다는 거다. 와, 나이스. 코치님은 말했다. 보통 한 달 동안은 잘 지킨다고. 그러나 두 달째부터 모 아니면 도가 된다고. 그리고 대개는 두 달째에 무너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칭찬을 하는데 와, 칭찬받았다. 코치님은 그러나 조금 더 분발해보자고 했다. 사실 다름 아닌 '더 분발'의 요인은 식단 관리다. 주 5일을 지키고 주말에 무너지는 건데, 여기서 더 분발하려니 힘이 빠지기는 하지만, 주중 하루는 전체 식단을 샐러드와 닭가슴살로만 대체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주말에는, 특히 토요일은 지킬 생각이 없고 지킬 자신도 없다. 코치님도 내 성향을 파악했는지 주말 하루쯤은 무너져도 좋다고 허락했다. 나는 급하게 체중을 줄이고 싶지도 않고, 다만 꾸준하게 장기적으로 정상을 향해 가고 싶다. 그래서 사실 올해 여름보다는 겨울을 기대하고 있다. 보기 좋은 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근력을 기르고 싶다. 마지막 한 달, 어쨌든 무너지지 않고 꾸준히 달려가기로. 그 이후의 개인 트레이닝 연장은 조금 더 생각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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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가 쓴 글에 댓글을 다신 분이 있었고, 내가 그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며 오해를 하신 것 같다고 했는데, 자기 전 양치를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오해가 아니라는 걸. 우선은 그분께 사과를 드린다. 사실 이래서 내가 간혹 내 글에 댓글이 달려도 가급적 반응을 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왜냐면 괜히 사족을 더해 무언가를 변명하는 꼴이 되거나 오해를 더 키우는 경우가 있어서다. 바로 어제 상황처럼. 나의 댓글은 지웠다. ‘출간 전 교정도 보지 않느냐’는 지적의 댓글이 달린 것에 내가 다른 맥락만을 생각하고 오해했다. 오해는 그분이 아니라 내가 했다. 댓글을 다신 분이 주목한 곳은, 시를 잘 쓰는데 맞춤법을 모르는 학생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오타가 서너 군데 있는 신인의 단편소설 얘기였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말이 나왔으니, 교정교열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어제 내가 본 한 개의 단편소설 안에 오타가 서너 군데 발견된 것은 말 그대로 사실이었다. 올해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들을 모은 <2021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실린 소설이다. 책을 펴낸 출판사는 ‘한국소설가협회’라고 되어있다. ‘한국소설가협회’는 말 그대로 협회이지 정식 출판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협회 자체에서 내는 잡지들이 위주일 텐데 필요에 따라 소규모의 단행본 출판도 겸하는 형태일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곳이 꽤 된다. 굳이 말하자면 출판사이긴 하나, 잡지 발행이 위주이고 소규모의 단행본 출판을 겸하는 그런 곳. 내가 일하는 잡지사도 그런 형태에 가깝다. 알다시피 매년 1월 1일이면, 각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 당선작을 뽑아 내보낸다. 그리고 대개 1월 내에 각 신문사에서 뽑힌 작품들을 장르별로 묶어 책을 펴낸다. 시, 소설, 희곡 따로, 그리고 평론과 수필은 함께 묶어서 따로. 출간은 신문사와는 별개다. 그리고 장르마다 주관하는 출판사도 다 다르다. 신춘문예 당선시집 같은 경우, 오랫동안 ‘문학세계사’라는 출판사가 맡아왔는데,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요 몇 년 사이 주요 일간지 당선 시인들이 보이콧을 하며 작품을 싣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여, 이 빠진 형태가 되다가 급기야 올해는 아예 출간이 불발되었다. 소설은 말 그대로 ‘한국소설가협회’, 희곡은 ‘월인’이라는 출판사, 그리고 평론과 수필은 검색해보니 ‘정은문화사’라는 출판사로 뜨는데, 평론과 수필은 아무래도 타 장르에 비해 인기가 없어서인지, 지속적인 출간이 이뤄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정교열은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있다. 완벽한 교정교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간의 이런 말들이 꼭 과장인 것만도 아닌 게, 교정교열 작업을 하다 보면 정말로, 재차 삼차 들여다봐도 틀린 부분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교정교열은 결국 작가와 편집자의 공동 작업이다. 작가는 아무래도 자신의 원고를 너무 많이 들여다봐서, 어느 순간에는 원고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단계까지 다다르기도 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작가가 편집자에게 전적으로 교정교열을 맡겨버려도 문제가 된다. 교정교열이라는 것이 단순히 맞춤법과 띄어쓰기만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문맥을 파악하여 글의 중심을 잡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원고를 쓴 작가와 원고의 외부자이자 첫 번째 독자로서의 편집자가 끊임없이 조율해가며 원고를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작가라고 해서 모두가 맞춤법에 통달한 자도 아니며, 어느 정도 올바른 맞춤법은 쓴다고 해도, 맞춤법과 의도치 않은 오타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니 완벽까지는 아니고 완벽에 가까운 교정교열은 다소 완벽주의 성향의 작가와 편집자가 이루는 것이다. 대형 출판사라면, 편집장을 포함해 보조 편집자가 몇몇 더 있을 것이니, 보는 눈이 많아 더 정확한 원고가 만들어질 테고.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같은 책의 경우, 서울의 주요 일간지를 포함해, 지방의 신춘문예를 진행한 거의 모든 신문사의 작품이 다 실려 있다. 그러니 개인의 작품집도 아니고, 특정 모임의 앤솔로지도 아니다. 단순히 신춘문예라는 타이틀로만 묶인 전혀 연관 없는 당선자들의 소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다. 가령 90년대에 유행하던 최신 가요 히트곡 모음집 같은, 조악하게 노래들을 모아 놓은 카세트테이프처럼. 신인들의 소설이 궁금하긴 하지만 각 신문사마다 신문을 구해 소설을 읽기가 번거로운 독자,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습작생, 문학 수업을 위해 일종의 교재가 필요한 강사 정도일까. 특정 독자층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가 수요의 마지노선인 책. 다시 말하지만 정식 출판사도 아니고, 그러니 편집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부재하며, 또한 편집자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형편이라 작가가 특별히 자신의 원고에 엄격하지 않은 이상, 틀린 맞춤법이나 오타는 군데군데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 표지도 정말 투박하고 조악하다. 사실상 어떤 출판사에서 나오느냐, 어떤 성격의 책이냐에 따라, 책의 퀄리티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을 보며, 웬만한 오타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이다. 우리가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조악한 최신 가요 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음질을 따지지는 않듯이. 뭐 어쨌든 한 개의 댓글에서 촉발되어 교정교열 현실을 돌아보았다.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실린 소설과 서울 주요 일간지 및 지방 신문사의 신춘문예 현실에 관해서는 조금 나중에 얘기해보기로 한다.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2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좋은말씀 #명언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2-하지 않으려는 그 생각을... 어제는 들말마을배곳 알음알이 잔치를 하는 날이었다. 빛무리 한아홉(코로나 19) 때문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만나서 좋았다. 여러 날 동안 잔치 갖춤을 해 온 갈침이 네 분과 자리를 함께해 준 배움이들과 어버이, 바쁘신 가운데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고 북돋움 말씀까지 해 주신 새로나꽃배곳(신진초등학교) 김호연 교장 선생님과 김춘애 교감 선생님까지 모두 참 고맙더라. 잔치에 자리했다가 바로 집으로 와서 여느 날보다 일찍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셈틀에 앉아 일을 하는데 자꾸 졸리더구나. 그래서 좀 자고 일어나야지 하고 누웠는데 두 때새를 잤지 뭐니.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자려면 넉넉하게 자기는 어렵지 싶구나. 오늘 알려 줄 말씀은 "하지 않으려는 그 생각을 하지 마라. 그만두려는 그 마음을 그만두어라."야. 이 말은 '베르지트'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베르지트'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곳을 찾지 못했단다. 사람인지, 모임인지 궁금한데 너희들도 함께 찾아봐 주면 좋겠어. 사람이 살다보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어. 그리고 하고 있는 일도 조금 힘이 든다든지 어렵다 싶은 생각이 들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하기 싫다고 안 하고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두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하나도 없을 거야. 내 삶의 임자는 '나'고 내 삶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거든. 그러니까 이런 말이 나왔지 싶어 하기 싫을 때는 하지 않아야 될 까닭을 찾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어야 할 까닭을 찾아 그만두고 하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그만두라고 한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다른 사람들은 이 말씀 가운데 뒤에 있는 것을 '포기하고 싶은 그 마음을 포기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그만두라'고 바꿔 보았단다. '포기'라는 말은 '던질 포(抛)'에 '버릴 기(棄)'로 된 한자말인데 말집(사전)에 보면 '포기'를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만두다'라고 해도 같은 뜻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성진우 님이 부른 '포기하지 마'라는 노래가 있는데 '포기하지 마'를 '그만두지 마'로 바꿔 부르곤 했던 일도 생각이 나네. 너희도 겨를을 내어서 그 노래를 들어보고 노랫말을 바꿔 불러 보면 재미있을 거야. 누군가는 '게으름'이라 부르기도 하고 누구는 '귀찮음'이라고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으면 좋겠구나. 오늘 하루도 기쁜 마음으로 알찬 일들로 가득 채워 가길 바랄게. 4354해 무지개달 여드레 낫날(2021년 4월 8일) 바람 바람